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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은대(南銀臺)208)【구만(九萬)】에게 주다 贈南銀臺【九萬】 구천(九天)의 상서로운 봉황 인간 세상에 내려오니하계(下界)의 참된 반열로 이날 돌아가네병든 학 10년 동안 호남 바닷가에서 머무른 뜻슬픈 마음으로 고개 돌려 구름 사이 바라보네 九天祥鳳下人寰下界眞班此日還病鶴十年湖海志悵然回首望雲間 남 은대(南銀臺)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을 가리킨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이다. 1656년 과거에 급제하여 대사성, 함경도 관찰사, 형조 판서 등을 거치고 삼정승을 역임하였다. 1664년(현종5) 승지에 임명된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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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學徒)에게 주다 贈學徒 거친 풀 자란 밭 사이의 늙은 농부 한 명형체와 정신 적막하여 마른 소나무 같네부끄러운 것은 그대들 찾아와 따르며 배우는데잘못된 방도로 인도하여 예용(禮容)을 잃는 것이라네 荒草田間一老農形神寂寞似枯松慚却君輩來從學導率乖方失禮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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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를 띄우다238) 泛菊 흰 술 담긴 동이 앞의 흰 옷 입은 사람종일 얼큰하게 취한 채로 산속 사립문에 기대 있네술잔 가운데에 붉은 꽃술의 국화 어지러이 띄우니아래로 단전(丹田)을 물들여 색이 어우러지네239) 白酒樽前人白衣陶然終日倚山扉盃心亂泛丹心菊下染丹田色不違 국화를 띄우다 과거에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이면 국화를 술에 띄워 마시곤 하였다. 술잔……어우러지네 붉은 꽃술의 국화를 띄운 술을 마셔 단전(丹田)과 술의 색이 붉게 어우러짐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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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동작(銅雀)240)을 건너며【기축년(1649, 26세) 국상(國喪)으로 인한 장례241) 때 선생이 달려가 곡하고 돌아왔다.】 晩渡銅雀【己丑國慽仍山之時。先生奔哭而歸。】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 나그네 옷깃에 뿌리니구름 어두운 나룻가에 푸른 물결이 깊네머리 돌려 청명한 산빛을 바라보니가을해 돌아가는 이의 마음 비춤이 도리어 가련하네 濛濛微雨灑征襟雲暗津頭碧浪深回首淸明山色裏却憐秋日照歸心 동작(銅雀) 서울시 동작구 동작동 근처 한강 남안에 있던 나루터이다. 국상(國喪)으로 인한 장례 원문은 '국척잉산(國慽仍山)'이다. '잉산'은 곧 '인산(因山)'으로, 상왕, 왕, 왕세자, 왕세손과 그 비(妃)들의 장례를 말한다. 여기서는 1649년 승하한 인조(仁祖)의 장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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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權論 夫權也者。聖人言之。權不可無也。然則破權者之說。不幾於不知量乎。曰不然也。請以一轉語諭之。今有行路者。由此而進。則路坦平。由彼而進。則路崎嶇。較其先後。則崎嶇捷於坦平。捨坦平而由崎嶇。曰從我也。不從者幾希。此權之弊。所以生之本也。夫常人之情。惡範我而喜詭遇者。皆此也。然則如之何。其可也。曰破權乎。不破是權。則聖人之道。將隨是權而亡矣。古之言權也。權以得中。今之言權也。權以失中。得中則聖人之道也。失中則少人之道也。是以權之稱錘。知輕重而合義。則聖人之要。妙微密處。不可以私意得之者。而彼權變權術之論熾。而聖人之道。益寂然無聞。則將隨時權而亡者。非虛語也。況權者。孔子猶言之難。而今之賢於孔子者。往往有之。開口便說權。是天下何多事之變。而又何得權者之多也。皆不過任其自便。而必假名於權。是權字寄寓。在一箇形象。反爲無骨子矣。其爲害也。豈淺淺乎。請嘗論之。如當喪葬之家。其哀文足以盡禮不爲。曰是權也。如當祭祀之家。其供奉足以盡誠不爲。曰是權也。如當冠昏之家。其節次足以盡儀不爲。曰是權也。以至字牧之官。姑息爲計。曰是權也。閭巷之民。行事失措。曰是權也。擧天下之事。無一日非權。擧天下之人。無一心非權。甚矣一權字之害。至於斯乎。非淺淺細故可知。是權必破然後。可以存聖人之權也。聖人之權。乃不得已之中也。豈可破乎。吁破彼。所謂權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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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金生)【일장(日章)】에 대한 만사 挽金生【日章】 도산(道山)317)의 산수 전원이 좋으니소나무와 대나무, 뽕나무와 삼 옛 집에 둘러 있네서리 내린 가시나무 가지엔 외기러기 슬퍼하고가을 저무는 난초 둑엔 외로운 원앙 울어대네수레 앞 두 명의 훌륭한 아들318) 울부짖으며 상여끈 잡고깃발 아래의 빼어난 두 형제319) 곡하며 다북쑥 올리네320)인간 세상 60년 살고 나서 죽은 뒤의 일홀로 여경(餘慶)321)을 남겨 여러 자손에게 주네 道山山水好田園松竹桑麻繞古軒霜落荊枝哀隻鴈秋殘蘭塢泣孤鴛轝前二玉號攀紼旌下雙珠哭奉蘩人世六旬身後事獨留餘慶贈諸孫 도산(道山) 전설 속의 선산(仙山)으로, 옛날에 사람이 죽으면 이곳으로 돌아간다고 여겼다. 