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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 文右通古事伏惟我蘆沙老先生淵源錄刊事 設役以來 非不欲汲汲圖成 而事體浩大 且緣居有遠近之不齊 難於卒乍衰萃 勢不得不延拖三四載也 今纔竣功 斯文大事 順成於蒼黃 多端之日 實若天有所相 而亦豈非我先生之道 或將重熙於今日耶 慶幸之極 尤切羹墻之忱 以今月二十二日分帙定算 伏惟僉君子 趁期齊枉于光州市臨時刊所 俾無後日葛藤之地 千萬幸甚一 編輯內容 先生年譜 行裝 神道碑銘 墓碣銘 先生門人編順次編于上卷 淵源諸家編于下卷一 先生遺書中 納凉私議 猥筆 三政策 丙寅二疏後人之尤不可不讀者故編于年譜中逐年條下 賜祭文亦編于逐年條下一 冊價 壹帙貳冊【白紙板四千圜 魯紙板二千五百圜】一 分帙場所 光州市鷄林洞一區 東和堂藥房 曺圭復方但二十二日以後來臨于長城郡珍原面珍原里澹對軒庚子正月十四日淵源錄刊所 朴 興 圭 洪 錫 憙呂 昌 鉉 朴 永 鳳奇 老 章 邊 舜 燮 等白列郡 淵源家 僉座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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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 김만형(金萬亨)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萬亨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신년 4월 8일, 손우 보암산인 김만형이 벗 여산 송씨에게 보낸 서간. 무신년 4월 8일, 손우(損友) 보암산인(寶巖山人) 김만형(金萬亨)이 벗 여산 송씨에게 보낸 서간이다. 그대가 청운(靑雲)에 오르고 자신이 바람대로 영산(靈山)으로 돌아가 서로 이별한지 3년째라며 최근 정사를 돌보고 있는 상대가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이제야 물염정(勿染亭) 운에 차운하여 시를 지어 올린다고 말하고 7자 8줄의 시를 적은 내용이다. 물염정은 전라남도 화순군의 경승지인 '화순 적벽(和順赤壁, 전라남도기념물 제60호)' 상류의 물염적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세워진 정자로, 화순군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종과 명종 때에 성균관전적 및 구례·풍기군수를 역임했던 물염 송정순(宋庭筍)이 건립하였고, 송정순의 호를 따서 물염정(勿染亭)이라 하였다. '물염'이란 '속세에 물들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정자 내부에 조선 중·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들인 김인후(金麟厚)·이식(李栻)·권필(權韠)·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이 남긴 시문(詩文) 등 20개가 넘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인 삿갓 김병연(1807~1863)은 전라남도 화순에서 생을 마치기 전에 물염정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고 하며 정자 근처에 김삿갓의 동상과 7폭의 시비(詩碑)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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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문종식(文鍾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文鍾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미년에 문종식(文鍾植)이 초대한 자리에 참석이 불가함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을미년 3월 1일에 문종식(文鍾植)이 보낸 간찰이다. 자신을 오라고 한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일을 받들어야 마땅하지만 이 날짜가 망자부(亡子婦)의 연상(練祥) 날과 겹쳐서 참석이 불가능하다고 알리는 내용이다. 피봉이 남아있지 않아 수신인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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輪告文右文爲輪告者 惟我 蘆沙奇先生 以命世之才 闡發理學 啓牖後人 以當靑邱文敎一治之運 當時及門親灸無慮百千 而惟見而知之 發揮羽翼 菀然闢大門庭者 於嶺湖可敷而知 至于今 生人斯稍 知廉隅知 先生之道 爲主理御氣 先生之學 爲炳義斥邪 邪者畏懼 而知愧善者慕向而鑽仰之皆其賜也然欲觀於海而不知百川之朝宗則指江淮河漢而爲海者有之欲學先生之道而不知淵源之端委則往往入於旁岐曲逕而不知大正至中之道矣 道一源而已故子禽學於子貢而知夫子之求之異乎 人之求之 則其門路之端的統緖之一貫不可以前後而差殊亦不可以未得親承咡詔爲非其淵源也然卽今日淵源錄之不可緩而欲汲汲編修字盖欲使今人之登是錄者知何者是淵源何者是門路則可謂不負先生之道而聞風私淑慕德向義者亦同在是科也玆敢具由仰告惟願僉君子樂聞而贊同之俾成右文之擧 千萬幸甚 右敬通于僉尊 座下丙申九月 日蘆門淵源錄刊所都有司 梁會甲 校正 呂昌鉉副有司 金度中 李鍾遠李會春 金顯奎總 務 朴興圭 幹事 鄭在會外 務 邊時淵 卞榮濩內 務 奇老章 徐鉉球編 輯 李建秀 梁在允洪錫憙 掌財 邊舜燮要項一 題 目 蘆門淵源錄一 蒐輯範圍 蘆沙先生門下諸先生及其淵源各家一 編纂凡例 姓名貫號字生科宦享祠某之后某之門人及其住所一 單 金 額 每單五百圜以上一 冊子購入 二卷一帙價額分帙同時結定一 刊 所 全南長城郡珍原面珍原里澹對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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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고산서원(高山書院)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高山書院 三山祠 高山祠章(흑색, 3.5×3.