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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2) 錦湖遺事序(2) 우리 선조이신 금호공의 유사 한 권은 대개 말씀과 행실이 없어질까 염려하여 편차한 것이다. 우리 선조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효성을 타고나 일찍이 모친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에 피를 내어 생명을 살리셨다. 이 때문에 중종과 선조 두 조정에서 세 번의 표창이 있었으니 정려를 표시한 일, 발탁하여 등용한 일, 죄를 용서하여 사면한 일이 그것이다. 또 어진 스승과 벗들과 종유하면서 학문의 단서가 될 의론을 들으니, 송서교[宋贊]가 칭찬하여 “학문과 행실을 갖추었다.”라고 한 것과, 김학봉[金誠一]이 이른 ”학문으로 업을 삼았다.”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끼친 가르침이 자손에게 남아 충(忠), 효(孝), 열(烈)이 한 집 안에서 모두 나왔으니, 어찌 덕을 두텁게 하고 선을 쌓은 군자들이 아니겠는가. 아! 우뚝 솟은 정려문이 옛 마을 길가에 지금도 있어 사대부로서 그 앞을 지나는 자들은 모두 두 손을 모으고 예를 표하니 세상의 부자(父子)들은 반드시 모두 이를 보고 감동하여 권면한다.다만 남은 전적들은 세대가 멀어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실로 훗날의 사람들에게 끝없는 유감으로, 내가 일찍이 들었던 《대기(載記)》에 “선조에게 훌륭한 점이 있어 알고도 전하지 않는다면 어질지 못한 것이다.” $주 선조에게 …… 것이다 : 《예기》 〈제통(祭統)〉에 보인다.라고 한 것과 같다. 나는 이 점을 두려워하여 이에 뜻을 다하여 수집한 뒤에 〈세계〉를 앞머리에 두고, 각 조목을 〈저술〉, 〈유묵〉, 〈포장〉, 〈사실기〉, 묘도문 순서로 하였다. 또 행적 가운데 선인들의 글에 끼어 나온 것, 여러분들과 수창한 시, 종유했던 스승과 벗들에 대한 기록을 끝에 부록하여 하나의 책자를 이루었다. 우리 선조의 언행 전말을 여기에서 증명할 수 있어 장차 판에 새겨 불후하기를 도모하니 감히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손들로 하여금 집에 간직하여 수시로 열람하여 갱장(羹墻)의 사모 $주 갱장(羹墻)의 사모 : 죽은 사람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요(堯) 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 임금이 3년 동안이나 그를 앙모(仰慕)하여, 앉아서는 요 임금을 담장〔墻〕에서 보고, 밥을 먹을 때면 요 임금을 국〔羹〕에서 보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63 李固列傳》에 부치고자 하는 것이다.숭정(崇禎) 후(後) 두 번째 을사년(1725) 겨울 11월 하순에 현손 나두동(羅斗冬)이 삼가 쓰다. 吾先祖錦湖公遺事一通, 蓋慮言行之泯沒, 而爲之纂次者也. 吾先祖自在童幼時, 誠孝出天, 嘗値母夫人病篤, 血指蘇命, 此所以中宣兩朝, 有三褒之旨, 而旌表之, 擢用之, 寬宥之也. 且從賢師友, 得聞緖論, 宋西郊所稱學行俱備, 金鶴峯所謂學問爲業者, 有以也. 若其遺敎在子孫, 至使忠孝烈竝生於一家, 豈非厚德積善之君子人耶. 噫! 巍然旌棹之門, 見在故里路傍, 而士大夫過其前者, 咸拱式之, 則世之爲父子者, 必皆觀感激勵于斯, 而第其遺籍, 世遠無存, 實爲後人無窮之憾也. 嘗聞戴記曰 : “先祖有善, 知而不傳, 不仁也.” 斗冬有懼, 於是, 乃極意蒐集, 首錄世系, 此敍各條曰 著述也 遺墨也 襃獎也 事實記也 墓道文也. 又以行蹟之雜出於先輩文字者及諸公之所酬唱詩章, 及所從遊師友, 附諸末端, 仍成一冊子. 吾先祖言行顚末, 於此可徵, 將鋟梓圖不朽, 非敢擬示諸人也, 只欲使子孫, 家藏而時閱之, 以寓羹牆之慕云爾. 崇禎後再乙巳冬十一月下浣, 玄孫 斗冬,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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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애집(南崖集) 2권1책 南崖集 南崖集 고서-집부-별집류 문집 표점 南崖集 洪翼鎭 석판본 남애집(南崖集) 1 半郭 有界 11行24字 註雙行 註雙行 미상 미상 조선 후기의 학자 홍익진(1766~1801)의 시문집. 현손 홍복희(洪復憙)와 홍석희(洪錫憙) 등이 편집하여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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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題正祖先皇帝御考南崖洪先生試券後 右正祖宣皇帝庚戌御考南崖洪先生應製試券也竊伏惟正廟聰明睿智廻出百王敷文至治軼漢唐而侔殷周其所以致賢養士之道莫不周到大小會試之外又設賓興之試以敦興起斯文之術巖穴之士抱經綸而望治平者莫不延頸而子來惟時先生以白面寒儒竗年應製獻賦至蒙恩批煌煌合三上之選人之榮之也比登瀛焉于此一券後之人尙可以知上洽躬行心得之餘化下慥切磋琢磨之實工也粤稽古昔韓昭侯藏弊袴以待有功者齊景公賜二桃能 致勇士之憤殞夫君上代天造命者也故有愛一嚬一笑之語以正廟之賢豈不知此道而旣熀雲漢天章於試券繼以寵賜書冊硯墨于無尺寸之功之先生恩數之異豈尋常酬勩之比哉盖睿覽文辭之宏博筆劃之勁麗知有可爲之才學而作興之以待道日益盛德日益立而爲需時之用可知也嗚呼以先生之才學使擧蓮桂榜則拾紅白可如芥易而以是年春歸湖南侍其大人石崖先生癠五六年以餘力深究性理之學及石翁捐館後三年始登才行薦 