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9132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5년 방석만(方昔滿)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昌浩 方昔滿 李宗先信 1顆(적색,원형,1cm)朴基洪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59_001 1915년 2월 4일에 방석만이 김창호로부터 택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계약서 1915년 2월 4일에 방석만(方昔滿)이 김창호(金昌浩)로부터 택지(宅地)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계약서이다. 문서의 제목을 택지매매계약서라고 하였으나 본문은 매매명문의 양식으로 작성되었고 계약일시를 뒤에 쓴 것은 명문과 계약서의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과도기의 문서 형태를 띠고 있다. 방석만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간 살아왔다고 하여 소유 경위를 적었고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남상면(南上面) 봉황리(鳳凰里)이고 자호는 의자(儀字), 지목은 택지이며 규모는 3칸이고 부수(負數)는 8속(束)이다. 택지나 가대(家垈)는 주로 집에 부속되어 있는 농지를 총칭하는 용어로 대전(垈田), 기지(基地) 등의 용어로도 사용되어 면적을 표기할 때 전답과 같은 방식인 마지기[斗落只]나 결부수(結負數)로 기재되는데, 여기에서도 결부수를 표기하고 있다. 매매가는 전문(錢文) 50냥이고 본문기(本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2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采煥 金采煥 1顆(적색,타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0년 4월 10일에 김채환이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 1920년 4월 10일에 김채환(金采煥)이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이다. 토지의 소재지는 전북 정읍군(井邑郡) 고부면(古阜面) 입석리(立石里) 전평(前坪)이고 지목은 밭이다. 면적은 기입하지 않았고 매매대금은 190원이다. 뒤에 이 토지를 190원에 매도하되 증명비용은 매도인이 전부 부담하고, 계약금 10원을 먼저 받고 만일 계약을 어길 때에는 이 10원을 매도인이 차지한다는 문구를 덧붙였다. 신홍균이 이 거래에 보증인으로 참여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674년 노 상립(尙立)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介孫 奴 尙立 金介孫<左寸>金同石<左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90_001 1674년(현종15) 9월 15일에 박승남의 외삼촌 장인 김개손이 남생원댁 노 상립에게 8복5속 면적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674년(현종15) 9월 15일에 박승남(朴承男)의 외삼촌인 장인(匠人) 김개손(金介孫)이 남생원댁(南生員宅) 노(奴) 상립(尙立)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김개손은 자신의 친누이동생의 아들인 박승남이 기병(騎兵) 보인(保人)인데 올해 6월 무렵에 거처 없이 도망하여 그의 가포(價布) 및 인정목(人情木)을 마련해낼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일족이 상의하여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자세하게 적었다. 가포는 복무해야 할 군병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농사를 짓게 하고 그 대신 이들로부터 받았던 포목을 말하고, 인정목은 색리들이 조세를 거두면서 잡비 명목으로 부당하게 덧붙여 받은 포목으로 인정채(人情債), 인정가(人情價), 정체(情債)라고도 하였다. 방매하게 된 토지는 박승남이 있을 때인 임자년 봄에 남생원댁 반노(班奴) 승이(承伊)에게 매득했던 논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다. 매물의 자호는 개자(芥字)이고 지번은 28분답(分畓) 면적은 수확량 기준 8복(卜) 5속(束)이다. 김개손은 도로 주인에게 돌려주는 모양으로 상립의 상전댁에 상목(常木) 1동(同) 25필(疋)을 받고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승남이가 훗날 들어와서 다른 말을 하게 되면 김개손 등이 감당할 뿐만 아니라 이 문서의 내용에 따라 박승남을 관에 아뢰어 법에 따라 죄로 다스릴 일이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 박승남의 사촌 대부(大父)인 장인 김동석(金同石)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수촌을 그렸다. 관련자료를 통해 볼 때 매물의 소재지는 예안(禮安) 서면(西面) 화림원(花林員)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35년 윤상흥(尹相興) 토지매도증(土地賣渡證)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朱秉亮 尹相興 南炳薰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2월 3일에 주병량 외 3인이 윤상흥에게 321평의 논을 112원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 1935년 2월 3일에 주병량(朱秉亮) 외 3인이 윤상흥(尹相興)에게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이다. 매매 부동산의 소재지는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근남면(近南面) 구산리(九山里) 1472번지이고, 지목은 답(畓), 면적은 321평, 매매대금은 112원이다. 이 토지는 쌍방의 합의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대금을 액수대로 받은 뒤 귀전(貴殿)에 영영 매도하며 훗날 피차 간에 이의가 잇을 때는 이 증서를 증빙 근거로 한다는 투식 문구가 국한문 혼용으로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7년 임태희(任泰希)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圭洙 任泰希 安圭洙信 2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7년 3월 4일에 임태희가 안규수로부터 4마지기의 밭을 사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 1917년 3월 4일에 임태희(任泰希)가 안규수(安圭洙)로부터 밭을 사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이다. 