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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이수봉(李洙鳳)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1893.12.19.] 李洙鳳 全羅道觀察使 官[着押] 3顆(9.3×9.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48_001 1893년(고종30) 12월에 남원부에 사는 이수봉이 전라도 감영의 순찰사에게 선산의 수호를 위하여 올린 상서. 1893년(고종30) 12월에 남원부(南原府)에 사는 이수봉(李洙鳳)이 전라도 감영의 순찰사에게 선산의 수호를 위하여 올린 상서(上書)이다. 이수봉은 선산의 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무고하게 고소를 당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5대 조비(祖妣)의 산소는 60여 년 전에 고조 진사공(進士公)이 김상수(金相壽)의 선대 종손에게서 매득하여 그 관련 문권을 확실히 소장하고 있는데 용담에 사는 김상수, 김기성(金箕聲) 등이 고소를 했다며 이를 살펴 잘잘못을 가리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벗게 해 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대해 전라감사는 '용담현(龍潭縣)에서 조사하여 보고하기를 기다려서 조처하겠다'고 19일에 뎨김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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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 김영채(金泳蔡)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金泳蔡 茂長縣監 官[着押] 1顆(6.7×6.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59_001 정해년 11월에 무장현 장자산면 회룡에 사는 김영채가 무장현감에게 연호잡역의 면제를 청하는 내용으로 올린 소지. 정해년 11월에 무장현(茂長縣) 장자산면(莊子山面) 회룡(會龍)에 사는 김영채(金泳蔡)가 무장현감에게 자신 집의 연호잡역 면제를 요청하기 위해 올린 소지이다. 그는 자신이 훈신(勳臣)의 후예로서 먼 땅에 유락하며 살기에 지금까지 조정에서 특별히 연호잡역(烟戶雜役)을 면제해 주는 은전을 받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받게 되었다며 그동안 받은 완문(完文)을 점련해 올리며 본면 향약소에 자신의 역 면제를 명해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무장현감은 병조(兵曹)의 완문(完文)대로 공의(公議)를 따라 역을 감해주라고 21일에 집강(執綱)에게 뎨김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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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년 장성준(張成浚) 등 등장(等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成浚 康津縣監 <押> □…□ 3顆(7.0x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31_001 계해년 3월에 장성준 등이 강진현에 올린 등장 계해년 3월에 장성준 등이 강진현에 올린 등장이다. 이들이 거주하는 옴천면(唵川面) 개산리(盖山里) 뒷산에는 예로부터 영험하게 여겨진 제봉(祭峯)이 있어 주민들이 매년 여기에 제사를 지내왔다. 그런데 지난 정미년 3월에 누군가 여기에 투장한 뒤로 변고가 잇달아 일어나자 촌민들이 놀라 관에 정소하여 즉각 파내 옮겼다. 그렇게 안심하고 있던 와중 생각지도 않게 같은 고을 오추동(梧秋洞)에 사는 박치언(朴致彦)이 이번달 초 9일 이곳에 또 늑장(勒葬)을 하였다. 이후 여러 사람들이 갑자기 병이 나서 사경을 헤메는 등 변고가 다시 일어났으므로 이 사실을 조사하여 무덤을 파내 옮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강진현에서는 도형(圖形)을 살펴본 뒤 원고와 피고를 관에 대령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등장(等狀)은 여러 사람들이 연명(聯名)하여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소지류(所志類) 문서의 일종이다. 