除寢郞上疏陳農政正廟嘉納優批將措施其策明年正廟賓天又明年公且歿焉道之能行果有數存焉者耶先生後孫敬藏試券者百七十餘年矣今將刊行先生遺集模刻而弁于卷首以爲對揚聖朝之恩寵因於紙面差有異同可爲惺恐者也若其立賢無方之聖德則可見於此矣其可欽敬哉甲辰小春節遺民幸州奇老章稽首拜手敬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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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李氏)【화백(和伯)】의 개장(改葬)에 대한 만사 輓李【和伯】改葬 어진 이가 어찌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하며 선한 이가 무슨 잘못인가하늘 또한 말이 없고 밝은 해만 높이 떠 있네이름난 조상의 의로운 명성 천지를 부지하였는데잔약한 자손의 유업(遺業)은 쑥대 우거진 집에 막혀 있네묵은 풀을 거듭 헤쳐 쌍혈(雙穴)을 열고다시 새로운 무덤을 향해 공뢰(共牢)로 제사 지내네296)한 명의 자식만이 상복을 입고 있으니울기를 마치고서 피눈물을 닦으며 푸른 하늘 향해 부르짖네 仁何不祐善何咎天亦無言白日高名祖義聲扶宇宙孱孫遺業滯蓬蒿重披宿草開雙穴更向新阡祭共牢惟有一孤蒙緦絰泣終抆血徹蒼號 공뢰(共牢)로 제사 지내네 부부가 함께 같은 희생을 먹는 것이다. 이화백(李和伯) 부부에게 함께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듯하다. 《예기》 〈혼의(昏義)〉에, "신부가 오면 신랑은 신부에게 읍하고 안으로 들어가 같은 적틀에 차려서 먹고 같은 술잔을 나누어 마시고 입가심을 한다. 이는 몸을 합하고 존비를 같이함으로써 친하게 하려는 까닭이다.[婦至 壻揖婦以入 共牢而食 合巹而酳 所以合體同尊卑以親之]"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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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永平) 채후(蔡侯)【충립(忠立)】에 대한 만사297) 挽永平蔡侯【忠立】 잔약한 고을의 민가 의지해 살 곳을 잃었으니두모(杜母)298)의 어진 수레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네299)정사엔 형벌을 가볍게 하였으니300) 모두 은혜를 우러르고301)옷은 관을 채울 것도 없으니 비로소 청렴함을 알겠네호산(湖山)의 역로(驛路) 거리가 천리인데적막한 혼여(魂輿)302) 깃발 하나로 표시하네저 제주(齊州)의 잔 위의 물을 따라303)만가(輓歌)를 세 번 부르며 공의 떠나가는 길 전송하네【채후를 관에 염(斂)할 때 베옷과 짧은 바지 이외에 관아에 보관해 둔 것이 없었다고 한다. 때문에 시에서 언급하였다.】 殘鄕編戶失憑生杜母仁車遽棄城政用鞭皮方仰惠衣無充棺始知淸湖山驛路修千里寂寞魂輿表一旌酌彼齊州盃上水紼謳三唱送公行【蔡侯斂棺時。布被短袴之外。衙無所藏云。故詩中及之。】 영평(永平)……만사 '채후(蔡侯)'는 채충립(蔡忠立)을 가리킨다. 사재감 주부(司宰監主簿), 황간 현감(黃澗縣監), 남평 현감(南平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이 시와 관련하여 《남포집》 〈남교일기(南郊日記)‧갑진(甲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2일 갑자.……고을 아전이, 내일이 수령 채충립(蔡忠立)의 발인이라고 고하고 돌아갔기에 찾아가 보았다. 상주가 만사를 청하기에 한 편의 율시를 지어 주었다. 채후는 성품이 질박하고 너그럽고 검소하였으나 정사에는 재주가 없었다. 때문에 백성들이 비록 그의 사납지 않은 면을 좋아하였으나 융통성이 없음을 단점으로 여겼다. 상을 당하였을 때 고을 사람 윤선갑(尹先甲)과 홍종화(洪鍾華)가 그 상을 맡아 다스렸는데, 베옷과 짧은 바지 이외에는 관아에 보관해 둔 것이 없어 관에 염(斂)을 할 수 없었다. 이에 고을 사람들이 함께 부의하여 옷과 바지를 사서 염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내가 만사의 3, 4구에서 '정사엔 형벌을 가볍게 하였으니 모두 은혜를 우러르고, 옷은 관을 채울 것도 없으니 비로소 청렴함을 알겠네'라 하였다. 또 7, 8구에서 '저 제주(齊州)의 잔 위의 물을 따라, 만가(輓歌)를 세 번 부르며 공이 떠나가는 길 전송하네'라 하였으니, 이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初二日甲子……邑吏告明日主倅蔡侯忠立旅櫬發引而歸 往見之 喪主請挽辭 爲賦一篇律語 盖蔡侯質朴寬儉 而無才於政事 故民雖愛其不猛而短其無變通 及其喪也 邑人尹先甲洪鍾華 典治其喪 布被短袴之外 衙無所藏 無以斂棺 鄕人共賻 買被與袴而斂之云 故余挽辭三四云政用鞭皮方仰惠 衣無充棺始知淸 其七八云酌彼齊州盃上水 紼謳三唱送公行云 盖記實矣]" 두모(杜母) 선정을 베푼 지방관을 뜻하는 말로, 곧 채충립을 가리킨다. 후한(後漢) 사람 두시(杜詩)가 남양 태수(南陽太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자, 남양 사람들이 "앞에는 아버지 같은 소신신이 있고 뒤에는 어머니 같은 두시가 있다네.[前有召父 後有杜母]"라 칭송한 데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31 杜詩列傳》 세상을 떠나셨네 원문은 '기성(棄城)'이다. 