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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鄕多士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 恭惟我聖朝承周宋文名之治 搜賢於道德之門 尙孔朱彰德之敎 造士於性理之學 程式薦進之路 恐有野遺勤勉揚善之方 開示言路 則徛歟盛矣我聖朝出治之具也 凡冠儒服儒者 敢不揚善以承其至旨哉 大抵本州士人鄭義林 天賦高明 係出光山 故判書公永思堂諱演之十一世孫也 年未冠多稽聖賢之規範 實踐仁義之閫域 其學素有源矣 負笈於石塘鄭先生之門 七書孝經戴經諸賢之書 博通問難 先生無不稱賞 執贄於蘆沙奇先生之門 冠婚喪祭曲禮威儀之篇識發蘊奧 皆致精微 絶意毁譽 名利之場 潛心於格致誠正之工 存養省察 不爲物累 所移造詣成德 惟以扶敎自任 故全齋任先生 世安堂金先生 勉齋崔先生 屢有書問敬愛之蔚然 爲南服儒林之矜式 道內文章俊異之士 從遊而莫之先也 可知其師門之首弟也 境內受業漸就之士尊慕 而粹然成德 則亦可謂斯文之導率也 以若良知蘊德之士泯沒無聞於世 則豈不爲聖朝之欠典乎 豈無士論之抑鬱乎 孔子曰 賢者爲國之器用 朱子曰 薦賢爲政之先務 何幸城主閤下承流宣化 下車玆土 禮周公之愛士好吳公之薦誼當 此歲貢賢良之際 撫實行報營司以彰有德 則勵風俗扶世敎 以爲何如哉 民等居同一鄕 欽嘆其才行 故玆敢齊聲仰達 伏俟轉 報營司 特蒙廷楊 則斯文幸甚 世敎幸甚 伏惟藻鑑丁亥十月 日 化民 金鍾常 李致鎬 朴其繪 梁基煥 李贄鎬 文極煥 梁會一 魯錫采 金時豊 吳在鴻 閔致魯 朴海鴻 梁益煥 金鍾浩 尹滋郁 閔泳達 梁相輔 李振燁 文泳祚 安檃 具桂勳 鄭在勳 文弼休 安澈煥 朴麟鎭 洪珽謀 鄭在淑 閔啓浩 金致錫 李之茂 宋錘 金鍾植 文鳳煥 鄭瑛錫 梁時煥 等(題辭)觀此狀內 此時如此文學 非但一邑之衆論 卽當修報是矣 論報之節 待其朝飭(背面)然後 隨學隨擧 已有國例 隨其抄入時 當報營門二十六日使[着押][綾州牧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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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박정근(朴禎根)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朴禎根 全羅都觀察使 都使<押> □…□ 3顆(9.5×9.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74_001 1888년 2월에 박정근 등 29명이 전라감영에 올린 상서 1888년 2월에 박정근 등 29명이 전라감영에 올린 상서이다. 능주 송석면(松石面)에 사는 정의림(鄭義林)은 판서공(判書公) 정연(鄭演)의 11세손이다. 이들은 정의묵의 효행과 학행을 조정에 알리고 그가 관직에 등용되기를 여러 번 청원하였다. 이들이 능주목에 청원한 것이 셀 수 없이 많고 능주목에서 전라감영에 정의묵에 대한 사안을 보고한 것이 다섯 번, 전라감영에서 조정에 보고한 것이 두 번이 넘지만 아직까지도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다시한번 감영에 상서를 올린 것이다. 박정근 등의 상서에 대하여 전라감영에서는 학행이 이처럼 탁월하니 누군들 감탄하지 않겠냐마는 국왕에게 보고하는 것은 더욱 신중해야 하므로 갑자기 가볍게 의논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상서(上書)란 백성들이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소지류(所志類) 문서의 일종이다. 소지류 문서에는 상서 외에도 단자(單子)·발괄(白活)·의송(議送)·등장(等狀) 등이 포함되었고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상서의 경우 기두어에 '上書'라는 문구가 기재된다는 특징이 있다. 관에서는 이러한 소지류 문서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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綾州儒生金鍾常李致鎬梁其煥 謹齋沐上書于巡相閤下 伏以文學德行賢能才藝 人事之所當爲 似不當褒而勸之 然民稟不同 人心有蔽 則不可不嘗之勸之 後人有所向賢才蔚興 國以致治矣 固國家有擧賢之詔刺史守相 有薦賢之政 因以成規也 但今之文學賢士 不及於古 而文學賢士之報 猥多於古 其間固不無虛實之可言 在上君子 當察其虛實 公私之分措 其所之擧 其所擧而薦進 則虛僞自戢 實行自著 薦不失當矣 大抵本州士人鄭義林 系出光山古觀察使諱麟晋十八世孫 弘文應敎諱熊十三世孫 戶曹判書諱演十一世孫 完山縣監諱斆七世孫也 素有卓異之行 受學於蘆沙奇先生之門 事親極其孝敬 鄕里稱賞 親沒哭泣哀毁 幾至滅性 而至於樵者不歌 商者撤市 居廬三年 其至行至德 傳爲里巷誦說者多矣 及其從學 四子六經性理群書 貫通浹洽 而深得蘆沙之宗旨樣轍 逍遙林邱 不以貪窮動心易操 惟以義理 自娛自適所講者 孔顔之道 程朱之書 而於天人性命之原 禮義儀則之節 博洽貫通 遠近學者 逐日踵門 問難萬變 酬答如洪鍾之應響 賢愚不齊 敎育如化工之無遺 此非特今日南服之矜式 名聲大著於畿湖嶺海之間 在前石塘鄭先生 世安堂金先生 全齋任先生 相與講論 在今淵齋宋先生 勉庵崔先生 仁山蘇先生 重庵金先生通書相講 而惟朝廷不聞名聲 鄕報道報 及前等城主之薦報頻仍 尙未蒙褒揚之典 其爲士林之抑鬱何如哉 伏願閤下 特採鄭義林之文學實行 薦進朝堂 以蒙褒典 則非特勵風敎勸後學 其爲國家之器用何如哉 生等不避猥越 摭實仰稟爲去乎 伏俟處分 