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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김상현(金翔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翔鉉 李應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인년 4월 17일, 제 김상현이 상대 집의 결미 중 15두를 지금 가는 사람에게 내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이응만 형 집으로 보낸 서간. 경인년 4월 17일, 제(弟) 김상현(金翔鉉)이 상대 집의 결미(結米) 중 15두(斗)를 지금 가는 사람에게 내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이응만(李應晩) 형 집으로 보낸 편지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적조했다며 요즈음의 상대 안부를 묻고 자신은 전과 같이 지낸다고 했다. 주요 내용은 이번에 가는 사람에게 귀하의 댁에 있는 결미(結米) 중 15말을 내어 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발신자 김상현은 자신의 소재지를 부남(府南)이라고 적었다. 수신자 이응만은 송월(松月)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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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阻茹悵. 恪詢此來靜候連衛万安, 慰溸不淺. 弟 依前,此外何聞. 就 貴宅結米中拾五斗,今去人出給伏望耳.庚人四月十七日, 弟 金翔鉉 拜拜.(背面)松月 李 碩士 應万兄宅 入納府南 謹候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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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명호(李明浩)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明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0년 2월 8일, 상중의 사제 이명호가 사돈댁에 새해 새봄의 안부를 묻고 사위를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한 편지. 1920년 2월 8일, 상중인 사제(査弟) 이명호(李明浩)가 사돈댁에 새해 새봄의 안부를 묻고 사위를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한 편지이다. 새해 새봄을 맞이하여 사돈어른 및 집안 식구의 안부를 물었다. 상중에 있는 자신 쪽은 식솔들이 잘 있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사위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물으며 항상 눈에 그리워 오래도록 보지 않을 수 없으니 자신 쪽으로 보내주실 수 있느냐고 묻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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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회(姜綸會)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姜綸會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0월 초8일, 강윤회가 상대의 은자 색이 변한 일로 값을 돌려드리겠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 10월 초8일, 강윤회(姜綸會)가 상대에게 준 은자(銀子)의 색이 변한 일로 값을 돌려드리겠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지난번에 왕림해 주신 일은 뜻밖의 일이었다며 그때 당시의 일이 민망하고 부끄럽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겸하여 주신 물고기에 감사하고 요즈음 상대와 그 아버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상중인 자신은 하는 일을 어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주요내용은 은자(銀子)가 색이 변한 일을 두고 이에 추심(推尋)해 올리겠다는 것, 옳고 그름은 자신이 불민해서 그러한 것이라며 너무 책하지 말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머지는 이달 중에 만나 뵙겠다며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강윤회의 이름 끝에 '어릴 때 이름은 자현(子賢)'이라는 주기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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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張便是年前, 景慕何時可弛. 謹未審春殷,尊春府査丈氣體候迎泰神護, 大都諸節一直佶勝否? 並溸仰切仰切. 罪弟頑縷食息, 無庶平人, 罪悚罪悚. 所率則無警, 私分之幸也.咸郞安侍善課否? 常在阿睹, 久無見止, 情私悵結, 專便有价, 愧極愧極, 望須命送如何? 餘謹不備. 伏惟尊照. 上狀.庚申二月八日, 罪査弟李明浩 拜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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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候書向於枉杖, 意外意. 而率主客住, 且悶且恥矣. 兼在 惠鱄(?)萬賀不已. 伏不審此辰做候侍旺, 春堂亦萬康,幷溸且祝. 罪弟, 營事何喩.第銀子事 以爲色卞云,故玆呈推尋, 而其在是非, 於吾不敏, 勿爲 惠責,如何. 餘在月中面對, 不備.十月初八日, 姜綸會 拜疏.