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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錫雨 李錫雨[着名]金贊西[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광무 2) 11월에 이석우가 천남면에 있는 논 8마지기를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매계약 문서 1898년 11월에 이석우(李錫雨)가 천남면(川南面) 역해하평(驛海下坪)에 있는 시자(始字) 자호의 논 8마지기를 전문 300냥에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매계약 문서이다. 매수한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토지매매시 구문기(舊文記)를 함께 건네주는 것이 관례이나, 갑오 동학난때 문기를 소실했으므로 신문기(新文記)만 준다는 내용을 추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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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노 일운금(一云金) 배지(牌旨)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趙 奴 一云金 上典 趙[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인년 12월에 상전 조 아무개가 노 일운금에게 전답의 방매를 위임하기 위해 작성해 준 배지 경인년 12월에 상전 조(趙) 아무개가 노 일운금(一云金)에게 전답 방매를 위임하기 위해 발급한 배지(牌旨)이다. 방매하고자 하는 토지는 이천(利川) 백면(栢面) 자옥동(紫玉洞) 소재 상자(常字) 자호의 논이다. 2개 지번의 논으로 규모를 합하면 7마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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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廉淑鉉 廉淑鉉<着名>宣昌植<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5년(고종22) 11월 28일에 염숙현이 누군가에게 논 1마지기를 2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5년(고종22) 11월 28일에 염숙현(廉淑鉉)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염숙현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복하도(福下道) 하진촌(下津村) 앞 신기평(新基坪)이고 자호는 식자(食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6배미[夜味]이고 파종량 기준으로 1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1복(卜) 7속(束), 가복(加卜) 1복 3속인 논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25냥이다. 이 논의 본문기(本文記)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선창식(宣昌植)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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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君福 奴 君福<着名>奴 乭伊<着名>奴 卜元<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180_001 1902년 1월 10일에 임노 군복이 누군가에게 논 2마지기를 14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2년 1월 10일에 임노(林奴) 군복(君福)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군복은 긴요하게 쓸 곳이 생겨서 자신이 매득했던 논을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부항원(釜項員)이고 자호는 상자(嘗字), 지번은 89답,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 4부(負) 9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45냥이다. 구문기(舊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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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宋氏 宋氏<手掌>朴世熙<着名>崔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2년 2월에 임씨 문중의 과부 송씨가 누군가에게 밭 2마지기 38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2년 2월에 임씨(林氏) 문중의 과부 송씨(宋氏)가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송씨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살림이 어려워져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동일면(東一面) 상서암촌(上瑞岩村) 뒤 저곡평(苧谷坪)이고 자호는 래자(來字),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 5속(束) 4부(負)이며, 거래가는 38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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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정대진(鄭大辰) 등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吉來 鄭大辰 洛元 1顆(적색,타원형,0.6cm)鄭秉圭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0년 11월 7일에 동원 정길래 등 3인이 정대진과 정낙원, 강무칠에게 마을 소유 송전의 일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0년 11월 7일에 동원(洞員) 정길래(鄭吉來) 등 3인이 마을 소유 송전(松田)의 일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동중(洞中)에서 송전을 매득하여 수년 동안 금양(禁養)하다가 올해 들어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소재지는 안의군(安義郡) 서상면(西上面) 추포(楸布) 뒤 석정(石亭)의 북쪽 기슭이고 경계는 산골짜기에서 서쪽이며, 매매가는 전문 130냥이다. 마을 이장인 정병규(鄭秉圭)가 거래에 참여하였고, 문서 말미에 훗날 다른 변고가 있더라도 동원과는 다투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내용을 추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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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炫采 鄭炫采<着名>鄭炫斗<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9년(고종6) 11월 19일에 정현채가 누군가에게 논 5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9년(고종6) 11월 19일에 정현채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현채는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소유하게 된 논을 수년간 경작해오다가 이 논을 팔아서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도촌면(道村面) 상곡(上谷) 봉치평(鳳峙坪)이고, 자호는 하자(下字), 면적은 5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는 8배미[夜味], 부수(負數)로는 33부(負) 4속(束), 거래가는 전문(錢文) 85냥이다. 정현채는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를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 측에 건네고 영구히 방매하였다. 아우인 정현두(鄭炫斗)가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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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重九 李重九<着名>丁錫義<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9년(고종6) 12월 28일에 이중구가 누군가에게 논 5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9년(고종6) 12월 28일에 이중구(李重九)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중구는 자신이 매득했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수곡면(水谷面) 칠암촌(七岩邨) 후평(後坪)이고 자호는 형자(形字), 면적은 5마지기[斗落只], 거래가는 전문(錢文) 70냥이다. 