千萬顒祝行下向敎是事巡相閤下 處分 戊子三月 日 儒生 金鍾常 李致鎬 朴基繪 梁其煥 李贄鎬 文極煥 梁會一 金時豊 鄭在淑 魯錫采 閔致魯 朴海鴻 安澈煥 文永祚 鄭在勳 李文洙 尹滋郁 吳秉祚 安澤煥 金鍾湖 閔啓鎬 崔相翊 文泰煥 朴璟煥 宋錘 洪珽謀 梁在鎬 朴在源 金源錫 安檃 李章茂 李相鎬 具桂勳 金鍾龍 閔泳東 梁益煥 鄭英錫 吳在鴻 等(題辭)若此道義之學非徒一省之華亦是邦國任(背面)道之器 孰不起欽 於此如有獎美之梯 當存念向事十八日都巡使[着押][全羅道觀察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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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양회락(梁會洛)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梁會洛 全羅都觀察使 使<押> 綾州牧使之印((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74_001 1888년 4월에 양회락 등 38명이 능주목에 올린 상서 1888년 4월에 양회락 등 38명이 능주목에 올린 상서이다. 양회락 등 능주의 유생들은 1885년부터 지난 1888년 3월까지 정의묵의 효행과 학행을 조정에 알리고 그가 관직에 등용되기를 여러 번 청원하였지만, 여전히 합당한 처분이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시한번 감영에 상서를 올린 것이다. 김종상 등의 상서에 대하여 능주목에서는 마땅히 전라감영에 보고하겠다는 처분을 내렸다. 상서(上書)란 백성들이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소지류(所志類) 문서의 일종이다. 소지류 문서에는 상서 외에도 단자(單子)·발괄(白活)·의송(議送)·등장(等狀) 등이 포함되었고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상서의 경우 기두어에 '上書'라는 문구가 기재된다는 특징이 있다. 관에서는 이러한 소지류 문서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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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조봉환(曺鳳煥) 등 상서(上書)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4일 曺鳳煥 等 和順郡守 <書押> 1顆(7.2×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362_001 1896년(고종33) 9월에 운곡정사 죄민 조봉환과 강생 화민 장원봉·권정직 등이 화순군수에게 호역의 감면을 청한 상서 1896년(고종33) 9월에 운곡정사(雲谷精舍) 죄민(罪民) 조봉환(曺鳳煥)과 강생(講生) 장원봉(張源鳳)·권정직(權正植) 등이 화순군수(和順郡守)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운곡정사는 죽림고사(竹林故事)에 의거하여 성현(聖賢)의 화상(畵像)을 봉안하고 봄가을로 제향하는 강당(講堂)이라 전부터 의례 호역(戶役)을 면제받았었고, 작년 가을에 호구수를 정할 때에 말이 있기에 정단(呈單)하고 제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한 와중에 이번 가을에 호역이 몇 집 견감된다는 말이 있으니 그때 운곡정사의 호역을 면제해 주어 성인을 사모하고 스승을 존중하는 의리를 보존하게 해달라고 부탁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화순군수는 자세히 조사하여 고례(古例)에 의거하여 탈급(頉給)해주라고 4일에 해색(該色)에게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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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湖里正處本里春三朔役價租五升 出給于邑主人處事丙戌二月▣日執綱[着押][馬浦執綱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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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마포면(馬浦面) 집강(執綱) 사통(私通) 1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執綱 龍湖里正 □…□ (흑색,6.0x3.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33_001 병술년 2월에 마포면 집강이 용호리(龍湖里) 정(正) 에게 발급한 사통 병술년 2월에 집강이 용호리 정에게 발급한 사통이다. 용호리의 3월분 역가조(役價租) 5되를 읍주인(邑主人)에게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집강(執綱)이나 리정(里正)은 모두 향촌자치기구인 향약(鄕約)에 설치된 직책의 명칭이다. 사통은 관에 소속된 서리, 지방 군현의 공형, 향교 및 향리의 구성원 등이 주고받던 문서이다. 