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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 사주단자(四柱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랑측에서 신부측에 보낸 기묘생 신랑의 사주단자 신랑측에서 신부측에 보낸 사주단자이다. 신랑의 생년월일시는 기묘년 윤3월 27일 자시이다. 사주(四柱)는 사성(四星)·주단(柱單)·단자(單子)라고도 한다. 양가에서 중매인을 통하여 의사를 교환한 뒤 혼인하기로 결정하면, 처음 보내는 서신이 사주이다. 사주에는 신랑의 생년월일을 간지(干支)로 적고, 그것을 다섯 번 접어 봉투에 넣는다. 봉투의 전면에는 '사주' 또는 '사성'이라 쓰고, 후면에는 '근봉(謹封)'이라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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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四星己卯閏三月二十七日子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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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涓吉納幣壬申正月二十六日奠鴈同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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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 연길단자(涓吉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부 집에서 신랑 집에 대례와 전안, 납폐를 행할 일자를 택일하여 보낸 연길단자 신부 집에서 신랑 집에 혼례 날짜를 택일하여 보낸 연길이다. 대례는 3월 24일 갑인일 신시초(申時初) 곤시(坤時)이고 전안(奠鴈)과 납폐(納幣)는 대례날과 같은 날 같은 시간으로 정하였다. 곤시는 오후 2시 30분부터 3시 30분 사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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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涓吉涓吉大禮三月二十四日甲寅申時初坤時奠鴈納幣 同日申時初坤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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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누나 언간(諺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193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630_001 1933년 2월 19일과 29일에 누나가 객지에 있는 남동생에게 쓴 한글 편지 두 건 편지지 두 묶음과 편지봉투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지 두 묶음의 발신일은 열흘 정도 차이가 나지만, 하나의 편지봉투에 넣어서 발송한 것으로 보인다. 모두 〈1933년 누나 언간(諺簡) 1〉과 비슷한 시기에 작성한 것으로 발신자 및 수신자가 동일하다. 1933년 양력 2월 19일에 누나[누]가 객지에 있는 남동생[아ᄋᆞ]에게 한글로 쓴 편지이다. 편지지 세 장이 한 묶음이고, 뒷면도 빼곡하게 기록하였다. 편지지와 함께 전하는 봉투 기록에 따르면, 발신자는 남원군(南原郡) 주생면(周生面) 상동리(上洞里)에 사는 윤용호(尹龍鎬)이고, 수신자는 임실군(任實郡)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峰里)에 사는 이근우(李根雨)이다. 따라서 봉투의 발신자 윤용호는 누나와 함께 살고 있는 세대주를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편지는 '아우님 보시오[ᄋᆞ오님 보시ᄋᆞᆸ]'로 시작하여 아우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는데, '우리 남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수신자는 남동생으로 추정된다. 