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9132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別時景像, 至今想來不覺▣…咽塞臆而已. 光陰偏忙於有喪之家, 罔極.祥期隔旬, 窃想孝思益復如新罔涯,大父主襄禮, 果可今晦明初間奉行, 而能無難言難處之端耶. 凡當大事者,惟是 節哀加餐而后, 方万無憾於幽明之間. 伏望以此 十分自慰自抑, 而上以慰 堂上, 下以慰眷下, 俾無 患攝傷孝之地, 如何. 千萬望仰. 從弟誠孝淺薄, 一味參哭於前后, 恒事之列, 此何人理, 此何人情. 只自向西捲泣而已. 第堂候姑免大端失攝, 眷內亦復均迪, 是庸私幸萬萬, 而容家艱窘, 當寒漸甚, 公私催促. 朝廟立門, 收敎無路, 自悶自憐而已. 數日間作魚巖行, 回期似在於望念間, 適有去便聊此替申. 而無物仰助於 奠供之需, ▣▣歉狀萬萬. 非寸紙可旣. 姑不備, 伏惟下察.乙巳十月之晦, 從弟 得周 疏上.仲父主氣體連得萬安於▣…白, 未有上白, 此意 仰達如何.昨日作升川行耳.(背面)兄主前 疏上.傳法湖書.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01년 나득주(羅得周)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羅得周 羅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1년(순조 1) 3월 4일에, 재종제 나득주가 나 생원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와촌 이주와 장례시기를 전하고 자기를 사고 싶다는 의견을 전한 서간. 1901년(순조 1) 3월 4일, 재종제(再從弟) 나득주(羅得周)가 나 생원(羅生員)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와촌(瓦村) 이주(移住)와 장례시기를 전하고 자기(磁器)를 사고 싶다는 의견을 전한 서간이다. 근래 자못 소식이 뜸했다며 그리운 마음이 배가 된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봄에 눈이 내리는 괴상한 날씨에 잘 계신지, 아드님은 함께 공부 잘 하고 있는지 등등을 물었다. 재종제(再從弟)인 상을 치르고 있는 자신은 우환이 겹쳐 오랫동안 돌아가신 부모 곁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오늘 저녁에 와촌(瓦村)으로 옮겨 왔다고 했다. 촌사(村舍)를 옮기는 시기는 15일 쯤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산소도 간신히 정했다며 옥과(玉果)의 청단촌(靑丹村)의 안산(案山)으로 4월 9일에 땅을 파고 13일에 안장(安葬)할 예정인데 여러 가지 일들을 상의할 사람이 없어 힘들다고 했다. 지문(誌文)은 우선은 아직 작성 못했는데 관직의 이력을 상세히 몰라서 우선 후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마침 낙수(洛水)로 가는 인편이 있어서 이에 잠시 편지를 쓴다는 인사로 편지를 마쳤다. 추신으로는 자기(磁器)가 매우 급하니 군정(軍丁)에 바치고서 얼마만큼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계축년 양도봉(楊道鳳)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楊道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축년 4월 27일, 제 양도봉이 상대가 편지로 부탁한 약을 보내며 작성한 서간. 계축년 4월 27일, 제(弟) 양도봉(楊道鳳)이 상대가 부탁한 약을 보내며 안부를 묻고 약이 늦어진 이유를 전한 서간이다. 지난번에 당신이 연이어 행차하시어 그 후의에 감사했고, 즉시 돌아가시어 슬펐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가정형편이 궁핍하여 정(情)과 예의에 어긋났을 거라며 양해해 달라며 잘 가셨는지 걱정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문득 상대의 편지를 받고 매우 기쁘다며 형과 가족이 최근 잘 계심을 알아 위로되고 축하드린다고 했다. 자신은 부모님 그럭저럭 강녕하시고 다른 별 탈 없으니 다행이라고 인사했다. 주요 내용은 상대가 편지로 전한 뜻은 잘 알았다며 부탁했던 약은 현재 사(士)가 출타하였기 지연되었으나 이제 겨우 보내드렸으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잘 받아 시험 복용해 보시고 나머지는 차후에 뵙겠다고 인사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병진년 김돈기(金敦基)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敦基 梁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진년 4월 10일, 연안 김돈기가 양 생원에게 상대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위문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병진년 4월 10일, 연안(延安) 김돈기(金敦基)가 양생원(楊生員)에게 아버지 상에 위로를 보낸 위문편지이다. 뜻하지 않게 아버지 상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이제야 듣고 놀랐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효심이 순수하고 지극한 상대가 사모하는 마음과 호곡(號哭)하는 슬픔을 어찌 감당하였는지 묻고 어느덧 철이 지났는데, 애통함과 망극함이 어떠한지 묻고 상대의 기력을 물은 후 부디 소식(疏食)을 하면서 예제(禮制)를 잘 따르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신은 역사(役事)로 인하여 묶여 있는 터에 즉시 위문을 가지 못했다며 슬픔이 심하다고 인사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16년 박채동(朴采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采東 裵玄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2월 29일, 박채동이 배현기에게 족보 수보에 대하여 경하의 말을 전하고 조상에 대한 예식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전한 서간. 1916년 2월 29일, 제(弟) 박채동(朴采東)이 배현기(裵玄基, 1881~1954) 형에게 족보 수보(修譜)에 대하여 경하의 말을 전하고, 조상에 대한 예식에서 잘못되었다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형님 댁의 수보 상황이 3년째 잘 진행되는 것을 축하했다. 