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19_001 1957년 3월에 고산서원에서 화순의 삼산사에서 노사 기정진 선생과 일신재 정의림 두 선생을 제향하는 일에 마음을 함께 하겠다는 내용으로 화순 유림에게 보낸 답통. 1957년 3월에 고산서원(高山書院)에서 화순의 삼산사(三山祠)에 노사 기정진을 제향하고 일신재 정의림 선생을 배향하는 일에 자신들이 찬성한다며, 속히 그 의식이 성대히 치러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내용으로 화순 유림에게 보낸 답통문이다. 고산서원의 박흥규(朴興圭), 양회갑(梁會甲) 등 35인이 연명하였으며 [고산사장(高山祠章)]이 1개 찍혀 있다. 정의림(鄭義林, 1845~1910)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계방(季方), 호는 일신재(日新齋)이다. 응교(應敎) 정태(鄭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제현(濟玄)이고, 어머니는 진원 박씨(珍原朴氏) 치성(致聖)의 딸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3대 제자 중 1인으로, 노사학파의 인물 중 비교적 큰 규모의 문인 집단을 형성한 사람이다. 1868년 기정진에게 집지하여 스승의 학설을 계승하면서 율곡의 학설을 주리적 측면에서 이해하고자 하였으며, 「변전우소저노사선생납량사의기의(辨田愚所著蘆沙先生納凉私議記疑)」와 「변전우소저노사선생외필변(辨田愚所著蘆沙先生猥筆辨)」을 써서 노사의 학설을 옹호하였다. 또한 나라가 일제에 의해 잠식되어 가자 호남대의소에서 의병 활동을 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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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정헌규(鄭憲圭)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憲圭 裵錫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9년 7월 27일, 고숙 정헌규가 배석지에게 자신에게 한번 찾아와 줄 것과 선고의 인출에 관한 소식을 궁금해 하는 내용으로 묻는 서간. 1959년 7월 27일, 고숙(姑叔) 정헌규(鄭憲圭)가 배석지(裵錫祉)에게 자신에게 한번 찾아와 주기를 바란다는 소망과 선고(先稿)의 인출(印出)에 관하여 궁금한 것을 묻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상대의 종형(從兄) 석열(錫烈)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뜻밖이라 마음속으로 놀랐다고 인사하고 상대가 비통함을 어떻게 견디는지 물었다. 상대의 가족 안부가 어떠한지 묻고 석초(錫初)는 종종 만나는지 묻고 자신이 소식을 물으러 가고 싶었지만 병 때문에 못했다고 말하며 지금은 너의 형제가 내게 한번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선고(先稿)를 인출하는 일에 관해서는 전에 사문 박동춘(朴同春)과 함께 의논하여 대개 어찌 할지 대책을 정했었는데 가을이 반이 넘도록 소식을 듣지 못해 답답하다고 했다. 원고 중에 더 보충해 넣기로 한 글은 일찍이 단절시켜 버렸는데, 소식이 막힘이 이와 같으니 혹시 그 사이 다른 까닭이 있어서 그런 것이냐고 물었다. 답답하여 대략 몇 글을 적는다며 상세하게 답장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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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堂姪追候. 完.(簡紙)客秋一札, 迨用披豁, 未知新元寓况連得安善, 逢新觸感, 想非…▣而兒少景光, 亦漸多難抑變矣.…▣谷喪事, 聞甚慘悼, 而女兒住接, 尤…▣(苟)且, 吾種種疚懷, 能有酬遣道否, 仰…▣念切而已. 叔寓狀一行, 遽然經歲,…▣一宿, 今已有年. 大政布邑末擬而…▣蒙点, □(莫)非此苦債之猶未盡艾, 而…▣衰境供劇, 殆難支吾, 瑣味亦難堪…▣, 體欲脫歸而亦不得. 只自愁鬱之中,…▣年多景之難免難測之, 而徒令人促…▣此將奈何奈何. 神川三川, 俱得聞信…▣極孫室憂, 聞極驚念. □□(倽伀)之成人【可幸以去遠】…▣家俱能無故否. 豊德從, 想或已闋制▣…▣始付慰, 此意幷傳之也. 新營將卽□將…▣後孫, 而與吾累朔作僚情親者也.(제2장)玆令存問, 而仲明名字, 以吾善忘痰症, 忽地忘置, 以明字使之存問, 而亦有▣事□□(顧護)之托矣. 