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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노 순정(順丁)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京居 洪金浦宅 奴 孫伊 尹生員 宅 奴 順丁 申完金<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9년(철종10) 11월 28일에 서울 사는 홍김포댁 노 손이가 윤생원댁 노 순정에게 세 곳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59년(철종10) 11월 28일에 서울 사는 홍김포댁(洪金浦宅) 노(奴) 손이(孫伊)가 윤생원댁(尹生員宅) 노 순정(順丁)에게 세 곳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상전댁이 이매(移買)를 하기 위해서라고 적었는데, 이매는 이 논을 팔아서 다른 토지를 사들이는 것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포천(抱川) 청량면(淸涼面) 마전리(麻田里)이고 자호는 위자(位字), 지번은 27전과 31전과 49전이다. 면적은 27전이 5복(卜) 4속(束), 31전이 3복 3속, 49전이 3복 2속이고 경작시간 기준으로 하루 반일갈이[一日半耕]이다. 이 토지의 사표(四標)는 동쪽은 같은 사람 즉 홍김포댁 논이고 남쪽은 방축(防築)이며, 서쪽은 이득명(李得明)의 밭이고 북쪽은 서울의 사내종 금손(今孫)의 밭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사표는 사방 경계의 지형지물을 나타내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사지(四至)라고도 한다. 이들 밭의 거래가는 전문(錢文) 105냥이고, 본문기(本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거래에 신완금이 증인으로, 유생원댁 노 복노미가 필집으로 참여하였다. 신완금은 착명을 하고 노비는 좌촌(左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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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재당질(再堂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箕祐 再堂侄 □箕祐<着名>李洙鳳<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 9월 24일에 재당숙 기우가 재당질에게 논 1말 5되지기를 6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9년 9월 24일에 재당숙(再堂叔) 기우(箕祐)가 재당질(再堂侄)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성이 같은 친족끼리의 거래인지 성을 적지 않았다. 기우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화순군 송석면(松石面) 용암리(龍巖里) 상평(上坪)이고 자호는 옥자(玉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12배미[夜味]이고 파종량 기준으로 1말[斗] 5되지기[升落只], 부수로는 3부(負) 2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65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에 대한 언급은 없어 신문기 한 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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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福安 朴福安<着名>全公員<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 11월 13일에 박복안이 누군가에게 밭 5마지기를 1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9년 11월 13일에 박복안(朴福安)이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복안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계촌(沙溪村) 후평(後坪)이고, 지목은 태종전(太種田), 면적은 파종량 기준 5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00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전공원(全公員)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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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南啓宇 南啓宇<着名>柳重熙<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7년 3월 모일에 유학 남계우가 누군가에게 논 2섬 4마지기를 1,6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7년 3월 모일에 유학(幼學) 남계우(南啓宇)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남계우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다른 곳으로 주거지도 옮기고 논도 옮기고자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가 여러 곳인데, 먼저 무장(茂長) 성골면(成骨面) 포동(蒲洞) 전평(前坪)에 있는 경자(競字) 자호의 논 4배미[夜味] 7마지기[斗落只]와 같은 자호의 논 몇 마지기, 시자(是字) 자호의 논 2배미 11마지기, 같은 자호 2배미 5마지기, 같은 자호 1배미 5마지기, 그리고 성골면 복동촌(福洞村) 전평(前坪)에 있는 복자(福字) 자호의 논 8배미 5마지기와 백석면(白石面) 방축(防築) 후평(後坪)에 있는 혜자(鞋字) 자호의 논 9배미 7마지기를 합하여 모두 2섬[石] 4마지기를 전문 1,600냥을 받고 거래하였다. 이들 토지의 구문기(舊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한다고 하였다. 문서 말미에는 구문기는 논 값을 다 받은 뒤에 넘겨주겠다고 추기하였다. 이 거래에 유중희(柳重熙)가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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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고종환(高宗煥)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瑞權 高宗煥 朴瑞權<着名>李基俊<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03_001 1814년(순조14) 12월 10일에 유학 박서권이 유학 고종환에게 선산에 있는 시장 한 곳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14년(순조14) 12월 10일에 유학(幼學) 박서권(朴瑞權)이 유학 고종환(高宗煥)에게 선산에 있는 시장(柴場)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박서권은 올해 흉년을 당하여 살아갈 방도가 없어 이를 도모하고자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선산의 나머지 산기슭인 일남(一南) 마근동(磨斤洞)이고 자호는 문자(問字)이며, 숙부의 무덤 뒤쪽 긴 골짜기를 한계로 하고 위쪽은 다른 사람의 무덤을 한계로 한다고 하여 경계를 적었다. 