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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현(林相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林相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사제 임상현이 사돈에게 혼례를 잘 치른 것을 축하하고 인사한 서간의 일부. 사제(査弟) 임상현(林相鉉)이 사돈에게 혼례를 잘 치른 것을 축하하고 인사한 서간의 일부이다. 사돈에게 길례(吉禮)를 잘 치른 것이 두 집안의 경사스런 일이라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여, 추운 날씨에 어버이 모시고 잘 계시냐는 인사를 물은 내용이다. 편지의 일부가 잘려서 나갔기 때문에 차후의 내용과 발신자, 작성일자 등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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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이기만(李起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起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8월 13일, 사제 이기만이 사돈댁의 어머니 상기(祥期)에 위문하고 안부를 전한 서간. 1929년 8월 13일, 사제(査弟) 이기만(李起萬)이 사돈댁에 상대의 어머니 300일 상을 위문하고 자신이 참석하지 못함을 사죄하고, 약간의 물건을 보낸 뒤, 동생분과 농사걱정 등의 내용을 전한 서간이다. 상례 1주기가 정말 빠르게 흘렀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음력 8월에 어머니 상 중인 형제분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모시는 어른 그럭저럭 평안하시고 권솔들도 별 일 없다고 안부를 전했다. 주요내용은 상기(祥期)가 다가옴에 대한 위문이다. 예제(禮制)를 따라 몸 상하지 않게 일을 잘 치르시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자신은 마침 일이 있어서 직접 위문가지 못한다며 인정과 예의가 모두 사라질까 걱정이라는 말, 약간의 물건을 올리니 받아주기를 바란다는 것, 상대의 아우님 소식은 종종 듣는지, 5월에 편지가 왔었는데 주소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답장을 하지 못했다며 양해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 상대의 농사가 잘 되는지에 대한 물음, 자신 쪽은 날씨가 너무 가물어 이삭이 뽑혀 버린 지 이미 오래라 추수를 바랄 수 없게 되었다는 한탄 등의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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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형(金斗衡)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斗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심제인 김두형이 기복을 맞은 상대를 위문하고, 문상가지 못한 미안함을 전하며, 자신의 안부와 상대에 대한 궁금한 여러 가지를 묻는 내용으로 보낸 연말 안부 서간. 12월, 심제인(心制人) 김두형(金斗衡)이 상대에게 문상가지 못한 미안함을 전하고, 자신의 상황과 상대에 대한 여러 가지 물음의 내용으로 쓴 연말 안부 위문서간이다. 여러 차례의 편지로 정이 더욱 근실해지니 감사하며, 숨김이 없으시니 그 정서(情緖)를 알겠노라며 군자의 마음 씀씀이가 두터우시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편지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며 기복(朞服)인 당신은 안녕하신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산소가 무너진 근심 외에는 별로 실망할 일이 없고, 통곡하여 목소리를 잃었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부음을 들은 날에 병으로 달려가 곡하지 못하였기에 북쪽으로 바라보며 발상(發喪)하고 3일 성복(成服)하였을 뿐이라며 지금 이 상황을 운수에 맡기자니 처방이 별로 없어 상대의 청(請)에 부응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하였다. 그 외에는 다만 모(某) 생(生)과 모 생 등의 편지에 생년월일시를 적어 알려주면 어떠하냐는 의견, 방학은 언제인지에 대한 물음, 내년 봄에는 어떤 업(業)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 새해가 머지않았으니 송구영신의 상황에 복이 무성하기를 바란다는 인사 등의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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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삼산단(三山壇) 통문(通文)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三山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19_001 1973년 삼산단에서 기정진과 정의림 이후 인산재 배현기를 추배하기 위하여 사림의 동의를 구하고자 작성한 통문 초. 1973년 삼산단(三山壇)에서 기정진과 정의림 이후 인산재(仁山齋) 배현기(裵玄基)를 추배하기 위하여 사림의 동의를 구하고자 작성한 통문을 베껴 놓은 문건이다. 