이들은 소속된 조직에서 문서 작성의 실무를 담당하였고 이들이 작성한 사통은 소속 상관을 대신하여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내용이 많았다. 다만 이들의 신분은 법전에 규정된 문무관원과는 현격히 차별되었기에 원칙적으로 관문서의 발급자 또는 결재자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즉 사통은 아전 간에 수수되는 문서로서 비록 관문서의 격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문서의 내용이나 효력에 있어서는 관문서에 준하는 기능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관문서에 담기 어려운 세세한 지시사항을 사통을 통해 전달하였기에 관원은 체통을 지키고, 아전은 실무자의 역할을 분담할 수 있었다. 관원과 아전은 신분의 차이로 인해 관에서 맡은 직무가 달랐으나 함께 관에서 공무를 수행하였고, 아전이 발급하는 사통 또한 그 이름과는 달리 관문서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였다. 사통은 법전으로 규정된 관문서가 아니었기에 일반 백성들도 흔히 사용하였고 특히 이 문서의 사례처럼 서원·향교 및 향리의 구성원이 사통을 발급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통문(通文)의 형식으로 작성한 문서의 명칭을 사통으로 기재하는 사례도 종종 확인된다. ?영총(營總)?이나 ?행문일통(行文一統)?과 같은 책에 사통의 작성 사례가 수록되어 있다.1)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고문서 입문 2?, 민속원, 2021, 448~4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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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未一舍 而拜違已久 慕仰曷已 伏不審春去夏來頤養德體康寧否 伏不勝下誠之至 小生省狀姑保 而志業一着 因循悠泛 未見其進 可悚 夫以不美之質 雖百倍其功不足以變之 而今以如此 則雖欲免下等人 得乎尤不勝歎也 近與或人有論辨處而終不釋然 玆敢仰質 或曰道心是義理上發出來者也 人心是形氣上發出來者也 則人心道心非兩樣心歟 且以朱子所謂常使道心爲一身之主 以人心每聽命焉者 觀之則謂之兩樣心 何不可乎 生答曰人心道心謂之兩樣心 甚不可也 盖此心爲食色而發則是爲人心 而又商量其所發 使合於道理者 則是爲道心也 其爲食色而發者 此心也 商量其所發者 亦此心也 何可謂兩樣心也 朱子云云 豈可以爲主者爲一心 聽命者爲一心 謂有兩樣心可乎 且譬如水一也 自沙石上去則淸 自游泥上去則濁 謂有二水可乎 此其一質問者也 或又曰四端理也 而言其所乘則氣也 七情氣也 而言其所由則理也否生又答曰固然 然四端七情非兩情 四端是七情之善一邊也七情是四端之總會處也 此其又一質問者也 願文丈俯賜一言 以釋其向不釋然者如何 所質問者 固不止於此 恐不免悚仄 故止此 不復增之 餘更祝道體安康 以副私忱 留不備上 伏惟下鑑 乙卯四月一日 小生金乙洙再拜上[피봉]草坊獐村 宅 道座下 將命仙巖留謹候上 [再拜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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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承嘉命, 許以 令愛貺室于僕之令咸. 年旣長成, 玆有先人之禮, 謹行納幣之儀. 餘不備, 伏惟尊照 下察.謹拜上狀乙未四月初二日驪興后人 閔百朋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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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生員 下執事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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涓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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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南李 先達 東欽 宅丹骨吏 金弘植 伏呈.回啣十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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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式. 五馬來莅隣邑後迨謂一次奉晤矣. 竟未如意瞻悵曷勝. 卽伏惟新元政候起居迓新▣…區區無任之至. 戚從粗▣…▣…▣…▣專恃專恃. 餘…▣姑不宣, 伏惟下照. 謹候狀.乙巳元月初二日, 戚從服人 李敬元 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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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者營下拜晤, 至今懷耿. 