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향교 대성전 상량문 錦城鄕校大成殿上梁文 천지를 관(棺)으로 삼고 일월을 장지(葬地)로 삼아도 사십 분의 덕의(德儀)는 쫓아가기 어렵다.【어떤 본에는 '모두 우러른다[咸仰]'로 되어 있다.】 북두성을 향하고 화산과 숭산55)을 당길 듯한 이곳에 어찌 삼백년 구전(舊典)을 창건하지 않겠는가. 이에 택궁(澤宮)56)의 제도를 본받아서 마침내 고을에 학교의 규범을 세웠다. 생각건대 이 고을은 기미성 남쪽 분야57)이며 영해(瀛海)58)의 동쪽 지역으로, 영산강이 바다와 접해 있어 승부(乘桴)의 밝은 교화59)를 부여잡을 수 있고, 금성산이 허공에 서렸으니 소로(小魯)60)의 지극한 뜻을 거의 계승할 만하다.돌아보건대 신라 말엽에 비루해져서61) 바른 학문이 전해지 못했고, 고려조에 경박해져서 쇠퇴한 뒤로 성스러운 은택이 다 미치지 못하였다. 공사(公私) 간에 좌도(左道)62)의 시주(施主)를 다투어 본뜨고, 주군(州郡)에서는 바른 학문을 일으키는 데 매우 어두웠다. 진정한 성인이 5백년의 주기에 응하여 나와서63) 유도(儒道)를 존중하고 학문을 숭상하였는데 다행히도 이 땅에 천재일우의 운수를 만나서 학교를 건립하게 되었으니, 한계(寒溪)의 동문(洞門)은 궐리(闕里)에서 읊조리고 외우는 것과 유사하고64) 광탄(廣灘)의 원파(源派)는 기우(沂雩)에서 목욕하고 바람 쏘이는65) 것과 방불하였다.그러나 명협(蓂莢)이 시들어66) 세월이 흐르니 대부분 이끼가 먹어 비가 세었다. 지금 전하께서 즉위하신지 12년 되는 경술년(현종11, 1670) 봄에 향을 전하께서 내려주니 혼령이 훈호(薰蒿)67)하여 기둥 사이의 제수(祭需)에 접한 듯하고, 물이 땅속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68) 소명(昭明)하여 성령이 이곳에 임한 듯하다. 옛 날 그대로 터를 닦으니 장부(長府)는 민손(閔損)에게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고,69) 학궁 설계에 제도가 있으니 산절(山節)이 어찌 장문중(臧文仲)보다 못하겠는가.70) 증삼(曾參)처럼 재용에는 방도가 있었고71) 맹가(孟軻)처럼 농사철을 빼앗지 않았다.72)상하의 동우(棟宇)는 《주역》 〈대장괘(大壯卦)〉에서 취하였고73) 동서의 서영(序榮)74)은 주나라 제도의 유풍(霤風)을 본뜬 것이다. 승당(升堂)한 십철(十哲)이 열석(列席)해 있고 입실(入室)한 사성(四聖)이 동렬에 있다.75) 우조의란(虞操猗蘭)76)은 제나라에서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몰랐던 음악77)을 듣는 듯하고, 희란하행(姬亂河荇)78)은 노나라로 돌아온 칠순의 공자79)를 접하는 듯하다. 쇠퇴한 주(周)나라가 저무는 때에 요순(堯舜)의 기상을 품고, 말기의 송(宋)나라가 스러져가는 날에 우리 정주(程朱)의 정통 학맥을 열었도다. 【단구(短句)가 빠진 듯하다.】 도(道)는 오랑캐와 중화(中華)의 차이가 없으니 사유(四儒)가 동한(東韓)에서 지극한 가르침을 따랐고, 덕이 옛날과 지금이 어찌 다르겠는가, 오현(五賢)은 지결(旨訣)을 북학(北學)80)에서 받들었도다.연이어 합한 궁실에서 함께 향기로운 제사를 올리니81) 좌우전후에 계신 듯 양양하고82) 우러러 뵈오니 심원하도다.83) 삼강(三綱)이 모두 확립되어 전각과 더불어 하늘을 경영하고 구법(九法)84)이 모두 조화롭게 되어 들보 기둥과 나란히 땅을 다스릴 것이니, 이는 모두 성세(聖世)의 명교(明敎)를 따르고 또한 현부(賢府)의 중창에도 관계되는 일이다. 주자(周子)는 소주(邵州)에서 고명(高明)함이 복서(卜筮)에 부합되었고85) 문옹(文翁)도 금리 (錦里)에서 유학의 교화를 성취하였었다.86) 전당(鱣堂)87)에 경사가 넘치고 접역(鰈域)88)에 환희가 펼쳐지니 이에 아랑(兒郞)의 축문89)을 진술하여 감히 들보 올리는 일을 돕는다.