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17956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7년 6월 29일 첩정(牒呈) 丁丑六月二十九日 牒呈 006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비변사에 보낸 첩정(牒呈): 수군(水軍)의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를 보내온 고을과 보내지 않은 고을을 분류한 책자 등을 올려보내며, 전선(戰船)과 병선(兵船)을 간수할 대책을 지시해줄 것.정축년(1637, 인조 15) 6월 29일.책자를 올려보내는 일 때문에 보냅니다."전에 도착한 비변사의 관문 내용을 요약하면 '……'라는 관문이었습니다. 본영(本營)과 각 진포(鎭浦)에 소속된 수군(水軍) 등이 난리를 겪고 난 뒤에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가 먼저 도착한 고을에 대해서는 전임 수사(水使)가 재임할 때 첩정(牒呈)을 올려 보고하였고, 제가 부임한 즉시 책자를 보내지 않은 각 고을에도 본영의 차사(差使)를 정하여 보내 재촉하였으나 여태까지 기한에 맞추어 보내지 않았습니다.23) 먼저 도착한 각 고을과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각 고을을 분류한 책자 및 본영과 각 진포에 있는 전선(戰船)과 병선(兵船)의 숫자를 정리한 책자 총 2건을 올려보냅니다. 대체로 수많은 선박을 간수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강변에 매어두고 있어 앞으로는 쓸모없는 물건이 될 것이니, 몹시 고민스러운 일입니다. 바닷가에 거주하는 남아있는 수군으로 우선 입방(入防)시켜 전선과 병선을 간수하기도 하고 계절에 따라 칡을 채취하거나 띠풀을 베어 초둔(草芚)을 제작하기도 하여 공연히 폐기하는 물건이 없게 할 것을, 각별히 헤아려서 즉시 변통하여 신속히 분부해주소서. 그러므로 첩정을 올립니다.24)"비변사에 보고함.▶ 어휘 해설 ◀❶ 차사(差使) : 아문(衙門)이나 영문(營門)에서 어떤 일에 한시적으로 사역시키기 위해 임시로 차출한 사람을 가리킨다. 丁丑六月二十九日爲上送事."前矣到付司關內節該, '云云.'關是置有亦. 營及各鎭浦所屬水軍等, 自經亂之後存沒成冊先到各官段, 前水使時, 已爲牒報爲有在果, 卑職到任卽時, 未到各官良中, 營差發定催督爲乎矣, 迄未準到. 先到各官及未到各官分秩成冊及本營與各浦所在戰、兵船數爻成冊幷兩件乙, 上送爲在果. 大槪許多船隻, 無人看護, 掛置江邊, 將爲無用之物, 事甚竭悶爲置. 沿海所居餘存水軍以, 爲先入防, 或戰、兵船守直爲旀, 或隨節採葛刈茅草芚造作, 俾無空棄之物事乙, 司以各別商量, 趁卽變通, 急速分付爲只爲. 合行云云."報備局.❶ 爲合行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004 나덕헌의 장계' 참조. 저본에는 원문 '爲合行' 3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7년 10월 일 관문(關文) 崇德二年十月 日 關文 032 병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교동(喬桐)의 육군(陸軍) 48호(戶)를 수군(水軍)이 복구될 때까지만 상번(上番)을 면제하고 입방(入防)에 보태게 하는 일은 비변사가 재가받은 대로 시행할 것.정축년(1637, 인조 15) 10월 27일 (도착).병조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첩정(牒呈) 내용을 요약하면,'교동(喬桐)의 상번(上番)하는 육군(陸軍) 48호(戶)를 수군(水軍)이 복구될 때까지만 상번을 면제하고 본영(本營)의 입방(入防)에 보태게 해주소서.'73)라고 하였다. 그 첩정에 의거하여 살펴보았는데, 본도(本島) 군사의 상번을 면제하는 일은 비변사가 이미 주상의 재가를 받았으니, 본조(本曹)가 그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10월 일. 丁丑十月二十七日兵曹爲相考事."節到付呈內節該, '喬桐上番陸軍四十八戶, 限水軍蘇復間, 除上番本營添防.'事據相考爲乎矣, 本島軍士除上番事, 備局旣已啓下, 該曹有何低昻於其間乎! 相考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二年十月 日. '030 나덕헌의 첩정' 참조.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8년 7월 20일 첩정(牒呈) 戊寅七月二十日 牒呈 079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비변사에 보낸 첩정(牒呈): 수영(水營)을 옮기기 전에 사용하던 군관청(軍官廳) 등 건물의 목재와 기와를 수습해서 군기(軍器) 등을 보관할 수 있는 건물을 지을 계획임.명령을 받는 일 때문에 보냅니다."본영(本營)을 교동(喬桐)으로 옮겨 설치한 뒤로 수사(水使)는 월곶첨사[月串僉使]의 관사(館舍)에 거처하고, 본영의 군관(軍官)과 수하의 군졸(軍卒) 등은 몸을 의탁할 곳이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선(戰船)과 병선(兵船)을 정박시킨 곳에는 대변청(待變廳)의 비좁은 곳만 있어서, 본영과 본부(本府)의 수많은 군기(軍器) 등의 물품을 모두 본부와 옛 월곶진[月串鎭]에 두고 있는데, 서로의 거리가 다소 멀어서 잘못되어 급박한 변란이 발생하면 운반하는 사이에 반드시 궁색하게 될 것이니, 선박이 드나드는 첫 머리에 대변청을 설치했던 취지가 너무나 무색합니다. 군기를 저장할 건물을 지어서 본영과 본부의 군기 등 물품을 별도로 두고 항상 불을 켜두어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하려고 하였으나,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목재와 기와를 마련하기가 불편하였습니다. 본영을 옮기고 난 뒤에 옛 본영의 거대한 건물에는 화량첨사(花梁僉使)가 들어가 거처하고 있고 얼마 안 되는 수하의 군졸들이 사용하던 건물조차도 수습하지 못하였는데, 별도로 있는 군관청(軍官廳)과 본영의 진무(鎭撫) 등이 거처하던 약간의 행랑도 버려둔 지 오래되어서 절반은 퇴락하여 모두 폐기할 건물이 될 상황입니다. 애당초 본영을 옮길 때에 즉시 철거해오지 못하여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만, 해당 군관과 진무 등이 거처하던 퇴락한 건물에서 쓸만한 목재와 기와는 수습해와서 본영 대변청의 군기 등 물품을 들여놓을 곳으로 옮겨 지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연유를 급히 보고합니다. 그러므로 첩정을 보냅니다."무인년 7월 20일. 비변사에 보고함. 爲行下事."本營移設喬桐之後, 水使止接月串僉使館舍, 營軍官、下卒等, 着身無所叱分不喩. 戰、兵船所泊之處, 只有待變廳容膝之所, 營府許多軍器等物, 皆在於本府及月串舊鎭, 相距稍遠, 脫有蒼卒之變, 則搬運之際, 必致窘速, 殊無船頭設待變廳之意. 欲造軍器房舍, 別置營府軍器等物, 居常點火, 以便蒼卒之用爲乎矣, 所構材瓦, 措辦難便是如乎. 移營之後, 舊營浩大公廨乙, 花梁僉使入接, 零星下卒公廨段置, 未能收拾爲去等, 別處軍官廳、營鎭撫等所接若干行廊, 棄置年久, 爲半頹落, 將至於盡廢之物. 