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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를 타고 다리를 건너가는 그림194) 騎驢過橋圖 산을 벗어나자마자 다시 냇물 건너니저녁에 위태로운 다리에서 나귀 가는 대로 건너가네아이종아 나귀에게 서두르자 재촉말라좋은 시구 가슴 속에서 아직 반도 이루지 못하였으니 纔出山來又涉川危橋落日信歸鞭僕童且莫催驢急好句胸中半未圓 나귀를……그림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이 좋은 시를 지으려고 고심하다가 나귀 등에 타고서 눈발이 휘날리는 파교(灞橋) 위를 지나갈 때 그럴듯한 시상이 떠오른 고사를 말한다. 《蘇東坡詩集 卷12 贈寫眞何充秀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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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가 무정하니 애도한들 어찌 알까104) 湘水無情弔 豈知 원수와 상수 초 땅을 감돌아 흐르니105)밤낮으로 도도히 흘러 멈추는 때 없네강남은 옛날에 쫓겨난 신하가 간 곳으로한 줄기 안개 낀 물결 천고에 슬프구나사람은 감회 일어 옛사람 조곡하나강은 본래 무정하니 어찌 알 수 있으랴삼려대부는 일찍이 초나라 대부였으니송백의 고결한 품성에 난봉 같은 자태 지녔지영로106)에서 고난 겪고 세월 저물었으니아, 미인은 중도에 어디로 갔는가저 멀리 어가는 진나라 변경에 들어가니연월 속 장화대107)에 왕기 쇠했도다-1구 결락-택반 거닐며 읊조린 이108)의 귀밑털 새었네-2구 결락-장사왕의 태부는 낙양 사람이니109)나이 어리고 재주 뛰어난 천하의 기재라당시 강후 관영과 같은 반열에 있음을 부끄러워했으니성군 만났다면 요순의 다스림 일으켰으리외로운 방초가 뭇 풀들의 능욕 견디지 못했으니계책을 아뢰었다 되려 남쪽 변방으로 귀양 갔네상심했으니 어찌 차마 멱라수를 지날꼬110)충신의 넋에 애도하고자 두 눈에 눈물 흘렸네좌천된 이 남쪽으로 가는 일 예나 지금이나 같으니흐르는 강물 동쪽으로 흘러가도111) 누가 알아려주려나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모여드니112) 또한 무슨 마음인가물고기가 시신 삼키도록 내버려 두었도다113)진나라 산은 육리의 부끄러움 씻어내지 못하고114)초나라 사람은 괜스레 천년의 그리움 부쳤네115)쏟아낼 수 없는 객수 같이 강물 깊고돌아올 기약 없는 성은처럼 강물 흘러가네강가에서 애도한들 끝내 무슨 보탬이 되랴주옥같은 시문 낭비한 것 애석하여라당시의 남은 자취 찾아보는 사이에고금에 길이 흘러가는 것 이와 같도다지금 사람이 또한 장사에 애도하려 하나강의 무정함 마찬가지니 애도해 무엇하랴애도할 만한 다정한 곳 따로 있으니북저의 반죽 가지에 눈물 흔적 있네116) 沅湘之水繞楚流日夜滔滔無歇時江南舊是竄臣路一帶烟波千古悲人生有感弔古人水自無情那得知三閭曾是楚大夫松栢孤標鸞鳳姿風霜郢路歲月暮美人中道嗟何之迢迢龍駕入秦關烟月章華王氣衰【一句缺】澤畔行吟生鬢絲【二句缺】長沙太傅洛陽人年少才華天下奇遭時羞與絳灌列得君庶興唐虞治孤芳不耐衆草凌策奏翻謫天南陲傷心忍過汨羅水欲弔忠魂雙淚垂遷人南去古猶今逝水東流知爲誰東流朝海亦何心一任魚腹藏人屍秦山未洗六里羞楚人空寄千年思深如客愁不可寫去似君恩無返期臨流一弔竟何益可惜浪費瓊琚詞當年遺跡俯仰間逝者今古長如斯今人亦欲弔長沙等是無情何弔爲別有多情相弔處北渚啼痕班竹枝 상수가……알까 당나라 유장경(劉長卿)의 시구로, 유장경의 〈장사에서 가의의 집을 지나가며[長沙過賈誼宅]〉 시에 "한 문제는 도는 있어도 은혜는 박했구나, 상수가 무정하니 애도한들 어찌 알까.[漢文有道恩猶薄, 湘水無情弔豈知?]"라고 하였다. 원수와……흐르니 초나라 굴원(屈原)이 초 회왕(楚懷王) 때 삼려대부(三閭大夫)가 되었다가, 소인들의 참소를 입어 조정에서 쫓겨나 초췌한 몰골로 원수(沅水)와 상수(湘水) 사이를 유랑하면서 〈이소(離騷)〉를 지었다. 영로(郢路) 초나라의 수도인 영(郢)의 길거리를 말한다. 장화대 초 영왕(楚靈王)이 사치를 좋아하여 높이가 30여 길이나 되는 '장화대(章華臺)'라는 별궁을 지었는데, 장화대에 오르려면 세 번 쉬어야 했다고 한다. 《新書 退讓》 택반을……이 조정에서 참소를 받아 쫓겨나 택반을 거닐었던 초 나라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장사왕의……사람이니 한나라의 문신 가의(賈誼)는 낙양 사람으로, 스무 살의 어린 나이로 문제(文帝)의 깊은 신임을 얻어서 여러 개혁을 주장했다가, 강후(絳侯) 주발(周勃)과 영음후(潁陰侯) 관영(灌嬰)의 참소를 입어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었다. 《前漢書 賈誼傳》 상했으니……지날꼬 굴원이 초나라 경양왕(頃襄王) 때에 다시 참소를 받아 장사(長沙)로 좌천되자,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었다. 가의도 참소를 맡고 장사왕 태부로 좌천되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흐르는……흘러가도 임금에 대한 충심을 비유하는 말이다. 《순자》 〈유좌(宥坐)〉에 "물이 만 번 꺾이어도 반드시 동으로 흐르는 것은 굳은 의지가 있는 것 같다.[其萬折也必東, 似志.]"라고 하였다. 동쪽으로……모여드니 신하가 천자를 알현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서경》 〈우공(禹貢)〉에 "온갖 물줄기가 바다로 모여든다.[江漢朝宗于海]"라고 하였다. 물고기가……두었도다 굴원이 강물에 투신하여 죽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차라리 소상강으로 달려가, 물고기의 배에 장사 지내리라[葬於江魚之腹中]."라고 한 구절이 있다. 진나라……못하고 초 회왕이 장의에게 속은 고사를 말한다. 진 혜왕(秦惠王)이 제나라와 초나라가 동맹하는 것을 근심하여 초 회왕에게 장의를 보내, 초나라가 제나라와 절교를 한다면 진나라 상오(商於)의 600리 땅을 주겠다고 하였다. 초 회왕이 이 말을 믿고 제나라의 동맹을 파기한 후 장의에게 사신을 보내자, 장의는 봉읍(奉邑) 6리를 주겠다고 조롱하였다. 《史記 張儀列傳》 초나라……부쳤네 초 회왕이 굴원의 간언을 듣지 않고 무관(武關)의 회맹에 참석했다가 진(秦)나라에 억류되어 3년만에 죽자, 초나라 사람들이 진나라를 원망했다. 