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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송병기(宋秉夔)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宋秉夔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 7월 12일, 세제 송병기가 상대가 간소에 더해 주기 위해 자신이 맡아둔 돈 11냥을 자신이 유용해 버린 것을 전하고 곧 마련하여 함열 간소로 보낼 것이니 걱정하지 말 것을 청하기 위해 쓴 답장서간. 1899년 7월 12일, 세제(世弟) 송병기(宋秉夔)가 상대가 간소에 더해 주기 위해 자신이 맡아둔 돈 11냥을 자신이 유용해 버린 것을 전하고 곧 마련하여 함열 간소로 보낼 것이니 걱정하지 말 것을 청하기 위해 쓴 답장 편지이다. 봄에 이별한 뒤로 그리워 맘이 괴로웠는데 뜻밖에 편지를 받아 장마철 무더위에 어른 모시고 잘 지내며, 아드님 잘 있음을 알았다며 위로되었다고 인사했다. 자신은 어른이 더위를 만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며 걱정하고, 다른 거머리처럼 붙은 걱정거리들로 또 고통스럽다고 했다. 상대가 편지로 한 말은 잘 알겠다는 것, 지난번 맡아 두었던 간소(刊所)에 더해 보내는 11냥의 돈을 마침 궁한 상황이어서 다 써버렸다며 곧 힘닿는 대로 마련하여 함열(咸悅)에 보내고, 답을 받아 보내줄 것이니 양해해 주시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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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고광선(高光善) 간찰(簡札)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善 李柄聖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51_001 1918년 고광선(高光善)이 이병성(李柄聖)에게 그의 조카가 공부하러 찾아왔는데 자신이 병중이라 찾아온 뜻을 저버릴까 염려스럽다는 내용의 간찰 1918년 2월 24일에 고광선(高光善)이 이병성(李柄聖)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 보내준 서신은 아름드리 보옥과 한 자나 되는 거북을 얻은 것 같았다고 기쁨을 표현하였고, 식구들의 안부까지 편안한지 두루 묻고 몹시 그립다고 인사하였다. 상대방의 조카가 지금 묘령의 나이이고 앞으로 진취할 가망이 많을 텐데 자신이 병중이라 찾아온 뜻을 저버릴까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아마도 자신에게 공부하러 찾아온 수신인의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광선은 자는 원여(元汝), 호는 현와(弦窩) 또는 복헌(復軒)이며 본관은 장택(長澤)이다.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의 문인이고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출입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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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년 배석문(裵錫文)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裵錫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년 음력 4월 7일, 배석문이 병록을 올리며 약을 지어 보내 줄 것을 부탁하고, 자신의 증조할아버지 사실을 덧붙여 올리니 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 병○년 음력 4월 7일, 배석문(裵錫文)이 병록(病錄)을 올리며 약을 지어 보내 줄 것을 부탁하고, 자신의 증조할아버지 사실을 덧붙여 올리니 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어제 족숙(族叔) 편에 보낸 편지는 읽어 보셨으리라 생각한다며 밤사이 경서를 읽으시는 상대의 안부 및 아드님 형제분들이 공부 잘하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어제와 같은 모양이라고 한 후 자신의 족조(族祖) 지평공의 손자인 배석영(裵錫瑛)을 천거하면서 그의 할아버지 의행(懿行)이 문제가 되었기에 일찍이 정단(呈單)하지 못한 것은 감수한다고 하였다. 병록(病錄)을 올리며 고명하신 솜씨로 몇 근을 더해 약을 만들어 주시고, 석두(錫斗)의 이름으로 달아놓아 달라고 하였다. 자신의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 이오헌공(二娛軒公)의 사실(事實)은 이미 전 것이 있는데, 문헌록에 실려 있는 것을 보태어서 다시 초록하여 올리니 봐주시기를 바라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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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경(李老景)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老景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음력 2월 28일, 생 이노경이 동고를 약속했던 상대에게 마침 기회가 생겼으니 자신의 집으로 와서 의논할 것을 권한 서간. 음력 2월 28일, 생(生) 이노경(李老景)이 동고(同苦)를 약속했던 상대에게 마침 기회가 생겼으니 자신의 집으로 와서 일을 의논하자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지난번에 상대가 왔을 때 이후로 오랫동안 소식이 막혔다는 인사로 시작하여 최근의 상대 안부를 물은 후 생(生)인 자신은 현재 병이 낫지 않아 치료하는 일로 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주요 할 말은 지난번에 고생을 함께 하겠다고 했던 말을 잊지 않았느냐고 물으며 마침 기회가 생겼으니, 일간 우리 집에 와서 의논하고 결정하자고 하였다. 