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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冬已塾 奉面尙遲 豈情渴仰 恭惟旅體 迓新萬福 鄕信亦承平迪 仰祝毖懈 弟事育姑免大何 是爲新年幸事子婦歸寧 歲前緣於憂撓 未果以今月二十一日 治行爲計 而自動車 歲前今日再從叔書中 以營漱車爲定 而發行之如何 使達左右 則想與左右 同爲論定也 望須更以前日所言車 依前例爲言彼如不聽 隨機少加期於結定 使之及其日早早成羕 鄙居村前 切仰切仰 到長城驛 聞莘村卽西去大路 遽而不過腹果之地 必無不詳之理 以此意及于運轉手 甚好甚好 歉約金倘可貸給 則給之如或客裏難辦 卽爲示及如何 當自此郵呈矣 勿泛勿泛 可川信便 想必頻數矣 右日爲之傳奇如何 雖已付書 恐路左緩 不及故如是耳會合在邇 萬千留竢對討 不備上戊之 元月 八日 弟金宰植 拜拜長城郡 黃龍面 莘湖金宰植 謹函光州府 北城町 朴仁奎代書所內李鍾海 旅座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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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00년 수직안(守直案) 고문서-치부기록류-역사기록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0년(庚申)에 작성한 수직안(守直案) 47명의 명단이 기재된 좌목(座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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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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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55년 하동안(下洞案)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5년(乙卯)에 작성한 동안(洞案) 서문이 있고 다음에 추록으로 구안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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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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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41년 안동대동계안 (安洞大同契案) 초단(草單)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辛巳) 4월 20일에 작성된 계안(契案) 초단(草單) 처음에는 좌목(座目)이 있음 초기에는 구성원이 4성씨풍산 홍씨(豊山 洪氏), 나주 정씨(羅州 鄭氏), 서흥 김씨(瑞興 金氏), 하동 정씨(河東 鄭氏)) 일원이었으나 추후에는 타 성씨의 인물들도 계원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기본적으로 계원들의 字, 출생년도, 본관을 기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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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42년 시초방매기(柴草放賣記) 고문서-명문문기류-시장문기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壬午) 7월(내부에는 8월 8일)부터 작성된 평보등(平保嶝) 지역의 시초방매기(柴草放賣記) 제9호까지 있으며 문중 소유 시장 방매 목록으로, 방매 금액은 154圓 80錢이며, 시장 방매 지출 금액은 45圓 88錢으로, 현재 가지고 있는 금액은 108圓 92錢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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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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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쌍계정유적목록(雙溪亭遺蹟目錄) 고문서-치부기록류-물목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쌍계정이 소장하고 있는 책 목록과 소장하고 있는 물건들을 기재한 목록(目錄) 책의 목록 내부에는 총 43권까지 기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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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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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663년 권학안(勸學案)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63년(癸卯)에 작성된 쌍계정(雙溪亭)의 선생안(先生案) 앞장에는 '권학문(勸學文)'이, 뒷면에는 '고강동몽(考講童蒙)'이 있었으나 결락됨 다음 순서에 훈장 '정여우(鄭如虞)'밑 