如有尋見之事, 則以某字改名爲言, 爲好矣. 諸山侄馬事, 亦有所托, 隨時呈訴, 以爲推出之道, 似好耳.餘眼花近尤甚, 如是胡艸, 只此不具.京耗非遠書可旣, 而領相金致仁, 右〖左〗相李䃼〖福〗源, 右相金熤, 吏判尹蓍東,兵判金履素耳. 明□(橋)台方帶禮判, 而方差貴人嘉禮都監堂上矣. 貴人揀擇, 似以幼學朴浚〖準〗源女爲之耳.丁元月十一日, 堂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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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배석지(裵錫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裵錫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9년 12월 8일, 배석지가 신랑측에 혼인 일자를 보내며 날짜에 문제가 없는지 묻는 내용으로 쓴 서간. 1969년 12월 8일, 배석지(裵錫祉)가 신랑측에 혼인 일자를 보내며 그날이 괜찮은지 묻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혼인을 허락받아 매우 감사하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늦겨울에 상대가 잘 계신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인사했다. 약속대로 혼인 길일인 연길(涓吉)을 올린다며 혹시 이 날에 무슨 문제가 있을지를 묻고 편지를 마쳤다. 혼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예식 편지로 예장(禮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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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김영순(金永淳)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永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오년 7월 15일, 동문제 김영순이 동문 형에게 자신이 초록한 책을 보내며 살펴보고 다시 정리하여 보내 줄 것을 청한 서간. 경오년 7월 15일, 동문제(同門弟) 김영순(金永淳)이 동문 형에게 그동안의 안부를 전하고 자신이 늘그막에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서 초록하여 만든 소책자를 보내며 읽어보고 읽을 만하지 않은 것은 빼고 다시 자신에게 보내 줄 것을 청한 서간이다. 먼저 당신의 농장에서 만나지 못하고 갑자기 이별한 것이 슬펐다고 인사하고 담대헌(澹對軒)에서의 편지가 진열(珍烈) 편에 도착했는데 우편을 믿지 못하여 답장을 지연시켰으니 스스로 게을럿던 것을 반성한다고 했다. 이제 여름으로 장마더위로 날씨가 이상한데, 경학하시는 당신이 아드님과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4월 이후로 둘째 며느리가 우연히 이상한 병에 걸려 두통과 가슴놀람증으로 의원을 맞이하여 치료했는데, 사지가 역절풍이 와서 또 아파하여 부득이 상림의국(上林醫局)에서 조리하였다고 했다. 전의 증세는 나았는데 뒷 증세가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엊그제 집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복약 중이라고 했다. 자신이 어려서 공부를 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후회가 막급하다는 것, 쇠한 기력 때문에 책을 많이 읽을 수가 없어 략초(略抄)로 사색(思索)등의 글을 수렴하여 하나의 작은 책자로 편집해서 조석으로 공부한다는 것, 이것으로 남은 생을 보내는 자료로 삼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의 손을 지나지 않으면 어찌 말이 되겠느냐며 자신의 족숙(族叔)편에 보내니 보시고, 읽을 만하지 않은 것은 빼버리고 다시 하나의 소책자를 만들어 보내주시면 어떻겠느냐고 부탁했다. 정시(亭詩)는 눈을 뜨게 해 주었다며 감동받은 좋은 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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仙庄未穩, 霎別悵惘, 日切繼以雅圅可敵御李, 適此澹對軒書, 珍烈便來到, 難容憑郵幷寄者, 故逋謝遷延, 自訟自慢而已. 今夏潦炎,偏酷異常, 不審經體冲裕曁賢胤輩安侍殷課慥慥, 未幷願聞之至. 弟自四月以來, 次婦偶罹奇祟, 頭痛也胷驚也. 延醫纔治未了, 以四肢逆節風又痛, 不得已騎送于上林醫局調理矣. 前祟雖夬, 而後祟尙未夬, 再昨還家, 方在服藥中耳. 閔焦閔焦而已. 鄙之自小失學晩暮追悔莫及, 而自顧衰力, 誠難廣讀, 惟有淺計略抄收斂思索等文, 而集爲一小冊子. 朝夕爲課, 以送餘年之資矣. 且更思之, 則不經吾兄之手, 恐有邯鄲故客臘以此說及, 則罪惟方此祭故也. 歲餘无多, 須爲襲送云, 然於往來之際, 若掛於他眼, 則不諒鄙之衰悔, 而輒誚以渠, 何足爲蒐述之有, 豈非悚之者乎. 故不嫌尊老. 鄙族叔緊便送上, 雖是 衰境勞焦, 若非吾兄則何敢率爾. 乃爲第待靜暇獨勘, 而幸勿置於露處仰之. 覽下則想有不滿矣. 