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9132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內西面學堂居化民張東栻右謹言民之父以門錢備納事多日滞囚極爲㦖然故百般拮据錢未辦出只有如干畓土而願買無人兺除良况此門錢期於買位土乃已故以畓券書納是在果▣門錢之數爻實爲五十五兩而向於民之族祖狀中以七十二兩增衍厥數是乎矣族祖流寓於他境已經許多年故這間宗中用下專未覺察是如乎十二兩段入於譜牒修正之役二兩錢段和順地所在先山訟卞時用下三兩錢段先山松楸發賣時收贖於松廳是乎則究其前後所用如非宗事乃是公贖而實在之錢只是五十五兩故二斗畓從時直折價成文是如乎以此畓永作位土使宗中諸族無或擅賣之意論理立旨爲白遣民之病父特爲放釋事 行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庚戌二月 日〈題辭〉元告率來向事十三[官印]官[署押]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59년 장동식(張東植) 등 등장(等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東植 同福縣監 綾州使[着押] 3顆(6.9×6.9)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32_001 1859년 4월에 전라도 동복현에 사는 장동식, 장세옥 등이 능주목사에게 앞의 등장과 등출한 호적단자를 점련하여 입지 해 줄 것과 점련한 호적단자에 관인을 찍어 영구히 빙고(憑考)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청원한 등장 1859년(철종 10) 4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에 사는 장동식(張東植), 장세옥(張世玉) 등이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앞의 등장과 등출한 호적단자를 점련하여 입지(立旨) 해 줄 것과 점련한 호적단자에 관인(官印)을 찍어 영구히 빙고(憑考)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청원한 등장이다. 장동식 등이 엊그제 자신들의 선조 문적(文蹟)을 고적(考籍)하는 일로 올린 등장(等狀)에 '청원한 대로 고급(考給)하라'는 뎨김을 받아, 고열(考閱)하는 곳에서 수 백년 전의 신적(信蹟)을 얻어서 쌓인 편(篇)과 축(軸) 중에서 하나하나 베껴 옮겼다. 이에 자손들의 마음이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보는 것과 다름 없어 번거롭게 다시 하소연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앞의 등장에서 고한 바 같이 『내보(內譜)』는 금석문(金石文)이므로 세계(世系)의 선후와 직함의 유무에 관인이 찍인 문서가 아니라면 종중 사람들이 다투고 갈라지는 단서가 없지 않았다. 이에 장동식 등은 앞의 등장과 호적단자를 점련해서 다시 정소(呈訴)하여 '일의 전말을 참작하고 이치를 따져 입지하고, 점련한 호적단자에 인장을 찍어 내려 주어서 영구히 빙고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등장을 접수한 능주목사는 '다행히 만력(萬曆) 연간의 호적(戶籍)이 있어서 신적(信蹟)을 고출(考出)하였으니 너희들이 정성을 쏟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유감이 없는 일이 있겠는가? 청원한 대로 베껴 옮긴 문서에 관인을 찍어 내주어 보청(譜廳)에서 빙고(憑考)로 삼게 하라'는 판결문을 내렸다. 내보(內譜)는 작성자가 부계 직계조상을 밝힌 것으로, 체제는 선대로부터 자기의 부(父)에 이르는 일직선상의 조상과 그 각 조상의 배우자를 세대별로 기록하고 그들의 전기사항을 밝힌 가승(家乘)과 같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35년 양일영(梁一永) 등 소지(所志) 7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化民 梁一永 等 陵州牧使 使[着押] 3顆(6.8×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7월에 능주목 하동면에 사는 양일영·양직영·양주영 등 3인이 남준룡 3형제와의산송 문제로 능주목사에게 올린 소지 1835년(헌종1) 7월에 능주목(綾州牧) 하동면(下東面)에 사는 양일영(梁一永)·양직영(梁直永)·양주영(梁柱永) 등 3인이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올린 소지이다. 