배현기(裵玄基, 1881~1954)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사원(士遠), 호는 인산재(仁山齋)이다.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裵文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의당(義堂) 배상룡(裵相龍)이다.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과 월파(月坡) 정시림(鄭時林)의 문하에도 출입하여 본원을 탐구하고 성명(性命)을 연구하여 성리학에 정밀하였다. 정사를 신축하고 날마다 후학들과 의리를 강마하고, 삼산사(三山祠)를 건립하여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과 일신재 정의림 두 선생을 제사 지냈다. 문집으로 『인산재 문집(仁山齋文集)』 6권 3책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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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서원(高山書院) 통문피봉(通文皮封) 1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高山書院 三山壇儒會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19_001 고산서원에서 삼단산 유회소에 답하여 보낸 통문의 피봉. 고산서원(高山書院)에서 화순의 삼산단(三山壇) 유회소(儒會所)에 보낸 답통(答通)의 피봉(皮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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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이기래(李基來)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基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47_001 신해년에 이기래(李基來)가 칠송사(七松祠)의 채무 정리 관계 및 기타 사항을 합의하기 위한 모임 날짜를 알리며 참석을 요청하는 내용의 간찰 신해년 8월 5일에 이기래(李基來)가 보낸 간찰이다. 본 칠송사(七松祠)의 채무 정리 관계 및 기타 사항을 합의하기 위한 모임을 이번 발 19일 오전에 개최하기로 하였으므로 바쁘더라도 참석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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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 정창림(鄭昌林)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昌林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인년 11월에 정창림(鄭昌林)이 상대방이 부탁한 묘갈명을 지어 보내면서 함께 보낸 간찰 갑인년 11월 8일에 정창림(鄭昌林)이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의 부친이 편안하신지 안부를 묻고, 어른 모시며 공부하는 생활은 좋은지 인사하였다. 기년복(朞年服)을 입고 있는 자신은 날로 쇠약해져 더 이상 지난날 봤던 사람 모양이 아니라고 하였다. 상대방이 부탁한 묘갈명은 우선 초고를 쓰기는 했지만 문장력과 필력이 좋지 못하여 훌륭한 행적의 만분의 일도 드러내지 못해서 몹시 죄송하다고 하였다. 우선 보내기는 하지만 잘 살펴보신 뒤에 불에 태워버리고 다른 뛰어난 사람에게 다시 받는 것이 어떠냐고 겸사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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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전(朴龍田)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龍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일에 박용전이 자신의 선조 진사공 묘비 건립날에 와 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6일, 박용전(朴龍田)이 자신의 선조 진사공(進士公) 묘비 세우는 날에 당신과 당신의 당숙 어른이 함께 와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안부를 생략하고 초청의 내용만을 적은 후 오시면 정말 은혜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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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도산서원(道山書院) 중건기성회(重建期成會)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道山書院重建期成會 道山書院重建之印(2.5×2.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0년 4월 6일에 도산서원 중건기성회에서 도산서원 중건을 위한 발기를 위해 4월 6일에 모여 의논할 것이니 모두 모여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유림에게 보낸 통문. 1960년 4월 6일에 도산서원(道山書院) 중건기성회(重建期成會)에서 도산서원 중건을 위한 발기를 위하여 4월 6일에 모여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일향(一鄕)과 본손(本孫)의 유림에게 보낸 통문(通文)이다. 