수령 채충립의 사망을 높여 표현한 것이다. 형벌을 가볍게 하였으니 원문의 '편피(鞭皮)'는 곧 숙피편(熟皮鞭)을 말한다. 제혁한 가죽으로 만든 부드러운 채찍이다. 북제(北齊) 때 최백겸(崔伯謙)이 북지 태수(北地太守)가 되어 채찍을 숙피편으로 고쳐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이는 차마 피나는 것을 볼 수 없어 그 부끄러움만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北齊書 卷46》 《北史 卷32》 우러르고 원문은 판독불가인데, 《남포집》 〈남교일기(南郊日記)‧갑진(甲辰)〉의 내용에 의거하여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혼여(魂輿) 장사(葬事) 때 죽은 이의 옷을 실은 수레를 말한다. 저……따라 이는 당(唐)나라 이하(李賀)의 시 〈몽천(夢天)〉에 "멀리 제주를 바라보니 아홉 점의 연기와 같고, 큰 바닷물도 한 잔 물을 쏟아부은 듯하네.[遙望齊州九點煙 一泓海水杯中瀉]"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제주(齊州)'는 중주(中州) 즉 중국으로, '제주가 아홉 점의 연기와 같다'는 것은 중국의 구주(九州)도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아홉 점의 연기처럼 보임을 말한 것이다. 채충립이 세상을 떠나 그의 넋이 하늘로 올라간 상태이므로 지상에서 잔을 올리는 모습을 이와 같이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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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주잠 戒酒箴 지가 안정되면 기도 편안하고기가 혼탁하면 지도 정체된다성이 고요하면 심도 바르고심이 어두우면 성도 가려진다기는 지의 군졸이고심은 성의 성곽이다문란한 군졸은 성곽을 허는데술이 가장 심하다지를 바꾸고 성을 멸하며몸을 죽이고 나라를 엎는다이에 소자여감히 힘쓰지 않겠는가맛있는 술을 싫어하고 선을 좋아한숭백41)을 본받으라 志定氣安。 氣渾志滯。 性靜心正。 心昏性蔽。 氣爲志卒。 心作性郭。 亂卒毁郭。 惟酒斯極。 移志滅性。 喪身覆國。 惟玆小子。 其敢不勖。 惡旨好善。 崇伯是則。 숭백(崇伯) 숭백자(崇伯子)인 우(禹) 임금을 말한다. 본래 우 임금의 아버지 곤(鯀)이 숭(崇)에 봉작되었으므로 숭백(崇伯)이었다.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2〉에 "옛날에 제녀가 의적으로 하여금 술을 만들게 하였는데 맛이 있었다. 이를 우(禹)에게 올렸는데, 우가 마셔 보니 맛이 있었다. 이에 마침내 의적을 멀리하고 맛있는 술을 끊으면서 '후세에 반드시 술 때문에 자기 나라를 망하게 할 자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昔者帝女令儀狄作酒而美, 進之禹, 禹飮而甘之, 遂疏儀狄, 絶旨酒曰, 後世必有以酒亡其國者.]"라고 하였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맛있는 술을 싫어함은 숭백의 아들(崇伯子 우 임금)이 부모를 돌보고 봉양한 것이다.[惡旨酒崇伯子之顧養]"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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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색잠 戒色箴 나의 성(性)은 장수이고나의 몸은 기(氣)로 차 있는데42)형체를 품부 받고 나면형체는 사욕을 낸다여러 사욕 가운데제어하기 어려운 게 색이다눈이 가려지면그 마음도 옮겨가서나의 정기를 해치고나의 천성을 뺏는다부모가 신체를 남겨주고천지가 명을 부여했는데요사한 색에 몸을 던지고전혀 경계할 줄 모른다감히 맹렬이 반성하여확연히 주경43)하지 않으랴이 잠언을 저버린다면짐승과 같을 것이다 我性其帥。 我體其塞。 旣稟是形。 形能生慾。 衆慾之中。 難制惟色。 蔽之于目。 其中則遷。 戕我至精。 奪我眞天。 父母遺軆。 天地賦命。 投之妖巧。 渾不知警。 敢不猛省。 廓然主敬。 若負此箴。 橫首同行。 기(氣)로 차 있는데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지(志)는 기(氣)의 장수이고 기는 몸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夫志氣之帥也, 氣體之充也.]" 하였다. 주경(主敬) 주일무적(主一無適)하여 정신을 전일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송나라의 유학자인 정자(程子)나 주자(朱子) 등이 주창한 수양법(修養法)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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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절구 五言絶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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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8살에 짓다. 