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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徐子崇【相敦】 夫心之爲物。兼該形氣神理。管攝動靜體用者也。朱子所謂其體則易。其理則道。其用則神是也。然所謂心統性情。所謂心爲太極。以理言者也。所謂心猶陰陽。所謂心屬火。以氣言者也。然則合理與氣而立名者也。而人或執一固滯。論心。言理而遺氣。言氣。而遺理。二者俱失之偏。心旣如是。則豈爲一身之主宰。萬事之統領乎哉。且所謂理一分殊者。論其本原。則固無人物貴賤之殊。而惟氣有通塞之不同。故理乘氣而運行。隨其形而各正性命。是則分在氣者而人或言分殊。已在理一中。化生萬物之理。元不待氣。而自有許多差別。若恁地說。則天理亦有偏全矣。所諭得之。然但所謂理一分殊者。朱子曰有天地之性。有氣質之性。天地之性。則太極本然之妙。萬殊之一本也。氣質。二氣交運而生。而生一本而萬殊也。觀此則吾賢所喩。分在氣者。是說氣質之性也。或人所論。分殊已在理一中者。是說天地之性也。合此二說然後。理一分殊之體用完備。而理無不全。氣不能無偏者。亦可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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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張子維【昌鉉】 來喩大槩得之。然字句之間。辭或未瑩。朱子曰虛靈。自是心之本體。本體。是本然之體。非體用之體。蓋心之爲物。虛靈知覺。神妙不測。而其體則具有衆理。其用則神竗萬物。是則所謂明德也。若以虛靈二字。釋明德之全體。則未備。故張子曰心統性情。朱子又曰心者。性情之主。又云德也者。得於心而無所勉者。此可考也。至若意情之分。蓋意是心之發。而營爲謀度底。情是性之發。而流注運用處。愛惡那物是情。所以去愛惡那物是意。意是主張。要如此者也。且釋仁而曰惻隱。曰愛之理云者。則惻隱是仁之端。指情而言也。愛之理。愛是情。仁是性。乃由情而言仁也。父喪中母喪云云。儀禮父卒。則爲母三年之文。旣明白。而賈氏錯解。故尤菴已駁其疏。陶菴。引本經而釋之曰。父先卒母後死。雖一日之間。亦可伸三年。據此諸說。則亦何論父喪葬不葬乎。以夫爲妻禫之說推之。則其子服母。亦從其父。而不敢專。故禫後卽心喪而畢三年。父旣卒。則夫爲妻禫之制。不行矣。然則其子豈可服朞乎。況世俗之旣葬後。猶服朞者。恐不待辨而審其謬矣。且鉛槧二字。昔楊雄有懷鉛提槧。從諸計吏訪殊方絶俗之語。作方言之事耳。槩詳諸問。辭意縝密。自此有前進之望。可欽可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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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安良善 百變滄桑。眼無開處。乃自深藏窮山。日吟病情而已。忽承崇椷。圭復以還。心神甦回。但推借失當。相愛之地。豈容如是。所喩惟斅學半之義。前此誤認。而今始得本旨云者。儘好消息也。舊有人質余以此句曰。斅是已學之進亦半。余曰已學旣成是半。推以斅人亦半。那人始若不信余勸。以更玩本傳矣。大抵舊曰。學者專汨功令之業。不細究文義。故往往有此病。今賢者斅人。而因得本旨。則已功亦進。而敎人不誤。可欽可賀。至若治心之喩善矣。然不如存心之爲要。心本虛明靈覺。而萬理咸備。是所謂本心也。道心也。人能存之養之。則內而浮泛思慮。不得萌動。外而雜亂物累。不能撓奪。有以全其本然之體。而必有事勿正。心勿忘。勿助長之間氣不逐物。而常守其理。則心不待治而自正矣。未知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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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타잠 戒惰箴 내가 칠정을 아쉽게 여기는 건게으름이 이름에 없는 것이다44)무릇 나의 한 뜻을세움이 견정하지 않아서그 죄에 따라 벌을 받는 것은모두 게으름으로 인해 생긴다사체가 이미 게으르게 되면그로 인해 총명을 잃는다겉이 이미 장중하지 않으면안도 따라서 태만해지니음란한 생각과 난잡한 상념은그로 인해 복잡다단하게 되며배움이 실추되어 황폐해지고성도 따라서 어두워진다그 허물을 깊이 생각해보면불경이 과오가 된 것이니마음이 주일무적한다면외물과 함께 변화하지 않는다종일토록 공경하여상제를 마주 대한 듯하면비록 태만하고 싶어도어찌 감히 스스로 방종하랴엄연한 천군45)이오직 나의 엄한 스승이라엄숙하고 단정해야 하니감히 조금이라도 방자하랴혹시라도 어김이 있으면이 잠언의 말을 볼지어다 我惜七情。 惰惟無名。 凡我一志。 立不堅貞。 案伏其罪。 儘從惰生。 四軆旣惰。 仍失聰明。 外旣不莊。 內從而慢。 淫思亂想。 仍此多端。 學墜而荒。 性隨而昏。 深思厥咎。 不敬爲過。 心若主一。 不與物化。 欽欽終日。 對越在上。 雖欲惰慢。 豈敢自放。 儼然天君。 惟我嚴師。 肅拱端默。 其敢小肆。 如或有違。 視此箴辭。 칠정을……것이다 '칠정(七情)' 가운데 '惰'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칠정은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을 말한다.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무엇이 칠정인가,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두려움과 사랑함과 미워함이다.[何謂七情, 喜怒哀懼愛惡欲.]" 하였다. 천군(天君) 마음을 가리킨다. 《순자(荀子)》 〈천론(天論)〉에 이르기를, "마음이 한가운데 빈자리에 있으면서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다스리는 까닭에 마음을 하늘의 임금이라고 하는 것이다.[心居中虛, 以治五官, 夫是之謂天君.]"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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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용잠 九容箴 빠르게 달리면 넘어지니허둥대지 않고 어찌하랴편안히 가면 몸이 펴지니군자의 화평함이다발걸음의 경중에서그 마음을 볼 수 있으니빨리 하려는 자는 달려서혈기를 누르기가 어렵다발은 겨우 문을 나서면서뜻은 천리를 넘어가는데넓고 큰 자는 서행하나니예경이 그리 만든 것이다한 걸음을 막 나아가면뜻이 한 걸음에 있어야 한다힘쓸 지어다 소자야뛰어넘지 말고 조급히 하지 말라【위는 족용중(右足容重)】손은 한 몸에서으뜸으로 일을 한다그것으로 절과 읍을 하니예와 경이 나오는 곳이다잡고 쥐고 치고 박으며받들고 받으며 마시고 먹으니일상의 만사를손이 만들어 낸다한 손가락이라도 망동하면바로 예용을 잃게 되니조처할 때 필히 공경히 하고멈출 때도 필히 공손히 하라힘쓸 지어다 소자야열 개 손이 가리킨다【위는 수용공(右手容恭)】곁으로 보지 말고흘겨보지 말며빨리 돌아보지 말며찡그려 보지 말라수레에서는 눈길이 식(軾)을 넘지 않고앉아서는 모서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하니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몰래 태만함이 밝음을 가리니보아도 볼 수 없게 되어소경에 가까울 것이다힘쓸 지어다 소자야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위는 목용단(右目容端)】목소리를 내고 음악46)을 하며음식을 먹고 말을 한다전쟁을 일으키고 우호를 내기도 하며선행을 하고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그 시작은 어디인가입으로부터 생긴다팔진미가 풍성해도의가 아니면 맛보지 않으며만종의 녹47)이 쌓여 있어도예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어눌하되 민첩하려 하고48)묵묵하되 깨어 있으려 한다힘쓸 지어다 소자야입 지키기를 병처럼 하라49)【위는 구용지(右口容止)】목소리는 마음에서 나오니마음이 바르면 목소리는 조용하다목소리는 기에게 부려지니기가 사나우면 목소리도 매섭다거울이 감응하는 것처럼저울이 공평한 것처럼감출 수가 없으니참으로 은폐하기 어렵다힘쓸 지어다 소자야목소리를 너무 사납게 하지 말라【위는 성용정(右聲容靜)】맨 위에 있으면서 원기를 체행하고오관이 자리한 곳이니위의의 법도가 되고시선의 준칙이 된다더욱 공경하고 더욱 장중하며오직 엄숙하고 오직 공손히 하라공손하되50) 곧게 세움이이 덕의 모습이다힘쓸 지어다 소자야잠시라도 방자하지 말라【위는 두용직(右頭容直)】기는 한 몸에서기르기가 어려우니온화하게 하면 쉽게 방종하고편안하게 하면 너무 느슨해진다무엇이 정숙함만 하겠는가유순하고 온화함으로 이루며보옥을 받들고 대야를 받들 듯이살얼음을 밟고 강에 임한 듯이 하라51)잠시라도 방심하면방탕한 기운이 바로 채워진다힘쓸 지어다 소자야두려워하고 경계하라【위는 기용숙(右氣容肅)】한결같이 곧은 내면이라야경이 있을 곳이고의를 바르게 하여야외면을 방정하게 할 수 있다52)방정함에는 요체가 있으니서 있는 모양이 중요하다치우치거나 기울이지 말고비뚤어지거나 구부리지 말라바르고 크며 빛나고 밝아서엄연하게 덕스러워야 한다안이 바르고 겉이 순수하며겉과 속이 단정하고 엄숙하면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지니53)성현과 똑같은 경지이다힘쓸 지어다 소자야공경히 훈계를 명심하라【위는 입용덕(右立容德)】그 기운을 온화하게 하고그 안색을 늠름하게 하여온화하되 위엄 있고엄숙하되 관대히 하라공경하지 않음이 없게 하여내면을 채우면 얼굴에 드러나니54)힘쓸 지어다 소자야장중하고 공경하도록 노력하라【위는 색용장(右色容莊)】 疾趍而蹶。 非狂而何。 安行而舒。 君子之和。 足之輕重。 可觀其心。 欲速者趍。 血氣難禁。 足纔出門。 意越千里。 涵弘者徐。 禮敬所至。 一步方進。 意在一步。 勖哉小子。 毋躐毋躁。【右足容重】手於一身。 用功之宗。 拜揖以之。 禮敬攸從。 操持擊拍。 奉受飮食。 日用萬事。 惟手之出。 一指妄動。 便失禮容。 措必以敬。 靜必以恭。 勖哉小子。 十手所指。【右手容恭】毋傾側視。 毋流邪睇。 毋疾顧眄。 毋嚬蹙眦。 驂不出式。 坐不外方。 一瞬或放。 陰怠蔽明。 視不見之。 殆乎暗盲。 勖哉小子。 非禮勿視。【右目容端】聲音律呂。 飮食言語。 興戎出好。 作善起爭。 其始維何。 由口而生。 八珍雖昌。 非義不嘗。 萬鍾雖積。 非禮不食。 欲訥而敏。 欲默而惺。 勖哉小子。 守口如甁。【右口容止】聲出於心。 心正聲靜。 聲使於氣。 氣厲聲猛。 如鑑之應。 如衡斯平。 不可揜矣。 誠難隱閉。 勖哉小子。 聲莫淫厲。【右聲容靜】首居軆元。 五官所宅。 威儀之法。 瞻視之則。 愈敬愈莊。 惟肅惟恭。 翼翼竦直。 斯德之容。 勖哉小子。 毋或暫肆。【右頭容直】氣於一身。 養之爲難。 和之易流。 舒之太寬。 孰若正肅。 濟以巽和。 奉玉承盤。 履淵臨河。 造次或放。 蕩氣卽塞。 勖哉小子。 戰戰戒欶。【右氣容肅】一以直內。 敬之所在。 惟義之正。 可以方外。 方之有要。 立容爲大。 不偏不倚。 毋邪毋曲。 正大光明。 儼然惟德。 正內粹外。 表裏端肅。 心廣軆胖。 聖賢同域。 勖哉小子。 敬佩訓戒。【右立容德】溫溫其氣。 凜凜其色。 和而有嚴。 肅而寬奕。 毋不敬矣。 充內粹面。 勖哉小子。 莊敬是勉。【右色容莊】 음악 원문의 '율려(律呂)'로, 원래 성음(聲音)의 청탁(淸濁)과 고하(高下)를 바르게 정할 목적으로 죽통(竹筒)의 길이를 각각 길고 짧게 해서 만든 12개의 악기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음악을 뜻한다. 