伏惟政候起居履, 玆初寒益淂衛重,▣區具則幸矣. 何以則可更奉晤聲息, 莫憑有時, 只勞瞻言而已. 餘不備,伏惟下照. 謹拜上候狀.乙巳至月初三日, 少弟服人 晳東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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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後便梯未遂一字修候, 是迺衰懶所使焉.敢望原赦之科耶. 卽於伻來, 淂奉抵家兒書,聞承大槩安信, 慰沃何可量也. 憑審宵回,靖居體宇淸裕, 允舍得做佳穩. 從氏棣床湛吉, 吾家人亦蒙庇安好, 何等奇幸, 而將其舅者, 洞於冗役, 便萬相忘, 沒情姑舍, 瞻聆豈非可駭耶. 査契無泮苦海, 到老愈深. 春夏經歷便是刀釼山水有不足枚擧耳. 惟餘累懷遣孫兒方留邑校忠健善課, 是爲差幸. 家兒日前入邑, 姑未返面, 未知何所關而然也. 內行以九月二十三日擇送, 倘無拘碍於農務耶. 仙庄又被穴損聞不勝貢悶, 荐致之之政, 何以堪當也. 餘万, 在續后, 姑不備禮.藥材價文, 家兒未還, 故未能付呈, 恨恨耳.乙丑八月十三日, 金性洙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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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拜追謝狀.屢書情益勤矣. 感荷無量, 而所布不隱, 情緖又可見. 君子用心之忠厚, 仰賀仰賀.書後有日,朞服體候連護保重, 仰溸不任勞祝. 弟山頹虞外頭擢失懷, 慟哭失聲, 罔知所措, 承訃之日病未奔哭, 望北發喪三日成服而已. 三事之理, 安任哉運氣, 劑別無記, 未副請悶悶. 但某生某生書擲生年月日時, 則以思量劑呈矣. 放學在那日, 而明春期某業耶.歲除不遠, 餘只祝餞迓茂祉. 不備, 追謝狀.丙二之日望, 心制人 金斗衡 拜謝.某年某月某日某時, 如此書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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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양회락(梁會洛) 간찰(簡札)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梁會洛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303_001 1916년 4월 28일에 족종 양회락이 족인에게 보낸 간찰 1916년 4월 28일에 족종(族從) 양회락(梁會洛 1862~1935) 족인(族人)에게 보낸 간찰의 일부이다. 좌우에는 오침선장(五針線裝)을 한 것으로 보이는 구멍 5개가 보이고 중앙에는 양쪽을 접어 색이 진해진 흔적을 통해 간찰첩의 낙장임을 유추할 수 있다. 앞부분이 없이 편지의 중간부터 시작하고 있다. 상대방에게 필요한 공부는 내면에 힘쓰는 것[向裏之事]이라고 조언하면서 상대는 총명하고 순실하며 이미 폭넓은 공부의 바탕이 있으니 더욱 거경궁리(居敬窮理)와 격물치지(格物致知)에 힘쓸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도설(圖說)의 의의(疑義)에 대해서는 자신도 애초에 터득한 바가 없지만 모른다고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으니 이 질의를 원문 아래에 부쳤다고 하였다. 그리고 더욱 학문에 매진할 것을 당부하면서 편지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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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之劑 在吾方寸中 以此試之如何示中瞑■(心)〔目〕注心學貴有疑諸般說可想今日工夫 在於向裏之思 雖自引自咎 而此可謂進步消息以賢聰明淳實 旣有務博之工 而又此加意於窮格之正 則希賢希聖之序 顧在於此也 前日所望於賢者 惟欠向裏一段工夫 今乃如此 則賤者收桑之計亦可有賴而得遂矣 是慰是慰 圖說之疑義 我亦初無實得 而又此廢忘之餘 若存若亡 豈敢上下於講論之際哉 然以不知而不言 則亦無可知之道 故亦此質疑 付于元文之下 豈敢曰答乎 旋覺僭妄惟冀進德益勉 不備謝丙辰四月卄八日 族從會洛謝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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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정방엽(鄭邦燁) 부고(訃告) 고문서-서간통고류-부고 鄭邦燁 黃起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314_001 1939년 6월 10일에 정방엽이 유인 박씨의 별세 소식을 황기채에게 알린 부고와 피봉 1939년 6월 10일에 정방엽(鄭邦燁)이 호상(護喪)으로서, 유인(孺人) 박씨(朴氏)가 당일 해시(亥時)에 노병으로 별세했음을 알리기 위해 황기채(黃起彩)에게 보낸 부고장과 봉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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