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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마포면(馬浦面) 집강(執綱) 사통(私通) 2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執綱 龍湖里正 □…□ (흑색,6.0x4.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33_001 병술년 2월에 마포면 집강이 용호리(龍湖里) 정(正) 에게 발급한 사통 병술년 2월에 집강이 용호리 정에게 발급한 사통이다. 용호리의 3월분 역가조(役價租) 2말 3되를 읍주인(邑主人)에게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집강(執綱)이나 리정(里正)은 모두 향촌자치기구인 향약(鄕約)에 설치된 직책의 명칭이다. 사통은 관에 소속된 서리, 지방 군현의 공형, 향교 및 향리의 구성원 등이 주고받던 문서이다. 이들은 소속된 조직에서 문서 작성의 실무를 담당하였고 이들이 작성한 사통은 소속 상관을 대신하여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내용이 많았다. 다만 이들의 신분은 법전에 규정된 문무관원과는 현격히 차별되었기에 원칙적으로 관문서의 발급자 또는 결재자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즉 사통은 아전 간에 수수되는 문서로서 비록 관문서의 격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문서의 내용이나 효력에 있어서는 관문서에 준하는 기능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관문서에 담기 어려운 세세한 지시사항을 사통을 통해 전달하였기에 관원은 체통을 지키고, 아전은 실무자의 역할을 분담할 수 있었다. 관원과 아전은 신분의 차이로 인해 관에서 맡은 직무가 달랐으나 함께 관에서 공무를 수행하였고, 아전이 발급하는 사통 또한 그 이름과는 달리 관문서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였다. 사통은 법전으로 규정된 관문서가 아니었기에 일반 백성들도 흔히 사용하였고 특히 이 문서의 사례처럼 서원·향교 및 향리의 구성원이 사통을 발급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통문(通文)의 형식으로 작성한 문서의 명칭을 사통으로 기재하는 사례도 종종 확인된다. ?영총(營總)?이나 ?행문일통(行文一統)?과 같은 책에 사통의 작성 사례가 수록되어 있다.1)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고문서 입문 2?, 민속원, 2021, 448~4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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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號里正處本里春三朔役價租二斗三升 邑主人出給事丙戌二月▣…▣[馬浦執綱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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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앞면문안 알외ᄋᆞᄋᆞᆸ고 이러ᄐᆞᆺ 일긔칩ᄉᆞ온ᄃᆡ 아지 못디이다긔쳬후 실셥기나 아녀신잇가 구〃 복녀 깁쇼이다이곳 아〃은 하념 입ᄉᆞ와 싀하의 무고ᄒᆞ여이다 남은말ᄉᆞᆷ 무궁 ᄂᆡ〃긔쳬후 평안ᄒᆞᄋᆞᆸ쇼셔 죵〃문안 ᄉᆞᆸᄉᆞ오리다을츅 십이월 십이일아〃 샤리편지 뒷면형 부인 좌하 샤리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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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앞면문안 알외ᄋᆞᄋᆞᆸ고 어졔 일긔 심한ᄒᆞ온ᄃᆡ 평안이ᄒᆡᆼᄎᆞᄒᆞᄋᆞᆸ신지 복녀 구〃오며 다시 뭇ᄌᆞᆸ나이다밤 지ᄂᆞᆫ 후ᄋᆡ긔쳬후 일향 만안ᄒᆞᄋᆞᆸ신지 알고져 블임하셩이오다 질부은 하념 입ᄉᆞ와의지ᄒᆞ오니 ᄒᆡᆼ이ᄋᆞᆸ 남은 말ᄉᆞᆷᄂᆡ〃 슈셔 강왕ᄒᆞᄋᆞᆸ심 ᄇᆞᄅᆡᄋᆞᆸᄂᆡ다을츅 십이월 십이일질부 샹셔편지 뒷면슉부쥬젼 샹셔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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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 질부(姪婦)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미상 姪婦 숙부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07_001 을축년 12월 12일에 질부(姪婦)가 숙부(叔父)에게 쓴 한글 편지 을축년 12월 12일에 질부(姪婦)가 숙부님[슉부쥬]께 한글로 쓴 편지이다. 어제 매우 추운 날씨에 행차는 평안하셨는지 묻고, 밤사이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남은 말이 많지만 내내 건강하시기를 빈다는 말로 끝맺었다. 