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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根善 柳根善<着名>金貞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9년 2월에 유근선이 누군가에게 3마지기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9년 2월에 유근선(柳根善)이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근선은 수년동안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천석우평(沙川石隅坪)이고, 자호는 교자(交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 태종(太種) 3마지기[斗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는 6부(負) 4속(束)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0냥이다. 김정옥(金貞玉)이 이 거래에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이 밭의 구문기(舊文記)는 분실하여 매수인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문구를 추기(追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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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년 고극린(高克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瑞權 高克獜 朴瑞權<着名>崔宗玉<着名>吳錫權<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03_001 1803년(순조3) 윤2월 21일에 유학 박서권이 고극린에게 선산의 뒤쪽 시장 한 곳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03년(순조3) 윤2월 21일에 유학(幼學) 박서권(朴瑞權)이 고극린(高克獜)에게 시장(柴場) 한 곳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박서권은 상(喪)을 당하여 지출이 많았던 나머지 세미(稅米)를 납부할 길이 없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은 선산의 뒤쪽 산기슭 일남(一南) 마근동(磨斤洞)에 있고, 자호는 문자(問字)이다. 시장의 경계를 적었는데, 동쪽은 유점(鍮店) 길 아래를 한계로 하고 서쪽은 숙부 무덤의 뒤쪽까지를 한계로 하며, 주룡(主龍)은 봉우리 줄기[峰脉]를 한계로 한다고 하였다. 본문기(本文記)에는 다른 시장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고 적었다. 박서권은 이후 1814년에 이 선산의 나머지 한쪽의 시장을 또 방매하게 되는 것을 관련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최종옥(崔宗玉)이 증인으로, 오석권(吳錫權)이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각기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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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노 원봉(元奉)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夢安 奴 元奉 朴夢安<着名>金永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21_001 1851년(철종2) 12월 29일에 한량 박몽안이 신생원댁 노 원봉에게 3말5되지기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51년(철종2) 12월 29일에 한량(閑良) 박몽안(朴夢安)이 신생원댁(愼生員宅) 노(奴) 원봉(元奉)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박몽안은 선대로부터 상속을 통해 소유하게 되었고 경작해 오다가 많은 채전(債錢)을 갚을 길이 없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장성군(長城郡) 북일면(北一面) 시동백정(始冬栢亭)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시자(始字)이다.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3말[斗] 5되지기[升落只]이고 부수(負數)로는 4복(卜) 9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3냥이다. 문서의 말미에 본문기(本文記)는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는 문구를 덧붙였다. 본문기는 구문기(舊文記)와 같은 말로, 현재의 거래 이전에 생성된 거래 계약서나 혹은 소유권을 증빙할 수 있는 일체의 문서를 말하는데, 거래 시에 반드시 구문기 일체를 매수인에게 넘겨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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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吳氏 金成志<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19_001 1877년(고종14) 4월 18일에 원학조 처 오씨가 누군가에게 세 곳의 논 5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7년(고종14) 4월 18일에 원학조(元學祧) 처(妻) 오씨(吳氏)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원학조의 처 오씨는 자신이 매득(買得)한 논을 수년 동안 경작해 오다가 가장(家長)이 공전(公錢) 납부에 관한 일로 옥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무장(茂長) 성동면(星洞面) 주을촌(注乙村) 뒤쪽 방축저평(防築底坪)이고 자호는 선자(善字)이며, 4배미[夜味]의 3말[斗] 5되지기[刀落只]의 논과 같은 자호의 5되지기의 논, 그리고 복자(福字) 자호의 1마지기[斗落只] 논을 합하여 모두 5마지기 15부(負) 8(束)이다. 거래가는 60냥에 거래되었고 매수인에게 신문기(新文記) 1장과 구문기(舊文記) 2장을 함께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오씨의 친정 쪽 아우인 오한표(吳漢表)가 증인으로, 김성지(金成志)가 필집(筆執)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였다. 위의 '배미'는 토지의 구획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로, 논밭의 두렁을 기준으로 지형적 경계 구분을 나타내는 말이다. 되지기 또는 마지기는 토지에 파종하는 곡식의 양을 가리키는데 이것으로 면적을 나타낸다. 1말[斗]의 곡식을 파종할 수 있으면 '한 마지기'가 되고, 한 되[升]를 파종할 수 있으면 '한 되지기', 1섬[石]을 파종할 수 있으면 '한 섬지기[石落只]'라고 쓴다. 되지기는 '도락지(刀落只)'라고도 하고 또는 승낙지(升落只)라고 표기한다. 