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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7년 전복재(田福載) 초사(招辭) 고문서-증빙류-초사 田福載 官[着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05_001 1757년 전복재(田福載)가 이명룡(李命龍)에게 노비를 방매한 사실이 확실함을 증빙하는 내용의 초사 1757년 전복재(田福載)가 함평현에 제출한 초사(招辭)이다. 이 초사는 전복재로부터 노비를 매득한 이명룡이 함평현에 사급입안(斜給立案)을 신청함으로써 입안을 발급하기 위한 진행과정에서 작성된 문서이다. 아우의 상채(喪債)로 인해 생활이 곤란해진 자신은 본인 소유의 노비6구(口)를 암소 한 마리와 전문(錢文) 16냥을 받고 이명룡에게 방매한 것이 확실하다는 내용이다. 이때 증인과 필집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초사와 이명룡의 사급입안이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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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1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均色 鄭<押> 2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계유년 2월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계유년 2월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총 4건의 자문이 점련되어 있는 형태인데, 첫 번째 자문은 앞부분이 상당수 결락된 상태로 자문 발급을 담당한 색리[均色]의 착압(着押)만이 확인된다. 나머지 3건의 자문은 차례로 2월 7일·2월 6일·2월 13일에 작성된 것이다. 세 건의 자문은 모두 해남현 청계면(淸溪面) 대운동(大云洞, 大雲洞)에 사는 대봉(大奉)에게 발급한 것이다. 각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과 실무자인 색리가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馬浦面)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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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이기춘(李基春)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基春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6.5x6.5),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30년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유학(幼學) 이기춘(李基春, 5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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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이기춘(李基春)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基春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7.0x7.0),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34년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유학(幼學) 이기춘(李基春, 58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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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1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都監<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을유년 2월 1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을유년 