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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喪主仁淑兄孝廬䟽上稽顙拜言 日間萬支否仰慰仰慰 就悚錢程極難中 令叔致彦許麻鞋價催促非常 故不得已書告則酒債零条一兩二戔 與今番聚斂条八戔 合文二兩毋滯出給 則豈非生色耶 餘心撓不備䟽乙巳七月十五日 弟金子旭拜[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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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審新元侍履棣體增祉 諸儀勻迪 區區溸祝 冕老省下一依前樣耳 所托記與詩文 一一不合用 自庸愧愧 置之是企 餘不宣 只希恕諒乙亥正月念日 裴錫冕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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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兒之還 已審安節 而後復有日謹更請動止候一安 弟依劣何道 就春間 弟用山後 人之有言 實意外也 不過輕視遠人 財欲所貪中發生 若畧干副其意 則以我爲先道理 亦何害也 願兄善爲我周旋 使兩間無所憾焉如何 此指敎家兒事 至■圓美之地 切祝切祝 餘在家兒口達 謹不備候丁丑陰十月初五日 弟安鍾基拜拜終始所恃而無恐者 以有如兄輩數人在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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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禿峙 薛 都監 宅 執事 入納.城南 許田制 上候狀.省式謹封.(簡紙)間頗阻音, 伏用悵悚, 伏不審這裡體候萬相, 伏溯區區, 不任之至. 査生省事粗安, 伯仲氏俱爲平常, 伏幸何達. 就張也事, 不足責, 不足論, 而一日議送, 一日投榜, 許多險談,指不勝縷此, 所謂晝出之鬼也. 鬼神待接不過多費,且渠之當初出計, 又不過如是討索而已, 十分開喻, 莫如還送, 更無至起鬧之端,若何. 所謂議送與榜記, 玆賫送,覽可詳悉.此等人物不足爲㤼, 爲拘在我淺慮, 或恐累德於査丈故也. 餘姑不備, 伏惟.庚戌四月晦日, 査生 許錝 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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恭惟時下尊體對時萬重 仰頌且祝 就悚來陰三月十五日丁午에 忠孝祠廟庭碑除幕式을 擧行하오니忙勞枉駕하시와 前賢忠孝을 欽慕하시고後裔들의 誠意를 贊揚하시와 이 자리의 榮光을 祝福하여 주시압기 玆以仰告하나이다餘多不備上甲寅陰三月一日忠孝祠儒會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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裴錫祉 字鎭萬 壬戌生 達城人 晦隱文祐后 大谷號顧堂安秉南 字 戊辰生 竹山人 牛山邦準后 梅亭號曺点燁 字松與 庚午生 昌寧人 莊襄公著后 ■莊峙里號碧山典校 李炳根 字號道齋 丁卯生 光山人 淸心堂調元 天台里一區(濟亭)[피봉]〈前面〉道谷面大谷里裴斯文學澈座下〈後面〉綾州鄕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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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하(裵錫夏)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裵錫夏 大谷譜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년 2월 8일에 배석하가 대곡리 보청에 보낸 간찰과 자신이 지어서 첨부한 삼현향사단기 병○년 2월 8일에 배석하(裵錫夏)가 대곡 보청(大谷譜廳)에 보낸 간찰과 자신이 지은 삼현향사단기(三賢享祀壇記)를 뒤에 첨부한 것이다. 배석하(1857~?)는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자선(子善), 호는 관천(觀川)이고 칠곡에서 살았다. 배경국(裵經國)의 현손이고, 1902년에 천거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제수 받았으며, 문장과 덕행으로 사림의 추중을 받은 인물이고, 《관천문집(觀川文集)》이 전한다. 보청이 설치된 곳은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에 설치한 보청이고 달성배씨 대곡파의 파보를 간행하기 위한 보소로 추정되며, 대곡파는 조선 단종조에 성환도 찰방(成歡道察訪)을 지낸 우재(寓齋) 배두유(裴斗有 1404~1475)가 단종의 손위(遜位)를 한탄하며 남쪽으로 내려온 뒤로 형성된 파이다. 간찰의 내용은, 보소에서 교감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는 분들에 대한 안부를 전하고 말석에나마 잠깐 참여한 뒤 집에 돌아오니 심한 피로를 느낀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고 백봉(栢峰) 족조(族祖)가 부탁한 《구소수간(歐蘇手簡)》과 금포(錦圃) 족조가 부탁한 《활순방문(活順方文)》을 보내드린다고 하였고 《회산운총(晦山韻摠)》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으므로 다음 기회에 보내드리겠다고 하였다. 또 자신이 대곡보소에서 출발할 때 여러 종인들이 직접 부탁하였기에 부족하지만 〈삼현향사단기(三賢享祀壇記)〉를 지어 보내니, 만약 이 글을 쓰게 된다면 자신이 지은 것에 구애받지 말고 타당하지 않은 곳은 첨삭해서 남들의 웃음을 사지 않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명전(名錢)은 각처에 통기해서 빨리 수납을 완료해서 보청(譜廳)에 납부할 계획이고, 족보를 분질(分秩)하는 사안은 마땅한 쪽으로 써서 올릴 계획이라고 하였다. 