《史記 項羽本紀》 북저의……있네 소상반죽(瀟湘斑竹)을 말한다. 순 임금이 별세하자, 순 임금의 두 비(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소상강 가에서 통곡하다 죽었는데, 두 비가 흘린 눈물이 대나무에 묻어 얼룩이 졌다고 한다. 굴원의 〈상부인(湘夫人)〉에 "황제의 따님들이 북쪽 물가에 빠졌으니 그 아름다운 모습이 내 수심을 자아내네.[帝子降兮北渚, 目眇眇兮愁予.]"라고 하였다. 《楚辭 九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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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결을 세 번 들어 보이다117) 三擧玉玦 백만 군대에 이만 군사로 충분한 요새요118)바람 탄 범과 구름 몬 용이 교전하던 곳이라우레와 천둥 노한 듯이 몰아치던 사이에늠름한 위엄있는 얼굴로 연회 마주했네술통 앞 광경 다 의심할 만하니다시 옥결 들어 보인 이 어떤 사람인가포어 실은 수레 어젯밤 사구를 지나갔으니119)초나라 삼호에서 벌떼처럼 많이 일어났네120)장군이 손수 팔천 병사 지휘해 이끌고서강을 건너 서쪽으로 가니 누가 막을 수 있으랴121)신안 구덩이에 묻힌 자 반은 진나라 사람이니122)눈앞의 사슴 있지만 썩은 쥐와 같구나함곡관 이미 주머니 속 물건 되었으니먼저 들어가 종거123)를 취한 이 누구인가분기탱천하기로는 장수나 병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그 형세 금도124)를 압도하여 막기 어려웠네누가 파상에서 목숨 부지하고 있는 이로 하여금와서 홍문에서 주빈의 차례 짓게 하였나125)남아가 서로 만나 또 기쁘게 연회 즐기니만 마리 소고기 안주에 만 곡 술이로다천지가 암암리에 콧대 우뚝한 이에게 들어가니126)부월만 공연히 왕의 처소에 남아 있누나모신이 이때 간담이 찢어질 듯하였으니우리 군주의 대사 어긋남을 차마 볼 수 있었으랴힘이 없으니 목을 베어 피 뿌리지 못하고훌륭한 말 있어도 누가 말을 전하겠나허리춤에 옥결을 차고 있는 사람옥결 차고 군주 앞에서 기다리니정신은 눈에 있고 옥결은 손에 있어눈으로 신호를 보낼 적에 옥결도 들었네명칭을 통해 내포된 뜻 생각할 수 있고작은 사물이 예로부터 큰일을 깨우친다네임금의 마음 하루 안에 결정되길 어이 기다릴꼬이 기회는 하늘이 준 것임을 알아야 하거늘번거롭게도 내가 두 번 세 번 다시 들었건만어찌하여 장군은 나와 함께하지 않는가달콤한 말에 월나라 구천을 이미 믿었으니원대한 계책 세운 오자서를 누가 따르랴127)속내 감추고 나와 검무 추고도 베지 못했으니128)그 작은 인이 어찌 아녀자에게 부끄럽지 않으랴마침내 연회 끝나고 옥술잔 부서졌으니옥결 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한갓 의심만 했네129)관옥이 재물로 이간질하여버림받아 팽성에서 근심 품게 하였네130)범증 같은 사람도 제대로 쓰이지 못하거늘하물며 너는 기물이니 누가 너를 보배로 여기랴어찌하여 면목 없이 강동으로 건너가리오오강 가에서 한 자루 칼로 용감히 자결했네131) 百萬軍容百二關風虎雲龍交會處雷驚霆怒叱咜間凜凜威顔對樽俎樽前物色儘堪猜更有擧玦人何許鮑車昨夜過沙丘蜂起多從三戶楚將軍手提八千兵渡江西來孰能禦新安一坑半秦人鹿在眼中如腐鼠函關已爲囊中物先入何人取鍾衝冠怒髮將士同勢壓金刀難自沮誰敎灞上假遊魂來作鴻門賓主序男兒相見且爲歡萬牛之肴萬斛醑乾坤暗入隆準袖斧鉞徒然在王所謀臣此時膽欲裂忍見吾君大事去無力難將頸血濺有言誰憑口耳語腰間寶玦之子佩佩向君前爲延佇神惟在目玦在手目送神時玦又擧因名可思有意存小物從來可喩巨君心何待日中決此機須知天所予煩吾再三擧復擧胡乃將軍不我與甘言已信越句踐遠圖誰從吳子胥藏來舞釰亦不斷小仁能無愧兒女終然宴罷玉斗碎玦不取決徒疑阻從敎冠玉用間金受玦彭城抱憂緖人如范增不能用況汝器也誰玉汝夫何無面渡江東一釰勇決烏江渚 옥결을……보이다 홍문(鴻門)의 연회에서 유방(劉邦)을 죽이자는 암시로, 범증(范增)이 항우에게 눈짓을 하며 옥결(玉玦)을 세 번 들어 보였으나, 항우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유방은 번쾌(樊噲)의 도움으로 그곳을 탈출하였다. 《史記 項羽本紀》 백만……요새요 난공불락의 요새를 말한다. 《사기》 〈고조본기(高祖本紀)〉에 "진(秦)나라는 지세(地勢)가 뛰어난 나라로, 산하(山河)의 험고(險固)함을 띠고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 창을 가진 백만 군대를 진나라는 그 100분의 2로 막을 수 있다.[持戟百萬, 秦得百二焉.]"라고 하였다. 포어……지나갔으니 진시황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다. 진시황이 순행을 하던 도중 사구(沙丘)의 평대(平臺)에서 죽었는데, 정승 이사(李斯) 등이 진시황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시신을 싣고 갔는데, 시체에서 썩는 냄새가 나므로 수레에 포어(鮑魚)를 실어서 냄새를 감추었다. 《史記 秦始皇本紀》 초나라……일어났네 초나라 삼호는 초나라 유민(遺民)을 뜻하는 말로, 초 회왕(楚懷王)이 진(秦)나라에 억류되었다가 3년 만에 죽은 일로 인해 초나라 사람이 진나라를 몹시 원망하여 "초나라에 비록 세 집만 남아 있어도,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분명히 초나라 사람들일 것이다.[楚雖三戶, 亡秦必楚也.]"라는 말까지 나왔다. 《史記 項羽本紀》 진시황이 죽은 뒤에, 진승(陳勝)이 오광(吳廣)과 난을 일으켜 스스로 초나라 왕이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각처에서 봉기가 일어나 진나라는 결국 멸망했다. 《史記 陳涉世家》 장군이……있으랴 항우가 강동(江東)의 자제 8천 명을 이끌고 강을 건너 진(秦)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서초 패왕(西楚覇王)이 되었다. 《史記 項羽本紀》 신안……사람이니 항우가 하북(河北)을 평정하고 진나라 관중(關中)에 들어가고자 하였는데, 진나라의 항복한 군사들이 원망하는 말을 많이 하였다. 항우는 밤에 이들을 공격하여 진나라 병졸 20여 만 명을 신안(新安)의 성 남쪽에 파묻어 죽였다. 