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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拾四年戊子正月二十四日 前明文右明文事 由來炭山 數年收護是多可 勢不得已 黃田面山嶺村後天皇峙三嶝貳谷等地 價折錢文壹兩依數捧上是遣 右前新文一丈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他說則 以此文記憑考事炭山主 幼學 李彦宇 喪不着證人 幼學 文秉元李丙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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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이돈덕(李敦德)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基榮 李敦德 李基榮<着名>, 李命建<着名>, 李奎衡<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4년 3월 26일에 李基榮이 門族인 李敦德에게 토지를 매도하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기영은 재산을 매도하는 이유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팔고 있는 토지는 조상에게 전래받은 텃밭의 동쪽 변에 있는 은행나무 바깥쪽의 唐字 자호 1마지기이다. 밭이기 때문에 면적을 '~~耕'으로 표기하는 관례가 있었지만, 숫자는 비워두고 '所耕'만 기재하였다. 結負數는 4부 1속이다. 토지와 함께 밭 바깥에 있는 뽕나무도 매도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본래 매도하는 목적물의 소유 경위를 증명해줄 문서인 本文記도 함께 넘겨야 하지만, 여기서는 '都文記에 함께 적혀있기 때문에' 지급하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都文記는 재산을 물려주면서 여러 수취자의 재산목록을 통괄하여 작성한 문서를 가리킨다. 즉 이기영이 팔고 있는 토지는 물려받을 때 함게 작성한 분재기가 본문기가 도지만, 다른 재산이 함께 적혀 있어서 이를 넘길 수 없다는 뜻이다. 매도하면서 받은 대금은 동전 28냥이며, 문중 동족인 幼學 李命建이 증인을, 문중 동족인 幼學 李金衡이 필집을 맡아 문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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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三年丁丑八月卄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 傳來茂界 累年起耕是多可 移買次 求禮艮田面龍池洞眼山坤軰山茂界二谷三登 價折錢文貳兩五戔 依數捧上爲遣右前新文記一丈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雜談是去等 以此文記相考事茂界主 自筆 幼學 金石禮[畵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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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箕瑞 崔箕瑞<着名>, 韓道一<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5년(고종42) 1월에 답주 유학 최기서가 구례군 간전면 당자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905년(고종42) 1월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최기서(崔箕瑞)가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최기서는 자신의 답을 다른 땅으로 옮겨 사기 위해서 구례군(求禮郡) 간전면(艮田面) 가수평(哿誰坪) 당자(唐字) 2마지기(결부수: 7부5속)를 전문(錢文) 310냥을 받고 판다고 하였다.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중간에 잃어버려서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최기서와 증인 한도일(韓道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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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光武九年乙巳五月日 前明文文爲段 自己畓 以移賣次 伏在艮田哿誰坪唐字二斗落□□夜味卜數七卜五束庫乙價折錢文參佰十兩 依數捧上是遣 舊文段中間閪失 故以新文一張 右前永永放賣 日後憑考事畓主 幼學 自筆崔箕瑞[着名]訂人 韓道一[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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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齊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고종13) 1월 15일에 답주 유학 박제순이 구례현 간전면 산정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6년(고종13) 1월 15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박제순(朴齊淳)이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제순은 자신이 물려받은 논을 여러 해 지어먹다가 형편상 부득이하여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구례현(求禮縣) 간전면(艮田面) 산정리(山亭里) 덕거리평(德巨里坪)에 있는 주자(周字) 5마지기 중 북변 3마지기(결부수: 12부 4속)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210냥을 받고 팔았는데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다른 전답과 함께 있어 내어 주지 못하고 신문기(新文記: 지금 작성된 토지매매명문) 1장을 내어 준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박제순 1인으로 증인 없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간전면 산정리는 현재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 삼산리 산정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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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召史 金召史<右掌>, 李秉昱<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5년(고종2) 12월 15일에 답주(畓主) 김조이(金召史)가 영광군 후증도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65년(고종2) 12월 15일에 답주(畓主) 김조이(金召史)가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조이는 자신이 사서 갈아 먹던 곳을 쓸데가 있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영광군(靈光郡) 후증도(後甑島) 소지명(召地名) 대촌(大村) 뒤쪽의 당치(堂峙) 아래에 있는 정자(亭子) 위에 있는 밭[田] 2마지기와 개장동(盖葬洞) 산지 곁에 있는 전(田) 2마지기와, 개장동 산지의 동범(東犯) 내에 있는 익전(益田) 아래에 있는 밭 2작(作) 3마지기, 총합7마지기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60냥을 받고 팔며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잃어버려서 줄 수 없다고 명시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전주 김조이 이외에 증필(證筆: 증인과 문서작성자)로 참여한 이병욱(李秉昱)이다. 