훌륭한 아들 원문은 '이옥(二玉)'이다. '옥(玉)'은 곧 '옥수(玉樹)'로, 훌륭한 남의 집 자제를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여러 자제들에게 어떤 자제가 되고 싶은지 묻자, 그의 조카인 사현(謝玄)이 대답하기를 "비유하자면 지란(芝蘭)과 옥수(玉樹)가 뜰 안에 자라는 것처럼 하고 싶습니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79 謝玄列傳》 훌륭한 두 형제 원문은 '쌍주(雙珠)'로, 출중한 두 형제를 말한다. 한(漢)나라 때 공융(孔融)이 위휴보(韋休甫)의 두 아들인 위원장(韋元將)과 위중장(韋仲將) 두 형제를 두고 지은 〈여위휴보서(與韋休甫書)〉에, "늙은 조개 속에서 진주 두 알이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不意雙珠生于老蚌]"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다북쑥 올리네 소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제수(祭需)를 올려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시경》 〈채번(采蘩)〉에 "이에 다북쑥 캐기를 연못과 물가에서 하도다. 이것을 쓰기를 공후의 제사에 하도다.[于以采蘩 于沼于沚 于以用之 公侯之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여경(餘慶) 조상이 남긴 은택으로 인해 그 후손이 누리게 되는 복을 말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게 마련이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 반드시 남은 재앙이 돌아오게 마련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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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대신하여 지은 이웃 부인에 대한 만사 代人輓隣婦 곧고 조용한 규문의 의범 맹광(孟光)322)을 이었으니거안제미(擧案齊眉)를 32년여 동안 하였네서리가 옥 나무 꺾으니 산이 자줏빛을 슬퍼하고323)바람이 경지(瓊芝)를 끌어당기니 계곡이 향기 없음을 원망하네324)다섯 줄기의 향기로운 난초에 꽃이 비로소 열리고가지 하나의 계수나무 떨기에 잎이 처음 자라나네이로부터 이날의 끝없는 한 알겠으니백발의 늙은이325) 슬피 울고 봉(鳳)이 황(凰)을 잃었네326) 貞靜閨儀後孟光齊眉三十二年強霜摧玉樹山哀紫風掣瓊芝谷怨香五朶芳蘭花始茁一枝叢桂葉初長從知此日無窮恨鶴髮悲號鳳失凰 맹광(孟光) 후한(後漢)의 은사 양홍(梁鴻)의 처다. 부덕(婦德)이 훌륭하여 남편을 잘 섬겼다고 한다. 밥상을 들고 올 때에도 양홍을 감히 마주 보지 못하고 이마 위에까지 들어 올렸다는 '거안제미(擧案齊眉)'의 고사가 유명하다. 《後漢書 卷83 梁鴻列傳》 서리가……슬퍼하고 이는 여인이 이른 나이에 사망한 것에 대한 전고인 '자옥(紫玉)'의 고사를 염두에 두고 쓴 구절이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 〈경난후장피지섬중유중최선성(經亂後將避地剡中留贈崔宣城)〉에 "호상(胡床) 위의 자줏빛 옥피리, 도리어 푸른 구름에 앉아서 부네.[胡床紫玉笛 却坐靑雲叫]"라 하였고, 두보의 〈도죽장인(桃竹杖引)〉에, "뿌리 자르고 껍질 벗기매 자줏빛 옥과 같으니, 강비와 수선이 애석해도 어쩔 수 없어라.[斬根削皮如紫玉 江妃水仙惜不得]"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만사의 대상인 부인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바람이……원망하네 '경지(瓊芝)'는 곧 옥지(玉芝)로, 선경(仙境)에 있는 영지(靈芝)를 뜻한다. 옛 사람들은 이것을 복용하면 장생할 수 있다고 여겼다. 남조(南朝) 양(梁)나라 심약(沈約)의 〈여도홍경서(與陶弘景書)〉에, "경지(瓊芝)를 씹어 삼켜 청도(淸都)를 출입한다.[咀嚥瓊芝 出入淸都]"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즉, '바람이 경지를 끌어당긴다'는 것은 장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음을 의미한다. 백발의 늙은이 원문은 '학발(鶴髮)'이다. 두루미의 깃털처럼 희다는 뜻으로 머리가 하얗게 된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봉(鳳)은 황(凰)을 잃었네 봉황 가운데 수컷을 '봉(鳳)'이라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 한다. 남편이 부인을 잃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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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客說 農者天下之大本也。以之而奉吾君上。以之而養吾父母。以之而食吾妻孥。凡天下之養生送死吉凶憂樂。民生之所寄。皆由是而出。亦不越乎是。有陳良之徒者。自稱得神農之業。負耒耜。適諸胡人。以鞍馬爲家。射獵爲農。珠玉金貝爲先。無所用耒耜。於是反其國曰。以吾之學大本不能容。何也。天下之大。萬姓之衆。固有不耕而食者乎。旣而自反曰。非吾學之不利。彼胡兒之不知大本。吾無與焉。說者曰嗟哉。耕者之不識時。擧一反三。非斯歟。士之處世。不知其動。亦猶是夫今之國光造士之一也。士之無賢不肖。咸赴應擧。一人者。不在其中。蓋不敢赴。亦不欲赴。而衆謗喧起。不知所止。一日有客。自南方來。爲文而抵之曰。士之仕也。猶農夫之耕。聖訓已然。且春不耕。秋何以穫。願早負耒耜。且以子之才。耕經耘史。今幾年矣。及時而作。無負所學。可也。乃反之曰。農雖大本。非耒耜無以成。耒耜雖利。適諸胡。則無所用矣。向所謂不敢赴者。不能耕耘於經史。是耒耜之不利也。不欲赴者。以不利之耒耜。將安所適。無所適。則寧利其耒耜。以待時至耶。且問持文柄者之所先何物。所農何業。吾不可得以知之矣。不可知。則今可以止乎。客亦不復言。相視一笑。而罷臨軒分手。酒力已醒。茶烟初歇。夕陽散亂。凡坐讀大學章句數遍。