만종의 녹 원문의 '만종(萬鍾)'으로, 종(鍾)은 곡식을 담는 도량형기인데 여기서는 많은 녹봉을 말한다. 어눌하되 민첩하려 하고 《논어》 〈이인(里仁)〉에서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실천은 민첩하려 한다.[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하였다. 입을……하라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에 "입을 지키기를 병처럼 하고, 뜻을 막기를 성처럼 한다.[守口如甁, 防意如城.]" 하였다. 공손하되 원문의 '익익(翼翼)'은 공손하고 신중한 모양이다. 《시경》 〈대명(大明)〉에 "오직 이 문왕이 조심하고 공손하여 상제를 밝게 섬기시어 많은 복을 오게 하셨도다.[維此文王, 小心翼翼, 昭事上帝, 聿懷多福.]" 하였다. 보옥을……하라 매사를 신중히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연임하(履淵臨河)'는 《시경》 〈소민(小旻)〉에 "전전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한결같이……있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에 "군자가 경하여 안을 곧게 하고 의롭게 하여 밖을 방정하게 하여, 경과 의가 확립되면 덕이 외롭지 않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라고 한 데서 원용한 것이다. 마음이……펴지니 마음속이 널찍하게 관대해지고 신체가 여유 있게 펴진다는 뜻으로 《대학장구(大學章句)》 전6장에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해서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지게 한다.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윤택하게 얼굴에 드러나니 원문의 '수면(粹面)'은 '수면(睟面)'과 같은 말로, 내면에 축적된 것들이 윤택하게 얼굴에 드러나고 등에 가득 넘치는 것을 뜻하는 '수면앙배(睟面盎背)'의 준말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가 마음속에 뿌리 하여 그 얼굴빛에 나타남이 맑고 온화하게 얼굴에 나타나고 등에 가득 넘친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盎於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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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동서원에 최산당150)을 추배하는 제문 祭鹿洞書院崔山堂追配文 명도의 저명한 망족으로곤육의 경사를 쌓으니151)어진 선비와 큰 학자가대대로 후손152)에 이어졌네금서를 즐기는 명절이요존양153)하는 숙덕으로밝고 진실한 선생은집안에서 정학을 전했도다물고기와 시내처럼 새와 구름처럼의탁할 때 친할 사람을 잃지 않았고154)단비처럼 교화하니위대한 현인의 가문이로다아 대동에서어진 현인의 은택이 끊어졌는데155)신라에서 고려까지도학은 오천156)을 종조로 삼네금오157)가 재전하여점필재158)가 사숙하였고수옹과 훤옹159)은학문을 더욱 닦고 입실했네160)선생의 심법은사문에 오묘하게 나아가서그 도가 넓고 넓어손쓰고자 해도 끝이 없었네윤리를 밝히고 가르침 세움에장님처럼 밤길을 더듬을 때161)선생을 존숭하고 믿음은부모와 천지신명 같았네성과 명162)은 형체가 없으나존양성찰에는 법도가 있었으니경과 성을 규칙으로 삼아사씨처럼 부연하고 정자처럼 본받았네163)선생이 가슴에 새겨황연히 스스로 터득하고산당으로 물러나서이윤에 뜻을 두고 안자를 희구했네164)전은 무명165)에 견주고시는 격양166)을 사랑했으며한가로이 역리를 탐구했고167)내가 그칠 바를 알았네이단의 교를 힘써 배척하고바른 이치를 앞장서 밝혔네체가 확립됨은 형체의 뒤요용은 형체가 시작되기 전에 갖춰졌다고 한168)분명한 한 마디의 말은근본이 하늘에서 나온 것이네안생169)처럼 일찍 세상 떠나격언은 전해지지 않고백순170)처럼 먼저 떠났으나이름은 사람에게 알려져서남은 향기가나약한 자 세우고 완악한 자 깨우치네황폐한 고을이 비루하여성대한 의전을 오래 미뤄왔는데백대의 공론은시대가 멀어져도 변하지 않아선비들171)이 모두 찬사하여묻지 않았어도 도모함이 맞았네영봉172)의 서쪽 산기슭덕수의 남쪽 물가에우뚝한 사당이 있으니명조의 신령스런 사우로다분향할 날을 가려 배향하고같은 사당에서 함께 제사하여덕을 존숭하고 절개 숭상하니길이 전해져 끝이 없으리라두 공께 사사로이 대함이 아니고후세를 모두 권면하려 함이라네 名都著望。 慶積坤六。 吉士弘儒。 世襲蘭玉。 琴書名節。 存養宿德。 顯允先生。 家傳正學。 魚川鳥雲。 因不失親。 時雨而化。 鉅賢之門。 於惟大東。 澤斬仁賢。 降羅迄麗。 學祖烏川。 金鰲再傳。 齋私淑。 睡翁暄翁。 操戈入室。 先生心法。 妙詣師門。 斯道浩浩。 下手無垠。 明倫立敎。 摘埴冥行。 先生尊信。 父母神明。 形命1)無形。 養省有法。 敬惺規則。 謝衍程式。 先生服膺。 怳然自得。 卷懷山堂。 志莘希巷。 傳擬無名。 詩愛擊壤。 寬閑弄丸。 得我攸止。 力排異敎。 倡明正理。 軆立形後。 用具未始。 一言昭晣。 原本出天。 顔生早世。 格言無傳。 伯淳先亡。 名聞播人。 餘芳遺馥。 立懦惺頑。 荒鄕鄙汚。 久稽褥2)儀。 百代公論。 愈遠不淄。 縫掖咸辭。 不咨謀諧。 靈峯西麓。 德水南滸。 有堂巋然。 名祖神宇。 配享涓苾。 合祀同室。 崇德尙節。 永傳無極。 非私二公。 幷勸來億。 녹동서원에 최산당 '녹동서원'은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있는 서원이다. 1630년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존양(存養) 최덕지(崔德之, 1384~1455)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양사(存養祠)를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1713년에 '녹동(鹿洞)'이라고 사액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산당(山堂)'은 최충성(崔忠成, 1458~1491)의 호이다. 최덕지의 손자이다. 곤육(坤六)의 경사를 쌓으니 군자의 도를 실천하고 선행을 쌓은 것을 말한다. '곤육(坤六)'은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군자는 공경히 하여 안을 곧게 하고, 의롭게 하여 밖을 방정하게 한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원문의 '경적(慶積)'은《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게 마련이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 반드시 남은 재앙이 돌아오게 마련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후손 원문의 '난옥(蘭玉)'으로 남의 집안의 우수한 자제를 예찬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여러 자제들에게 어떤 자제가 되고 싶은지 묻자, 그의 조카인 사현(謝玄)이 대답하기를 "비유하자면 지란과 옥수가 뜰에 자라게 하고 싶습니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 하였다. 《晉書 卷79 謝玄列傳》 존양(存養) '존심양성(存心養性)'의 준말로, 본래의 마음을 보존하고 본연의 성을 기른다는 뜻이다. 《孟子 盡心上》 의탁할……않았고 《논어》 〈학이(學而)〉에 "의탁할 때 그 친할 만한 사람을 잃지 않으면 또한 종주로 삼을 수 있다.[因不失其親, 亦可宗也.]" 하였다. 은택이 끊어졌는데 원문의 '택참(澤斬)'으로,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군자의 은택도 5대가 지나면 끊어지고, 소인의 영향도 5대가 지나면 끊어진다.[君子之澤, 五世而斬, 小人之澤, 五世而斬.]"라고 하였는데, 이는 선대(先代)의 일이 후손에게서 끊어졌음을 말한다. 오천(烏川)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이다. 오천은 연일(延日)의 옛 이름으로, 정몽주의 본관이다.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360년에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삼사좌사(三司左使)에 올랐으며, 유학을 크게 진흥하여 성리학의 기초를 세웠다. 끝까지 고려 왕조를 받들며 절의를 지키다가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했다. 금오(金鰲) 길재(吉再, 1353~1419)이다.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다. 조선이 건국한 후에는 조선 왕조의 부름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 정몽주에게 수학하였고, 그의 학맥은 김숙자(金叔滋),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등으로 이어졌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다.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효관(孝盥)·계온(季昷), 호는 점필재이다. 정몽주와 길재의 학통을 계승하여 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도학 정통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은 무오사화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수옹과 훤옹 정여창(鄭汝昌, 1450~1504)과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이다. 정여창의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수옹(睡翁)이다. 김굉필의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蓑翁)·한훤당(寒暄堂),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학문을……입실했네 원문의 '조과입실(操戈入室)'로, 본래는 《후한서(後漢書)》 〈정현열전(鄭玄列傳)〉에서 유래하여 상대의 논리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스승의 학문을 더욱 더 닦았다는 뜻이다. 원문의 '입실(入室)'은 도(道)의 심오한 경지에 들어감을 뜻한다. 《論語 先進》 장님처럼……때 학문의 나아갈 길을 잘 모름을 비유한 말이다. 한나라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수신편(修身篇)〉에 "소경이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면서 길을 찾아 어두운 밤길을 가는 것과 같게 될 뿐이다.