산송 일로 저번에 정소를(呈訴)를 하니 뎨김에 남준룡(南俊龍) 3형제를 잡아다 독굴(督掘: 강제로 묘를 파냄)하게 하라는 뜻으로 엄히 가두고 8월 15일을 기한으로 하여 다짐을 바치게 했는데, 그 기한 전에 다시 정소를 하는 것이 매우 황송하지만 남준룡 3형제가 본래 악할 뿐만 아니라 팔을 휘두르며 큰 소리로 "이번 과거 시험 때는 반드시 과거장에 나아갈 것이니 이 또한 천행이다. 나의 망부도 반드시 합장을 할 것이다."라고 하는데 그들의 완악함을 잘 알기에 호소하오니 남준룡 3형제를 잡아다가 엄히 가두고 즉시 독굴하게 해달라는 청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23일에 능주목사는 '이미 기한을 정했으니 우선 정한 날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뎨김(관의 판결)을 내렸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下東面化民梁一永梁直永梁柱永等右謹言 伏以民等之山訟事 向者 呈訴是乎則 捉致南俊龍三兄弟以督掘之意 嚴治枷囚 而限八月十五日奉考音敎是乎乃限前 呈訴 極爲惶悚敎是乎矣 大抵南俊龍三兄弟 素是惡民?除良 至於此境 揚臂大談曰 當此科時 必有赴科是亦天幸 吾亡父必葬於合窆云云 故民等知其渠輩之頑惡 故玆敢仰訴 伏乞洞燭敎是後 同俊龍三兄弟訐計 捉致 嚴囚 卽至督掘之地 望良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乙未七月 日使[署押](題辭)旣已定限則 姑俟定日宜當事卄三日[官印] 3箇處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35년 양일영(梁一永) 등 소지(所志) 5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化民 梁一永 等 陵州牧使 使[着押] 5顆(7.0×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5월에 능주목 하동면에 사는 양일영·양직영·양주영 등 3인이 남준옥과의 산송 일로 능주목사에게 올린 소지 1835년(헌종1) 5월에 능주목 하동면(下東面)에 사는 양일영(梁一永)·양직영(梁直永)·양주영(梁柱永) 등 3인이 능주목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남준옥(南俊玉)과의 산송(山訟) 일로 겸읍(兼邑)에 정소(呈訴)한 결과 그 뎨김에 엄히 이굴(移殯)하도록 하였지만 남준옥이 한결같이 완거하게 거부 하기에 다시 정소한다며 남준옥을 법정에 잡아다가 엄히 가두고 이빈(移殯)하도록 해주어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달라고 청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능주목사는 10일에 '전후의 판결문이 엄절한데도, 남가는 완거하게 거부할 뿐만 아니라 겸읍에 가서 소지를 올린 말이 매우 흉악하니 금일 내로 즉시 이빈(移殯)하게 하고 만약 완거하게 거부하면 특별히 엄징(嚴懲)하고자하니 남가를 잡아오라'고 면임에게 지시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35년 양일영(梁一永) 등 소지(所志) 6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化民 梁一永 等 陵州牧使 使[着押] 3顆(7.0×6.