遂援筆而記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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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室朴氏文 維歲甲子九月辛亥朔三日癸丑。夫靑皐李承鶴操數行文。哭告于亡室朴孺人之靈曰。嗚呼。卿卿去。將安之。千里返櫬。生行死歸。是誰之咎。子欲養而入京。不得養而一病篤。至斯矣。復誰咎也。雖然。年逾稀而有夫焉。有子焉。孫曾又在前。以夫人之事言之。是可曰了債。而五十二年同居之餘。京鄕相分。病報晩時。又失車便。後一日而去。則方入黑酣。鄕已無及矣。不聞永訣一言。薄情哉。此行若是恝乎。兒輩相傳苦待之言。我在鄕山。孫在海外。使人哽咽。萬事已矣。人生如夢。係戀尼私愛憎之說。復歸何處。維我細君。君性慈仁。我性峭直。多有終風之暴。必多難堪。而吾亦有時後悔。若言琴瑟。則不同而和耶。嗟。我命道崎嶇。一生經歷。無非雲雷水山。結髮以來。但見辛苦。不知安樂。心無怨怒。入我門三月。而擔任鼎臼。身無完裳。口無兼味。家有異顔之親。又有媵母。幷八男妹。及所生七箇兒。視同撫恤。皆知感化。而稔累間言。尊舅亦悅豫矣。未幾遽當終天之痛。初欲讀書以成家者。百口計誏。無他委任。故不得專治。再擬門戶之計。而空事奔走。乃自疑于心曰。吾家世積仁累德。宜無子孫之久屈。而必是先兆之不卜吉坎。使堪輿家相之。晝宵竭力。三十年于玆矣。生計益薄落。世變無窮。兒不從命。盡室于京。使君作九原之恨。而幾傾之家業。不至覆敗。維君之內助居多。君性好施。每値凶荒飢寒。亦自不堪。而推食食之。解衣衣之。吾欲有施與。則輒勸之不吝。憫其同己弟之不能完其親葬。每流淚告我。我無暇及。則使我經紀。竟遂孝思。是亦人之難能。吁。京居吾先之古宮。始興吾家之先兆。自初終以至葬埋。具儀如禮。不後京俗。二十里長安萬目。皆知朴氏之葬。生前困苦。爲身後一時之光乎。二期已滿。家屬歸鄕。或恐魂魄之無依。又以壙中憂虞。不如還葬故山。將以來日甲寅。形歸窀穸。茫茫人世。我生幾何。死不同穴。生前已言之矣。預我壽藏。卜在不遠。異日相望。庶魂靈之可相慰歟。言有不能盡。而恨何旣。嗚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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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第二男文 維歲次丙戌四月甲子朔初七日。阿爹自京來。聞汝之化去報于境上。顚倒入門。不見汝之影響。眞耶夢耶。傳者信耶。汝捨我何之忍痛飮恨。越七日丙子。始收拾飮魄。以淸酒過脯之具。告我第二男太授之靈。嗚呼。昔汝之生時。吾遊淳化而歸。墮地爲三日。汝之祖父。謂汝父曰。此吾家之寶也。從而愛之益篤。暫不離乃祖側。吾亦托情於汝。異諸汝之同氣。汝祖考下世後。觀汝之情狀。每啾然若無依若有失焉。吾每尋常知之。以爲情理之使然。孰知汝棄我。而下恃於泉臺耶。其然乎其不然耶。非汝之命道至此。使汝不免于水火。爲父者之罪也。仲春之月。吾發西裝。汝時微痛一夜。似感似疹。不爲深憂。竟乃登途。心雖未忘。意謂無慮。在京得汝仲父書。謂輕痛姑無顯發云。下道聞善經之報。自謂之幸。安知餘外之頉。作惡報耶。痛矣痛矣。莫非乃父殃咎。流於汝躬。致此也。無知者人也。難堪者理也。汝之玉質蘭儀。何處復見乎。汝之解語後。一不逆乃父意。慧性日長。粹朗出群。人共譽之將謂承乃祖風。吾亦信之無異。有望於汝。奈之何。使汝父作胸釘之恨。而折一臂於中道耶。命乎理乎。九曲猿腸。寸寸欲消。雖質之神明。非命也非理也。不偶生而偶死者。夭札也。使汝不免夭札。是誰之罪。入地者。亦應含寃。在世者。無窮抱恨。與生俱亡矣。若知其如此。雖萬乘之公相。吾不以一日輟汝而就也。使汝至此。不知可曰人乎。登途日。汝不求他。願史略一卷書。書雖求。來汝先何去。不能摩挲眼前。耳畔無淸亮一句讀聲音耶。永訣之語。以此遮面乎。聞于汝母。汝方疾劇。呼我無已。今我來矣。何不一呼。薄情哉。汝父功名何物。喪我天倫。向誰擡顧。何處寓樂乎。日暮獨坐。森森然在我傍。而撫之則無跡。呼之無應。汝其忘我耶。我何爲生。空山寂寂。風蕭蕭。雨冥冥。汝之完完。何以堪耐。將誰與爲儔乎。吾聞魂氣無不之。抑在吾之傍而不知乎。與汝之弟妹。侍於乃祖之側乎。不可得以知也。雖不可知。依吾之終身也。哀哉哀哉。生死不欲汝父知。若是恝乎。非汝也汝父之自招也。將欲一痛泄哀。以辦幽明。而哀未泄而臆先塞。將奈之何。太授太授。汝其知耶不知耶。嗚呼哀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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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액을 청하는 계사 請額啓辭 현종(顯宗) 병오년(1666년) 9월 11일에 대신 병조판서(兵曹判書) 소결청 당상(疏決廳堂上)을 인견할 때 사간(司諫) 여성제(呂聖齊)30)가 아뢰기를 "찬성에 추증된 정문부(鄭文孚)가 의병을 일으킨 사적은 이미 함경 감사(咸鏡監司) 민정중(閔鼎重)의 계문(啓聞) 및 전 평사(評事) 이단하(李端夏)의 상소 중에 다 기록되어 있으니 신이 다시 전하의 귀를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으니, 조정에서 이미 포상하는 법을 내렸고 특히 총장(寵章)을 베풀었으니 매우 성대한 일입니다. 이에 북방(北方) 선비들이 존모하고 받들어 의병을 일으킨 지역에 서당을 세우고 그 당시 함께 거의한 이붕수(李鵬壽) · 강문우(姜文佑) · 최배천(崔配天) · 지달원(池達源) 등을 배향(配享)하여 제사지낼 곳으로 삼고서 사액을 청하고자 하였으나 먼 지방 사람들이 임금에게 알릴 길이 없으므로 감히 이를 우러러 진달합니다. 성상께서 만약 특별히 사액을 하신다면 교화를 수립하고 인심을 굳게 뭉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주상께서 "해조에 말하여 품처하라."라고 전교를 내렸다.또 다시 아뢰기를31) "정 문부가 의병을 일으킨 공은 오래 되어도 사라지지 않아 70여 년이 지난 뒤에 이르러 비로소 조정에서 소급하여 포상하는 은전을 입었으니 북방 인심이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이에 사우를 세워 그때 함께 거의(擧義)한 여러 사람을 배향하면 더욱 존경하고 사모하는 정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니 특별히 사액을 내려주어 먼 지방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여 주면 참으로 격려와 권면하는 도리에 합당합니다. 