[擿埴索途, 冥行而已矣.]" 하였다. 성과 명 원문의 '形命'은 문맥상 맞지 않아, 최충성(崔忠成)의 《산당집(山堂集)》 〈산당선생 배향축문(山堂先生配享祝文)〉을 참고하여 '性命'으로 번역하였다. 경과……본받았네 '경(敬)'은 유가의 가장 중요한 수양법인데 정이(程頥)가 강조한 것이다. '성(惺)'은 항상 깨어 있는 것으로, 《심경부주(心經附註)》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에 사양좌(謝良佐)가 "경은 항상 성성하는 법이다.[敬是常惺惺法]"라고 한 것을 말한다. 이윤에……희구했네 '신(莘)'은 유신(有莘)으로 옛날 명재상 이윤(伊尹)이 이곳에 살았다. 이윤은 농사를 짓다가 탕왕(湯王)의 정중한 초빙을 받고 세상에 나와 하(夏)나라 걸왕(桀王)을 추방하고 상(商)나라 왕조를 건립하였다. 《孟子 萬章上》 '항(巷)'은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의 안빈낙도했던 누추한 곳이다. 《論語 雍也》 무명(無名) 송(宋)나라 소옹(邵雍)을 말한다. 《주역》의 이치에 정통하고 상수학(象數學)에 능하였다. 낙양(洛陽)에 살 때에는 공중누각(空中樓閣)을 지어 자호를 무명공(無名公)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는 〈무명공전(無名公傳)〉을 지어 명리와 차별을 초월하겠다는 자신의 지향을 전(傳)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性理大全 권13 無名公傳》 격양(擊壤) 송나라 소옹(邵雍)의《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에 나오는 시를 말한다. 우주 만물의 이치를 담아서 노래한 시가 많다. 역리를 탐구했고 원문의 '농환(弄丸)'으로 태극(太極)과 같은 구슬을 가지고 논다는 말로, 역리(易理)를 탐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송나라 소옹(邵雍)의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 권12 〈자작진찬(自作眞贊)〉에 "구슬을 가지고 노는 여가에, 한가로이 왔다 갔다 하노라.[弄丸餘暇, 閑往閑來.]"라는 말이 나오는데, 자주(自註)에 "환(丸)은 태극이다."라고 하였다. 체가……한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1 〈도체(道體)〉에 "邵子가 말하기를 "용(用)은 천지 이전에 일어나고 체(體)는 천지 이후에 확립되었다.[邵子曰, 用起天地先, 體立天地後.]"라는 내용이 보인다. 안생(顔生) 공자의 제자인 안회(顔回)를 말한다. 공자의 가장 뛰어난 제자로, 32세에 요절하였다. 백순(伯淳) 송나라 학자 정호(程顥)의 자이다. 신종(神宗) 때에 왕안석(王安石)과의 불화로 언직(言職)을 버리고 외관말직으로 물러났었는데, 그 뒤 철종(哲宗)이 즉위하여 종정승(宗正丞)의 벼슬을 제수하여 불렀으나 부임하기 전에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宋史 권427 程顥列傳》 선비들 원문의 '봉액(縫掖)'으로 유자(儒者)들이 입은 옷소매가 넓은 복장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선비를 지칭한 것이다. 《예기》 〈유행(儒行)〉에 "저(공자)는 어려서 노나라에 살 때에는 봉액의 옷을 입었고, 장성하여 송나라에 살 때에는 장보의 관을 썼습니다.[丘少居魯, 衣縫掖之衣, 長居宋, 冠章甫之冠.]"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영봉 전라도 영암(靈巖)의 월출산을 가리키는 듯하다. 形命 문맥상 '性命'의 잘못인 듯하다。 최충성(崔忠成)의 《산당집(山堂集)》 〈산당선생배향축문(山堂先生配享祝文)〉에 '性命'으로 되어있다。 褥 '縟'의 잘못인 듯하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금성향교 대성전 상량문 錦城鄕校大成殿上梁文 천지를 관(棺)으로 삼고 일월을 장지(葬地)로 삼아도 사십 분의 덕의(德儀)는 쫓아가기 어렵다.【어떤 본에는 '모두 우러른다[咸仰]'로 되어 있다.】 북두성을 향하고 화산과 숭산55)을 당길 듯한 이곳에 어찌 삼백년 구전(舊典)을 창건하지 않겠는가. 이에 택궁(澤宮)56)의 제도를 본받아서 마침내 고을에 학교의 규범을 세웠다. 생각건대 이 고을은 기미성 남쪽 분야57)이며 영해(瀛海)58)의 동쪽 지역으로, 영산강이 바다와 접해 있어 승부(乘桴)의 밝은 교화59)를 부여잡을 수 있고, 금성산이 허공에 서렸으니 소로(小魯)60)의 지극한 뜻을 거의 계승할 만하다.돌아보건대 신라 말엽에 비루해져서61) 바른 학문이 전해지 못했고, 고려조에 경박해져서 쇠퇴한 뒤로 성스러운 은택이 다 미치지 못하였다. 공사(公私) 간에 좌도(左道)62)의 시주(施主)를 다투어 본뜨고, 주군(州郡)에서는 바른 학문을 일으키는 데 매우 어두웠다. 진정한 성인이 5백년의 주기에 응하여 나와서63) 유도(儒道)를 존중하고 학문을 숭상하였는데 다행히도 이 땅에 천재일우의 운수를 만나서 학교를 건립하게 되었으니, 한계(寒溪)의 동문(洞門)은 궐리(闕里)에서 읊조리고 외우는 것과 유사하고64) 광탄(廣灘)의 원파(源派)는 기우(沂雩)에서 목욕하고 바람 쏘이는65) 것과 방불하였다.그러나 명협(蓂莢)이 시들어66) 세월이 흐르니 대부분 이끼가 먹어 비가 세었다. 지금 전하께서 즉위하신지 12년 되는 경술년(현종11, 1670) 봄에 향을 전하께서 내려주니 혼령이 훈호(薰蒿)67)하여 기둥 사이의 제수(祭需)에 접한 듯하고, 물이 땅속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68) 소명(昭明)하여 성령이 이곳에 임한 듯하다. 옛 날 그대로 터를 닦으니 장부(長府)는 민손(閔損)에게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고,69) 학궁 설계에 제도가 있으니 산절(山節)이 어찌 장문중(臧文仲)보다 못하겠는가.70) 증삼(曾參)처럼 재용에는 방도가 있었고71) 맹가(孟軻)처럼 농사철을 빼앗지 않았다.72)상하의 동우(棟宇)는 《주역》 〈대장괘(大壯卦)〉에서 취하였고73) 동서의 서영(序榮)74)은 주나라 제도의 유풍(霤風)을 본뜬 것이다. 승당(升堂)한 십철(十哲)이 열석(列席)해 있고 입실(入室)한 사성(四聖)이 동렬에 있다.75) 우조의란(虞操猗蘭)76)은 제나라에서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몰랐던 음악77)을 듣는 듯하고, 희란하행(姬亂河荇)78)은 노나라로 돌아온 칠순의 공자79)를 접하는 듯하다. 쇠퇴한 주(周)나라가 저무는 때에 요순(堯舜)의 기상을 품고, 말기의 송(宋)나라가 스러져가는 날에 우리 정주(程朱)의 정통 학맥을 열었도다. 【단구(短句)가 빠진 듯하다.】 도(道)는 오랑캐와 중화(中華)의 차이가 없으니 사유(四儒)가 동한(東韓)에서 지극한 가르침을 따랐고, 덕이 옛날과 지금이 어찌 다르겠는가, 오현(五賢)은 지결(旨訣)을 북학(北學)80)에서 받들었도다.연이어 합한 궁실에서 함께 향기로운 제사를 올리니81) 좌우전후에 계신 듯 양양하고82) 우러러 뵈오니 심원하도다.83) 삼강(三綱)이 모두 확립되어 전각과 더불어 하늘을 경영하고 구법(九法)84)이 모두 조화롭게 되어 들보 기둥과 나란히 땅을 다스릴 것이니, 이는 모두 성세(聖世)의 명교(明敎)를 따르고 또한 현부(賢府)의 중창에도 관계되는 일이다. 주자(周子)는 소주(邵州)에서 고명(高明)함이 복서(卜筮)에 부합되었고85) 문옹(文翁)도 금리 (錦里)에서 유학의 교화를 성취하였었다.86) 전당(鱣堂)87)에 경사가 넘치고 접역(鰈域)88)에 환희가 펼쳐지니 이에 아랑(兒郞)의 축문89)을 진술하여 감히 들보 올리는 일을 돕는다.어영차 들보 동쪽에 떡을 던져라90)서일이 막 솟아 쌓인 기운 토하네성신의 진묘한 자취 알고자 하니바다 하늘에 단비 내리고 춘풍에 화육되네어영차 들보 서쪽에 떡을 던져라수사의 참된 근원이 바닷가에91) 접했구나조석으로 밀물이 통하여 금수92)에 이어지니이로부터 곧바로 하늘 사다리에 오르리라어영차 들보 남쪽에 떡을 던져라남극에서 추성93)이 바다로 들어가 잠기네밤낮으로 천지의 축을 부지하고북극성을 마주하며 삼성과 함께 하네어영차 들보 북쪽에 떡을 던져라뭇별들이 빙 둘러서 북극성을 도네하늘과 사람을 어찌 둘로 나눠 보랴성화는 작위가 아니라 덕에 있다네어영차 들보 위로 떡을 던져라칠요와 삼광94)이 만상을 나누네성스러운 도는 하늘 같으니 어찌 오르랴95)어리석은 무리는 백대토록 흠앙할 뿐이네어영차 들보 아래로 떡을 던져라유생들은 봄가을로 시서를 일삼네육경96)에 분명 도의 진수가 실려 있으니의리에 깊이 잠기면 친자한 것과 같으리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로는 집마다 예의를 말하고 집마다 시서를 외우며, 금석사【어떤 본에는 '사(絲)'가 '생(笙)'으로 되어 있다.】황97)으로 만대토록 제사를 길이 올리고, 문(文)·행(行)·충(忠)·신(信)으로 4교(敎)98)의 법도를 길이 남기며, 많은 선비들이 난새처럼 비상하여 멀리 옛 성인의 전통을 잇고, 여러 현인들은 기러기처럼 점진하여99) 일어나 우리 조정의 유종(儒宗)을 진작할지어다. 棺天地葬日月。 難追【一作咸仰】四十表之德儀。 拱星斗挽華嵩。 盍創三百年之舊典? 玆倣澤宮之制。 聿建州序之規。 竊惟玆州。 箕尾南分。 瀛海東域。 靈江接海。 乘桴之睿化可攀。 錦岳蟠空。 小魯之至意庶述。 顧咮㒧於羅季。 正學無傳。 洎澆喪於麗朝。 聖澤未究。 公私爭效左道之施捨。 州郡專昧右文之作興。 唯眞聖膺五百之期。 重儒崇學。 幸玆土値千一之運。 建塾立庠。 寒溪洞門。 依俙闕里之絃誦。 廣灘源派。 髣髴沂雩之浴風。 逮蓂老而歲遷。 多蘚蝕而雨漏。 維嗣王甲子一紀。 乃歲星庚戌三春。 降香自天。 薰蒿乎楹奠若接。 如水在地。 昭明乎聖靈臨玆。 仍舊修基。 長府無譏於閔損。 畫宮有制。 山節豈歉於臧文? 曾參之財用有方。 孟軻之農時不奪。 上下棟宇。 取雷天於羲經。 東西序榮。 學霤風於周制。 升堂之十哲在列。 入室之四聖班行。 虞操猗蘭。 若聞在齊之三月。 姬亂河荇。 怳接返魯之七旬。 衰周暮天。 孕此堯舜氣象。 晩宋殘日。 啓我程朱嫡傳。【恐闕短句】道無間於夷夏。 四儒遵至敎於東韓。 德何殊於今古。 五賢奉旨訣於北學。 連宮合室。 共苾同芬。 洋洋乎左右後先。 穆穆乎鑽仰瞻忽。 三綱並立。 與殿隅而經天。 九法偕和。 齊杗桷而緯地。 皆仍聖世之明敎。 亦係賢府之重新。 周子邵州。 高明協卜。 文翁錦里。 儒化可成。 慶溢鱣堂。 歡開鰈域。 式陳兒卽之祝。 敢助梁欐之升。 兒郞偉抛梁東。 瑞日初昇積氣融。 欲識聖神眞妙跡。 海天時雨化春風。 兒郞偉抛梁西。 洙泗眞源接海倪。 日夕通潮連錦水。 從玆直到上天梯。 兒郞偉抛梁南。 南極樞星入海涵。 日夜扶持天地軸。 北辰相對共參三。 兒郞偉抛梁北。 衆星連繞環樞極。 天人豈可兩分看。 聖化無爲唯在德。 兒郞偉抛梁上。 七曜三光分萬象。 聖道如天豈可階。 羣蒙百代徒欽仰。 兒郞偉抛梁下。 章甫詩書春及夏。 六籍分明載道眞。 沉潛義理如親炙。 伏願上梁之後。 家談禮義。 戶誦詩書。 金石絲【一作笙】簧。 永奠萬代之樽俎。 文行忠信。 長留四敎之規矩。 羣彦鸞翔。 遠紹往聖之統緖。 諸賢鴻漸。 起作本朝之儒宗。 화산과 숭산 '화숭(華嵩)'은 화산(華山)과 숭산(嵩山)의 병칭이다. 