【小名 子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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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安浩 鄭安浩<着名>, 崔孟德<着名>, 李基甫<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0년(철종11) 11월 27일에 답주 유학 정안호가 순천부 황전면 산령촌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60년(철종11) 11월 27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정안호(鄭安浩)가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안호는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경작하다가 형편상 부득이 유용하게 쓸 곳이 있어서 논을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촌(山嶺村) 금암교(錦岩郊)에 있는 등자(登字) 답(畓) 2마지기(결부수: 5부 6속) 노(奴) 설엽(雪葉)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기재된 곳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30냥이며, 신문기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유학 정안호와 증인 최맹덕(崔孟德)과 이기보(李基甫) 총 3인이다. 답주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촌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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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豊十年庚申十一月二十七日 前明文右明事段 自起買得畓 累年耕食是如多可 勢不得是 要用所致 順天黃面山嶺村伏在 錦岩郊登字畓 貳斗落只負數伍負陸束 奴雪葉帳㐣價折錢文參什兩依數捧上是遣 右前新■(旧)文記■■(幷以)〔一丈〕 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是非之端去等 以此文記告官卞定事畓主 自筆 幼學 鄭安浩[着名]證人 崔孟德[着名]證 李基甫[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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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浚良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8년(고종25) 1월 25일에 답주 유학 조준양이 순천부 황전면 삽치 구계평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88년(고종25) 1월 25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조준양(趙浚良)이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조준양은 자신이 물려받은 논을 여러 해 세를 거두다가 이사하고자 논을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구계평(九溪坪)에 있는 종자(從字) 정답(丁畓) 4마지기(결부수: 10부) 노(奴) 세상(世尙)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곳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130냥을 받고 팔았으며 신문기와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도 함께 준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조준양 1인으로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삽치는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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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四年戊子正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 傳來畓 累年收稅是多可 移居次 府地黃田面霅峙九溪坪伏在 從字丁四斗落只負數十卜奴■(永)世尙帳㐣 價折錢文一百三十兩 依數捧上爲遣 新旧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是非則 以此文記告 官卞呈事 自笔 畓主 幼學 趙浚良 喪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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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토지매매명문(土地放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德一 金德一<着名>, 梁顯昫<着名>, 鄭文甲<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9년(고종 6) 10월 27일에 무계주 유학 김덕일이 구례현 간전면 산령동에 있는 자신의 황무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69년(고종 6) 10월 27일에 무계주(茂界主) 유학(幼學) 김덕일(金德一)이 자신의 산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덕일은 자신이 물려받은 무계를 여러 해 갈아 먹다가 부득이하게 긴히 쓸 곳이 있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산지는 구례현(求禮縣) 간전면(艮田面) 산령동(山令洞) 산의 동쪽 편에 있는 무계(茂界)로 동쪽으로는 장등(長登), 남쪽으로는 장등(長嶝)의 중앙로 윗부분을 한계로 삼은 곳이다. 이를 전문(錢文) 1냥을 받고 신문기(新文記) 1장을 주고 영원히 판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주인 김덕일 외에 증인 유학 양현구(梁顯昫)와 정문갑(鄭文甲) 총3인이다. 