매매 대상 토지의 소재지는 장흥군 남상면(南上面) 운주리(雲柱里)이고 자호는 무자(毋字), 지번은 26호, 지목은 전(田), 면적은 4두락(斗落), 결수(結數)는 3부(負) 4속(束), 276평(坪)이며, 매매대금은 6원이다. 매도인과 매수인과 보증인이 각각 주소지를 썼고 날인은 매도인만 날인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53년 임세진(林世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敬先 林世鎭 李敬先<着名>李正元<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3년 12월 12일에 임세진이 이경선으로부터 5마지기의 논을 매득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3년 12월 12일에 임세진(林世鎭)이 이경선(李敬先)으로부터 논을 사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경선은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홍주(洪州) 오사면(烏史面)이고, 양안(量案)의 1책(冊)에 기재되어 있는 한자(寒字) 자호의 논으로 정조(正租) 5마지기[斗落只]를 파종할 수 있는 면적이고 결부(結負)로는 13복(卜) 5속(束)인 논이다. 즉 벼를 타작하여 여러 쭉정이와 검불 등이 그대로 섞여 있는 벼를 황조(荒租)라고 하고, 이들을 걸러낸 정제된 양질의 낟알을 정조라고 하는데, 이 논은 바로 정조 5말[斗]을 파종할 수 있는 면적이고 여기에서 13복 5속을 수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110냥을 받고 본문기(本文記) 4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이 거래에 이정원(李正元)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35년 현학규(玄鶴圭)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大吉 玄鶴圭 鄭大吉 3顆(적색,원형,1.2cm)鄭忠俊 2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1월 24일에 정대길이 현학규에게 밭 165평을 15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 1935년 1월 24일에 정대길(鄭大吉)이 현학규(玄鶴圭)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이다. 인쇄된 매도증서 양식에 해당 사실을 기입한 것이다. 매매 부동산의 소재지는 담양군(潭陽郡) 고서면(古西面) 고읍리(古邑里) 85번지이고, 지가(地價)는 6원 24전, 지목은 전(田), 면적은 165평(坪)이며, 매매대금은 15원이다. 매도인 정대길과 연대인(連帶人) 정충준(鄭忠俊)이 나란히 이름을 적고 도장을 날인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承昌 李承昌信 2顆(적색, 1cm)李道善信 1顆(적색,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4년 1월에 이승창이 창평군 소재 목화밭 1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하여 발급한 매매계약 문서 1914년 1월에 이승창(李承昌)이 매득하여 경작하던 면전(棉田)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밭의 소재지는 창평군(昌平郡) 대면(大面) 사창평(社倉坪)이며 규모는 1마지기, 부수(負數)로 2부 8속이다. 가격은 전문(錢文) 9원이고, 매득자는 밝히지 않았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9년 조준섭(趙俊燮)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黃仲燮 趙俊燮 黃仲燮信 1顆(적색, 1cm)程道元信 1顆(적색, 1cm)曺士憲信 1顆(적색,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9년 1월 10일에 황중섭이 조준섭에게 적상면 소재 보리밭 1마지기와 논 3되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하여 발급한 토지매매 계약문서 1919년 1월 10일에 황중섭(黃仲燮)이 조준섭(趙俊燮)에게 모전(牟田) 1마지기와 논 3되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토지의 소재지는 적상면(赤裳面) 삼유리(三柳里) 고전동(高田洞)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6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千秀 崔千秀<着名>朴箕格<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5년 11월 21일에 계수 최천수가 누군가에게 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5년 11월 21일에 계수(稧首) 최천수(崔千秀)가 누군가에게 계답(稧畓)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최천수를 계를 만들어서 매득하여 수년 동안 곡식을 받아왔다고 하여 소유 경위를 적었고, 계를 나누게 되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복하변(福下邊) 회룡촌(回龍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왕자(王字)와 명자(鳴字) 논 2마지기[斗落只] 5배미[夜味]이고 부수(負數)로는 4부(負) 면적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33냥이고, 이 논의 본문기(本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기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유학 박기환(朴箕煥)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68년 구치규(具致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高弘鎭 具致圭 高弘鎭<着名>金漢水<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8년 12월 10일에 구치규가 고홍진으로부터 시장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8년 12월 10일에 구치규(具致圭)가 고홍진(高弘鎭)으로부터 시장(柴場)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고홍진은 상속을 통해 초생동(草生洞)에 있는 시장 한 곳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소송 빚이 많아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9냥이다. 