어머니의 안부를 염려하였고, 어머니 슬하에서 상봉하기 어려운 상황을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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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남원향교(南原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南原鄕校 王之田約所 1顆(墨印, 7.0×4.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609_001 1897년 2월에 남원향교 교임 노경수·최병량 등 6인이 왕지전 향소에 이동우의 인효를 관에 보고하여 포상받게 해 줄 것을 촉구한 통문 1897년(광무 1) 2월에 남원향교(南原鄕校) 교임(校任) 노경수(盧景壽)·최병량(崔炳亮) 등 6인이 왕지전 향소(王之田約所)에 이동우(李棟宇)의 인효(仁孝)를 관에 보고하여 포상받게 해 줄 것을 촉구한 통문이다. 왕지전에 살고 있는 선비 이동우는 효령대군 보(補)의 15대손이자 호은공(壺隱公) 수(洙)의 11대손으로, 남쪽 지방에 떨어져 영달하기를 바라지 않고 힘써 농사짓고 살았으니 이는 선조가 그에게 편안함을 남겨 준 것이다. 이동우는 태어난 지 3일만에 부친상을 당하여 죽을 때까지 애통해 하였다. 그의 홀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아침저녁으로 하늘에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손가락을 잘라 쏟은 피를 모친 입에 넣어 회생시켰다. 모친상에는 달을 넘겨 집 가까운 5리 즈음에 안장(安葬)하고, 날씨에 상관하지 않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성묘하여 곡하며 집안 일을 함께 간섭(看攝)하면서도 상복을 벗지 않았으며, 거적자리를 깔고 흙덩어리를 베고 자는 데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는 부모를 언급할 때마다 먼저 눈물을 줄줄 흘렸으니, 인효가 아니라면 이처럼 능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남원향교에서는 침묵할 수 없어 왕지전 향소에 이 통문을 보내 이동우의 인효에 대해 관에 전보(轉報)하여 포양(褒揚)하게 할 것을 촉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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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금구향교(金溝鄕校) 통문(通文) 1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金溝鄕校 羅州鄕校 金溝鄕校(4.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94_001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 전교 임종호·장의 경인근 등 유림 14인이 나주향교에 금구군에 사는 배병주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을 함께 찬양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金溝鄕校) 전교(典校) 임종호(林鍾鎬)·장의(掌議) 경인근(景寅根) 등 유림 14인이 나주향교(羅州鄕校)에 금구군(金溝郡)에 사는 배병주(裵秉周)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兆陽林氏)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實行)을 함께 찬양(賛揚)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이다. 옛날 성대한 시절에는 교화가 크게 행해지고, 윤리와 기강이 갖추어져 신하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부인은 부인으로서의 도리를 잃지 않고, 젊은이는 어른을 능멸하지 않았으며, 선을 권하고 인(仁)을 도왔다. 만약 그 도를 극진히 한 자가 있으면 사림(士林)이 천거하고, 임금이 듣고서 포양(褒揚) 할 때에 정려하기도 하고 관작을 내려주기도 하여 소문이 퍼지면 천하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고 싸늘한 비가 내려 50년 동안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먹고사는 데 분주하여 직분을 제대로 수행한 자가 드물게 되었다. 금구군 선비 달성 배익수(裵益洙)의 부인 조양 임씨는 벌열고가(閥閱故家) 출신의 여자로 성품이 정숙하고 단아하였으며, 어렸을 때부터 효행으로 부모를 섬겼다. 