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7월에 능주목 하동면에 사는 양일영 등 9인이 남준옥이 그의 부모 시체를 자신들의 종가 주맥 가까운 곳에 암장한 일에 대하여 능주목사에게 굴거를 청원한 소지 1835년(헌종1) 7월에 능주목 하동면(下東面)에 사는 양일영(梁一永) 등 9인이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지난 3월에 남준옥(南俊玉)이 그의 죽은 어미를 자신들의 종가 주맥(主脈)의 매우 가까운 곳에 암장(暗葬)한 일로 금단을 하다가 패악을 부리는 바람에 정소(呈訴)를 하였더니 전(前) 성주께서 도형(圖形)을 그리고 그 형제들을 잡아 오라고 하였고, 이에 특별히 차사를 보내주시어 금장(禁葬)을 하였더니 이때는 남준옥이 초빈(草殯)한 것이라 잠시 두려고 한다고 간계를 부리기에 다시 정소하니 뎨김에 그 빈장한 곳을 옮겨가게 하고 또 뜻을 둔다면 엄히 처결하고 즉시 굴거하고 남한을 가둔다고 하였기에 그가 잘못한 것을 알고 이빈(移殯)할 뜻으로 정소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끝내 이거하지 않았기에 다시 정소하니 뎨김에 빈처를 즉각 철거시키고 상황을 보고하라고 면임에게 지시했지만 면임 또한 사악하여 옮기지 않게 하다가 파면되었다는 것, 전 성주께서 상경한 후에 남가가 공관을 틈타 간계를 내어 겸읍(兼邑)에 무소(誣訴)하다가 자신들이 정소하니 겸성주의 뎨김에 속히 이빈(移殯)할 뜻으로 유향소에 분부했다는 것, 그러나 지금까지 미루며 그 아버지가 병사(病死)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또 밤을 틈타 투장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때가 어제 4경의 비 내리는 밤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모두 아뢰며 남가(南哥)의 간계를 잘 아시고 차사를 보내어 남가 형제를 잡아다가 가두고 엄히 다스리며 투장한 것을 즉시 이굴하게 해 달라고 청한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능주목사는 초5일에, 이미 전 성주가 판결한 것을 그 곡직에 대해서 다시 거론할 것은 없고 또 어찌 투장을 한 것인지 엄히 처벌하고 독굴하고자 남준옥을 즉시 잡아오라고 장민(狀民)과 주인(主人)에게 지시를 내렸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35년 양일영(梁一永) 등 소지(所志) 8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化民 梁一永 等 陵州牧使 使[着押] 3顆(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12월에 능주목 하동면에 사는 양일영·양시영·양직영·양주영·양상후 등이 남준옥 3형제의 부모 투장 사건으로 능주겸관에게 올린 소지 1835년(헌종1) 12월에 능주목(綾州牧) 하동면(下東面)에 사는 양일영(梁一永)·양시영(梁始永)·양직영(梁直永)·양주영(梁柱永)·양상후(梁相垕) 등이 능주겸관(綾州兼官)에게 올린 소지이다. 누대 종가의 사당 주맥(主脈) 가까운 곳에 남준옥(南俊玉)이 투장한 일로 자신들이 정소(呈訴)함에 따라 차사(差使)를 발행하여 금장(禁葬)하고 도형(圖形)을 작성하여 살펴서 파내도록 했는데, 지난 5월에 다시 낙송(落訟: 소송에서 짐)했던 곳에 투장을 했기 때문에 또 정소를 하여 전 성주께서 즉시 파내어 옮기도록 면임에게 전령(傳令)하고 엄한 제사를 내렸고, 겸성주에게 다시 정소하여 또 속히 이굴(移掘)하라는 뜻으로 유향소에 분부하였으며, 또 본관 성주께서 새로 부임한 초기에 정소하여 남가 3형제를 3차례 가두고 기한을 정해 독굴하려고 8월 15일을 기한으로 다짐도 받았는데, 굴거하기 전의 매장지를 새로 매만져 수령이 관아에 없는 틈을 타서 감옥을 빠져나와 집에 돌아가 또 다시 그 아비를 계장(繼葬: 잇대어 무덤을 씀)하여 영문(營門)에 정소를 하니 뎨김에 남민을 잡아 가둔 후 굴거하기를 기다려 보고하라고 하셨으니 이상의 전후 문장(文狀)과 영제(營題: 영문의 뎨김)를 함께 돌리니 살피시어 남준옥(南俊玉)·남준룡(南俊龍)·남준흥(南俊興) 3형제를 법정에 잡아다 영문 뎨김대로 가두고 즉시 무덤 2개를 굴거하여 자신들의 누대 종기(宗基)를 보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겸관은 '여러 차례의 판결에도 이와 같이 완거하니 매우 놀라우며 영문의 제사 또한 절엄하니 소홀히 할 수 없다. 