주인 김덕일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간전면 산령동은 현재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 금산리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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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八年己巳十月卄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 矣傳來無界 累年耕食是多可 不得已要用所致 府地艮田面山令洞山東便茂界東便長等南便長登中路上爲限 價折錢文壹兩 依數捧上爲遣 右前新文記一丈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子孫中 若有是非之端是去等 以此文記相考事自筆 茂界主 幼學 金德一[着名]證 幼學 梁顯抱[着名]幼學 鄭文甲[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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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浚福 等 3名 趙浚福<着名>, 梁致敎<着名>, 梁致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9년(고종26) 12월 1일에 계중의 조준복 등 3인이 순천부 황전면 산령리 일대 산지의 밭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89년(고종26) 12월 1일에 계중(禊中)의 조준복(趙浚福) 등 3인이 산지에 있는 밭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계중 회원인 유학 조준복, 양치교, 양치옥 등 3인은 계중에서 매입하여 여러 해 세금을 거두었던 논을 팔게 되었다고 하였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山嶺) 구계평(九界坪)에 있는 직자(職字) 정답(丁畓)의 위쪽 동남쪽에 있는 무계진지(茂界陳地) 2편전(片田)이다. 정씨(鄭氏)가 경계를 이어 금양(禁養)하고자 말하기에 전문(錢文) 8전을 받고 신문기 1장으로 영원히 판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계중의 산지에 있는 전주(田主) 3인으로 문서 작성자와 증인 등을 세우지 않았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 마을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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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十五年己丑十二月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自稧中買得畓累年收稅是多可 放賣次 黃田面山嶺九界坪職字丁畓之上東南便茂界陳地與二片田鄭氏以連界禁養之意言及 故價折錢文捌戔 依數捧上是遣 新文一丈 右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相左之端則 以此文記相考事稧中 幼學 趙浚福[着名]幼學 梁致敎[着名]幼學 梁致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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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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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이중희(李中希)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英俊 李中希 金守文<着名>, 趙多文<着名> 朴英俊信(원형,1.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고종41) 10월 5일에 답주(畓主) 박영준(朴英俊)이 이중희(李中希)에게 후증도의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904년(고종41) 10월 5일에 답주 박영준이 이중희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영준은 자신이 매득하여 도조(賭租)를 받아 오다가 쓸데가 있어 부득이하게 논을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영광군(靈光郡) 후증도(後甑島) 서면(西面) 고리사(古里沙) 언덕배기에 있는 논[畓]1마지기와 같은 곳의 서변(西邊)에 위치한 논 2마지기, 그리고 남촌앞(南村前)에 있는 논 2마지기와 소을등(所乙嶝)에 있는 논 2배미 1두5도락지와 촌전(村前) 언두(堰頭)에 있는 답(畓) 1두락지(현재 7두5승락지)의 땅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205냥을 받고 신문서(新文書) 1장으로 영원히 방매한다고 하였다. 구문서(舊文書: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도문기(都文記: 재산 전체를 기록해 놓은 분재기류)에 함께 붙어 있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목포에 사는 박영준과 증인으로 참여한 김수문(金守文), 문서를 작성한 전오위장(前五衛將) 조다문(趙多文) 총3인이다. 박영준은 붉은색 원형 도장을 찍었고 김수문은 착명을 하였으며, 조다문은 일심수결(一心手決)인 서압(署押)을 하였다. 다양한 서명을 볼 수 있는 자료이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영광군 염소면 후증도는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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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시장문기(柴場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시장문기 1861 鄭孟希 鄭孟希<着名>, 李宗碩<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1년(철종12) 9월 6일에 시장주(柴場主) 정맹희(鄭孟希)가 영광군 후증도 서면 포월에 있는 시장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시장매매명문 1861년(철종12) 9월 6일에 시장주(柴場主) 정맹희(鄭孟希)가 후증도에 있는 시장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시장매매명문이다. 정맹희는 가난한 나머지 생활할 방법이 없어서 부득이 땅을 판다고 방매 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영광군(靈光郡) 후증도後甑島) 서면(西面) 포월(浦越)에 있는 선산치(仙山峙) 중 북변에서 떼어낸 시장 1승락지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3냥을 받고 판다고 하였다.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에 대한 언급은 없다. 