조이[召史]는 양민의 아내나 과부를 부르던 명칭으로 앞에 성(姓)을 붙여 호칭하였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영광군 후증도는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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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二年丙子正月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 傳來畓 累年耕食是如可 勢不得已 伏在求禮縣艮田面山亭里德巨里坪周字五斗落內北邊三斗落只負數十二卜四束庫乙 價折錢文貳百拾兩 依數捧上爲遣 旧文記段 他畓幷付 故未得出給 以新文一丈 右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子孫中 若有雜談紛紜之弊 則以此文記相考事畓主 自筆 幼學 朴齊淳 喪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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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徐相基 金澤絃<着名>, 金贊斗<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고종35) 11월 20일에 답주 유학 서상기가 순천 황전면 산령촌의 논과 밭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98년(고종35) 11월 20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서상기(徐相基)가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서상기는 자신이 매득하여 계속 세금을 받아오다가 형세 상 부득이하여 방매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촌(山嶺村) 후평(後坪)에 있는 섭자(攝字) 정답(丁畓) 1마지기와 전(田) 태종(太種) 2마지기와 감나무 2그루, 유목(油木) 수 십 그루, 대추나무 수 십 그루와 회장(灰場)(총결부수: 7부 2속)으로 조(趙) 노(奴) 복만(福萬)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곳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70냥이며,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갑오년 동학 소요 때에 유실되었다고 하며 신문기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시 참여자는 전답주 유학 서상기와 증필(證筆: 증인과 문서작성자)로 유학 김택현(金澤絃), 김찬두(金贊斗)이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촌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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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光武二年戊戌十一月卄日 前明文右明文事 自己買得畓 累年收稅是多可 勢不得已 放賣次 府地順天黃田面山嶺村後坪攝字丁一斗落果田太種二斗落果柿木二株油木數十株棗木數十株灰場並負數柒負貳束趙奴福萬帳㐣 價折錢文柒十兩 依數捧上是遣 舊文記甲午東擾流失 故右人前以新文一丈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二說則 以此文記相考事田畓主 幼學 徐相基 喪不着證笔 幼學 金澤絃[着名]金贊斗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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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肆年乙丑十二月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買得耕食是如可要用所致 故靈光海甑島召地名大村後堂峙下亭子上伏在田貳斗落果 盖葬洞林?伏在田貳斗落果 東犯內益田下伏在田貳作參斗落只合柒斗落只所耕 庫叱 價折錢文陸拾兩 依數捧上爲遣 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門中兄弟侄間 若有他談之弊則 以此文記告官卞呈事 亦在 本文記迺失 故不得出給印田主 金召史[右掌]證筆 李秉星[着名]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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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廷讚 朴廷讚<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1년(고종8) 1월 12일에 답주 유학 박정찬이 구례 간전면 산정평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1년(고종8) 1월 12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박정찬(朴廷讚)이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정찬은 자신이 물려받은 논을 여러 해 경작하다가 형편상 부득이하여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구례현(求禮縣) 간전면(艮田面) 산정평(山亭坪)에 있는 죄자(罪字) 답(畓) 2두5도락지(결부수: 7부3속)이다. 이 땅을 전문(錢文) 125냥을 받고 팔았으며,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다른 전답과 함께 붙어 있어서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박정찬 1인으로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간전면 산정평은 현재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 삼산리 산정마을에 해당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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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年辛未正月十二日 前明文右明文事段 由來畓 累年耕食是如可 勢不得已 艮田面山亭坪罪字二斗五刀落只負數七負三束庫乙 價折錢文壹百貳拾伍兩依數捧上爲遣 舊文記段他畓幷付 故以新文一丈 右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則 以此文記憑考事畓主 自筆 幼學 朴廷讚[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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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梁顯汶 梁顯汶<着名>, 李基佑<着名>, 徐相奎<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0년(고종27) 12월 11일에 답주 유학 양현문이 순천부 황전면 중고개평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90년(고종27) 12월 11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양현문(梁顯汶)이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양현문은 자신이 산 논을 여러 해 갈아 먹다가 형세가 부득이 하여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하도(下道) 구룡(九龍) 뒤쪽의 중고개평(中高介坪)에 있는 종자(從字) 답(畓) 2마지기(결부수: 7부)이다. 