그러나 이 일이 은전(恩典)에 관계되므로 아래에서 멋대로 결단할 수 없으니 성상께서 재가하여 주심이 어떻습니까?"라고 하니, 계하(啓下)하기를 아뢴 대로 시행하라고 하였다. 顯宗丙午九月十一日, 大臣兵曹判書疏決廳堂上, 引見時, 司諫呂聖齊所啓 '贈贊成鄭文孚倡義事蹟, 已悉於咸鏡監司閔鼎重啓聞及前評事李端夏陳疏中, 臣不必更瀆, 而朝廷旣下追褒之典, 特施寵章, 甚盛擧也。北方士子, 向慕尊奉, 營立祠宇於倡義之地, 以其時同事李鵬壽姜文佑崔配天池達源配享, 以爲香火之所, 欲爲請額, 而遠方之人, 無路上聞, 故敢此仰達。自上若特爲賜額, 則可以樹立風聲, 固結人心矣。' 上曰: "言于該曹稟處事," 傳敎矣。'鄭文孚倡義之功, 久而不泯, 至於七十餘年之後, 始蒙朝家追褒之典, 北方人心, 大有所聳動, 而立祠宇, 以其時同事諸人配享者, 尤可見尊慕之誠, 特賜恩額, 以副遠人之望, 誠合激勸之道, 而事係恩典, 自下不得擅便, 上裁何如,' 啓依所啓施行。 여성제(呂聖齊) 1625~1691.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희천(希天), 호는 운포(雲浦), 시호는 정혜(靖惠)이다. 1689년 다시 우의정이 되고 영의정에 이르러 사직, 행중추부판사(行中樞府判事)로 전임했다. 이때 남인(南人)들이 성혼(成渾) ·이이(李珥)를 무고하고 문묘(文廟)에서 출향(黜享)하려 하자 그 관계관으로서 스스로 청죄(請罪)한 뒤 낙향하였다가,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廢位)를 반대하는 상소를 위해 상경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울분으로 발병, 고향에서 죽었다. 또 다시 아뢰기를 원문은 임금이 한 말처럼 주어가 구별되지 않았으나, 내용상 이 부분은 여성제가 다시 아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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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子厚 如玉其人。常常在心目之間。但稽山鏡水。若隔在雲端耳。此時何時。詩禮樽爼。已屬先天。携手同行。嘆將安歸。俯仰天地。寧不忉怛。聞溪南丈入會。稽山中與仙庄相近否。羽客之遇。聯鞭追隨。剡棹之興。溯洄相訪。其超然風味。足可想像。瞻望東雲。願擇梅福之隣。未知山椒水涯。旁隙之地。不惜鷦鷯一枝之棲耶。未審此時體候。何如。益勵勁節。卒究遠業。遙遙慰祝。此外何有。弟平生。以憂故自繞。而駸駸然。年力已至衰替矣。學無定力。而遽遭世變。其於所向。安得不迷哉。惟依日新左右之。尙爾支捱耳。伏想吾兄之庇庥於溪艾兩丈。如弟之仰日新。則吾輩今日揭厲之方。何患無依歸處耶。遙以奉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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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贊炯【永煥】 靑城歸路。一宵奉晤。如讀十年書。伊後復漠然。三夏亭上。每思故人淸風。而竟不可得已。而新凉入庭樹。可續此餘意否。若得遂從容。因復款聽。春間遊覽歷歷之語。是爲一副快事也。鄙先立言之筆。實賴吾兄周章。感威可忘。前此令郞之行。多在臨時直發。未能一番修候。倘或厚恕耶。令郞喫苦經夏。似無離膝之憂。可知其志之有在也。志之如此。何患不見其成就耶。謹詢春堂迎泰。竹柏凝祥。晨昏之暇。溫習舊業。新味津津。天之祿我。何其厚哉。願兄。益思所以勉副天餉之意也。弟下根之質。又以懶散成習。只是一箇蠧衣蝗粟之物也。自顧此生。豈不可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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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大奎【奎鎭】 陽來日。兄書亦來。天時人事。無非大來消息。感仰亡已。矧伊陽春高調。錯出於一幅之間。敬玩不釋。足令警惰而惺昏。詩人之無金玉其音。良有以也。來書。以鄙家四父子。讀書稱譽者。以至歟。以實歟。十年泰山。一人讀之。于古白石。一人讀之。未聞有父子兄弟同堂咿唔。然後方云讀書也。大抵讀書。而帶伐齊之名。難容一身之罪。而況四父子乎。以鄙所見。德門賢輩。實心讀書。凡幾父子乎。汝穎之賢星。復見於今日矣。欽艶之極。只自慚愧而已。吾兩人阻闊。今爲幾年。茫然不可追記矣。然各自盡力於自家分上。則這便是朝暮遇也。如何。時因便風。惠以種種䂓警是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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吊告文 趙性熹 七松安處士。讀聖賢書。居窮處約。不以榮利智能累其心。日與其友鄭日新。講道林樊。與性意未相見面。因日新而聞性憙日新懋實甚。盖因傳聞之誤。若以性意爲可與語者遂降屈賢德贈處無間處士從以吹噓之竿牘之問時月踵至性憙闇劣復不無自知每有推詡。輒蹙然不自安。旣而交淺言深。道義相勉。各以累牽。終無過從。然思戀之係。期望之切。又未嘗以日月間斷。山川阻遠有間也。處士族人安君圭星。遊性憙門。十月。往修其歲事于寶城。歸傳處士委化之報。其族䣊相聚。必非傳訛。性憙猶如夢醉。將信而復疑者屢矣。臘月性憙敝宗順濟。來致日新十一月十一日書。書中幷付處士家訃書。處士果以十月十四日。得疾不起矣。日新書云。前月失一知已友。郞七松安某也。之人也。樂善好義。愷悌勤飭。實南服偉人。叔世眞儒。今忽至此。尤無以依賴。且云。某秋間。聞尊駕南遊。掃庭除備茶果。將迎候于路。竟相違而止。盖其居常。不跡城府。不見權貴。獨於此。惓惓而不已。其胷中涇渭去就。卓然不苟者。如此。性憙發書而長號。旣而曰。人之死生何限。孫子荊所云。諸人不死。而使武子死者。盖深惜之。而猶有所激。呂東萊所云。人物渺然。伏紙流涕者。爲道之憂者也。處士。志於道而不克有終。人物之感。則誠有所不可已者。而如性憙鹵莽滅學。老且陳廢。而猶蝗梁黍。支離斯世。亦足可愧也已。日新。眞儒偉人之云。日新非姑息愛人者也。處士之平生見矣。處士之身後微矣。九月。性憙。欲往遊天冠月出諸山。行至竹樹。將訪處士及日新之居。有事沮敗之。徑還不果尋。雖無從容約誓之言。至今思之。車過腹痛。竟不免負心於幽明。又甚悲夫。乃爲文而吊之。曰夫人之死。各以類悲。由親及疎。疇非哭私。性憙之於處士。非親戚與面交。淚汍瀾而無從。夫孰爲余之敎憫吾道之日竆。讀書者竟無命也。獨有耿然之不泯。亦莫不以死生而正性。