然則撮其不可不讀者, 更爲一小冊子何如何. 亭詩使人洗眼, 有足感動, 眞佳作也. 俯示鹿洞行或曰某也不詳其海如何, 故有此輕行云, 予答曰, 積城問宋家題主人誰耶. 栗谷先生良久乃曰喪人輩草土號泣之中, 屬望甚懇, 予甚以爲難, 而不得已題之云,以大賢之事, 推之容或無怪也. 又曰於此有爲人欺罔者, 則不責欺人者而先責爲人罔者耶. 不責鄕中, 而但責某也何也, 一座笑曰, 然之矣. 餘惱於家故洞故, 而神昏艱草, 不備只此. 冀珍嗇以慰遠忱.庚午七月十五日, 同門弟 金永淳 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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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涓吉)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인생 신랑과 갑술생 신부의 혼례 일정을 정하기 위해 작성한 혼례택일기 병인생 신랑과 갑술생 신부의 혼례 일정을 정하기 위해 작성한 혼례택일기이다. 신부 집에서 혼례 일정에 따른 날짜와 시간 및 방향 등을 정하여 신랑 집에 택일단자를 보낸 것으로 연길(涓吉)이라고 한다. 단자를 보내는 날짜는 8월 20일, 가관(加冠)과 전안(奠鴈)을 하는 날 아침에는 서남쪽을 향하여 앉아야 하고, 신랑이 신부의 혼주에게 기러기를 전하는 전안례는 11월 11일 사시(巳時)로 정하였으며 우귀(于歸)도 같은 날에 행하며, 교배례(交拜禮)를 할 적에는 남북으로 서로를 향해야 한다고 하였다. 주당(周堂)이 당(堂)에 있으니 청중(廳中)에서 예를 행하는 것은 꺼려야하고 신혼식을 치른다면 꺼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주당은 혼인이나 장례 등과 같은 의례에서 꺼리는 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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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형시백(邢時伯)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邢時伯 裵玄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0년 1월 20일, 생 형시백이 배현기에게 봄날의 안부를 전하고 상대의 뛰어남을 칭찬하며 농사일로 찾아뵙지도 못하는 자신을 멀리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50년 1월 20일, 생(生) 형시백(邢時伯)이 배현기(裵玄基, 1881~1954)에게 봄날의 안부를 전하고 상대의 뛰어남을 칭찬하며 농사일로 찾아뵙지도 못하는 자신을 멀리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상대가 가문의 학문을 전수받아 자신을 닦고 학문하는 모습을 칭찬하고 자신이 분수를 모르고 일찍이 공부를 잃고 고루한 모습이 되었다고 하였다. 봄이 한창이니 상대가 더욱 생각나지만농사일로 직접 만나 인사하지 못하여 황송하고 민망하다며 선생께서 자신을 멀리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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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정헌규(鄭憲圭)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憲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7년 12월 7일, 정헌규가 상대 여러분들에게 『인산유고』의 미흡한 부분을 변명하며 용서해 주시고 내년에도 잘 돌봐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 1957년 12월 7일, 정헌규(鄭憲圭)가 상대 여러분들에게 『인산유고(仁山遺稿)』의 미흡한 부분을 변명하며 용서해 주시고 내년에도 잘 돌봐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상대가 먼저 안부를 물어 준 것에 감사를 전하고 첨현(僉賢)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인산(仁山) 유고(遺稿)를 재서(再書)한 후 약간의 수정을 거쳤지만 종종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것, 행장을 서술하는 일은 문장을 잘하는 동문(同門)과 후배들의 책임이라는 것, 문장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부쳐서 보이겠느냐며 마음 풀고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내년에도 잘 돌봐주기를 바란다고 인사하고 답장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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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선(高光善) 간찰(簡札)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善 李柄聖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51_001 고광선(高光善)이 이병성(李柄聖)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을 찾아온 수신인의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낸 간찰 초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이 이병성(李柄聖)에게 보낸 간찰 초(抄)이다. 