初月 八歲作 누가 곤륜산의 옥을 깎아다듬어 직녀의 빗 만들었나견우와 한번 이별한 뒤로슬퍼하여 푸른 하늘로 던졌네 誰斲崑山玉磨成織女梳牽牛離別後愁擲碧空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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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의 그림 병풍에 쓰다 4수 題北靑畵屛 四首 날개 말리려 이끼 낀 낚시터에 앉아깃을 털고서 난초 물가 곁에 있네날 저물자 갈대 바람 서늘한데쌍쌍이 날아 어느 곳에 묵으려나-이상은 기러기이다.-물오리는 깊은 물에서 목욕하고참새는 높은 가지에 깃들어 있네몸을 의탁한 곳은 서로 달라도양쪽 다 알맞은 거처 얻었어라-이상은 물오리와 참새이다.-날쌘 매 하늘에서 내려오니놀란 새 가을 강물에 떨어지네붉은 비단 같은 날개 급히 돌리다가푸른 연밥을 잘못 건드렸네-이상은 날쌘 매와 놀란 오리이다.-뭇새가 높은 언덕에 모여들어서로 자신이 봉황이라 속이네배회하다가 날이 저물려 하니멀리 기산의 남쪽을 생각하네174)-이상은 봉황과 참새이다.- 曝趐坐苔磯刷毛依蘭渚日暮蘆風凉雙飛宿何處右鴈鳧鷖浴深水鳥雀捿高枝托身雖異處得地兩相宜右鳧鷖鳥雀快鶻下雲霄驚禽落秋水急迴紅錦翎誤觸靑蓮子右快鶻擊鳧衆鳥集高岡相將欺鳳凰徘徊日欲暮遠憶岐山陽右鳳凰鳥雀 기산의 남쪽을 생각하네 난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길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고공단보(古公亶父)가 빈(邠)에 있을 때에 적인(狄人)이 쳐들어오자 빈 땅의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떠나 기산(歧山) 아래로 도읍을 옮겼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孟子 梁惠王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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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로가 사냥하는 그림 金虜獵圖 금 태조의 호화로움도 저 한때인데오랜 세월 그림에서 웅장한 자태 보이네서생도 오랑캐 짐어 삼킬 뜻 있어오산에 말을 세운 너의 시195)에 화운하네 金祖豪華彼一時千秋圖上見雄姿書生亦有呑胡志和汝吳山立馬詩 오산에……시 금나라 폐제(廢帝) 완안양(完顔亮)의 〈오산(吳山)〉 시에 "백만 군대 서호 위로 옮기어 오산 제일 높은 봉우리에 말을 세우리.[移兵百萬西湖上, 立馬吳山第一峯]"라고 하여, 중원(中原)을 병탄(倂呑)하려는 뜻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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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를 그린 그림 2수 西施圖【二首】 사람들이 망국의 조짐 서시에게 있다 말했는데오직 임금은 술에 취해 알지 못했다네196)고소대에서 놀던 때는 이미 땔나무 위에서 지내던 때197) 아닌데오자서는 무슨 일로 힘써 간쟁하였나서시는 본래 월나라 미인이니와서 부차의 짝 된 건 오나라 깨뜨리기 위함이었지누가 알랴, 오호에 조각배 떠 감에공 이룬 것 도주공 뿐만이 아님을198) 人言亡國在西施惟有君王醉不知臺上已非薪上日伍胥何事強爭爲西施本自越溪姝來伴夫差爲破吳誰識扁舟五湖上功成不獨一陶朱 사람들이……못했다네 오나라 왕 부차(夫差)가 월왕 구천(句踐)과 싸워 승리한 뒤, 월나라에서 바친 미인 서시(西施)에게 빠져 고소대(姑蘇臺)를 세우고 서시와 날마다 노닐며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이에 오자서가 간절히 간했는데도 듣지 않자, 오자서가 "이제 곧 오나라가 망하여 고소대 아래에서 사슴이 노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臣今見麋鹿游姑蘇之臺也]"라고 경고했는데,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나라는 월나라에게 멸망했다. 《史記 淮南衡山列傳》 땔나무……날 오나라의 왕 부차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월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밤낮으로 땔나무 위에 누워 자며, 궁을 출입하는 신하들에게 "부차야 너는 월나라 사람들이 네 아버지를 죽인 일을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하였다. 《十八史略》 오호에……아님을 도주공(陶朱公) 춘추 시대 월나라 사람인 범려(范蠡)의 별칭, 오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범려 혼자서 세운 공이 아니라는 말이다. 범려는 구천을 섬겨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나라로 돌아오던 길에 오호(五湖)에 이르러 월왕 구천을 작별하고 일엽편주를 타고 떠나 종적을 감추었다. 