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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위계관(魏啓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魏啓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11월 22일, 위계관이 혼인을 약속한 집안에 택일 이후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에 대하여 문의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와 1925년 12월 20일, 위계관이 딸을 시집보내고 사돈댁에 쓴 인사 편지. 1925년 11월 22일, 위계관(魏啓寬)이 혼인을 약속한 집안에 친사(親事)가 어긋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하며 택일한 일자가 왜 문제가 되는지 살펴주실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1925년 12월 20일, 위계관(魏啓寬)이 딸을 시집보내고 사돈댁에 쓴 인사 편지이다. 하룻밤 잘 만났다며 오랫동안 함께 하며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도 전과 같이 지낸다고 했다. 그리고 새로 맞은 사위가 매우 옥 같고 사랑스러운 청년으로, 온 집안의 큰 보배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의식을 잘 갖추지 못했다며 죄송하다고 인사했다. 혼인을 치른 이후에 신랑을 둔 사돈댁에 보낸 인사 편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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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面)采擇古也 月緣分定氷語隨合縱忝蒹藪之依玉樹 豈非琥珀 琥珀取腐芥耶? 銘感罔喩. 謹問至沍,尊棣體啓居寧謐, 顆祝不已. 第親事差穀以呈, 庶不那爲不可耶?伏惟尊照. 謹不備, 上狀.乙丑十一月二十二日 魏啓寬 再拜(後面)一宵良晤, 耳棣尙凉,恨未得長時聯枕穩承淸誨也. 謹未審數間,尊棣體連膺萬祉. 弟狀印昔耳. 陸陸何足道?東床郎儘玉潤可愛, 擧室大紫耳. 凡儀一不成樣, 深切愧赧, 照在如何?餘不備, 謹狀.乙丑十二月二十日, 弟 魏啓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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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목(物目)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미상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물품의 종류와 수량을 한글로 기록한 목록 물품의 종류와 수량을 한글로 기록한 물목(物目)이다. 봉투에 '물목'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물목의 상단에는 경대(鏡臺), 저고리감[저구리ᄎᆞ], 적삼감[적ᄉᆞᆷᄎᆞ]의 종류, 색상, 수량이 기록되어 있고, 하단에는 치맛감의 종류, 색상, 수량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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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대 세ᄒᆡᆼ ᄇᆡᆨ금 一 인도가ᄋᆡ진법단 초록 저구리ᄎᆞ 일냥ᄉᆡᆨ 묘초 져구리ᄎᆞ 일모ᄉᆞ 명듀 져구리ᄎᆞ 일명듀 드록 져구리ᄎᆞ 의명듀 은ᄉᆡᆨ 져구리ᄎᆞ 일명듀 반주 져구리ᄎᆞ 일옥ᄉᆡᆨ 반두 저구리ᄎᆞ 일남ᄉᆡᆨ 져구리ᄎᆞ 일초록 져구리ᄎᆞ 일명듀 칙 적ᄉᆞᆷᄎᆞ 일명듀 초록 저구리ᄎᆞ 일무명 옥ᄉᆡᆨ 저구리ᄎᆞ 일무명 적ᄉᆞᆷᄎᆞ 의옥당목 저구리ᄎᆞ 일모슈 적ᄉᆞᆷᄎᆞ 일 ᄇᆡᆨ묵 적ᄉᆞᆷᄎᆞ 일모슈 다홍치마ᄎᆞ 이모슈 옥치마ᄎᆞ 일모슈 긴ᄉᆡᆨ치마ᄎᆞ 의므명 옥ᄉᆡᆨ치마ᄎᆞ 일므명 긴ᄉᆡᆨ치마ᄎᆞ 의ᄇᆡᆨ목 이십쳑외당목 치 ᄎᆞ 일봉투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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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전주향교(全州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全州鄕校 珍島鄕校 全州鄕校印(흑색, 5.6×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58_001 1858년 4월에 전주향교에서 진도에 사는 종실 후손을 향교의 직임에 임명하라는 요청을 진도향교에 보낸 통문 1858년 4월 29일에 전주향교 權克壽 등 7명이 연명하여 珍島鄕校로 보내는 通文이다. 진도군에 사는 종실 후손 李明濟 등 3명을 儒任에 임명해달라는 요청을 담고 있다. 통문 서두에는 이와 같은 요청을 하게 된 사연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璿源의 후예로 하여금 밝은 덕으로 교화하는 임금이 다스리는 시기에 유림의 반열에 끼지 못하게 하였다니, 그쪽 고을에서 儒者로 칭하는 것은 역시 世臣의 자손만이 해당하기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璿源'이란 아름다운 옥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왕실 조상을 의미하는 말이며, 따라서 璿源錄은 왕실 후손의 족보를 가리킨다. 