그런데 예천(醴泉)의 연원은 이미 달성군(達城君)과 밀직공(密直公), 흥위위공(興威衛公) 3현(賢)에서 시작되는데 설단(設壇)하고 배례(拜禮)할 적에 4배(拜)를 하는 것이 당연한데 2배(拜)를 하는 것은 실례(失禮)라고 생각한다며 홀기(笏記)에 신칙(申飭)되지가 않았고, 절차가 서로 어긋난다며 바로잡을 것을 요청하였다. 마지막으로 상대의 곁에 있을 각 군(郡)의 여러 배씨들은 잘 계신지 묻고 편지를 마쳤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임승재(任承宰)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任承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승재(任承宰)가 누군가에게 그간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을 표하면서 안부를 전하는 내용의 간찰 이번 달 21일에 임승재(任承宰)가 보낸 간찰이다. 근래 상대방의 안부는 어떠한지 묻고 자신이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을 표했다. 마침 인편이 있어서 서신 한 장을 써서 올리지만 높은 안목을 갖춘 상대방이 보면 웃음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며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하였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 직접 뵙고 올리겠다고 하였다. 특별한 내용은 없는 안부편지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41년 시장매매명문(柴場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시장문기 金基哲 金基哲<着名>, 徐五賢 <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1년 10월 13일에 김기철이 발급한 시장매매명문 1841년 10월 13일에 김기철이 발급한 시장매매명문이다. 명문을 작성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옴천면(唵川面) 개산리(盖山里) 집터 뒤 산기슭에 있는 시장(柴場)을 전문 3냥으로 값을 쳐서 위 사람에게 영구히 방매하되, 기슭의 경계는 울타리 밖 초로(藮路)를 따라 장곡(長谷)까지로 하였다. 만약 뒷날 다른 말을 하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는 내용이다. 명문은 주로 매매 등의 거래 내역을 작성하여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발급한 조선시대의 계약서를 말한다. 명문에 기재된 매매 관련 사항은 명문의 작성일, 매수인의 신분과 성명,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 매매 이유, 매매목적물의 표시, 지불수단의 종류 및 액수, 본문기의 교부 여부 등이 있다. 마지막에는 거래에 참여한 매도인, 매매 시 참여한 증인, 명문을 작성한 필집의 성명과 서명 등을 한다. 매매 계약이 성립한 후에는 새롭게 작성한 매매 명문인 신문기(新文記)와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가 적힌 구문기(舊文記)를 매수인에게 함께 양도해야 했다. 구문기로는 주로 분재기와 명문이 사용되었으며, 이들을 본문기(本文記)라고 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36년 박태직(朴泰稷) 산지허급명문(山地許給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奎鎭 朴泰稷 李奎鎭<着名>, 張東煥<着名>, 劉龜基<着名>, 徐五賢<着名>, 金成栗<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6년 2월 20일에 개산동중(盖山洞中) 이규진 등 5명이 박태직에게 발급한 산지허급명문 1836년 2월 20일에 개산동중(盖山洞中) 이규진 등 5명이 박태직에게 발급한 산지허급명문 이다. 명문을 작성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본 고을 주산(主山) 아래에 장사지내는 사안과 관련하여 전문 50냥을 받고 허락하니 뒷날 말꼬리를 잡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는 내용이다. 명문은 주로 매매 등의 거래 내역을 작성하여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발급한 조선시대의 계약서를 가리킨다. 토지나 노비 등 부동산을 거래하는 경우가 많지만 위 문서와 같이 특정한 권리가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명문에 기재된 매매 관련 사항은 명문의 작성일, 매수인의 신분과 성명,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 매매 이유, 매매목적물의 표시, 지불수단의 종류 및 액수, 본문기의 교부 여부 등이 있다. 마지막에는 거래에 참여한 매도인, 매매 시 참여한 증인, 명문을 작성한 필집의 성명과 서명 등을 한다. 매매 계약이 성립한 후에는 새롭게 작성한 매매 명문인 신문기(新文記)와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가 적힌 구문기(舊文記)를 매수인에게 함께 양도해야 했다. 