결혼해서는 시부모를 친정부모 섬기듯 하였으며, 큰 손님 대우하듯 남편을 받들고, 남편은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 하지만 남편이 선영(先塋) 일 때문에 피로가 쌓인 나머지 병이 들어 22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남겨진 어린 아들이 울어댔으나 그녀는 얼굴에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3년상을 마친 뒤, 배익수의 동생 택수(澤洙)가 매우 급하게 형수 임씨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뒤뜰 나뭇가지에 목을 맨 뒤였다. 이를 발견하고 급히 형수를 나무에서 내려 구한 뒤, 택수가 땅에 엎드려 울면서 "백세토록 아름다운 이름이 열녀라지만 불쌍한 저 혈혈단신 아들은 누구에게 의지하겠으며, 쓸쓸하고 가난한 집안 살림은 누가 맡아 처리하겠습니까?"라고 하며 통곡하니 그녀는 측은한 감정을 느껴 마음을 돌리고 곡기를 먹기 시작하여 훗날 집안의 명성을 세우고 늙을 때까지 정절을 지켰다. 이는 포장(褒獎)할 만한 일이지만 시대가 달라져 이러한 실적이 사라져서 소문나지 못하였으나 그녀는 성냄 없이 1957년(정유) 겨울에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쳤다. 임씨의 효자 배병주(裵秉周)가 차마 어머니의 아름다운 실적을 침묵할 수 없어 상복을 입은 채 금구향교에 울며 호소하였다. 이에 떳떳한 본성은 같은지라 너무 개탄스러워 금구향교에서 나주향교로 통문을 보내 이 엉망이 된 세상에 아름다운 본보기를 행한 실적을 찬양하는 데 함께 동참하여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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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人이莫不有其親而能盡其孝者盖尠矣며莫不有其兄弟而能盡其友愛者又鮮矣라今按本洞洞會之衆薦則本里士人李冕儀은孝寧大君十六世孫이오掌令壺隱先生之十二世孫也라世世家行이孝友稱道는一鄕所共知也라自孩提로本性이至溫至厚하야每遊戱ᄋᆞㅣ罔敢父母之咈志하며遊外에或得實果면必綶獻之려니及其長也하야事父母호ᄃᆞㅣ甘旨之供을未甞乏絶하며冬溫夏淸과晨昏定省을無一闕漏하며與數多男妹로共食共衣에未有睨視呼叱之事하고與其弟等으로累次分家分財이되均平無私하야未有毫髮之怨에一家堂內가和氣自樂터니時乎大正八九年間因於物價之瀑騰瀑落하야暗悉中損失家業하고困苦莫甚이라當此客年之旱害하야所農이全無라恐其父母之供儒〖需〗無備하야典身得債에區外負米를無日不絶하야內無十有餘眷之飢餓하고外無朋友之失信하니此何異於古人之百里負米乎아如此罕睹罕聞之孝友로無心覌過爲難而今纔依衆論仰布하오니後來爲人子者垂範慕仰之地를千萬切仰耳乙丑十二月十五日 王峙面廣峙里 [王峙面廣峙里勞働稧所] 勞働稧長 李相儀[王峙面廣峙里勞働稧長之印] 總務 朴炳南[印] 顧問 李譱宇[印] 書記 韓弘錫[印] 評議員 張順容[印] 李鳳儀 趙永玉[印] 梁承鶴 朴東奎[印] 金成文[印] 李日成 張壽巖[印]讚成長 韓鐸履[印] 許泰[印] 張奎錫[印] 梁萬錫[印] 朴魯化[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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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 앞면任實郡 聖壽面 三峰里 二三○番地李 虎 氏殿봉투 뒷면任實郡 任實面 二道里 慶南宿李鍾徠上편지1섭〃히 작별하온 후 소식리 적조하와 그간의기치후 알ᄒᆡᆼ 만강하옵심니갓그간의 졔난 전과 갓치 일반리옴니다 근오도그간의 몸도 편하고 공부도 잘하옴니다양도의 ᄆᆡ우 골난ᄒᆡ서 차인 보내오리살 소도 十말만 보ᄂᆡ주시요 五月 十六日 장날 살 五말 갑 돈 七百二十五圓 실수업시주그심니다 역부로 인부 사서 보ᄂᆡ옴니다 실수업시 보내주요그마만 근침니다그도 부친 시전五月 十二日李鍾徠任實邑 大谷里徐海成[별지]인부 윤님 五十圓 줌니다 六月 十六日 살 五말갑 주그옴니다 실수업시 보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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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언간(諺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630_001 12월 초9일에 누나가 남동생에게 쓴 한글 편지 12월 초9일에 누나가 남동생[아오]에게 한글로 쓴 편지이다. 편지지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의 글씨체가 〈광주 민종기_233357〉, 〈광주 민종기_233359〉, 〈광주 민종기_233360〉, 〈광주 민종기_233362〉와 동일할 뿐만 아니라, 편지지의 규격도 같아서 발신자 또한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편지는 '아우님 보시오[ᄋᆞ오님 보시ᄋᆞᆸ]'로 시작하는데, '우리 남매'라고 표현하고 있으므로, 수신자는 남동생으로 추정된다. 