뒤에 첨부한 〈삼현향사단기〉는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있는 삼현사단(三賢祠壇)의 기문이고, 삼현사단은 1868년에 훼철된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 의암(義菴) 민회삼(閔懷參), 수월당(睡月堂) 양이하(梁以河)를 향사한 옛터에 단을 설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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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城棣座下 允洪氏亢陽爲咎 不審棣體益衛 春間令允巹禮 想必利行 而閤節均穩耶 爲溸區區者 摯情下長時泄痢 專沒佳况 苦憐奈何 第俟一者奉攄 而各在貧病 亦不能得 或可從速惠然耶 病甚不備候禮壬申六月卄日 情下高光善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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曩書如得尺蔡拱璧 至今摩娑 自不覺弊丌頓富也 未審花煦棣體益衛 大覃均禧 旣溯且仰之至 令咸以此妙齡 多有所進就底望可愛 但恐以此病昏多負其所以來之意 奈何 眩昏忒甚剗蔓 不備追謝儀戊午二月卄四日 病生高光善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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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允洪 柄聖曩書如得尺蔡拱璧 至今摩娑 自不覺弊丌頓侈也 仍審棣體益衛 旣溯且仰 令咸以此妙齡 多有所進就底望可愛 但恐以此病昏 恐負所以來之意 奈何 第俟一者奉攄 而各在貧病 亦不能 或可從速惠然耶 拙句搆去詩云乎哉 笑領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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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未審日來再從兄主氣體候康寧 少大各節俱在平泰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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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에게 異議가 發生하야 知面損傷할ᄲᅮᆫ아니該木價格도 必至折高登할 憂慮가 有之云이라ᄒᆞ시니 弟以思料則價格之高下은 勿論ᄒᆞ고 相視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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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양회락(梁會洛)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梁會洛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303_001 1913년 3월 26일에 족종 양회락이 보낸 간찰로 수신인 미상인 간찰첩의 낙장 1913년 3월 26일에 족종(族從) 양회락(梁會洛 1862~1935)이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 적힌 간찰첩의 낙장이다. 좌우에는 오침선장(五針線裝)을 한 것으로 보이는 구멍 5개가 보이고 중앙에는 양쪽을 접어 색이 진해진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번 지재(芝齋)에서 작별한 것이 꿈속만 같고 당시 자신에게 해준 말이 도탑고 정다웠는데 또 서신을 보내주니 병을 앓고 있는 중에 몹시 감사하다고 인사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것이 여러 달이라 아직도 원기가 소진되어 병을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자신이 병 때문에 간행하는 일을 함께 할 수 없지만 널리 배우고 체험한 공력이 바로 여기에 있으니 모쪼록 좌우를 응대할 때 근원을 취하여 배운 바를 잃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독서한 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우리 가문의 자제들 가운데 상대방이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며 독려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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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정현채(鄭現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現采 梁會甲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4년 5월 12일 정현채가 원숙 양회갑에게 보낸 간찰 1914년 5월 12일에 손제(損弟) 정현채(鄭現采 1890~?)가 원숙(元淑) 양회갑(梁會甲 1884~1961)에게 보낸 간찰이다. 정현채(鄭現采)는 자(字)가 원실(元實),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일신재집(日新齋集)》 문인록에 실린 인물로 확인된다. 원숙은 양회갑(梁會甲 1884~1961)의 자이다. 본관은 제주(濟州), 호는 정재(正齋), 아버지는 양재덕(梁在德)이고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 안평환(安平煥)의 딸이며,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정현채는 평소 얼굴만 알고 지낸지는 몇 년 되었지만 학문적 토론이나 가르침을 받지 못해 아쉬움을 표하는 것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공맹(孔孟)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세태를 한탄하고 불교의 교리를 비판하였으며 오늘날 이른바 개화라는 것이 어떠한 법교인지 알 수 없거니와 젊은이들이 날로 조상을 등 돌리고 스승을 배반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한탄하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원숙 형이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홀로 우뚝 서서 유학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고 계신다면서 칭송하는 말을 하였다. 근래 몸에 병을 얻어 바깥출입을 못하고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였고, 자신의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적 양공(狄梁公)이 침술을 써서 부잣집 아이 코끝의 혹을 치료했던 것처럼 자신에게 가르침을 보내줄 것을 청하였다. 