當初移營之時, 不卽撤來, 以至今日爲有如乎, 同軍官、鎭撫等所接頹落家舍乙, 欲收拾可用材瓦, 移造本營待變廳軍器等物入置之處是乎等以. 緣由馳報爲臥乎事是良旀. 合行云云."戊寅七月二十日. 報備局.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9년 7월 1일 관문(關文) 崇德四年七月初一日 關文 132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이행원(李行遠)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칙사(勅使)가 나올 때 필요한 우구(雨具)를 추가로 배정하였으므로 올려보낼 것.기묘년(1639, 인조 17) 7월 2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분담하여 배정하는 일 때문에 보낸다."칙사(勅使)가 나올 때 필요한 우구(雨具)인 초석(草席), 사의(簑衣), 입모(笠帽) 등을 전에 분담하여 배정하였다. 그런데 송도(松都)에 도착하였을 때 뜻하지 않게 비가 내려 두목(頭目)과 각 처에 나누어주었다가 서울로 들어간 뒤에 되찾으려고 하니 두목에게 빼앗겨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방기(房妓) 30여 명이 사용할 우구를 애당초 분담하여 배정하지 않았으므로 마지못해 추가로 분담하여 배정하고 후록(後錄)에 열거하였으니, 밤낮없이 서둘러 올려보내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261) 7월 1일.후록 :초석 2닢.세겹바[三甲所] 2거리(二巨里).사의와 입모 각 2건.끝.▶ 어휘 해설 ◀❶ 사의(簑衣) : 짚이나 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을 가리키며, 도롱이라고도 하였다.❷ 입모(笠帽) : 비가 올 때 갓 위에 덮어쓰던 고깔과 비슷하게 생긴 물건으로, 비에 젖지 않도록 기름종이로 만들었다. 己卯七月初二日到付.兼巡察使爲分定事."勅使時雨具草席、簑衣、笠帽等, 前已分定爲有如乎. 到松都, 不意下雨, 頭目及各處分給, 入京之後推尋, 則頭目處奪取, 不得推尋叱分不喩. 房妓三十餘人所着雨具, 初不分定乙仍于, 不得已加分定, 開後錄爲去乎, 罔晝夜上送向事. 合行云云."崇德四年七月初一日.後 :草席二立.三甲所二巨里.簑衣、笠帽各二件.印.❶ 四年 : 저본에는 원문이 누락되어 있으나, 다수의 용례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四年' 2자가 누락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7년 7월 16일 관문(關文) 崇德二年七月十六日 關文 017 군기시(軍器寺)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정포(井浦), 덕포(德浦), 철곶[鐵串] 등의 진보(鎭堡)에 통지하여 어교(魚膠)를 시급히 상납하게 할 것.정축년(1637, 인조 15) 7월 20일 도착.군기시(軍器寺)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본도(本道)가 올려보낸 어교(魚膠 민어의 부레를 끓여서 만든 풀) 7근은 정축년 몫으로 수량대로 받았고, 도내의 화량진(花梁鎭)과 영종포(永宗浦)도 어교를 상납하였다. 이번에 무고(武庫)의 군기(軍器)를 깡그리 써버리고 난 끝에 화살 하나조차 없으므로 현재 각종 군기를 특별히 제조하고 있는데, 부족한 것은 어교이다. 도내의 정포(井浦), 덕포(德浦), 철곶[鐵串] 등의 진보(鎭堡)에 관문이 도착하는 대로 즉시 통지하여 상납하지 않은 어교를 시급히 상납하게 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7월 16일. 丁丑七月二十日到付軍器寺爲相考事."本道上送魚膠柒斤, 以丁丑條, 依數捧上爲在果, 道內花梁鎭、永宗浦魚膠, 亦爲上納爲有如乎. 節武庫蕩失之餘, 無一介箭乙仍于, 時方各樣軍器, 別造爲乎矣, 所乏者, 魚膠是去乙. 道內井浦、德浦、鐵串等鎭良中, 未納魚膠乙, 到關卽時知委, 急急上納向事. 合行云云."崇德二年七月十六日.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8년 6월 21일 관문(關文) 崇德三年六月二十一日 關文 065 훈련도감(訓鍊都監)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제물진(濟物鎭) 소속의 수군(水軍) 박끝내(朴唜乃)를 잡아와서 도망한 죄를 다스릴 것.무인년 6월 25일 도착.훈련도감(訓鍊都監)이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철곶첨사[鐵串僉使]가 원문서를 첨부하여 보내온 첩정(牒呈) 내용을 요약하면,'훈련도감의 관문에 이르기를,「제물진(濟物鎭) 소속 수군(水軍) 박끝내(朴唜乃)가 여주(驪州)의 군안(軍案)에 등록되어 입번(立番)하는지의 여부를 첩정으로 보고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 관문에 의거하여 살펴보았는데, 해당 박끝내가 여주의 군안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고 제물진에 소속된 양근(楊根)의 군안에 등록되어 있으며 3번(番) 수군으로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을 수군의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에는 도망하여 탈이 생겼다고 적혀 있으므로 입번시킬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서를 첨부한 그 첩정에 의거하여 살펴보았는데, 박끝내가 양근과 여주 사이에서 횡행하고 게다가 함부로 마구 폐단을 일으키는 일까지 있으므로 본진(本鎭)에서 군역(軍役)에 복무하는지의 여부를 관문을 보내 물어보았던 것인데, 이번에 회답하기를,'철곶의 수군은 확실하나 도망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사람의 소행이 더욱 괘씸하니 본영(本營)에서 각별히 착실하게 잡아와서 여러 해 동안 도망한 죄를 통렬히 다스리라."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6월 21일. 戊寅六月二十五日到付.訓鍊都監爲相考事."節到付鐵串僉使粘移內節該, '都監關內, 「濟物屬水軍朴唜乃亦, 驪州案付立番與否, 牒報.」亦關據相考爲乎矣, 同朴唜乃亦, 驪州案付不喩, 濟物屬楊根案付, 三番水軍以名懸爲有乎矣. 其官存沒成冊良中, 逃亡稱頉, 立番不得.'事粘移據相考爲乎矣, 朴唜乃橫行於楊根、驪州之間, 且有泛濫作弊之事乙仍于, 本鎭服役與否, 移問爲有如乎, 節回答內, '鐵串水軍的實, 而逃亡.'是如爲有臥乎所. 此人所爲, 加于過甚, 自本營各別着實捉來, 痛治積年逃亡之罪向事."崇德三年六月二十一日.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9년 6월 27일 관문(關文) 崇德四年六月二十七日 關文 126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이행원(李行遠)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칙사(勅使)가 나올 때 사용하려고 했던 사후(射帿) 1건을 세 곳의 역참(驛站)에서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순영(巡營)에 비치해두려고 함.