쇠약한 남동생의 건강을 염려하며 보약을 먹어서 건강하기를 빌었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 편지 한 번 하지 못함을 슬퍼하면서 식구들 근황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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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년 장욱(張旭)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張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8년 2월 27일에 장욱이 신랑측에 연길을 보내면서 날짜를 상의하는 간찰 1818년 2월 27일에 장욱(張旭)이 신랑측에 보낸 간찰이다. 가까운 데 살면서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어서 뵙지 못하다가 다행히 벗 김이언(金而彦)을 통해 뵐 수 있었다고 인사하였다. 길일(吉日)을 잡아 연길(涓吉)을 보내드리니 이 날짜가 지장이 없겠는지 상대방의 의사를 묻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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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邇人遐 尙稽候拜 幸因金友而彦甫 獲承聯楣之示荊願從可遂矣伏惟和昫靜候萬重 仰溸區區無任之地 吉日謹涓以呈 無碍於右日耶 示之如何 餘不宣伏惟戊寅二月二十七日張旭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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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장기홍(張基洪)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張基洪 辛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2년 11월 17일에 장기홍이 신생원에게 폐백을 보내면서 작성한 혼서 1922년 11월 17일에 상질후인(尙質后人) 장기홍(張基洪)이 신생원(辛生員)에게 보낸 혼서이다. 장기홍은 자신의 큰아들 용석(龍錫)을 당신의 맏손녀에게 장가들도록 허락해주셨기에 이에 폐백을 보내드린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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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금구향교(金溝鄕校) 통문(通文) 2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金溝鄕校 光州鄕校 金溝鄕校(4.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94_001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 전교 임종호·장의 경인근 등 유림 14인이 광주향교에 금구군에 사는 배병주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을 함께 찬양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金溝鄕校) 전교(典校) 임종호(林鍾鎬)·장의(掌議) 경인근(景寅根) 등 유림 14인이 광주향교(光州鄕校)에 금구군(金溝郡)에 사는 배병주(裵秉周)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兆陽林氏)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實行)을 함께 찬양(賛揚)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이다. 옛날 성대한 시절에는 교화가 크게 행해지고, 윤리와 기강이 갖추어져 신하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부인은 부인으로서의 도리를 잃지 않고, 젊은이는 어른을 능멸하지 않았으며, 선을 권하고 인(仁)을 도왔다. 만약 그 도를 극진히 한 자가 있으면 사림(士林)이 천거하고, 임금이 듣고 포양(褒揚) 할 때에 정려하기도 하고 관작을 내려주기도 하여 소문이 퍼지면 천하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고 싸늘한 비가 내려 50년 동안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먹고사는 데 분주하느라 직분을 제대로 수행한 자가 드물게 되었다. 