《史記 貨殖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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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1595, 선조28) 추석에 온성에서 돌아와 거산역에 이르러 이덕재를 만나다 乙未秋夕 還自穩城 到居山驛 逢李德哉 오동나무 잎 막 흩날려 가을과 여름이 나뉘니고향 소식 어떻하면 들을 수 있을거나어렴풋한 꿈속에 지당에서 청초를 읖조리고91)돌아가고픈 마음에 변방에서 흰 구름 바라보노라92)주머니에 동전 한 닢 없이 오래 객지살이 하였고93)허리에 칼을 비껴차고 오랫동안 종군했네하늘에 비바람 가득한 변방 길에서술자리에서 얼마나 다행히도 그대를 만났는가 梧葉初飛秋夏分故園消息若爲聞池塘殘夢吟靑草嶺海歸心望白雲囊乏一錢長作客腰橫三尺舊從軍滿天風雨關山路樽酒如何幸見君 어렴풋한……읊조리고 남조 시대 송나라 사영운(謝靈運)이 시상(詩想)에 골몰하다가 꿈속에 족제(族弟)인 사혜련(謝惠蓮)을 보고 나서 "못 위에 푸른 풀이 났다.[池塘生靑草.]"라는 시구를 지었다. 《南史 謝惠連列傳》 여기서는 고향의 형제 또는 친족을 그리워한다는 의미이다. 흰 구름 바라보노라 고향의 어버이를 그리워한다는 의미이다. 당나라 적인걸(狄仁傑)이 병주 법조(幷州法曹)로 부임하였을 때 그의 부모가 남쪽 하양(河陽) 땅에 있었는데, 적인걸이 병주의 태항산(太行山)에 올라가 남쪽 하늘로 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나의 어버이가 저 구름 아래 계신다."라고 하고, 한참 동안 흐느꼈다는 고사가 있다. 《新唐書 狄仁傑列傳》 주머니에……객지살이 진(晉)나라 완부(阮孚)의 고사를 차용하게 곤궁하게 생활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완부가 검은 주머니[皂囊] 하나를 차고 회계(會稽) 지방을 유람할 때, 한 나그네가 완부에게 주머니 속에 무엇이 들었느냐고 묻자, 완부가 "다만 일전으로 주머니를 지키게 하노니, 주머니가 텅 비면 궁핍할까 염려해서이다.[但有一錢守囊, 囊空羞澁.]"라고 하였다. 《山堂肆考 卷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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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8월에 영흥에 있으면서 앞 시에 차운하여 북청으로 가는 이덕재를 보내다 是歲八月 在永興 次前韻 送德哉之北靑 한나라 초나라의 홍구처럼 양분될 형세요94)장군이 와룡임은 세상이 알지 못하네외로운 성에서 저물녘에 천랑성95)을 보고먼 변방에서 가을에 진운96)을 바라보네노를 두드리며 맹세하는 마음은 조적과 같으니97)밧줄을 청할 길 없으나 종군98)과 같은 나이라99)어여쁘도다, 뉘라서 그대와 교분 맺었는가허리에 찬 칼 말고는 단지 그대만 있구나 漢楚鴻溝勢兩分將軍龍臥世無聞孤城落日看天狼絶塞高秋望陣雲擊楫誓心同祖逖請纓無路等從軍可憐末契誰相托除却腰刀只有君 한나라……형세요 이덕재와 헤어지는 상황을 홍구(鴻溝)의 형세에 비유한 것이다. 홍구는 중국 하남성(河南省) 형양현(滎陽縣)에 있는 운하로, 한(漢)나라와 초(楚)나라가 패권을 다툴 때 이곳을 서로의 경계로 삼았다. 《史記 高祖本紀》 천랑성 침략을 담당하는 별 이름으로, 적군이나 오랑캐의 침략을 상징힌다. 진운 층층으로 두껍게 쌓여서 마치 전진(戰陣)처럼 보이는 구름으로, 옛사람들은 이것을 전쟁의 조짐으로 여겼다. 노를……같으니 적을 물리치고 국토를 회복하겠다는 다짐을 진(晉)나라 조적(祖逖)에 빗댄 것이다. 조적이 군대를 통솔하여 북벌할 때, 장강(長江) 중류에서 노를 두드리며 "중원을 맑게 하지 못하고 다시 건너면 장강과 같아지리.[不能淸中原而復濟者, 齊如大江.]"라고 맹세하였다. 《晉書 祖逖列傳》 종군 대본에는 '從軍'으로 되어 있는데, 문맥에 의거하여 '從'을 '終'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밧줄……나이라 한나라 종군(終軍)처럼 적을 물리치고 군공을 세우겠다는 의미이다. 종군이 한 무제(漢武帝)에게 긴 밧줄[長纓] 하나만 주면 남월(南越)의 왕을 묶어와서 바치겠다고 말한 고사가 있다. 《漢書 終軍傳》 훗날 당나라 왕발(王勃)이 〈등왕각서(滕王閣序)〉에서 이 고사를 인용하여 "나는 석 자 띠를 띠는 낮은 관원이고 한 서생일 뿐이다. 밧줄을 청할 길은 없지만, 나이는 종군과 같은 약관의 나이이다.〔勃三尺微命, 一介書生. 無路請纓, 等終軍之弱冠.]"라고 하였다. 이때 정문부의 나이가 23세였으므로, 〈등왕각서〉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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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변에서 눈을 읊다 6수 安邊詠雪【六首】 땅을 둘러싼 두터운 구름 얼어서 걷히지 않고말발굽 눈을 뚫고 가는 소리 우레처럼 진동한다유인의 찻잔엔 얼음이 –원문 1자 결락100)-공자의 화로엔 불이 재로 변했구나눈 덮인 소나무 푸른 빛 더하고기운 연이어진 –원문 2자 결락- 요란함을 돕네음만 있는지라 그야말로 삼동 추위이니단지 봄이 북두자루 따라 돌아오길 기다리노라하룻밤 사이 뜰에 만곡의 소금 쌓였으니101)촌거 살림살이 이미 청렴에 어긋나는구나행인은 길을 잃고 새벽에 말 채찍 휘두르고시인은 산을 보며 저물녘에 발을 걷네옥 같은 눈 구슬 같은 먼지가 흰빛을 다투고떨어지는 꽃 흩날리는 버들개지 매우 가늘어라시 읊조리는 혼 맹렬한 추위에 몹시 제압되니새로운 시 읊고자 