즉 진도군에 사는 왕실 후손이 현지에서 유림으로 대접받지 못한 사건이 발생하여, 이에 대한 항의 내지 후속 조치로 통문을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전주향교의 구체적인 의견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쪽 고을의 李明濟, 李東吉, 李春謙은 定宗大王의 제9남 石保正의 후손입니다. 바닷가 시골에 궁벽하게 거처하고 있어서 '귤이 회수를 건너며 탱자가 되는 탄식'이 있지만, 靈芝에는 뿌리가 있고 醴泉에는 근원이 있는 법입니다. 우리 儒者들이 서로 아끼는 도리로 당연히 공경히 대하기도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난초와 혜초(군자와 현자)를 대하는 마음이 없이 여러 유자의 공론에 부응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를 聖朝의 뜻을 공경히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家의 후예로 말하면 代數의 원근을 막론하고 彛倫에 관계된 일에는 우러러 대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하물며 璿源의 후손에 있어서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즉 고을에 사는 李明濟 등은 定宗의 9째 아들인 石保正의 후손이었다. 여기서 '正'은 종친부의 정3품직으로서, 왕세자의 증손, 대군의 손자, 왕자군의 아들 및 적장손에게 주어졌다. 정종의 아들이지만 직책이 '正'에 그치고 있는 이유는 정종이 왕의 묘호를 받지 못하고 왕자군의 직위만 갖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추후 정종이 묘호를 받은 이후 石保君으로 직위를 받게된다. 문서 본문의 이 부분에서 상당히 강한 어조로 진도향교에서 그 후손에게 유림으로써 대할 도리를 하지 않은 조치에 대해 항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이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쪽 군읍은 미록 멀리 있지만 임금의 영토가 아닌 곳은 없고 성인의 백성이 아닌 자는 없습니다. 따라서 朝家의 의리를 우러러 받들어야 합니다. 그쪽 고을의 臨淮面에 있는 璿源의 후예를 향교와 서원에 入籍하게끔 하는 통문이 이미 이르렀습니다. 저희는 本道의 아름다운 움직임에 참여하고자 하여 묵묵히 있을 수는 감히 없습니다. 이에 통문을 발송하니, 관아 수령에게 아뢰어 石保正의 자손에게 속히 儒任을 내려주십시오."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같은 전라도에 위치한 전주향교는 진도 臨淮面에 사는 석보정 후손이 향교와 서원에 이름을 올리라는 통문을 이미 받은 후에 이런 통문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주향교가 밭은 통문은 '華通'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華陽書院에서 보낸 통문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를 통해 石保正 후손의 항의가 상당히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후 내려진 조치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통문에서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바는 이들에게 儒任을 임명하라는 것인데, 즉 향교의 임원에 해당하는 직책을 내리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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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정흠만(鄭欽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欽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오년 10월 28일, 사제 정흠만이 사돈댁에서 안부편지와 함께 보내온 물건들에 감사를 표하고 사돈댁의 요청대로 아들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쓴 답장 편지. 갑오년 10월 28일, 사제(査弟) 정흠만(鄭欽萬)이 사돈댁에서 안부편지와 함께 보내온 물건들에 감사를 표하고 사돈댁의 요청대로 아들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쓴 답장 편지이다. 그리워하던 중 상대의 편지를 받고 가까이서 뵙는 것 같았다고 인사했다. 10월이 저무는 날에 상대가 평안하고 가족모두 잘 지냄을 알았다며 위로되고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자신은 겨우 모양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 근래 어린아이에게 문제가 생겨 사적으로 매우 걱정된다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사돈이 보내준 여러 가지 물건에 너무 과념하였다며 도리어 불안하다고 인사했다. 집 아이를 말씀대로 보낸다며 모레 이후 즉시 보낼 것이라고 하였다. 속히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인사한 후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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懸仰之際, 獲拜耑札, 可敵促膝穩晤. 憑審小春旣暮,棣體候連護錦安, 寶覃均慶, 何等慰釋. 査弟僅拄形骸, 而近以稚兒之故, 私切焦悶耳. 第所送諸種, 過念旋爲不安. 