어영차 들보 동쪽에 떡을 던져라90)서일이 막 솟아 쌓인 기운 토하네성신의 진묘한 자취 알고자 하니바다 하늘에 단비 내리고 춘풍에 화육되네어영차 들보 서쪽에 떡을 던져라수사의 참된 근원이 바닷가에91) 접했구나조석으로 밀물이 통하여 금수92)에 이어지니이로부터 곧바로 하늘 사다리에 오르리라어영차 들보 남쪽에 떡을 던져라남극에서 추성93)이 바다로 들어가 잠기네밤낮으로 천지의 축을 부지하고북극성을 마주하며 삼성과 함께 하네어영차 들보 북쪽에 떡을 던져라뭇별들이 빙 둘러서 북극성을 도네하늘과 사람을 어찌 둘로 나눠 보랴성화는 작위가 아니라 덕에 있다네어영차 들보 위로 떡을 던져라칠요와 삼광94)이 만상을 나누네성스러운 도는 하늘 같으니 어찌 오르랴95)어리석은 무리는 백대토록 흠앙할 뿐이네어영차 들보 아래로 떡을 던져라유생들은 봄가을로 시서를 일삼네육경96)에 분명 도의 진수가 실려 있으니의리에 깊이 잠기면 친자한 것과 같으리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로는 집마다 예의를 말하고 집마다 시서를 외우며, 금석사【어떤 본에는 '사(絲)'가 '생(笙)'으로 되어 있다.】황97)으로 만대토록 제사를 길이 올리고, 문(文)·행(行)·충(忠)·신(信)으로 4교(敎)98)의 법도를 길이 남기며, 많은 선비들이 난새처럼 비상하여 멀리 옛 성인의 전통을 잇고, 여러 현인들은 기러기처럼 점진하여99) 일어나 우리 조정의 유종(儒宗)을 진작할지어다. 棺天地葬日月。 難追【一作咸仰】四十表之德儀。 拱星斗挽華嵩。 盍創三百年之舊典? 玆倣澤宮之制。 聿建州序之規。 竊惟玆州。 箕尾南分。 瀛海東域。 靈江接海。 乘桴之睿化可攀。 錦岳蟠空。 小魯之至意庶述。 顧咮㒧於羅季。 正學無傳。 洎澆喪於麗朝。 聖澤未究。 公私爭效左道之施捨。 州郡專昧右文之作興。 唯眞聖膺五百之期。 重儒崇學。 幸玆土値千一之運。 建塾立庠。 寒溪洞門。 依俙闕里之絃誦。 廣灘源派。 髣髴沂雩之浴風。 逮蓂老而歲遷。 多蘚蝕而雨漏。 維嗣王甲子一紀。 乃歲星庚戌三春。 降香自天。 薰蒿乎楹奠若接。 如水在地。 昭明乎聖靈臨玆。 仍舊修基。 長府無譏於閔損。 畫宮有制。 山節豈歉於臧文? 曾參之財用有方。 孟軻之農時不奪。 上下棟宇。 取雷天於羲經。 東西序榮。 學霤風於周制。 升堂之十哲在列。 入室之四聖班行。 虞操猗蘭。 若聞在齊之三月。 姬亂河荇。 怳接返魯之七旬。 衰周暮天。 孕此堯舜氣象。 晩宋殘日。 啓我程朱嫡傳。【恐闕短句】道無間於夷夏。 四儒遵至敎於東韓。 德何殊於今古。 五賢奉旨訣於北學。 連宮合室。 共苾同芬。 洋洋乎左右後先。 穆穆乎鑽仰瞻忽。 三綱並立。 與殿隅而經天。 九法偕和。 齊杗桷而緯地。 皆仍聖世之明敎。 亦係賢府之重新。 周子邵州。 高明協卜。 文翁錦里。 儒化可成。 慶溢鱣堂。 歡開鰈域。 式陳兒卽之祝。 敢助梁欐之升。 兒郞偉抛梁東。 瑞日初昇積氣融。 欲識聖神眞妙跡。 海天時雨化春風。 兒郞偉抛梁西。 洙泗眞源接海倪。 日夕通潮連錦水。 從玆直到上天梯。 兒郞偉抛梁南。 南極樞星入海涵。 日夜扶持天地軸。 北辰相對共參三。 兒郞偉抛梁北。 衆星連繞環樞極。 天人豈可兩分看。 聖化無爲唯在德。 兒郞偉抛梁上。 七曜三光分萬象。 聖道如天豈可階。 羣蒙百代徒欽仰。 兒郞偉抛梁下。 章甫詩書春及夏。 六籍分明載道眞。 沉潛義理如親炙。 伏願上梁之後。 家談禮義。 戶誦詩書。 金石絲【一作笙】簧。 永奠萬代之樽俎。 文行忠信。 長留四敎之規矩。 羣彦鸞翔。 遠紹往聖之統緖。 諸賢鴻漸。 起作本朝之儒宗。 화산과 숭산 '화숭(華嵩)'은 화산(華山)과 숭산(嵩山)의 병칭이다. 택궁(澤宮) 주나라 때 활쏘기를 하여 사(士)를 선발하던 곳인데, 전하여 태학(太學)을 말한다. 《周禮 夏官 司弓矢》 기미성 남쪽 분야 기미(箕尾)는 28수(宿) 별자리 중 동쪽 별자리인 기수(箕宿)와 미수(尾宿)에 해당하는 즉 조선을 가리키고 남쪽 분야는 나주를 지칭한 것이다. 영해(瀛海) 큰 바다인데 여기서는 황해를 가리킨다. 《사기(史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이러한 주가 아홉 개가 있고 영해가 그 밖을 에워싸고 있다.[如此者九, 乃有大瀛海環其外.]" 하였다. 황해는 중국 쪽에서는 동쪽이다. 승부(乘桴)의 밝은 교화 공자의 교화를 가리킨다. 공자가 "도가 행해지지 않는지라 뗏목을 타고 바다에 뜨리니, 이때 나를 따라올 사람은 아마 중유일 것이다.[道不行, 乘桴, 浮于海, 從我者, 其由與.]"라고 하였다. 《論語 公冶長》 소로(小魯) 큰 포부를 비유한 것이다. 