소지류 문서에는 등장 외에도 상서(上書)·발괄(白活)·의송(議送) 등이 포함되었고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한편 도형은 산도(山圖)라고도 부르는데, 산의 형세를 그린 그림으로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건축물이나 묘소의 터를 정하기 위해 작성하거나 산송에서 매장된 묘소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증거물로서 작성되었다. 관에서는 접수한 소지류 문서와 산도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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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山面 會龍 金泳蔡 單子恐鑑伏以 崇德報功 有國之盛典也 蠲减徭役 鄕邦之矜式也 民▣▣(以勳)臣之裔 流落遐鄕 到今自 朝家特爲拔例 蒙受 恩典 而烟戶雜役 一倂頉下事 自兵曺 依已例完文成給 故同完文帖連仰稟 卽爲 下察 特下帖飭于本面鄕約 以奉 上司 處分 以爲鄕邦之矜式 無任祈恳行下向敎是事城 主處分 丁亥十一月 日官[署押](題辭)依 兵曹完文公議减給事二十一日執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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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기경섭(奇景燮) 등 상언(上言) 고문서-소차계장류-상언 全羅道 儒生 奇景燮 等 21名 禮曹判書 小1顆(3.6×3.5)大3顆(5.9×6.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75_001 1905년(광무9) 11월, 전라도 유생 기경섭 등 21인이 연명으로 예식원 장례원경에게 무장군 출신 고 사인 조경삼의 효행 포장을 청한 상언. 1905년(광무9) 11월, 전라도 유생(儒生) 기경섭(奇景燮) 등 21인이 연명으로 예식원(禮式院) 장례원경(掌禮院卿)에게 무장군 출신 고(故) 사인(士人) 조경삼(曺慶三)의 효행 포장을 청한 상언(上言)이다. 조경삼이 부모를 효로 모신 행실을 적어 올리며 높은 행실을 기려 효자 정려를 내려줄 것을 청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장례원 경(卿)은 '이미 부(府)에 마땅히 계달(啓達)하라고 제사를 내렸다'고 21일에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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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道儒生 奇景燮 鄭淇朝等 謹齊沐百拜上書于禮式院掌禮卿閤下 孝爲百行之源 而有能行者鮮矣 故一有能行之者 則必有士林之公言也 納公言之實 而闡揚棹稧之褒贈之朝家之盛典也 本道內茂長故士人曺慶三 以簪纓世族 天性純孝 早襲庭訓 文學夙成 克篤六行 家內規範 一以司馬溫公家法爲師 事父母昏定晨省 肅淸有度 甘旨之供 志軆之養 固非天出之誠 不能爲是人之行也 家素淸貧 山海之味 勢不得常継 樵山漁水 手足胼胝 不知風雨寒暑 對人談論 恒時父母之養 惟恐不及 勤勤枚枚 盡宵戰兢 如臨深履薄 則是皆一一中節於聖賢之戒惧也 父以老患 爲臥呻吟 身未嘗盥櫛衣服 屎尿汚穢 親手除拭 問於醫家 則曰人之將死 糞有變味云 朝朝嘗之 其父必以天年 至于奄忽 裂指湊口回甦 三日之命 終至奄然候息哀毁痛迫 已無可言 初終凡百 朝夕奠禮 一遵晦庵嘉禮 歠粥疎食 亦如聖訓無違 則是皆人子之疎節也 終三年之喪 魚肉不入口 葬其親於二十里外 雖疾風雷兩省墳之行 不廢於朔望 是亦孝子之疎行也 世皆以曺孝子指名矣 服闋後至老死三十餘年 亦終必不忘三年之內 朔望之例 則眞可謂終身慕父母者非耶 鄒聖之言 必稱大舜 豈欺我哉 如此卓然之行 聞者亦莫不有秉彛之心 而不可泯黙 故玆敢仰達于 孝理明庭之下爲白去乎 以此卓然之孝 特爲 啓達于天陛優下恩侑之典 以表旌孝之地 千萬激切 屛營祈懇之至光武九年十一月 日 請願人 道內儒生 奇景燮 鄭淇朝 崔炳懋 蘇升奎 宋泰浩 李鍾澤 宋元浩吳喆洙 曺錫休 姜晋永 林相鶴 金亨述 李重基 金永述鄭海翊 安秉默 鄭鳳鉉 朴景輔 張奉植 劉秉燮 孫炳植 等大宗伯 閣 [掌禮院卿之章](題辭)旣有府題當啓達事卄一日[掌禮院印] 3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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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이수룡(李洙龍) 원정(原情)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1894.03.] 李洙龍 3顆(9.2×9.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48_001 1894년(고종31) 3월에 남원부에 사는 유학 이수룡이 산송과 관련하여 형조에 올린 원정. 1894년(고종31) 3월에 남원부(南原府)에 사는 유학(幼學) 이수룡(李洙龍)이 김기성(金箕聲), 김상수(金相壽) 등과 벌이고 있는 산송(山訟)의 해결을 위해 억울한 내용을 형조(刑曹)에 올린 원정(原情)이다. 