문서 작성시 참여자는 시장주인 정맹희와 문서작성을 맡은 이종석(李宗碩) 총2인이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영광군 후증도 장성동은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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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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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酉九月初六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貧寒之餘 生活無路故勢不得已 郡地後甑島西面浦越所在 光山峙中割北邊柴場一升落庫叱 價折錢文參兩依數捧上是遣 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族屬與同生子孫中 若有雜談是去等 以此文記 告官卞呈事柴場主 鄭孟希[着名]筆 執 李宗碩[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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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6년 전여옥(田汝玉) 별급명문(別給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田汝玉 長孫婦 田汝玉<着名>, 梁大千<着名>, 劉世彰<着名> □…□ 5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26년 4월에 전여옥이 장손자 며느리에게 노비 1명을 물려주면서 작성한 분재기. 1726년 4월 6일에 시할아버지인 田汝玉이 장손자며느리에게 노비를 상속하면서 작성해 준 別給明文이다. 전여옥은 본문 서두에서 재산을 물려주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집안의 흥하고 쇠함은 오로지 내조를 잘하는 여부에 달려 있다. 지금 손자며느리의 자태와 용모를 보아하니, 五品의 형상이 거듭 모여 있다. 어찌 가상하고 다행이지 않는가. 이러한데 조부된 도리로 영리한 손자에 대한 높은 정을 참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물려주는 재산은 婢 1명인데, 그 인적 사항은 '내 몫으로 물려받은 婢 亍音花의 세 번째 소생인 婢 巡禮, 나이 15세 임진년생'이다. 證保로 梁大千과 筆執으로 劉世彰이 문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문서 뒷면에는 배탈입안이 기재되어 있다. 입안은 분재기를 작성한지 31년 뒤엔 1757년 3월에 咸平縣에서 발급하였다. 입안의 내용은 함평현에 거주하는 幼學 田福載가 노비를 같은 함평현에 거주하는 幼學 李命龍에게 노비를 매도했음을 증빙하는 사항이다. 팔고 있는 노비는 31년 전 분재기에서 물려받은 婢인 巡禮가 포함되었고, 아울러 그녀의 첫째 소생인 奴 男奉(23세, 을묘년생), 둘째 소생인 婢 二尙(19세, 기미년생), 셋째 소생인 婢 舍每(16세, 임술년생), 넷째 소생인 婢 禿德(11세, 정묘년생), 다섯째 소생인 奴 福男(6세, 임신년생)도 해당되었다. 모두 6명의 노비를 매도하고 받은 금액은 동전 16냥이다. 배탈 문서에 기재된 田福載은 田汝玉에게 재산을 물려받은 손자며느리의 후손으로 추측할수 있다. 즉 전복재는 어머니 또는 할머니가 물려받은 노비를 그 자손과 함께 매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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雍正四年丙午四月初六日 長孫婦處 別給明文 右明文爲事段 無他 家之興衰 但在於內助之▣ 也 今觀孫婦之姿容 則五品之象 再執 亦豈非嘉 幸耶 以玆祖行之道理 不耐其怜孫之情高乎 無物表悰 衿得婢亍音花三所生婢巡禮 年 十五壬辰 後所生幷以 右孫婦處 永永許給 爲去乎 日後良中 子孫中若有雜談相 爭之弊 則持此文告 官卞呈事 亦在 元財主 祖父 田汝玉 [着名] 證保 梁大千 [着名] 筆執 劉世彰 [着名] (背面) 乾隆二十二年丁丑三月日 咸平縣背頉 本縣居幼學田福載 衿得婢亍音化三所生婢巡禮 年四十六壬辰 同婢 一所生奴男奉 年二十三乙卯 二所生婢二尙 年十九己未 三所生婢舍 每 年十六壬戌 四所生婢禿德 年十一丁卯 五所生奴福男 年六壬申 六母子乙 價折錢文十六兩 依數捧上爲遣 本縣居幼學李命龍 前 後所生幷以 永永放賣 印 行縣監 [署押] [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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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부옹(婦翁) 분재기(分財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婦翁 愼章學 李慶鶴<着名>, 李慶臣<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5년 윤2월에 장인어른이 딸 사위인 신장학에게 토지와 노비를 물려주면서 작성한 분재기. 1795년 윤2월 22일에 장인어른이 둘째 딸 사위인 愼章學에게 토지와 노비를 물려주면서 작성한 분재기이다. 재산을 물려주는 사연은 적혀 있지 않고, 수취자에게 해당되는 재산목록만 적혀 있다. 따라서 아버지가 여러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작성한 都文記가 별도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문서형식상 수취자는 사위이지만 실제로는 딸에게 물려주는 재산으로 보아야 한다. 물려주는 재산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토지: 德津橋 川邊坪에 있는 吊字 자호의 논 5마지기(負數 15부 7속), 德津橋 洑內에 있는 吊字 자호의 논 5마지기(負數 2부), 같은 지역 같은 자호의 논 3마지기(負數 13부), 永興村 前坪에 있는 陶字 자호의 논 8마지기, 德津 後坪에 있는 民字 자호의 논 4마지기(負數 13부 7속), 津橋 洑內에 있는 吊字 자호의 논 6마지기(負數 30부), 군종면 津橋坪에 있는 巨字 자호의 논 4마지기(負數 13부), 북일면 津橋 뒤 長橙坪에 있는 논 4마지기(負數 16부), 細同坪에 있는 裳字 자호의 논 7마지기(負數 28부 8속), 水鉄洞에 있는 唐字 자호의 논 2마지기(負數 6부 7속), 西始面 鳩林可亭子坪에 있는 男字 자호의 논 4마지기(負數 16부), 望湖亭村에 있는 忘字 자호의 논 3마지기, 長山坪에 있는 短字 자호의 논 4마지기(負數 20부 2속), 排置同에 있는 可字 자호의 논 6마지기(負數 20부), 排置同에 있는 覆字 자호의 논 6마지기(負數 24부 1속). 노비 : 매입한 奴 季淡과 婢 命舟 및 그들이 뒷날에 낳은 소생. 물려 주고있는 재산이 토지는 논 15개 필지 71마지기, 노비는 2명에 이르고 있다. 증인으로 5촌 조카인 李慶鶴과 필집으로 7촌 조카인 李慶臣이 문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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