문강공(文康公)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 선생의 도산서원(道山書院) 터에 현재 문교부가 자금을 지원해주는 우대 혜택이 있으니 지금이 적기라며 도산서원 중건을 위해 4월 6일에 모일 예정이라고 했다. 이를 고을의 여러 집사와 선생의 본손들에게 읽게 하고 한뜻으로 도모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발신일자와 발신처 이름자 위에는 '도산서원중건지인(道山書院重建之印)'을 1개 찍었다. 발기인의 첫머리에는 양회갑(梁會甲), 민홍기(閔弘基) 등 26인의 이름이 연명되어 있다. 기름먹인 종이에 석판인쇄의 기법으로 발행하였다. 1656년(효종 7) 우산 안방준(1573∼1654)을 추모하기 위하여 도산사(道山祠)를 세우고 난 이후로 서원이 있다하여 서원리(書院里)라 하였다. 도산사는 1865년 훼철되었다. 현재의 행정구역 명은 화순군 한천면 모산2리 도산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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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삼산단 유회(三山壇儒會)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三山壇儒會 鄭憲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 3월 12일에 산산단(三山壇) 유회(儒會)에서 정헌규(鄭憲圭)에게 삼산단 제향일이 연기되었음을 알리고, 인산 소휘면의 문집 간행을 위한 교정을 맡아줄 수 있는지를 묻는 내용의 간찰 무술년 3월 12일에 산산단(三山壇) 유회(儒會)에서 정헌규(鄭憲圭)에게 보낸 간찰이다. 삼산단의 제향이 있는 날마다 참석해주기를 기대하였는데 직접 뵙지 못하여 몹시 유감이라고 하였다. 이번 봄 제향일이 마침 민의원(民議院) 선거일과 겹치기 때문에 임시로 오는 5일로 변경하였고, 이는 형편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산(仁山) 선생의 원고와 행장을 교정할 수 있는지 의사를 묻고 고상한 식견으로 살펴주기를 요청하였으며, 장차 인산선생의 문집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인산 선생은 소휘면(蘇暉冕 1814~1899)의 호이고, 자는 송우(松友),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인(文人)이고 1876년 식년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도학(道學)과 문장(文章)으로 명성이 있었으며, 여러 관직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익산군 화산서원(華山書院)에 제향고, 시호는 문량(文良)이며, 《인산집(仁山集)》 17권 8책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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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김수욱(金壽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壽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신년 9월 16일에 김수욱이 대상이 끝난 상대에게 뒤늦게 보낸 위장 병신년 9월 16일에 제(弟) 김수욱(金壽旭)이 대상(大祥)이 끝난 상대에게 뒤늦게 보낸 위장(慰狀)이다. 상기(祥期)가 끝난 상대방의 슬픔을 위로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서신조차 보내지 못하고 한번 방문하려던 뜻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함을 표하였다. 그러던 중에 살던 집과 정자에 있던 8대(代) 문헌이 하루아침에 전쟁의 화마에 불타버렸고, 각석(刻石)이 부서졌을 뿐만 아니라 간행되지 않은 문자 60여권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으니 통곡을 한들 어찌하겠냐고 한탄하였다. 살아서도 이 세상에 정을 붙일 수 없었고 죽어서도 지하에 계신 선조에게 면목이 없어서 안동(安東) 두현(杜峴) 골짜기에 들어가 여름부터 가을까지 지내느라 그동안 서신을 보내지 못했던 것임을 알리면서 절대 무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자신의 죄를 너그러운 도량으로 용서해주기를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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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 이정재(李鼎在)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鼎在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축년 5월 10일에 사제 이정재가 바깥사돈에게 가족의 안부 등을 전한 간찰 을축년 5월 10일에 사제(査弟) 이정재(李鼎在)가 바깥사돈에게 가족의 안부 등을 전한 간찰이다. 