상대측인 두 사람을 이치 없이 소송하는 사람이라며 잡아 형문하고 멀리 유배보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형조에서는 '본 도(道, 전라도)에서 상세히 조사하여 엄히 처단함이 어떻겠느냐'고 26일에 뎨김을 내리고 본 도에 회부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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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김문영(金文榮) 소지(所志) 초(草)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1895] 金文榮 兼城主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55_001 1895년(고종32) 2월에 무장현 장자산면 회룡리에 사는 김문영이 김인칠의 무뢰한 악행을 처벌해 줄 것을 청하기 위해 척재관인 겸성주에게 올리려고 작성한 소지의 초본. 1895년(고종32) 2월에 무장현(茂長縣) 장자산면(莊子山面) 회룡리(會龍里)에 사는 김문영(金文榮)이 김인칠(金仁七)의 무뢰한 악행을 처벌해 줄 것을 청하기 위해 척재관(隻在官)인 겸성주(兼城主)에게 올리려고 작성한 소지의 초본이다. 진량서당촌(陳良書堂村)에 살고 있고 가세도 넉넉한 이 참판댁의 마름인 김인칠이 마을에 저지른 악행을 전하며 그랬던 그가 칼이 씌워져 가두어졌는데 스스로 칼을 벗고 임의로 돌아다니며 법을 꺼리지 않으니 남의 가족 시체를 늑굴(勒掘)한 죄와 문권을 빼앗아 가는 등의 악행을 전하며 그를 법률대로 죄주고 그 때문에 들어간 돈 50냥과 장례비용 등등을 살펴 처분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이 문서는 관에 올려지지 않은 미발(未發)문서로 몇 군데 수정된 글자가 적혀 있어 초안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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茂長 莊子山面 會龍 金文榮右謹言幽明間至寃極痛事 陳良書堂村金仁七 勢本饒富 兼且李參判之舍音 驕假虎威 平日所習殘忍者多而東匪中■■■■■(九水丁接之)接司也 戰服馳馬 放砲起鎗 閭里間所勒殘害 不可盡形 而前狀中 去五月良 民之伯父母兩位合窆塚 率黨昏夜勒掘兩位軆魄 混同散雜 難辨乾坤 其寃之痛 寤寐撤天 而叔父逢彼厄刑 至於絶殞之境 仍病于今 殘喘難强 討索之費 五十兩辦出 農牛直放番耕 末由卽其時鳴寃 則所謂仁七自着官枷嚴囚 而不過一時 渠自解枷 任意出去 此無法無憚之習也 勒掘合窆骸骨混雜引劍占人 朱櫓厄刑 仍病叔父 ■■■■(未判存亡)〔今未蘇完〕 放砲于叔母 驚至落胎之境 夜入內房 搜奪文券 討索酒肉 錢財農牛歸費 至於破産之境 如此之罪狀 東匪之極魁者也 幽明之痛 極於撤天 故前狀 題敎帖連仰訴爲白去乎 前後事狀 細細垂 察敎是後 上項仁七■■■■(照律嚴勘)〔不可依例勘治〕 而其時所費五十兩與葬飛所入 自 法庭推給爲白乎旀■…■(截嚴枷囚 以待叔父病勢觧效之地)〔所犯條條罪狀 照律典嚴明事 處分事〕 千萬伏祝向下行敎是事兼城主 處分 乙未二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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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이유환(李有煥)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2.09 李有煥 等 16名 任實縣監 官[着押] 3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927_001 1837년(헌종3) 2월에 향교 재소 유생 이유환 등 16명이 연명하여 삼계서원의 3선생 추향 건으로 임실현감(任實縣監)에게 올린 상서. 1837년(헌종3) 2월에 향교(鄕校) 재소(齋所) 유생(儒生) 이유환(李有煥) 등 16명이 연명하여 삼계서원(三溪書院)의 3선생 추향(追享) 건으로 임실현감(任實縣監)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이번에 예조와 감영의 허락을 받아 3명을 추가로 배향을 받게 되었으므로 추가 3선생의 제수를 관에서 마련해주고 원생(院生)의 보노(保奴)와 서원이 있는 마을의 견역(蠲役)을 한결같이 학정(鶴亭)의 예에 따라 맞춰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이다. 