嗚呼哀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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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1) 錦湖遺事序(1) 도(道)란 사람으로서 항상 지켜야할 도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요 배우는 자가 부지런히 날마다 익히는 것은 이 도를 구하여 이 도를 행하는 일 뿐이니, 이것이 천성의 밖에 있겠는가. 유자(有子)가 “군자는 근본에 힘써, 근본이 확립되면 도가 생기니, 효도와 우애는 인을 행하는 근본일 따름이다.” $주 군자는 …… 따름이다 : 《논어》 〈학이(學而)〉에 보인다.라고 했으니 우리 외고조 금호(錦湖) 나공 같은 분은 인을 행하는 근본을 터득함이 있는 분이다. 어려서부터 지극한 성품을 지녔으니 진실로 이미 신명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또한 스승과 벗들 사이에서 학문을 익힘에 가정에서는 수양함이 있었고 나라에서는 명성이 자자하였다. 하나의 관직을 맡겨 시험해 보니 한 달의 교화에 그 백성들로 하여금 “어질고 현명하다.”라는 칭송을 듣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횡역에 걸려 예측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임금께서 용서하시며 “효자이다.”라고 하셨으니, 아, 사람으로서 항상 지켜야할 도리가 이 분에게 있다. 이에 지금 4대손 상사 나두동 씨가 백 수십 년 뒤에 선조의 유적을 수집하여 《금호유사》 한 권을 편성하고 장차 간행하여 오래 전하게 하고자 하면서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아! 나는 이전에도 외람되게 공의 〈사실기〉를 지었는데, 어떻게 또 중언부언 $주 중언부언 : 원문 ‘疊床架屋’은 상 위에 상을 놓고, 지붕 위에 다시 지붕을 얻는다는 것으로, 반복됨을 말한다.으로 유사의 서문을 쓰겠는가. 그러나 공의 유사가 세상에 사라지지 않는다면 사람으로서 항상 지켜야할 도리에 느끼는 바가 있고 인륜에 보탬이 될 것이요 자손들에게만 다행한 일이 아닐 터이니 감히 서문을 쓰지 않겠는가.숭정(崇禎) 후(後) 두 번째 병오년(1726) 초여름, 외현손 팔계(八溪) 정중원(鄭重元)은 삼가 쓴다. 道以彛倫爲重, 學者孜孜日講, 所以求此道, 行此道而已, 此有待於性分之外也. 有子曰 :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若吾外高祖錦湖羅公, 其有得於爲仁之本者哉. 童而至性, 固已格神明矣, 而又講磨師友, 有修于家, 有聞于邦矣. 至其試諸一官, 期月之化, 令其民頌之曰 : “仁賢也.” 不幸罹橫逆, 臨不測之地, 聖主原之曰 : “孝子也.” 嗟乎! 彛倫在是矣. 迺今四世孫上舍斗冬氏, 蒐集先蹟於百有數十年之下, 編成錦湖遺事一卷, 將壽諸梓, 俾重元序之. 噫! 重元前旣猥爲公事實記矣, 奚用又以疊床架屋之說序遺事焉. 顧公遺事不泯于世, 可以感秉彛益人倫, 非特子孫之爲幸而已也, 敢不書. 崇禎後再丙午孟夏, 外玄孫八溪鄭重元, 謹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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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世系 나 씨의 본관은 나주이다. 대대로 거주함에 고향을 떠나지 않았고, 시조 이후로 세대는 증거로 삼을만한 것이 없고 족보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라고는 다만 12세 이하이다. • 시조 부(富) 【고려시대 정의대부(正議大夫) $주 정의대부(正議大夫) : 고려시대 정4품 문관의 품계이다. 감문위(監門衛) 상장군을 지냈다.】 • 득규(得虬) 【영동정(令同正)을 지냈다.】 • 자(子) 중윤(仲允) 【영동정을 지냈다.】 • 자(子) 송기(松奇) 【영동정을 지냈다.】 • 자(子) 수영(守永) 【진사(進士)에 합격했다.】 • 자(子) 원(遠) 【통사랑(通仕郞) 사온서(司醞署) $주 사온서(司醞署) : 궁중 안에서 쓸 주류(酒類)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관아이다. 직장(直長) 동정(同正) $주 동정(同正) : 실제 직무를 집행하지 아니하고 벼슬자리의 명목만을 띠는 벼슬로, 차함(借銜)의 벼슬 이름 아래에 붙여 쓰던 칭호이다.을 지냈다. 묘는 나주 남쪽 송현(松峴)에 있다.】 • 자(子) 진(璡)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냈다. 묘는 송현에 있다.】 • 자(子) 공언(公彦) 【중현대부(中顯大夫) 전농시(典農寺) 정(正)을 지냈다. 우왕 7년(1381) 전라도 순문사(巡問使) 이을진(李乙珍)을 따라 왜적을 물리친 공이 있었다. 묘는 나주 서쪽 장흥동(長興洞)에 있다. 부인은 고흥 유씨(高興柳氏)로 흥위위 보승랑장(興威衛保勝郞將) 유번(柳蕃)의 따님이다.】 • 자(子) 집(諿) 【식목도감녹사(式目都監錄事) $주 식목도감녹사(式目都監錄事) : 나라의 중요한 격식(格式)을 의정(議政)하던 기관이다.를 지냈다. 묘는 무안군(務安郡) 주룡 나루 판문치(板門峙)에 있다.】 • 자(子) 자강(自康) 【통훈대부(通訓大夫) 행(行) 무안 현감(務安縣監)을 지냈다. 묘는 주룡 나루에 있다. 부인은 영천 최씨(永川崔氏)의 둘째 따님이다.】 • 자(子) 계조(繼祖) 【장사랑(將仕郎)을 지냈고 성화(成化) 갑오년(성종 5, 1574) 5월 25일에 돌아가셨다. 묘는 장흥동에 있다. 부인은 순창 조씨(淳昌趙氏)로, 전라 감목관(全羅監牧官) $주 감목감(監牧官) : 지방의 목장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종6품의 무관 벼슬이다. 조여경(趙餘慶)의 따님이다.】 • 자(子) 일손(逸孫) 【자는 안지(安之)이다. 선무랑(宣務郞) 행(行) 전연사(典涓司) 직장(直長)을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 겸 경연 참찬관(經筵參贊官)에 추증되었으며 3월 초파일에 세상을 떠났다. 