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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泰賢 金泰賢<着名>全應寶<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4년(고종21) 2월 20일에 전태현이 누군가에게 논 4마지기를 36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4년(고종21) 2월 20일에 전태현(全泰賢)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독곡평(篤谷坪)이고 자호는 의자(疑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5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 11부(負) 3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36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히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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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허점록(許點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禮用 許黙錄 李禮用<着名>金光祿<着名>金齊奉<着名>朴君鎭<着名>金士彦<着名>李丹瑞<着名>鄭日在<着名>趙乃彦<着名>朴作別<着名>李德柱<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6년 9월 28일에 허점록이 이예용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6년 9월 28일에 허점록(許點錄)이 이예용(李禮用)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예용은 자신의 증조부 산소가 보성군 도촌면(道村面)의 아래 회령(會寧) 끄트머리 정남향[子坐午向]에 있는데, 우리 문중 종손의 근래 처한 상황이 이를 지키기 어려워졌으므로 선소(船所)에 사는 허점록과 이 산지에 묘를 함께 쓰고자 전문(錢文) 120냥을 받고 영구히 판다는 내용이다. 도촌면은 득량면(得粮面)으로, 회령면은 회천면(會泉面)이 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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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권중보(權重寶)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奉元 權重寶 金奉元 1顆(적색,직사각형,1×2cm)金大原信 1顆(적색,원형,1cm)崔正玉 1顆(적색,원형,0.8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3년 권중보가 김봉원으로부터 2되지기의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3년 권중보(權重寶)가 김봉원(金奉元)으로부터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종원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간 경작해오다가 권중보가 이곳에 부모의 산소로 입장(入葬)하고자 누누이 간청을 하였기 때문에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순창군 풍남면(豊南面) 월산리(月山里) 성덕평(聖德坪)이고 자호는 월자(越字), 지번은 34-1번지이며, 구획상으로는 1배미[夜味]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되지기[升落只]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0원 30전이다. 월산리의 이장(里長)인 김대원(金大源)이 보증인을 겸하여 도장을 찍었고 최정오(崔正五)가 집필인으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1898년 대한제국을 공포한 뒤 양전(量田)사업과 관계(官契) 발급을 추진하여 토지소유권을 보호하고 새로운 지세제도를 확립하고자 하였는데 국권 약화로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이후 일제는 1906년 토지가옥증명규칙(土地家屋證明規則) 및 일련의 법령을 공포했고 1907년 토지가옥증명 사무처리순서를 발표하였는데, 이 절차에서 증명신청자가 통수(統首) 또는 동장(洞長)에게 서류를 첨부하여 증명을 신청하면 통수 또는 동장은 접수부에 해당사항을 기입한 뒤 계약서의 내용을 조사하여 인증부(認證簿)에 기입하고 계약서에 인증하여 신청자에게 돌려주는 단계가 있다. 이 절차를 지방에서는 이장(里長)이 담당하였기 때문에 이 문서처럼 이장이 매매명문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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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洛汝 趙炳雅信 1顆(적색, 원형, 0.8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84_001 1907년 11월 21일에 강낙여가 누군가에게 3말 5되지기 면적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907년 11월 21일에 강낙여(姜洛汝)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강낙여는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왔다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어쩔 수 없는 형편 때문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굴어보(屈魚㙅) 상단평(上端坪)이고 자호는 견자(堅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3말[斗] 5되지기[刀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는 9부(負)이며 구획상으로는 2배미[夜味]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250냥이다. 본문기(本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만으로 영구히 방매한다고 하였다. 이 거래에 조우경(趙禹敬)과 이장(里長)인 조병아(趙炳雅)가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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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東善 柳東善<着名>安淵洙<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 11월 25일에 유동선이 누군가에게 논 12마지기와 초장 두 곳을 1,2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1년 11월 25일에 유동선(柳東善)이 누군가에게 논과 초장(草場)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동선은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이 논을 팔아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계촌(沙溪村) 군개평(群開坪)이고 자호는 상자(上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2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24부(負)인 논에 초장 2편(片)을 합해서 전문 1,200냥을 받고 방매하였으며,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안연수(安淵洙)가 이 거래에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고, 별도의 필집(筆執)은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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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4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相烈 柳相烈<着名>柳重熙<着名>金錫根<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 11월 27일에 유상열과 유중희가 누군가에게 논 7마지기를 33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1년 11월 27일에 유상열(柳相烈)과 유중희(柳重凞)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상열과 유중희가 방매하는 계답(稧畓)은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던 논이고,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봉산리(蜂山里) 이보평(而湺坪)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7마지기[斗落只]이고 구획상으로 3배미[夜味]이며, 거래가는 전문 330냥이다.