그를 위해 기다릴 터이니 와주길 바란다고 하며 봄에 복 있기를 바란다는 인사로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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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정일신재선생연원록(鄭日新齋先生淵源錄) 간소(刊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鄭日新齋先生淵源錄刊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6년 10월에 정일신재선생연원록 간소에서 유림에게 명단을 작성해서 보내 줄 것을 요청한 통문. 1966년 10월에 정일신재선생연원록(鄭日新齋先生淵源錄) 간소(刊所)에서 유림(儒林)에게 명단을 작성해서 보내 줄 것을 요청한 통문(通文)이다.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 1845~1910)의 연원록(淵源錄) 간행을 결정했으니 통문을 보는 즉시 명단(名單)을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한 내용이다. 일신재선생연원록간소는 능주향교(綾州鄕校)이다. 통문의 발기인은 도유사 배석면(裵錫冕) 외 부유사 민홍기(閔弘基), 홍규식(洪圭植), 총무 김윤정(金潤貞), 재무 박병용(朴炳容), 편집 2인, 교정 2인, 감인 2인, 사서 2인, 고문 16인, 특별유사 20인, 추진위원 35인이다. 얇은 종이에 석판인쇄 기법으로 인쇄하였다. 실제로 『일신재선생연원록(日新齋先生淵源錄)』은 1967년 석인본으로 1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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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文爲通諭事 道學之有淵源盖古矣 上自洙洄▣ 至洛閩莫不傳守之實斯文之正脉而時之汚隆世之治亂 繫于此淵源之関重 於名敎可謂大矣 惟我日新齋鄭先生以蘆門嫡傳 其於天人性命之蘊奧理氣帥役之微妙 心得而體驗之 因講道于南服 學者傾一時而坌集各隨其才質之高下而導迪之如洪鍾之待扣鼴鼠之各充弟子散在四方 以所受於師者 授其却下生徒以至再三傳儘 是先生之淵源也 不有當日之攸錄百世之下 孰知延平之學 出於河南紫陽之道 傳于金華耶 以是詠歸享祀 享日輿議詢同將刊淵源錄 玆仰通惟願 僉尊 覽通後卽爲修送名單 以完鉅役則於斯文世道 幸甚幸甚丙午十月 日鄭日新齋先生淵源錄刊所[鄭日新齋先生淵源錄刊所印]綾州鄕校都有司 裴錫晃副有司 閔弘基 洪圭植總 務 金潤貞財 務 朴炳容編 輯 李基來 朴準台校 正 鄭淳熙 梁在述監 印 朴濟相 安鍾基司 書 朴菶來 李炳根顧 問 朴炳壽 朴道東 李弘信 金正煥 李基允文在茂 安道淳 閔長植 具敎洛 崔璣炫奇老章 洪錫憙 魏錫漢 林驥洛 朴琪鉉裵鍾球特別有司 洪潤植 金龍熙 李鍾祿 李白休 朴喆周金冑連 朴淸圭 裵賢洙 尹在東 高光榮曺東熙 安鍾千 李基春 梁琪承 曺圭平趙三顯 廉元燮 申仁圭 韓秉玉 鄭淳周推進委員 金九炫 高光泳 黃起采 鄭城采 文濟俊李承瑨 趙來錫 邪時億 金煥奎 金道熙安圭文 李炳栽 文基雄 朴炳斗 廉敏燮朴德周 李承佑 裵錫原 安炫淳 李鎭白李炳午 鄭翔鎭 邪甲鍾 閔井植 奇世國崔貞鉉 金奉熙 洪甲植 文仁植 趙炳植梁壽承 金貞熙 洪承達 魏鴻奎 吳在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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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윤재남(尹在楠)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尹在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 윤재남(尹在楠)이 당숙모의 상을 당해서 상대방의 초대에 부응하지 못함을 알리는 내용의 간찰 무술년 3월 5일에 윤재남(尹在楠)이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이 편안히 지내는지 묻고, 자신은 당숙모(堂叔母)의 상을 당해서 평소 자신을 아껴주시는 정성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어 몹시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렇게 변변치 못한 자신을 불쌍히 여겨서 심하게 꾸짖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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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이기래(李基來)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基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47_001 경술년 2월에 이기래(李基來)가 칠송사(七松祠)에서 일곱 집안의 회의를 개최하므로 참석해주기를 당부하는 내용의 간찰 경술년 2월 18일에 이기래(李基來)가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오는 24일 오전에 칠송사(七松祠)에서 일곱 집안의 회의를 개최하고 채무 청산 및 봄 향사(享祀)에 대해 상의하고자 하니 바쁘더라도 참석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후산(後山)에게는 각각 편지를 쓰지 못하니 이 편지를 전해주고 당일에 함께 참석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칠송사는 전남 화순군 춘양면 칠송리에 있었는데, 칠송정은 영조 때에 일곱 성씨가 홍수 피해를 위해 제방을 쌓고 제방 위에 소나무 일곱 그루를 심어 기념했고, 그 아래에 칠송정을 세웠기 때문에 칠송마을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칠송사가 있어서 일신재(日新齋)정의림(鄭義林)만 향사하다가 이후 정의림의 문인인 치암(恥庵) 홍승환(洪承渙), 우곡(愚谷) 김윤형(金潤亨), 약포(藥圃) 민병춘(閔丙春), 경당(敬堂) 문제술(文濟述), 인산재(仁山齋) 배현기(裴玄基), 성재(誠齋) 