구문기로는 주로 분재기와 명문이 사용되었으며, 이들을 본문기(本文記)라고 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97년 이돈상(李敦相) 명문(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李昌緖 李敦相 行縣監[着押] 咸平縣印 3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06_001 1797년 이창서(李昌緖)가 이돈상(李敦相)에게 자신의 노비 1구(口)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노비 매매명문 1797년 3월에 이창서(李昌緖)가 이돈상(李敦相)에게 작성해준 노비 매매명문이다. 명문의 내용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자신이 상속받은 계집종 오목개(五木介)를 전문(錢文) 20냥을 받고 후소생(後所生)까지 아울러 이돈상에게 영영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이 거래에 이사걸(李師杰)은 증인으로, 이사철(李師哲)은 증보(證保)로, 이유덕(李儒德)은 필집(筆執)으로 참여하고 각각 착명하였다. 노비를 매득한 이돈상은 이 명문을 첨부하여 함평현에 제출하면서 입안(立案)을 신청하였고, 입안 발급 과정에서 함께 작성된 초사(招辭)와 입안이 함께 현전한다. 이 문서의 뒷면에는 함평현에서 작성한 배탈(背頉) 입안이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93년 구교인(具敎仁)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具敎仁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3년(고종 30) 1월에 구교인을 조봉대부 호조좌랑에 제수하면서 발급한 고신 교지 1893년(고종 30) 1월에 구교인을 조봉대부 호조좌랑에 제수한 임명 문서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71년 박용승(朴龍昇) 고(考) 박문서(朴文瑞)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朴文瑞 施命之寶(10.0×10.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18_001 1871년(고종 8) 10월에 박문서에게 가선대부 한성부 좌윤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추증하면서 발급한 추증 교지 1871년(고종 8) 10월에 박문서를 가선대부 한성부 좌윤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으로 추증한 교지이다. 박문서가 경희장(慶熙將) 박용승(朴龍昇)의 부친이므로 법전의 규정에 따라 증직을 제수받은 것이다. 박용승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가 함께 추증되어 모두 추증 교지를 받았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80년 정제현(鄭濟玄)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鄭濟玄 施命之寶(10.0×10.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70_001 1880년(고종17) 9월에 정제현(鄭濟玄)을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 1880년(고종17) 9월에 정제현(鄭濟玄)을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이다. 정제현은 전년도에 절충장군(정3품 당상) 행용양위부호군 첩(帖)을 성급 받았으며 1880년에는 종2품 하(下)의 관계에 해당하는 본 임명을 수여 받았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 문·무관 종2품 하의 관계이며, 동지중추부사는 중추부에 소속된 종2품 관직이다. 동지사로 줄여 부르며 가설(加設)이 없는 경우 총 인원은 7명이다. 중추부는 조선시대 일정한 직무가 없는 당상관(堂上官)들을 우대하기 위해 설치된 관청이다. 고신에 인장을 찍는 법칙은 연호의 한 글자와 숫자를 겹치게 찍는 것인데 본 문서에는 연호 글자에 인장이 찍히지 않았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79년 정제현(鄭濟玄) 소첩(小帖) 고문서-교령류-고신 綾州牧使 鄭濟玄 行牧使<押> 帖字印, 綾州牧使之印 3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70_001 1879년(고종16) 6월에 능주목사가 정제현(鄭濟玄)에게 통정대부 임명장이 발급되었음을 증명해 주기 위해 작성한 소첩 1879년(고종16) 6월에 능주목사(綾州牧使)가 정제현(鄭濟玄)에게 통정대부(通政大夫) 임명장이 발급되었음을 증명해 주기 위해 작성한 소첩(小帖)이다. 본문에 소첩이 성급(成給)되었음을 적고 이 첩을 송호면(松戶面) 통정대부(通政大夫) 정제현(鄭濟玄)에게 준다고 명시하였다. 발급일자 옆에 적는 방서에는 '성급(成給)'이 적혀 있다. 능주목사의 인장 3개가 찍혀 있다. 통정대부는 조선시대 문·무관 정3품 당상(堂上)의 관계이다. 정제현의 임명장을 살펴보면 1879년 1월에 절충장군(무관 정3품 당상) 행용양위부호군에 임명되었다가 이 무렵 같은 문관 품계인 통정대부에 임명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79년 정제현(鄭濟玄)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鄭濟玄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70_001 1879년(고종16) 1월에 정제현(鄭濟玄)을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 1879년(고종16) 1월에 정제현(鄭濟玄)을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이다. 