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으며, 구문기에는 다른 내용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내어줄 수 없다는 문구가 말미에 추기되어 있다. 이 거래에 김석근(金錫根)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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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徐錫煥 徐錫煥<着名>柳宗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8년 10월 28일에 서석환이 누군가에게 11마지기의 전답을 45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8년 10월 28일에 서석환(徐錫煥)이 누군가에게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서석환은 긴급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오서면(五西面) 가양평(柯洋坪)이고, 의자(宜字) 자호의 논 10마지기[斗落只]와 같은 의자 자호의 태종전(太種田) 1마지기를 합해서 11마지기의 전답을 전문(錢文) 450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는 내용이다. 필집(筆執)은 따로 두지 않았고 유종선(柳宗善)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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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洪在善 洪在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고종16) 3월 8일에 홍재선이 누군가에게 논 9마지기를 8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9년(고종16) 3월 8일에 홍재선(洪在善)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홍재선은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도조(賭租)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무장(茂長) 성동면(星洞面) 붕조평(鵬鳥坪)이고 자호는 빈칸으로 두어 적지 않았다. 면적은 2배미[夜味] 9마지기[斗落只]이고 거래가는 전문 8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매득인에게 넘겨주지 못하고,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 방매가 이루어졌다. 이 거래에 정복원(鄭福源)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였고, 상중이라 착명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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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윤씨종중(尹氏宗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尹喆鎭 尹氏宗中 尹喆鎭<着名>尹達鎭<着名>尹一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9년 11월 28일에 종손 윤철진과 문장 윤원진이 제위조로 밭을 마련한 사실을 윤씨 종중에 밝혀두는 명문 1859년 11월 28일에 종손(宗孫) 윤철진(尹喆鎭)과 문장(門長) 윤원진(尹遠鎭)이 제위조(祭位條)로 밭을 마련한 사실을 윤씨 종중에 밝혀두는 명문이다. 매매명문의 형식처럼 작성되어 있으나 실제 내용은 일정 사안에 대해 밝혀놓은 증서 성격의 명문으로 볼 수 있다. 선비가 당이 없으면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데 하물며 시골 사는 빈한한 유가(儒家)의 경우 위토(位土)가 없으면 사시(四時)의 차례와 여러 대의 기진(忌辰)을 어떻게 봉향하겠는가라는 생각에서 고조(高祖)가 같은 세 집안이 함께 재물을 모아 포천(抱川) 청량면(淸凉面) 마전리(麻田里)에 있는 일일반경(一日半畊) 면적의 밭을 전문 105냥을 주고 매득하여 고조와 증조 2대의 제위조로 삼고, 훗날 자손들이 팔 우려가 있기 때문에 문기 2장을 작성하여 한 장은 종손 윤철진 집에 두고 또 한 장은 문장 윤원진 집에 두어서 천년만년 변치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밭의 자호는 위자(位字)이고 지번은 27전, 31전, 49전 세 곳을 합하여 일일반경의 면적이다. 일일반경은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땅의 면적을 표시하는 방법이고, 주로 논보다는 밭의 면적을 표기할 때 사용되었다. 일경(日畊)은 조선시대 관습적으로 사용된 면적 표시인데 우경(牛耕)을 표준으로 소 한 마리가 하루에 가는 면적을 1일경, 그 반의 면적을 반일경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일일반경은 하루하고 반나절을 더 갈아야 하는 면적인 것이다. 또 이들 밭의 사표(四標)도 기재하였는데, 동쪽은 홍삼가댁 노 소득의 논이고 남쪽은 방축, 서쪽은 이득명의 밭이고 북쪽은 홍생원댁 노 구손의 밭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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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박만종(朴萬宗)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韓三伊 朴萬宗 韓三伊[着名]李仲文[着名]安進權[着名]李大奎[着名] 1顆(적색,원형,1.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2년(철종 13) 2월 26일에 한삼이가 박만종에게 주암면 소재 가대를 방매하며 작성해 준 가대매매명문 1862년(철종 13) 2월 26일에 한삼이(韓三伊)가 박만종(朴萬宗)에게 가대(家垈)를 방매하며 발급한 가대매매문서이다. 매매한 가대는 방매자 한삼이가 수년간 살아온 곳인데, 갚아야 할 부채가 많아서 하는 수 없이 방매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소재지는 주암면(住巖面)이며 매물은 초가 1지(旨) 3칸, 부수(負數) 2복(卜)의 가대이다. 