엄히 다스리고 독굴하기 위해 남준옥을 급히 잡아올리라'는 판결을 6일에 유향소에 내렸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綾州下東面 化民梁一永梁直永梁柱永等右謹言 伏以同里居南俊玉爲名人欲爲暗葬其母於民等之累世宗家祠堂主脉逼迫之地 故民等卽爲禁葬 則南哥素是惡種 兄弟拔釖 而不能私禁呈于本官 城主 則自官發差禁葬圖形公决 而渠不得入葬是乎乃 將以暗葬之意 反復成殯於數步之地 故更呈于 官家 題內殯處當刻內掘去形地報來事 嚴分付於面任處矣 其時面任卽南哥妻甥 而欲私於南不勤擧行是如可 自 官嚴治汰去 使新面任卽督移殯 分付敎是乎矣 同南哥乘空官 不顧面任之督促 肆然稱托 此日彼日終不移殯 則 豈有如許頑惡乎 玆敢前後所志帖緣仰訴 伏乞執法之下 細燭顚末 特爲嚴明題下 使留鄕卽爲移殯之地爲只爲行下向敎是事兼城主 處分乙未五月 日行官[署押](題辭)本官前後題音 若是申申 而不遵官令 殯處尙不移去云 民習萬萬可駭斯速使之移殯是矣 一向延拖是去等南俊玉成報狀 捉上事留鄕 初二日[官印] 3箇處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903년 서병규(徐炳珪) 위장(慰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장 徐炳珪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고종40) 4월 24일에 서병규(徐炳珪)가 부모상을 당한 이에게 보낸 위장 1903년(고종40) 4월 24일에 서병규(徐炳珪)가 부모상을 당한 이에게 올린 위장(慰狀)이다. 돌아가신 분이 병환은 심했지만 나이가 아직 많지 않아 신명이 도와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찌 이런 갑작스런 부음이 있느냐며 자신의 놀란 마음을 전하고 상대를 위로했다. 초상부터 종상, 양봉(襄奉: 장례)에 이르기까지 잘 거행하고 슬픔은 과도하겠지만 절제하고 일을 순조롭게 치러 효(孝)로 효(孝)를 상하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道內儒生進士李最善金源錫幼學林鳳相等謹齋沐再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鄒夫子不云乎事孰爲大事親爲大守孰爲大守身爲大盖夫事親之孝守身之行倂是相須而俱備者垂右從今實所罕見鮮聞而事其親也竭力誠孝守其身也行義篤敬自少至老捿息於山水之間杜門蔵蹤不求名譽尙無闡發於 縉紳章甫之議者豈非 昭代興孝掦善之一大欠典乎道內古阜郡士人鄭溵弼系出東萊卽藝文館應校〖敎〗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 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諱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緝之八代孫而忠孝家風名閥世德東 朝望門南土表族斯人也自在孩提天賦仁孝節約事親之道敬長之節自悟自警比諸良知良能之禀質矣稍至成童家貧親老全無菽水之供晝出耕耘夜入織梱僅得數畒之田不怠於口軆之奉此誠鄒書之所謂用天之道因地之利孝也㦲乃至弱冠之餘其親沉病累年不離病側甞糞之誠扇枕之節無減於古孝子之宲蹟及其丁憂也泣血墨面哀毁逾制廬墓三年行素食粥至于禫祀始能克終方今年將七旬望朔省掃山磎成路每當祖先考妣之諱日行素食粥復如袒括之日大矣㦲孝之一字苟是百行之源故小少老大勤儉節約畏人如虎守口如甁防意如城避名遯蹤食貧樂道仰述於顔之陋巷樵山漁水知足安分可扇於董之隱淮松籬竹扉篤老年光不知官門四隣一鄕咸稱瀛州處士翁也且齊家戒子一遵朱夫子家訓尙德㦲若人歟敦宗恤窮樹恩於不報種德於無告是㕥鄕論齊發聞其純孝篤行生等居在一省不可含黙玆敢齊聲仰瀆于 觀察之閤下伏願使此隱淪之實蹟 啓達于 朝闡發其行擢用其人之地謹冐昧畧陳巡相 閤下丁丑正月 日全州道㑹所儒生 進士李最善 進士崔俊翼 幼學宋永采 金必欽 李璟漢 權鴻壽 朴仁萬 李始浩 金漢龍 宋鎭邦 林元相 朴致斌 金堯晙 邊大容 奇晩衍 金永采 尹弘鎭 高錫相 朴景壽 柳秉鉉 鄭昌鉉 丁永斗 羅世燁 趙相旭 進士金源錫 幼學李喆信 金相浩 進士羅時瓚 韓世裕 幼學姜泰永 金枓烈 高時旭 吳永煥 進士宋曦玉 幼學尹滋福 安大榮〈題辭〉卓異之行極爲嘉尙啓 聞体重益俟公議事 卄八日[官印]巡使[署押]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78년 이이두(李以斗)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以斗 全羅都巡察使 使[着押] 3顆(9.2×9.