이중구는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 측에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정석의(丁錫義)가 이 거래에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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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류유선(柳有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子化 柳有善 鄭子化信 1顆(적색,정방형,1.5×1.5cm)柳暖雨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1년 10월 11일에 정자화가 유유선에게 4칸 가대와 대전 1마지기를 47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1년 10월 11일에 정자화(鄭子化)가 류유선(柳有善)에게 가대(家垈)와 대전(垈田)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자화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거주하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주곡리(蛛谷里)이고 회자(懷字) 자호의 가대 4칸과 대전(垈田) 1마지기[斗落只] 5부(負) 5속(束)을 전문(錢文) 47원을 받고 거래하였다. 문서 말미에 구문기(舊文記)는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넘겨줄 수 없다는 문구를 추기하였다. 이 문서는 본문의 내용은 기존 명문의 양식을 따르면서 인출지에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되었으며, 가대주 정자화와 증인 유준우(柳晙雨)는 착명 대신 개인 도장을 날인하여 매매계약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는 문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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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신말순(申末順) 매도증(賣渡證)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鍾爀 申末順 金裕喆 1顆(적색,원형,1.2cm)崔芙容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9년 8월 10일에 강종혁이 신말순에게 시장의 2칸짜리 점포 한 곳을 팔기로 계약하면서 작성한 매도증 1949년 8월 10일에 강종혁(姜鍾爀)이 신말순(申末順)에게 시장의 점포를 팔기로 계약하면서 작성한 매도증이다. 매도인 강종혁이 진주시(晉州市) 봉곡동(鳳谷洞)에 신설된 시장의 2칸 규모의 점포 한 자리의 권리에 대해 매매대금 135,000원을 확실히 매매하면서 계약금 20,000원을 즉일에 영수하였고, 잔액의 완불 기일은 금년 음력 9월 15일로 정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매도인 갑과 매수인 을 사이에 약속을 어겼을 때에는 을은 계약금을 무효로 하고 갑은 계약금의 두 배의 액수를 을에게 지불하는 것으로 쌍방이 계약하였다. 강종혁의 이름 아래에 희미한 인주 흔적이 있는데, 이 문서가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강종혁의 도장이 날인되어 있어야 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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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남병년(南炳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南馬慶 南炳年 南馬慶<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8년(고종25) 2월 7일에 족질 남마경이 족숙 남병연에게 밭 4마지기를 11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8년(고종25) 2월 7일에 족질(族侄) 남마경(南馬慶)이 족숙(族叔) 남병연(南炳年)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남마경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는 상속을 통해 받았다고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본면(本面) 관암(觀菴) 앞이고 자호는 궐자(闕字)이며 지목은 피모전(皮牟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는 1부(負)이고 거래가는 전문 11냥이다. 이 거래에는 증인이나 필집의 참여 없이 남마경 본인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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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箕潤 柳基萬<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8년(고종25) 12월 19일에 박기윤이 누군가에게 논 16말 5되지기를 16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8년(고종25) 12월 19일에 박기윤(朴箕潤)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기윤은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세전(稅錢)을 마련할 길이 없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계촌(沙溪村) 군개평(涒介坪)이고, 자호는 교자(交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6말[斗] 5되지기[升落只]이고, 거래가는 전문 16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논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절반을 잘라서 넘겨준다고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이 거래에 유기만(柳基萬)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고, 답주인 박기윤은 상중이라 착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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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서만실(徐萬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餘魯 徐萬宗 徐子允<着名>林乃京<着名>車泰西<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8월 6일에 김여노가 서만실에게 밭 6마지기를 82냥 4전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3년 8월 6일에 김여노(金餘魯)가 서만실(徐萬實)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여노는 자신이 매득한 밭을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올해 부득이한 상황에 처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평일도(平日島) 동면(東面) 방항리(芳項里) 당월평(堂越坪)이고 자호는 기자(譏字), 면적은 6마지기[斗落只] 3복(卜) 4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82냥 4전이다. 이 밭의 구문기(舊文記) 1장도 신문기와 함께 서만실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평일도는 완도군 평일면이었다가 금일면(金日面)에 편입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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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泳圭 尹滋馨<着名>柳志渭<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4년 6월 9일에 유영규가 누군가에게 15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4년 6월 9일에 유영규(柳泳圭)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영규는 이 논을 자신이 매득한 곳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수년간 세를 거두다가 부득이한 상황이라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야평(沙也坪)이고 자호는 화자(和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5마지기[斗落只], 거래가는 전문(錢文) 52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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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正檜 安正檜<着名>李淡模<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5년 1월 25일에 안정회가 누군가에게 6말 6되지기의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5년 1월 25일에 안정회(安正檜)가 누군가에게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전답은 안정회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간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중리촌(中里村) 모퉁이이고 자호는 회자(懷字)이며 면적은 전답을 합해서 파종량 기준으로 6말[斗] 6되지기[升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19부(負)이다. 