값은 전문 7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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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凡煥 朴凡煥<着名>金琪淳<着名>鄭歡祚<着名>金洛中<着名>朴儀<着名>朴平準<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9년 양력 1월 19일에 계의 공원 박범환이 누군가에게 계답 1마지기를 29냥 6전 4푼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9년 양력 1월 19일에 계(稧)의 공원(公員) 박범환(朴凡煥)이 누군가에게 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계에서 논을 팔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 논을 매입할 당시에 작성된 명문인 구문기(舊文記)에 '본가(本價)로 땅을 바꾼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부득이 1마지기[斗落只] 4부(負) 9속(束)인 논을 본가인 14냥 8전 2푼을 받고 여기에 이 논 값 14냥 8전 2푼을 합해서 29냥 6전 4푼을 받고 본답주(本畓主)에게 신문기와 구문기 2장을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계답을 방매하는 일이므로 답주는 계에서 공원이고, 증인 가운데 김기순(金琪淳)은 계의 유사(有司)이며 이외에도 정석조를 비롯한 계원들이 증인과 필집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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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文山哲 奴 文山哲<着名>慈上<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39_001 1936년 3월 26일에 정생원댁 노 문산철이 누군가에게 2말 7되지기의 논을 8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36년 3월 26일에 정생원댁(鄭生員宅) 노(奴) 문산철(文山哲)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문산철은 자신의 상전을 대신하여 교동전평(橋洞前坪)에 있는 존자(存字) 자호의 논을 팔았다. 논의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말[斗] 7되지기[升落只]이고 매매가는 전문(錢文) 8냥이다. 방매사유는 이매(移買), 즉 이 논을 팔아서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산철은 상전댁의 배자 내용에 따라 매수인에게 영구 방매하고 신문기(新文記)를 작성하여 주었고,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논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출급하지 못한다는 내용도 추가하였다. 노 문산철이 정생원에게 원매인을 찾아 방매하라는 내용의 배지가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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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노 차복(次卜) 배지(牌旨)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尹 奴 次卜 上典 尹<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4년 4월 19일에 상전 윤씨가 노 차복에게 원매인을 찾아 밭 1일경과 1식경을 합한 두 곳을 팔도록 지시하는 내용의 배지 1844년 4월 19일에 상전(上典) 윤씨(尹氏)가 노(奴) 차복(次卜)에게 발급한 배지이다. 윤씨는 자신의 밭을 방매하고자 사내종 차복에게 이 밭을 사기 원하는 사람을 찾아 매매를 할 수 있도록 밭의 상세 정보를 적어준 것이다. 논은 포천(抱川) 청량면(淸涼面) 마전리(麻田里)에 있고 자호는 조자(弔字)이며, 면적은 일일경(一日耕)과 일식경(一息耕) 두 곳을 합하여 2부(負) 4속(束)이고, 사표(四標)가 분명한 곳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밭의 상세정보를 적은 뒤에 너는 원매인을 찾아 값을 받아 상전댁에 바친 뒤에 이 배자의 내용에 따라 신문기(新文記)를 작성하고, 본문기(本文記) 2장과 배자 3장도 함께 매수인에게 주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정보들은 매매명문을 작성하는 기초정보를 배지 안에 모두 기재한 것이고, 차복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원매인을 찾아 매매를 성사시키면서 매매명문을 작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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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현학규(玄鶴圭)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得春 玄鶴圭 李得春信 1顆(적색,원형,1cm)光州地方法院潭陽出張所 1顆(적색,정방형,3.7×3.7cm)司法代書人吳昌俊 1顆(적색,정방형,1.5×1.5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0년 1월 14일에 현학규가 이득춘으로부터 토지를 매입하고 광주지방법원 담양출장소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작성 제출한 매도증서 1930년 1월 14일에 현학규(玄鶴圭)가 이득춘(李得春)으로부터 밭을 매입하고 난 뒤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담양출장소(潭陽出張所)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하기 위해 작성 제출한 문서이다. 일본어로 인출된 용지에 대서인(代書人)이 해당 사항을 기입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매매 부동산의 소재지는 담양군(潭陽郡) 고서면(古西面) 고읍리(古邑里) 184번지이고, 지목은 전(田), 면적은 450평(坪), 매매대금은 63원이다. 문서의 좌측에 장방형의 도장 두 개가 찍혀 있는데 우선 하단의 등기제(登記濟) 인은 수부(受附)를 적은 것으로, 수부는 접수의 의미이다. 즉 등기 신청을 접수한 날짜는 소화(昭和) 5년 1월 15일이고, 접수 번호는 제487호이다. 상단의 작은 장방형 도장은 토지등기부에 등록된 등기번호를 기입한 것인데 번호는 제3935호이고, 순위번호는 2번이다. 등기제인 아래에 찍힌 도장은 '광주지방법원담양출장소인(光州地方法院潭陽出張所印)'이다. 그리고 마지막 좌측 하단에는 이 매도증서를 작성한 사법대서인(司法代書人) 오창준(吳昌俊)의 이름이 있고 여기에 도장이 날인되어 있다. 그 위에 적힌 서기요금은 16전이다. 사법대서인은 1895년 재판소구성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생긴 새로운 직업으로, 변호를 담당하는 경우 대언인(代言人), 서류를 담당하면 대서인이라고 하였다. 주로 토지의 소유권이나 전당권 등을 증명하는 서류를 대신 작성해주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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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오연술(吳然述)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吳成集 吳成集信 1顆(적색,원형,1cm)吳然述信 3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3년 3월 24일에 오성집이 오연술에게 8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3년 3월 24일에 오성집(吳成集)이 오연술(吳然述)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소유 경위는 자신이 매득한 것이라고 밝혔고 수년 동안 세를 거두다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봉산전평(蜂山前坪)이고 자호는 창자(唱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8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는 26복(卜) 8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52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별지로 붙어있는 작은 종이에는 1913년 4월 1일에 오연술이 논 값 500냥을 받았다는 표(票)로 영수증과 같은 성격의 문서이다. 3월 24일에 거래가 이루어져 명문을 작성하였고 논 값 520냥 가운데 500냥은 며칠이 지난 뒤인 4월 1일에 수수된 것으로 보인다. 