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72_001 1878년 12월에 진사 이이두·나시찬 등 전라도 유생 18인이 전라도순찰사에게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특별히 계달하여 은전을 입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78년(고종 15) 12월에 진사 이이두(李以斗)·나시찬(羅時鑽) 등 전라도 유생 18인이 전라도순찰사에게 고부군(古阜郡)에 사는 선비 정은필(鄭溵弼)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특별히 계달(啓達)하여 은전을 입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정은필은 충효가 있는 유서 깊은 집안과 고관의 후예로 인효(仁孝)하고 근신(謹愼)하는 성품을 지녔다. 어버이가 늙고 집안이 가난하여 낮에는 나가서 농사짓고 저녁에는 들어와서 베를 짰으며, 겨우 몇 두둑 전답을 얻어 조상을 받들고 부모를 봉양는 도리를 실천하였다. 갑자기 어버이의 병이 위독해지자 백방으로 약물을 구하여 성심껏 치료하였으며, 똥을 맛보는 정성과 잠자리에 부채질하는 도리는 황향(黃香)과 검루(黔婁)의 효에 못지 않았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슬픔으로 뼈만 앙상해졌으며, 여묘살이 3년 내내 채식하여 낯빛이 검게 변하였다. 장차 70세가 되어가는데도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를 다녀 산골짜기에 길이 만들어졌으며, 부모기일 때마다 안팍으로 목욕재계하고, 초상 때처럼 슬퍼하고 그리워하였다.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천명(天命)을 두려워하고 남의 뜻에 화합하며, 입조심하고 사욕을 굳게 억제하였다. 명예를 피해 은둔하고 안빈하며 만족할 줄 알고 분수를 편안히 여겼다. 자연 속에 살면서 70살 나이에 빛이 나, 사방의 이웃 고을에서 모두 '영주산처사옹(瀛州山處士翁)'이라 일컬었으며, 가정을 다스리고 자질들을 훈육하는 방법으로 옛 성현의 유훈을 따랐다. 이에 군수와 순찰사의 제사(題辭)와 향도(鄕道)의 논의가 예전부터 있었으나 이제야 예식을 갖추고 가려서 다시 아뢰어, 정은필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특별히 계달하여 뽑아 보고하는 은전을 입게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전라도순찰사는 12월 23일에 '일의 중대함을 계문(啓聞)할 것이니 공의(公議)를 더욱 탐문할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35년 양직영(梁直永)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化民 梁直永 陵州牧使 使[着押] 3顆(7.0×7.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35_001 1835년(헌종1) 3월에 능주목 하동면 쌍봉리에 사는 양직영이 남준옥과의 산송 사건으로 능주목사에게 올린 소지 1835년(헌종1) 3월에 능주목 하동면(下東面) 쌍봉리(雙峯里)에 사는 양직영(梁直永)이 능주목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남준옥(南俊玉)과의 산송(山訟) 일로 여러 차례 관에 정소(呈訴)하고 도척(圖尺)을 그린 뒷면의 뎨김에 의거하여 남씨에게 파가게 하였으나 차일피일 미루며 끝내 옮겨가지 않고, 지금 와서 말하길, 성주께서 상경한 후에 반드시 입장(入葬)하겠다고 하므로 이에 전에 올린 소지도 점련하여 호소하니 특별히 맹차(猛差)를 보내어 잡아 가두게하고 즉시 빈장을 옮기게 해달라고 청원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능주목사는 '관의 판결이 내려졌는데 어찌 감히 방자한지, 빈장한 곳을 즉각 철거하고 형지(形止: 일이 되어가는 형편)를 보고하라'는 판결을 25일에 면임에게 내렸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下東面雙峯里 化民梁直永右謹言 民以南俊玉山訟事 累次呈訴 而圖尺紙背 題內 其殯處爲先移送 若又生意 則斷當嚴處卽掘是乎所 同南俊玉 此頉彼頉 終不移殯是如可 今乃作言曰 城主上京後 必也入葬云云 故 玆以前呈所志帖聯仰籲 同南哥不遵 官令 之習 別遣猛差 捉囚嚴徵敎是遣 卽地移殯 千萬望良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乙未三月 日使[署押](題辭)官决之下 何敢肆惡 殯處當刻內撤去 