이에 임실현감은 새로 부임한 초기라 규례에 서툴러 공의(公議)를 널리 물어 처리할 것이니 기다리라고 초9일에 뎨김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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校齋所 儒生 李有煥尹行一等 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 伏以崇賢尙德 朝家之常憲 營邑之厚典 而本邑三溪院卽郭魯齋伴松聽溪三先生腏享之所也 春曺之題巡營之案 已有酌定 自 官供需以奉祀矣 今又追配郭鰲巖申隱谷柳芝谷三贒 鰲巖卽丙子倡義勳臣也 隱谷卽本邑賢侯也 芝谷卽辛壬抗疏之名節也 巋然一堂六賢備位 而先享之三位 已受 官需 後配之三位 供以私需 則非但神道之不安 亦爲士林之齎恨 以躋享之先後 爲祭禮之豐薄 則其於崇奉之節 淂無餘憾哉 今番春享並施一體之需 永爲百世之式 而且其院生保奴之節 及院邸蠲役之式 當依鶴亭新安征南已行之例 特爲定式成案之意 兩度呈 營 有據 他院已行之題 盖共享六賢 崇奉異節 一境四院 儀度異例 則 一視之政 係是厚薄之典 玆敢帖聯 營題 齊籲於 新莅之下 伏乞博采公議 另施助祭之典 似合士林之望 敢此仰籲 無任祈恳之地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丁酉 二月 日 儒生 李有煥 尹行一 李基說 金文淵 崔 淇 韓宗赫 李 汲 吳澤圭崔南斗 李海郁 沈煥國 盧致鎭 金致九 羅彩臣 朴廷武 崔益遠 等官[署押](題辭)新到之初 未餢規例 從當博採公議 姑竢後日 宜當向事初九告晉必振[任實縣監之印] 3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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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부)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父(手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월 24일에 아버지가 과거 시험을 치르러 간 아들에게 안부를 걱정하고, 시험장에서의 당부, 시험이후의 당부 등을 한 서간. 1월 24일에 아버지가 과거 시험을 치르러 간 아들에게 안부를 걱정하고, 시험장에서의 당부, 시험이후의 당부 등을 한 서간이다. 넌 아직도 길가는 도중일 거라며 네가 떠난 후에 바람 부는 추위가 심해지니 건강이 좋지 않아 질까 걱정이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자신은 임금의 특별 용서를 받아 어쩔 줄 모르겠다며 눈물이 턱에 고인다고 했다. 수쇄(收刷)를 지체한 것 때문에 다음달 12일 간에 여기에서 떠나 집으로 돌아갈 계획인데 그때가 도방(到榜)하기 전일 듯 하다며 연방(連榜)하게 된다면 곧장 집으로 오는게 좋겠다고 했다. 김(金)·임(任) 양 군도 잘 가고 있는 것이냐고 묻고 여러 가지 일들을 잘 상의하고 헤아려 처리하기를 당부했다. 솔창(率倡)도 잘 해결하기를 바란다는 것, 양 대감 댁에는 틈나는 대로 가서 뵙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을 묻도록 하라고 했다. 소록(小錄)은 득과(得科)한 뒤에 처리할 일이니 어찌 하라는 당부, 과거 이후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나중에 일일이 가서 보는 것이 좋다는 당부, 6월 세초(歲抄)할 때에는 반드시 임명을 받고, 직첩(職帖)을 환급할 때에는 직접 만나서 받는 것이 어떠하냐는 이야기와 급제 이후의 행동을 어찌해야 할지 당부하였다. 마지막으로 과거 시험장에 들어간 뒤의 여러 가지 일들을 절대 부동(浮動)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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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之行尙在途矣. 離發後風寒日氣, 連甚不佳, 未知能無損節.今日据過, 而亦無憊病否. 懸念不能已已. 父特蒙 宥, 還仰感坐隱, 只 自有淚交頤而已. 以收刷之遲滯, 念於來月十二間, 自此離發,還家計矣. 似於到榜前, 得連榜則直送於家爲好. 金君玄生亦無幰否. 任君亦無擾入來, 同接之道, 能無睰患之端,空坐圖得, 亦已議處否. 凡節須十分商量善處, 毋至後悔爲好.率倡之道, 今無可托, 進退闊畧之際, 必有京外間碍擅瞻聆之事, 而若等緊着要約亦須善處也. 兩台家須圖隙往見, 而 傳敎中所用意, 可知之敎. 恐未揣其所以爲敎, 此意問於兩台爲好. 第旣至特宥感祝, 則幾過三日後, 須其發卽還, 無至企待爲好. 小錄事, 得科後處之也. 科後來見之人遊街時, 一一往見爲好. 六月歲抄時, 必當蒙叙, 第無職帖還給而直叙奉否, 復探知而封因, 以今加書事, 須詳探之書之, 而旣無敍用, 則似以及第書之■.然須細問而書之, 俾無後悔, 爲好爲好. 入場時入場後凡百, 須無至浮動,爲好爲好. 餘非書可旣. 惟在汝之黙會, 不一一. 