기묘년(1639, 인조 17) 6월 29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칙사(勅使)가 나올 때 사용할 사후(射帿) 1건을 위에 올렸으나,254) 세 곳의 역참(驛站)에서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순영(巡營)에 비치해두려고 하니, 살펴서 시행하라."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6월 27일. 서울에 있음. 己卯六月二十九日到付.兼巡察使爲相考事."勅使時所用射帿一件, 上使爲有如乎, 不用三站乙仍于, 營上爲去乎, 相考施行向事."崇德四年六月二十七日. 在京.❶ 爲有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爲有' 2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7년 7월 15일 병조(兵曹) 관문(關文) 崇德二年七月十五日 關文 020 병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해로(海路) 봉수(烽燧)의 도형(圖形)을 각 고을에 재촉하여 서둘러 올려보낼 것.정축년(1637, 인조 15) 7월 22일 도착.병조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첩정(牒呈) 내용을 요약하면,'바닷가 고을에 봉수(烽燧)의 도형(圖形)을 위에 올려보내라고 공문을 보내 통지하였으나, 즉시 거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공문을 보내 독촉하였으니 일제히 도착하면 즉시 올려보낼 계획입니다만, 지연될까 염려되어 이러한 연유를 급히 보고합니다.'52)라고 하였다. 다시 재촉하여 올려보내라."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7월 15일. 丁丑七月二十二日到付兵曹爲相考事."節到付呈內節該, '沿海官良中, 烽燧圖形上使事, 行會爲有乎矣, 不卽擧行是如乎. 更良行文督令爲在果, 齊到卽時, 輸送計料爲旀, 恐有遲延, 將此緣由馳報.'事牒呈是置有亦. 更良催促上送向事."崇德二年七月十五日. '012 나덕헌의 첩정' 참조.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4년 허성환(許聖煥)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四月二十二日 許性煥 李敎成 甲戌四月二十二日 許性煥 李敎成 전라북도 정읍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4년 4월 22일에 허성환(許聖煥)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우울한 속마음을 전하고 답장을 부탁하는 간찰(簡札) 1934년 4월 22일에 허성환(許聖煥)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우울한 속마음을 전하고 답장을 부탁하는 간찰이다. 들판의 보리가 풍년을 고하니, 가난한 사람들이 한숨을 토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모습은 말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멀리서 오는 소식은 우울함을 풀어줄 것이라 이에 한 폭을 대신 보내니, 보고나서 속히 답해달라는 내용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5년 변복원(邊復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十一月八日 邊復源 李敎成 乙亥十一月八日 邊復源 李敎成 전라북도 고창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5년 11월 8일에 변복원(邊復源)이 이교성(李敎成)에게 김길중(金吉中)의 무소식을 전하는 간찰 1935년 11월 8일에 변복원(邊復源)이 이교성(李敎成)에게 김길중(金吉中)의 무소식을 전하는 간찰이다. 상대방의 간찰을 받고 쓴 답서이다. 형의 집안이 건강하고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음을 알고 매우 기뻤다고 하고, 김길중은 보성에 다녀온 뒤 나를 찾아온 적이 없고 소식도 거의 듣지 못해 자신도 이것이 너무 의아하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도 길중(吉中)이 형에게 다녀온 뒤의 모습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90년 상태(相泰)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臘月卄三日 相泰 可川 庚申臘月卄三日 相泰 可川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0년 12월 23일에 상태(相泰)가 가천의 형제분들에게 자신의 근황과 혼처 등에 관한 일로 보낸 답장 1890년 12월 23일에 상태(相泰)가 가천의 형제분들에게 자신의 근황과 혼처 등에 관한 일로 보낸 답장이다. 해가 바뀌어 가는 때에 간찰을 받아서 읽음에 자리에 같이 있는 듯하고 모두 잘 지낸다고 하니 기쁘다고 하였다. 자신은 문을 닫고 칩거하니, 마음이 농아(聾啞)와 같아 하나도 이 세상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사람인지 귀신인지,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이렇게 되었으니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아이들의 혼처(婚處)는 오랫동안 마땅한 자리가 없는데 가난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고 하고 이와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상대방의 혼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15년 이대용(李大容) 등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卯 六月 五日 李大容 李生員 乙卯 六月 五日 李大容 李生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5년 6월 5일에 이대용(李大容) 등이 족보 단자의 일로 가천리의 이생원에게 보낸 간찰(簡札) 1915년 6월 5일에 이대용(李大容) 등이 족보 단자의 일로 가천리의 이생원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천리는 보성 소재의 마을이다. 족보의 일에서 상계(上系)는 간행 5일 전에 끝났다. 각처의 단자는 다 들어왔는데 가천, 석동, 신운의 단자는 아직도 올라오지 않았다. 일을 멈출 수도 있고 저간의 비용도 없지 않아 고민하다가 부득이하게 정원(定員)을 내려 보냈다. 귀 문중의 단자는 즉시 올려 보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저 족보의 일은 한 문중에서 합의한 것이며 최고 친목의 일이다. 이와 같은 뜻으로 보소를 귀 문중으로 옮겨 설치하자는 의견이 있고 곡성 문중에서 의논했으니 문중에서 수의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다. 