지난번 보내준 서신은 아름드리 보옥과 한 자나 되는 거북을 얻은 것 같아서 지금까지 어루만지다보면 어느덧 낡은 서탁이 화려해지는 것 같다고 기쁨을 표현하였고, 근래 생활이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인사하였다. 상대방의 조카가 지금 묘령의 나이이고 앞으로 진취할 가망이 많을 텐데 자신이 병중에 있어서 찾아온 뜻을 저버릴까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언제라도 한번 만나서 회포를 풀고 싶지만 각자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느라 만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고, 자신이 지은 시를 보내니 웃으며 받아달라고 하였다. 조카 이야기는 아마도 자신에게 공부하러 찾아온 수신인의 조카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고광선은 자는 원여(元汝), 호는 현와(弦窩) 또는 복헌(復軒)이며 본관은 장택(長澤)이다.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의 문인이고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출입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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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簡札) 초(抄)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재종형(再從兄)에게 보내려고 쓴 간찰의 일부 재종형(再從兄)에게 보내려고 쓴 간찰의 인사말 부분이다. 재종형의 안부가 강녕하고 집안 사람들 모두 평안한지 묻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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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부)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칠월칠석 다음날에 서울에서 관직 생활 중인 아버지가 고향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안부 서간. 칠월칠석 다음날에 서울에서 관직 생활 중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안부 서간이다. 지난달 26일의 편지를 어제 받아 울적했던 마음이 위로 되었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그 후로 여러 달이 지났다며 그간 너의 어머니는 별 탈이 없고, 아이들의 서증(暑症)은 다 낫고, 학우(鶴寓)도 다른 근심 없고, 인 아(仁兒)는 이미 돌아왔는지, 너는 이미 나가서 착실히 공부 하고 있는지 등을 물었다. 죽천(竹川) 소식은 무슨 말이냐며 차마 말로 할 수 없이 참혹하다고 하고, 너의 형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하더냐고 물었다. 자신은 우선 몸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데 이는 주인의 정성스런 마음 때문이라며 다행이라고 했다. 대정(大政)이 이미 지난달 말일에 있었던 것, 누구에게 적당한 직자리가 있지 않아 관직에 제수되지 않은 것, 자신이 있는 지금의 자리가 박록(薄祿)하며 관직은 운수(運數)에 달려 있다는 한탄, 보리쌀이 떨어 졌으니 이제 환곡으로 살아야 한다며 앞으로의 생계 걱정 등을 한 후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기만을 바란다고 전했다. 그 외 허(許) 거창(居昌) 댁은 남동(南洞)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는데 한번 갔더니 만나지 못했다며 다시 편지할 생각이라고 했다. 눈이 흐려서 여러 사람에게 각기 편지 하지 못하니 이 편지를 보여주라고 당부하고 집의 추성(秋省) 준비를 미리 해야 하는데 뒤의 편지를 기다려서 전송하라는 당부, 농사의 상황이 흉년은 면하겠다는 것, 서울의 돌림병이 이미 깨끗해 졌고, 남쪽 고향도 매우 심하지 않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것, 서울의 비는 이달 초부터 장마가 되어 걱정이라는 등의 내용을 적었다. 