〈을축년 시누이 언간(諺簡)〉과 편지지, 글씨체, 발신 날짜가 모두 같아서 발신자는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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剗蔓來十七日鄙之進士公■墓碑營立爲料, 則 尊座與貴之堂叔丈聯鑣枉臨, 以■(光)〔生〕座右光紫, 則亦豈非好惠耶. 餘不備禮.十六日, 朴龍田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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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謹拜拜候. [着名](簡紙)歲初違拜, 迨不能寒情, 而只切停雲之懷而已. 忽於弟氏兄枉臨, 略聞近節, 乃新年平安, 㝡消息也. 慰豁十分. 凭審載陽旅上經體玉嗇所做溫理有序, 何等慰沃. 弟家慶患候,迨未復常, 焳遑焳遑. 而惟諸節之無擾爲幸耳.竊念吾兄櫟守有素, 其於▣▣之工, 不爲産累之所奪也. 此人無似上面說悚恧悚恧, 而只爲邯耶, 富貴吳楚風物,出沒於心胸中矣. 其於自反, 未免爲穹壤間蠹色耳.何以則祛此病根耶. 幸 賜誨以牖昏迷, 伏望耳. 呵呵. 餘掛, 不宣候.癸巳二月九日, 弟 曺基周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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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拜候上向拜惠覆, 今拜宋兄貴遽消息, 可謂源源者矣.憑審維夏旅上做候玉嗇, 何等仰慰.弟省依劣依, 私幸何喩. 窃想聲川岳色之間, 乞酬花鳥弄勝之債矣. 可賀臨風健羨. 弟長在産海未能躍躍出譬如下灘之船, 無以挽回, 自歎息愧. 對晤之時, 在於那間耶. 非不曾圖, 而抖擻無暇, 尤爲悵觖. 然早晏間有一進 高隱之地顯矣. 以此下諒焉. 餘座擾, 不備禮.癸巳四月六日, 弟 曺基周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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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赴後未承音?, 懸念如渴. 卽便承拜惠札, 憑審首夏令候增重, 何等仰慰. 邑弊民瘼, 自應然忝, 不遇盤錯,何別利器. 許多年癃痼之病, 幸得良醫大劑, 若能頓復之和, 則公私之幸也.不然者, 豈至於狼狽乎. 以是爲公私喜也. 服人 纔聞庶妹之在鄕者, 不起於疾, ?毒如劃病狀, 轉覺有加, 今則無日不昏眩, 只付化翁處分而已. 奈何.來貺雖知情分之所由, 而何乃太厚. 只以數字通問安否足矣. 餘外無所望於令耳. 然近來不見相問, 遺之書久矣. 寒對賴以生色.病冑將以乍開, 不任感荷之至. 餘昏昏,不能盡意.伏惟僉照. 謹謝狀上.戊申四月五日, 弟 服人 命植 頓.間升果好矣. 前後諸處所得未有如此者,但置紋頗煩, 不新奇. 恐不免套襲之然也. 可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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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顙拜言. 懸仰之餘, 得承惠復, 欣賀難竤. 謹旋寒旅中體候萬旺, 仰哀慰溸區區且祝. 罪弟 近以肩甲痰痛, 數日辛苦, 私悶私悶耳. 第當享祀之時, 一次初五日拜叙爲料矣, 病故如右, 未能振作, 且將奈何. 當此祭享, 兄之勤念,不言可狀, 何以書仰. 且饍物出於萬萬意外, 受則感謝無地耳. 胡桃至於今年, 實在小,而盡收者, 僅爲一百五枚, 而價文一兩也. 鄙村享祀費餘條中, 艸給爲艸, 以此下諒之地, 至企耳. 餘在使立促, 都不備, 謝疏上.乙卯八月三日, 罪弟 曺泰煥 謹拜疏.丁兄宜瑞亦平安, 未修各幅, 以此傳及, 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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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山壇通文右文爲通諭事 德崇而業廣 志潔而行修 生而爲後學之表率殁而爲斯文之柯 則鄙郡仁山齋裵公是也 公以新門高足 芦山私淑 早襲詩禮之訓 尤篤孝悌之行 肆力于格致誠正之功 潛心於博文約禮之學 恬靜自守 不知不慍 授徒頗富儒風賴而不墜 克守新門理師氣役之論 以衛芦山理分相涵之義 有如是之守 有如是之衛 實不愧于菜儀之亨 窃惟三山壇是芦沙老先生妥灵之所 而日新齋先生配侑之已有年素矣 據仁山而溯其源則芦山始一源也 自芦山沿其流 則仁山亦一流也 在此源流之地 躋壇從享似無事面之 逕庭鄙等猥以庸陋名參縫掖 豈可見賢而如不見聞善而如不聞固知天下人人之耳目 皆相似也 玆敢仰通惟願 僉君子浚發公議 俾遂躋亨之儀 得保崇儒之志 不任懇祈之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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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_前面)三山壇 儒會所(皮封_後面)高山書院答通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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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面)三山壇儒會所 僉座下(後面)高山書院答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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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禮拜言 