또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할 때는 결부수(結負數) 또는 복수(卜數)로 표기하는데 후기로 내려올수록 결부수와 두락수를 병기하는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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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吳然述 吳然述 1顆(적색, 1.1)金成玉 1顆(적색, 1.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 3월 4일에 오연술이 오미면 소재 논 5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12년 3월 오연술(吳然述)이 논 5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한 토지는 오연술이 매득하여 소유해온 곳이고, 소재지는 오미면(五未面)이다. 자호는 기자(氣字)이며, 면적은 5마지기이고 부수(負數)로는 19부 1속이다. 가격은 전문(錢文) 320냥이며, 매득자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문기 말미에 증인 외에 이장 문병영(文秉榮)의 이름이 쓰여 있다. 서명이나 인장은 없으나 매매에 입회인으로 참여했거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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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基浩 朴基浩信 1顆(적색, 1cm)金萬杓印 1顆(적색,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 12월 10일에 박기호가 영동군 소재 논 7되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계약 문서 1912년 12월 10일에 박기호(朴基浩)가 논 7되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하여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한 토지의 구체적 소재지는 영동군(永同郡) 양남일소면(陽南一所面) 입석리(立石里)이며 자호는 평자(平字)이다. 규모는 7승락(升落)으로 부수(結數)로는 2부(負)이다. 매득자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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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5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義周 金義周<着名>金春碩<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7년(고종14) 11월 30일에 김의주가 누군가에게 11냥을 받고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7년(고종14) 11월 30일에 김의주(金義周)가 누군가에게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의주는 자신이 금양(禁養)하여 수년 동안 소나무를 길러오던 산지를 집에 긴요하게 쓸 곳이 생겨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소재지는 영방원(永方員) 위쪽이고 자호는 숙자(熟字), 거래가는 전문(錢文) 10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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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成列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고종16) 2월 4일에 변생원 노 성열이 누군가에게 논 18마지기를 25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9년(고종16) 2월 4일에 변생원(邊生員) 노(奴) 성열(成列)이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성열은 이 논을 팔아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중리촌(中里村) 앞의 고직평(庫直坪)이고 자호는 제자(諸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8마지기[斗落只], 거래가는 전문(錢文) 250냥이다. 신문기(新文記) 1장과 패지(牌紙) 1장을 매득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토지가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넘겨줄 수 없다는 문구를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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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5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錫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5년(고종32) 11월 21일에 이석래가 누군가에게 논 9마지기를 6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5년(고종32) 11월 21일에 이석래(李錫來)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석래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 중리(中里) 후평(後坪)이고, 자호는 지자(枝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 9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65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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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聖學 柳君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6년 8월 말일에 유성학이 누군가에게 논 11마지기를 15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6년 8월 말일에 유성학(柳聖學)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성학은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긴급하게 쓸 곳이 생겨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계촌(沙溪村) 전평(前坪)이고, 자호(字號)는 적지 않았으며 면적도 결부수(結負數)는 적지 않고 빈칸으로 남겨두었다. 