元卄四日, 父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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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원빈(元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元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3월 16일, 족말 원빈이 족인에게 뛰어난 학문을 세상에 드러내어 우리 가문 및 사문의 영광이 되어주길 바라며 자신에게도 가르침을 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답장 서간. 1925년 3월 16일, 족말(族末) 원빈(元彬)이 족인에게 뛰어난 학문을 세상에 드러내어 우리 가문 및 사문의 영광이 되어주길 바라며 자신에게도 가르침을 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답장 서간이다. 상대가 편지가득 해 준 말에 대해 탁연하시어 감복했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자신이 일찍이 생각해 보았는데, 우리 김씨의 선세는 학문으로 칭하여지고, 행실이 곧고 바랐으며, 행동이 법규와 같았고, 매우 너그러웠고, 남에게 오만하지 않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집안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온 고을에 칭하여져서 사림으로 추대되어 사랑받아 후세대에게 널리 퍼졌는대, 자신의 세대에 이르러 거의 추락하였다며 상대의 고명함이 아니라면 누가 그 선업을 붇들겠느냐고 한탄했다. 자신이 20여년을 사는 동안을 반성하며 상대가 자신을 매일 깨우쳐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부귀와 빈천으로 인해 마음이 오염되고 뜻이 옮겨지지 않을 것이니 우리 가문의 영광과 사문(斯文)의 경광(耿光)은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자신의 바람은 오직 당신의 뛰어난 학문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바랄 뿐이라고 하며 당신께서 자신을 때때로 가르쳐 주어 꽉 막힌 시야를 열어 줄 것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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滿紙辱書, 語意卓然, 不勝感服. 元彬於此亦嘗思之, 吾金先世, 素是學問稱之也, 其行已貞正, 動遵繩墨, 其處沈寬仁, 與物無忤, 友于兄弟, 恩于家衆, 還鄕邦稱之, 士林推先目之, 而愛耳之而悅. 宣有可以藉於後來者, 而至於吾儕幾於墜隕, 是何天意之難諶而氣數之多舛也.嗚呼, 苟非 高明之立志, 必高讀書, 必勤深得古人之意趣者, 其孰能扶墜隕之先業乎. 元彬生於人世者二十有餘年,於道未有一班之窺 高明猶以爲先業之從有託而在於元彬云云, 元彬實非其人, 反以思之, 非感伊惧然, 雖嘆服 高明之遠慮萬千也. 自得之餘, 又勤之于人高, 而夫 高明乎, 苟將此志, 而日乾夕惕慥慥達焉, 則當貴何足以滛其心,貧賤何足以移其志哉. 然則吾門榮光斯文耿光云云, 擅在於 高明而不在於愚也. 豈但吾門榮光斯文耿光而已哉. 愚望 足下之爲表世絶學也. 愚之所望只如此而已. 願 高明以時賜敎以開芧塞若何. 理到之言不敢不服. 餘都閣, 不備謝. 只祝侍經候神護萬重.乙丑三月十六日, 族末 元彬 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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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노문연원록간소(蘆門淵源錄刊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蘆門淵源錄刊所 淵源家 □…□(3.0×3.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18_001 1960년 1월 14일, 노문연원록간소에서 1월 22일에 분질을 거행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광주시의 임시 간소로 와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각 군 연원가에 보낸 통문. 1960년 1월 14일에 노문연원록(蘆門淵源錄) 간소(刊所)에서 1월 22일의 분질(分秩) 거행을 알리며 때맞추어 광주시 임시 간소로 왕림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여러 군(郡)의 연원가(淵源家)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선생의 문하를 기록한 연원록(淵源錄)이 3~4년의 시일을 더 끌고 마침내 간행되어 1월 22일에 책을 나누어 주고 정산(定算)할 것임을 알리며 이 날 광주시(光州市)에 있는 임시 간소로 왕림해 주어 훗날의 갈등이 생기는 폐단이 없도록 해 줄 것을 청한 내용이다. 