向日作別 其翌日作冠山行 今月六日日歸巢 離家曠日 如是許多耳 還巢則 兄有枉訪 兼致 惠儀 是何事耶 還切不安 罔以爲謝 謹請潦炎孝中棣體萬支 渾儀勻慶 仰不已溸祝 弟 一依前樣 奉何復喩耶 先稿收集 以壽傳其暗唾爲人子者 繼志述事之一端事也 令人感賀 實非淺尠 誠力所到 必有景梨鋟行 實爲賀萬千年 在傍魯宗東春準泰諸兄安過耶 忙未各幅 罪多罪多 以此傳告 如何如何 餘多 不備疏禮 丙申五月十三日 弟 閔弘基 拜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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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기종섭(奇琮燮) 위장(慰狀)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奇琮燮 梁會甲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4년 11월 2일에 기종섭이 상주 양회갑에게 그의 아버지 소상을 위문하는 내용으로 보낸 위장 1944년 11월 2일에 기종섭(奇琮燮)이 상주(喪主) 양회갑(梁會甲, 1884~1961)에게 보낸 위장이다. 양회갑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느덧 소상(小祥)을 치른데 대한 슬픔을 위문하는 내용이다. 기종섭 자신은 질병이 생기고 길도 멀어 끝내 직접 가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기종섭의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종방(宗邦), 호는 연암(然庵)이다. 정무공(貞武公) 건(虔)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동규(東奎)이다. 품성이 강직하고 의용이 단아하여 공부를 잘했고, 예학(禮學)을 탐구하여 절문(節文)이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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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_前面)和順郡梨陽面草坊里梁會甲 孝廬 入納(皮封_後面)光山郡林谷面廣谷里奇琮燮謹慰疏(重封)疏上梁斯文大孝哀前 奇琮燮謹封(內紙_慰狀)琮燮頓首言 不意凶變先府君奄違色養 承訃驚怛不能已已 緬惟孝心純至 思慕號絶 何可堪居 日月流邁 遽經小祥哀痛奈何 罔極奈何 不審自罹茶毒氣力何似 唯冀强加疏食 俯從禮制 琮燮疾病相仍 塗途稍遠 末由奉慰 悲係增深 謹奉疏 不宣謹疏甲申十一月二日 奇琮燮 疏上梁斯文大孝哀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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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通伏惟春暮僉體萬安 竊伏惟我先師松沙先生之棄後學 今十有二年矣 嗚呼 先生在道在先生 先生歿道在遺書 使後生小子 講明斯道 獨不在遺書之役乎 此及門諸子之固未嘗一日忘于心也 然而藏之篋笥 少須臾待時者 實斯文鄭重之義 而今亦有不可膠守而任其泯沒也 曩時編錄頗欠情密 槩多闕漏 斷不可以此登梓 若復因循差緩 不爲汲汲改圖 則世風益渝 臨機順成 恐無其日 窃欲更稡淨瀉 取次設刊 而編輯之役 又難以時月 可就伏願僉尊及時致委 無有後悔 千萬千萬一. 文字自四月至八月晦內 一一爭先輸納事一. 前者謄葺 恐有訛誤之慮 必以本稿對訂事一. 通到卽日 各自傳示傍近士友 無或不知地事一. 編輯所以長城珍原面珍原里澹對軒爲定事丁卯三月 日發文曺悳承 金箕錫 康熙鎭安鍾基 梁會甲 李淳範李宏奎 李鍾遠 朴興圭安吉煥 奇老善 吳東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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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동춘선생 문집발간소(同春先生文集發刊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同春先生文集發刊所 梁會甲 同春先生文集發刊所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문집 속집(續集) 간행을 위한 취지 및 절목 등을 알리는 통문(通文) 및 이와 관련한 3건의 간찰 1928년 5월 그믐날에 동춘선생(同春先生) 문집 발간소에서 양회갑(梁會甲)과 양회을(梁會乙)에게 보낸 통문(通文) 및 간찰 몇 편이 점련되어 있는 문서이다. 첫 번째 통문은 동춘선생의 문집이 숙종의 명에 의해 간행된 문집은 겨우 10권으로 만들었으나 빠진 부분이 많아서 후학들이 탄식한지 오래되었고, 이후 백 여년이 지난 뒤 선생의 현손(玄孫)인 문원공(文元公) 역천(櫟泉) 송명흠(宋明欽) 선생이 각 집안에 있던 글을 모아서 또 8권의 별집(別集)을 만들었지만 널리 배포되지 않았으니 이는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의 말을 따른 것이며, 대대로 모은 것이 또 12권이므로 전후로 편찬된 것들을 합하면 30권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재력이 넉넉하지 못해 간행하지 못한 것은 후학들의 책임이고, 더구나 요즘처럼 인문(人文)이 비색한 시대에는 동춘선생의 전집을 간행하여 널리 펼쳐서 동몽을 