제자 18명, 훈장 '홍상기(洪相基)' 밑 제자 8명, 훈장 '홍이재(洪以載)' 밑 제자 9명, 훈장 '이명행(李命行)'아래 제자 4명, 훈장 '정기서(鄭起序)'아래 제자 6명, 훈장 '김성주(金聲周)'아래 제자 4명의 명단을 기재함 다음에는 '제술유생(製述儒生)' 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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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637년 9월 29일 관문(關文) 崇德二年九月二十九日 關文 026 비변사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철곶[鐵串]의 진보(鎭堡)를 설치할 예정지인 전답의 교환 및 공사의 비용 등을 다방면으로 마련하여 급히 공사를 완료할 것.정축년(1637, 인조 15) 10월 6일 도착.비변사가 소식을 알리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경기수사(京畿水使)의 서장(書狀) 내용을 요약하면,'제물(濟物)과 초지(草芝) 두 진포(鎭浦)를 애당초 철거하고 합쳐서 철곶진[鐵串鎭]으로 만들고 칭호를 승격시켰던 일은 그럴만한 취지가 있는 것인데, 시일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진보를 설치할 곳을 여태까지 마무리하지 못하여 첨사가 현재 백성의 집을 빌려서 거처하고 있으니 몹시 타당치 못한 일입니다. 묘당(廟堂)에서 신속히 처리하게 해주소서.'64)라고 하였다. 그 서장에 의거하여 본사(本司)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철곶은 새로 설치하는 곳이고 진포를 설치할 곳은 개인의 전답이니 이러한 때에 전답의 값을 마련하는 것은 반드시 걱정스러울 것입니다. 본영(本營)에서 편리한 대로 바꾸어주도록 하되, 수리하는 공사는 지연시킬 수 없으니 다방면으로 비용을 마련하여 급히 공사를 완료하라고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9월 29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이홍망(李弘望)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 2년 9월 29일. 丁丑十月初六日到付備邊司爲知音事."節啓下敎京畿水使書狀內節該, '濟物、草芝兩浦, 當初撤破, 兩鎭合爲鐵串陞號, 其意有在, 而遷延時日, 設鎭處乙, 迄未究竟, 僉使時方借入民家, 事甚未妥當. 令廟堂急速處置.'事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鐵串旣是新設, 設鎭之處, 乃是私田, 此時田地, 其價必慮. 自本營隨便換給爲白乎矣, 修繕之役, 不可遲延, 多方拮据作急完役之意, 行移, 何如?' 崇德二年九月二十九日, 同副承旨臣李弘望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二年九月二十九日. '023 나덕헌의 장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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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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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637년 10월 10일 관문(關文) 崇德二年十月初十日 關文 028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윤이지(尹履之)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칙사(勅使)가 나올 때 관무재(觀武才)에 사용할 물품 등을 준비해두었다가 수송할 것.정축년(1637, 인조 15) 10월 13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전에 명(明)나라 칙사(勅使)가 나올 때 관무재(觀武才)에 사용하는 사후(射帿), 소혁(小革), 방석(方席), 고도리(古道里), 숙마(熟麻), 세겹바[三甲所] 4거리(巨里) 등은 으레 명나라 칙사가 나올 때부터 수영(水營)에서 준비하였다. 이번에 칙사가 나올 때에도 준비하여 대령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다시 신칙하니, 시기가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어서 알게 되면 오목참(梧木站)으로 미리 수송해서 바치되 사후군관(射帿軍官)도 정해서 보내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10월 10일. 丁丑十月十三日到付觀察使兼巡察使爲相考事."在前天使時, 觀武才所用射帿、小革、方席、古道里、熟麻、三甲所四巨里等, 例自天使時, 水營措備爲如乎. 今番勅使時, 想已備待是在果, 更良申飭爲去乎, 日期聞見, 梧木站以, 前期輸納爲乎矣, 射帿軍官, 亦爲定送向事. 合行云云."崇德二年十月初十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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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7월 4일 관문(關文) 崇德三年七月初四日 關文 074 호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중군(中軍) 황후헌(黃後憲)에게는 종과 말의 양식까지 아울러 교동부(喬桐府)에서 지급하고 회감(會減)할 것.