나주(羅州)의 금성산에 오르면 공자가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기는 것과 같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맹자가 이르기를 "공자가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를 작게 여겼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上》 비루해져서 원문의 '주리(咮㒧)'로 주리(侏離)와 같은 뜻인데, 오랑캐의 언어 문자를 가리킨다. 공자의 유학을 벗어난 것을 가리킨다. 좌도(左道) 이단(異端)의 도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불교를 지칭한 것이다. 진정한……나와서 '500년의 주기[五百之期]'란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맹자가 제(齊)나라를 떠나면서 "500년마다 반드시 왕자가 나온다.[五百年, 必有王者興.]"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즉 요순(堯舜)에서 탕왕(湯王)까지, 탕에서 문왕(文王)·무왕(武王)까지 성현이 태어나는 주기를 500년으로 본 것이다. 궐리(闕里)에서……유사하고 나주 한계동에서 글읽는 소리가 마치 공자의 제자들이 궐리에서 글읽는 소리와 유사하다는 뜻이다. '궐리'는 지명으로 《공자가어(孔子家語)》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에 "공자가 궐리에서 처음 가르쳤다.[子始敎學于闕里.]" 하였다. 기우(沂雩)에서……쏘이는 《논어》 〈선진(先進)〉에 공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해 보라고 했을 때, 증점(曾點)이 마침 비파를 타다가 쟁그렁 소리와 함께 비파를 놓고 일어나서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5, 6인,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한 데서 온 말이다. 명협(蓂莢)이 시들어 세월이 흘러 건물이 낡은 것을 말한다. '명협'은 요 임금 때 조정 뜰에 났다는 서초인데, 매월 1일부터 15일까지 매일 한 잎씩 나오고, 16일부터 그믐날까지 매일 한 잎씩 떨어졌으므로, 이것으로 날을 계산하여 달력을 만들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竹書紀年 卷上 帝堯陶唐氏》 혼령이 훈호 '훈호(薰蒿)'는 귀신의 기(氣)를 형용한 것이다. 《예기》 〈제의(祭義)〉에 "생물들은 반드시 죽고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나니 이를 귀라고 이른다. 뼈와 살은 땅속에서 썩어 흙이 되고 이것이 야토가 되면 그 기는 발하여 위로 올라가서 소명, 훈호, 처창이 된다.[衆生必死, 死必歸土, 此之謂鬼. 骨肉斃于下, 陰爲野土, 其氣發揚于上, 爲昭明焄蒿悽愴.]"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귀신이 밝게 드러나는 것이 소명, 그 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 훈호, 사람의 정신을 두렵게 하는 것이 처창이다.[鬼神之露光處是昭明, 其氣蒸上處是焄蒿, 使人精神竦動處是悽愴.]" 하였다. 물이……것처럼[如水在地] 시공(時空)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식(蘇軾)의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에 "공의 신이 천하에 있는 것은 마치 물이 땅속에 있는 것과 같아 어디로 간들 있지 않음이 없다.[公之神在天下者, 如水之在地中, 無所往而不在也.]" 하였다. 《東坡全集 卷86》 옛……것이고 원문의 '장부(長府)'는 재화(財貨)를 넣는 창고인데 여기서는 향교의 건물을 가리킨다. 《논어》 〈선진(先進)〉에 "노나라 집정자가 장부를 고쳐 짓자, 민자건이 말하기를 '옛 일을 따르는 것이 어떠한가. 