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위경규(魏璟奎) 시축(詩軸) 고문서-시문류-시 魏璟奎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4년 3월 2일, 단강 위경규가 도곡 족속이 영남 옥계사를 다녀온 후에 지은 시에 차운한 것, 이별의 글에 차운하여 족숙에게 준 시, 장천재에서 제야를 보내며 차운한 시 각 1수를 적어 놓은 시축. 1934년 3월 2일, 족질(族侄) 위경규(魏璟奎)가 3가지 주제로 차운하여 지은 시 3수를 기록해 놓은 시축이다. 첫 번째는 도곡(道谷) 족숙(族叔)이 영남의 옥계사(玉溪祠)에 다녀온 후 지은 시에 차운한 7언절구 1수로 운자(韻字)는 능(能), 층(層), 도(都), 등(燈)이다. 두 번째는 별장(別章)에 차운하여 지은 7언절구 1수로 운자는 산(産), 신(新), 승(勝), 인(寅)이다. 세 번째는 장천재(長川齋)에서 제야의 밤을 보내며 지은 7언율시 1수로 운자는 한(寒), 간(看), 관(觀), 단(丹), 반(盤)이다. 위경규(魏璟奎, 1886~1946)는 조선 말기 유학자이자 교육자이다. 호는 단강(丹江)이며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유치면(有治面) 출신으로 부친은 위계민(魏啓玟)이다. 어려서부터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였고 성품이 온화하였다. 고을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 사재(私財)를 들여 봉무재(鳳舞齋)를 짓고 몸소 교육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장흥향교(長興鄕校)의 초대 전교(典敎)를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단강(丹江) 근처에 영귀정(詠歸亭)을 짓고 시사(詩詞)로 소일(消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