무인년 7월 7일 도착.호조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경기수사(京畿水使)의 관문(關文) 내용을 요약하면,'본영(本營)의 중군(中軍) 전(前) 첨정(僉正) 황후헌(黃後憲)에게는 종과 말의 양식과 급료까지 아울러 교동부(喬桐府)에서 지급하고 회감(會減)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129)라고 하였다. 보내온 공문대로 시행하라."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7월 4일. 교동부의 민호(民戶) 고득효(高得孝)를 줌.130) 戊寅七月初七日到付.戶曹爲相考事."節到付使關內節該, '本營中軍前僉正黃後憲, 奴馬糧料, 幷以喬桐府以, 放料會減.'事關是置有亦. 依移文施行向事."崇德三年七月初四日. 府戶高得孝授. '068 나덕헌의 관문' 참조. 경기 수영(京畿水營)의 중군(中軍)으로 임명된 황후헌(黃後憲)에게 지급할 종과 말의 양식과 급료를 교동부(喬桐府)의 민호(民戶)인 고득효(高得孝)에게 부담시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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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7월 10일 관문(關文) 崇德二年七月初十日 關文 013 비변사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철곶[鐵]의 진보(鎭堡)를 설치할 곳의 형세를 살펴보고 상세히 보고할 것.정축년(1637) 7월 15일 도착.비변사가 소식을 알리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삼도통어사의 서장(書狀)에 의거하여43) 본사(本司)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44) 옛 진보(鎭堡)는 혁파하였으나 새 진보는 설치되지 않아서 백성의 집에 들어가서 거주하고 있으니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도가 너무나 아닙니다. 수사(水使)가 직접 순행하면서 진보를 설치할 곳의 형세를 살펴보고 상세히 주상께 보고하게 한 뒤 그에 의거하여 처리하도록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7월 9일에 좌승지(左承旨) 신(臣) 김휼(金霱)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그러므로 판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라."숭덕 2년 7월 10일. 丁丑七月十五日到付備邊司爲知音事."節啓下敎統禦使書狀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舊鎭旣撤, 新堡未設, 入接民家, 殊非可久之道. 水使親爲巡歷, 審其設堡形勢, 詳細啓聞, 以憑處置事, 行移, 何如?' 崇德二年七月初九日, 左承旨臣金霱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崇德二年七月初十日.❶ 啓目粘連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의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007 나덕헌의 장계' 참조. 저본에는 원문 '啓目粘連' 4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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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본(啓本) 啓本 062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계본(啓本): 각 진포(鎭浦)의 첨절제사(僉節制使)와 만호(萬戶) 등에 대한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의 등제(等第).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臣) 나덕헌이 포폄(褒貶) 결과를 보고하는 일 때문에 삼가 올립니다."도내 각 진포(鎭浦)의 첨절제사(僉節制使)와 만호(萬戶) 등에 대한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을 관찰사 겸 순찰사 신 김남중(金南重)과 함께 논의하여 등제(等第)하고 삼가 격식을 갖추어 보고합니다."화량진수군첨절제사(花梁鎭水軍僉節制使) 이인노(李仁老) : 상(上).덕포진수군첨절제사(德浦鎭水軍僉節制使) 최준천(崔峻天) : 상(上).철곶진수군첨절제사[鐵串鎭水軍僉節制使] 박한남(朴翰男) : 상(上).정포수군만호(井浦水軍萬戶) 정연(鄭?) : 상(上).영종포수군만호(永宗浦水軍萬戶) 최형립(崔亨立) : 상(上). 京畿水軍節度使兼三道統禦使臣羅謹啓爲褒貶事."道內各鎭浦僉節制使、萬戶等矣今春夏等褒貶乙, 觀察使兼巡察使臣金南重同議等第, 謹具啓聞."花梁鎭水軍僉節制使李仁老 : 上.德浦鎭水軍僉節制使崔峻天 : 上.鐵串鎭水軍僉節制使朴翰男 : 上.井浦水軍萬戶鄭? : 上.永宗浦水軍萬戶崔亨立 :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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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6월 1일 계본(啓本) 崇德三年六月十一日 啓本 063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계본(啓本): 교동부(喬桐府)의 수군(水軍)과 육군(陸軍) 군병을 영솔하는 중군(中軍), 파총(把摠), 초관(哨官) 등에 대한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의 등제(等第).