깨우치고 풍속을 교도하는 바탕으로 삼고자 한다는 간행 취지를 전달하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귀향(貴鄕)의 유림들에게 혹 선생의 글이 있으면 일일이 수집하여 본 간행소로 보내달라고 하였고, 간소(刊所)는 상주군 내서면 연원동 흥암서원(興巖書院)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각 지방의 교통 편의를 위해서 발행소는 경성(京城)에 두고, 진행 방침은 협의해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7월 15일로 날짜를 정했으니 발행소로 왕림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문집 간행의 발기인은 윤용구(尹用求 1853~1939)를 비롯한 8인이다. 그 뒤에 10조목으로 구성된 절목(節目)이 점련되어 있는데, 간역소는 상주의 흥암서원으로 하고, 발행소는 경성에 두며, 원집(原集)과 속집(續集)의 규모 및 예산, 각수(刻手)의 비용, 지가(紙價), 배포 방법 및 예산, 발행소의 유지방침과 간부회의 등에 대한 것 등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뒤에는 임원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송자대전 중간소(宋子大全重刊所)와 화양소제고적보존회(華陽蘇堤古蹟保存會)의 이름으로 정묘년(1927) 7월 3일에 보낸 간찰은 간행하는 일을 우선 정지하고 일반임원이 모두 귀가했기 때문에 오는 8월 5일에 만나는 것으로 임시 임원회의 결의가 있었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화양 소제고적 보존회에서 정묘년 7월 7일에 보낸 간찰은 귀향(貴鄕)의 사우 가운데 지원하여 입회하는 사람의 명단을 7월 15일까지 적어 보내서 명부를 수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과 지원서 용지가 부족하면 더 청구하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화양은 괴산의 청천(靑川)에 있는 골짜기로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이 은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소제는 우암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686년(숙종9)에 회덕 소제동에 세운 남간정사(南澗精舍)가 있는 곳이다. 정묘년 8월에 박노정(朴魯禎) 등의 이름으로 보낸 간찰 1건이 더 점련되어 있는데 역시 화양소제고적보존회의 회원모집과 금전수합에 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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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甲邦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3년 음력 12월 27일에 전주 이갑방(李甲邦)이 전라남도 능주군 회덕면 백암동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3년 음력 12월 27일에 전주(田主) 이갑방(李甲邦)이 전라남도 능주군(綾州郡) 회덕면(懷德面) 백암동(白岩洞)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갑방은 자신이 매득한 밭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사채(私債)가 많아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백암동 상곡평(上谷坪)에 있는 치자(致字) 밭[田] 1배미 2마지기(결부수: 3부 4속)이다. 이 곳을 전문(錢文) 100냥을 받고 팔며, 신문기(新文記: 본 매매명문)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에 대한 언급은 없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전주 이갑방과 증인 강봉열(姜奉烈), 이장(里長) 민유호(閔儒鎬)인데 서명은 전주(田主)만이 하고 있다. 토지소재지인 능주군 회덕면 백암동은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백암1리 백암동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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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正二年癸丑陰十二月二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自己買得 累年耕食是多可 私債許多 故伏在綾州郡懷德面白岩洞上谷坪致字田一夜味二斗落負數三負四束㐣 價折錢文壹佰兩 依數捧上是遣 此新文一丈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爻象之端則 持此文記 告官憑考事田主 李甲邦[印: 李甲邦信]證人 姜奉烈里長 閔儒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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