절충장군은 무관 정3품 당상(堂上)의 관계이다. 용양위 부호군은 오위(五衛)의 하나인 용양위에 소속된 종4품의 관직이다. 일자 부분을 종이를 떼어냄으로써 지운 흔적이 있으며, 인장을 찍을 때 연호의 한 글자와 숫자에 답인해야 하는데 어보가 연호에 닿아있지 않아 인장을 찍는 형식에 맞지 않다. 또한 ?승정원일기?에 임명기록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69년 김정필(金廷弼) 소첩(小帖) 고문서-교령류-고신 綾州牧使 金廷弼 □…□ 3顆(7.0×7.0)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56_001 1869년 능주 목사가 김정필에게 오위장의 공명첩을 수여하면서 함께 발급한 소첩 1869년 능주 목사가 회덕면의 유학 김정필에게 오위장의 공명첩을 수여하면서 함께 발급한 소첩이다. 이 소첩은 같은 해 김정필이 경복궁 오위장(景福宮五衛將)의 관직을 받는 공명첩과 함께 발급된 문서로, 공명첩 발급과 관련하여 증명 및 영수(領收)의 용도로 사용된 문서이다. 소첩은 일반적인 관작 임명의 경우와 달리 공명첩을 발급할 때 이와 관련하여 발급된 문서로, '소첩성급(小帖成給)'이라고 기재된 소첩과 공명첩을 전수한다는 의미의 '전수사(傳授事)'라고 기재된 전수첩(傳授帖) 두 가지가 있다. 공명첩은 임란 이후 제도화되어 시행되기 시작하였으며, 군공을 세운 사람 또는 납속(納粟)을 한 사람들에게 그 대가로 주어졌지만, 그 뒤 국가의 재정이나 군량이 부족할 때, 또는 진휼(賑恤)을 위해 시행되어 공명첩 발급한 상례화 되었다. 본래 전쟁 중에 권한을 위임받은 자가 현장에서 수여하도록 하기 위해 처음부터 받을 사람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고 발급하였기 때문에 공명첩 혹은 공명고신이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79년 정제현(鄭濟玄) 고신(告身) 2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鄭濟玄 施命之寶(10.0×10.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고종 16) 1월에 정제현을 통정대부에 제수하면서 발급한 고신 교지 1879년(고종 16) 1월에 정제현(鄭濟玄)을 통정대부로 제수하면서 발급한 고신 교지이다. 실직을 준 것이 아니라 통정대부라는 정3품의 품계를 준 것이며, 91세라는 나이를 이유로 자급(資級)을 올린 것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71년 박용승(朴龍昇) 비(妣) 이씨(李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朴文瑞 妻 李氏 施命之寶(10.0×10.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18_001 1871년(고종 8) 10월에 박용승의 어머니 이씨를 정부인으로 추증하면서 발급한 추증 교지 1871년(고종 8) 10월에 박용승(朴龍昇)의 어머니 유인(孺人) 이씨(李氏)를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한 교지이다. 경희장(慶熙將) 박용승(朴龍昇)의 모친이므로 법전의 규정에 따라 추증된 것이다. 박용승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가 함께 추증되어 모두 추증 교지를 받았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71년 박용승(朴龍昇) 조고(祖考) 박성휘(朴聖輝)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朴聖輝 施命之寶(10.0×10.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18_001 1871년(고종 8) 10월에 박성휘에게 통정대부 공조참의를 추증하면서 발급한 추증 교지 1871년(고종 8) 10월에 박성휘(朴聖輝)를 통정대부 공조참의직에 추증한 교지이다. 박성휘가 경희장(慶熙將) 박용승(朴龍昇)의 조부이므로 법전의 규정에 따라 증직을 제수한 것이다. 박용승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가 함께 추증되어 모두 추증 교지를 받았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71년 박용승(朴龍昇) 조비(祖妣) 김씨(金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朴聖輝 妻 金氏 施命之寶(10.0×10.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18_001 1871년(고종 8) 10월에 박용승의 조모 김씨를 숙부인으로 추증하면서 발급한 추증 교지 1871년(고종 8) 10월에 박용승(朴龍昇)의 조모 유인(孺人) 김씨(金氏)를 숙부인(淑夫人)으로 추증한 교지이다. 경희장(慶熙將) 박용승(朴龍昇)의 조모로서 법전의 규정에 따라 추증된 것이다. 박용승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가 함께 추증되어 모두 추증 교지를 받았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71년 박용승(朴龍昇) 증조고(曾祖考) 박만익(朴萬益)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朴萬益 施命之寶(10.0×10.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18_001 1871년(고종 8) 10월에 박만익을 통훈대부 군자감정으로 추증하면서 발급한 추증 교지 1871년(고종 8) 10월에 박만익(朴萬益)을 통훈대부 군자감정에 추증한 교지이다. 박만익이 경희장(慶熙將) 박용승(朴龍昇)의 증조부이므로 법전의 규정에 따라 증직을 제수한 것이다. 박용승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가 함께 추증되어 모두 추증 교지를 받았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