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臣) 나덕헌이 포폄(褒貶) 결과를 보고하는 일 때문에 삼가 올립니다."본영(本營) 소속 교동부(喬桐府)의 수군(水軍)과 육군(陸軍)의 군병을 영솔하는 중군(中軍), 파총(把摠), 초관(哨官) 등에 대한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을 등제(等第)하고 삼가 격식을 갖추어 보고합니다."중군(中軍) 전(前) 첨정(僉正) 황후헌(黃後憲) : 상(上).수군 파총(水軍把摠) 전 주부(主簿) 노의남(盧義男) : 하(下).우초관(右哨官) 전 권관(權管) 이지남(李枝男) : 상(上).후초관(後哨官) 전 훈련봉사(訓鍊奉事) 최응룡(崔應龍) : 중(中).육군 파총(陸軍把摠) 전 사과(司果) 송인갑(宋仁甲) : 상(上).전초관(前哨官) 전 훈련봉사 한응남(韓應男) : 상(上).좌초관(左哨官) 전 사과 정천유(丁天裕) : 상(上).별국 초관(別局哨官) 전 권관 서유성(徐有成) : 상(上).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6월 1일, 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 나덕헌. 京畿水軍節度使兼三道統禦使臣羅謹啓爲褒貶事."本營屬喬桐府水陸軍兵所領中軍、把摠、哨官等今春夏等褒貶等第, 謹具啓聞."中軍前僉正黃後憲 : 上.水軍把摠前主簿盧義男 : 下.右哨官前權管李枝男 : 上.後哨官前訓鍊奉事崔應龍 : 中.陸軍把摠前司果宋仁甲 : 上.前哨官前訓鍊奉事韓應男 : 上.左哨官前司果丁天裕 : 上.別局哨官前權管徐有成 : 上.崇德三年六月十一日, 水軍節度使兼三道統禦使臣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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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김재식(金宰植)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之 臘月 六日 金宰植 李敎成 丙之 臘月 六日 金宰植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12월 6일에 김재식(金宰植)이 책의 간행과 관련해 이교성(李敎成)에게 부탁하는 간찰(簡札) 1926년 12월 6일에 김재식(金宰植)이 책의 간행과 관련해 이교성(李敎成)에게 부탁하는 간찰(簡札)이다. 아우는 70세의 대모께서 편안함을 크게 잃어 정상으로 돌아올 기약이 없으니 초조하고 번민스럽다. 며느리는 아주 사람스런 모습이고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 검소하니 집안의 경사이다. 송자대전을 전해 맡기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 집안에서 백지를 사서 보냈는데 품질이 나빠 물렸다. 다시 졸렬한 글을 보냈으나 책으로 간행하지 않고 저들이 허락할지 모르겠다. 3백 원 내에서 구매하기 어려울 듯한데, 이를 헤아려달라고 하였다. 별지와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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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김재식(金宰植)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卯 九月 十六日 金宰植 李敎成 丁卯 九月 十六日 金宰植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7년 9월 16일에 김재식(金宰植)이 집 잃은 아이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27년 9월 16일에 김재식(金宰植)이 집 잃은 아이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이다. 아우는 조부모님이 편안하며 슬하의 자식들도 무탈하다. 집 잃은 아이는 앞세워 보내면 잊기가 어려워 안동하여 거듭 쳐다보니 이 때문에 늦어지게 되었다. 지난번 편지에서 다음날이나 그 다음날에 광산역에 보내면 데리고 가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우체 편으로 오지 않았다. 기일이 지나서 편지를 받았으니 어찌하리오. 금방 보냈지만, 2, 3일 머물렀다가 보낸 것이 몇 년이 된 것 같다. 금년에 처음 편달한 것은 그의 마음을 위한 것이니 이것은 쉽게 얻지 못하는 좋은 기회이다. 이 뜻을 헤아려달라고 하고 있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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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이교웅(李敎雄)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大正七年三月 李敎雄 寶城可川宗中 大正七年三月 李敎雄 寶城可川宗中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8년 3월, 성주이씨 종중에서 선산 단장 건으로 보성 가천문중에 보낸 통문(通文) 1918년 3월에 성주이씨 종중 발문유사 이교웅(李敎雄), 이종율(李鍾律), 이종일(李鍾一), 이종린(李鍾麟) 등이 선산의 단장 건으로 보성 가천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양주군(楊州郡) 노해면(蘆海面) 불함산(不咸山) 서록(西麓)에 있는 판윤공과 그 자손 50여위의 묘소 있는 선산을 단장하기 위해서 식목(植木)을 한다며 소용비용과 금액 배분에 대해 가천종중에 통지한 내용이다. 