간찰 말미에는 춘부장의 안부 및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도 전하면서 보시고 불에 태워 없애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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曩於芝齋 病裏奉別 依若夢境黙記那時贈我語 良覺情誼之勤厚而况復一度惠椷 踵至於痛苦中 慰我病懷 此意良勤 何日可忘 適此春堂叔主枉訪 以知芝齋旋旆有日曠省餘經况 不以旅苦而有損 仰慰叶聞 族從出入鬼關 洽滿數朔 尙此眞元澌奪 末由振作 悶憐奈何 窃唯美業緣於刊事 雖不能對案耽讀而博學體驗之功 正在此處 須於左右酬接之際 取之逢原 不失所學 則前日讀書儘覺不虛 而今日吾門佳子弟 非賢者而誰耶 此於平素硏究之餘 綽有餘裕 而相愛之深 如是瀆告 或可情納耶病昏手戰 略此寄情 唯冀黙亮癸丑暮春卄六日 族從會洛頓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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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포충사(褒忠祠) 통문(通文)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褒忠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에 송와 정장규의 유고를 간행하고자 하니 호응해 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통문. 1928년에 포충사에서 보낸 통문의 초본이다. 松窩 鄭章奎의 유고를 간행하고자 契를 조직하고자 하니 호응을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이 초본에 따라 작성된 통문의 원본을 확인할 수 있는데,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무진년 포충사(褒忠祠) 경의당(景義堂) 포장(褒奬)관련 통문(通文)'이라는 사료명으로 제공되고 있다. 여기서 제공되는 원문과 본 통문의 초본의 내용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문서 작성시기를 알 수 있다. 초본의 작성자는 '鄭'으로 적혀 있는데 원본은 鄭斗和 등이 연명되어 있다. 또한 이 통문에서 간행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는 문집은 '故判中樞松窩鄭公'의 遺稿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佯松窩遺稿』 1책 5권이 남아 있다. 여기에는 5세손 鄭煥琫이 지은 발문을 실려 있다. 본 통문 초본과 통문 원본에 분명히 5세손 '煥琫甫'가 유고를 간행하고자 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 중인 『佯松窩遺稿』은 이 통문에서 간행하고자 하는 '松窩鄭公'의 유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문집의 간행년도는 1942년이다. 따라서 통문 원본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기입한 鄭斗和는 일제시기에 생존한 조선귀족 정두화(1882~1939)일 가능성이 크다. 통문 서두의 松窩 鄭章奎의 생전 행적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정장규는 총명한 자질을 타고나서, 일찍이 雲坪 宋先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여기서 송선생은 송시열의 현손인 宋能相(1709∼1758)을 가리킨다. 그리고 金漢湖 선생에게 성리학을 공부하였으며, 禮說에 대해 깊히 연구하였다. 그리고 文辭에 통달하였는데, 宋性潭, 李鏡湖, 朴謙齋 등과 교유하였다. 『佯松窩遺稿』에는 이 인물들과 주고받은 서간이 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대의 석학으로 인정받던 정장규는 곧 어사의 천거로 능참봉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그는 상소를 올려 사직하며, '讀書하고 몸을 닦는 것은 선비된 사람의 본분입니다. 실상 없는 이름으로 성은을 잘못 입었습니다. 지극히 우매하고 극히 고루한 제가 어찌 감히 임금의 얼굴을 올려다 볼 수 있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정장규는 만년에 국왕의 부름을 받아 어전에 나아간 적이 있었다. 임금께서 '그대의 연령이 높으니 마땅히 壽爵을 내린다.'라고 하며 특별히 가선대부의 관품을 내리며 經筵에 입시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또 늙어서 사리판별이 어둡워서 감당하기 어렵다고 사양하였다. 그리고는 곧 차자를 작성하여 聖學十圖를 제출하였다. 임금을 이를 극히 칭찬하며 判中樞府事의 직함을 내렸다. 끝내 관직 생활을 사양한 정장규는 사직을 요청하여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시골에서 학자의 학문적 의문에 답을 풀어주며 살았고, 매달 말에 鄕飮禮을 행하여 太極圖說을 강의하였다. 통문에서는 이와 같이 정장규의 삶에 대해 간단히 정리한 후, 곧 현재 후손이 그의 遺集의 초고 6책과 儀要補遺 상편을 갖고 있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간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5세손인 煥琫께서 지금 원고를 校印하길 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契를 조직하여 간행 비용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통문을 받는 곳에서는 부디 호응해서 도와주었으면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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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 통문(通文)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綾州鄕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7년 3월에 능주향교 등에서 국채보상 운동 등의 건에 대해 받은 통문의 초본. 1907년 3월에 능주향교 등에서 받은 통문 등 4건을 베껴 놓은 초본이다. 문서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일부가 결락되어 있다. 4건의 통문은 모두 정미년 3월일자로 발송되었다.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2월에 대구의 廣文社에서 담배 소비를 줄이고 이를 통해 국채를 갚아 나가자고 제창하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 통문이 작성된 연도는 이 국채보상운동이 처음 발흥되기 시작할 때인 1907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첫 번째 통문은 1907년 3월 5일에 능주향교로 보낸 것이고, 두 번째 통문은 같은 해 3월 9일 期成會長 朴源奎에게 보냈다. 세 번째 통문은 작성일자는 적혀 있지 많고 능주향교에 보냈다. 