2월 1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병술년조 세미 2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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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나수성(羅綏成)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綏成 □…□(7.0×7.0),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002_001 1855년 나수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 1855년 나수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동복현 내서면 제5보암리에 거주하는 나수성이 36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처(妻) 임씨(林氏)의 사조, 아우 채신(埰臣)과 만성(萬成) 그리고 도망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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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 김조이(金召史)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金召史 綾州牧使之印(7.0x7.4), 周挾字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70_001 1777년 능주목에서 북면 화남리에 거주하는 김소사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김소사에게 발급한 준호구 1777년 능주목에서 북면 화남리에 거주하는 김소사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김소사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이 준호구는 김소사 68세 때의 것으로, 김소사의 사조(四祖)와 딸 한 명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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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이필문(李弼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李弼文 綾州牧使之印(7.0x7.5), 周挾字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6년 이필문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고 확인을 받아 돌려받은 준호구 1816년 이필문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고 관의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호구 문서이다. 능주목 북면 화남리에 거주하는 한량(閑良) 이필문이 28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처(妻) 박씨의 사조, 그리고 자녀와 소유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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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 나수성(羅綏成)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綏成 □…□(7.0×7.0),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002_001 1852년 나수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 1852년 나수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동복현 내서면 제5보암리에 거주하는 나수성이 33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처(妻) 임씨(林氏)의 사조, 그리고 아우 채신(埰臣)과 