발신인은 대용 외에 교흥(敎興)과 상린(相麟)이다. 피봉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7년 7월 11일 관문(關文) 崇德二年七月十一日 關文 015 병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경기수사(京畿水使)의 군관(軍官)으로 자망(自望)한 박귀남(朴龜男)이 그전에 전라병사(全羅兵使) 이직(李稷)의 군관으로 먼저 자망이 되었으므로 보낼 수가 없음.정축년(1637, 인조 15) 7월 16일 도착.병조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충청병사(忠淸兵使)의 관문(關文)에 이르기를,'대흥현감(大興縣監)의 첩정(牒呈)에 이르기를,「관문에 이르기를,〈대흥현에 살고 있는 절충장군(折衝將軍) 박귀남(朴龜男)을 경기수사(京畿水使)의 군관(軍官)으로 자망(自望)하였으니, 박귀남에게 알려서 올려보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살펴보았는데, 병조의 관문에 의거하여 박귀남을 전라병사(全羅兵使)의 군관으로 자망하였기에 해당 박귀남은 이달 19일에 정장(呈狀)을 받고 출발시켰습니다. 이러한 연유를 병조에 저의 첩정을 첨부하여 공문을 보내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살펴보았는데 해당 박귀남이 올해 3월에 전라병사 이직(李稷)의 군관으로 먼저 자망이 되었으므로 보낼 수가 없다.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45)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7월 11일.▶ 어휘 해설 ◀❶ 정장(呈狀) : 백성이 관아에 소지(所志)를 바치는 것 또는 그 소지를 가리킨다. 소지는 백성이 소송(訴訟), 청원(請願), 진정(陳情) 등의 사안을 관아에 올릴 때 사용하던 문서를 가리키며, 발괄(白活)이라고도 하였다. 정장 또는 소지는 백성이 산송(山訟)과 입후(立後)를 비롯한 다양한 사안에 대해 관아에 호소할 때 올리던 대표적인 문서였다. 丁丑七月十六日到付兵曹爲相考事."節到付忠淸兵使關內, '大興縣監牒呈內, 「〈縣居折衝朴龜男, 京畿水使軍官以, 自望爲有置, 知委起送.〉事關是置有亦. 相考爲乎矣, 兵曹關據, 全羅兵使軍官以, 自望爲有去乙, 同朴龜男, 今月十九日受呈狀, 已爲發送爲有如乎. 以此緣由, 該曹良中, 粘移爲只爲.」牒呈是置有亦.' 相考爲乎矣, 同朴龜男亦, 今年三月分, 全羅兵使李稷軍官以, 先自望爲有置有等以, 起送不得是置. 相考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二年七月十一日. 경기수사 나덕헌이 충청도 대흥현(大興縣)에 살고 있는 박귀남(朴龜男)을 군관(軍官)으로 차출하기 위해 나덕헌 → 병조 → 충청병사(忠淸兵使) → 대흥현감(大興縣監) 순으로 차례차례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박귀남이 그전에 전라병사(全羅兵使)의 군관으로 차출되어 떠난 상태였으므로 이번에는 대흥현감이 이를 보고하기 위해 대흥현감 → 충청병사 → 병조 → 나덕헌의 순으로 차례차례 공문을 보낸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7년 7월 5일 관문(關文) 崇德二年七月初五日 關文 010 비변사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15척의 선박을 간수하는 일은 경기수사(京畿水使)가 변통하여 조치할 것.정축년(1637, 인조 15) 7월 8일에 도착함.비변사가 소식을 알리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경기수사의 서장(書狀) 내용을 요약하면,'본영(本營)에27) 있는 전선(戰船)은 양남(兩南)의 선박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부족합니다. 세 번째 전선은 개삭(改槊)할 시기가 되었으니, 신이 앞으로 어떻게든 목재를 모으고 솜씨 좋은 선박의 장인(匠人)을 모집해서 앞으로 경기에서 선박을 제작하는 표준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다만 난리를 겪고 난 뒤로 본영의 전선, 방패선(防牌船), 병선(兵船), 사후선(伺候船) 등 총 15척에는 간수할 사람이 없고, 칡을 채취하고 초둔(草芚)을 제작할 때 부릴 다른 군병이 없으므로, 제때에 변통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수많은 선박은 수리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니 몹시 고민스러운 일입니다. 묘당(廟堂)에서 각별히 지시하게 해주소서.'28)라고 하였다. 그 서장에 의거하여 본사(本司)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경기의 전선을 제작하는 제도가 양남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이치와 형세로 보아 본래 당연한 것입니다. 나덕헌이 양남의 전선 제도에 따라 –원문 결락- 앞으로 경기의 선박을 제작할 때의 표준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하였으니, 이러한 것은 매우 좋은 생각입니다. 따라서 앞서 말한 뜻에 힘써 부응하여 조정 –원문 결락- 뜻을 저버리지 말도록 하는데 달려있을 따름입니다. 칡을 채취하고 초둔을 제작하기 어려운 것은29) 참으로 장계(狀啓)에서 아뢴 대로이나, 지금의 상황으로는 임시로 변통할 대책이 전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에 대한 의견을 말하기를,「남쪽의 궤멸된 군병 중에서 약간을 덜어내어 올해까지만 경기의 각 진포(鎭浦)에 입방(入防)시켜 뿔뿔이 흩어져 도망간 군병을 대신하도록 한다면, 도움이 될 것도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일반적인 규정과는 다른 것이라서 경솔하게 의논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어떻게든 변통해서 마음을 다해 조치하라고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7월 4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송국택(宋國澤)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라."숭덕 2년(1637) 7월 5일. 丁丑七月初八日到付備邊司爲知音事."節啓下敎京畿水使書狀內節該, '本營所在戰船, 比兩南船制, 則萬萬不及. 第三戰船改槊當次, 臣前頭某條以, 鳩集材料, 募得善手船匠, 以爲日後畿輔船制造作之標爲白乎矣. 自經亂離以, 本營戰船、防牌船、兵船、伺候船幷十五隻良中, 守護無人, 他無葛物採取草芚使喚之軍, 若不趁時變通, 則前頭許多船隻, 修緝無路, 事甚竭悶. 令廟堂各别指揮.'事書狀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京畿戰船之制, 不及兩南, 理勢固然. 羅欲依兩南船制造作▣…▣日後造船之標的, 此意甚善. 唯在勉副前言, 毋負朝家▣…▣意而已. 