거래가 16냥을 받고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이 거래에 이담모(李淡模)가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으며, 구문기(舊文記)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내용이 추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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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熙重 柳熙重<着名>柳公雨<着名>金錫洪<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1월 24일에 유희중이 누군가에게 논 5마지기를 3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3년 1월 24일에 유희중(柳熙重)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희중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봉산촌(蜂山村) 후평(後坪) 금정수통(禁井水桶)이고 자호는 거자(去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5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13복(卜) 4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300냥이다. 구문기(舊文記)는 화재로 인해 없어졌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고 문서 말미에 추기하였고, 이 거래는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또 추기된 내용 중에 성문(成文) 값이 5냥이라고 적혀있는데 문서를 작성해준 값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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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吳成集 吳成集信 1顆(적색,원형,1cm)文元三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3년 4월 7일에 오성집이 누군가에게 논 3마지기를 55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3년 4월 7일에 오성집(吳成集)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오성집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상평리(上坪里) 후평(后坪)이고, 자호는 기자(氣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1배미[夜味]이고 파종량 기준으로 3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4부(負) 8속(束)이며, 매매가는 전문(錢文) 55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오성집은 고창군 천남면 서문리에, 증인으로 참여한 문원삼(文元三)은 고창군 덕정면 석탄리에 산다고 거주지 주소를 이름 앞에 기재하였다. 본문의 서술은 매매명문의 양식 그대로 작성되었고, 답주와 증인의 거주지를 기재한 것은 근대 매매계약서의 양식으로, 두 가지 양식이 섞인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문서이다. 이 문서의 하단에 작은 별지가 붙어있는데, 이는 명문을 작성하고 난 뒤인 같은 달 13일에 천북(川北) 동부리(東部里)에 사는 오연술(吳然述)이 매매가 550냥을 받고나서 발급한 영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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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劉宣奎 劉宣奎<着名>曹錫浩<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6년 4월 11일에 유선규가 누군가에게 논 7마지기를 1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6년 4월 11일에 유선규(劉宣奎)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선규는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상속받은 논을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팔게 되었다고 소유경위와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협동평(挾洞坪)이고 자호는 정자(靜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4배미[夜味], 파종량 기준으로 7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00냥이다. 구문기(舊文記)도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유선규는 이 논을 팔면서 본인이 시작(時作)을 하는 것으로 하고 원선자[元先尺]를 3섬[石]으로 정한다는 것을 추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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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윤상흥(尹相興) 토지매도증서(土地賣渡証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重禎 尹相興 崔重禎信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1년 12월 24일에 최중정이 윤상흥에게 2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 1921년 12월 24일에 최중정(崔重楨)이 윤상흥(尹相興)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이다. 부동산 표시 항목에는 소재지와 면적, 거래가가 쓰여 있다. 소재지는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금매리(金梅里) 고산평(孤山坪)이고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270원이다. 문서명은 토지매도증서로 근대의 계약증서의 양식을 취하고 있지만 매매명문의 담보문언으로 마무리하고 있어 두 양식이 혼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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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윤행수(尹行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南壽熙 尹行秀 南壽熙信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3년 2월 12일에 남수희가 윤행수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23년 2월 12일에 남수희(南壽熙)가 윤행수(尹行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남수희는 자신이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는 매득을 통해서라고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울진군(蔚珍郡) 본면(本面) 금매리(金梅里) 상교평(相橋坪)인데 지번과 면적을 기입하지 않았고 거래 대금은 215원이다. 답주(畓主)라는 용어 대신 매도인(賣渡人)이란 용어를 쓴 것은 매매계약서에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 시기는 기존의 매매명문의 틀을 유지하면서 근대 매매계약서 상의 용어를 혼재하여 쓰고 있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매물의 소재지는 원남면(遠南面)인데 본면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매도인과 매수인이 같은 지역의 사람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매물의 지번과 면적을 기입하지 않고 공간을 남겨두어 불완전한 문서이고 실제 거래가 이루어진 것인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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