家兒依 敎命送, 再明後卽爲命還,如何如何. 握叙之期, 似在於鄙要,不可留待也. 不備伏惟, 謹謝狀.甲午十月二十八日, 査弟 鄭欽萬 拜謝.侄兒冠禮時多(皮封)謹拜謝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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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文爲通諭事 以璿源后裔 使不齒儒林於聖明之世 則貴邑儒之稱 亦惟世臣家子孫 而然耶 噫 貴邑李明濟李東吉李春謙 卽定宗大王第九男石保正後孫也 僻處海陬 雖有淮橘之歎 靈芝有根 醴泉有源 則吾儒相愛之道 當待敬之不暇 而獨無蕙難之心使不得弁諸儒苑者 是可謂尊奉聖朝之意耶 以名家後裔言之 無論代數遠近 凡係彛倫 莫不俯待 而況璿源後孫乎 貴郡雖遠 莫非率濱之地 亦莫非聖人之民 則其在崇奉朝家之義 以貴邑臨淮面璿裔 使之入籍於校院事華通旣至 則鄙等參互本道動善之地 不敢囚舌而黙 齊弁發文 惟願僉尊 通到卽時稟于主官 使石保正子孫亟賜儒任之地 幸甚右敬通于珍島鄕校戊午四月二十九日 [印] 發文 權克壽 宋弼煥 朴基安 黃宇儉 柳俊培 李希大 崔鎭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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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죽림서원(竹林書院)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竹林書院 珍島鄕校 竹林書院(흑색, 6.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58_001 1858년 7월에 죽림서원에서 진도에 사는 종실 후손을 향교의 직임에 임명하라는 요청을 진도향교에 보낸 통문 1858년 7월 1일에 竹林書院의 吳顯益 등 7名이 연명하여 珍島鄕校로 보내는 通文이다. 진도군에 사는 종실 후손 李明濟 등 5명을 校院의 직임에 임명하라는 요청을 담고 있다. 통문 서두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 예의와 문물의 고향에서 사는 둥근 冠을 쓰고 모난 옷깃을 입은 선비들은 世臣의 집안 후손이 아닌 자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임금의 은택을 칭송하고 모두 유교의 교화 속에 포용되어 있으니, 이는 菁莪의 다스림으로 5백년 동안 배양한 공로입니다. 아! 前王을 잊지 않고 있으며 금니로 쓴 왕의 문서를 아직도 볼 수 있으니 공경히 흠모하여 존숭하지 않은 바가 없거늘, 하물며 璿源의 종파에 있어서겠습니까?"라고 하고 있다. 이어서 통문을 보낸 구체적인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쪽 군읍의 士人인 李明濟, 李春芳, 李東吉, 李孟奎, 李弘奎 등은 石保正의 후손으로써 먼 시골에 영략하여 떠돌고 있어 진약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하늘이 내린 당연한 도리에 있어서 누가 안타까워 하지 않겠습니까. 본 고을(진도)의 여러 유생분들의 아끼고 보호하는 마음은 아마 필시 다른 지역의 배가 될 것입니다. 모두 世臣 집안의 후손으로써 지금 밝은 덕을 지닌 임금이 다스리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 선왕의 후계를 이렇게 보면서 감히 서로 구제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에 여러 선비가 公議를 발하여 위로는 성균에서부터 화양서원에 이르기까지 통문을 잇달아 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들도 같은 서원의 반열에 있기에 통문을 보냅니다."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진도향교에서 定宗의 제9자인 石保正의 후손에게 유림으로써 대할 도리를 하지 않은 조치에 대해 항의하고 있고, 이는 성균관과 화양서원이 나설 정도로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문에서 요구하는 구체적인 조치 전주향교에서 요청하는 바와 같이 속히 석보정의 후손을 향교와 서원의 직임에 임명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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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文爲通事 惟我禮義文物之鄕 圓冠方領之士 莫非世臣家後孫也 至今頌咏聖澤 咸囿於儒化之中 菁莪之治五百年來培養之功 嗚乎 不忘前王惟尙見金泥王牒 莫不敬慕而尊崇 況璿源餘派乎 貴郡士人李明濟李春芳李東吉李孟奎李弘奎等 以石保正後孫 流落遐陬 殘劣至此 其在秉彛 孰不慨然 本邑僉章甫愛護之心 想必有倍於他 而俱以世臣家後孫 生今聖明之世 見此我先王後裔 敢不相救 而共濟乎 是以多士之公議齊發 上自館學以至華院 通章繼起 故鄙等忝在同院之列 玆以發通 惟願僉君子 當此▣…▣釋菜之日 以石保正後孫 亟付校院之任 以副多士顒望 千萬幸甚右敬通于珍島鄕校戊午七月初一日 竹林書院 別廳齊會所發文 幼學 吳顯益 宋秉萬 閔宗鎬 金東煥 趙秉和 李肇淵 宋秉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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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文爲通諭事 貴郡臨淮牧場兩面居 李啓春李明濟李寅植等 卽我定宗大王第九男石保正之後孫也 流寓海陬 今雖寒微 而溯其本 則金枝玉葉 不顯亦世至若儒林間校院任 固當優爲之 而近聞貴齋擯而不齒云 烏在其重璿系之義耶由是而士論激發 至有華陽竹林及長官士林之問通 鄙等忝在首善之地 亦不容泯黙 玆以發文通諭 惟願僉君子 仰體朝家敦敍之至意 使此璿源後孫 獲添章甫之任 幷齒俎豆之列 而到卽施行後 賜答之地 千萬幸甚右敬通于珍島鄕校戊午六月日 太學 西班首 李 [着名]東班首 趙 [着名]此亦中 執綱姑未差 圖署不得開用 故兩班首着啣 以此憑信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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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서간(書簡) 초(草)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신년 2월 25일에 모인이 물품의 제작에 관한 사무를 전하는 내용으로 작성한 답장 편지의 초안. 