택궁(澤宮) 주나라 때 활쏘기를 하여 사(士)를 선발하던 곳인데, 전하여 태학(太學)을 말한다. 《周禮 夏官 司弓矢》 기미성 남쪽 분야 기미(箕尾)는 28수(宿) 별자리 중 동쪽 별자리인 기수(箕宿)와 미수(尾宿)에 해당하는 즉 조선을 가리키고 남쪽 분야는 나주를 지칭한 것이다. 영해(瀛海) 큰 바다인데 여기서는 황해를 가리킨다. 《사기(史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이러한 주가 아홉 개가 있고 영해가 그 밖을 에워싸고 있다.[如此者九, 乃有大瀛海環其外.]" 하였다. 황해는 중국 쪽에서는 동쪽이다. 승부(乘桴)의 밝은 교화 공자의 교화를 가리킨다. 공자가 "도가 행해지지 않는지라 뗏목을 타고 바다에 뜨리니, 이때 나를 따라올 사람은 아마 중유일 것이다.[道不行, 乘桴, 浮于海, 從我者, 其由與.]"라고 하였다. 《論語 公冶長》 소로(小魯) 큰 포부를 비유한 것이다. 나주(羅州)의 금성산에 오르면 공자가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기는 것과 같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맹자가 이르기를 "공자가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를 작게 여겼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上》 비루해져서 원문의 '주리(咮㒧)'로 주리(侏離)와 같은 뜻인데, 오랑캐의 언어 문자를 가리킨다. 공자의 유학을 벗어난 것을 가리킨다. 좌도(左道) 이단(異端)의 도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불교를 지칭한 것이다. 진정한……나와서 '500년의 주기[五百之期]'란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맹자가 제(齊)나라를 떠나면서 "500년마다 반드시 왕자가 나온다.[五百年, 必有王者興.]"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즉 요순(堯舜)에서 탕왕(湯王)까지, 탕에서 문왕(文王)·무왕(武王)까지 성현이 태어나는 주기를 500년으로 본 것이다. 궐리(闕里)에서……유사하고 나주 한계동에서 글읽는 소리가 마치 공자의 제자들이 궐리에서 글읽는 소리와 유사하다는 뜻이다. '궐리'는 지명으로 《공자가어(孔子家語)》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에 "공자가 궐리에서 처음 가르쳤다.[子始敎學于闕里.]" 하였다. 기우(沂雩)에서……쏘이는 《논어》 〈선진(先進)〉에 공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해 보라고 했을 때, 증점(曾點)이 마침 비파를 타다가 쟁그렁 소리와 함께 비파를 놓고 일어나서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5, 6인,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한 데서 온 말이다. 명협(蓂莢)이 시들어 세월이 흘러 건물이 낡은 것을 말한다. '명협'은 요 임금 때 조정 뜰에 났다는 서초인데, 매월 1일부터 15일까지 매일 한 잎씩 나오고, 16일부터 그믐날까지 매일 한 잎씩 떨어졌으므로, 이것으로 날을 계산하여 달력을 만들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竹書紀年 卷上 帝堯陶唐氏》 혼령이 훈호 '훈호(薰蒿)'는 귀신의 기(氣)를 형용한 것이다. 《예기》 〈제의(祭義)〉에 "생물들은 반드시 죽고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나니 이를 귀라고 이른다. 뼈와 살은 땅속에서 썩어 흙이 되고 이것이 야토가 되면 그 기는 발하여 위로 올라가서 소명, 훈호, 처창이 된다.[衆生必死, 死必歸土, 此之謂鬼. 骨肉斃于下, 陰爲野土, 其氣發揚于上, 爲昭明焄蒿悽愴.]"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귀신이 밝게 드러나는 것이 소명, 그 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 훈호, 사람의 정신을 두렵게 하는 것이 처창이다.[鬼神之露光處是昭明, 其氣蒸上處是焄蒿, 使人精神竦動處是悽愴.]" 하였다. 물이……것처럼[如水在地] 시공(時空)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식(蘇軾)의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에 "공의 신이 천하에 있는 것은 마치 물이 땅속에 있는 것과 같아 어디로 간들 있지 않음이 없다.[公之神在天下者, 如水之在地中, 無所往而不在也.]" 하였다. 《東坡全集 卷86》 옛……것이고 원문의 '장부(長府)'는 재화(財貨)를 넣는 창고인데 여기서는 향교의 건물을 가리킨다. 《논어》 〈선진(先進)〉에 "노나라 집정자가 장부를 고쳐 짓자, 민자건이 말하기를 '옛 일을 따르는 것이 어떠한가. 어찌 꼭 고쳐 지을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魯人爲長府, 閔子騫曰, 仍舊貫如之何, 何必改作.]" 하였다. 산절(山節)이……못하겠는가 장식을 제도에 맞게 했다는 뜻이다. '산절(山節)'은 두공(斗栱)에 산 모양을 새기는 것인데, 여기서는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장문(臧文)'은 춘추 시대에 노(魯)나라의 대부인 장문중(臧文仲)이다. 장문중이 거북껍질을 보관하는 집을 만들면서 너무 호화스럽게 꾸미자, 공자는 "장문중이 거북껍질을 보관하되, 두공(斗栱)에 산을 그리고 동자기둥에 마름을 새기니, 어떻게 지혜롭다고 하겠는가.[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라고 질책하였다. 《論語 公冶長》 증삼(曾參)처럼……있었고 향교를 짓는데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증삼(曾參)'은 증자(曾子)의 이름이다. 《대학장구》 전 10장에 "군자는 먼저 덕을 삼가니, 덕이 있으면 백성이 있고 백성이 있으면 영토가 있고 영토가 있으면 재물이 있고 재물이 있으면 씀이 있다. 덕은 근본이고, 재물은 말단이다.……그렇기 때문에 재물을 모으면 백성들이 흩어지고, 재물을 흩으면 백성들이 모이는 것이다.[君子先愼乎德, 有德, 此有人, 有人, 此有土, 有土, 此有財, 有財, 此有用. 德者, 本也, 財者, 末也.……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하였다. 맹가(孟軻)처럼……않았다 향교를 짓는데 농사철은 피했다는 뜻이다. '맹가(孟軻)'는 맹자(孟子)의 이름이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농사철을 빼앗지 않으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고……왕도 정치의 시작이다.[不違農時, 穀不可勝食也,……王道之始也.]" 하였다. 상하의……취하였고 집을 튼튼하게 짓는 것을 말한다. '희경(羲經)'은 《주역》의 별칭이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상고시대에는 사람들이 굴에서 살고 들판에서 살았다. 후세에 성인이 이것을 집으로 바꾸어 위에는 들보를 얹고 아래에는 서까래를 얹어 비바람에 대비하였다. 이것은 〈대장괘〉에서 취하였다.[上古, 穴居而野處. 後世聖人, 易之以宮室, 上棟下宇, 以待風雨. 蓋取諸大壯.]" 하였다. 서영(序榮) '서(序)'는 상(廂)을, '영(榮)'은 처마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동서에 세워진 건물을 말한 것이다. 승당한……있다 원문의 '승당(升堂)'은 학문이나 도의 경지가 어느 정도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을, '입실(入室)'은 승당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을 뜻한다. 《논어》 〈선진(先進)〉에,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의 학문 수준을 두고 말하기를 "당에는 올랐고 아직 방에는 들어오지 못했다.[升堂矣, 未入室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십철(十哲)'은 민자건(閔子騫)·염백우(冉伯牛)·중궁(仲弓)·재아(宰我)·자공(子貢)·염유(冉有)·계로(季路)·자유(子游)·자하(子夏)·자장(子張)을 일컫는다. '사성(四聖)'은 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를 말한다. 우조의란(虞操猗蘭) 상량식에 연주했던 음악을 비유한 것이다. '우조(虞操)'는 우순(虞舜)의 금곡(琴曲)을 가리키고, '의란(猗蘭)'은 공자가 지었다는 금곡(琴曲)인 의란조(猗蘭操)를 말한다. 제나라에서……음악[齊之三月] 매우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께서 제나라에 계실 때에 순 임금의 소악을 들으시고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몰랐다.' 하였다.[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하였다. 희란하행(姬亂河荇) 상량식에서 읊었던 시를 비유한 것이다. '희란(姬亂)'은 뜻이 미상이고, '하행(河荇)'은 《시경》 〈관저(關雎)〉에 "들쭉날쭉한 마름을 이리저리 물 따라가며 취하도다.[參差荇菜, 左右流之.]라고 하였다. 노나라……공자[返魯之七旬] '반로(返魯)'는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온 것을 말한다. 《논어》 〈자한(子罕)〉에 "내가 위나라로부터 노나라로 돌아온 뒤로 음악이 바루어져서 아와 송이 각기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吾自衛反魯, 然後樂正, 雅頌各得其所.]" 하였다. '칠순(七旬)'은 그 당시의 나이가 칠순이었다는 뜻인 듯하다. 공자는 68세 때인 노나라 애공(哀公) 11년에 노나라로 돌아왔다. 오현(五賢)은 지결(旨訣)을 북학(北學) '오현'은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 다섯 명의 유현(儒賢)을 가리킨다. '북학'은 북쪽으로 가서 배우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중국의 학문을 비유한 것이다. 향기로운 제사를 올리니 '필(苾)'과 '분(芬)'은 제물에서 나는 향기를 말하는데 제사의 뜻으로 쓰인다. 《시경》 〈초자(楚茨)〉에 "향기로운 효사에 신이 음식을 즐기네.[苾芬孝祀, 神嗜飮食.]" 하였다. 좌우전후에……양양하고 원문의 '양양(洋洋)'은 신령이 곁에 있는 듯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중용장구》 제16장에 "천하의 사람으로 하여금 재계하고 깨끗이 하며 의복을 성대히 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고는 양양하게 그 위에 있는 듯하며 그 좌우에 있는 듯하다.