문서 말미에 구문기(舊文記)를 중간에 잃어버려서 매득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고 적었는데, 유성학은 아마도 각 논의 자호와 결부수를 기억하지 못했고 이후 확인하여 적으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자호도 없고 지번도 없는 논을 마지기[斗落只] 수로만 면적을 적었는데 4곳의 논이고 합하면 11마지기가 매매대상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50냥이다. 이 거래에 유군선(柳君善)이 증인으로 참여하였고, 필집은 따로 두지 않고 유성학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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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重熙 柳重熙<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6년 9월 모일에 유중희가 누군가에게 논 2마지기를 13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6년 9월 모일에 유중희(柳重熙)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중희는 선대에 매득해서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소유 경위와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봉산촌(蜂山村) 앞 당상평(堂上坪)이고 자호는 팔자(八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2배미[夜味]이고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3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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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尹漢烈 尹漢烈<着名>金鎭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유학 윤한열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유학 윤한열(尹漢烈)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논 4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 대상 토지의 자호는 솔자(率字)이고, 면적은 4마지기[斗落只] 부수로는 16부(負) 8속(束)이 확인된다. 이 문서의 형태는 대각선 방향으로 사할(斜割)되어 있는데, 이는 이 문서에 적힌 토지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할매(割賣)하면서 해당 토지가 적혀 있는 부분을 잘라 구문기(舊文記)로 매수인에게 건네주었음을 보여준다. 한 장의 명문 안에 기재되어 있는 토지를 나누어 팔 경우 이처럼 대각선으로 잘라서 건네주기도 하고, 절반으로 잘라서 건네주기도 하며, 칼이나 가위로 해당 부분을 도려내어 건네주기도 하는데, 이는 신문기와 함께 대상 토지의 이전 거래 문서 일체를 매득인에게 건네주는 것이 관행이었던 것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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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基榮 李基榮<着名>安宗榮<着名>鄭淳兌<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6년 8월 9일에 이기영이 누군가에게 150냥을 받고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6년 8월 9일에 이기영(李基榮)이 누군가에게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기영은 임실(任實) 이인면(里仁面) 독산촌(獨山村) 하당산곡(下堂山谷)에 있는 자신의 5대 조모의 묘소를 수백 년 동안 지키고 금양(禁養)해오다가 다른 곳으로 이장(移葬)하기 위해 파광(破壙)한 곳 전체를 전문(錢文) 150냥을 받고 팔았다. 이 산지는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 방매하였고, 훗날 자손들 가운데 다른 말을 하는 경우가 있으면 이 문기가 증빙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 안종영(安宗榮)이 증인으로, 정순태(鄭淳兌)가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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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박동근(朴東根) 처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壽岩 李吉龍 李壽岩信 1顆(적색, 원형,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1년 4월 6일에 박동근 처가 이공선에게 정읍군 고부면 소재 산판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산판매매 계약문서 1921년 4월 6일에 박동근(朴東根) 처(妻)가 이공선(李公先)에게 조상 묘소가 있는 산판(山坂)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산판은 정읍군(井邑郡) 고부면(古阜面) 덕안리(德安里) 동편에 있다. 남편이 일찍 사망하자 묘소를 지키지 못하고 이를 방매한 것으로 보이며, 값은 30원이다. 문기 말미에 매매 당사자 및 증인 등의 이름과 서명이 있는데, 산판주(山坂主)는 박동근의 처이나 이와 별도로 매도인(賣渡人) 김채선(金菜仙)의 이름과 인장이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알 수 없으나, 산판 주인이 여성이므로 매도인을 추가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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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김영기(金永己) 영수증(領收證)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壽甲 李吉龍 李壽甲 4顆(적색, 타원형, 1.6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1년 7월 12일에 이인우가 김영기로부터 산판 대금을 받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써 준 영수증 1921년 7월 12일에 이인우(李仁雨)가 김영기(金永己)에게 산판(山坂) 대금을 받고 발급한 영수증이다. 받은 금액은 100원이다. 이 산판의 소재지는 정읍군(井邑郡) 고부면(古阜面) 덕안리(德安里) 동쪽 기슭이며, 같은 달 초4일에 매매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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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나두환(羅斗煥)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東根 羅斗煥 朴東根<着名>高時淵<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183_001 1901년 11월 20일에 나두환이 유학 박동근으로부터 산지를 사들이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1년 11월 20일에 나두환(羅斗煥)이 박동근(朴東根)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산지매매명문이다. 