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유학 김곤(金坤)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金坤 古阜郡守 官[着押] 1顆(墨印, 6.5×5.0)3顆(6.9×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72_001 1876년 2월에 김곤·이언형·김기석 등 유학 25인이 고부군수에게 지극한 효성과 돈독한 행실을 갖춘 선비 정은필에게 특례로 포창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76년(고종 13) 2월에 김곤(金坤)·이언형(李彦衡)·김기석(金箕奭) 등 유학 25인이 고부군수(古阜郡守)에게 지극한 효성과 돈독한 행실을 갖춘 선비 정은필(鄭溵弼)에게 특례로 포창(褒彰)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고부군에 사는 정은필의 본관은 동래이고, 예문관 응교 승보(承甫)의 16대손, 대호군 인(絪)의 15대손, 이조판서 승(昇)의 14대손, 예조판서 가종(可宗)의 13대손, 이조판서 풍천(楓川) 수홍(守弘)의 12대손, 병조판서 걸(傑)의 11대손, 생진사 효손(孝孫)의 10대손, 참봉 확(確)의 9대손, 갑산부사(甲山府使) 집(緝)의 8대손으로, 명문과 도의 문장(道義文章)이 대대로 집안에 전해져 왔다. 정은필은 저절로 알고 저절로 능한 효자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서하여 회(淮)에 은거한 동중서(董仲舒)에 견줄만 하고, 안빈낙도하여 누항(陋巷)에 거처한 안회(顏回)를 계승하였으며, 문을 닫아걸고 분수를 지키며 명예를 구하지 않았다. 어버이를 섬김에는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고 음식을 올리는 데에 극진하였으며, 한결같이 어버이의 뜻을 받들어 그 뜻을 즐겁게 하였다. 여러해 동안 약시중 들면서 병든 어버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똥을 맛보는 정성과 잠자리에 부채질하는 도리는 검루(黔婁)와 황향(黃香)과 같았다. 부모상에는 피눈물을 흘려 얼굴이 검어지고, 한결같이 예제(禮制)에 따라 장례를 치렀으며, 3년 동안 소식(素食)과 죽을 먹었다. 망삭(望朔)에 성묘하여 산골짜기에 길이 생겼으니 행인들이 그 여막을 효자의 여막이라 하고, 초동들이 그 길을 효자의 길이라 하였다. 70세가 되어가는데도 선조와 부모 기일에는 3일 전에 재계하고 뒤 3일까지 소식하여 초상 때처럼 하였는데 이것이 이미 가정의 가르침이 되었다. 평소 심성은 악언(惡言)을 말하지 않고, 어지러운 곳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수풀 아래에 집을 짓고 은둔하여 고을에서 모두 처사옹(處士翁)이라 칭하였다. 이렇듯 육행(六行)과 육덕(六德)을 모두 갖춘 군자이지만 숨어 산 까닭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아 공의(公議)의 실망이 되었다. 따라서 지극한 효성과 돈독한 행실을 갖춘 정은필에게 특례로 포창(褒彰)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고부군수는 2월 21일에 '탁월한 행실을 들으니 매우 가상하다. 합당하게 처분할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