葛物採取草芚造作之難, 誠如狀啓所陳爲白乎矣, 今日形勢, 了無推移變通之策. 議者或言「南方潰軍, 除出若干名, 限今年, 畿甸各浦立防, 以爲散亡之代, 似不爲無助.」云. 而此亦異於常規, 恐難輕議是白置. 某條推移盡心措處之意, 行移, 何如?' 崇德二年七月初四日, 同副承旨臣宋國澤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崇德二年七月初五日.❶ 內節該本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❷ 採取草芚造作 : 저본에는 원문이 '草芚採取'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 및 '005 나덕헌의 장계'에 의거하여 수정하고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內節該本' 4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005 나덕헌의 장계' 참조. 저본에는 원문 '採取草芚造作' 6자가 '草芚採取' 4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 및 '005 나덕헌의 장계'에 의거하여 수정하고 보충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7년 7월 9일 장계(狀啓) 七月初九日 狀啓 011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장계(狀啓): 생존한 수군(水軍)으로 15일씩 입번(立番)시키는 방법, 생계를 꾸려갈 수 없는 사람들을 조사한 뒤에 입번시키는 방법, 봄과 여름에는 달수를 감하였다가 추수하거든 전처럼 입번시키는 방법 중 비변사에서 결정하여 지시해줄 것.〈피봉〉 승정원(承政院)이 개봉할 것."전의 수사(水使)인 신(臣) 신경진(申景珍)이 수군(水軍)을 입방(入防)시키는 일에 대해 예전에 급히 보고했던 내용을 요약하면,'바닷가에 거주하는 수군은 배를 타고 여러 섬에 피난하기도 하였으므로 집안을 온전히 보존한 백성이 곳곳에 있습니다. 1개월씩 입번시키지 말고 15일씩만 서로 돌아가면서 입번시켜 전선(戰船)과 병선(兵船)을 보수하고 간수하게 하였다가 추수하기를 기다려 예전대로 입방하게 한다면 편리하고 합당할 듯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서장에 의거하여 비변사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각 진포(鎭浦)마다 완전한 수군이 몇 명씩인지를 조사한 뒤 첩정(牒呈)을 올려 보고하게 하고 그에 의거하여 처리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각 고을에서 받은 본영(本營) 소속 수군의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의 숫자와 아직 보고하지 않은 여러 고을에 대해서는 모두 비변사에 2건의 첩정을 올려 보고하였습니다.30) 비변사가 올린 계목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경기 각 진포의 수군 숫자를 경기수사가 보내온 책자를 통해 살펴보면 남아 있는 사람이 거의 3분의 2인데, 그중에서 가산을 탕진하여 전혀 생계를 꾸려갈 수 없는 사람은31) 본래 올해의 입번을 요구할 수가 없겠으나, 그 외에 완전한 집은 전에 주상의 결정을 받은 대로 돌아가면서 입번하면 되니,32) 그 이외에는 지시하여 변통할 대책이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33)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수군의 신역(身役)은 육군(陸軍)에 비해 더욱 유달리 힘들기 때문에 수군의 신역을 피하려고 꾀하는 사람들이 물과 불을 피하는 것처럼 합니다. 그러므로 수군의 자손은 다른 신역을 정하지 못하도록 법전에 정해져 있습니다.34) 그런데 난리를 겪고 난 뒤로는 도성에서부터 여러 고을에 이르기까지 모두 똑같이 전쟁의 참혹한 피해를 입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굳은 뜻을 가진 백성이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수군의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를 거두어들일 즈음에 이웃과 친족이 속여서 신고하는 폐단도 있었습니다. 전임 수사가 윤4월 18일에 여러 고을에 공문을 보내 통지하였고, 신이 부임한 초기에도 즉시 관문(關文)을 보내 재촉하게 하였으나, 지금까지 4개월이 되도록 양주(楊州), 파주(坡州), 양근(楊根), 가평(加平), 문화(文化), 평산(平山) 등 고을에서는 수군의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를 아직도 보내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35) 이미 받아들인 여러 고을의 책자에도 도망하거나 사망한 수군과 잡다한 탈이 있는 수군이 대부분이고, 수영(水營)에 비치한 군적(軍籍)에는 –원문 결락- 이름이 남아있는 사람을 고을이 보낸 책자에는 누락시키거나 탈로 처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미루어보면 여러 고을의 가산을 탕진하여 전혀 생계를 꾸려갈 길이 없는 수많은 수군은 다시 조사하더라도 색리(色吏)들이 농간을 부리도록 번거롭게만 할 뿐이고 사실대로 확실하게 알아낼 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고을과 공문을 서로 주고받는 사이에 번번이 시간만 보내버리고 즉시 결말을 짓지 못한다면, 칡을 채취하고 초둔(草芚)을 제작할 시기가 닥치고 여름과 장마철을 넘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본영 소속 각 진포의 수많은 전선과 병선은 수리할 사람도 없이 겨울을 넘기고 집물(楫物)을 준비할 길이 없어져서 결국 폐기하는 물건이 될 것이니, 참으로 몹시 고민스럽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본영 소속의 황해도 연안(延安)에 거주하는 수군 16명을 입번시키기 위해 동원하여 보낸다는 연안부(延安府)의 보고 문서 및 소강첨사(所江僉使)의 보고에 의거하여 황해감사가 보내온 관문(關文) 내용을 요약하면,'해당 수군을 각 진포가 똑같이 오는 4월부터 시작하여, 1월에 입번을 거른 수군으로 절반을 감하여 마련해서 시기를 물려 입번하도록 통지하여 거행하되, 3월에 입번해야 할 수군도 차례차례 시기를 물려서 마련하여 시행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황해도가 전쟁의 피해를 입은 상황은 경기와 똑같지만 두 도의 수군이 입번하는 신역은 같지 않으니, 그 사이에 한쪽은 신역이 힘들고 한쪽은 수월하다는 탄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수군과 육군의 입번하는 규정은 평상시에 시작된 것으로, 육군은 호수(戶首) 1명이 3명의 봉족(奉足)에게서 신역 대신 신포(身布)를 거두고 호수만 서울로 번을 서로 올라가서 2개월 입번하고, 수군은 호수와 봉족이 모두 생존한 경우일지라도 호수가 1개월, 봉족이 각각 1개월씩 균일하게 스스로 입번하므로, 가족이 온전히 보존된 집이나 혼자 사는 집이나 그 사이에서 어느 한쪽이 힘들거나 수월한 차이가 별달리 없습니다. 