거래가 11냥을 받고 영구히 방매하되, 본문기(本文記)는 도문기(都文記)에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문구를 기재함으로써 훗날 본문기가 없는 것이 문제가 될 소지를 방지하였다. 조선시대 매매명문에서 도문기는 일반적으로 부모로부터 분재 받은 내용을 적어놓은 분재문서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다른 전답이나 노비 등이 함께 병기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따로 이를 분리하여 소유를 증명하는 용도로 넘겨줄 수가 없다. 이때는 이 문서의 경우처럼 도문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넘겨줄 수 없다는 문구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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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문중(門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承庸 門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9년 4월 6일에 이승용이 문중에 면전 2마지기를 70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9년 4월 6일에 이승용(李承庸)이 문중(門中)에 면전(綿田)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승용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빚을 갚을 길이 없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담양군 대덕면(大德面) 매산리(梅山里) 후평(後坪)이고 지목은 면전, 자호는 자자(子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는 4부(負) 3속(束)이며, 거래가는 70원이다. 이 문서의 작성연도는 기미년으로 되어 있는데 거래가를 표시할 때 원(円)으로 표기하였으므로 연대를 1919년으로 추정하였다. 이 거래에는 다른 증인이나 필집의 참여 없이 당사자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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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得滿 李得滿<着名>張允叔<着名>姜應三<着名>姜乃言<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5년 12월 16일에 이득만이 누군가에게 두 곳의 논 8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5년 12월 16일에 이득만(李得滿)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논은 자신이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부득이한 이유로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은 소재지가 서상림리 산적동(山赤洞)이고 자호는 월자(月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이고 지형적 구획으로는 5배미[夜味]이며 수확량은 10부(負) 4속(束)인 곳과 교월평(橋越坪)에 있는 영자(盈字) 자호의 논 4마지기 5배미 13부 2속인 두 곳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210냥이다. 해당 토지의 구문기(舊文記)에 대한 언급은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한다고 적었다. 장윤숙과 강응삼이 증인으로,강내언이 증필(證筆)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각기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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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榮國 崔榮國[着名]朴賢鎭[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최영국이 시장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계약 문서 최영국(崔榮國)이 시장(柴場)을 방매하면서 작성하여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전반부의 심한 결락으로 매득한 사람과 시장의 구체적 소재지, 방매사유 등은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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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노 천근(千斤) 배지(牌旨)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上典 李 奴 千斤 上典 李<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3년 11월 모일에 상전 이씨가 노 천근에게 2마지기 논을 팔아오도록 지시하는 내용의 배지 1893년 11월 모일에 상전(上典) 이씨(李氏)가 노(奴) 천근(千斤)에게 발급한 배지이다. 상전 이씨는 이 논을 팔기 위해 논에 대한 상세정보를 배지에 기재하였다. 우선 방매사유는 이매(移買)라고 적었고, 소재지는 결성(結城) 가산면(加山面) 하가리(下加里), 자호는 표자(表字), 지목은 답(畓),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이다. 그리고 사내종 천근에게 거래가를 받아서 상전댁에 바친 뒤 본문기(本文記)까지 넘겨주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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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윤상흥(尹相興) 토지매도증(土地賣渡證)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中斗 尹相興 李中斗 1顆(적색,타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2년 음12월 24일에 이중두가 윤상흥에게 밭 252평을 100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도증서 1932년 음12월 24일에 이중두(李中斗)가 윤상흥(尹相興)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도증서이다. 매도 부동산은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매화리(梅花里) 882번지이고, 지목은 전(田), 면적은 252평(坪)이며 매매대금은 100원이다. 