임태주(任泰柱), 시헌(時軒) 홍찬희(洪纘憙), 양곡(良谷) 이승복(李承福)을 추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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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오(白文五)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白文五 應春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년 1월 4일에 백문오가 응춘 형에게 새해인사와 더불어 표피의 판매 시기와 곡물의 매매 관련하여 상의하는 간찰 계○년 1월 4일에 백문오(白文五)가 응춘(應春) 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에 바삐 작별했다가 어느덧 새해가 되었는데 춘부장과 작은아버지 및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나이만 한 살 더했다는 인사를 하였다. 표피(豹皮)는 본가(本價) 대로 팔만한 곳이 있으니 우선 그대로 두었다가 늦은 봄 들어설 무렵에 값을 상의할 것이니 헤아려달라고 하였고, 맡겨둔 약간의 곡물은 사극(士極)에게 상의해서 양목(良木) 사람에게 팔고 혹 그렇지 않으면 모조(某条)로 처리해서 작전(作錢)할 터이니 기다려 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지난번에 올 때 중간에 새 달력 하나를 얻었는데 이를 춘부장 어른께 드린다고 하였고, 조만간 직접 뵙겠다는 말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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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손선남(孫善南)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孫善南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유년에 손선남(孫善南)이 상대방이 보내준 책자를 읽은 감회를 표하고 다시 책자를 인편을 통해 돌려주면서 쓴 간찰 정유년 1월 6일에 손선남(孫善南)이 보낸 간찰이다. 만남이 있은 이후 어느덧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되었는데 상대가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몹시 그립다고 인사하였다. 상대방이 보내준 책자를 잘 받아 열람하니 자신의 더러움을 씻어낸 듯했다고 하고 상대방의 정밀한 안목을 칭찬하였다. 이후 돌려주는 일을 지체하다가 인편이 돌아가는 길에 보냈으니 잘 받아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훗날 직접 만나서 회포를 나누자고 기약하면서 편지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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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식(柳道寔)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柳道寔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모월 25일에 유도식이 덕성의 바깥사돈에게 안부 인사와 사문의 주자서절요 간행 소식 등을 전한 간찰 25일에 사제(査弟) 유도식(柳道寔)이 덕성(德城)의 바깥사돈에게 안부와 사문(斯文)의 소식 등을 전한 간찰이다. 겨울이 절반이 지나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는 계절에 사돈과 아드님과 큰댁의 여러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별다른 일 없이 지내고 각 집안도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다행이고 당저(棠底)의 길례(吉禮)를 이미 치렀는데 신랑과 신부가 아주 칭찬할만해서 이 일이 근래의 즐거운 일이라고 소식을 전하였다. 사문(斯文)들이 근래 안동부에서 발의하여 퇴계선생의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간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자신 집안의 보첩(譜牒)을 찾아 보내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아이들이 일에 바쁘다보니 지금까지 늦어지게 된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것과 날이 따뜻해지면 한번 방문해주셔서 회포를 털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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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백우(任百愚)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任百愚 羅碩士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癸○년 8월 12일, 기하 임백우가 나 석사에게 빌려 쓴 돈을 보내며 적은 안부 서간. 癸○년 8월 12일, 기하(記下) 임백우(任百愚)가 나 석사(羅碩士)에게 빌려 쓴 돈을 보내며 적은 안부 서간이다. 요즈음 상대의 안부가 어떠한지 묻고 자신은 요사이 북관(北關)에서 돌아왔다고 했다. 적벽(赤壁)의 바람이나 달도 10곳을 꼽을 수 없다며 신선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하며 농하였다. 