《史記 項羽本紀》 종거 진나라 궁궐의 상징적인 기물이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 함양(咸陽)에 모은 뒤 이를 녹여서 종거(鍾鐻)와 12개의 동인상(銅人象)을 만들어 궁전 안에 놓아 두었다. 《史記 秦始皇本紀》 금도(金刀) 한나라 유방을 가리킨다. '유(劉)'를 파자(破字)하면 '묘(卯), 금(金), 도(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금도'라 한 것이다. 누가……하였는가 항우와 유방이 함양(咸陽)을 두고 쟁탈할 당시, 유방이 먼저 함양을 점령한 뒤 파상(灞上)에서 10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주둔해 있었다. 항우는 유방이 함양을 함락했단 소식을 두고 격분한 나머지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홍문에 진주하여 유방을 공격하려 하였는데, 항우의 숙부인 항백(項伯)의 조정으로 서로 화해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유방이 직접 홍문으로 찾아가서 사과하니, 항우가 연회를 베풀어 유방을 접대했다. 《史記 項羽本紀》 천지가……들어가니 천지가 한 고조 유방의 손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콧대가 우뚝한 자는 유방을 가리킨다. 《사기》 〈고조본기(高祖本紀)〉에 "고조의 위인을 보면 콧대가 우뚝하고 용의 얼굴이었다.[高祖爲人 隆準而龍顔]"라고 하였다. 달콤한……따르랴 항우가 범증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부차가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은 일에 빗댄 것이다. 춘추 시대에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배한 뒤 항복하고 오나라에서 노복으로 있을 적에, 구천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오나라의 태재(太宰) 백비(伯嚭)가 월나라와 화친할 것을 주장하였다. 오자서(伍子胥)는 부차에게 월왕 구천을 죽여야 한다고 간언했으나,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백비의 말을 들어 구천을 놓아주었으며, 훗날 백비의 참소를 듣고 오자서를 죽였다. 이 때문에 결국 오나라는 월나라에게 멸망을 당했다. 《史記 伍子胥列傳》 숨어……못했으니 홍문의 연회에서 범증이 항장(項莊)을 시켜 검무(劍舞)를 추다가 유방(劉邦)을 찔러 죽이라고 하였다. 이에 항장이 나와 검무를 추며 기회를 노렸다. 《史記 項羽本記》 마침내……했네 항우가 범증에게 옥술잔을 주었었는데, 홍문의 연회에서 항우가 유방을 죽이지 않자 범증이 노하여 옥술잔을 깨뜨렸다. 후에 유방의 반간계(反間計)로 인해 항우가 범증을 의심하자 범증은 화가 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중도에 화병으로 등창이 나서 팽성(彭城)에서 죽었다. 《史記 項羽本紀》 관옥이……하였네 관옥(冠玉)은 유방의 책사 진평(陳平)을 가리키는 말로, 용모가 수려하여 '관옥'이라 불렸다. 항우가 진평에게 황금 4만 근을 가지고 초나라로 들어가 항우와 신하들 사이를 이간질하게 하여, 결국 항우는 범증을 의심하게 되었다. 범증은 항우의 의심에 분노하여 고향으로 떠났는데, 팽성(彭城)에 이르러 등창이 나서 죽었다. 《史記 項羽本紀》 어찌하여……자결했네 항우가 해하(垓下)의 전투에서 패한 뒤 한나라 병사에게 쫓겨 오강(烏江)에 이르자, 정장(亭長)이 배를 대주며 강동으로 건너가 권토중래하라고 권유했는데, 항우는 "내가 강동의 자제 8천명을 데리고 강을 건너 서쪽으로 왔는데, 지금 한 명도 돌아가지 못하니, 비록 강동의 부들이 불쌍이 여겨 나를 왕으로 세우더라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는가?[籍與江東子弟八千人渡江而西, 今無一人還, 縱江東父兄憐而王我, 我何面目見之?]"라고 말하고, 정장에게 오추마(烏騅馬)를 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史記 項羽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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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중에서 사제와 유별하다132) 隆中留別舍弟 산사람이 옛 〈양보음〉 읊기를 그만두니133)한나라 해가 사립문 동쪽에 붉게 떠오르네풍도와 모략이 홀연 제주와 들어맞았으니134)더이상 예전의 시골 늙은이가 아니어라갑옷 두른 말을 따라서 산속 떠나가니전원에서 오직 자신의 몸 잘 보존했었지유가의 빛나는 업적 건안에 달려 있는데병권 통재하는 권력 간웅에게 돌아갔네135)산동의 큰 귀 우뚝한 콧대 지닌 후예136)가군막에 들어가 오랫동안 기공으로 있었으니천지 사이에서 떠돌아다니며풍진 속에서 세월을 보냈네못 안에서 오랫동안 운우의 형세 잃었으니137)적룡138)을 하늘에 날아오르게 할 이 누구인가융중은 본래 한나라 산하이니여기서 살아가는 건 나와 네가 마찬가지구나몸소 밭 갈며 신야 노인139)을 사모했으니산 밖의 시끄러운 속세 소리에 내 귀 닫았네한가로운 사람 그저 와룡이라 자호했는데명철한 임금 어찌하여 인재를 점쳤는가140)추운 날 빈한한 집에 바야흐로 눈보라 칠 제귀한 분이 누추한 집에 번거롭게도 왕림하였네충정에 쉬이 격발하여 감동의 눈물 흘리니몇 마디 말로 뜻이 맞아 도리어 융화되었어라임금 은혜가 칠 척 이 몸을 허여해 주셨으니가업은 작은 터전에 사는 그대에게 남기노라봄 언덕에서 밭 가니 손으로 쟁기 잡고안개 낀 언덕에서 소를 치니 집에 아이종 있누나산수의 그윽한 정취 나눠주기 좋으니최씨 마씨 좋은 이웃141)과 줄곧 지냈네언덕에서 척령이 헤어짐142)을 한스러워하지 말라이제 떠나면 마땅히 중흥의 공 세우리라은하수로 한번 씻어내어 천지 사방 맑아지리니143)염령에 기를 불어 넣어144) 다시 융성하길 기약하네남양의 아름다운 기운 옛 황제의 고향이요145)탕목읍의 은혜로운 물결146) 응당 다하지 않으리라공 이루면 마땅히 병 많던 자방처럼 사직하리니147)재산이 어찌 꼭 도주공148)처럼 부유할 것 있으랴이별에 임해 또 말하노니, 아, 우리 아우여삼가 본분을 지켜 가풍을 실추하지 말라 山人吟罷古梁甫漢日赤臨柴門東風期忽與帝冑親非復當年田舍翁身隨甲馬出山去好保田園惟爾躬劉家赤業屬建安太阿之柄歸奸雄山東大耳隆準孫入幕多年爲寄公飄零蹤跡宇宙間荏苒歲月風塵中池中久失雲雨勢赤龍誰使飛蒼穹隆中自是漢山河一區生涯吾爾同躬耕竊慕莘野叟山外塵喧吾耳聾閒人秪自號臥龍明主如何占匪熊天寒白屋正風雪玉武頗煩臨蓽蓬危忱易激感淚零片言契合還昭瀜君恩許我七尺身家業留君三畝宮畊田春壠手把犂牧牛烟郊家有童溪山幽趣好分付崔馬芳隣爲始終原頭莫恨鶺鴒分此去當樹中興功天河一洗六合淸噓氣炎靈期再隆南陽佳氣舊帝鄕湯沐恩波應不窮功成當謝子房病産業何必陶朱豐臨分且曰嗟余季愼勿分事墜家風 융중에서 사제와 유별하다 융중(隆中)은 양양(襄陽)에 있는 산의 이름으로, 제갈량(諸葛亮)이 유비(劉備)를 만나기 전에 은거하던 곳이다. 