이 토지는 본인의 소유로써 대금을 영수하고 귀하에게 영영 매도하되 훗날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하며 이에 매도한다는 매도증서의 투식 문구가 국한문혼용으로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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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노 유봉(有奉)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玉泉金 奴 有奉 金玉泉金<着名>李孟石<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3년(철종4) 6월 24일에 한량 김옥천쇠가 신생원댁 노 유봉에게 3말 5되지기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53년(철종4) 6월 24일에 한량(閑良) 김옥천쇠[金玉泉金]가 신생원댁(愼生員宅) 노(奴) 유봉(有奉)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김옥천쇠는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오던 밭을 올해 큰 흉년을 당하여 생계를 꾸릴 길이 없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장성군(長城郡) 북일면(北一面) 시무덕평(始茂德坪)이고 자호는 관자(官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3말[斗] 5되지기[升落只]이고 부수(負數)로는 5복(卜) 9속(束)이다. 거래가는 전문9錢文) 3냥 5전이다. 한량 이맹석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추기(追記)에, 진탈(陳頉)된 8복을 아울러 매수인에게 넘기되 본문기(本文記)는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내어줄 수 없다는 문구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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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노 장금(葬金)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一得 奴 葬金 奴成元<着名>奴一在<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5년 11월 23일에 최생원댁 노 일득이 이노 장금에게 논 3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5년 11월 23일에 최생원댁 사내종 일득(一得)이 이노(李奴) 장금(葬金)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라고 적었고, 소유 경위는 자신이 매득(買得)한 논이라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다락원(多洛員)이고 자호는 여자(呂字), 지번은 60이고 면적은 복수(卜數)로 11부(負) 3속(束)이고 파종량 기준으로는 3마지기[斗落只]인 곳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50냥이다. 이 거래에 조생원댁 사내종 성원과 김생원댁 사내종 일재가 증필(證筆)로 이름을 적고 착명하였다. 문서의 말미에 해당 토지의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신문기(新文記) 한 장만 넘겨준다는 문구가 추기(追記)되어 있다. 거래 관행상 해당 토지의 이전 거래계약서인 구문기를 거래 당시 작성한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어야 하는데, 이처럼 구문기에 적힌 토지의 일부를 떼어서 방매할 경우 문서를 넘겨줄 수 없으므로 그 사유를 적은 것이다. 복수는 부수(負數)와 같은 말로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는 방식이다. 1짐[負]은 지게로 한 번 질 수 있는 양이며 100짐이 되면 1결(結)이 되고, 이는 토지 면적의 단위로도 쓰이면서 동시에 수확량에 근거한 전세(田稅)의 과세단위이기도 하다. 파종량을 기준으로 하는 마지기는 한 말[斗]의 곡식을 파종할 수 있는 것으로 씨앗의 부피를 기준으로 전답의 면적을 가늠하는 방식이다. 매매명문에서 면적을 표기할 때에 조선 전기에는 두락수(斗落數)를 표기하는 방식이 높은 비율을 보이다가 후기로 오면서 두락수와 결부수(結負數)를 병기하는 방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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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환퇴명문(土地還退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丁祿[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12월 22일에 동몽 아무개가 논 9마지기를 매득했다가 약정된 기한이 만료되어 이를 환퇴하면서 작성한 문기 모년 12월 22일에 동몽(童蒙) 아무개가 이미 매득했던 토지를 약정 기한 만료 후 환퇴하면서 작성한 토지환퇴명문이다. 그가 매득했던 토지는 고사방(高寺坊) 용산평(龍山坪)에 있는 결자답(結字畓) 9두락이었으며, 가격은 전문 153냥이었다. 당시 영구매매가 아니라 기한을 정해 매매했으므로 기한이 도래하여 이를 환퇴하는 것이다. 문기의 전반부가 결락되어 작성연대나 문서의 수취자는 파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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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月先 奴 月先<着名>奴 得每<着名>奴 丁花<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7년 2월 9일에 김노 월선이 누군가에게 밭 2마지기를 6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7년 2월 9일에 김노(金奴) 월선(月先)이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월선은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세방원(細方員)이고 권자(勸字) 자호의 채전(採田)이며, 면적은 구획상으로 1배미[夜味],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이고, 거래가는 전문(錢文) 60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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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宗牙 奴 宗牙<着名>奴 順悛<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7년 2월 27일에 도노 종아가 누군가에게 4마지기의 밭을 44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7년 2월 27일에 도노(都奴) 종아(宗牙)가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종아는 방매사유를 이매(移買)라고 하였는데 이는 근거리에 있는 토지를 매입하고자 매입 자금 마련을 위해 원거리에 있는 토지를 매각하는 말이다. 