먼저 여러 차례 보내준 서신을 통해 직접 뵙지 못한 심정에 위로가 되었고 편지를 읽다보니 마치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 반가웠으며, 벌써 여름의 중반인데 날씨가 조화롭지 못한 가운데 사돈과 사돈댁 식구들의 안부는 어떠한지를 묻고, 사돈의 딸이자 자신의 며느리도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자신의 생일을 맞아 아이들이 주연을 베풀어주었는데 도리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서글픈 마음이 들었으나 세 형제가 아직 살아서 단란한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어 큰 낙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처가에 오래 머물면서 아마도 가르침을 받고 있을 테지만 자질이 둔한 아이라 부끄럽다고 겸사를 전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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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讚)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讚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묘년 9월 초3일, 과거 시험을 위해 올라간 찬이 족종에게 자신의 근황과 일정 등을 답장 서간. 을묘년 9월 초3일, 과거 시험을 위해 올라간 찬(讚)이 족종(族從)에게 자신의 근황과 일정 등을 답장 서간이다. 뜻밖에 딸이 오면서 그립던 상대의 편지를 받았다며 위로되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편지에 써있는 우고(憂故)의 유무 여부 때문에 답답하여 애초에 소식을 듣지 못했을 때보다 더 좋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고 이후로 여러 날이 지났다며 점차 추워지는 날씨에 중부(仲父)님 기력은 만강하신지, 모두 잘 있고 아이들은 잘 자라는지 등을 물었다. 자신은 여전과 같이 그럭저럭 지낸다며 다행이라고 했고, 자신이 또 도섭(渡攝)하게 되었다며 운수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뒤이어 규(圭), 문(文) 및 자신의 과거 시험 일정을 전했다. 자신은 전시(殿試)에 대한 방이 난 뒤에 즉시 돌아갈 것이라는 것, 복재(福宰)를 만났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부탁해주기도 하고, 우리 집 일은 반드시 보호해 줄 것 같다고 했다. 논에 대한 일은 초면이라 말할 수 없었고, 그 아들과 내행(內行)을 오래지 않아 내려 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고 했다. 자신이 내려가면 즉시 만나 물을 것이니 광주(光州)에서 기다려달라고 하고, 중부님께서 편지에서 하신 말씀은 힘써 도모하겠다고 중부님께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 과거일로 분주해서 붓을 잡지 못해 직접 말씀드리지 못한다며 죄송하다고 말하고 좌수영(左水營)에 만약 도모할 만한 일이 있으면 두루 구하여 대령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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意謂女來, 逐日顯待之餘, 惟書來玆於涔寂之中, 雖慰積阻懷緖, 自人則遐矣. 其悵已無可言,而還覺憂故之有無與否, 一幷悶鬱, 便不如初不聞信之爲愈也. 伊後更多日, 伏未審漸寒仲父主氣力, 連向萬康, 渾眷無故, 兒輩善長否, 種種慕念之至. 從姑依是幸, 而又渡灄莫非命數, 而圭則以三日連爲入場,無湖蒙点, 初米斷望, 文則旣於京鄕, 則鄕儒觀光之道, 賦似勝於表,故與主人換見之, 而吾則落之文字圖之, 此莫非有魔, 而然奈何. 歸期待殿試出榜後卽還, 而福宰果有相面, 不無左右之勤囑, 故如有疑曲之意, 吾家事, 似有曲護之道, 而畓事, 互在初面, 雖未開端,其子與內行, 當於非久下去當付囑, 而吾行下去後, 卽爲拜面, 將於問之處, 君從來待於光州. 陞補也, 雖差退, 當乃用此也. 蓮洞兄主, 果有下書,而傳者轉得於他, 而不見我而去.故未得謝上, 罪悚.卽深問書中事,當力圖之意,(배면)君須從便書達也. 仲父主前, 當有白是,而科事奔走之餘, 末由操筆, 未得遂誠, 罪悚之意, 仰白如何. 左水營如有可圖之事, 周求以待也. 此則緊切間也故耳. 餘臨便忙, 不宣.乙卯九月初三日, 儧從 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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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용진정사강회소(湧珍精舍講會所)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湧珍精舍講會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1년 9월 10일, 용진정사강회소에서 후석 선생의 문집 간행에 있어 상대를 서사로 선정하였음을 알리고 강회소로 찾아와 주기를 청한 서간. 1931년 9월 10일, 용진정사강회소(湧珍精舍講會所)에서 후석(後石先生文集) 정자본 마련을 위하여 서사(書寫)로 선정하였음을 알리며 강회소로 왕림해 줄 것을 청한 서간이다. 이달 20일에 후석 선생 문집의 정사(正寫)를 개시할 계획이라면서 중망(衆望)으로 당신을 서사(書寫)로 선정하였으니 왕림해 주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후석(後石)은 오준선(吳駿善, 1851~1931)의 호(號)이다. 그의 본관은 나주, 자는 덕행(德行)으로 전라도 광주목 도림마을(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서 태어났다. 기호사림(畿湖士林)의 종장(宗匠)이 되어 용진정사(湧珍精舍)를 지어 제자들을 양성하였으며, 제자 중에는 호남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한 제자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는 의병들의 행적을 모아 『의병전(義兵傳)』을 찬술했고, 여러 차례의 일본 압박에도 은사금을 거부하고 죽을 때까지 선배의 절개를 지켜낸 인물이다. 