어찌 꼭 고쳐 지을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魯人爲長府, 閔子騫曰, 仍舊貫如之何, 何必改作.]" 하였다. 산절(山節)이……못하겠는가 장식을 제도에 맞게 했다는 뜻이다. '산절(山節)'은 두공(斗栱)에 산 모양을 새기는 것인데, 여기서는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장문(臧文)'은 춘추 시대에 노(魯)나라의 대부인 장문중(臧文仲)이다. 장문중이 거북껍질을 보관하는 집을 만들면서 너무 호화스럽게 꾸미자, 공자는 "장문중이 거북껍질을 보관하되, 두공(斗栱)에 산을 그리고 동자기둥에 마름을 새기니, 어떻게 지혜롭다고 하겠는가.[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라고 질책하였다. 《論語 公冶長》 증삼(曾參)처럼……있었고 향교를 짓는데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증삼(曾參)'은 증자(曾子)의 이름이다. 《대학장구》 전 10장에 "군자는 먼저 덕을 삼가니, 덕이 있으면 백성이 있고 백성이 있으면 영토가 있고 영토가 있으면 재물이 있고 재물이 있으면 씀이 있다. 덕은 근본이고, 재물은 말단이다.……그렇기 때문에 재물을 모으면 백성들이 흩어지고, 재물을 흩으면 백성들이 모이는 것이다.[君子先愼乎德, 有德, 此有人, 有人, 此有土, 有土, 此有財, 有財, 此有用. 德者, 本也, 財者, 末也.……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하였다. 맹가(孟軻)처럼……않았다 향교를 짓는데 농사철은 피했다는 뜻이다. '맹가(孟軻)'는 맹자(孟子)의 이름이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농사철을 빼앗지 않으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고……왕도 정치의 시작이다.[不違農時, 穀不可勝食也,……王道之始也.]" 하였다. 상하의……취하였고 집을 튼튼하게 짓는 것을 말한다. '희경(羲經)'은 《주역》의 별칭이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상고시대에는 사람들이 굴에서 살고 들판에서 살았다. 후세에 성인이 이것을 집으로 바꾸어 위에는 들보를 얹고 아래에는 서까래를 얹어 비바람에 대비하였다. 이것은 〈대장괘〉에서 취하였다.[上古, 穴居而野處. 後世聖人, 易之以宮室, 上棟下宇, 以待風雨. 蓋取諸大壯.]" 하였다. 서영(序榮) '서(序)'는 상(廂)을, '영(榮)'은 처마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동서에 세워진 건물을 말한 것이다. 승당한……있다 원문의 '승당(升堂)'은 학문이나 도의 경지가 어느 정도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을, '입실(入室)'은 승당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을 뜻한다. 《논어》 〈선진(先進)〉에,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의 학문 수준을 두고 말하기를 "당에는 올랐고 아직 방에는 들어오지 못했다.[升堂矣, 未入室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십철(十哲)'은 민자건(閔子騫)·염백우(冉伯牛)·중궁(仲弓)·재아(宰我)·자공(子貢)·염유(冉有)·계로(季路)·자유(子游)·자하(子夏)·자장(子張)을 일컫는다. '사성(四聖)'은 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를 말한다. 우조의란(虞操猗蘭) 상량식에 연주했던 음악을 비유한 것이다. '우조(虞操)'는 우순(虞舜)의 금곡(琴曲)을 가리키고, '의란(猗蘭)'은 공자가 지었다는 금곡(琴曲)인 의란조(猗蘭操)를 말한다. 제나라에서……음악[齊之三月] 매우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께서 제나라에 계실 때에 순 임금의 소악을 들으시고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몰랐다.' 