박동근은 증조부의 선산이 고부군(古阜郡) 남부면(南部面) 덕안(德安) 앞 산록에 있는데 묘소를 이장할 때에 나두환이 이곳에 입장(入葬)한다고 하여 산지 전체를 전문(錢文) 700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였다. 구문기는 없이 신문기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고, 고시연(高時淵)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이 명문에는 박동근이 산지 값을 받고 나서 작성해준 작은 영수증 성격의 종이가 지끈으로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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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노 을선(乙先)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禮春 奴 乙先 奴 禮春<着名>奴 申任<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9년 12월 1일에 박생원댁 노 예춘이 민생원댁 노 을선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9년 12월 1일에 박생원댁 노(奴) 예춘(禮春)이 민생원댁 노 을선(乙先)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생원댁 노 예춘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수답원(水畓員)이라고 하위지명만 적어 어느 곳인지 알기 어렵다. 자호는 무자(毋字)이고 구획상으로 2배미[夜味]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말[斗] 5되지기[升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는 3부(負) 3속(束)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45냥이다. 이 논의 본문기(本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민생원댁 노 을선에게 넘겨주지 못하고 다만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민생원댁 노 신득이 증인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문서에 피봉 형태의 작은 종이가 붙어있는데, 유정원(柳亭員) 훈자(訓字) 답 1마지기 2부 5속을 55냥을 주고 1877년 12월 17에 매득한 문권 2장이라는 정보가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와는 소재지와 자호 등이 다르므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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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김병수(金秉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尹滋馨 金秉秀 尹滋馨<着名>河定洛<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40_001 1789년 12월 26일에 윤자형이 김병수에게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산지매매명문 1789년 12월 26일에 윤자형(尹滋馨)이 상인(喪人) 김병수(金秉秀)에게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윤자형은 연기군(燕岐郡) 남면(南面) 개동(介洞)의 세 봉우리 가운데 중봉(中峰) 내 개화곡(開花谷)에 있는 시장(柴場) 한 곳을 수백 년 동안 수호해 왔는데 이곳이 김병수 조부의 묘 백호(白虎)이므로 김병수가 누누이 사기를 원하였으므로 하는 수 없이 전문(錢文) 10냥을 받고 허급(許給)한다는 내용이다. 하정락이 증인으로, 임혁우가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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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류기춘(柳基春)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權秋山 柳基春 權秋山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0년 2월 16일에 권추산이 류기춘에게 135평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20년 2월 16일에 권추산(權秋山)이 류기춘(柳基春)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아산면(雅山面) 계산리(鷄山里)이고 자호는 내자(內字), 지번은 429번, 지목은 전(田), 면적은 135평(坪)이며, 거래가는 40원이다. 이 문서는 매매계약서의 양식과 명문의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데, 일본 연호를 사용한 점이나 음력이라고 표시한 점 그리고 명문 대신 계약서라고 하거나 매도인과 매수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 거래당사자들의 이름에 거주지를 적은 것, 착명 대신 인장을 사용한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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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陳鳳燮 陳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14_001 1908년 9월 29일에 도정 진봉혁이 누군가에게 논 12마지기를 55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8년 9월 29일에 도정(都正) 진봉혁(陳鳳奕)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진봉혁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곡식을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보성(寶城) 도촌면(道村面) 상도(上道) 석대평(石坮坪)이고, 자호는 염자(廉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2마지기, 수확량 기준으로는 48부(負) 8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55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문서 말미에 금년의 도조(賭租) 6섬[石]을 거래가에 포함시켰다는 문구를 추기하였다. 이 거래에 허두영(許斗永)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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