모시는 수령이 옥천(沃川) 본 댁에 행차하였기에 관아가 텅 비었다고 하며 적막함을 어찌하냐고 한 후 상대가 빌려 쓴 돈 5민(緡)을 보내드린다고 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겠느냐는 인사와 함께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임백우는 창책(昌策)에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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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박우락(朴禹洛) 혼서(婚書) 1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朴禹洛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015_001 신유년 11월 18일에 신랑 집의 박우락이 신부 집에 의제를 적어 보내면서 보낸 간찰 신유년 11월 18일에 무안박씨인 박우락이 신부 집에 신랑의 옷본 치수를 적어 보내면서 보낸 간찰이다. 상대의 안부를 물은 다음 신부 측에서 택일한 날짜를 적은 연길(涓吉)을 잘 받았고, 이에 신랑의 옷본 치수를 적어 보낸다는 내용이다. 연길은 혼례 날짜를 택일하여 신랑 집에 통지하는 절차이고, 의제(衣制)는 신랑의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치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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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 이정재(李鼎在)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鼎在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축년 12월 말일에 사제 이정재가 바깥사돈에게 가족의 안부 등을 전한 간찰 을축년 12월 말일에 사제(査弟) 이정재(李鼎在)가 바깥사돈에게 가족의 안부 등을 전한 간찰이다. 한해가 어느덧 저물어 가는데 보내준 인편을 통해 서신을 받으니 몹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서신을 통해 사돈의 모친의 체후가 강녕하고 식구들 모두 평안한 것을 알게 되어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형님은 예전처럼 지내고 계시고 아이들도 별탈 없으며, 새로 태어난 어린 손자의 모습이 단정하고 기특해서 웃음거리가 되어주는데 그 어미가 젖이 나오지 않아 큰 고민거리라고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고 큰댁의 혼례가 다음 달에 있다고 들었는데 잘 진행되고 있는지 물었다. 새해를 맞아 더욱 복되시기를 바란다는 인사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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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병하(柄夏)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柄夏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미년 3월 11일에 족손 병하가 족인에게 혼사 문제로 보낸 간찰 기미년 3월 11일에 족손(族孫) 병하(柄夏)가 족인(族人)에게 혼사(婚事) 문제로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이 지난번에 방문해준 뒤로 시일이 지났는데 근래 상당(上堂)의 체후는 손상 없이 평안하시고 아드님 및 큰집 식구들 모두 잘 지내는지 멀리서 그립다는 인사를 먼저 하였다. 참최복(斬衰服)을 입고 있는 자신은 근근이 지내고 있고 홀로되신 어른 모시며 초조히 지내지만 외가 식구들이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소식을 전하였다. 지난번에 의논드렸던 혼사 문제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 소식이 없어 기다리고 있고, 혼사를 경솔히 결정할 수 없기에 심부름꾼을 따로 보내니 가부간에 속마음을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상당께도 안부 서신을 따로 써야 하는데 갑자기 출발하느라 오늘 아침에 여유가 없으니 이런 뜻을 아뢰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족보에 관한 일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물었고, 이번에 가는 심부름꾼이 일찍 도착하면 당일에 돌려보내 빨리 돌아오게 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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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 도백(道伯) 이면응(李冕膺) 문안단자(問安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冕膺 羅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9년 4월 25일 전라도관찰사 이면응이 나 생원에게 보내는 문안단자 1809년 4월 25일 전라도관찰사 이면응이 나 생원에게 보내는 문안단자이다. 단자는 조선시대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던 문서의 유형이다. 단자 중에는 고유한 서식과 명칭을 갖는 문서도 있었고, 낱장의 문서를 일반적으로 부를 때도 단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고유한 문서로서 단자는 백성이 수령에게 올리는 탄원서, 시전(市廛) 조직간에 통용하는 문서, 충훈부(忠勳府)에 공신자손(功臣子孫)의 세계(世系)를 증명하기 위해 올리는 문서, 호구 조사를 위해 백성들에게 제출하도록 했던 문서를 의미하기도 했다. 또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하직단자(下直單子)나 망단자(望單子)처럼 문서를 작성하는 목적을 앞에 붙여 단자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였고, 문서를 작성하는 아문의 이름을 붙여 예조단자(禮曹單子)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 중 문안단자는 새로 부임한 수령이나 관찰사가 지역 인사에게 보내는 문서이다. 