산사람이……그만두니 제갈량이 출사하기 전 남양(南陽)에서 농사를 짓고 있을 때 매일 새벽과 저녁에 무릎을 감싸 안은 채 〈양보음(梁甫吟)〉 길게 읊었다고 한다. 《三國志 蜀書 諸葛亮傳》 풍도와……들어맞았으니 제갈량이 제주(帝胄), 즉 한나라 왕실의 후예인 유비(劉備)에게 발탁된 것을 말한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양보음〉에서, 강태공이 10년 간 낚시질하며 지내다 문왕을 만난 고사를 읊어 "무려 삼천육백 번 낚시질하는 동안, 풍도가 은연중에 문왕과 들어맞았다오.[廣張三千六百釣, 風期暗與文王親.]"라고 한 것을 차용한 것이다. 유가의……돌아갔네 건안(建安)은 한나라 헌제(獻帝)의 연호로, 196년~220년까지이다. 간웅(奸雄)은 조조(曹操)를 가리킨다. 건안 연간에 한나라 황실이 쇠하여 전국이 혼란했는데,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토벌하며 세력을 얻은 조조가 헌제를 허도(許都)로 맞이하여 옹립하고, 승상(丞相)을 거쳐 위왕(魏王)이 되는 등 세력을 키워 가며 실권을 장악했다. 《三國志 光武帝紀》 《後漢書 獻帝紀》 산동의……후예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가리킨다. 못……잃었으니 유비가 오랫동안 재주를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삼국 시대 오나라 주유(周瑜)가 유비를 경계해야 한다면서 "교룡이 운우를 얻으면, 끝내 못 속의 물건이 아니게 될까 두렵다.[恐蛟龍得雲雨, 終非池中物也.]"라고 하였다. 《三國志 吳書 周瑜傳》 적룡(赤龍) 적룡은 전설 속에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용으로, 한 고조 유방은 적룡(赤龍)의 정감(精感)을 받아서 태어났다 하여 그를 적제자(赤帝子)라 칭했다. 여기서는 유방의 후예인 유비를 가리킨다. 신야 노인 은나라의 명신인 이윤(伊尹)을 가리킨다. 이윤이 유신(有莘)의 들에서 농사를 짓다가 탕왕(湯王)의 초빙을 받고 조정에 들어가 재상이 되어 왕업을 성취시켰다. 《孟子 萬章上》 명철한……점쳤는가 유비가 초야의 제갈량을 찾아온 일을 주나라 문왕(文王)이 강태공(姜太公)을 만난 일에 비유한 것이다. 문왕이 사냥을 나가기 전에 점을 쳤더니 "잡을 것은 범도 곰도 아니고[匪熊] 왕패(王霸)를 보좌할 인물이다."라는 괘(卦)가 나왔다. 그 뒤 문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에서 강태공 여상(呂尙)을 만나 수레에 태우고 함께 돌아왔다. 《史記 齊太公世家》 최씨……이웃 한나라 최인(崔駰)과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남조 시대 양(梁)나라 유준(劉峻)의 〈변명론(辯命論)〉에 "그 치욕을 당한 것이 어찌 최씨 마씨의 부류이겠는가?[其爲詬恥, 豈崔馬之流乎?]"라고 하였다. 언덕에서 척령이 헤어짐 제갈량과 그 아우가 이별한다는 의미이다. 척령은 우애있는 형제를 뜻하는 말로,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저 할미새 들판에서 호들갑 떨듯, 위급한 때에는 형제가 서로 돕는 법이라오. 항상 좋은 벗이 있다고 해도, 그저 길게 탄식만을 늘어놓을 뿐이라오.[鶺鴒在原, 兄弟急難. 每有良朋, 況也永歎.]"라고 하였다. 은하수로……맑아지리니 전쟁으로 혼란한 시대를 평정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세병행(洗兵行)〉 시에 "어찌하면 장사가 은하수를 끌어와서, 갑병을 깨끗이 씻어 영원히 쓰지 않게 할꼬.[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長不用.]"라고 하였다. 염령에……넣어 한나라를 부흥시킨다는 의미이다. 염령은 화덕(火德)으로 왕이 된 한(漢)나라를 가리킨다. 아름다운……고향이요 남양(南陽)은 후한 광무제(光武帝)의 가향(家鄕)이다. 술사(術士)인 소백아(蘇伯阿)가 남양 용릉(舂陵)의 지형을 살펴보고는 "상서로운 기운이 울창하고 성대하다.[佳氣哉! 鬱鬱葱葱然.]"라고 하였다. 《後漢書 光武帝紀》 탕목읍의 은혜로운 물결 한 고조의 고향은 패현(沛縣)의 풍읍(豐邑)인데, 고조가 황제 자리에 오른 뒤 고향에 갔을 때 풍읍을 탕목읍으로 삼아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史記 高祖本紀》 공……사직하리니 자방(子房)은 장량(張良)의 자이다. 장량은 체구가 작고 지병(持病)이 많았는데, 훗날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 데 공을 세웠다. 한나라의 건국 이후 장자방은 공훈을 대단한 것으로 보지 않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노닐고자 은퇴하였다. 도주공 도주공(陶朱公)은 춘추 시대 월나라 대부 범려(笵蠡)의 별칭이다. 범려는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에 벼슬을 버리고 도(陶) 땅으로 들어가 주공(朱公)으로 행세하며 거금을 벌었다. 