소유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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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鄕多士幼學朴相堯文永伯李應奎等 齋沐上于城主閤下 伏以 董夫子卓異之行 刺史不薦 則 天子不聞 名聲東海 孝婦特絶之烈 于公不報 則太守難知其像 且夫旋淑褒善 朝家之晠典也 闡幽拔滯 卽閤下之仁政也 本州士人裵以仁 卽太師密直公廷芝之后 而孝行參奉允德之五世孫也 而忠與孝烈連綿之家也 其慈親光山金氏 卽壬辰忠臣忠壯公之后 以庚申生 享年一百五歲 言語精神少無昏耗 抑亦孝養之致乎 其子裵以仁 今年九十一歲 色養其親 則此豈非古今罕有之事乎 在去壬午仲冬 其母不幸患瘧 常願山蔘 卽爲我病之良劑云爾 故與其弟以潑 不顧祈寒 踏霜履雪 得採卒難 仰天歎曰 余若有誠 天豈無感 號泣昊天 含淚歸路 幸得蔘枝一莖 忙采歸家 煮用一次 則厥疾卽瘳矣 又在庚子春 癘疫方熾 渾家沒痛之中 其弟以潑之妻文氏 亦以孝養其姑親極滋味眞元不奪癘染 不敢獨犯 一日忽有山鶉 飛入廚中灰 而供饌 此亦豈非感天之誠乎 一門之內 幷出孝子與孝婦 則孰不敢欽歎哉 民等居在一鄕 已所稔服 故齊聲仰籲於孝莅之下 細細垂察焉 轉報 天陛 俾蒙褒揚之典爲白只爲城主閤下 藻鑑甲辰十二月 日朴相堯 文永伯 洪壽巖 梁伯永 高大殷 朴道漢 梁樂三 金德敏 安命禧 具光烈 洪吉文 李文國 宋漢黙 曺允珏 尹得衡 梁相集 文載樹 閔致珏 鄭吉相 金遇喆 閔奎邦 朴海鵬 梁周求 南鎬 李萬亨 鄭錫喆 高鎭台 金昌基 金漢益 奇夏三 李應奎等一門之內 孝子孝婦 尤極嘉尙 轉報有時 退俟公議宜當事初九日[使] [署押][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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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谷面 幼學梁啓黙朴海鵬尹一龍等 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 伏以 一家一孝 猶爲曠世之聞 而況雙孝之並出於一家 獨於本面裵氏家而見之矣 蓋雙孝云者 士人裵以仁及其弟嫂南平文氏也 裵以仁前太師武烈公諱玄慶密直公諱廷芝及開國勳諱克廉之後 而孝行參奉允德之五世孫 且以烈行旌閭金氏 卽其高祖母 而其弟嫂文氏 卽江城君三憂堂之後也 以仁與其嫂文氏 躬執採汲以養其親凡所以養志便體之物 無不畢至 而其出山蔘之採得 飛鶉之入竈 尤極卓異之事 氷魚雪筍 豈獨專美於古哉 如此卓截之行 而人及鄕儒之仰報雖多 而尙未蒙 褒揚之典 故不勝抑鬱慨惜 玆敢齊聲仰籲 伏望孝理之下 另加採覽 特爲薦報 俾此一家雙孝無至湮沒之地 千萬顒祝之至 伏惟藻鑑庚申十二月 日 [約稧防僞]化民 梁殷黙 朴海鵬 李祥燁 文應休 閔仁鎬 梁相道 洪允鎭 梁相洵 朴海漸 李直燁 洪日巖 鄭鍾鎭 閔璧鎬 尹滋益 梁珽煥 尹一龍等一門雙孝 終古罕有 以若卓異之行 必有褒揚之日向事卅日[使] [署押][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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綾州幼學朴道漢尹再衡金遇喆等 謹齋沐上書于巡相公閤下 伏以 孝爲百行之源 而萬代之所不泯 故天必感之 而有氷魚雪筍之驗 國必褒之 而有旌閭贈職之典 矧乎 一家雙孝 嫂叔並出 俱養其親者乎 一門雙孝 卽本州士人裵以仁及其弟嫂氏是也 裵以仁卽前太師武烈公諱玄慶密直公諱廷芝及開 國元勳貞節公諱克廉之後 而孝行參奉允德之五世孫也 且以烈行旌閭金氏 卽其高祖母則其家孝烈 亦其箕裘也 以仁家甚貧寒 與其弟嫂文氏 俱養其親 躬自傭賃負米 以供甘旨 倘所謂體尙無全衣 而親極滋味者也 其父享年八十有四而逝 其母享年一百有五而逝 鄕隣咸稱以其子其婦之至孝 而以致其親之壽考也云耳 一日則其母病谻 醫云可用山蔘 而山蔘難得云 故以仁與其弟以潑 求採山蔘 遍行深山 數日竟無得處號泣 歸路暫憩林下 忽見老蔘 伏于巖阿 採歸煮服 因致其積病之皆瘳 而又得其肌膚之豊厚 此實天感之致 而宜與氷魚雪筍匹美也 其弟嫂文氏 係出南平 卽江城君三憂堂之後 性本慈孝 躬執採汲 以養舅姑 便身宜齒之物 極力求之 必以供之 是故 其姑年至百有五 而尙無恙焉 一日則其姑病深口焦 百味皆失 食飮頓廢之際 忽有野鶉飛入竈下 文氏因煮而供之 以啓病中粥餌之念 亦豈非天感之致 而寔與崔山南家乳姑之婦齊孝者也 玆故文氏之誠孝 皆出於隣里之觀感 而便成兒童之歌謠云耳 生等居在同鄕 瞻聆所及 不勝欽獎 故玆敢齊聲 仰籲於巡宣孝理之下 伏願 勿以人廢言 而另 加採賢 俾得 登聞 使此一門雙孝無至湮沒 千萬顒祝之地 伏惟藻鑑庚戌九月 日幼學 朴道漢 梁伯永 洪吉文 文思稷 閔喆邦 李志徽 鄭志煥 梁樂必 宋桓黙 李文國 朴海鵬 高鎭泰 安橚 李龍炡 梁相遇 具相稷 南鎬 閔珏顯 李時必 奇夏三 洪湸禹 朴相堯 李膺奎 尹再衡 金遇喆等聞極嘉尙 而狀聞體重 不可遽命事初四日[巡使]封印 [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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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谷面大谷里 