거래 가격은 전문(錢文) 80냥이며,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화재로 타버려 줄 수 없고 신문기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양현문과 증필(證筆: 증인과 문서작성을 겸함) 유학 이기우(李基佑)와 서상규(徐相奎)이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구룡 중고개평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덕리 구룡마을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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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六年庚寅十二月十一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自起買得畓 累年耕食是多可 勢不已 府地黃田面下道九龍後中高介坪從字畓貳斗落負數七卜㐣 價折錢文捌拾兩 右前依數捧上是遣 旧文段中年火災燒失 故以新文一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是非則以此文記相考事畓主 幼學 梁■■〔顯汶〕[着名]證笔 幼學 李基佑[着名]徐相奎[着名]【뱀이數十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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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豊陸年丙辰三月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買得畊食是如可 要用所致 勢不得已 郡地後甑島南过召地名內乺墱伏在沙畓參夜味壹斗伍升落只所畊 庫叱 錢文拾兩 價折依數捧上是遣 右人前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是去等 以此文記告官卞呈事 此亦中 本文記段 他文書幷付未得出給印自筆 畓主 朴學島[着名]訂人 安憲圭[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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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學島 朴學島<着名>, 安憲圭<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6년(철종7) 3월 17일에 답주(畓主) 박학도(朴學島)가 영광군 후증도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56년(철종7) 3월 17일에 답주(畓主) 박학도(朴學島)가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학도는 자신이 사서 갈아 먹던 논을 쓸데가 있어 부득이하게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영광군(靈光郡) 후증도(後甑島) 남변(南邊) 소지명(召地名) 내 솔등(乺墱)에 있는 모래답[沙畓] 3배미 5두 5도락지이다. 이곳을 전문(錢文)10냥을 받고 판다고 하였으며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다른 전답과 함께 붙어 있어서 내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박학도와 증인 안헌규(安憲圭) 2인으로 답주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영광군 후증도는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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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二彦 金二彦<着名>, 金應祿<着名>, 鄭學瑞<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4년(철종5) 1월 21일에 전주(田主) 김이언(金二彦)이 영광군 후증도 동면 밭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54년(철종5) 1월 21일에 전주 김이언이 밭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이언은 자신이 사서 갈아 먹던 땅을 부득이 한 사유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영광군(靈光郡) 후증도(後甑島) 동면(東面) 도락지(道洛只) 길가에 있는 밭 미모(米牟) 4두락지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20냥을 받고 팔며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다른 전답과 함께 붙어 있기 때문에 내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전주 김이언과 증인 김응록(金應祿), 필(筆: 문서작성자) 정학서(鄭學瑞)이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영광군 후증도는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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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豊四年甲寅正月二十一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買得畊食是多可 不得已 灵光後甑島東面道洛只路上伏在田米牟四斗落只所耕 庫叱 價折錢文貳拾兩依數捧上爲遣 右人前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子孫中 若有他弊則 持此文記告官卞呈事亦在 本文記段 他田畓幷付 故不得出給印田主 金二彦[着名]證人 金應祿[着名]證 鄭學瑞[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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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潤相 趙潤相<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8년(고종15) 1월 25일에 답주 유학 조윤상이 순천부 황전면 산령리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8년(고종15) 1월 25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조윤상(趙潤相)이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조윤상은 자신이 물려받아 여러 해 세금을 받았던 논을 자신이 이사 간 후에 땅을 옮겨 사기 위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리(山令里) 송정평(松亭坪) 등자(登字) 정답(丁畓) 위쪽 3마지기(결부수: 10부 8속) 노(奴) 명진(命辰)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곳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62냥 5전이며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다른 전답과 함께 붙어 있어 내어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조윤상 1인으로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리는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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