금구군 선비 달성 배익수(裵益洙)의 부인 조양 임씨는 벌열고가(閥閱故家) 출신의 여자로 성품이 정숙하고 단아하였으며, 어렸을 때부터 효행으로 부모를 섬겼다. 결혼해서는 시부모를 친정부모 섬기듯 하였으며, 큰 손님 대우하듯 남편을 받들고, 남편은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 하지만 남편이 선영(先塋) 일 때문에 피로가 쌓인 나머지 병이 들어 22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남겨진 어린 아들이 울어댔으나 그녀는 얼굴에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세월이 흘러 소상을 정성껏 지내고 3년상을 마친 뒤, 배익수의 동생 택수(澤洙)가 매우 급하게 형수 임씨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뒤뜰 나뭇가지에 목을 맨 뒤였다. 이를 발견하고 급히 형수를 나무에서 내려 구한 뒤, 택수가 땅에 엎드려 울면서 "백세토록 아름다운 이름이 열녀라지만 불쌍한 저 혈혈단신 아들은 누구에게 의지하겠으며, 쓸쓸하고 가난한 집안 살림은 누가 맡아 처리하겠습니까?"라고 하며 서로 바라보며 통곡하니 측은한 감정이 들어 마음을 돌리고 곡기를 먹기 시작하여 훗날 집안의 명성을 세우고 늙을 때까지 정절을 지켰다. 이는 포장(褒獎)할 만한 일이지만 시대가 달라져 이러한 실적이 사라져서 소문나지 못하였으나 그녀는 성냄 없이 1957년(정유) 겨울에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쳤다. 임씨의 효자 배병주(裵秉周)가 차마 어머니의 아름다운 실적을 침묵할 수 없어 상복을 입은 채 금구향교에 울며 호소하였다. 이에 떳떳한 본성은 같은지라 너무 개탄스러워 금구향교에서 광주향교로 통문을 보내 이 엉망이 된 세상에 아름다운 본보기를 행한 실적을 찬양하는 데 함께 동참하여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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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금구향교(金溝鄕校) 통문(通文) 3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金溝鄕校 南原鄕校 金溝鄕校(4.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94_001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 전교 임종호·장의 경인근 등 유림 14인이 남원향교에 금구군에 사는 배병주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을 함께 찬양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金溝鄕校) 전교(典校) 임종호(林鍾鎬)·장의(掌議) 경인근(景寅根) 등 유림 14인이 남원향교(南原鄕校)에 금구군(金溝郡)에 사는 배병주(裵秉周)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兆陽林氏)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實行)을 함께 찬양(賛揚)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이다. 옛날 성대한 시절에는 교화가 크게 행해지고, 윤리와 기강이 갖추어져 신하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부인은 부인으로서의 도리를 잃지 않고, 젊은이는 어른을 능멸하지 않았으며, 선을 권하고 인(仁)을 도왔다. 만약 그 도를 극진히 한 자가 있으면 사림(士林)이 천거하고, 임금이 듣고 포양(褒揚) 할 때에 정려하기도 하고 관작을 내려주기도 하여 소문이 퍼지면 천하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고 싸늘한 비가 내려 50년 동안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먹고사는 데 분주하느라 직분을 제대로 수행한 자가 드물게 되었다. 금구군 선비 달성 배익수(裵益洙)의 부인 조양 임씨는 벌열고가(閥閱故家) 출신의 여자로 성품이 정숙하고 단아하였으며, 어렸을 때부터 효행으로 부모를 섬겼다. 