수군의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에 현재 생존한 사람으로 기록된 사람으로 먼저36) 15일씩 전에 주상의 결정을 받은 대로 달수를 감하여 마련해서 입번시킬지, 아니면 가산을 탕진하여 전혀 생계를 꾸려갈 수 없는 사람들을37) 다시 조사한 뒤에 정해진 달수만큼 입번시킬지, 아니면 위에서 거론한 전임 수사의 장계 안에서 '봄과 여름에는 달수를 감하여 입번하게 하였다가 추수하기를 기다려서 전처럼 입번하게 하는 것이 편리하고 합당할 듯합니다.'라고 한 것처럼 할지에 대해 묘당(廟堂)에서 상세히 지시하게 해주소서. 차례대로 잘 아뢰어 주시기를 바랍니다."신 나덕헌. 7월 9일 봉함.▶ 어휘 해설 ◀❶ 군적(軍籍) : 군역(軍役)의 의무를 부담해야 할 대상자의 명부로, 군안(軍案)이라고도 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병전(兵典)」 〈성적(成籍)〉에 의하면, 서울과 지방의 군적은 6년마다 새로 작성하였는데, 서울에서는 오부(五部)의 관원이, 지방에서는 각 도의 절도사(節度使)가, 제주(濟州) 3읍(邑)은 절제사(節制使)가 각각 작성하여 병조로 올려보냈다. 군적은 병조뿐만 아니라 각 도의 관찰사(觀察使), 주진(主鎭), 거진(巨鎭), 제진(諸鎭)에도 각각 1부씩 보관하였다. 군적에 등록된 군정(軍丁) 중에서 사망하거나 도망하는 등의 탈이 생기면 해마다 연말에 대신할 사람을 충원하고, 절도사가 군적을 살펴보아 1년 동안 충원한 숫자를 국왕에게 보고하였다. 『속대전(續大典)』 「병전」 〈명부(名簿)〉에서는 군적을 정리할 때가 아닌데 군병을 다른 곳으로 옮겨 소속시키면, 해당 수령은 그 숫자가 3명 이상이면 파직(罷職)하고 2명이면 강자(降資)하며 1명이면 추고(推考)하였으며, 해당 감관(監官)과 색리(色吏)는 100대의 장(杖)을 치고 3년의 도형(徒刑)에 처하였다. 『대전통편(大典通編)』 「병전」 〈명부〉에서는 5살 이하인 황구(黃口)나 6~14살인 아약(兒弱)을 군병으로 충원한 경우에는 해당 수령 및 감관과 색리를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하도록 하였다.❷ 호수(戶首) : 호수는 두 가지의 의미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전답에 부과되는 세금을 거두어서 납부하던 책임을 맡은 사람을 가리킨다. 둘째는 장정(壯丁)의 숫자에 따라 구성되는 각 호(戶)에서 직접 입번(立番)하여 군역(軍役)을 부담하던 사람을 가리킨다. 이처럼 직접 입번하여 군역을 부담하던 사람은 정군(正軍)이라고도 불렀다.❸ 봉족(奉足) : 장정의 숫자에 따라 구성되는 각 호에서 직접 입번하지 않고 입번한 사람의 경제적인 지원을 부담하여 군역을 대신하던 사람을 가리킨다. 봉족은 군보(軍保), 보군(保軍), 보인(保人)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이들은 일정한 양의 쌀이나 베를 납부하였다.❹ 신포(身布) : 신포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하나는 봉족이 군역의 댓가로 납부하던 베를 가리키며, 군포(軍布)라고도 하였다. 이때의 신포는 16살에서 60살 사이의 성인 남성이 2필씩을 납부하였다. 그러다가 영조 26년(1750)에 균역법(均役法)이 시행되면서 2필에서 1필로 감해졌다. 또 하나는 각 관사의 공노비(公奴婢)들이 해마다 바치던 신포로, 신공(身貢)이라고도 하였다. 『경국대전』 「호전(戶典)」 〈요부(徭賦)〉에 의하면, 노비의 신공은 남종이 1필 반이고 여종이 1필이었는데, 윤달이 있으면 남종에게서는 4자, 여종에게서는 2자 6치 6푼을 더 거두었다. 그러다가 영조 24년(1748)부터는 윤달에 더 거두어들이던 노비의 신공을 감면하였고, 영조 31년(1755)부터는 남종과 여종의 신공을 각각 반 필씩 감면하였으며, 영조 50년(1774)부터는 여종의 신공은 완전히 감면해주고 남종의 신공 1필만 거두었다. 承政院開拆."前矣水使臣申景珍入防水軍事, 曾已馳啓內節該, '海邊居水軍段, 或乘船避亂于諸島, 全家保存之民, 比比有之. 一朔立番除良, 限十五日式輪回立番, 戰、兵船, 使之修補守直爲白如可, 待秋成依前立防, 則似爲便當.'爲白乎去書狀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各浦完全水軍幾名是喩, 査出牒報, 以憑處置.'事是白乎等以. 臣各官存沒成冊所捧數及未到列邑, 幷以備邊司以, 兩件牒報爲白有如乎. 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京畿各浦水軍名數, 水使所送成冊觀之, 則餘存者幾三之二, 其中家業蕩失, 全無生理者, 則固不可責以今年立番, 其他完全之戶, 依前定奪輪回立番而已, 此外少無指揮變通之策是白置. 以此行移, 何如?'是白乎等用良. 大槪水軍之役, 比陸軍尤甚偏苦, 謀免者, 如避水火是白乎等以. 水軍子枝, 毋定他役, 載在法典爲白有去等. 經亂之後, 自都下以至列邑, 兵火之慘, 無不同然, 流移相繼, 民無固志叱分不喩. 至於存沒成冊收捧之際, 隣族不無瞞告之弊. 前水使, 閏四月十八日, 行會列邑, 而臣到任之初, 卽令發關催督爲白乎矣, 于今四朔, 楊州、坡州、楊根、加平、文化、平山等邑, 存沒成冊, 迄不輸送叱分不喩. 已捧列邑成冊良中置, 逃故、雜頉居多, 而營上軍籍都▣名存者乙, 或成冊良中, 落漏不爲懸頉爲白有去等. 以此推之, 則列邑許多水軍家業蕩失全無生理者乙, 更良査覆爲白良置, 徒煩色吏弄奸而已, 勢難從實的知之理叱分不喩. 文移往復之間, 動經時日, 未卽究竟, 則葛物取採草芚造作, 時節已迫, 過夏經䨪, 本營各浦許多戰、兵船, 修緝無人過冬, 楫物措備末由, 終至於棄置之物, 誠爲竭悶. 百般思惟, 他無從便之策是白齊. 本營屬黃海道延安居水軍十六名立番起送事同府報狀及所江僉使所報據黃海監司關內節該, '同水軍, 各浦一體來四月朔爲始, 正月朔闕番水軍以, 減半磨鍊退立事, 知委擧行爲乎矣, 三月朔當番水軍以, 次次退磨鍊施行.'亦爲白有臥乎所. 黃海道被兵, 與京畿一樣, 而兩道水軍立番之役不同, 則其間不無苦歇之歎是白乎旀. 水、陸軍立番之規, 在平時始叱, 陸軍段, 戶首一名, 三奉足處, 代布收捧, 戶首叱分, 京上番二朔立番爲白遣, 水軍段, 戶、奉足俱存者是白乎喩良置, 戶首一朔, 奉足各一朔式, 均一自立其番爲白去等, 別無完全之戶、單身之戶苦歇於其間是白在果. 存沒成冊良中時存者以, 先可十五日式, 依前定奪減朔磨鍊立番爲白乎喩, 蕩失無生理者乙, 更良査問後, 準朔立番爲白乎喩, 上項前水使狀啓內, '春夏則減朔立番爲白如可, 待秋成, 依前立番, 似爲便當.'亦爲白有置, 令廟堂詳細指揮爲白只爲. 詮次善啓云云."臣羅. 七月初九日封.❶ 全無生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 및 '009 비변사의 관문'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❷ 奪輪回立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 및 '009 비변사의 관문'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❸ 輸送叱分不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❹ 以先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❺ 生理者乙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 및 '009 비변사의 관문'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006 나덕헌의 첩정' 참조. 