化民具相鳳金始五洪彦宗等 謹沐浴齋戒上書于城主閤下 伏以 孰無父母 而不孝於父母哉 挽古罕有 孝於父母 誠得天感之天性 人道之大綱矣 表賞旌美 國家之常典 而施及野氓之淸化也 而特使褒▣▣之至孝 而未蒙於表揚之典 則非但士林公議之嗟惜 而實爲 昭代之欠事也 竊唯本里士人裵以仁 卽太師武烈公太師密直公開國元勳貞節公之後孝行參奉諱允德之五世孫也 其慈親光山金氏 卽壬辰功臣忠壯公之後 而以庚申生享年于今一百四歲 而其言語精神少無昏耗 永保賦命 尙且無恙 在昔稀聞 至今罕見 此豈非古今稀罕之老乎 其子裵以仁 年期九十 而家雖貧窶 與其弟裵以發裵以赫裵以斗竭誠奉養 自少至老 晨昏定省之禮 小不懈怠而朝夕甘旨之供 期於適口 心志之養 容色之婉 極盡其道矣 欲爲其親喜悅 至於無方 則誠出於王延之色 養孝益於老子之弄雛 驚乎惜哉 金氏之享年一百四歲 天聊人聊 孝感於天 天感於誠 然則其親壽考無量 全由於其子孝養之致也 此豈有古今罕聞之孝乎 民等 居在同隣 聞已久矣 見已知之 不勝欽歎 而每欲陳達于 天門者也 伏願 閤下極垂孝莅之致 特以四人孝誠友愛之由 轉聞于 天閽 幸蒙褒賞之典 則其所以樹風 而禆此民彝者 豈泯滅也哉更伏願 閤下留神垂察焉藻鑑癸卯十一月 日化民 具相鳳 金始五 朴彩鉉 金斗溢 洪致岩 尹一龍 朴章赫 吳再迪 邢啓達 金遇喆 朴英樹 洪碩岩 金基安 朴海達 金得鉉 吳漢益 李萬亨 鄭龜相 梁八永 尹匡衡 朴文孝 具正源 文士一 李泰亨 洪彦宗等聞甚嘉尙事卄五日[使] [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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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년 홍수암(洪壽巖)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洪壽巖 綾州牧使 使<押> □…□ 3顆(6.0×6.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19년(기해년) 11월에 서일면에 사는 백성들이 100세가 된 배이인의 모친에게 규정에 따라 포상을 내려달라고 능주목사에게 요청한 상서. 1719년(기해년) 11월에 西一面에 사는 洪壽巖, 梁伯永, 文永伯 등 20名이 綾州牧使에게 올린 上書이다.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裵以仁의 모친에게 포상하는 은전을 내려달라고 하고 있다. "尊年을 褒賞하는 규정은 國典에 분명하게 실려있습니다. 올해 본 面의 大谷里에 사는 裵以仁의 모친인 金氏는 높은 벼슬을 지낸 世族인데, 금년에 이르러 100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褒賞의 은전이 없는데, 이는 그 자손이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희는 같은 面에 있으면서 아무말 없이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금년에 마침 식년이 된 해로 轉聞할 시기입니다. 이제 감히 소리모아 우러러 아룁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능주목사는 16일에 禮吏에게 지시하는 처결을 내리기를, "규례를 살펴 거행하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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綾州幼學朴道漢尹再衡金遇喆等 謹齋沐上書于巡相公閤下 伏以 孝爲百行之源 而萬代之所不泯 故天必感之 而有氷魚雪筍之驗 國必褒之 而有旌閭贈職之典 矧乎 一家雙孝 嫂叔並出 俱養其親者乎一門雙孝 卽本州士人裵以仁及其弟嫂氏是也 裵以仁卽前太師武烈公諱玄慶密直公諱廷芝及開 國元勳貞節公諱克廉之後 而孝行參奉允德之五世孫也 且以烈行旌閭金氏 卽其高祖母則其家孝烈 亦其箕裘也 以仁家甚貧寒 與其弟嫂文氏 俱養其親 躬自傭賃負米 以供甘旨 倘所謂體尙無全衣 而親極滋味者也 其父享年八十有四而逝 其母享年一百有五而逝 鄕隣咸稱以其子其婦之至孝 而以致其親之壽考也云耳 一日則其▣(母)病谻 醫云可用山蔘 而山蔘難得云 故以仁與其弟以潑 求採山蔘 遍行深山 數日竟無得處 號泣 歸路暫憩林下 忽見老蔘伏于岩阿 採歸煮服 因致其積病之皆瘳 而又得其肌膚之豊厚 此實天感之致 而宜與氷魚雪筍匹美也 其弟嫂文氏 係出南平 卽江城君三憂堂之後 性本慈孝 躬執採汲 以養舅姑 便身宜齒之物 極力求之 必以供之 是故 其姑年至百有五 而尙無{忄+恙}焉一日則其姑病深口焦 百味皆失 食飮頓廢之際 忽有野鶉 飛入竈下 文氏因煮而供之 以啓病中粥餌之念 亦豈非天感之致 而寔與崔山南家乳姑之婦齊孝者也 玆故文氏之誠孝皆出於隣里之觀感 而便成兒童之歌謠云耳 生等居在同鄕 瞻聆所及 不勝欽獎 前年冬 槪擧耳熟目擊者 而仰稟於本州 城主之下 則題內旣得萬萬嘉尙 而文?