《史記越王句踐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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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대가 어찌 조대보다 높으랴149) 雲臺爭似釣臺高 한나라의 스물여덟 장군150)세상을 뒤덮은 명성 준걸이라 칭해졌네동강 오두막의 일개 낚시하는 늙은이151)맑은 풍모 오랫동안 도도히 흐르네당시 만승의 천자를 한 번 굴복시켰으니탁월한 행적 운대보다 훨씬 높았도다선생은 일찍부터 유문숙152)을 알았으니반평생 속진 속에서 함께 노닐었지천지가 갑자기 진인153)의 손에 들어갔는데선생 집의 좋은 물건은 오직 작은 배 뿐이었네양 갖옷 처사의 몸에서 벗기지 못했고154)곤룡 무늬 천자의 옷에 새롭게 더해졌네같은 침상에서 비록 하룻밤 기쁨 나누었으나155)안개 낀 강 백구와 맺은 약속 이미 굳건했네156)차라리 기산 영수에서 소보와 허유를 배울 지언정157)어찌 조정에서 이윤과 고요158) 같은 신하 되랴돌아와 부춘산에 한가로이 누워새장 떠나버린 신선의 학처럼 지냈네중흥의 장수들이 또한 일시에운수에 응하여 다행히도 풍운과 만났도다159)용 붙잡고 봉황에 붙어 그 기세 당할 수 없었으니160)한나라를 보좌한 공 소하와 조참161)보다 높았네땅을 나누어 제후에 봉하는 것일 관심 없으니태상162)과 홍종으로 어찌 기릴 것 있으랴스물여덟 장군 초상 별자리에 따라 배열하니엄연히 영웅호걸의 진짜 모습 그려냈네오직 나머지 객성163)은 모사할 수 없었으니어찌 화공의 솜씨로 붓 휘두를 것 있으랴걸출한 모습 우뚝하여 지주164)와 같으니깎아지른듯 우뚝 서서 큰 파도와 다투네남궁 운대의 장군들 다 한 수 아래이니예전에 전장을 누비며 부질없이 수고했네몸소 수많은 전쟁 겪은들 끝내 무슨 보탬이랴한 가닥 낚시줄로도 오히려 금도를 부지할 수 있거늘165)동도의 절의166)는 이백 년 동안 이어졌는데업하에서 늙어 죽은 이는 누런 수염의 조조라167)누가 은자에게 공업이 없다 말하랴구정이 약해지면 기러기 털보다도 가볍다오아, 나는 문무(文武) 모두 이루지 못하고평생토록 부질없이 용호도168)만 읽었네지금 기린각에 걸릴 사람 따로 있으니육오169)가 떠받친 바다로 돌아가 낚시질하련다 漢家二十八將軍蓋世之名稱俊髦桐廬一介垂釣翁淸風千古江滔滔當年一屈萬乘主卓軌逈出雲臺高先生早識劉文叔塵埃半世同遊遨乾坤忽入眞人手自家長物惟輕舠羊裘不脫處士身龍袞新加天子袍同床雖做一宵懽白鷗烟波盟已牢寧從箕穎學巢由肯向廊廟爲伊臯歸來高臥富春山有如仙鶴辭籠絛中興諸將亦一時應運幸與風雲遭攀龍附鳳勢莫當佐漢功高蕭與曺分茅裂土等閒事太常洪鍾安足褒圖形四七應列宿儼然幻出眞英豪唯餘客星模不得豈容畵手煩揮毫高標落落砥柱同截然屹立爭洪濤南宮介冑盡下風汗馬從前徒自勞身經百戰竟何補一絲猶可扶金刀東都節義二百年鄴下老死黃鬚操誰言隱者無功業九鼎微爾輕鴻毛嗟余書釰兩無成平生浪讀龍虎鞱今代麒麟別有人歸釣滄溟連六鰲 운대가……높으랴 송나라 범중엄(范仲淹)의 〈조대시(釣臺詩)〉에 나오는 구절로, 공을 세우는 것보다 은거하여 한가로이 지내는 것이 낫다는 의미이다. 운대는 후한(後漢) 때의 공신각(功臣閣) 이름이고, 조대(釣臺)는 후한의 은사 엄광(嚴光)이 낚시하던 곳이다. 한나라의 스물여덟 장군 광무제(光武帝) 때 공을 세운 등우(鄧禹), 오한(吳漢) 등 28명의 공신을 말한다. 후한 명제(後漢明帝) 때 이들의 초상화를 그려, 남궁(南宮)의 운대에 28수(宿)의 순서대로 걸어 놓았다. 《後漢書 馬援列傳》 동강……늙은이 엄광을 가리키는 것으로, 엄광은 광무제의 출사 요청을 뿌리치고 부춘산(富春山)에서 은거하고 동려현(桐廬縣) 칠리탄(七里灘)에서 낚시를 즐기며 일생을 마쳤다. 유문숙(劉文叔) 문숙은 광무제 유수(劉秀)의 자이다. 엄광과 광무제는 어린 시절 함께 공부한 친구 사이였다. 진인(眞人) 진인은 천명을 받아 천하를 통일한 황제를 이르는 말이다. 《사기》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진 시황이 '나는 진인을 사모한다.'라고 하며, 자신을 진인이라 하고 짐이라고 하지 않았다.[始皇曰, 吾慕眞人, 自謂眞人, 不稱朕.]"라는 하였다. 여기서는 왕망(王莽)에게 찬탈당한 한나라를 재건한 광무제를 가리킨다. 양……못했고 광무제가 엄광을 벼슬에 나오게 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광무제가 제위(帝位)에 오른 뒤 엄광은 이름을 바꾸고 숨어 살았는데, 광무제가 엄광을 찾기 위해 온 나라에 명을 내리자 제국(齊國)에서 "어떤 사람이 양 갖옷[羊裘]을 입고 못에서 낚시질합니다."라는 제보가 올라왔다. 《後漢書 嚴光列傳》 같은……나누었으나 광무제가 숨어 사는 엄광을 찾아내어 겨우 만나게 되었는데, 엄광이 광무제와 함께 잠을 자던 중에 광무제의 배에 다리를 올렸다. 그 다음날 태사(太史)가 아뢰기를 "객성(客星)이 어좌(御座)를 범하였습니다."라고 하니, 광무제가 웃으면서 "짐이 옛 친구인 엄자릉과 함께 잤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嚴光列傳》 안개……굳건했네 백구와 벗하며 강호에서 은거하기로 결심했다는 의미이다. 송나라 육유(陸游)의 시 〈숙흥(夙興)〉 시에 "학의 원망은 누굴 의지해 풀거나, 백구와의 맹세 이미 식었을까 염려되네.[鶴怨憑誰解 鷗盟恐已寒]" 하였다. 기산……지언정 소보(巢父)와 허유(許由)는 요(堯) 임금 때의 고사(高士)로, 기산(箕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요 임금이 허유를 불러 구주(九州)의 장(長)으로 삼으려고 하자, 허유가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영수(潁水)의 물에다가 귀를 씻었다. 소보가 영수에 소를 끌고 와서 물을 먹이려고 하다가 허유가 귀를 씻은 이유를 듣고는, 소에게 이 물을 먹이면 소의 입이 더럽혀진다고 하면서 소를 상류로 끌고 올라가 물을 먹였다. 《高士傳 許由》 이윤(伊尹)과 고요(皐陶) 탕(湯)임금의 신하 이윤과 순(舜)임금의 신하 고요의 병칭으로, 재상을 뜻하는 말이다. 풍운과 만났도다 호걸이 훌륭한 임금을 만나 의기투합했다는 의미이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雲從龍, 風從虎.]"라고 하였다. 용……없었으니 당나라 두보(杜甫)의 〈세마행(洗兵行)〉 시에 나오는 구절로, 제왕을 도와 공업을 이루는 것을 비유한다. 소하와 조참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은 한나라 건국 초기의 명재상이다. 태상(太常) 태상은 해와 달을 그린 왕의 정기(旌旗)로서, 거기에 공신(功臣)의 이름을 새겨 공을 기렸다. 《周禮 夏官司馬 司勳》 객성 엄광을 말한다. 지주 중국 삼협(三峽)의 지주산(砥柱山)을 말한다. 산의 형상이 황하의 세찬 물결에도 굽히지 않고 버티고 서 있으므로, 세상 풍파를 견디며 굳센 지조를 지키는 선비를 비유하는 표현으로 흔히 쓰이다. 