해도 입이 재갈을 물린 듯하여라눈 파묻힌 변방 산에 뾰족한 봉우리 사라질 듯하니추운 기상이 어쩌면 그리도 매서운가옥루엔 소름 돋도록 추위가 가득하고은해는 어른거려 시야가 어지럽네102)산봉우리 모두 희게 된 것 애석하나송백이 홀로 푸른 것 매우 어여뻐라나라에서 바닷물 끓인 것 매우 늦었다 탄식했는데하늘이 우리 백성을 위해 이미 소금을 뿌려주었구나하늘과 땅 맑고 맑아 티끌 하나 없고육지와 물 희고 희어 옥구슬 흩어지누나땅에 들어간 누리알 어찌 찾아낼 것 있으랴구름 닿도록 자라날 보리 북돋울 필요 없네103)잠깐 속이니 문 앞 버들 여전히 눈 찡그리고몰래 질투하니 뜰안 매화 아직 뺨 펴지 않았네104)멀리서 생각노니, 호산은 발목이 잠길 정도로 깊숙하니군대는 그 언제나 괴수를 섬멸했다 알려올거나납월에 흩날리는 눈꽃 특이한 상서이니바람에 나부끼는 수 많은 눈송이 행랑에 들어오네너의 일편단심과 교결함 다투니나의 양 귀밑머리 더 희끗해졌어라월나라 개 짖는 소리 무리를 이루니105) 참으로 가소롭고영 땅의 노래에 화답하기 어려운들106) 또한 무슨 상관이랴산촌을 비추는 밤 중의 밝은 빛 덕분에큰길에 승냥이 이리 버티고 있을까107) 근심하지 않노라내년이 백곡이 풍년들지 알고자 한다면겨울에 내린 눈이 해충을 누르는지 살펴보라아름다운 벼 상서를 드러내자 한 왕조가 중흥했고108)가뭄의 재앙 제거되자 성탕을 칭송했지109)남만 바다의 운무 활짝 걷힌 것을 보니기자 나라의 온 백성 뛸 듯이 끼뻐하네예로부터 운수가 막히면 다시 트이는 법이니하늘의 뜻 사람의 계책 모두 선함을 얻었구나 匝地頑雲凍不開馬蹄衝雪動乾雷幽人茶椀氷【缺】合公子薰爐火易灰景壓霜松添鬱翠氣連【二字缺】助喧豗孤陰正耐三冬冷直待春隨斗柄回一夜庭堆萬斛塩村居生計已傷廉行人迷路揮晨策騷客看山捲暮簾玉雪瓊塵爭皜皜落花飛絮好纖纖吟魂苦被寒威制欲唱新詞口似鉗雪壓關山欲沒尖凌凌氣像一何嚴玉樓起粟饒寒凜銀海生花眩視瞻可惜峰巒皆白首最憐松栢獨蒼髥公家煮海嗟何晩天爲吾民已播塩乾坤瑩瑩絶塵埃川陸皚皚散珮瑰入地遺蝗何用捕連雲宿麥不煩培乍欺門柳猶嚬眼暗妬庭梅未破腮遙想胡山深沒脛元戎何日報殲魁臘月飛花是異祥風飄萬點入回廂與子片心爭皎潔添吾雙鬢作蒼浪越吠成羣眞可笑郢吟難和亦何傷賴得山村照夜白不愁當道有豺狼要識明年百穀穰試看冬雪壓螟蝗嘉禾呈瑞興劉漢旱魃除灾頌聖湯蠻海雲烟瞻霽豁箕邦民物喜翶翔從來否運還成泰天意人謀兩得臧 원문 1자 결락 원문은 '【缺】合'이다. '合'은 원문의 문제로 번역하지 않았다. 만곡의 소금 쌓였으니 눈이 많이 내린 것을 가득 쌓인 소금에 비유한 것이다. 당나라 이백의 시에 "오나라 소금이 꽃처럼 쌓였는데 백설보다도 더 깨끗하다.[吳鹽如花皎白雪.]"라고 하여, 눈을 소금에 비겼다. 《李太白集 卷6 梁園吟》 옥루는……어지럽네 옥루(玉樓)는 어깨를 가리키고 은해(銀海)는 눈을 가리키는 말로, 너무 추워서 어깨에 소름이 돋고 눈이 어른거린다는 뜻이다. 송나라 소식(蘇軾)의 〈눈 내린 뒤 북대의 벽에 쓰다[雪後, 書北臺壁]〉 시에 "얼음이 옥루에 얼어붙어 추위로 소름이 일고, 빛이 은해를 흔들어 어지럽게 어른거리네.[凍合玉樓寒起粟, 光搖銀海眩生花.]"라고 하였다. 땅에……없네 눈이 많이 와서 보리농사가 잘 될 것이라는 뜻이다. 소식의 〈눈 내린 뒤 북대의 벽에 쓰다[雪後, 書北臺壁]〉 시에 "누리 알이 땅속으로 응당 천자나 들어갈 터이니, 보리가 구름에 닿는 집 몇 집이나 되려나.[遺蝗入地應千尺, 宿麥連雲有幾家?]"라고 하였는데, '납전삼백(臘前三白)'이라고 하여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농사가 잘 된다는 말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12》 《農政全書 卷11 占候》 잠깐……않았네 눈이 버들을 속이고 매화를 질투하여,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봄에 처음 돋아난 버들은 사람이 잠에서 막 깨어나 눈을 뜬 것과 같다는 이유로 '유안(柳眼)'이라 하고, 한창 부풀어 오르는 매화의 꽃봉오리는 아름다운 여인의 뺨과 같다는 이유로 '매시(梅顋)'라고 한다. 송나라 이청조(李清照)의 사(詞) 〈접련화(蝶戀花)〉에 "따스한 햇살 맑은 바람이 처음으로 추위를 깨뜨리니, 버들 눈과 매화 뺨, 벌써 춘심이 동하누나.[暖日晴風初破凍, 柳眼梅腮, 已覺春心動.]"라고 하였다. 월나라……이루니 월(越) 지방은 눈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눈이 한번 내리면 개들이 마구 짖어 댄다고 한다. 《柳河東集注 卷34 答韋中立論師道書》 영……어려운들 초나라 서울 영(郢)에서 노래를 잘하는 어떤 사람이 처음에 통 유행가인 〈하리파인(下里巴人)〉을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는데, 나중에 〈양춘백설(陽春白雪)〉이라는 수준 높은 노래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文選 卷28 對楚王問》 큰길애……있을까 동한(東漢) 순제(順帝) 때 대장군 양기(梁冀)가 국권을 전횡하고 있었다. 장강(張綱)을 순안어사(巡按御史)로 임명하자 수레바퀴를 땅에 파묻으면서 말하기를 "승냥이와 늑대가 지금 큰길을 막고 있으니, 여우와 살쾡이 따위야 굳이 따질 것이 있겠는가.[豺狼當路 安問狐狸]"라고 하고는 곧바로 당시의 권간(權奸)인 대장군 양기(梁冀)를 탄핵하면서 그가 속으로 임금을 업신여긴 15조목의 일을 열거하여 경사(京師)를 진동시켰다. 《後漢書 卷56 張綱列傳》 아름다운……중흥했고 한나라 광무제(光武帝)가 태어날 때 아름다운 벼가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려 크게 풍년이 들자 이름을 수(秀)라고 지었다고 한다. 