저본에는 원문 '全無生' 3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 및 '009 비변사의 관문'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奪輪回立' 4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 및 '009 비변사의 관문'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009 비변사의 관문' 참조. 숙종대에 편찬된 『수교집록(受敎輯錄)』 「병전(兵典)」 〈군제(軍制)〉에는 조군(漕軍)이나 수군(水軍)의 자손을 육군(陸軍)이나 관속(官屬)으로 옮겨 정하면 해당 수령(守令)과 색리(色吏)를 처벌하도록 하였고, 이 규정은 이후 영조대에 편찬된 『속대전(續大典)』 「병전」 〈명부(名簿)〉에도 수록되었다. 저본에는 원문 '輸送叱分不' 5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以先' 2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生理者乙' 4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 및 '009 비변사의 관문'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7년 7월 17일 관문(關文) 崇德二年七月十七日 關文 016 비변사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8월 이전에는 달수를 줄여서 입번(立番)시키고 9월 이후에는 규례대로 입번시킬 것.정축년(1637, 인조 15) 7월 18일 도착.비변사가 소식을 알리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경기수사(京畿水使)의 서장(書狀) 내용을 요약하면,'전임 수사의 장계에 아뢰기를,「봄과 여름에는 달수를 줄여서 입번(立番)시켰다가 추수하기를 기다려서 전례대로 입번하게 하는 것이 편리하고 합당할 듯하니 묘당(廟堂)에서 지시하게 해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46)라고 하였다. 그 서장에 의거하여 본사(本司)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해서(海西)와 경기(畿甸)는 전쟁의 피해를 입은 정도가 매우 똑같지만, 이미 정해진 입번하던 규정을 경기에는 시행할 수 없습니다. 전에 본사(本司)의 계사(啓辭) 안에서 말한 완전한 집[完全之戶]이란 두 보군(保軍)을 갖춘 경우를 말한 것이 아니라, 한 집의 3명 중에 가산을 다소나마 보존한 사람이 1명이라도 있으면 이른바 완전한 집이라고 하여 입번할 대상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47) 대체로 봄과 여름에 입번하는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므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겠으나, 앞으로 8월 이전에는 앞서 주상의 결정을 받은대로 달수를 줄여서 입번시키고, 9월 이후는 추수할 시기이므로 규례대로 입번하도록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7월 14일에 우승지(右承旨) 신(臣) 김휼(金霱)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 2년 7월 17일.▶ 어휘 해설 ◀❶ 보군(保軍) : 장정의 숫자에 따라 구성되는 각 호(戶)에서 직접 입번(立番)하지 않고 입번한 사람의 경제적인 지원을 부담하여 군역(軍役)을 대신하던 사람을 가리킨다. 보군은 봉족(奉足), 군보(軍保), 보인(保人)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이들은 일정한 양의 쌀이나 베를 납부하였다. 丁丑七月十八日到付備邊司爲知音事."節啓下敎水使書狀內節該, '前水使狀啓內, 「春夏則減朔立番爲白如乎, 待秋成依前立番, 似爲便當, 令廟堂指揮.」'事書狀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海西、畿甸, 被兵微甚不等, 已番之規, 不可行於畿甸是白乎旀. 前日本司啓辭中所謂完全之戶者, 非具兩保而爲言, 一戶三人中, 如有一名稍保家産者, 則卽所謂完戶而應在立番之中. 大槪春夏之番, 事已過矣, 不須更言, 前頭八月以前, 依前定奪減朔立番, 九月以後, 卽是秋成, 依例立番爲白只爲, 行移, 何如?' 崇德二年七月十四日, 右承旨臣金霱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二年七月十七日. '011 나덕헌의 장계' 참조. '009 비변사의 관문'에서 경기의 수군 중 '기타 완전한 집은 전에 주상의 결정을 받은 대로 돌아가며 입번시키면 되니'라고 한 내용 중의 '완전한 집'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7년 12월 11일 계본(啓本) 崇德二年十二月十一日 啓本 035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계본(啓本): 교동부(喬桐府)의 수군(水軍)과 육군(陸軍) 군병을 영솔하는 파총(把摠)과 초관(哨官) 등에 대한 올해 추동등포폄(秋冬等褒貶)의 등제(等第).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臣) 나덕헌이 포폄(褒貶) 결과를 보고하는 일 때문에 삼가 올립니다."본영(本營)에 소속된 교동부(喬桐府)의 수군(水軍)과 육군(陸軍) 군병을 영솔하는 파총(把摠)과 초관(哨官) 등에 대해 올해 추동등포폄(秋冬等褒貶)을 등제(等第)하고 삼가 격식을 갖추어 보고합니다."수군 파총(水軍把摠) 전(前) 주부(主簿) 노의남(盧義男) : 상(上).우초관(右哨官) 전 권관(權管) 이지남(李枝男) : 상(上).후초관(後哨官) 전 훈련봉사(訓鍊奉事) 최응룡(崔應龍) : 상(上).육군 파총(陸軍把摠) 전 사과(司果) 송인갑(宋仁甲) : 상(上).전초관(前哨官) 전 훈련봉사 한응남(韓應男) : 상(上).좌초관(左哨官) 전 훈련봉사 김광백(金光伯) : 하(下).별국초관(別局哨官) 전 훈련봉사 전상눌(全尙訥) : 하(下).숭덕(崇德) 2년(16327, 인조 15) 12월 11일, 수군절도사 겸 통어사 신 나덕헌.▶ 어휘 해설 ◀❶ 등제(等第) : 관원의 근무 실적을 평가하여 상고(上考), 중고(中考), 하고(下考)로 나누어 등급을 매기는 것 또는 그 등급을 가리킨다. 각 관사와 영문이 소속 관원의 근무 실적을 각각 4자씩 1구나 2구로 평가한 글을 제목(題目)이라고 하였다. 제목은 포목(褒目)과 폄목(貶目)으로 나뉘었는데, 포목은 관원의 실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글을 가리키고 폄목은 부정적으로 평가한 글을 가리킨다. 등제는 이 제목의 내용에 따라 정해졌는데, 2구의 제목이 모두 포목일 경우에는 상위 등급인 상고로, 2구의 제목 중 1구는 포목이고 1구는 폄목일 경우에는 중간 성적인 중고로, 2구의 제목이 모두 폄목일 경우에는 하위의 등급인 하고로 등급을 매겼다. 