이 토지의 구문기 1장을 분실하였으므로 신문기 1장으로만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유학 김한수(金漢水)가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5년 김창호(金昌浩)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林莫同 金昌浩 金昌浩信 1顆(적색,원형,1cm)林莫同信 1顆(적색,원형,1cm)白朱洪信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59_001 1915년 1월 18일에 김창호가 임막동으로부터 택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계약서 1915년 1월 18일에 김창호(金昌浩)가 임막동(林莫同)으로부터 택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계약서이다. 문서의 제목을 택지매매계약서라고 하였으나 본문은 명문의 양식으로 작성되었고 계약일시를 뒤에 썼다거나 계약주를 뒤에 쓴 것 등은 명문과 계약서의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과도기의 문서형태를 띠고 있다. 임막동은 자신이 매득한 택지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남상면(南上面) 봉황리(鳳凰里)이고 자호는 의자(儀字), 지목은 택지이며 규모는 3칸이고 부수(負數)는 8속(束)이다. 택지나 가대(家垈)는 주로 집에 부속되어 있는 농지를 총칭하는 용어로 대전(垈田), 기지(基地) 등의 용어로도 사용되어 면적을 표기할 때 전답과 같은 방식인 마지기[斗落只]나 결부수(結負數)로 기재되는데, 여기에서도 결부수를 표기하고 있다. 매매가는 전문(錢文) 106냥이고 본문기(本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692년 김악철(金岳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唜奉 金岳哲 崔唜奉<左寸>朴石立<着名>李金伊同<着名>李厚誠<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90_001 1692년(숙종18) 12월 9일에 양인 최말봉이 양인 김악철에게 8복5속 면적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692년(숙종18) 12월 9일에 양인(良人) 최말봉(崔唜奉)이 양인 김악철(金岳哲)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최말봉은 자신이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고, 소유 경위는 매득(買得)을 통해서였다고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예안(禮安) 서면(西面) 화림원(花林員)이고, 자호는 개자(芥字), 지번은 28분답(分畓),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8복(卜) 5속(束)이다. 거래가는 세목(細木) 25필(疋)이다. 김악철에게 이 논의 본문기(本文記)를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넘겨주며 영구히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박석립(朴石立)이 증인으로, 이금이동(李金伊同)이 증보(證保)로, 평인(平人) 이후성(李厚誠)이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증인이 거래 사실의 진위 여부를 입증하는 사람이라면 증보 혹은 보인(保人)은 거래상의 채무 불이행이나 불완전 이행 시에 보증 책임과 관계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英和 金英和<着名>金日孝<着名>金永泰<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고종16) 11월 30일에 김영화가 누군가에게 논 5마지기를 4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9년(고종16) 11월 30일에 김영화(金英和)가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영화는 선대로부터 상속을 통해 전래받아 경작해오다가 상채(喪債)를 마련할 길이 없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무장(茂長) 성동면(星洞面) 주을촌(注乙村) 하대방평(下大防坪)이고 자호는 시자(是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5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1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 10부(負)인 논을 전문(錢文) 45냥을 받고 선자(先尺)를 2섬[石]으로 정하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득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는 문구를 말미에 덧붙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매득인에게 구문기가 없는 것으로 인해 훗날 발생할지 모를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다. 답주인 김영화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고 조카와 족형(族兄)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聖執 柳聖執<着名>林文局<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 7월 11일에 유성집이 누군가에게 논 5마지기를 15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7년 7월 11일에 유성집(柳聖執)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성집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상평리(上坪里)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기자(氣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5마지기[斗落只]이고 구획상으로 6배미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5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중간에 없어져서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고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8년 노 군복(君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三立 奴 君福 庫直 月根<着名>奴 三立<着名>奴 松乭<着名>奴 又哲<着名>奴 順福<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180_001 1898년 12월 20일에 장노 삼립 등이 임노 군복에게 논 2마지기를 14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8년 12월 20일에 장노(張奴) 삼립(三立) 등이 임노(林奴) 군복(君福)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사유는 이매(移買), 즉 이 논을 팔아서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부항원(釜項員)이고 자호는 상자(嘗字), 지번은 89답,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 4부(負) 9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45냥이다.