광무제는 왕망(王莽) 정권을 무너뜨리고 한나라 유씨(劉氏) 왕조를 중흥하여 후한(後漢)을 세웠다. 《後漢書 光武帝紀》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19 帝系部 嘉禾之瑞》 가뭄의……칭송했지 은나라에 여러 해 동안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탕왕(湯王)이 상림(桑林)에서 기도하며 여섯 가지 일로 자책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 큰비가 내렸다고 한다. 《荀子 大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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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변 남천에서 노닐며 유인길과 수창하다 3수 遊安邊南川 與柳寅吉唱酬【三首】 변방에서 떠돌 줄은 본래 생각도 못했으니이곳에서 노닒은 더구나 일생의 기이한 일이라국화 피고 단풍 든 산에 어찌도 이리 늦게 왔는가낚시터 바위에 앉아 느긋하게 있노라취흥은 귀하신 총마사110)라고 어찌 봐주리오한가로운 정취는 백구만이 알아주리아침에 떠올려 보자 꼭 꿈결 같으니아름다운 일은 시 백 편에 부질없이 남아 있네산성을 유람하자는 아름다운 약속 있으니올라가 바라보지 않아도 기이한 흥취 일어나네한해 북쪽엔 가을 기러기 일찍 오고설봉 서쪽엔 석양이 뉘엿뉘엿 지네학선111)의 자취 산하에 남아 있고총사112)의 위엄은 초목도 알도다태수113)의 분방함이야 어찌 말할 것이 있으랴술 취하자 오직 시 읊는 것 좋아하노라황혼에 미인과의 약속 한번 어겼으니만년에 기남자라 칭하기 부끄러워라세상사와 세월 모두 변하였으니장대한 뜻과 늙은이 머리털 함께 쇠하였네무릉도원에 살려는 굳은 결심114)에 혼백은 먼저 떠나갔는데기나라 사람의 깊은 근심115) 내 스스로 아노라눈앞의 허다한 일 점검하니단지 속으로 말할 뿐 시 쓰지 못하겠네 關外萍逢本不期玆遊況復一生奇菊巖楓岸來何晩釣石漁磯坐覺遲醉興肯饒驄馬貴閒情惟許白鷗知朝來想像渾如夢勝事空餘百首詩山城遊賞有佳期不待登臨發興奇瀚海北邊秋鴈早雪峰西畔夕陽遲鶴仙蹤跡山河在驄史風稜草木知太守疏狂何足道醉來惟有愛吟詩黃昏一失美人期末路羞稱男子奇世累年華同變換壯圖老鬢共衰遲桃源計決魂先往杞國憂深我自知點檢眼前多少事只能心語不能詩 총마사 어사(御史)를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함경도 어사 유인길을 가리킨다. 한나라 환전(桓典)이 시어사(侍御史)가 되어 총마를 타고 다닐 때 처사가 매우 엄정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총마어사(驄馬御史)라고 부르며 두려워하였다. 《後漢書 桓榮列傳 典》 학선 학선(鶴仙)은 신선이 되었다가 천 년 만에 학으로 변해 고향인 요동(遼東)에 돌아왔다는 한나라 정영위(丁令威)를 가리킨다. 《搜神後記 卷1》 총사 총사(驄史)는 어사를 뜻하는 말로, 함경도 어사 유인길을 가리킨다. 태수 안변 부사로 있던 정문부 자신을 가리킨다. 무릉도원에……결심 세상을 떠나 은거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진(晉)나라 때 무릉(武陵)의 어부가 우연히 무릉도원에 이르렀는데,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그곳에 대대로 살고 있었다는 고사가 있다. 《陶淵明集 卷5 桃花源記》 기나라……근심 옛날 기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자기 몸을 붙일 곳이 없게 된다 하여 침식을 폐하고 걱정을 했다는 '기우(杞憂)'의 고사가 있다. 《列子 天瑞》 기우는 보통 쓸데없는 근심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왜적의 침입으로 혼란해진 나라에 대한 근심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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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사를 증별하다 贈別赴京使 -원문 1자 결락191)- 지절 세상에 둘도 없으니넓은 들 홍수에도 산 무너지지 않네스스로 성군을 믿고 벼슬길에 나아갔으니어찌 -원문 3자 결락- 상강192)에 머물리오사행가는 길은 아득히 삼 천리요옥홀을 든 반열 열두 나라 이어져 있네193)이별한 뒤 그리워하니 그 어디에 있는가변방의 밝은 달밤에 홀로 창에 기대 있노라 【缺】生志節世無雙大野洪流山不降自恃聖君蹈宦海【三字缺】滯湘江乘槎路逈三千里執玉班連十二邦別後相思何處是漢關明月獨憑窓 원문 1자 결락 원문은 '【缺】生'이다. '生'은 원문의 문제로 번역하지 않았다. 상강 중국 호남성(湖南省)의 소상강(瀟湘江)으로, 초나라의 충신인 굴원(屈原)이 유배되어 있다가 죽은 곳이다. 