소유 경위는 자신이 매득하였다고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병산원(屛山員)이고 자호는 초자(招字), 면적은 수확량 기준 4부(負) 8속(束)이고 파종량 기준으로는 4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 44냥이다. 이 거래에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한 사람은 조노(趙奴) 순열(順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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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윤상흥(尹相興) 토지매도증(土地賣渡證)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文達 尹相興 崔文達 1顆(적색,원형,1.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3년 음8월 15일에 최문달이 윤상흥에게 산판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산판 매도증서 1933년 음8월 15일에 최문달(崔文達)이 윤상흥(尹相興)에게 산판(山坂)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도증서이다. 이 산판은 세 사람이 계를 만들어 수호해왔는데 본인의 1분 몫을 귀전에 매도하되, 대금은 8원으로 정하고 훗날 피차간에 이의가 있으면 이 문서로 빙고할 일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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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길룡(李吉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仁雨 金永己 李仁雨信 2顆(적색, 원형, 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80_001 1921년 11월 10일에 박영철이 순창군 무림면 마전 7승락지를 이길룡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21년 11월 10일에 박영철(朴永哲)이 이길룡(李吉龍)에게 마전(麻田)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토지는 순창군(淳昌郡) 무림면(茂林面) 상리촌전(上里村前)에 있으며, 규모는 7승락지로 부수(負數)로는 2부(負)였다. 값은 전문 200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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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英泰 李英泰<着名>金在亮<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6년(고종3) 1월 27일에 이영태가 누군가에게 6마지기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 1866년(고종3) 1월 27일에 이영태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이다. 이영태는 이 논을 팔아서 다른 곳의 토지를 사들이고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대아면(大雅面) 독곡평(篤谷坪)이고 자호는 의자(疑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 6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는 4배미[夜味], 부수(負數)로는 20부(負)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47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 1장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득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유학 김재량(金在亮)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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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廷和 趙廷和<着名>趙璜錫<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6년(고종3) 10월 11일에 조정화가 누군가에게 밭 2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 1866년(고종3) 10월 11일에 조정화(趙廷和)가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이다. 이 문서의 작성연도의 연호와 간지에 착오가 있다. 동치(同治) 7년은 1868년이고 병인년은 1866년인데 여기에서는 간지년을 우선하여 연도를 비정하였다. 조정화는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소유하게 된 밭을 수년간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순천(順天) 황전면(黃田面) 하곡(下谷) 용림동(龍林洞)이고 자호는 칙자(則字), 면적은 태종(太種) 2마지기[斗落只]이고 결복(結卜)은 없는 곳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7냥이다.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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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宗國 白成壽<着名>金斗榮<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4년(고종21) 2월 16일에 김종국이 누군가에게 논 4마지기를 38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4년(고종21) 2월 16일에 김종국(金宗國)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종국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하다가 춘궁기에 세미(稅米)를 마련할 길이 없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독곡촌(篤谷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전자(轉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3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 12복(卜) 7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38냥이다. 구문기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 측에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김종국은 상중(喪中)이라 착명하지 않았고, 백성수(白成壽)는 증인으로 김두영(金斗榮)을 필집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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