결혼해서는 시부모를 친정부모 섬기듯 하였으며, 큰 손님 대우하듯 남편을 받들고, 남편은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 하지만 남편이 선영(先塋) 일 때문에 피로가 쌓인 나머지 병이 들어 22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남겨진 어린 아들이 울어댔으나 그녀는 얼굴에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세월이 흘러 소상을 정성껏 지내고 3년상을 마친 뒤, 배익수의 동생 택수(澤洙)가 매우 급하게 형수 임씨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뒤뜰 나뭇가지에 목을 맨 뒤였다. 이를 발견하고 급히 형수를 나무에서 내려 구한 뒤, 택수가 땅에 엎드려 울면서 "백세토록 아름다운 이름이 열녀라지만 불쌍한 저 혈혈단신 아들은 누구에게 의지하겠으며, 쓸쓸하고 가난한 집안 살림은 누가 맡아 처리하겠습니까?"라고 하며 서로 바라보며 통곡하니 측은한 감정이 들어 마음을 돌리고 곡기를 먹기 시작하여 훗날 집안의 명성을 세우고 늙을 때까지 정절을 지켰다. 이는 포장(褒獎)할 만한 일이지만 시대가 달라져 이러한 실적이 사라져서 소문나지 못하였으나 그녀는 성냄 없이 1957년(정유) 겨울에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쳤다. 임씨의 효자 배병주(裵秉周)가 차마 어머니의 아름다운 실적을 침묵할 수 없어 상복을 입은 채 금구향교에 울며 호소하였다. 이에 떳떳한 본성은 같은지라 너무 개탄스러워 금구향교에서 광주향교로 통문을 보내 이 엉망이 된 세상에 아름다운 본보기를 행한 실적을 찬양하는 데 함께 동참하여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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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通告事伏以在昔盛時敎化大行倫綱極備臣不失臣道子不失子道婦不失婦道少不凌長責善輔仁若盡其道則士林薦聞君上褒揚或旌其閭或贈其爵風聲所及天下歸仁悲風凄雨五十年呼寒啼飢奔走於穀絲之曲逕能盡其職者盖鮮矣本郡士人達城裵益洙妻林氏兆陽閥閱故家女稟賦貞淑端一幼能事父母以孝有行以父母事舅姑舅姑安其養如待大賔承君子君子宜其室夫有事于丘壠勞悴成疾不起時年二十二一子呱呱不以哀慽見於面送終如禮撫孤以恩家人常慮其徑情日居月諸小祥祭誠床撤燈滅形影香然夫弟澤洙憂其不憂索之大急已懸身於後園樹梢摘軆救急斷續眼淸澤洙伏地泣曰令名百世烈則烈哀彼孑孑誰依誰托蕭瑟寒廚孰主張是相向痛哭惻隱之心感于中回心就穀立家聲於將來保白首於貞節事實合於昭代盛典之可獎可褒而時異法久泯滅無聞無所慍而天年終於丁酉冬月孝子秉周不忍掩其美而終黙扶杖帶衰泣訴其實秉彝所同不勝慨然玆敢發告伏惟 僉君子同聲賛揚樹風聲於奔蕩之際使期要無行愧其心而汗其顙則扶正倫綱世道幸甚天下幸甚聖誕二千五百十年三月 日[金溝鄕校]光州鄕校儒林 僉尊 座下金溝鄕校典校 林鍾鎬掌議 景寅根 同 宋 烘 同 金榮煥 同 安鍾千儒林 崔泳述 同 宋泳熙 同 鄭雲顥 同 金聲基 同 朴榮洙儒林 李鍾厚 同 鄭昌朝 同 林鍾大 同 李晙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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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通告事伏以在昔盛峕敎化大行倫綱極備臣不失臣道子不失子道婦不失婦道少不凌長責善輔仁若盡其道則士林薦聞君上褒揚或㫌其閭或贈其爵風聲所及天下歸仁悲風凄雨五十年呼寒啼飢奔走於穀絲之曲逕能盡其職者盖鮮矣本郡士人達城裵益洙妻林氏兆陽閥閱故家女稟賦貞淑端一幼能事父母以孝有行以父母事舅姑舅姑安其養如待大賔承君子君子宜其室夫有事于丘壠勞悴成疾不起峕年二十二一子呱呱不以哀慽見於面送終如禮撫孤以恩家人常慮其經情日居月諸小祥祭誠床撤燈滅形影香然夫弟澤洙憂其不憂索之大急已懸身於後園樹梢摘軆救急斷續眼淸澤洙伏地泣曰令名百世烈則烈哀彼孑孑誰依誰托蕭瑟寒廚孰主張是相向痛哭惻隱之心感于中回心就穀立家聲於將來保白首於貞節事實合於昭代盛典之可獎可褒而時異法久泯滅無聞無所慍而天年終於丁酉冬月孝子秉周不忍掩其美而終黙扶杖帶衰泣訴其實秉彝所同不勝慨然玆敢發告伏惟 僉君子同聲賛揚樹風聲於奔蕩之際使期要無行愧其心而汗其顙則扶正倫綱世道幸甚天下幸甚聖誕二千五百十年三月 日[金溝鄕校]南原鄕校儒林 僉尊 座下金溝鄕校典校 林鍾鎬掌議 景寅根 同 宋 烘 同 金榮煥 同 安鍾千儒林 崔泳述 同 宋泳熙 同 鄭雲顥 同 金聲基 同 朴榮洙儒林 李鍾厚 同 鄭昌朝 同 林鍾大 同 李晙寧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59년 금구향교(金溝鄕校) 통문(通文) 4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金溝鄕校 全州鄕校 金溝鄕校(4.