용진정사는 1917년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건립되어 오준선이 15년간 머무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일체 침략을 반대하며 후학을 가르친 곳이다. 오준선의 시문집인 『후석유고(後石遺稿)』 는 오준선의 조카 오동술(吳東述)과 종손(族孫) 오근호(吳根浩) 등의 주도하에 편간을 거쳐 1934년에 25권 13책으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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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윤창효(尹昌孝)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朴來東 尹昌孝 朴來東[着名]朴致東[着名]尹相伯[着名]成鍛[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4년(영조 50) 10월 10일에 박내동이 노비 3구를 윤창효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노비매매명문 1774년(영조 50) 10월 10일에 박내동(朴來東)이 노비 3구를 윤창효(尹昌孝)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노비매매명문이다. 노비를 매득한 윤창효는 박내동의 매부(妹夫)이다. 방매한 노비 3구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몇 년간 사환하던 것이다. 모두 비(婢) 명심(明心)의 소생으로 노(奴) 명금(明金, 16세), 노 명재(明才, 11세), 비 납을덕이(臘乙德伊, 8세)이다. 본문기는 도문기(都文記)에 재록(載錄)되어 있어 내어줄 수 없다고 한 것으로 보아 분재문기에 수록된 노비를 방매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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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參十玖年甲午 十月 初十日 妹夫 幼學 尹昌孝前 明文右明文爲臥乎事段 祖上流來衿得奴婢 累年使喚是如可 生道爲難乙仍于 婢明心一所生奴明金年十六 二所生奴明才年十一 三所生婢臘乙德伊年八三口等乙 價錢拾參兩以 交易依數捧上爲遣 右前永永放賣爲乎矣 本文段 都文記載錄 故不得出給爲去乎 日後良中同生子孫中 如有雜談之弊是去等 此文記 告 官憑考者奴婢主 幼學 朴來東 [署押]證 同生弟 幼學 朴致東 [署押]證叅 幼學 尹相伯 [署押]筆 幼學 成鍛 [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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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김이종(金利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仁淳 金利宗 金仁淳[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1년(순조 31) 12월 27일에 김인순이 자신에게 전래해 온 밭을 김이종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1년(순조 31) 12월 27일에 김인순(金仁淳)이 자신에게 전래해 온 밭을 김이종(金利宗)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토지는 고읍면(古邑面) 사동평(蛇洞坪)에 있는 8두락지의 밭으로, 전문 10냥의 값으로 매매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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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一年辛卯 十二月 二十七日 金利宗處 明文右明文事段 矣流來田是在 伏在於古邑面蛇洞坪婦字丁今種八斗落只 負數束庫乙 以要用所致 價折錢文拾兩 依數捧上爲遣 右人處 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雜談是去等 以此憑考事田主 自筆 幼學 金仁淳 [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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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정(程)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允憲 程 李允憲[着命]金日甫[着命]李啓文[着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102_001 1839년(헌종 5) 11월 25일에 이윤헌이 사위에게 논 2두락지를 방매하며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9년(헌종 5) 11월 25일에 이윤헌(李允憲)이 사위에게 토지를 방매하며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사위의 이름은 '정(程)'이라고만 되어 있어 자세한 인명은 알 수 없다. 매매한 토지는 처부(妻父) 이윤헌이 몫으로 받아 여러 해 갈아먹던 것으로, 이윤헌은 이매(移買)할 목적으로 사위에게 토지를 방매하고 있다. 소재지는 창평(昌平) 장북면(長北面) 개보평(介甫坪)이며 신자(臣字) 자호의 논 2두락지이다. 값은 전문 44냥이다. 사위와 장인 사이에 토지를 매매한 것이 눈에 띄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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