形止報來事卄五日面任[官印] 3箇處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道內儒生進士李以斗羅時鑽幼學金龍欽等謹齋沐再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周之三物之典司徒興之漢之一藝之聞刺史擧之今我東 朝興孝勸善之盛敎亦一周漢之治也則今此實孝篤行第當式抄若無 閤下之 啓薦草野隱淪之行豈不終歸於泯沒乎道內古阜郡士人鄭溵弼系出東萊卽藝文館應校〖敎〗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 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 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 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 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諱 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 緝之八代孫而忠孝古家簮纓后裔也斯人自在孩提天賦仁孝謹愼事親之道敬長之節頗有良知良能矣親老家貧晝出耕耘夜入織梱僅得數畒之田以爲奉先養親之道遽當親癠之沉重百方藥餌一心調治甞糞之誠扇枕之節無減於黃香黔寠〖婁〗之孝友及其丁憂也攀號擗踊哀毁骨立廬墓三年蔬食墨面三年不懈年將七旬望朔省掃山磎成路每當考妣之忌日內外齋沐哀慕感時之痛復如袒括之日自少至老畏天命和人意守口如甁防意如城避名遯蹤食貧陋巷知足安分竹扉松籬捿息山水間篤老年光不知官門四隣一鄕咸穪瀛洲山處士翁齊家庭訓子侄之方克遵古賢之遺訓是以 營邑之題鄕道之議已有宿昔而今當式抄玆敢更禀于宣化孝理之下如斯純孝卓行 特爲 啓達俾蒙抄報之典無任祈恳之地巡相 閤下戊寅十二月日幼學林鳳相 金龍柱 李秉德 高英鎭 朴載榮 宋仁萬 吳泰永 金相益 崔慶奎 柳榮極 權鍾壽 丁在基 邊吉容 趙敬淳 安學律〈題辭〉啓聞体重益探公議事卄三日[官印]巡使[署押]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78년 이이필(李以鉍)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以鉍 禮曹判書 禮曹[着押] 3顆(7.5×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72_001 1878년 5월에 진사 이이필·홍순관 등 전라도 유생 45인이 예조판서에게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포양하여 효를 흥기시키고 선을 권면할 것을 청원한 상서 1878년(고종 15) 5월에 진사 이이필(李以鉍)·홍순관(洪順寬) 등 전라도 유생 45인이 예조판서(禮曹判書)에게 고부군(古阜郡)에 사는 선비 정은필(鄭溵弼)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포양(褒揚)하여 효를 흥기시키고 선을 권면할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정은필은 청환(淸宦)이 대대로 이어지고, 행의(行義)가 집안에 전하는 후손으로, 인효(仁孝)와 절검(節儉)의 성품을 지녀 지성으로 어버이를 섬기고 예를 다해 어른을 공경하였다. 장성하여서는 낮에 농사짓고 저녁에 독서하면서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 마음 쓰고 수신(守身)에 뜻을 독실하게 하였다. 부모를 봉양함에 아침저녁으로 문안하고 맛있는 음식을 올리는 일을 나날이 성실하게 하였다. 또 약수발하는 3년 동안 병든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잠자리에 부채질하고 부모를 위해 먼 곳에서 쌀을 등에 지고 오는 정성은 황향(黃香)과 중유(仲由)의 실적과 견줄 만하고, 빙천(氷川)의 잉어와 하우(夏雨)의 꿩과 같은 일은 왕공(王公)과 곽씨(郭氏)의 지극한 효성을 이은 것이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피눈물을 흘려 얼굴이 검게 변하였으며, 장례 일체는 모두 예제를 따랐다. 여묘살이 3년 내내 소식(素食)하고 죽을 먹었으며,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를 다녀 산골짜기에 길이 생겼다. 