[使天下之人, 齊明盛服, 以承祭祀, 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라고 하였다. 우러러 뵈오니 심원하도다 원문의 '찬앙첨홀(鑽仰瞻忽)'은 우러러 본다는 뜻이다. 안연(顔淵)이 공자(孔子)의 무궁무진(無窮無盡)한 도를 깊이 감탄하여 말하기를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보면 앞에 있는 듯하다가, 홀연히 뒤에 계시도다.[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하였다. 《論語 子罕》 구법(九法) 《서경》 〈홍범(洪範)〉의 '구주(九疇)'를 가리킨다. 이는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대법(大法)으로, 곧 오행(五行)·오사(五事)·팔정(八政)·오기(五紀)·황극(皇極)·삼덕(三德)·계의(稽疑)·서징(庶徵)·오복(五福)이다. 주자(周子)는……부합되었고 주자(周子)는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頥)를 가리키는데 그도 소주(邵州)에서 학교를 중수하는 데 관련이 있었다는 뜻인데, 미상이다. 문옹(文翁)도……하였었다 '문옹(文翁)'은 중국 전한(前漢) 경제(景帝) 때의 문신이다. 촉(蜀) 땅의 군수가 된 후 성도(成都)의 시장 가운데에 관학(官學)을 설치하여 고을의 자제들을 불러다 배우게 하였다. 입학자는 요역(徭役)을 면제해 주고 성적이 우수한 자는 고을의 관리로 보임하였다. 이에 촉군에 교화를 펼치고 문풍(文風)을 크게 일으켜 인재를 대거 배출하였다. 이는 무제(武帝) 때 전국의 고을에 관학을 설치하게 된 요인이 되었다. 《漢書 권89 文翁傳》 전당(鱣堂) 강학하는 장소를 말한다. 한(漢)나라 양진(楊震)이 뛰어난 학문을 가지고서도 여러 차례 소명(召命)에 응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황새가 강당(講堂) 앞에 전어(鱣魚) 세 마리를 물고 날아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전어는 대부들이 입는 옷의 무늬이고, 세 마리는 삼태(三台)의 조짐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뒤에 양진이 과연 태위(太尉)에 올랐다. 《後漢書 권54 楊震列傳》 접역(鰈域) 가자미가 생산되는 지역이란 뜻으로, 조선을 가리킨다. 아랑(兒郞)의 축문 상량문(上樑文)를 말한다. 원문의 '兒卽'은 '兒郞'의 잘못이다. '아랑(兒郞)'은 아량위(兒郞偉)인데 '어영차'의 의성어로, 어영차 올린다는 뜻이다. 들보……던져라 '포량동(抛樑東)'은 상량문 말미의 축송에 상투적으로 붙는 말로, 상·하·사방의 여섯 방위 중 첫째로 동쪽을 든 것이다. 이 같은 투식은 중국 육조 시대(六朝時代) 때부터 전해 내려왔다. 건축물의 기본 골격이 완성된 뒤에 길일(吉日)을 골라 들보를 올리며 상량식을 하는데, 이때 친지들이 음식을 싸와서 축하하고 목수들을 대접한다. 그러면 도목수가 대들보 위에 걸터앉아 만두·떡 등을 상·하·사방으로 던지며 상량문을 읽어 축원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상량식도 이와 유사했다. 수사의……바닷가에 나주에 향교가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수사(洙泗)'는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로, 공자가 이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보통 공자의 학문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바닷가'는 나주(羅州) 영산강이 닿는 서해를 가리킨다. 금수(錦水) 나주의 영산강(榮山江)을 가리킨다. 추성(樞星) 북두칠성의 첫 째 별인데, 북두칠성을 말한 것이다. 칠요와 삼광 '칠요(七曜)'는 일(日)·월(月) 및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다섯별을 말한다. '삼광(三光)'은 해와 달과 별을 말한다. 성스러운……오르랴 공자의 위대함을 말한 것이다. 《논어》 〈자장(子張)〉에, 자공(子貢)이 스승인 공자의 위대함을 일컬으면서 "우리 선생님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은 마치 사다리를 타고서 하늘을 올라갈 수 없는 것과 같다.[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라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육경 원문의 '육적(六籍)'으로 육경(六經)과 같은 말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의 중요한 경전인 《역경》·《시경》·《서경》·《춘추》·《예경》·《악경》을 말하는데, 이 가운데, 《예경》은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책을 가리키기도 하며, 《악경》은 진(秦)나라 때 분서갱유(焚書坑儒)를 거치면서 없어졌다. 금석사황(金石絲簧) 각종 악기를 가리킨다. 금은 쇠로, 석은 옥으로 만든 악기이며 사는 현악기, 황은 관악기이다. 4교(敎)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는 4가지로 가르쳤으니, 문(文)·행(行)·충(忠)·신(信)이었다.[子以四敎, 文行忠信.]"라고 한 것을 이른다. 기러기처럼 점진하여 원문의 '홍점(鴻漸)'으로, 기러기가 낮은 곳에서 점차 높은 곳으로 날아가는 것을 말한다. 《주역》 〈점괘(漸卦) 상구(上九)〉의 "상구는 기러기가 공중으로 점점 날아가는 것인데, 그 깃이 의표(儀表)가 될 만하니, 길하다.[上九, 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 吉.]"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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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100) 신사 상량문 道民新舍上梁文 사람이 땅에서 살다가 병이 들고 나무에서 살다가 떨어지기도 하자, 선성(先聖)이 궁실(宮室)의 제도를 세웠고,101) 해를 헤아리고 그림자를 측정하여 후생(後生)들이 띠 집의 법식을 모방하였다. 시(詩)에서는 서우(胥宇)102)의 장(章)을 말하고 예(禮)에서는 정침(正寢)의 법을 두었다. 주인은 농포(農圃) 가운데 우활한 학자요 시주(詩酒) 간에 취옹(醉翁)103)이다. 뜻이 씩씩하여 용을 그렸으나 화룡점정(畫龍點睛)의 묘술은 터득하지 못하였고, 매독(買櫝)의 마음이 있었으나 한갓 환주(還珠)104)의 장탄식만 일으켰다. 서하에서 쓸쓸히 살던 일105)은 알려지지 않았고 북해에서 변화하려던 날개도 들지 못했다.106) 원생(原生)처럼 빈천107)했지만 지락한 곡굉(曲肱)의 삶108)을 사모했고, 원량(元亮)처럼 가난하지만 어찌 편안한 용슬(容膝)109)이야 없겠는가?이에 남촌(南村)110)에 터 잡은 집을 본받고 북산(北山)111)의 그윽한 거처를 모방했다. 바다 밖의 명승은 육오(六鰲)112)의 등에 근접하고 호수 북쪽 승경은 삼신산(三神山) 물가의 물을 마주하고 있다. 새 도시인 영평(永平)의 남쪽이요 옛 현(縣)인 도민(道民)의 부곡(部曲)이다. 산이 서리고 계곡은 굽이져 이원(李愿)113)의 거처를 떠올릴 만하고, 물이 감돌고 들판은 평평하여 사람들은 중장통(仲長統)114)의 집으로 부른다. 때가 좋고 날짜도 길하니, 수동(竪棟)과 횡량(橫樑)을 가설하고 애오라지 단정한 붓을 휘둘러 상량의 공적(工績)을 돕는다.들보 동쪽에 떡을 던져라바다 밖 단구115)와 통할 듯하다여기에서 청학동116)이 바로 보이고하늘과 땅 낮과 밤이 환중117)에 떠있다들보 서쪽에 떡을 던져라금악과 영탄118)의 빼어난 기운이 나란하다교외는 백년토록 안개 낀 달밤 같은데호미질 하고 봄 비 속에 긴 내를 지난다들보 남쪽에 떡을 던져라달이 청산에서 솟아 푸른 기운을 가른다산 밖으로 영주119)를 접할 듯하고바다의 해와 하늘 땅 셋이 모두 잠긴다들보 북쪽에 떡을 던져라천주120)와 북극성이 북극을 향하도다양보121)를 크게 읊으니 읊을 때마다 쓰라린데뭇별들이 어지러이 남쪽 사막으로 이어진다들보 위로 떡을 던져라구만리 긴 하늘에 쌓인 기운이 출렁인다얼굴 젖히니 내 정신 몹시 상쾌하게 하고밝은 해와 달이 내 이마에 임하도다들보 아래로 떡을 던져라만고토록 곤유122)에 빈마123)를 멍에 하라길한 징조를 펴서 아름다운 상서 만드니한 구역의 화기는 천년토록 이어지리라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로는 재앙이 영원히 그치고 원포(園圃)에는 길이 봄만 있으며, 시서를 읊고 외워 집에는 추로(鄒魯)의 군자124)가 가득 차고, 가정에서 충효를 전하여 방에는 하락(河洛)125)의 순수한 기풍이 있으며, 꿈에 웅비(熊羆)126)를 꾸어 길이 〈종사(螽斯)〉127)의 경사를 받으며, 거북과 시초의 점괘가 길하여 실로 풍년128)의 상서를 누리고, 그 시작을 이제부터 하여 끝없이 전할지어다. 土而病木而顚。 先聖起宮室之制。 規之日測之景。 後生倣茅茨之儀。 詩稱胥宇之章。 禮有正寢之則。 主人農圃中迂學。 詩酒間醉翁。 志壯畫龍。 未得點睛之妙術。 心存買櫝。 徒起還珠之浩嘆。 西河之索居無聞。 北海之化羽未擧。 原生貧賤。 縱慕至樂之曲肱。 元亮屢空。 寧無可安之容膝? 玆効南村卜宅。 竊倣北山幽居。 海外名區。 近接六鰲之背。 湖陽勝塏。 平挹三山之濱。 新都永平之南。 舊縣道民之曲。 山盤谷轉。 足數李愿之居。 水迴郊平。 人稱仲長之宅。 辰旣良兮日吉。 架竪棟兮橫樑。 聊揮端毫。 用贊工績。 抛梁東。 海外丹邱若可通。 從此直望靑鶴洞。 乾坤日夜泛環中。 抛梁西。 錦岳靈灘秀氣齊。 郊外百年烟月夕。 一鋤春雨渡長溪。 抛梁南。 月出靑峯割碧嵐。 山外瀛洲如可接。 海光天地尙涵三。 抛梁北。 天柱北辰拱北極。 梁甫大吟吟正苦。 衆星錯落連南漠。 抛梁上。 九萬長天積氣蕩。 仰面不堪爽我神。 分明日月臨吾顙。 抛梁下。 萬古坤維駕牝馬。 能發休徵作嘉祥。 一區和氣千春夏。 伏願上梁之後。 災殃永息。 園圃長春。 絃誦詩書。 戶充鄒魯君子。 家傳忠孝。 室有河洛純風。 夢叶熊羆。 永服螽斯之慶。 卜吉龜蓍。 允享魚矣之祥。 其始自今。 用傳無極。 도민(道民) 김만영이 우거하던 고을이다. 땅에서……세웠고 한유(韓愈)의 〈원도(原道)〉에 "옛 시절에 사람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성인이 나오신 연후에 서로 살려주고 길러주는 도리를 가르치셨다.……나무에서 살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땅에서 살다가 병이 나자 그 후에 궁실을 짓게 했다.[古之時, 人之害多矣, 有聖人者立然後, 敎之以相生養之道.……木處而顚, 土處而病也, 然後爲之宮室.]" 하였다. 서우(胥宇) 집터를 살펴보아 잡는다는 뜻이다. 