묘소의 단장은 묘소가 퇴락한 상태에서 식목(植)木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선산 인근 산을 조선총독부에 빼앗길 위험에 처하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무를 심어 산림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통문이 끝난 후 '좌개(左開)'에서는 묘목을 2만 본 심는데 매 1본 당 1전으로 200원, 인부 400명을 고용하고 매 1명당 고용값 50전을 주어 200원, 사괴(莎塊) 2만 편 이 매 1편당 5리여서 100원, 묘위에 개사(開沙)하기 위해 인부 50명을 써서 25원, 총합 525원이 들어갔으며 이 금액을 3분하여 그 중 2분은 호남(湖南)에서 담당하고 1분은 영남에서 담당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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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 通夫人之大倫 莫大乎 親親以親親之道 溯以上之 則雖鼻祖亦親之親也 故知親親之義者必不等閒於先事 而今親親之遺骸 將露於荒山白沙之中 則爲箕子孫者怗然度了可乎其將奮力修之可乎 嗚呼 惟我 先祖判尹公墓及其子孫五十餘位墓 俱在於楊州郡蘆海面 不咸山西麓 因不毛沙流 或有墳頹 而無形者或半頹幾危者居多而惟幸 公墓雖保 今日然塚上若干冷莎 不能保間間之汰落 唇前左邊傾頹 石人倒立之患 在卽龍尾肩甲月削年圮莫重 公墓將未免爲流沙所移也 其危急切迫之狀 難可形言 雖行路之人莫不顙泚之注踵 他尙何說哉 且自當國以植木爲大政 勿論山之公私有其童濯者 則不許証明 而編入國有始自京城附近已行沙防工事延及於該面初境今若因循置之 則兀然一墓將處於國有林之間 而靡泐乃已者明若覩火也 寧無公之子孫則 已旣以多數之雲仍 胡忍坐視其無墓而不動乎 盖山之爲沙以其無樹 無樹則土皮剝落而沙汰也 今所謂沙防工事者 卽植付苗木 以防其沙流也 今若墓近限二萬坪植付 苗木盡心養護 改莎修塋 則一以盡親親之義也 一以使十餘世先塋無歸於國有也 一以免外人之非笑也 夫如是則人子之事業莫過於此 然年前歸正之若干墓土 僅止於香火之需 而莫暇於改莎修塋 且幾湖之貧窶冷族 雖盡心力萬難保 其萬一之費 則此實有誠莫遂之地也 然居在墓近之地 知其危迫之狀 而徒恃我之無力 而不告於 孝思之僉宗 則亦不免祖宗之罪人 故左開其槪而派員 仰瀆 幸須 僉宗 勿以遠祖爲後 而認若親墓費盡誠力 各其派員于墓所 期有實効 則宗事 幸甚左 開一. 苗 木 二萬本 每本一錢 合二百圓一. 人 夫 四百名 每名一日雇價五十錢 合二百圓一. 莎 塊 二萬片 (配植苗本者)每片五里 合一百圓一. 墓上改莎草 人夫五十名 二十五圓合計 五百二十五圓也右金額三分排定, 其二分歸於湖南, 其一分歸於嶺南大正七年三月 日發文有司 李敎雄[李敎雄信]李鍾律[李鍾律信]李鍾一[李鍾一]李鍾麟[李鍾麟信]行 員 李台淳[李台淳信]寶城可川宗中 僉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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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949년 사성유사부표안(四姓有司付標案)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戊寅)부터 1949년(己丑)까지 작성된 계원 유사(有司) 부표안(付標案) 각 해 4월 20일에 임원을 선출하여 한 해동안 계를 운영했음 사성(四姓)은 계를 이루고 있는 풍산 홍씨(豊山 洪氏), 나주 정씨(羅州 鄭氏), 서흥 김씨(瑞興 金氏), 하동 정씨(河東 鄭氏)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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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2019년 안동대동계(安洞大同契) 강신부 (講信簿)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雙溪亭印 1課 (2.3×2.3)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辛巳) 4월 20일에 작성을 시작하여 2019년(己亥)까지 매 해 4월 20일에 개최한 강신부(講信簿) 당시의 원금과 이자, 남은 재산들과 지출등을 보고함 초기에는 참석한 유사의 도장을 찍었으나 추후는 이름만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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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중약규(洞中約規)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동중원들끼리 지켜야 할 내용을 적어둔 약규(約規) 본디 동중좌목(洞中座目)이라고 쓰여있었으나 중간에 약규(約規)로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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