지금 곧 70세가 되는데도 부모의 기일 때마다 3일 동안 목욕재계하고, 부모를 추모하고 때를 느끼는 애통함을 초상 때처럼 하였다. 70세 이후로는 산림 속에서 두문불출하고 명예를 구하지 않았으며, 천명을 두려워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법도와 몸가짐을 단속하는 행실은 한 고을의 의리를 잘 지키는 선비이자 작은 마을의 충신(忠信)한 사람이라 할 만 하였다. 이에 사림의 공의(公議)로 연명(聯名)하여 지극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을 특별히 포양하여 효를 흥기시키고 선을 권면할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예조에서는 5월 7일에 '지극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을 이처럼 겸비하고 있으니 듣고서 매우 감탄하였다. 하지만 포양의 은전은 우선 공의를 기다릴 것'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786년 양윤백(梁潤伯)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化民 梁潤伯 陵州牧使 使[着押] 8顆(7.1×7.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3월에 능주목 하동면 변두리에 사는 양윤백이 장차 장례를 치를 선비 장지의 입지 성급을 요청하기 위해 능주목사에게 올린 소지 1786년(정조10) 3월에 능주목 하동면 변두리에 사는 양윤백(梁潤伯)이 장차 장례를 치를 어머니 장지(葬地)의 입지(立旨) 성급을 요청하기 위해 능주목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지난 임인년(1782)에 어머니 상을 당했는데 아직 산소를 정하지 못한 까닭에 영폄(永窆)를 하지 못하고 권폄(權窆)을 하였는데 이제야 산을 구했다며, 올해는 산운(山運)이 합하지 못하므로 내년에 장례를 치르고자 하니 어머니의 장지가 되는 본면(本面) 오동평(梧桐坪)에 있는 병오용선좌건향경득건파지원(丙午龍巽坐乾向庚淂乾破之原)의 무덤자리에 대해 입지(立旨)를 성급해 달라는 내용이다. 입지는 완문(完文)과 같이 관에서 공증해주는 문서로 소지의 뎨김으로 곧바로 효력이 발휘되는 문서이다. 이에 대해 능주목사는 '이 산송(山訟)이 고질적인 폐단이 되어서 만약 시비로 따질 곳이라면 입지(立旨)로도 시행 할 수 없을 것이고, 만약 시비가 없는 곳이라면 이 제사로 빙고(憑考: 근거삼아 고찰함)할 수 있을 것'이라고 15일에 판결을 내렸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下東邊 化民梁潤伯右謹言 伏以民去壬寅年奄遭母喪 而未占山地之致不得永窆 姑爲權窆矣 方今求山 僅占安穩之地是乎矣 今年段 以山運不合是乎等以 將待來歲營葬 故爲先置標于本面梧桐坪 丙午龍巽坐乾向庚淂乾破之原乙仍于 今月二十一日成標爲去乎 如是仰訴 伏乞參商敎是後 立 旨成給 以爲日後憑考之地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丙午三月 日使[署押](題辭)此是山訟 成一痼弊 若是有是非之處 則不可以立旨施行是遣 若是無是非之處 則以此題爲憑考向事十五日[官印] 8箇處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下東面化民梁一永梁直永梁柱永等右謹言 伏以民等與南俊玉相訟事 呈于 兼邑 則 官題嚴决 使之卽時移殯是乎矣 同南俊玉一樣頑拒 玆更齊聲仰籲 伏乞參商敎是後 南俊玉捉致法庭 嚴囚移殯 少雪民等前後憤鬱之地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乙未五月 日使[署押](題辭)前後官題 何等嚴截 而爲南哥者 不但頑拒 徃呈兼邑 語(背面)追官家 極爲凶險 此亦出泒之餘儻禁日內 卽爲移殯是矣 又若頑拒則 別般嚴懲 南哥捉來事初十日 面任[官印] 5箇處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76년 유학 김곤(金坤)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金坤 古阜郡守 官[着押] 1顆(墨印, 6.5×5.0)3顆(6.9×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572_001 1876년 2월에 김곤·이언형·김기석 등 유학 25인이 고부군수에게 지극한 