묘는 장흥동에 있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으로 추증된 창원 공씨(昌原孔氏)로, 생원(生員) 장원(壯元) 공섬승(孔贍勝)의 따님이다.】 • 자(子) 질(晊) 【자는 백승(伯升)이다. 홍치(弘治) 무신년(성종19, 1488)에 태어나, 가정(嘉靖) 무자년(중종 23, 1528) 무과에 합격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 행(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戶曹參判) 겸(兼)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관(五衛都摠官)에 추증되었다. 가정(嘉靖) 병신년(중종31, 1536) 10월 9일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69세였다. 묘소는 장흥동에 있다. 부인은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된 강진 최씨(康津崔氏)로, 홍문관 부응교(弘文館副應敎)를 지내고 예조 참판(禮曺參判)에 추증된 호(號) 금남(錦南) 최부(崔溥)의 따님이다.】 • 자(子) 사침(士忱) 【자는 중부(仲孚)이고, 호는 금호(錦湖)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행(行) 이산 현감(尼山縣監)을 지냈다. 숭정대부(崇政大夫) 의금부 좌찬성(議政府坐贊成) 겸(兼)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추증되었다. 사적은 사실기와 묘문에 자세히 보인다. 첫째 부인은 경부인(敬夫人)으로 추증된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며 아들 셋을 두었다. 둘째 부인은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된 광주 정씨(光州鄭氏)이며 아들 셋과 딸 셋을 두었다.】 • 자(子) 덕명(德明) 【진사(進士)에 합격하여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지냈다. 기축년(선조 22, 1589)의 화를 당하여 경성(鏡城)으로 귀양 갔다. 임진란에 북평사(北評事) 정문부(鄭文孚)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킬 것을 도모하고 변방에 사는 백성으로서 왜적에 응하여 난을 선동한 자를 포획하여 목을 베었다. 이 일은 《북관지》에 실려 있다.】 • 자(子) 이소(以素) 【아들 넷을 두었는데, 나유(羅褕), 나심(羅襑), 나규(羅袿), 나현(羅袨)이다.】 • 자(子) 인소(因素) 【아들 둘을 두었는데, 나결(羅袺)과 나격(羅䙐)이고, 서자가 하나 있는데 나겹(羅裌)이다.】 • 자(子) 성소(成素) 【무과에 합격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서자가 셋 있었으니, 나표(羅表), 나방(羅衤方 ), 나원(羅袁)이다.】 • 자(子) 취소(就素) 【자식이 없다.】 • 자(子) 덕준(德峻)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을 스승으로 모셨다. 품행과 도의로 천거되었으며, 벼슬은 보은현감(報恩縣監)에 이르렀고,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천성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으며 어버이를 정성으로 모셨으며 두 번째 어머니 모시기를 친어머니처럼 하였다. 고을 사람들 가운데 자손들을 가르치거나 두 번째 어머니를 모시는 자들은 반드시 모범으로 삼았다고 한다.】 • 여(女) 사위 김잡(金磼) 【주부(主簿)를 지냈다. 임진왜란에 숲으로 달아나 숨었는데 갑자기 밤에 깜짝 놀란 일이 생겨 부부가 서로 헤어졌는데 스스로 목을 매고 죽음으로써 열녀의 정각을 표창 받았다.】 • 자(子) 찬소(纘素) 【사위는 선무랑(宣務郞)을 지냈다. 아들이 하나 있으니 나겹(羅裌)이며, 선교랑을 지냈다.】 • 자(子) 계소(纘素)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와 개천 군수(价川郡守)를 지냈다. 서자가 있는데, 이름은 나진(羅袗)이며 생원시에 합격하여 도사(都事)를 지냈다.】 • 자(子) 위소(緯素) 【생원과 문과에 합격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내고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추증되었다. 아들 셋을 두었는데, 나염(羅袡)은 생원시에 합격하여 정랑을 지냈고, 나반(羅襻)은 생원시에 합격하여 부사(府使)를 지냈고, 나진(羅袗)은 출계(出繼)하였다.】 • 여(女) 사위 최광헌(崔光憲) 【선무랑(宣敎郞)을 지냈다.】 • 자(子) 치소(緻素) 【아들 넷을 두었는데, 나기(羅衤基 )는 통덕랑(通德郞)을, 나겸(羅衤兼 )은 선교랑(宣敎郞)을, 나균(羅袀)은 절충부호군(折衝副護軍)을, 나형(羅衤瑩)은 통덕랑을 지냈다.】 • 자(子) 경소(經素) 【아들 셋을 두었는데, 나적(羅襀)은 통정랑(通德郞)을, 나단(羅襢)과 나선(羅䙋)은 문과에 합격하여 장령(掌令)을 지냈다.】 • 서자(庶子) 함소(緘素) • 자(子) 덕윤(德潤) 【진사에 합격하여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곤재(困齋)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품행과 도의로써 이름이 알려졌다.】 • 자(子) 회소(繪素) 【무과에 합격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와 이천 부사(伊川府使)를 지냈다. 아들 둘을 두었으니, 나성(羅衤成 )은 무과에 합격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나첨(羅襜)은 출계하였다.】 • 자(子) 유소(由素) 【선교랑(宣敎郞)을 지냈다. 