京畿水軍節度使兼三道統禦使臣羅謹啓爲褒貶事."本營屬喬桐府水陸軍兵所領把摠、哨官等今秋冬等褒貶等第, 謹具啓聞."水軍把摠前主簿盧義男 : 上.右哨官前權管李枝男 : 上.後哨官前訓鍊奉事崔應龍 : 上.陸軍把摠前司果宋仁甲 : 上.前哨官前訓鍊奉事韓應男 : 上.左哨官前訓鍊奉事金光伯 : 下.別局哨官前訓鍊奉事全尙訥 : 下.崇德二年十二月十一日, 水軍節度使兼統禦使臣羅.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8년 7월 27일 관문(關文) 崇德三年七月二十七日 關文 080 비변사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전선(戰船)의 제작과 보수에 필요한 목재는 참작해서 정해주고, 선박의 장인(匠人)과 나무를 끌어내릴 군인들은 본포(本浦)에서 모집하되, 이를 충청수사(忠淸水使)에게 공문을 보내도록 재가받음.무인년 8월 4일 도착.비변사가 소식을 알리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이달 20일에 성첩(成貼)한 경기수사(京畿水使)의 서장(書狀)에 의거하여133) 본사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경기 각 진포(鎭浦)의 전선(戰船) 제작에 필요한 목재를 달리 마련할 곳이 없으므로, 근래의 규례에 따라 안면곶[安眠串]에서 베어다가 마련하게 하였습니다. 다만 옛 선박을 보수하는데 들어가는 목재를 참작해서 정해주도록 허용하여 함부로 마구 베는 사태가 없게 해야 합당하며, 선박의 장인(匠人)과 나무를 끌어내릴 군인들은 본포(本浦)에서 힘이 닿는 대로 모집해야지 다른 도(道)에서 징발하도록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뜻으로 충청수사(忠淸水使)에게 함께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7월 23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이현(李俔)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충청수군절도사에게도 공문을 보냄. 숭덕 3년 7월 27일. 戊寅八月初四日到付.備邊司爲知音事."節啓下敎本月二十日成貼水使書狀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京畿各浦戰船材木, 他無出處, 依近例許令斫取於安眠串爲白乎矣. 舊船修補所入, 參酌許給, 勿致濫斫之患宜當, 船匠及曳木軍人段, 在本浦隨力雇募, 不可責出於他道. 此意, 忠淸水使處, 幷以行移, 何如?' 崇德三年七月二十三日, 同副承旨臣李俔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 合行云云."忠淸水軍節度使行移. 崇德三年七月二十七日. '076 나덕헌의 장계' 참조.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7년 9월 18일 장계(狀啓) 崇德二年九月十八日 狀啓 022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장계(狀啓): 경기수영(京畿水營)과 5곳 진보(鎭堡) 수군의 생존 숫자와 탈이 생긴 숫자 등을 정리한 책자를 올려보냄.〈피봉〉 승정원(承政院)이 개봉할 것."본영(本營)에 소속된 5곳의 진보(鎭堡)와 각 고을로부터 먼저 받았던 수군의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의 숫자는 비변사(備邊司)로 올려보냈다고 급히 보고하였습니다.57) 추후에 도착한 생존 수군과 사망 수군의 수효도 모두 받았으므로 본영 및 5곳 진보의 원래 군병 중 현재 남아있는 숫자 및 사로잡혀간 사람, 살해된 사람, 도망하거나 죽은 사람 등 잡탈(雜頉)의 숫자를 모두 분류하여 정리한 책자를 비변사로 다시 올려보냈습니다. 이러한 연유를 급히 보고합니다. 잘 아뢰어 주시기 바랍니다."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9월 18일. 承政院開拆."本營所屬五鎭堡·各邑水軍存沒成冊先捧數段, 備邊司以上送事, 已爲馳啓爲白有如乎. 追乎到付存沒數畢捧是白乎等以, 本營及五堡元軍時存及被擄、被殺、逃故雜頉數, 幷以秩秩成冊, 備邊司以更良上送, 緣由馳啓爲白臥乎事是良厼. 詮次善啓向敎是事."崇德二年九月十八日. '004 나덕헌의 장계'와 '006 나덕헌의 첩정' 참조.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8년 6월 26일 관문(關文) 戊寅六月二十六日 關文 068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호조에 보낸 관문(關文): 중군(中軍) 황후헌(黃後憲)에게 교동부(喬桐府)에서 급료를 지급하고 회감(會減)하도록 공문을 보내줄 것.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냅니다."본영(本營)의 새로 제작한 전선(戰船)과 병선(兵船), 개삭(改槊)한 전선과 방패선(防牌船)이 총 8척이나 되는데 모두 교전할 때의 진법(陣法)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수사(水使)가 한 척의 전선에 타고, 나머지의 전선과 방패선 등에는 각각 선장(船將 전선 등을 통솔하는 장수)을 정해두었다가 잘못되어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주장(主將)의 분부를 듣고 전진하거나 퇴각하도록 합니다. 전에는 본영에 중군(中軍)이 없었으나, 이러한 때에 변란에 대비하는 것은 전날과는 다르므로 수군을 익숙히 아는 전(前) 첨정(僉正) 황후헌(黃後憲)을 중군으로 차출하게 해달라고 별도로 주상께 청하여 재가받은 뒤 두 번째 전선의 선장으로 차정(差定)하여 현재 장관(將官)을 거느리고서 날마다 전선을 수리하고 있습니다.120) 중군의 체모는 수사가 대동하는 군관(軍官)과는 다르므로 각 영문(營門)의 예에 따라 황후헌에게는 종과 말의 양식과 급료까지 아울러 본영의 군관과 똑같이 교동부(喬桐府)에서 지급하고 회감(會減)하라는 내용으로, 살펴본 뒤 공문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호조로 공문을 보냄. 무인년 6월 26일에 작성해서 보냄.▶ 어휘 해설 ◀❶ 진법(陣法) : 전투 상황에서 공격하거나 방어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군사를 배치하는 전술을 가리킨다. 오행(五行) 사상에 입각하여 방진(方陣), 원진(圓陣), 곡진(曲陣), 직진(直陣), 예진(銳陣)으로 나눈 오행진법(五行陣法) 또는 오진법(五陣法) 등이 있었다. 爲相考事."本營新造戰船及兵船、改槊戰船·防牌船, 幷至於八隻, 皆是戰陣之用. 水使乘一戰船, 其餘戰、防牌等船良中, 各定船將, 脫有緩急, 聽主將分付進退事是乎矣. 本營在前段, 無中軍是如乎, 此時待變, 異於前日是乎等以, 諳鍊舟師爲在前僉正黃後憲乙, 別啓請中軍, 已爲啓下, 二戰船將差定, 時方諸將官率良遣, 逐日修葺戰船爲去等. 體面異於帶率軍官之比, 依各營門例, 奴馬糧料, 幷以本營軍官一樣, 喬桐府以放料會減事, 相考移文向事."移戶曹. 戊寅六月二十六日成送. '051 나덕헌의 장계'와 '052 비변사의 관문' 참조.

상세정보
517956
/25898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