晩到 轉報過時 是可咄歎 其有極乎 玆敢齊聲 仰籲於巡宣孝理之下 伏願 勿以人廢言 而另 加採賢 俾得 登聞 使此一門雙孝無至湮沒 千萬顒祝之地 伏惟藻鑑▣午九月 日幼學 梁伯永 洪吉文 尹再衡 文思稷 閔喆邦 李志徽 鄭趾煥 梁樂三 宋桓黙 李文國 朴海鵬 金德敏 閔珏顯 安命禧 南鎬 文永伯 李應奎 梁相楫 具光烈 鄭德煥 李龍正 金德權 安橚 高鎭泰 李時必 奇夏三 梁柱永 朴相堯 金遇喆 文琪休 朴道漢一門兩孝 聞甚嘉尙是矣仰 啓已過事初四日[兼使] [署押][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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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앞면오라바님젼 답샹셔초하 일긔 □……□1)1) 원본이 접혀 있기도 하고, 종이 결락으로 판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모오셔 긔운 엇더ᄒᆞ오신 문 안 아ᄋᆞᆸ고져 ᄒᆞ오며 남밧 회심 오와ᄂᆞᆯ하셔 밧ᄌᆞ와 보ᄋᆞᆸ고 보ᄋᆞᆸ 두로 탐〃 반갑ᄉᆞᆸ모오셔 긔운 ᄒᆞᆫ가지오시니 더옥 든〃 못 내〃 안오시나 어마님 환후도 모양 일양이오시고좃금도 낫ᄌᆞ오실 일 업ᄉᆞᆸᄂᆞᆫ 일 외오셔 듀야급〃 헛겁ᄉᆞᆸ나노라 가셔 보ᄋᆞᆸ고져도 보온만ᄉᆞᆷ이어나 알외오니잇가 운조ᄒᆞᆫ 산난 업ᄉᆞ오니 셔운 도든 어여 스이 보릴나게ᄉᆞ오나 안긔 디내오실고 손격기ᄒᆞ고ᄌᆞᆨᄒᆞᆫ 근심ᄒᆞ오시랴 염여 브리ᄋᆞᆸ디 못ᄒᆞ오며 뎨ᄂᆞᆫ 잘 사니 녹은 듯 ᄎᆞ말 못 견ᄃᆡ오며 응이도 난로 ᄌᆞ라고 비록 전먹이도 족ᄒᆞ오나 든〃 그득히 디내ᄋᆞᆸ다가 블으예 훌쳐 간디 난로 치운ᄉᆞ록 허억 역〃이 축〃읏고 드러 오ᄂᆞᆫ ᄃᆞᆺ 엄〃 그립고 ᄉᆞᆯ들ᄒᆞᆫ 가난이 졍은 막기 죽여주리다가 강잉 더옥 억연〃 닛ᄌᆞᆸ디 못 모ᄅᆞ며 그리 가셔 공부나 착실ᄒᆞᄋᆞᆸ 여긔 아희들도 ᄌᆞ연 젼의도 못가고 공부 느ᄃᆞ이실적 만바히오 못ᄒᆞ오니 답〃ᄉᆞᆸ고쟝일의 졈심도 못 먹이고 허드리오니 굼〃ᄉᆞᆸ기□……□2)2) 원본이 접혀 있기도 하고, 종이 결락이 심하여 판독하기 어렵다.왓기 드ᄅᆞ니 제 어린거ᄉᆞᆯ 역집의 굿기다 ᄒᆞ오니 앗갑고 참혹〃〃□……□조모 이시면 좀 설워하랴 시버□……□편지 뒷면〃ᄒᆞᄋᆞᆸ 온양 논 말ᄉᆞᆷ은 그이ᄒᆞᆫ 미친 사ᄅᆞᆷ이 가셔 보고 사쟈 ᄒᆞ기 보내엿ᄉᆞᆸ더니 아니 갓ᄉᆞ오니 다ᄅᆞᆫ ᄃᆡ ᄎᆞ디 만나ᄒᆞ오신 거ᄉᆞᆯ 갑시나 정ᄒᆞ면 연유ᄒᆞ고 ᄑᆞᆯ가 엇디 죠급아모 져아도 가셔 사란노라 ᄒᆞ시더라쳥ᄌᆔ 손셔 그리 ᄒᆞᄋᆞᆸ기 뎨ᄂᆞᆫ 그리 아ᄋᆞᆸᄂᆞ이다 ᄒᆡ삼 작젼 ᄒᆞᆫ 돈은 벼가 쥭엇기 그러타 ᄒᆞ오니 문인가 업ᄉᆞᆸ기 못 밧게ᄉᆞ오니 져연 연낭 어더 보내겟다 ᄒᆞ고는 사신집에 오게 ᄒᆞᆫ 번 갓 엇디 ᄒᆞ오니잇가 그리 얼심 그음이나 ᄂᆡ연으나시미게 쥭ᄉᆞᆸ 온양 논문셔가 아니 왓ᄉᆞ오니 게 잇ᄉᆞᆸ거든 잘 아라 드문 여긔도아니 보내여ᄉᆞ오시니 그ᄋᆡᄒᆞᄋᆞᆸ ᄇᆡᄌᆞ밧 원문셔ᄂᆞᆫ 아니 왓다 ᄒᆞ오시니 그이 ᄒᆞᄋᆞᆸ고 몰나 답〃ᄒᆞ오니 게 잇ᄂᆞᆫ가 ᄌᆞ시 고ᄇᆡᆨᄒᆞ오신가 ᄒᆞᄋᆞᆸ나이다 총〃 이만 업ᄉᆞ오니 내〃 ᄒᆞ여 그온 형언〃〃 ᄒᆞ오나ᄇᆞᄅᆞᄋᆞᆸᄂ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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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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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06년 정의림(鄭義林)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義林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128_001 1906년 9월 8일, 정의림이 혼일을 술가의 설명에 따르지 말고 가까운 날을 택하여 치를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사돈 될 측에 전한 답장 편지. 1906년 9월 8일, 정의림(鄭義林) 생(生)이 자손의 혼례 택일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으로 사돈될 집에 보낸 답장 편지이다. 인사말을 전한 후 예부터 길사(吉事)는 가까운 날로 정하고, 흉사(凶事)는 먼 날로 정하라고 했다면서 어찌 3~4개월을 기다리도록 하느냐며 그간 혹시 다른 곳이 정해졌는지 물었다. 