하였다.[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하였다. 희란하행(姬亂河荇) 상량식에서 읊었던 시를 비유한 것이다. '희란(姬亂)'은 뜻이 미상이고, '하행(河荇)'은 《시경》 〈관저(關雎)〉에 "들쭉날쭉한 마름을 이리저리 물 따라가며 취하도다.[參差荇菜, 左右流之.]라고 하였다. 노나라……공자[返魯之七旬] '반로(返魯)'는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온 것을 말한다. 《논어》 〈자한(子罕)〉에 "내가 위나라로부터 노나라로 돌아온 뒤로 음악이 바루어져서 아와 송이 각기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吾自衛反魯, 然後樂正, 雅頌各得其所.]" 하였다. '칠순(七旬)'은 그 당시의 나이가 칠순이었다는 뜻인 듯하다. 공자는 68세 때인 노나라 애공(哀公) 11년에 노나라로 돌아왔다. 오현(五賢)은 지결(旨訣)을 북학(北學) '오현'은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 다섯 명의 유현(儒賢)을 가리킨다. '북학'은 북쪽으로 가서 배우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중국의 학문을 비유한 것이다. 향기로운 제사를 올리니 '필(苾)'과 '분(芬)'은 제물에서 나는 향기를 말하는데 제사의 뜻으로 쓰인다. 《시경》 〈초자(楚茨)〉에 "향기로운 효사에 신이 음식을 즐기네.[苾芬孝祀, 神嗜飮食.]" 하였다. 좌우전후에……양양하고 원문의 '양양(洋洋)'은 신령이 곁에 있는 듯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중용장구》 제16장에 "천하의 사람으로 하여금 재계하고 깨끗이 하며 의복을 성대히 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고는 양양하게 그 위에 있는 듯하며 그 좌우에 있는 듯하다.[使天下之人, 齊明盛服, 以承祭祀, 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라고 하였다. 우러러 뵈오니 심원하도다 원문의 '찬앙첨홀(鑽仰瞻忽)'은 우러러 본다는 뜻이다. 안연(顔淵)이 공자(孔子)의 무궁무진(無窮無盡)한 도를 깊이 감탄하여 말하기를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보면 앞에 있는 듯하다가, 홀연히 뒤에 계시도다.[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하였다. 《論語 子罕》 구법(九法) 《서경》 〈홍범(洪範)〉의 '구주(九疇)'를 가리킨다. 이는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대법(大法)으로, 곧 오행(五行)·오사(五事)·팔정(八政)·오기(五紀)·황극(皇極)·삼덕(三德)·계의(稽疑)·서징(庶徵)·오복(五福)이다. 주자(周子)는……부합되었고 주자(周子)는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頥)를 가리키는데 그도 소주(邵州)에서 학교를 중수하는 데 관련이 있었다는 뜻인데, 미상이다. 문옹(文翁)도……하였었다 '문옹(文翁)'은 중국 전한(前漢) 경제(景帝) 때의 문신이다. 촉(蜀) 땅의 군수가 된 후 성도(成都)의 시장 가운데에 관학(官學)을 설치하여 고을의 자제들을 불러다 배우게 하였다. 입학자는 요역(徭役)을 면제해 주고 성적이 우수한 자는 고을의 관리로 보임하였다. 이에 촉군에 교화를 펼치고 문풍(文風)을 크게 일으켜 인재를 대거 배출하였다. 이는 무제(武帝) 때 전국의 고을에 관학을 설치하게 된 요인이 되었다. 《漢書 권89 文翁傳》 전당(鱣堂) 강학하는 장소를 말한다. 