서두에 문안이라는 문구 대신 존문(存問)을 쓰기도 한다. 문안단자에 의하면 이면응은 나 생원에게 문안하며 부채 3자루를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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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李錫)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錫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년 9월 14일, 부종질 이석이 고모댁에 보낸 안부 서간. 갑○년 9월 14일, 부종질(婦從侄) 이석(李錫)이 고모댁에 보낸 안부 서간이다. 우리 종조모의 회갑을 축하하려고 했던 것이 백지로 돌아간 일을 언급하며 이곳의 상황이 어떠할는지는 상대가 알 것이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요사이 사장(査丈)께서 먼 여정에서 돌아오셨는지 묻고 상대방과 종고씨(從姑氏)가 평안한지 물었다. 부종질(婦從侄)인 자신은 두 집안의 노인(老人)이 어떤 일로 인하여 손상을 입으시어 걱정이라고 했다. 아버지께서 지난달에 화선(花宣) 나들이를 가셨는데 돌아오시는 일이 어떠하다는 것, 종고씨의 근친이 마침내 허사로 돌아갔기에 매우 슬프다는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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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별지(簡札別紙)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자신의 종형이 되는 동복 나득상이 과거에 붙을 수 있게 도와주기를 청하는 내용의 간찰 별지. 자신의 종형(從兄) 되는 동복(同福) 나득상(羅得祥)이 과거에 붙을 수 있게 도와주기를 청하는 내용의 간찰 별지이다. 첫머리에 예식 인사 등이 없고 곧바로 용건을 쓰기를, 동복(同福) 나득상(羅得祥)은 자신의 종형(從兄)이고, 창평(昌平)의 사인(士人) 나득검(羅得儉)은 종제(從弟)가 된다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나득상이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가문의 오랜 바람이지만 나이 30이 넘도록 작은 것도 이룬 것이 없다며 그가 과거에 낙방하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으로 쓴 글이다. 편지의 후반에는 시험답안지를 알 수 있는 방법으로 두 장에 모두 '시(詩)'자를 쓸 것이며 그때 시자는 제목과 거의 흡사하게 쓸 것이라는 것, 또 첫 구절의 첫 글자는 반드시 '천(天)'자를 썼다가 말소 표시할 것이라는 것, 이것으로 표식을 삼고, 또 이것이 문제가 될 것 같으면 고명하신 당신께서 방법을 알려주시어 서로 의논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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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兒書再昨邑便答書 想先此得見 意外此奴忽立門前 忽地驚遑 若墜雲霧 收魂坼封 始知其間安狀 稍豁▣▣ 第向來汝之所愼 憑諺書細聞 奴言則其時許久沈苦之狀 不覺如目格而骨冷 雖於其時之危遑 如可把筆 則使此遠在之親 知聞可也 而況得差可之後 雖有數便 而略無所及 此何情事 初得於仁兒之及聞 而其後無所示 如必不至大端 而弛此憂矣 今聞猶未祛根云 未知進退果何居 此莫非積疩所致 其爲憤悶今何悉狀 而汝之固滯 亦有未快?去者 而然次深留意 而隨便詳示 以破此鬱念 爲可爲可. 父一如前狀, 而與前書無異耳. 高敞科事, 其時該色吏, 急出使之. 故同色吏不知, 而致此發關之. 故得見防僞私通卽送 使之蒙放 而吾書裁送爲好 第汝之觸處見困之狀 不欲聞知而已 宝岩事 春間送琴岡之由今始聞知 故不得已 如是托辭而答去 而來月以後亦將何以周章 還事亦某条周處計 而苦未其長策耳 聞奴言則春夏間 自官以租石或牟斗饋問 而又有邀見事云 果然則何無所及聞耶 此後或有作書於官家之事 必無此等所及 則豈不麥浪後▣…▣小錄 而亦不知所推用之幾許 如是▣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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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경술년 허종(許錝)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許錝 薛都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072_001 경술년 4월 그믐날에 사생 허종이 자신 집의 의송 상황을 전하기 위해 의송문서를 설도감댁으로 보내면서 작성한 서간. 경술년 4월 그믐날에 사생(査生) 허종(許錝)이 사돈인 설도감댁(薛都監宅)으로 자신이 최근 의송(議送)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임을 알리고 의송 문서와 방기(榜記)를 보내며 상황을 파악하시라고 전한 서간이다. 요사이 소식이 적조했다며 요즈음 안녕하신지 사돈의 안부를 물었다. 사생(査生)인 자신은 어른 모시는 일은 그럭저럭 평안하시고, 큰형과 작은형이 모두 평상시와 같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주요 할 말은 장야(長也)에 대한 일로, 나무라고 논하기에도 부족하다며 매일 의송(議送)과 투방(投榜)의 일로 험담이 매우 많아 자신을 낮에 나타나는 귀신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다시 돌려주고 다시는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의송(議送)과 방기(榜記)를 보내니 자세히 보라고 전했다. 발신자 허종은 성남(城南)에서 살았고, 수신자 설 도감댁은 독치(禿峙)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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