옥홀을……있네 제후국들이 천자국인 명나라에 조회한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에서 하늘의 이십팔수(二十八宿)의 방위에 따라 천하를 12개 지역으로 나누어 대응시키고 이를 '십이분야(十二分野)'하였으므로, 열두 나라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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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으로 가는 서산을 전송하고, 아울러 의주로 가는 관송에게 보이다 送西山赴永陽 兼示觀松赴龍灣 가을빛 산색 모두 근심스런 모습이니서리 기운 차갑고 한 해가 저물어 가네길 남쪽으로 잡은 건 따뜻한 곳 찾아가는 것 아니요지역이 요동 왼쪽에 닿아 있으니 감히 춥다고 말하랴몸은 가벼우니 이번 이별 흩날리는 나뭇잎 같으나의리는 중하니 누가 산을 옮길 수 있으려나나는 달을 보고 괜스레 헐떡이는 오나라 소와 같으니194)십 년 동안 남쪽과 북쪽을 왕래했다오 秋光岳色兩愁顔霜氣凌凌逼歲闌路出江南非就暖地連遼左敢言寒身輕此別如飄葉義重何人可轉山我似吳牛虛喘月往來鷄鴨十年間 달을……같으니 지나치게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오나라는 중국 남방의 아주 더운 지방이므로, 낮에 더위로 몹시 괴로워하던 소가 밤에 달이 뜬 것을 보고도 또 해가 떴나 생각하여 숨을 헐떡거린다고 한다. 진(晉)나라 만분(滿奮)이 평소 바람을 두려워했는데 유리병을 빈틈으로 착각하고는 "저는 오나라 소가 달을 보고도 헐떡이는 것과 같습니다.[臣猶吳牛見月而喘.]"라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言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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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신 주지번과 한강에서 노닐다 2수 與天使朱 之蕃 遊漢江【二首】 강물은 교룡의 집을 감춰 천 길로 푸르고산은 구름 병풍 만들어 몇 첩으로 펼쳤는가청풍명월을 어찌 살 필요 있으랴260)낚시터와 생선 잡은 여울이 곧 살 곳이지하늘이 가객에게 승경을 모두 차지하게 하니경치는 새 시로 읊어져 배나 광채가 나누나구중의 궁궐로 돌아가 숙직하게 되면또한 응당 꿈속에서 창랑에 이르겠지성곽을 나서 애오라지 한가한 날 노니는데한강 가의 휘장 치고 잠시 머무누나맑은 시 경거를 아끼지 않고 주니비속한 말을 모과라 여겨서 수응하노라261)함께 배를 타도 곽태262)가 아니어서 절로 부끄럽나니이 사람이 어찌 다행히도 형주를 알게 되었는가263)멀리서 알겠어라, 성스런 군주가 앞자리264)를 비어 놓았는데기꺼이 동인을 위하여 –원문 2자 결락- 되었어라 水藏蛟室千尋碧山作雲屛幾疊張明月淸風何用買釣磯漁瀨卽爲鄕天敎佳客收奇勝物入新詩倍最光歸去九重靑鎖直也應飛夢到滄浪出郭聊爲暇日遊幨帷暫住漢江頭淸詞不惜瓊琚贈俚語翻將木瓜酬同濟自慚非郭泰此生何幸識荊州遙知聖主虛前席肯爲東人作【二字缺】 청풍명월을……있으랴 이백의 〈양양가(襄陽歌)〉에서 "돈 한 푼 없이도 살 수 있는 맑은 바람 밝은 달빛 속에서, 술 취해 옥산처럼 혼자 쓰러질 뿐 남이 밀어서가 아니라네.[淸風朗月不用一錢買 玉山自倒非人推]"라고 하였다. 맑은……수응하노라 경거는 원래 아름다운 옥을 뜻하는데, 흔히 상대방이 보내 준 아름다운 시를 가리키며 모과는 자신의 시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이다. 《시경》 〈목과(木瓜)〉에 이르기를 "나에게 모과를 던져 주기에 아름다운 옥으로써 갚는다.[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라고 하였다. 함께…곽태 곽태가 낙양(洛陽)에서 이름을 날리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그를 전송하기 위해 나온 사류들의 수레가 수천 량이 늘어서서 성황을 이루었다. 곽태는 그들 중에서 오직 이응과 어울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자 수많은 손님들이 바라보고 그 모습이 신선 같다고 했다 한다.《後漢書 郭泰列傳》 형주를 알게 되었는가 훌륭한 현인을 만나게 되었다는 뜻으로, 당(唐)나라 원종(元宗) 때 사람인 한조종(韓朝宗)이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 이백(李白)이 그에게 보낸 편지에 "살아서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질 것이 아니라, 다만 한 번 한 형주를 알기 원한다."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後集 與韓荊州書》 앞자리 '전석(前席)'은 원래 조정에 나아가 임금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임금의 총애를 받는 것을 뜻한다. 한(漢)나라 가의(賈誼)가 좌천되어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있다가 일 년 남짓 만에 소명(召命)을 받고 조정으로 돌아오니, 문제(文帝)가 선실(宣室)에서 그에게 귀신의 본원(本源)에 대해 물었다. 이에 가의가 귀신의 유래와 변화 등을 자세히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한밤중에 이르렀는데도, 문제가 그 이야기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앞으로 당겨 몸을 가의 가까이로 다가갔다고 한다. 《史記 卷84 賈誼列傳》 여기서는 주지번이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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