한……있거늘 금도(金刀)는 한나라 왕실의 성인 '유(劉)' 자를 파자한 것으로, 엄광이 광무제의 부름을 거절하고 지조를 지킴으로써 한나라 선비들의 기개를 높여 나라를 지탱했다는 의미이다. 세상에서 엄광을 칭송하며 "동강의 한 가닥 낚싯줄이 한나라의 국통을 부지하였다.[桐江一絲, 扶漢九鼎.]"라고 하였다. 《古今源流至論後集 卷6 氣節》 동도의 절의 동도(東都)는 후한(後漢)의 도읍인 낙양(洛陽)이다. 후한 때에는 엄광(嚴光)을 비롯하여, 광무제 때의 주당(周黨), 환제(桓帝) 때의 진번(陳蕃)과 이응(李膺) 등 절의를 지킨 선비들이 있었다. 《後漢書 卷8 孝靈帝紀》 업하에서……조조라 업하(鄴下)는 위(魏)나라의 도읍이다. 누런 수염[黃鬚]은 성품이 강용(剛勇)함을 비유하는 말로, 조조(曹操)의 아들인 조창(曹彰)이 '황수아(黃鬚兒)'라 일컬어진 데서 유래하는데, 여기서는 조조를 일컫는 말로 쓰였다. 《三國志 魏志 任城威王彰傳》 용호도(龍虎鞱) 병법서를 말한다. 주나라 여상(呂尙)이 지은 병서 《육도(六韜)》에 〈용도(龍韜)〉과 〈호도(虎韜)〉라는 편명이 있다. 육오 육오(六鰲)는 바다에 삼신산을 머리로 이고 있다는 여섯 마리의 자라이다. 예로부터 섬이 바다에 떠 있는 것을 큰 자라가 아래에서 떠받치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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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락 題缺 오류선생 본래 산에 살았는데우연이 객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가돌아가 날마다 술에 취해 깨지 않으니버들 다섯 그루가 봄빛을 다투는 줄 몰랐네170)천년의 동방에 -원문 3자 결락-불상 앞에서 손가락 꼬며 –원문 2자 결락-171)근래 수염이 삼천 길이나 자라 나니큰 아이 작은 아이 모두 아버지 불러대누나애써 사립문 밖에 버들 다섯 그루 심어172)옛사람과 높은 명성 나란히 하려 하네옛사람은 벼슬 버리고 강호에서 은일했는데지금 사람은 참선 피해173) –원문2자 결락- 전하네도끼 잡고 나무 베어 땔나무 만들고콩죽과 명아주국 끓여 먹는 것만 못하니그렇지 않으면 아내가 집을 떠날 적에긴 가지 꺾어 이별의 정 나타냈겠지 五柳先生本在山偶然爲客人間行歸來日日醉不醒不知五柳爭春榮千載東方【三字缺】佛前撚指堅【二字缺】邇來長髮三千丈大兒小兒呼爺聲强裁五柳柴門外欲與古人齊高名古人投簪逸海山今人逃禪傳【二字缺】不如操斧斫爲薪煮取豆粥與黎羹不然生妻去室時折得長條表離情 오류선생……몰랐네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이 팽택 영(彭澤令)으로 있다가 뜻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와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자칭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卷2》 원문 2자 결락 '堅'은 원문의 문제로 번역하지 않았다. 심어 대본에는 '裁'로 되어 있는데, 문맥에 의거하여 '栽'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참선 피해 도선(逃禪)은 좌선(坐禪)을 도피한다는 뜻이다. 당 현종(唐玄宗) 때의 문신 소진(蘇晉)이 술을 매우 즐겨 마셨는데,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소진은 수불 앞에서 장기간 재계를 했는데, 취중에는 가끔 좌선을 도피하기 좋아했다네.[蘇晉長齋繡佛前, 醉中往往愛逃禪.]"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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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 사이에서 거문고를 타는 그림 山水彈琴圖 고요하면 깊은 못되고 울면 여울 되니거문고를 안은 사람 이 안에 앉아 있네이미 마음으로 소리 없음의 오묘함 깨달았으니아양 곡조193)를 탈 것 없다네 靜作深潭鳴作湍抱琴人坐此中間已將心會無聲妙莫把峨洋絃上彈 아양 곡조 아양곡(峨洋曲)은 백아(伯牙)가 탔던 금곡(琴曲)을 말한다. 옛날에 백아는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는 그 소리를 잘 알아들었는데, 백아가 높은 산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듣고 말하기를 "좋다, 높다란 것이 마치 태산과 같구나.[善哉, 峨峨兮若泰山!]"라고 하였고, 또 백아가 흐르는 물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또 말하기를 "좋다, 광대한 것이 마치 강하와 같구나.[善哉, 洋洋兮若江河!]"라고 하였다. 종자기가 죽은 뒤로는 백아가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 하여 마침내 거문고를 부숴 버리고 종신토록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列子 湯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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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계에서 묵고 철령을 넘으며, 다시 앞 시의 운자를 사용하여 지어서 최노첨에게 부치다 2수 宿銀溪 逾鐵嶺 復用前韻 寄魯詹【二首】 기러기는 금하246) 건너 오랑캐 활 피했으니그 울음소리 변경 하늘로 높이 들어가네이때 놀라 고향 그리는 꿈에서 깼으니날 밝도록 앉아서 잠들지 못하노라-원문 1자 결락247)-오솔길 시내 따라 활줄 처럼 곧고협곡 안은 둥근 동천248)인 듯하여라본래 가을산은 그림 속 풍경 같으니용면249)의 솜씨 빌려 베껴 그릴 필요 없네 鴈度金河避虜弦一聲高入塞天圓此時驚罷相思夢坐到天明不得眠【缺】逕沿溪直似弦峽中惟覺洞天圓自是秋山如畫裡不須摹寫借龍眠 금하(金河) 내몽고(內蒙古) 지역에 있는 강 이름으로, 지금은 대흑하(大黑河)라 한다 원문 1자 결락 '逕'은 원문의 문제로 번역하지 않았다. 동천 도가(道家)에서 신선이 사는 곳을 뜻하는 말이다. 