《시경》 〈면(綿)〉에 "고공단보가 아침에 말을 달려와서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 아래에 이르니 이에 강녀와 함께 와서 집터를 보아 잡았도다.[古公亶父, 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岐下. 爰及姜女, 聿來胥宇.]" 하였다. 취옹(醉翁) 북송(北宋)의 구양수(歐陽脩)이다. 그는 〈취옹정기(醉翁亭記)〉를 지어 자신이 '취옹(醉翁)'인 이유를 설명하였다. 매독(買櫝)의……환주(還珠) 근본은 버리고 지말(枝末)만 좇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초(楚)나라 사람이 목란(木蘭) 상자에 주옥을 담아 정(鄭)나라 사람에게 팔자, 그 정나라 사람이 상자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었다는 우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韓非子 外儲說左上》 서하에서……일 벗들과 떨어져 홀로 지낸 일을 가리킨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서하(西河)에서 노년을 보내던 중에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시력을 잃고는 증자(曾子)의 꾸지람을 받자, "내가 벗들을 떠나 혼자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吾離群而索居.]"라고 사과했던 고사가 있다. 《禮記 檀弓上》 북해에서……못했다 높은 뜻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북해(北海)에 사는 곤(鯤)이란 물고기가 붕새로 변화하여 구만리(九萬里)를 난다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원생(原生)처럼 빈천 '원생'은 공자(孔子)의 제자인 원헌(原憲)을 말한다. 그는 청고(淸高)하고 빈한(貧寒)하게 사는 선비의 대명사로 쓰인다. 《莊子 讓王》 곡굉(曲肱)의 삶 빈한한 생활 속에서도 도를 누리는 삶을 말한다. 공자가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서 베더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하였다. 《論語 述而》 원량(元亮)처럼……용슬(容膝) '원량'은 동진(東晋)의 시인인 도잠(陶潛)의 자이다. '용슬(容膝)'은 작은 집을 의미한다. 도잠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남쪽 창가에 기대어 교오한 마음을 부치니, 무릎만 겨우 들여놓을 작은 집도 편안한 줄을 알겠네.[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하였다. 남촌(南村) 도잠(陶潛)이 살던 곳인 율리(栗里)를 가리킨다. 도잠의 〈이거(移居)〉에 "예전부터 남촌에 살고 싶었으니, 좋은 집터 찾아서가 아니라오. 들으니 깨끗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 많아, 즐거이 아침저녁으로 자주 만나려고 해서라오.[昔欲居南村, 非爲卜其宅. 聞多素心人, 樂與數晨夕.]" 하였다. 북산(北山) 은자의 처소를 의미한다. 남제(南齊) 때 공치규(孔稚圭)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북산에 은거하다가 변절하여 벼슬길에 나간 주옹(周顒)을 몹시 책망하는 뜻을 서술했다. 육오(六鰲) 바다의 삼신산을 비유한 것이다. 본래 '육오'는 바다의 신산(神山)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는 6마리 큰 자라를 가리킨다. 《列子 湯問》 이원(李愿) 당나라 때의 은사(隱士)이다. 이원(李愿)이 벼슬을 사직하고 물러나 반곡(盤谷)에 은거할 때 한유(韓愈)가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를 지어 그를 칭찬했다. 중장통(仲長統) 원문의 '중장(仲長)'으로, 후한(後漢) 때의 명사인데 조정에서 벼슬로 부를 때마다 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後漢書 권49 仲長統列傳》 단구(丹邱):밤이나 낮이나 항상 밝은 땅으로, 우인(羽人)이 죽지 않고 산다는 선경(仙境)이다.《초사(楚辭)》 〈원유(遠游)〉에 "우인을 따라 단구로 나아감이여, 죽지 않는 옛 고장에 머물련다.[仍羽人於丹丘兮, 留不死之舊鄕]." 하였는데 왕일(王逸)의 주에 "단구(丹丘)는 밤이나 낮이나 항상 밝다.[丹丘晝夜常明也.]" 하였다. 청학동(靑鶴洞) 지리산(智異山) 속에 있다는 선경인데, 아직까지 아무도 그곳을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 환중(環中) 절대적인 경지를 말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피와 차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을 도추(道樞)라고 한다. 문의 지도리는 환중을 얻어야 무궁한 것에 응할 수 있으니 시란 하나의 무궁한 것이며 비 또한 하나의 무궁한 것이다.[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而應無窮, 是一無窮, 非亦一窮.]" 하였다. 금악과 영탄 '금악(錦岳)'은 전라도 나주(羅州)의 금성산을, '영탄(靈灘)'은 영산강을 말한다. 영주(瀛洲) 신선이 살았다는 삼신산(三神山) 중의 하나이다. 천주(天柱)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이른다. 《列子 湯問》 양보(梁甫) 양보음(梁甫吟)으로 악부(樂府)의 곡명이다. 지금 전해지고 있는 제갈량(諸葛亮)의 〈양보음〉은 춘추 시대 제(齊)나라 재상 안평중(晏平仲)이 도량이 좁아 세 명의 용사를 죽이고야 만 일을 한탄하는 내용이며, 이백(李白)의 〈양보음〉은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지 못한 울분을 서술한 것이다. 곤유(坤維) 곤유(坤維)는 지유(地維)를 가리키는 듯하다. 지유는 대지(大地)를 유지하는 동아줄을 말한다. 《列子 湯問》 빈마(牝馬) 암말이다. 《주역》에서 땅을 암말에 비유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주역》 〈곤괘(坤卦)〉에 "곤은 크게 형통하고 암말의 정함이 이롭다.[坤, 元亨, 利牝馬之貞.]" 하였다. 추로(鄒魯)의 군자 '추로(鄒魯)'는 공자가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이었고, 맹자가 전국 시대 추(鄒) 땅 사람이었던 데에서 온 말이고, 여기서는 유학을 하는 선비를 가리킨다. 하락(河洛) 하수(河水)와 낙수(洛水)의 병칭으로 낙양(洛陽)을 가리키는바, 북송(北宋)의 정자(程子) 형제가 거처하던 곳이기 때문에 이들을 지칭하며, 정주학을 통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웅비(熊羆) 남자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시경》 〈사간(斯干)〉에 "대인이 점을 치니 곰과 큰곰은 남자를 낳을 상서요, 살무사와 뱀은 여자를 낳을 상서로다.[大人占之, 維熊維羆, 男子之祥, 維虺維蛇, 女子之祥.]" 하였다. 종사(螽斯)의 경사 〈종사(螽斯)〉는 《시경》의 편명으로, 자식을 많이 두는 경사를 의미한다. 그 시에 "수많은 메뚜기가 화목하게 모여들듯, 마땅히 그대의 자손 번성하리라.[螽斯羽, 詵詵兮, 宜爾子孫, 振振兮.]" 하였다. 풍년 원문의 '어의(魚矣)'로,《시경》 〈무양(無羊)〉에 "목인이 꿈을 꾸니, 사람들이 물고기로 보였는데……사람들이 물고기로 보이는 것은, 실로 풍년이 들 조짐이다.[牧人乃夢, 衆維魚矣,……衆維魚矣, 實維豊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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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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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제문 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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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암129)에 대한 제문 祭李惺菴文 유세차 신축년(1661, 현종2) 8월 정미삭(丁未朔) 정사(丁巳)에 후학 김만영은 삼가 집안 조카 문봉의(文鳳儀)를 보내 맑은 술과 과일의 제물을 받들어 성암(惺菴) 이 선생(李先生) 영좌 앞에 공경히 제사를 올립니다.아! 세상에 학문으로 이름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문파가 각기 다르고 학맥도 다양한데 호중(湖中)에서 정학(正學)을 마음에 두고 정주(程朱)의 학통에 가까운 사람은 천년 이래 한 분 존옹(存翁) 뿐입니다. 적막했던 백 년 동안 더는 창도한 자가 없었는데 선생이 나온 것이 다행히도 이 때를 맞았습니다. 선생은 깨끗하고 조용한 자질과 자상하고 온화한 기품으로 세상의 번잡한 일들을 일찍 사절하고 사학(斯學, 유학)에만 뜻을 기울였습니다. 모든 일이 반드시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아서 존심(存心)130)을 요체로 삼았고, 심체(心體)가 반드시 고요한 데에 편안함을 알아서 직내(直內)131)를 뿌리로 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주역》을 배워서 먼저 만수일본(萬殊一本)132)의 영역을 연구하고 【▣】 보존하여 사씨(謝氏)의 '경(敬)'을 논한 뜻133)에 가장 밝았습니다. 아! 선생의 학문은 근본이 있다 하겠습니다.간책에 이름을 올리고 과거에 급제하여 청요직(淸要職)을 거치고는 은혜로운 윤음(綸音)이 누차 내려오고 간절한 소명(召命)이 답지(畓至)했으나 한 번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리가 없는 것이다.134)'라는 가르침에 대해서 미리 듣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으나, '나는 아직 벼슬할 자신이 없다.'라는 도리에 대해서 독실하게 믿는 바가 있었습니다.135) 그러므로 홀로 성현이 남긴 경전을 안고서 반평생 깊은 골짜기에서 그대로 평생을 마칠 것처럼 하여136) 영달(榮達)에 대한 생각을 끊었던 것입니다. 아! 선생의 뜻은 독실하다 하겠습니다.비록 그렇지만 양묘(兩廟, 인조와 효종)가 승하한 날을 당해서는 병든 몸으로 수레를 타고 천리를 달려가 길가에서 곡(哭)을 하였고, 굶어죽은 시체가 길을 메운 때를 만나서는 자기 일처럼 근심하여 소장을 올려 사정을 진언하였습니다. 아! 선생은 세상에 대해 장차 큰 뜻이 있었다 하겠습니다.