효성과 돈독한 행실을 갖춘 선비 정은필에게 특례로 포창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76년(고종 13) 2월에 김곤(金坤)·이언형(李彦衡)·김기석(金箕奭) 등 유학 25인이 고부군수(古阜郡守)에게 지극한 효성과 돈독한 행실을 갖춘 선비 정은필(鄭溵弼)에게 특례로 포창(褒彰)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고부군에 사는 정은필의 본관은 동래이고, 예문관 응교 승보(承甫)의 16대손, 대호군 인(絪)의 15대손, 이조판서 승(昇)의 14대손, 예조판서 가종(可宗)의 13대손, 이조판서 풍천(楓川) 수홍(守弘)의 12대손, 병조판서 걸(傑)의 11대손, 생진사 효손(孝孫)의 10대손, 참봉 확(確)의 9대손, 갑산부사(甲山府使) 집(緝)의 8대손으로, 명문과 도의 문장(道義文章)이 대대로 집안에 전해져 왔다. 정은필은 저절로 알고 저절로 능한 효자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서하여 회(淮)에 은거한 동중서(董仲舒)에 견줄만 하고, 안빈낙도하여 누항(陋巷)에 거처한 안회(顏回)를 계승하였으며, 문을 닫아걸고 분수를 지키며 명예를 구하지 않았다. 어버이를 섬김에는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고 음식을 올리는 데에 극진하였으며, 한결같이 어버이의 뜻을 받들어 그 뜻을 즐겁게 하였다. 여러해 동안 약시중 들면서 병든 어버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똥을 맛보는 정성과 잠자리에 부채질하는 도리는 검루(黔婁)와 황향(黃香)과 같았다. 부모상에는 피눈물을 흘려 얼굴이 검어지고, 한결같이 예제(禮制)에 따라 장례를 치렀으며, 3년 동안 소식(素食)과 죽을 먹었다. 망삭(望朔)에 성묘하여 산골짜기에 길이 생겼으니 행인들이 그 여막을 효자의 여막이라 하고, 초동들이 그 길을 효자의 길이라 하였다. 70세가 되어가는데도 선조와 부모 기일에는 3일 전에 재계하고 뒤 3일까지 소식하여 초상 때처럼 하였는데 이것이 이미 가정의 가르침이 되었다. 평소 심성은 악언(惡言)을 말하지 않고, 어지러운 곳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수풀 아래에 집을 짓고 은둔하여 고을에서 모두 처사옹(處士翁)이라 칭하였다. 이렇듯 육행(六行)과 육덕(六德)을 모두 갖춘 군자이지만 숨어 산 까닭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아 공의(公議)의 실망이 되었다. 따라서 지극한 효성과 돈독한 행실을 갖춘 정은필에게 특례로 포창(褒彰)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고부군수는 2월 21일에 '탁월한 행실을 들으니 매우 가상하다. 합당하게 처분할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單子恐鑑伏以語云師之所存道之所存培養敎化莫不由師道之設也則人而無禮義倫綱者難乎免於夷狄禽獸▣……▣禮義倫綱斁敗者故玆敢齊籲伏願閤下細細 洞燭焉生等師傳茂長金榮基之親山在於 治下道內面自抱嶝地而去乙丑年入葬以後▣……▣之犯葬者起訟督掘也捧票自首也文蹟昭然牧兒蕘竪皆知所重矣是何天地理倒人理亦變是喩千萬料外法聖西堂村金富基爲名人以若干▣……▣人不顧師生之義專以挾勢但知山慾僥倖空官欲售奸計今九月良嗾囑無頼之類敺之縛之慢蔑師傅肆然勒葬于逼切九尺之地而局內之古塚始於勒葬之▣……▣矣曾外家山云云者姑爲掩人耳目之計也而渠之罪惡囙以彌彰者也到此地頭事甚無據不必售奸而設或眞箇有渠之先山朝夕往來咫尺相望之地于今數十年曾無▣是如可何敢稱托而無難犯葬乎至於起訟之境自兼官圖形決處金富基杖治枷囚定將校卽刻督掘是白遣及其犯綱正刑之一款待本 官聯禀湔雪之意曉喩諄複是白乎所是豈可以已掘暫貸性命於明法天地乎伏惟閤下以我東淵源之祖宗道德家風浹人骨髓適莅此郡立綱正俗預先欽仰玆敢前後本狀帖連齊籲卽▣ 處分依律嚴繩論報 上司是白乎旀勒葬時無頼漢指名報來一一嚴處使此末如▣無效此愚濫之弊禮義倫綱無至斁敗之地無任齊祝行下向敎是事靈光城主 閤下處分兼官[署押]戊子十一月 日靈光 沈羽澤 丁東秀 張元植 金鎭玉茂長 成夏均 姜崙秀 金汶榮 張翰汲 朴一彔 李道仲 金學年 兪鎭秀 李時演 姜道秀 姜酉秀 等〈題辭〉旣已掘去則已矣何必已甚事初一日[靈光郡守之印]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