본문의 뒤에 적힌 4항목에는 편집의 내용 및 책 차례, 무엇을 어떤 조항 아래에 기록했는지에 대한 것 등의 일러두기와 책값이 1질2책으로 백지(白紙)판은 4천환, 노지(魯紙)판은 2천500환이라는 것, 분질 장소는 광주시 계림동 1구 동화당약방(東和堂藥房)의 조규복(曺圭復) 방(方)이라고 적었다. 22일 이후에는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담대헌(澹對軒)으로 와 줄 것을 당부했다. 마지막에는 간소의 임원으로 박흥규(朴興圭), 홍석희(洪錫憙), 여창현(呂昌鉉), 박영봉(朴永鳳), 기노장(奇老章), 변순섭(邊舜燮) 등의 이름을 적었다. 기름먹인 종이에 연활자를 이용하여 인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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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민백붕(閔百朋)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閔百朋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미년 4월 2일, 여흥 민백붕이 자신의 조카를 장가보내며 작성한 혼서. 을미년 4월 2일, 여흥 민백붕(閔百朋)이 자신의 조카를 장가보내며 작성한 혼서이다. 상대의 영애를 자신의 조카에게 내실로 허락해 주시어 감사하고, 선인(先人)의 예에 따라 납폐(納幣)의 의식을 치른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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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서피봉(婚書皮封) 1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金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김 생원에게 보낸 혼서의 피봉. 김(金) 생원에게 보낸 혼서(婚書)의 피봉(皮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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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을사년 이경원(李敬元)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敬元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사년 1월 초2일, 척종복인 이경원이 이웃 읍에 부임했던 척종에게 보낸 새해 안부 서간. 을사년 1월 2일, 척종복인(戚從服人) 이경원(李敬元)이 쓴 안부서간이다. 다섯 마리 말이 그려진 마패를 들고 이웃 읍에 부임하신 후에 지금까지 한 번 만났다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슬프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새해 정월을 맞아 정사를 돌보는 상대가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그 이후의 내용은 서간지의 결락으로 내용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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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을사년 석동(晳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晳東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사년 11월 3일, 소제복인 석동이 관직을 지내고 있는 상대에게 초겨울의 안부를 전하고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을 전한 서간. 을사년 11월 3일, 소제복인(少弟服人) 석동(晳東)이 관직을 지내고 있는 이에게 초겨울의 안부를 묻고 언제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을 전한 서간이다. 지난번 감영이 있는 곳에서 인사한 후 지금까지 그리워하고 있다고 인사한 후 정사를 돌보고 있는 상대의 안부가 초겨울을 맞아 더욱 잘 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어찌해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한탄하며 때때마다 소식을 들을 수 없어 자신의 마음이 수고롭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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