통탄스러운 것은 바야흐로 학문이 완성되고 공부가 성숙해 질 즈음에 거경궁리(居敬竆理)와 성기성물(成己成物)137)의 학문에 더욱 크게 힘을 쓸 수 있었다면, 학문의 조예가 지극해지고 실제의 덕이 완성됨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하늘이 재주를 주어 처음에는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하였다가 끝내는 이처럼 빠르게 빼앗아 갔단 말입니까?아! 선생은 독실하게 도를 믿으며 견고하게 뜻을 지키고 절실하게 시국을 근심하면서 궁벽한 시골에서 검약(儉約)을 지켰으나, 뜻을 아직 크게 이루지는 못하여 미처 자세히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어138) 이 만학(晩學)은 의지할 곳을 잃었으니, 어찌 저로 하여금 뼈에 사무치고 넋이 슬퍼하여 계속 대성통곡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아! 연전에 뵈었을 때 밝은 가르침이 간곡했고 계속 편지로 깨우치고 이끌어 주셨기에 약아(約我)139)의 희망이 바야흐로 커졌는데 어찌 안앙(安仰)140)의 통곡을 갑자기 하게 되었습니까? 지금 체백이 무덤에 영원히 묻히게 되었다는 부음을 듣고도 천한 병이 몸을 휘감은지라, 상여끈도 잡지 못하고 멀리 남쪽 구름만 쳐다보며 정신만 날아서 가고, 사람을 대신 보내 술을 올려 감히 애사(哀辭)을 고합니다. 어둡지 않은 영혼이 계시다면 부디 작은 정성에 임하시어 흠향하소서. 維歲次辛丑八月丁未朔丁巳。 後學金萬英。 謹遣家甥文鳳儀。 奉淸酌草果之奠。 敬祭于惺菴李先生靈座前。 嗚呼! 世之以學爲名者多矣。 然門庭各殊。 路脉多歧。 在湖中以正學爲心。 庶幾於程朱家法者。 千載之下。 一存翁而已。 寥寥百年間。 更無能倡之者。 先生之出。 幸當此時。 先生以潔素恬靜之姿。 安詳溫粹之氣。 早謝世宂。 專意斯學。 知庶事之必本於心則以存心爲要。 知心軆之必安於靜則以直內爲本。 是以學易而先究乎萬殊一本之域。【缺】存而最明於謝氏論敬之旨。 嗚呼! 先生之學。 可謂有本矣。 策名登第。 官歷淸要。 恩綸累降。 懇命畓至而一不出。 不仕無義之訓。 非不預聞。 而吾斯未信之道。 有所篤信。 故獨抱遺經。 半世竆谷。 若將終身。 念絶榮進。 嗚呼先生之志。 可謂篤實矣。 雖然當兩廟賓天之日。 輿疾千里。 奔哭路左。 値餓殍盈塗之時。 憂惶若己。 拜章言事。 嗚呼! 先生之於世。 可謂將有志矣。 所可痛者。 方學成功熟之際。 益將大肆力於居敬益將大肆力於居敬理成己成物之學。 則其造詣之至。 實德之成。 何可量哉? 而奈何天之稟賦。 始若可有爲者。 而終奪之速如此哉? 嗚呼! 以先生信道之篤守志之堅憂時之切。 而守約而守約巷。 志未大就。 人未有及詳知者。 而華簀遽易。 晩學失依。 則曷爲不使我骨怵而魂悲。 係之以長慟也? 嗚呼! 年前之拜。 明訓丁寧。 繼以牘。 警發提撕。 約我之望方篤。 安仰之痛遽作。 今聞體魄永斂窀穸。 而賤疾纏躬。 挽紼斯違。 瞻望南雲。 精爽蜚越。 替人奉酌。 敢告哀辭。 不昧者存。 庶假卑誠。 尙饗。 이성암(李惺菴) 이수인(李壽仁, 1601~1661)을 가리킨다. 성암(惺菴)은 그의 호.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안(幼安)이다. 1633년 과거에 급제하여 전적, 병조좌랑,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642년 재차 전적에 제수되었으나 사은한 뒤 바로 전리(田里)로 내려갔으며, 이후로도 여러 차례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존심(存心) '존심양성(存心養性)'의 준말로, 본래의 마음을 보존하고 본연의 성을 기른다는 뜻인데, 성리학에 있어 심성 수양론을 대표하는 말이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성(性)을 아니,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성을 기름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하였다. 직내(直內) 내면을 경(敬)으로 곧게 하는 것으로 유가의 수양법이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군자는 경하여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워 외면을 바르게 한다. 경과 의가 확립되면 덕이 외롭지 않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 하였다. 만수일본(萬殊一本) 만물이 서로 다르지만 근본 원리는 하나라는 뜻이다. 사씨(謝氏)의……뜻 사씨(謝氏)는 북송(北宋)의 학자인 사양좌(謝良佐)로, '경(敬)'에 대해 "경이란 항상 마음을 깨어있게 하는 법이다.[敬是常惺惺法]" 하였다. 《心經附註》 벼슬하지……것이다 자로(子路)가 세상을 버리고 은거하는 노인 하조장인(荷蓧丈人)에 대해서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리가 아니니 장유의 예절을 폐할 수 없거늘 군신의 의리를 어떻게 폐할 수 있겠는가. 자기 일신을 깨끗이 하고자 큰 인륜을 없애는 짓이다.[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而亂大倫.]" 하였다. 《論語 微子》 나는……있었습니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공자가 칠조개에게 벼슬하도록 권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저는 벼슬하는 것에 대해 아직 자신할 수 없습니다.' 하니, 공자가 기뻐하였다.[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하였다. 여기서는 벼슬에 급급하지 않고, 학문과 도(道)에 둔 뜻이 독실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대로……하여 부귀빈천에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순 임금이 마른 밥을 먹고 채소를 먹을 때에는 그대로 평생을 마칠 듯이 하더니, 천자가 되어서는 진의를 입고 거문고를 타며, 두 여자가 모시는 것을 본래 있었던 것처럼 여겼다.[舜之飯糗茹草也, 若將終身焉, 及其爲天子也, 被袗衣鼓琴, 二女果, 若固有之.]" 하였다. 거경궁리(居敬窮理)와 성기성물(成己成物) 정주학(程朱學)에서 말하는 학문을 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거경(居敬)은 내적(內的) 수양 방법을 말하는데, 이는 마음을 성찰하여 성실하게 기거동작(起居動作)을 절제하는 것을 말한다. 궁리(窮理)는 외적 수양 방법으로 널리 사물의 이치를 궁구(窮究)해서 정확한 지식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성기성물(成己成物)'은 자기의 덕을 완성하고 그 덕으로 남을 교화시킴을 뜻한다. 세상을 떠나시어 '화책(華簀)'은 화려하게 만든 자리인데, 화책을 바꾼다는 것은 죽음을 비유한다. 증자(曾子)가 임종 직전에, 깔고 누운 대자리가 너무 화려하여 예(禮)에 맞지 않음을 알고, 바꾸게 하였다는 역책(易簀)의 고사가 전한다. 《禮記 檀弓上》 약아(約我) 스승이 잘 이끌어 준 것을 비유한 것이다. 《논어》 〈자한(子罕)〉에 "부자께서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끄시어 문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 주시고 예로써 나의 행실을 요약하게 해 주셨다.[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하였다. 안앙(安仰) '안앙(安仰)'은 스승이나 훌륭한 인물의 죽음을 비유한다. 공자(孔子)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태산이 무너지려 하는구나. 들보가 쓰러지려 하는구나. 철인이 시들려 하는구나."라고 읊조렸는데, 자공(子貢)이 이 소식을 듣고는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는 장차 누구를 우러르며, 들보가 쓰러지고 철인이 시들면 우리는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는가?[泰山其頹, 則吾將安仰, 梁木其壞, 哲人其萎, 則吾將安放?]" 하였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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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암에 대한 제문을 또 짓다【봉산서원141) 유생 등을 위해 지었다.】 又祭李惺菴文【爲蓬山書院儒生等作。】 명유의 적통이요은현의 가법을 이었도다자품이 이미 뛰어나고대대로 학문하여 가업 전했네일찍 국빈으로 뽑히고142)중년엔 도의 요점 깨우쳤네명산의 고요한 방은좌우로 도서와 문적이로다《역》은 선천143)을 궁구하고마음은 미발144)을 보존하였네조존양성145)에 방도가 있었으니《근사록》의 진결이었네흠흠한 정자의 경과성성한 사씨의 학문146)을참으로 따르고 독실하게 믿어서끝내 지극하기를 기약했도다실질이 채워지니 이름이 퍼지고집안에 있어도 명성이 알려지니윤음이 여러 번 내려와서역마로 부르는 일이 잦았네칠조개처럼 자신하지 않고원헌처럼 벼슬하지 않으며검약함을 지키고 거경하며대의를 볼 것을 기약하였네포거147)를 멍에하기도 전에백순148)처럼 먼저 졸했으나좋은 금은 깎여 정밀해지고순수한 옥은 다듬어져 빛나리남은 글은 주인이 없으니어두운 후학은 누굴 본받을까영평의 동쪽 언덕중봉의 북쪽 기슭에글을 지어 현인을 제사하고나에게 글을 꾸미게 함은소자가 옷을 여미고 모시며149)깊이 장려를 받아서이리라이제 장차 누구를 우러를까덕을 상고할 곳이 없구나삼가 하찮은 제물을 갖춰진실로 정성을 아뢰오니깨어서 어둡지 않으시거든저의 충심에 강림하소서 名儒宗適。 隱賢家法。 姿稟旣異。 世學傳業。 早擢國賓。 中悟道的。 名山靜室。 左圖右籍。 易左圖右籍先天。 心存未發。 操養有方。 近思眞訣。 欽欽程敬。 惺惺謝學。 誠服篤信。 終期其極。 實充名發。 在家聲達。 綸音累降。 馹召頻篤。 柒雕未信。 原生不仕。 守約居敬。 期見大意。 蒲車未駕。 伯淳先亡。 良金鏟精。 粹玉理光。 遺篇無主。 瞽學奚式。 永平東崖。 中峯北麓。 命詞祀賢。 作我矜飾。 小子摳衣。 深荷奬則。 玆將安仰。 無所考德。 謹具菲薄。 誠陳悃愊。 惺一不昧。 降格衷曲。 봉산서원(蓬山書院) 휴암(休菴) 백인걸(白仁傑)을 제향하는 전라도 나주(羅州) 남평(南平)에 있는 서원으로 1650년(효종1)에 창건되어 1667년(현종8)에 사액(賜額)을 받았으며, 1868년(고종5)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新增東國輿地勝覽 권36 全羅道》 국빈으로 뽑히고 과거에 급제한 것을 말한다. 《주역》 〈관괘(觀卦)〉에 "육사는 나라의 광휘를 관찰함이니, 왕에게 빈이 되는 것이 이롭다.[六四, 觀國之光, 利用賓于王.]"