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94_001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 전교 임종호·장의 경인근 등 유림 15인이 전주향교에 금구군에 사는 배병주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을 함께 찬양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金溝鄕校) 전교(典校) 임종호(林鍾鎬)·장의(掌議) 경인근(景寅根) 등 유림 15인이 전주향교(全州鄕校)에 금구군(金溝郡)에 사는 배병주(裵秉周)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兆陽林氏)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實行)을 함께 찬양(賛揚)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이다. 옛날 성대한 시절에는 교화가 크게 행해지고, 윤리와 기강이 갖추어져 신하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부인은 부인으로서의 도리를 잃지 않고, 젊은이는 어른을 능멸하지 않았으며, 선을 권하고 인(仁)을 도왔다. 만약 그 도를 극진히 한 자가 있으면 사림(士林)이 천거하고, 임금이 듣고 포양(褒揚) 할 때에 정려하기도 하고 관작을 내려주기도 하여 소문이 퍼지면 천하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고 싸늘한 비가 내려 50년 동안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먹고사는 데 바빠서 직분을 제대로 수행한 자가 드물게 되었다. 금구군 선비 달성 배익수(裵益洙)의 부인 조양 임씨는 벌열고가(閥閱故家) 출신의 여자로 성품이 정숙하고 단아하였으며, 어렸을 때부터 효행으로 부모를 섬겼다. 결혼해서는 시부모를 친정부모 섬기듯 하였으며, 큰 손님 대우하듯 남편을 받들고, 남편은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 하지만 남편이 선영(先塋) 일 때문에 피로가 쌓인 나머지 병이 들어 22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남겨진 어린 아들이 울어댔으나 그녀는 얼굴에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세월이 흘러 소상을 정성껏 지내고 3년상을 마친 뒤, 배익수의 동생 택수(澤洙)가 매우 급하게 형수 임씨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뒤뜰 나뭇가지에 목을 맨 뒤였다. 이를 발견하고 급히 형수를 나무에서 내려 구한 뒤, 택수가 땅에 엎드려 울면서 "백세토록 아름다운 이름이 열녀라지만 불쌍한 저 혈혈단신 아들은 누구에게 의지하겠으며, 쓸쓸하고 가난한 집안 살림은 누가 맡아 처리하겠습니까?"라고 하며 서로 바라보며 통곡하니 측은한 감정이 들어 마음을 돌리고 곡기를 먹기 시작하여 훗날 집안의 명성을 세우고 늙을 때까지 정절을 지켰다. 이는 포장(褒獎)할 만한 일이지만 시대가 달라져 이러한 실적이 사라져서 소문나지 못하였으나 그녀는 성냄 없이 1957년(정유) 겨울에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쳤다. 임씨의 효자 배병주(裵秉周)가 차마 어머니의 아름다운 실적을 침묵할 수 없어 상복을 입은 채 금구향교에 울며 호소하였다. 이에 떳떳한 본성은 같은지라 너무 개탄스러워 금구향교에서 광주향교로 통문을 보내 이 엉망이 된 세상에 아름다운 본보기를 행한 실적을 찬양하는 데 함께 동참하여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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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通告事伏以在昔盛峕敎化大行倫綱極備臣不失臣道子不失子道婦不失婦道少不凌長責善輔仁若盡其道則士林薦聞君上褒揚或㫌其閭或贈其爵風聲所及天下歸仁悲風凄雨五十年呼寒啼飢奔走於穀絲之曲逕能盡其職者盖鮮矣本郡士人達城裵益洙妻林氏兆陽閥閱故家女稟賦貞淑端一幼能事父母以孝有行以父母事舅姑舅姑安其養如待大賔承君子君子宜其室夫有事于丘壠勞悴成疾不起峕年二十二一子呱呱不以哀慽見於面送終如禮撫孤以恩家人常慮其經情日居月諸小祥祭誠床撤燈滅形影香然夫弟澤洙憂其不憂索之大急已懸身於後園樹梢摘軆救急斷續眼淸澤洙伏地泣曰令名百世烈則烈哀彼孑孑誰依誰托蕭瑟寒廚孰主張是相向痛哭惻隱之心感于中回心就穀立家聲於將來保白首於貞節事實合於昭代盛典之可獎可褒而時異法久泯滅無聞無所慍而天年終於丁酉冬月孝子秉周不忍掩其美而終黙扶杖帶衰泣訴其實秉彝所同不勝慨然玆敢發告伏惟 僉君子同聲賛揚樹風聲於奔蕩之際使期要無行愧其心而汗其顙則扶正倫綱世道幸甚天下幸甚聖誕二千五百十年三月 日[金溝鄕校]全州鄕校儒林 僉尊 座下金溝鄕校典校 林鍾鎬掌議 景寅根 同 宋 烘 同 金榮煥 同 安鍾千儒林 崔泳述 同 宋泳熙 同 鄭雲顥 同 金聲基 同 朴榮洙儒林 李鍾厚 同 鄭昌朝 同 林鍾大 同 李晙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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