한(漢)나라 양진(楊震)이 뛰어난 학문을 가지고서도 여러 차례 소명(召命)에 응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황새가 강당(講堂) 앞에 전어(鱣魚) 세 마리를 물고 날아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전어는 대부들이 입는 옷의 무늬이고, 세 마리는 삼태(三台)의 조짐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뒤에 양진이 과연 태위(太尉)에 올랐다. 《後漢書 권54 楊震列傳》 접역(鰈域) 가자미가 생산되는 지역이란 뜻으로, 조선을 가리킨다. 아랑(兒郞)의 축문 상량문(上樑文)를 말한다. 원문의 '兒卽'은 '兒郞'의 잘못이다. '아랑(兒郞)'은 아량위(兒郞偉)인데 '어영차'의 의성어로, 어영차 올린다는 뜻이다. 들보……던져라 '포량동(抛樑東)'은 상량문 말미의 축송에 상투적으로 붙는 말로, 상·하·사방의 여섯 방위 중 첫째로 동쪽을 든 것이다. 이 같은 투식은 중국 육조 시대(六朝時代) 때부터 전해 내려왔다. 건축물의 기본 골격이 완성된 뒤에 길일(吉日)을 골라 들보를 올리며 상량식을 하는데, 이때 친지들이 음식을 싸와서 축하하고 목수들을 대접한다. 그러면 도목수가 대들보 위에 걸터앉아 만두·떡 등을 상·하·사방으로 던지며 상량문을 읽어 축원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상량식도 이와 유사했다. 수사의……바닷가에 나주에 향교가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수사(洙泗)'는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로, 공자가 이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보통 공자의 학문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바닷가'는 나주(羅州) 영산강이 닿는 서해를 가리킨다. 금수(錦水) 나주의 영산강(榮山江)을 가리킨다. 추성(樞星) 북두칠성의 첫 째 별인데, 북두칠성을 말한 것이다. 칠요와 삼광 '칠요(七曜)'는 일(日)·월(月) 및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다섯별을 말한다. '삼광(三光)'은 해와 달과 별을 말한다. 성스러운……오르랴 공자의 위대함을 말한 것이다. 《논어》 〈자장(子張)〉에, 자공(子貢)이 스승인 공자의 위대함을 일컬으면서 "우리 선생님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은 마치 사다리를 타고서 하늘을 올라갈 수 없는 것과 같다.[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라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육경 원문의 '육적(六籍)'으로 육경(六經)과 같은 말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의 중요한 경전인 《역경》·《시경》·《서경》·《춘추》·《예경》·《악경》을 말하는데, 이 가운데, 《예경》은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책을 가리키기도 하며, 《악경》은 진(秦)나라 때 분서갱유(焚書坑儒)를 거치면서 없어졌다. 금석사황(金石絲簧) 각종 악기를 가리킨다. 금은 쇠로, 석은 옥으로 만든 악기이며 사는 현악기, 황은 관악기이다. 4교(敎)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는 4가지로 가르쳤으니, 문(文)·행(行)·충(忠)·신(信)이었다.[子以四敎, 文行忠信.]"라고 한 것을 이른다. 기러기처럼 점진하여 원문의 '홍점(鴻漸)'으로, 기러기가 낮은 곳에서 점차 높은 곳으로 날아가는 것을 말한다. 《주역》 〈점괘(漸卦) 상구(上九)〉의 "상구는 기러기가 공중으로 점점 날아가는 것인데, 그 깃이 의표(儀表)가 될 만하니, 길하다.[上九, 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 吉.]"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