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선천(先天) 우주의 본체와 만물의 본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북송(北宋)의 소옹(邵雍)이 진단(陳摶)의 학문을 터득하여 《주역》을 설명하면서 복희(伏羲)의 역(易)을 선천, 문왕(文王)의 역을 후천(後天)이라 하였으며, 〈복희선천괘위도(伏羲先天卦位圖)〉를 만들었다. 그래서 소옹의 역학을 선천학(先天學)이라 한다. 미발(未發) '중(中)'을 말하는 것으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발하지 않았을 때의 편벽되거나 치우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중용장구》 제1장에 "희로애락이 발하기 이전을 중이라고 한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하였다. 조존양성 성리학에서 심성을 수양하는 방법인 '조존(操存)'과 '존심양성(存心養性)'을 합하여 말한 것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잡아 두면 있고 놓아 버리면 없어지는 것으로서,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으며,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것이 마음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라고 하였고, 《맹자》 〈진심 상(盡心上)〉의 "마음을 보존하여 본성을 기름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하였다. 흠흠한……학문 《이정수언(二程粹言)》 권상(卷上)에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을 '경(敬)'이라 하고,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감이 없는 것을 '일(一)'이라 한다.[主一之謂敬, 無適之謂一.]"라고 한 정이(程頥)의 말이 나온다. 성성(惺惺)은 마음이 깨어 있게 한다는 뜻으로 본래 불교 용어인데, 송유(宋儒) 사양좌(謝良佐)가 "경은 항상 깨어 있게 하는 방법이다.[敬是常惺惺法]"라고 말한 뒤로부터 유가(儒家)에서 경(敬)을 해석하는 하나의 유력한 용어가 되었다. 《심경부주(心經附註)》 권1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에 인용되어 있다. 포거(蒲車) 덜거덕거리지 않게 부들 잎으로 바퀴를 싼 수레로, 현사(賢士)를 초빙할 때에 쓴다. 백순(伯淳) 송나라 학자 정호(程顥)의 자이다. 신종(神宗) 때에 왕안석(王安石)과의 불화로 언직(言職)을 버리고 외관말직으로 물러났었는데, 그 뒤 철종(哲宗)이 즉위하여 종정승(宗正丞)의 벼슬을 제수하여 불렀으나 부임하기 전에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宋史 권427 程顥列傳》 옷을 여미고 모시며 원문의 '구의(摳衣)'로, 윗사람에게 몸가짐을 공손히 하는 태도이다. 《예기 (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어른이 계신 방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옷자락을 치켜들고 모퉁이로 빠른 걸음으로 나아간 다음, 대답하는 것을 반드시 삼가서 해야 한다.[摳衣趨隅, 必愼唯諾.]"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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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告嶺南文 夫善善惡惡。天地之常經。衛正斥邪。春秋之大義也。如使惡而攻善。邪而害正。熒惑一世。則天理人紀。自此俱熄矣。詎非可懼之甚者哉。竊惟勉菴先生。崛起於東方羣哲之後。而道學嫡傳。義理宗主。上爲國家之蓍龜。下爲士林之山斗。雖婦孺輿臺。皆知今日保全一線生脈者。實賴先生扶植之力。而莫不欽仰之尊親之。若有一種妖孽。吹覓於靑天白日之下。欲肆桀跖之嚆矢。則其爲名敎之罪人。而有法之必誅也明矣。仄聞貴省。李相敦輩。以么麽厲類。包藏凶險。敢肆瘈狗之噬。鬼蜮之射。而一紙凶書。狂叫闖發。雖歷擧古之戕賢誣正者。亦未必如是無忌憚也。嗚呼。先生道義。固不足以一時毁譽。有所增減。而但聽聞所及神竦魄動。令人不覺百骸俱戰。夫亂必討。詖淫能拒。是聖賢已訓也苟有秉彛者。孰不扼腕激膽。倡爲聲討之擧乎。況貴省。素以禮義文明。著於我東。而其於是非淑慝之辨。扶善退惡之擧。在所當先。而無一人立幟聲討。有若容薰蕕冰炭於一器而不汚。其於春秋之義何。玆敢齊聲馳告。惟願僉君子。卽行聲討。以爲世道萬一之計。幸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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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論性不論氣云云。或謂此性。論氣質之性。不是論本然之性。【炯】謂氣質性。本然性。非二姓。以儲水之器喩之。單指其水。則曰本然之性。兼指其器則。曰氣質之性。 文炯 或人所謂。此性字。氣質之云者。非是賢者所答。兼指其器。則氣質之性云。亦不盡意。夫性譬之水。本皆淸。以淨潔之器盛之。則本然之淸。固自若。此不可以氣質論也。以汙泥之器盛之則本然之淸。因器而濁。此可以氣質論也。蓋程子之意以爲。性是本然。而至善者也。氣是生稟。而不同者也。若論性而不論氣。則無以見昏明之不齊。論氣質而不論性。則無以見理義之一原。故曰二之。則不是兩性字。皆指本然而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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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物偏全之性。諸家議論不同。畢竟烏乎定。定于朱子。朱子曰如日月之光。若在露地。則盡見之。若在蔀屋之下。有所蔽塞。有見有不見。又曰隙中之日。隙之長短大小。自是不同。然却只是此日據此。則萬物一原。本無人物偏全之殊。而被形質局定了。或偏或全而不能齊也。恐未知如何。 得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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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爲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衆星拱之。謹按。集註曰。北辰。北極。天之樞也。居其所。不動也。每講此或曰。北辰。無星處。是天壤。或曰北辰。是北極。極是極星。或曰極星不動。或曰極星。亦動而但人不見。諸論紛紜。多與註說亦不穩合。敢請敎示。 高光澹 集註。北辰。北極。天之樞云者。辰是無星處。極乃北之極。天之中而中間些子不動處。卽天之樞也。如磨之臍輪之轂。雖欲動而不可得。然辰不可無記認處。故取其旁一小星謂之極星。星則微動。辰則不動。此集註。居其所不動之謂也。嘗試觀極星。第一星。不見其動。蓋最近於辰。故雖微動不覺。但其下四星。及末兩旁兩小星。隨天左旋。度亦如天而周天。四面衆星。自然環向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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輔仁契講戒 一。凡同講之人。必須正衣冠端容貌。各誦所誦一段。更須逐句講義。一。讀書。必循序致一。積累漸進。不可以躐等躁進。一。將聖賢言語。反躬體驗。以眞實見得。眞實行得。爲要。一。同講之人。相遇必相拜揖。以自卑尊人爲法。一。在家則早起盥櫛。整齊冠服。拜省父母。【有祖父母。則當先謁。】親不在。拜謁于祠板。就書堂。則事師長如禮。一。大抵此學。以收心養性。存理明倫爲本。性之目有五。仁義禮智信是已。倫之目有五。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是已。講此而明之。行此而實之。理無不得。德無不進。其敢暴棄乎哉。一。立志。以富貴貧賤威武。不能淫移屈爲準則。修身以孝悌忠信篤敬廉恥禮讓爲確的。臨事。則當以分別義利公私善惡爲先務。接物。則當以己所不欲勿施於人。行有不得反求諸己爲要法。一。士當。以尊華攘夷。抑陰扶陽爲心法。春秋綱目之義。不可造次不講。一。尤菴先生。春秋心法。華西先生。心性定論。勉菴先生。義理宗旨。當服膺而不失也。一。爲人底道理。詳在所講書中。凡我同講之人。盍相勉旃而同歸于善。一。有酒。則當依藍田呂氏禮俗相交條而酬酌焉。列其條例於左方。別設卓子於兩楹間。置大盃於其上。主人降席。立於卓東西向。上客亦降席。立於卓西東向。主人取盃親洗。上客辭。主人置盃卓子上。親執酒斟之。以器授執事者。遂執盃以獻上客。上客受之。復置卓子上。主人西向再拜。上客東向再拜興。取酒東向跪。祭遂飮。以盃授贊者遂拜。主人答拜。若少者以下。爲客飮畢。而拜。則主人跪受如常。上客酢主人如前儀。主人乃獻衆賓如前儀。唯獻酒不拜。【若衆賓中。有齒爵者。則特獻如上客之儀。不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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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호에 대한 의망 額號擬望 창렬, 표충, 정렬.수망(首望)으로 정한다는 비답을 내렸다. 彰烈, 表忠, 旌烈。【以首擬批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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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사에서 종조 외재 선생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 2수 이기진 彰烈祠敬次從祖畏齋先生韻【二首 李箕鎭】 어찌 명예 구하려 성심으로 나라 지켰나군자가 ­원문 1자 결락­110) 영원히 명성 세웠네어란리 안쪽에 자리한 창렬사 와보니공효가 간성보다 나음을 확실히 알았네양세의 남긴 향기 이 고을에 부쳤으니111)촉룡의 은미한 뜻 어찌 잊을 수 있나천년 뒤 태산과 달이 없어질 때까지무계 호숫가의 촉룡서당을 비춰주리 誠心衛國豈求名君子揚□永樹聲禦亂里中彰烈廟定知功效勝干城兩世遺芬寄此鄕燭龍微意詎能忘祗應千載砥山月分照武溪湖上堂 원문 1자 결락 원문은 '揚□'이다. '揚'은 원문의 문제로 번역하지 않았다. 양세의……부쳤으니 양세는 택당(澤堂) 이식(李植)과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를 말한다. 택당은 정문부의 공훈을 국사에 자세히 기록하였고, 외재는 북평사가 되어 정문부의 공렬을 채집하고 사당 세울 것을 발의하였다. 《農圃集 年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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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룡서당의 제생에게 주다 범옹 홍주국 燭龍書堂贈諸生【泛翁 洪柱國】 여러 군자에게 사례하니호숫가 서당에서 만났네모든 승경 두루 유람하고이틀 묵으며 술 기울이네먼 변방 중 선비 많은 곳충신이 창의한 고을이네아침상에 붕어 올라오니어랑리 이름과 어울리네 爲謝諸君子相逢溪上堂周遊皆勝景信宿且深觴絶塞多儒地忠臣倡義鄕朝來薦網鯽里號合漁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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