아들이 하나 있었으니 나일(羅衵)이다.】 • 자(子) 의소(宜素) 【진사와 문과에 합격하여 예조 정랑(禮曺正郞)을 지냈다. 서자 나첨(羅襜)은 통덕랑(通德郞)을 지냈다.】 • 여(女) 사위 윤항(尹沆) 【충절위(忠義衛)를 지냈다. 정유왜란 때 아우 덕윤의 부인 정 씨와 함께 치마끈을 같이 묶고서 주룡나루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써 열녀의 정각을 표창 받았다.】 • 자(子) 우탕(佑湯) • 자(子) 덕현(德賢) 【곤재의 문인이다. 천성이 효우를 지녀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죽을 먹고 물만 조금 마셨다. 정유재란 때 어머니를 업고 달아나 숨어 엎드려 있었는데, 적들이 갑자기 이르자 그가 어머니를 안고 처연히 비통하게 울부짖으니 적들이 해치지 않고 떠나서 사람들이 그의 효성에 감복하였다고 한다. 인조가 이 일을 듣고는 사옹원 참봉(司饔院參奉)에 추증하였다. 부인은 하동 정씨(河東鄭氏)인데 또한 주룡 해구에 목숨을 바쳤기에 열녀로서 정각으로 표창을 받았다.】 • 자(子) 익소(益素) 【선교랑(宣敎郞)을 지냈다. 아들 둘을 두었는데, 나우(羅祐)와 나호(羅祜)는 진사에 합격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여 태학에 추천을 받았으며, 벼슬은 참봉에 이르렀다.】 • 여(女) 사위 정오(鄭澳) • 자(子) 후소(後素) 【아들 넷을 두었는데, 나직(羅衤直), 나찬(羅襸), 나탁(羅袥), 나예(羅袣)이다.】 • 자(子) 득소(得素) 【천성이 지극한 효성을 지녔다. 19세에 부친이 돌아가시자 시묘살이를 3년 동안 하면서 계속 피눈물을 흘리며 점차 야위며 $주 점차 야위며 : 원문 ‘시훼(柴毁)’는 상을 당하여 너무 슬퍼하여 몸이 몹시 여위는 것을 말한다. 《주역》 설괘(說卦)의 괘상(卦象)에 보면 ‘시(柴)’자에 ‘척(瘠)’의 뜻이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였으니, 인조께서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정려를 내려 표창하였다.】 • 자(子) 상소(尙素) 【선교랑(宣敎郞)을 지냈다. 아들 셋을 두었는데, 나유(羅裕)는 무과사마(武科司果)에 합격하였고, 섬(襳)과 완(衤完)이 있다. 서자(庶子)는 한 명 있는데 ▣이다.】 • 자(子) 중소(重素) 【아들 둘을 두었는데, 나연(羅䙇)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또 나식(羅衤式)이 있다.】 • 자(子) 덕신(德慎)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와 영암 군수(靈巖郡守)를 지냈다. 병신년(선조 29, 1596)의 어려움을 만난 뒤 재기하여 무장 현감(茂長縣監)이 되었다. 무술년(선조 31, 1598)에 노량(露梁) 전투에서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과 함께 선봉에서 왜적과 싸운 공이 있었으니, 당시 나이가 31세였다. 선무종훈(宣武從熏)에 1등에 녹훈(錄勳)되었다.】 • 여(女) 사위 민희일 (閔喜一) • 여(女) 사위 유천(柳遷) 【충의위(忠義衛)를 지냈다.】 • 여(女) 사위 위홍주(魏弘宙). 【참의(參議)에 추증되었다.】 • 자(子) 산보(山寶) 【무과에 급제하여 현령(縣令)을 지냈다.】 • 자(子) 정보(廷寶)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縣監)을 지냈다.】 • 자(子) 국보(國寶) • 자(子) 덕헌(德憲)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과 경기 수사(折衝京圻水使)를 지냈다. 병자년(인조14, 1636) 봄에 명을 받들어 심양(瀋陽)으로 들어갔는데 오랑캐가 황제라고 부르고 축하하라고 하면서 참가한 하반(賀班) $주 하반(賀班) : 국가와 왕실의 경사 때 조정에서 하례하는 반열을 말한다.들을 위협하였다. 공은 절의를 지켜 굴복하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당시 사람들이 소무(蘇武) $주 소무(蘇武) : 소무는 한 무제(漢武帝) 당시의 사신이다. 한무제가 흉노와의 친선을 위하여 소무를 사신으로 보냈는데, 흉노 선우는 소무에게 한나라를 배반하고 자신의 노복이 되어 달라고 강요하였으나 굴복하지 않았다. 소무는 황야로 보내져 19년에 걸친 억류생활을 하면서도 흉노에게 굴복하지 않았으며, 무제의 아들 소제(昭帝) 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에 견주었다. 가도 도독(椵島都督)이 이러한 일을 황조에 아뢰니 숙종께서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표창하여 추증하였다.】 • 여(女) 사위 김용건(金用健) • 여(女) 사위 이준신(李儁臣) 【진사에 합격하였다.】 • 자(子) 수소(守素) 【선무랑(宣務郞)을 지냈다. 부인은 언양 김씨(彦陽金氏)이며 충신으로서 정려문을 표창 받았다. 안주 목사(安州牧使)이자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된 장무공(壯武公) 김준(金浚)의 따님이다. 정묘호란 때 안주성이 함락되자, 장무공은 스스로 몸을 태워 목숨을 바쳤다. 김 씨 또한 스스로 목을 매어 목숨을 바쳤기에 열녀로서 정각의 표창을 받았다.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나위(羅褘)이며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 자(子) 정소(貞素)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나회(羅襘)이다.】 羅氏本官羅州. 世居不出鄕, 而始祖以後世代, 無徵譜牒所詳載者, 只是十二世祖以下.始祖 富 【高麗正議大夫 監門衛上將軍.】得虬 【令同正】子 仲允 【令同正】子 松奇 【令同正】子 守永 【進士】子 源 【通仕郞 司醞署直長 同正. 墓在松峴】子 璡 【嘉善大夫 工曹典書. 墓在松峴】子 公彦 【中顯大夫 典農寺正. 