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논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매득인에게 넘겨주지 못하고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하였다. 해당 논의 소유 관계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미상이지만, 수서서당(水西書堂) 고직(庫直)과 도청(都廳)이 이름을 적고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80년 김재연(金在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順吉 金在年 金順吉<着名>趙允植<着名>趙斗洪<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0년(고종17) 10월 27일에 김순길이 김재연에게 8마지기의 밭을 16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0년(고종17) 10월 27일에 김순길(金順吉)이 김재연(金在年)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밭은 김순길이 매득해서 이미 여러 해가 지났는데 숙부가 죽은 뒤에 숙부의 빚으로 인해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에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소유 경위와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양군(興陽郡) 남면(南面) 도야리(道也里)의 후평(後坪)이고 자호는 상자(傷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8마지기[斗落只] 1살매(㐊每)인 곳이며, 매매가는 전문 16냥이다. 흥양군 남면 도야리는 오늘날 고흥군 남면 도천리(道川里)로 편입된 지역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80년 홍병철(洪秉喆)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驥鎭 洪秉喆 金驥鎭<着名><左寸>曺錫範<着名>權龍鎬<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0년(고종17) 1월 25일에 김기진이 남양홍씨 문장 홍병철에게 4마지기의 논을 4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0년(고종17) 1월 25일에 김기진(金驥鎭)이 남양홍씨(南陽洪氏) 문장(門長) 홍병철(洪秉喆)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기진은 자신의 5대조인 승지공(承旨公)의 위토(位土)를 상채(喪債) 때문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북강(北江) 사동평(寺洞坪)이고 양안(量案)의 4책(冊)에 올라있으며 자호가 용자(用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2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 5복(卜)인 논을 전문(錢文) 40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였다. 이 논의 구문기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득인에게 넘겨줄 수 없어 신문기(新文記) 1장만 넘겨주었다. 이 거래에 조석범(曺錫範)이 증인으로, 권용호(權龍鎬)가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41년 신재철(愼在哲)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愼東鎭 愼在哲 愼東鎭<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1년(헌종7) 11월 27일에 족질인 유학 신동진이 신재철에게 노비 3구를 팔면서 작성한 노비 매매 명문 1841년(헌종7) 11월 27일에 족질(族姪)인 유학(幼學) 신동진(愼東鎭)이 신재철(愼在哲)에게 노비를 팔면서 작성한 노비 매매 명문이다. 신동진은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부득이한 상황이라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방매 대상은 선대로부터 전래된 앙역비(仰役婢)인 임술생 복섬(卜暹)과 복섬의 첫째 소생인 갑오생 계집종 옥금(玉今), 둘째 소생인 기해생 사내종까지 모두 3구(口)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25냥이다. 기해생인 사내종 이름은 빈칸으로 두고 이름을 적지 않았다. 증인이나 필집을 두지 않고 신동진이 자필로 작성하였고, 자신을 족질이라고 하였으므로 신재철은 족숙이 된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14년 박창순(朴昌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仁守 朴昌淳 金仁守<着名>金達甲<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4년(순조14) 12월 12일에 유학 김인수가 박창순에게 시장 한 곳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14년(순조14) 12월 12일에 유학(幼學) 김인수(金仁守)가 박창순(朴昌淳)에게 시장(柴場)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김인수는 시장을 소유하게 된 경위를 자신이 매득한 곳이라고 밝혔고, 사채가 많은데 올해 흉년까지 당하여 사채를 갚을 길이 없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능주군 서면(西面) 화남촌(花南村) 뒤쪽의 불당곡(佛塘谷)이고 지목은 시장 한 곳이다. 그리고 시장의 위쪽과 좌우 경계를 효죽봉(孝竹峰)의 등성이를 끼고 자세하고 묘사하여 적었다. 이곳의 거래가는 전문(錢文) 40냥이고, 본문기(本文記)에 대한 언급은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한다고 하였다. 유학 김달갑(金達甲)이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