추신에는 앞으로의 편지를 전할 방도가 읍편(邑便)이 있을 듯 하다며, 읍의 서리 박동춘(朴東春)의 아우가 서울 포수(炮手)로 있어 서울에 살고 사람도 착실하다며 이 말을 누구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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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 피봉(涓吉 皮封)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연길단자의 피봉. 연길단자(涓吉單子)의 피봉(皮封)이다. 연길은 신부측에서 혼인 일자를 정하여 신랑측에 올릴 때 사용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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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金弘植) 회함(回啣)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弘植 李東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단골리(丹骨吏) 김홍식(金弘植)이 해남(海南) 이동흠(李東欽)에게 보내는 회함(回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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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通諭事 伏以 故判中樞松窩鄭公 以儁偉之姿通敏之才 早遊雲坪宋先生之門 卒業爲己之學 又請益于金漢湖先生 精於性理 嫻於禮說 達於文辭 與宋性潭李鏡湖朴謙齋諸賢 最相善資 切偲而見 推許其餘從遊 亦皆當世鴻碩 則可見師友之盛趨向之正 而繡使以孝友純至禮 識精邃之目 再度啓薦特除寢郞 公以疏辭旌招曰 讀書修身 士子本分 無實資名 誤蒙聖恩 至愚極陋何敢抏顔於天陛之下 云云 晩年 召對前席 陳忠讜啓沃之言 則健陵盛除上曰 汝年齡隆高 宜除壽爵 特加嘉善因命留侍經筵 公又辭以老昏不堪 遂具箚進聖學十圖 上極加稱獎 陞判中樞 亦可見聖朝禮遇之隆也 伏地成一絶以獻曰 勤越天顔 志願新神明聖 至老昏臣 崇恩報答 無多日 但祝南山萬壽春 因乞骸還鄕 寓樂林泉 日與學者疑問答解 每月朔 行鄕飮禮 講太極圖說 此乃公一生踐儀之槪也 有遺集草藁六冊及儀要補遺上編 而子孫甚零替 常不過三數人 家勢隨而殘窶 汨於生計 遺集尙未脫藁 或有紙毛而難記處 此不啻後昆之痛迫 凡我人士之閗公之行 見公之文者孰能不䝴恨興喟乎 今至五世孫煥琫甫深懼其愈久愈泯 切欲校印幾帙略頒粗傳 而其資赤乏 有志莫遂者 復有年矣鄙等 旣在同郡 稔知其由 彛性所激 不勝慨惜 公議同辭 將修一契 而補其資 玆以仰告 伏願僉尊 一齊和應 俾成煥琫甫之志 而不朽松窩公之名 則迨此陽錮之會庶或爲扶持斯文之一端 ■■■(美規也) 成事也特軫涵亮 千萬幸甚年月日 褒忠祠書設會中 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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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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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5년 김성수(金性洙)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性洙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8월 13일, 김성수가 사돈댁에 안부를 전한 서간. 1925년 8월 13일, 김성수(金性洙)가 사돈댁에 안부를 전하고 손자가 향교에서 공부 잘 하고 있다는 것, 사돈댁 농장이 피해를 본 것에 염려스럽다는 것, 아들이 일전에 읍으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 걱정인 것, 그래서 약재를 보내지 못한다는 내용 등을 담아 보낸 서간이다. 몇 번 온 편지에 답장을 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게으름 때문이라며 어찌 용서를 바라겠느냐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보내주신 인편이 와서 아들에게 준 편지를 받고 대개의 안부를 들었다며 위로되었다고 했다. 밤사이 상대와 아드님, 종씨 형님도 잘 계시고, 우리 집 사람도 잘 있음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했다. 사계(査契)인 자신은 늙은 것이 더욱 심해졌다며 봄·여름간에 자신이 겪은 일을 하나하나 들어 말할 수가 없다고 했다. 또 손자아이가 읍의 향교에서 머물고 있는데 충성스럽게 굳건하게 잘 공부하고 있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아들이 일전에 읍에 갔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아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겠다는 것, 내행(內行)은 9월 23로 정해서 보낼 것이니 혹시 농사일에 구애되는지 물었다. 농장에 손해가 있다는 말에 걱정을 표한 뒤 편지를 마쳤다. 추신으로는 약재(藥材) 값을 자식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보내드릴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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