辛禑七年, 從全羅都 巡問使李乙珍, 克倭有功. 墓在羅州西長興洞. 配高興柳氏, 興威衛保勝郞將 蕃之女.】子 諿 【式目都監錄事. 墓在務安南住龍渡板門峙.】子 自康 【通訓大夫 行 務安縣監. 墓在住龍渡. 配永川崔氏有中之女.】子 繼祖 【將仕郞. 成化甲午五月二十五日卒. 墓在長興洞. 配淳昌趙氏 全羅監牧官餘慶之女.】子 逸孫 【字安之, 宣務郞行典涓司直長, 贈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兼 經筵參贊官. 三月初八日卒. 墓在長興洞. 配贈淑夫人, 昌原孔氏, 生員壯元贍勝之女】子 晊 【字伯升, 弘治戊申生. 嘉靖戊子武科, 通訓大夫 行司憲府監察 贈嘉善大夫 戶曹參判 兼 同知義禁府事 五衛都摠官. 嘉靖丙辰十一月初九日卒. 享年六十九. 墓在長興洞. 配 贈貞夫人, 康津崔氏, 弘文館副應敎, 贈禮曺參判, 號錦南溥之女.】子 士忱 【字仲孚, 號錦湖, 通訓大夫行尼山縣監 贈崇政大夫 議政府坐贊成 兼 判義禁府事. 事蹟詳見事實記及墓文. 前配贈貞敬夫人坡平尹氏, 有三子. 後配 贈貞敬夫人光州鄭氏, 有三子二女.子 德明 【進士, 義禁府都事. 嘗被己丑禍謫鏡城, 當壬辰亂, 與北評事鄭文孚等, 謨起義兵, 捕斬邊民, 煽亂應倭者, 事載北關誌.】子 以素 【有四子褕 襑 袿 袨.】子 因素 【有二子袺, 䙐庶子一裌.】子 成素 【武科, 宣傳官. 有庶子三表, 衤方 , 袁.】子 就素 【無后.】子 德峻 【師事鄭困齋介淸, 以行誼被薦. 官至報恩縣監. 贈戶曹參判. 天性孝友, 奉親以誠, 事繼母如事所生, 鄕人訓子孫事繼母者, 必以爲法云.】女 金磼 【主簿. 壬辰倭亂, 隱避林藪, 忽因夜驚, 夫妻相失, 自縊死, 以烈女旌閣.】 子 纘素 【宣務郞. 有一子裌, 宣敎郞.】子 繼素 【武科 通政价川郡守, 有繼子, 袗, 生員, 都事.】子 緯素 【生員文科, 同知中樞. 贈議政府左參贊, 有三子, 袡 生員正郞, 襻 生員府使, 袗出繼.】女 【崔光憲, 宣敎郞.】子 緻素 【有四子衤基 通德郞衤兼 宣敎郞, 袀折衝副護軍, 衤瑩通德郞.】子 經素 【有三子, 襀通德郞, 襢䙋 文科掌令.】庶子 緘素子 德潤 【進士, 司憲府監察. 師事困齋, 以行誼著名.】子 繪素 【武科, 通政伊川府使, 有二子. 衤成武科, 宣傳, 官襜出繼.】子 由素 【宣敎郞. 有一子, 衵.】子 宜素 【進士 文科, 禮曺正郞. 有繼子, 襜通德郞.】女 尹沆 【忠義衛. 丁酉倭亂, 與弟德顯妻鄭氏, 同結裳帶, 投死住龍海口, 以烈女旌閭.】子 佑湯子 德賢 【困齋文人. 天性孝友, 居憂之日, 啜粥疏飮. 丁酉倭亂, 負母竄伏, 賊徒猝至, 見其抱母, 悲號惻然棄去, 人謂孝感. 仁祖朝, 事聞, 贈司饔院參奉. 妻河東鄭氏, 亦投死住龍海口, 以烈女旌閭.】子 益素 【宣敎郞. 有二子, 祐 祜, 進士以孝被太學薦, 官參奉.】女 鄭澳子 後素 【有四子衤直 襸 袥 袣.】子 得素 【性至孝. 十九歲丁外憂, 廬墓三年, 泣盡繼血柴毁自盡. 仁祖朝, 事聞, 旌閭.】子 尙素 【宣敎郞. 有三子, 裕武科司果, 襳衤完. 庶子一▣.】子 純素 【有一子䘻, 庶子二▣複.】子 重素 【有二子, 䙇 武科 衤式.】子 德慎 【武科, 通政靈岩郡守. 丙申遭艱後, 起復爲茂長縣監. 戊戌露梁之役, 以統制使 李舜臣前鋒將捷倭有功, 時年三十一. 錄宣武從熏一等.】女 閔喜一女 柳遷 【忠義衛.】女 魏弘宙 【贈參議.】子 山寶 【武科縣令.】子 廷寶 【文科縣監.】子 國寶子 德憲 【武科 折衝 京圻水使. 丙子春, 奉使入瀋中, 虜稱帝需賀, 而脅使參賀班. 公抗節不屈, 人比之蘇武. 椵島都督, 以其事奏聞皇朝, 肅宗朝, 褒贈兵曹參判.】女 金用健女 李儁臣 【進士】子 守素 【宣務郞. 妻彦陽金氏旌表忠臣, 安州牧使 贈左贊成 壯武公 浚之女. 丁卯狄亂, 安州城陷, 壯務公自焚死, 金氏亦自剄死, 以烈女旌閭. 有一子褘生員.】子 貞素 【有一子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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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崖集序 不侫少也嘗讀我五代祖參判公文集中送姊兄洪君之京序知所謂洪君爲南崖先生而欽其爲親爲國竗庶遠役者久矣近得先生遺集而讀之益不自已曠世之慕未嘗不掩卷歔欷曰以若學問之博孝思之至經綸之富遭値晟世而遇知於賢君誠千古奇絶之事也奈之何遽爾龍飛鼎湖天又局賢者之年使上不能著糜賢之效下不得試壽民之丹歟可霣志士之淚於千古也先生侍親癠而千里間關返于鄕廬十載克盡刀圭之效使親宿祟漸可孝思具於甲辰日錄天顔咫尺竗歲獻賦恩批三上內賜書硯而寵異之學文著於御考試券登才行薦叙職寢郞進足食之策經綸可於農疏得矣先生其可曰行於家國隨遇而修其當然之則也盖先生襲家學之正又得師三山金文敬公慥慥不舍以充其天賦之美富有日新而油然著於日用之間發爲文辭燁燁其采飄飄其氣義嚴仁熟可爲法於後世豈候蟲月露組奇鉤巧衒人耳目者之比哉先生諸孫皆師我先子蘆沙先生曾孫石川公師我叔祖松翁丙申從師門擧義可謂能世其家矣文將付印而公諸世主鬯玄孫復憙問序於余葮莩後生淵源世好其敢辭諸以道不能行於當世爲先生惜者爲家學之不替反爲先生賀又以斯集之能行于世爲後生之幸敢穢卷端以露景仰之私云爾歲在甲辰重陽節後學幸州奇老章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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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訣文 崔濟泰 濟泰。痛哭再拜。覆上于松下兄靈筵。去年至月聞兄逝。臘月。見兄八月二十二日發書。兄之在世顔面。完然在紙上。感泣拭淚而讀之。書略曰。每欲得凌風之翰。一蹴飛到。而不可得也。嗚呼。尙今未得耶。將有飛到之日也耶。又曰只被朋友之援引。猥參詠亭會輔之列。嗚呼。間又一周年矣。詠亭之更會。能幾度也耶。與日新翁。更幾度講磨也耶。詠歸亭。暮春之日。新秋之月。遙想幾人。淚沾臆也耶。又曰欲勝已者親。無如改過之不吝。則只自存意於寡過之地。嗚呼。此雖兄自謙之語。而其求道之實心。推可知也。於泰之無似者。如是許心。則兄之平日。遜友求益之意。亦推可知也。嗚呼。濟泰於知兄。一則曰幸。一則曰不幸也。若無去年之行。則必有倂世不得見之歎。若知有今日事。則不如初不相知。而無此摧心之痛矣。嗚呼。今世何世。何賢人君子。晨星以沒。此道終不可復明於世也耶。嗚乎痛哉。追思兄此書。便是告訣。告訣之書。不能無答。兄其知耶。不知耶。路遠世亂。寢門一哭。恐難如誠。區區數字。咽不成腔。嗚乎痛哉伏惟鑑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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