네 번째 통문은 1907년 3월 22일에 기성회장에게 보냈다. 세 통문 모두 '梁會源'이라는 인물의 현재 행적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여기서 기성회장은 어떤 사업을 위해 결성된 기성회의 회장을 가리키는 것인지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통문에서 주로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 六忠臣을 모시는 院宇 건립의 반대하는 인물의 행태를 알리고 있는 사실로 볼 때, 이 사업을 위한 기성회장일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통문은 국채보상운동을 핑계로 太學을 멸시하고 의리를 뒷전에 두는 형태를 멈추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향회원의 의중을 급히 살펴 알려드리겠다고 하고 있다. 두 번째 통문은 六忠臣을 모시는 院宇를 건립하고자 하고 있는데, 일전에 광주향교에서 양회원이 말도 안되는 말을 명륜당에 크게 적어 걸어놓는 행위를 했다고 알리고 있다. 세 번째 통문은 마찬가지고 六忠臣을 모시는 원우의 건립 운동을 저지하고 있는 양회원을 비난하고 있다. 여기서 양회원은 기묘명현인 梁學圃의 후손인데도 사림에게 치욕을 끼친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네 번째 통문은 저쪽의 의도는 국채를 갚기 전에는 院宇를 짓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본 통문 초본은 1907년 당시 六忠臣을 모시는 院宇를 건립하기 위한 기성회를 조직하였고, 능주향교에 소속된 朴源奎이 회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당시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광주향교를 중심으로 기성회의 활동을 비난하는 움직임이 일어난 사실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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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이성삼(李成三)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林成居 李成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7년(고종24) 9월 18일에 밭주인 임성거(林成居)가 전라도 화순현 회덕면 백암동에 있는 밭을 이성삼(李成三)에게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87년(고종24) 9월 18일에 전주(田主) 임성거(林成居)가 화순현(和順縣) 회덕면(懷德面) 백암동(白巖洞)에 있는 밭을 이성삼(李成三)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임성거는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사채가 많아서 부득이하게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백암동에 있는 여자(呂字) 전(田) 2마지기 1편(결부수: 6부 2속)이다. 이 곳을 전문(錢文) 15냥을 받고 신문기 1장과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 1장을 준다고 명시하였다. 문서 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전주 임성거와 증필(證筆: 증인과 문서작성자) 유학(儒學) 이인서(李仁瑞)이다. 토지소재지인 회덕면 백암동은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백암1리 백암동 마을이다. 문서의 끝에 매매할 때 줄과 안주로 1냥 5전을 썼음도 함께 명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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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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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十三年丁亥九月十八日 李成三前明文右明文事 自己買得 累年畊食是多可 私債許多 故不得已 伏在懷德面白岩洞呂字田二斗落只一片負數六負二束庫乙 價折錢文拾五兩 依數捧上是遣 右人前 倂以新舊文二丈 永永放賣爲去乎 日后若有爻象之弊則 持此文記告官卞呈事田主 林成居[着名]訂筆 李仁瑞[着名]此亦中賣買時酒肴一兩五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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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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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7년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朴權奎 朴權奎<罪人背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7년(고종3) 1월 19일에 가대주 박권규(朴權奎)가 영광군 후증도 대초동에 있는 집과 가대를 팔면서 발급한 가사매매명문 1867년(고종3) 1월 19일에 가주(家主) 박권규(朴權奎)가 후증도에 있는 집과 가대를 팔면서 발급한 가사매매명문이다. 박권규는 자신이 물려받아 살던 곳을 형세 상 부득이하여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대상은 영광군(靈光郡) 후증도(後甑島) 대초동(大椒洞) 서촌(西村)에 있는 집[家] 5칸과 행랑 4칸, 대전(垈田) 9속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20냥에 거래한다고 하였는데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집 주인 박권규 1인으로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문서 첫줄에 연호와 간지가 불일치하는데 1년의 차이가 나고 있어 1년 더 빠른 간지를 기준으로 연도를 환산하였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영광군 후증도는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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