인간 세상에 36개의 동천이 있다고 한다. 《述異記 卷下》 용면(龍眠) 송나라의 뛰어난 화가 이공린(李公麟)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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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가 조촐한 술자리에서 이원배의 시에 차운하다 蓮池小酌 次李源培韻 장난삼아 나비 따라 봉래산에 들어가니괜스럽게 선녀들이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묻누나이십구 년간 속진 속에 있었으니번다한 시름 달랠 길 없어 술잔만 들었네 戱隨蝴蝶入蓬萊多事仙娘問我來二十九年塵土裡煩愁無賴酌金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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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관의 칠석 시에 차운하다 次書狀七夕韻 천상에 누가 은하수 흐르게 하였나선계에도 본래 이별의 시름 있어라남은 물결 내려와 용만의 강280) 되었으니동서로 떨어져 두 곳에서 가을 맞네 天上誰敎河漢流仙居亦自有離愁餘波下作龍灣水解隔東西兩地秋 용만의 강 용만은 의주(義州)의 별칭으로, 용만의 강은 압록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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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관281)으로 가는 길에 連山道中 남쪽 사람 북으로 가면 근심 일어나고북쪽 나그네 남쪽 오면 떠돌이 신세 한탄하지본디 인정은 각기 고향 그리워하기 마련이니연산이 굳이 시름겹게 할 필요 없네 南人北去動離憂北客南來歎旅遊自是人情各懷土連山不必使人愁 연산관(連山關) 구련성(九連城)과 심양 사이에 설치된 여덟 군데의 역참(驛站) 중 하나이다. 현재는 요녕성 본계시(本溪市)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봉성시(鳳城市), 서쪽으로 요양시(遼陽市)를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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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사포 쓴 아가씨 面紗娘 안개 속 꽃 보듯이 병든 눈 탄식하니푸른 깁 무슨 일로 다시 머리에 썼나흐릿해도 오히려 추파282) 던진 줄 아는데춘심을 팔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네 霧裏看花歎病眸碧紗何事更籠頭矇矓猶認秋波動賣與春心不自由 추파 미인의 눈빛을 비유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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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 승지공이 차운한 시를 덧붙이다 2수 附伯父承旨公次韻【二首】 숲 정자 모여 얘기하다 돌아가길 잊으니돌 베고 누운 민둥머리 취한 뒤 들어보네봄꽃 피었다 다 졌어도 안타까워 마오뜰앞에 도성에서 옮겨 심어 놓았으니꽃이 진 사월에 옅은 녹음 있으니임하의 맑은 술동이 깊고 더욱 깊어라노래는 저녁에 부르게 하지 마오늙은이 고금의 감회 이기기 어렵다오 林亭會話却忘回枕石童頭醉後擡莫恨春花開落盡庭前移得洛陽栽無花四月有輕陰林下淸尊深復深歌曲莫敎當夕唱老翁難勝古今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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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재의 〈최노첨을 경계하다〉 시에 차운하다 次德哉警魯詹韻 노두가 어느 때에 〈북정〉을 읊었던가87)고향에선 봄빛이 매화를 저버렸네집 없이 삼 년이란 오랜 시간 객지살이 하였는데벗이 있어 그런대로 고향 그리는 정을 풀었노라돌아가는 꿈속에선 매양 하늘 밖에서 게으름 피웠는데여정은 대부분 눈 속에 가는구나서쪽 소식 누구에게 물을거나오직 변경 산에 뜬 밝은 조각달만 볼 뿐 老杜何時賦北征故園春色負梅兄無家久作三年客有友聊寬萬里情歸夢每從天外懶旅程多在雪中行西方消息憑誰問惟見關山片月明 노두가……읊었던가 노두(老杜)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별칭이다. 〈북정(北征)〉 시는 두보가 46세 때 지은 오언고시로,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만났을 때 행재소(行在所)인 봉상(鳳翔)에서 처자가 있는 부주(鄜州)로 가는 동안의 정경과 감회를 읊은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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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나무 접붙이기 接桃 봄바람이 네게 봄 꽃가지 하나 중매하니다른 나무에 시집가서 새 꽃을 피우네꽃은 말하지 않더라도 열매는 맺으니초궁의 식부인349)에게 비길 수 있겠네 東風媒汝一枝春嫁與他根作態新花縱不言猶有子楚宮堪比息夫人 초궁의 식부인 식부인은 식후(息侯)의 아내인 식규(息嬀)이다. 초자(楚子)가 식국(息國)을 멸망시킨 후 식규를 데리고 돌아왔다. 식규는 초나라로 온 뒤에 도오(堵敖)와 성왕(成王)을 낳았으나, 초자와 말을 하지 않았다. 