남은 20냥은 명문 작성 시 지불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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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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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44년 문옥심(文玉心) 가대급건물매도증서(家垈及建物賣渡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宣洙模 文玉心 宣洙模 1顆(적색,타원형,1.3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4년 9월 13일에 선수모가 문옥심에게 대지 및 건물을 100원을 받고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도증서 1944년 9월 13일에 선수모(宣洙模)가 문옥심(文玉心)에게 대지 및 건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도증서이다. 매매 부동산의 소재지는 순천군(順天郡) 낙안면(樂安面) 목촌리(木村里)이고, 지번이나 지목 등은 빈칸으로 두었으며, 매도대금은 1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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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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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46년 이인식(李仁植) 토지매매증서(土地賣買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裕植 李仁植 李裕植 1顆(적색,타원형,1.3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6년 12월 17일에 이유식이 이인식에게 밭 8마지기를 25,000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도증서 1946년 12월 17일에 이유식(李裕植)이 이인식(李仁植)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매도증서이다. 매도대금은 25,000원이고 지목은 전(田)이며, 면적은 8마지기[斗落只]이다. 이 토지를 영구히 매도하고, 소유권 이전은 매수인이 부담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특약으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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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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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成列 奴 成列<着名>宋和洙<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고종16) 2월 4일에 변생원 노 성열이 누군가에게 논 18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9년(고종16) 2월 4일에 변생원(邊生員) 노(奴) 성열(成列)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이매(移買)라고 하였는데, 이는 원거리의 전답을 팔아 경작에 편리한 인근의 땅을 매입하는 것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중리촌(中里村) 앞의 고직평(庫直坪)이고, 자호는 제자(諸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8마지기[斗落只]이고 결부수(結負數)는 빈 칸으로 두었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313냥이다.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유학(幼學) 송화수(宋和洙)가 증보(證保)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증인이 거래사실의 진위 여부를 입증하는 참여자라면 증보는 거래상의 채무 불이행이나 불완전 이행 시에 보증 책임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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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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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2년 노 정득(丁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德善 奴 丁得 金德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2년(고종19) 10월 15일에 김덕선이 한생원댁 노 정득에게 논 3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2년(고종19) 10월 15일에 김덕선(金德善)이 한생원댁(韓生員宅) 노(奴) 정득(丁得)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김덕선은 자신이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에 대해서는 선대로부터 전래된 논이라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유고개(柳古介)이고 자호는 양자(良字)이며, 지번은 44분답(分畓),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2복(卜)이고 파종량 기준으로 3마지기[斗落只]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40냥이다. 옛 본문기 1장은 집에 있어서 가져오지 않았고 매득 본문기 1장은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소유권이 넘어가는 시기를 '내년부터[明年爲始]'라고 하였는데 이는 거래 시점이 10월이라 수확물에 대해서는 김덕선이 갖는다는 의미로 추정된다. 추기(追記) 부분에 지자(支字) 구문기 1장은 훗날 가져다 주는 것으로 약속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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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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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김상일(金尙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振云 金尙一 金振云<着名>金奉甲<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1년(순조11) 1월 31일에 김진운이 김상일에게 네 곳의 전답 10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11년(순조11) 1월 31일에 김진운(金振云)이 김상일(金尙一)에게 네 곳의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김진운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서강내(西江內)의 이모고리(二毛古里)이고 양안(量案) 6책(冊)에 기재되어 있는 전답이다. 일자(壹字) 자호의 논 2마지기[斗落只]와 1마지기, 같은 자호의 밭 4마지기와 동범(東犯) 밭 3마지기로 모두 네 곳이며 부수(負數)로는 18부(負) 1속(束) 면적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25냥이고, 본문기(本文記) 5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 김상일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김진운과 오촌관계인 김봉갑(金奉甲)이 증인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였고 문서는 김진운이 자필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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