경신년 2월 25일, 물품의 제작에 관한 사무를 전하는 내용으로 작성한 답장 편지의 초안이다. 앞면과 뒷면에 각각 편지가 쓰여 있으나 내용은 거의 동일하고 몇 구절만 수정하였다. 작성자를 알 수 없지만 중간에 자신을 '생(生)'으로 지칭했다. 여러 달 지난 시간이 마치 일 년 같다는 것, 요즈음 정체(靜體)인 당신은 잘 지내심을 알아 기쁘다고 했다. 자신은 전과 같이 지낸다고 하고, 한문(寒門)이라 냉품(冷品)하다며 이것이 이 시기의 본분(本分)이라고 했다. 보내주신 수작업 물건이 매우 좋다며 아이를 보낼 테니 직접 만나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며칠 뒤에 찾아뵙겠다고 인사하며 답장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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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月如年, 景仰不已. 謹審日下,靜體候一享萬安, 諸節均吉,慰賀區區, 不任之至. 生喜非之狀, 伎倆前日, 外何可凂? 就悚, 寒門冷品, 此是本分, 惠送手品線味, 無或過度耶? 家兒起送, 而乃賴蓬直之益切企何也. 蠅能追遠, 豈非驥力歟? 子翼之切望切望耳. 餘在日後進拜, 謹不備謝候禮.(背面)數月如年, 景仰不已. 仍審日下 ,靜體候一享萬安, 諸節均吉, 慰賀區區之至. 生喜非之狀,伺倆前日外, 何可凂? 就寒門冷品, 此時本分, 惠送洋品線味, 無或過度耶? 家兒起送, 而乃賴蓬直之, 益切企何也. 餘在日後進拜,不備謝候禮.庚申二月二十五日.蠅能追遠, 豈非驥力耶? 子翼之切望切望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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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 백남인(白南寅)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白南寅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26_001 기유년 12월 18일, 백남인이 사돈의 아드님에게 자신의 무사 귀가를 전하고 여러 날 머물렀던 것에 대해 실례했다며 인사한 편지. 기유년 12월 18일, 사하(査下) 백남인이 사돈의 아드님에게 자신의 무사 귀가를 전하고 여러 날 머물렀던 것에 대해 실례라고 인사한 편지이다. 밤사이 어른 모시고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어제 집으로 잘 돌아왔다고 알렸다. 어린 사람처럼 여러 날 머물렀던 것이 대단한 실례가 아니었는지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서신 종이의 지질로 보아 기유년은 1909년 혹은 1969년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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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審數漢回,侍餘棣樂連護保重, 渾儀平吉, 慰溯區區. 査下再昨無事還家, 省率依前, 是幸已耳. 猶兒年淺之人, 多日留連, 倘不至大端失禮耶? 餘不備謝禮.己酉臘月十八日, 査下 白南寅 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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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 윤우현(尹于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尹于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신년 12월 21일, 하생 윤우현이 상대의 아들의 청년지사 출범을 축하하는 내용으로 쓴 편지. 무신년 12월 21일, 하생(下生) 윤우현(尹于鉉)이 상대의 아드님이 청년지사(靑年志事)를 출범하는 일을 축하하는 내용으로 쓴 편지이다. 지난번 하룻밤 만났던 것이 자신의 인생에 다행스런 일이었다며 헤어진 뒤의 슬픔을 전했다. 그리고 지난번에 돌아가신 노정은 어떠했으며 요즈음 잘 지내시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편모를 모시는 것이 어제와 같아 다행이라고 말하고 아드님이 청년지사(靑年志事)를 출범한다니 정말 법가의 자제라 할 만하다고 했다. 