초자가 그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나는 한 여자로 두 남편을 섬겼으니 비록 죽지는 못할망정 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莊公 1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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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 벗에게 부치다〉 시에 차운하다 次寄淮南友韻 고향 그리는 마음에 높은 누각에 기대고봄 생각에 풀향기 나는 물가에 서 있노라가고자 하지만 갈 수 없으니잠깐 떠나왔는데 오래도록 떠돌게 되었네풍진 세상 고향과 떨어져 있고노래하고 춤추는 이들 청루에 흩어져있네세상사는 흐르는 물과 같으니흘러가 붙잡을 수 없으니 어이하랴 鄕心倚高閣春思立芳洲欲往不得往薄遊成久遊風塵隔故國歌舞散靑樓世事將流水如何去莫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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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한양에게 부치다〉 시에 차운하다 次寄王漢陽韻 남쪽 마을과 북쪽 성곽술 익자 서로 부를 줄 아네신 거꾸로 신고17) 맞이하는 주인 반가워하고옷깃 당기며 손 붙잡는 여자아이 어여쁘구나잔치를 열어 푸른 풀 속에 앉으니달을 기다리며 파란 하늘 바라보네크게 취하여 돌아오는 저물녘사립문 건너에 강이 멀리 흐르네 南隣與北郭酒熟解相邀倒屣主人喜牽衣兒女嬌開筵坐碧草待月望靑霄大醉歸來暮柴門隔水遙 신 거꾸로 신고 급히 손님을 맞이하러 나가느라 신발을 거꾸로 신는다는 뜻으로, 매우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삼국지(三國志)》 권21 〈위서(魏書) 왕찬전(王粲傳)〉에 "왕찬(王粲)이 문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신발을 거꾸로 신고 달려가 맞이하였다[倒屣迎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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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서의 원운을 부기하다 附孫文恕韻 백만 호위군이 북쪽 변방을 진동시키니성대한 위엄을 먼저 길성 오랑캐에게 떨치네깃발은 동틀 무렵에 염천의 달을 가리고고각 소리는 새벽에 탑야의 산을 놀라게 하네군졸도 오히려 기꺼이 목숨 바쳐 싸우는데장군이 어찌 감히 살아서 돌아가려 하랴한나라의 옛 공업 이제부터 회복하리니미천한 신하 잠시도 한가롭지 못하다 어찌 한스러워하랴 百萬羽林動北關天聲先振吉城蠻旌旗曉蔽鹽川月鼓角晨驚塔野山士卒尙能甘死戰將軍何敢樂生還漢家舊業從今復肯恨微臣不暫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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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황269)의 서당 梁榥書堂 양군의 식감으로 하늘이 숨겨 놓은 장소를 찾아내어깊은 숲에 자리 잡아 초당을 지었어라천 년의 구름과 이내는 학을 타던 곳이요한 지역 산수는 와룡의 집이라겹겹의 띠집이라 성난 가을바람 두렵지 않고푸른 나무라 긴긴 여름날에 정말 좋아라독서 이외에는 아무 일도 없나니제비의 진흙이 텅 빈 들보에서 떨어지는 것을 때로 보노라 梁君眼力破天藏爲卜林幽作草堂千載雲煙乘鶴地一區山水臥龍庄重茅不怕秋風怒綠樹偏宜夏日長除却讀書無一事燕泥時見落空樑 양황 1575~1597.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학기(學器)이고, 호는 진우재(眞愚齋)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양홍주(梁弘澍)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8세의 나이로 아버지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경상도의 의병장 정인홍(鄭仁弘)에게로 가서 힘을 합하여 왜적을 물리치려고 했으나, 그는 몽진한 왕을 호종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임을 역설하여 의주행재소에 가서 왕에게 가져간 곡식과 물품을 바쳤다. 이후 경상도초유사 김성일(金誠一) 휘하에서 공을 세웠으며, 가재를 팔아 많은 화살을 준비하여 군비확충에도 일익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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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운하되, 수구에는 운자를 쓰지 않다 再次 不用首韻 이번에 마천령 밖으로 가니시중대와 원수대184) 있다오밥 짓는 연기 예로부터 남쪽으로 통했으니봄빛이 어찌 북쪽 변방에 이른 적 없으랴세류에 군영 열었으니 적을 물리친 이 누구인가185)낙매곡 피리로 부니 향기 나지 않네186)무심히 오고가는 것 내 우스우니옛일에 감회 일고 이별이 슬퍼 애간장만 끊어지네 此去磨天大嶺外侍中元帥有臺隍人烟從古通南國春色何曾到北荒細柳開營誰却敵落梅吹笛未聞香等閒來往吾堪笑感舊傷離秪斷腸 시중대와 원수대 시중대(侍中臺)는 함경북도 북청(北靑)에 있는 누대이고, 원수대(元帥臺)는 함경북도 학포현(鶴浦縣)에 있는 누대이다. 세류에……누구인가 세류영(細柳營)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한 문제(漢文帝) 때 흉노가 침범하자 이를 물리치기 위해 주아부(周亞夫)가 세류(細柳)에 주둔했는데, 문제가 시찰을 왔을 때 군령(軍令)이 없다는 이유로 황제의 출입을 제지할 정도로 군율(軍律)이 엄격했다. 이후 군율이 엄격한 군영이라는 뜻에서, 군영을 세류영 또는 유영(柳營)이라 하였다. 《史記 絳侯周勃世家 周亞夫》 낙매곡……않네 매화가 떨어져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낙매곡은 한나라 때 적곡(笛曲)에 〈매화락(梅花落)〉으로,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에 "황학루 위에서 옥젓대를 부니, 강성 오월에 매화가 떨어지는구나.[黃鶴樓上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라고 하였다. 《李太白文集 卷20 與史郞中飮聽黃鶴樓上吹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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