구애하고 꺼리는 것을 일일이 한다면 쓸 수 있는 날이 없을 것이라며 구기(拘忌)는 본래 다 믿을 것이 못되고 술가(術家)의 설명이라며 가까운 날을 택하는 것이 성경(聖經)에 나오는 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 쪽에서 하루를 택하여 올려 보니 이날에 설행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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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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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능주향교(綾州鄕校)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綾州鄕校 裵學澈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능주향교(綾州鄕校)에서 배학철(裵學澈)에게 향교의 전교(典校)를 비롯한 4인의 인적사항을 적어 보낸 간찰 능주향교(綾州鄕校)에서 배학철(裵學澈)에게 보낸 간찰이다. 내용은 향교의 전교(典校)인 이병근(李炳根) 외 4인의 자(字)와 호(號), 생년간지, 본관, 그리고 누구의 후손이며 현재 거주하는 마을을 적은 명단이다. 피봉에 적힌 배학철의 주소는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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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정해년 김윤규(金潤奎)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金潤奎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해년에 신랑측 김윤규(金潤奎)가 신부측에 사주단자를 보내면서 속히 혼례를 치르자는 내용의 혼서 정해년 1월 15일에 신랑측인 김윤규(金潤奎)가 신부측에 보낸 혼서이다. 상대방이 혼인을 허락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 사주단자를 보내니 속히 혼례를 치르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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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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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大谷譜廳 僉座下 仁鑑落落東西 生而長老 書面莫憑 何幸先靈陰佑 修宗譜族之論 刱自湖中 數年之內 再造席末 參聽緖餘 樂叙天倫 韋氏花樹之會 未能專美於古 而歷數一旬餘 聯枕共案則耿耿心魂 時常飛越于三仁峰下竹裡館而止 儘覺人之秉彝 固如是也 伏請東風尙厲僉體候豈弟〖愷悌〗神休 考勘之勞 編次之役 窺想惱神 伏切遠念不已 族下初五還巢 擧家厪免是幸 而車行餘憊 如登船下陸 幾日瞑眩 此果衰頹而然耶 良憐良憐 歐蘇手柬 此是栢峰族祖所托也 活順方文 此是錦圃族祖所囑 故並仰呈 而晦山韻悤 卒姑未和 第竢後梯 三賢享祀壇記 亦是僉宗氏臨發面誡者 故忘拙搆呈似不可堪用 然如或用之 則勿拘作者之嫌 隨其未妥處筆削 不爲貽笑於有眼之人 一則爲先之道一則愛族之誼 諒處之如何 名錢今爲通奇於各處 從速畢捧納廳計耳 分秩事從當書仰爲料 而世華宗直入大邱 以未書於譜所爲言耳餘讓后禠 不備候禮丙之仲春初八日 族下錫夏拜手三賢享祀壇記人之追慕其先者 雖百世之遠 或家尸廟祝墓奠閭表 以寓無窮之誠孝焉 曰惟太師武烈公諱○有大勳 勞於麗朝 配食於麻田崇義殿 平山太師祠 密直上護軍府君諱○ 奠禮于開城府桃李村墓所 繼又綿城之淸川祠 尊奉太師公密直公判書公諱○ 而配享甑巖先生諱○錦城之草洞祠 崇奉太師公密直公 而配享淸靖先生諱○ 此是千古國朝私家之盛典 惟我達城君諱○ 粤自中國有海東君子之徽號 巍勳盛烈 豊功茂蹟 與日月幷明 而家廟墓閭尙闕尸祝奠表■(者) 豈非不億麗之慨然齎恨者乎今於達城派竹樹合譜時 峻發享祀之論 而達城釆地 今非我家之所有 大谷一區 自是冑宗世居之地 則祖先之精靈 曷不感應於苗裔之誠敬耶 筮擇吉辰 築壇于飛鳳山三仁峯下 銘之曰 三賢享祀壇 達城君爲主辟 密直公 興威衛公諱○ 爲配享 春之上巳 駿奔將事 陟降之靈 洋洋如在 此是八域雲仍未遑之莫大盛擧 寧不休哉 噫澗溪之毛 汙潢之水 不足以伸孱孫之誠孝 而焄蒿之愴 松杉之慕 永世無替 則曾氏所訓愼終追遠 民德歸厚者 惟吾達城氏惓惓而服膺者也今此麗牲之日 僉宗氏囑余記一言 不揆辭拙 畧具事實 共寓追遠之誠云爾柔兆敦牂仲春上澣 達城君后孫錫夏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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