상대의 가문을 칭찬하고 또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한 후 앞으로 종종 자신에게 보내주어 윤택함이 이르도록 해 달라고 청한 후 연말 인사를 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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頃者一宵得遂御李之誠 其在愚生 何幸如之 拜別後日頗窮 下懷伏悵 比尋常時萬般 伏不審再昨風程 修塗行邁利稅又伏請 日來靜養氣體候連享萬康否乎 伏溸區區 下悃罔任 生偏省依昔 伏幸何喩 就 允兄靑年志事出凡 眞可謂法家子弟 旣敢爲 尊閥賀旋 又爲殘門 幸遽爾 臨別悵望莫旣 伏望日後種種命送 使此劣生深撫麗澤之誼 千萬千萬耳 餘歲色隔紗 只冀啓居候餞迓康寧 不備伏惟尊察 謹拜上狀戊申十二月二十一日 下生 尹于鉉 再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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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호(姜在皥)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姜在皥 李曰聖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편지를 받자마자 제 강재호가 학사 이왈성에게 11일 오후에 자신의 집으로 오시어 함께 하자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편지를 받자마자 제(弟) 강재호(姜在皥)가 학사(學士) 이왈성(李曰聖)에게 11일 오후에 자신의 집으로 오시어 함께 하자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편지가 오가며 소식이 길게 이어지니 서로 위로 된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편지를 받고 어른을 모시고 연구를 하고 지내는 상대의 안부가 평안함을 알았다며 시를 짓는 솜씨와 글씨쓰는 것에 있어서도 품격이 올라갔으리라 생각한다고 축하하였다. 자신은 모시는 어르신 평안하고, 계(契)와 관련한 일로 어제 박(朴) 형의 편지를 받아 동쪽으로 답장을 하려고 했는데 죽이 잘 맞는 사람의 응답처럼 또 하나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11일 오후에 자신의 집으로 오시면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하고 편지를 마쳤다. 편지지를 말면 내용이 안으로 들어가고 빈 면이 나오도록 해서 그곳에 직접 받는이를 기록한 자봉(自封)의 형식으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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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 이병현(李炳顯)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炳顯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신년 10월 11일, 상중의 내제 이병현이 숙모님이 이르신 여종을 매매하는 일의 처리를 위해 숙모님의 큰아들에게 자신 쪽으로 와서 의논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쓴 안부 간찰. 임신년 10월 11일, 죄내제(罪內弟) 이병현(李炳顯)이 숙모님이 이르신 여종을 매매하는 일의 처리를 위해 숙모님의 큰아들에게 자신 쪽으로 와서 의논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쓴 안부 편지이다. 지난번에 자신이 찾아뵈려고 직접 갔다가 어긋나 만나지 못했던 것이 탄식스러웠다며 요즘 추운 날씨에 숙모님 기력이 어떠하신지, 모시는 종형(從兄)과 가족들 모두 안녕하신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으며 어린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고 한 후 지난번 숙모님의 말씀에 대한 본론을 이야기 했다. 숙모님이 밖으로 나가 집에 붙어있지 않는 여종이 앞으로 달아날 우려가 있다며, 이를 팔고 다른 종을 사는 것이 좋겠다고 한 것에 대해 이를 위해 자신의 생각도 그러하다며 형님이 와서 함께 논의 한 뒤에 처리하자고 내일 속히 자신의 집으로 와 줄 것을 부탁했다. 형님이 오지 못한다면 막내를 보내셔도 좋을 것이라고 전하였다. 추신에는 사랑에 머물고 있는 정(鄭) 수재(秀才)는 잘 있느냐며 바빠서 편지하지 못한다고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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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이진집(李晉執) 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晉執 李掌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묘년 5월 24일, 족제 진집 등 2인이 이 장의댁으로 보낸 서간. 신묘년 5월 24일, 족제(族弟) 이진집(李晉執), 이재방(李在邦) 등 2인이 이(李) 장의댁(掌議宅)으로 보낸 서간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적조했다며 더워지기 시작하는 날씨에 어버이 모시고 잘 계신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초대받은 곳에 잘 가서, 별일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주요 내용은 올해 봄에 완영(完營)의 과거 시험장에서 당신의 종씨(從氏)와 함께 관광을 했고, 그 때 영저(營邸)에서 10냥을 빚졌다는 것, 자신 집은 석전(石錢)을 모두 보냈다며 제발 어찌해 달라고 청하였으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보내는 사람은 도(道)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고, 수신자는 송월(松月)의 이 장의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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