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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노첨의 시를 부기하다 附魯詹韻 묻노니, 그 어디에 봉래산 있는가난주를 타고 한번 왕래하고자 하노라평생에 이 일을 이룰 수 있으랴못가에서 술에 취하는 것만 못하네 問渠何處有蓬萊欲駕蘭舟一往來可使人生成此事不如池畔醉金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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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노첨이 물고기를 보내준 것에 사례하다 謝魯詹送魚 솔과 구름 속에 한가로이 누워 물고기 얻었으니어부인 벗이 이웃인 줄 알겠네고사리순이 아이손처럼 나오길 기다려내 청산의 봄 반쪽을 나누어 주리라 高臥松雲得海麟故人漁父認爲隣待看薇蕨兒拳作分我靑山一半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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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사하역을 떠나며 早發沙河 옛말에 사신길 걸음마다 풍광 좋다는데여기 오니 변방 시름 가을 들어 슬프구나마음 슬프니 관산곡283) 짓지 마소황성에 도착하여 따로 시 지으리 舊說西遊逐步奇此來邊思入秋悲傷心莫作關山曲行到皇州別有詩 관산곡(關山曲) 한(漢)나라 악부(樂府)의 횡취곡(橫吹曲) 이름인 관산월(關山月)로, 대부분 이별을 가슴 아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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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강녀의 망부석284) 姜女石 장성 끝나는 곳에 바위 우뚝 솟아 있으니돌성은 무너졌어도 한은 아직 이어지네정위 새로 변할 수 있다면이제부터 동해를 곧장 메우련만285) 秦城盡處石巍然石爛城崩恨尙綿可使化爲精衛鳥東溟從此便成塡 맹강녀의 망부석 진(秦)나라 때 범칠랑(范七郞)이 만리장성을 쌓으러 부역을 갔다. 그 아내 맹강(孟姜)이 겨울옷을 지어 남편을 찾아갔는데, 남편이 이미 죽은 뒤였으므로 맹강이 성 밑에서 곡을 하다가 망부석이 되었다고 한다. 《敦煌曲子詞集 擣練子》 정위……메우련만 정위(精衛)는 신화에 나오는 물새로, 염제씨(炎帝氏)의 작은 딸인 여와(女娃)가 동해에 놀다가 빠져 죽은 화신이라고 전해진다. 이 새는 원한이 사무쳐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물어다 동해를 메운다고 한다. 《山海經 北山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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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서로 가는 길에 상촌350)을 만났다가 증별하다 關西路中 逢象村贈別 함경도와 평안도로 가는 나그네 길에매번 서로 만날 때마다 조용하지 않네용모와 머리털 늙었어도 놀라지 말지니오직 마음만은 그대와 나 같아라 嶺北關西客路中每回相見未從容不須顏鬢驚衰變惟有心肝箇箇同 상촌 신흠(申欽, 1566~1628)의 호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숙(敬叔), 다른 호는 현옹ㆍ방옹(放翁),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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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연에 바람이 불어 이슬 방울이 떨어지다 碧荷風動露珠傾 방당 물줄기 가늘게 대나무 아래로 흐르고샘솟는 물에 어제 내린 비 새로 더해졌네마름과 연 천 줄기 맑고 잔잔한 물결에 솟아 있는데새벽 기운 자욱해 향기로운 안개 스미네밤이슬 연잎 위에 구슬처럼 엉기어여룡43)이 토해낸 듯 동글동글 맺혔네푸른 일산 높이 펼친 듯 위태롭기 쉬운 형세인데저물녘 갑자기 맑은 바람 만났도다완전히 둥글어 정처없이 절로 흔들리니가자마자 도로 오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네돛에 바람맞아 출렁이는 태을주44)요먼지 이는 버선으로 사뿐사뿐 가는 수선의 걸음이라45)처음에 처마 밑에 있을 적엔 천금처럼 아꼈는데46)끝에 누대에서 떨어질 적엔 깃털처럼 가볍게 여겼네47)구슬 던져 버리니 요 임금의 검소함 배우려 함이요48)옥을 부수니 범증의 노여움 만난 듯하여라49)낭랑한 낙숫물 곧 텅 비니토지신이 근심 머금고 감히 보호하지 못하네은자가 이것을 보고서 긴 생각에 잠기니멍하니 홀로 서 있자 호수에 날 저무네이에 조물주에게 깊은 뜻 있음을 알겠으니어리석은 자는 모르고 통달한 자는 깨닫지세상만사 이리저리 뒤집히나니가득찬 것이 본래 가장 두려운 법이라어찌하여 사람은 진실로 만족할 줄 몰라서끝내 명리 때문에 몸을 망치고 마는가집안에 가득한 금옥 지킬 수 없고득실은 연잎 위의 이슬과 같다네 方塘細通竹下流活水新添夜來雨芰荷千柄揷淸漣曉氣空濛襲香霧宿露凝成葉上珠團團宛出驪龍吐翠蓋高張勢易危向晩忽與淸風遇眞圓無定自搖搖纔去還來散復聚風帆蕩漾太乙舟塵襪輕盈水仙步垂堂初似惜千金墜樓終如輕一羽投珠欲學堯帝儉碎玉疑遭范增怒琅琅落水便成空富媼含愁不敢護幽人見之結長想蒼茫獨立湖光暮乃知造物有深意愚者所昧達者悟世間萬事有翻覆盈滿由來最可懼奈何人苦不知足畢竟身爲名利誤金玉滿堂不能守得失同歸荷上露 여룡 여룡은 검은색 용으로, 턱 밑에 진귀한 구슬을 감추고 있다고 한다. 《장자》 〈열어구(列禦寇)〉에 "천금의 구슬은 반드시 깊은 못 속에 숨어 있는 검은 용의 턱 밑에 있다.[夫千金之珠, 必在九重之淵, 而驪龍頷下.]"라고 하였다. 태일주 태일연주(太一蓮舟)로, 태을신(太乙神)에게 제사지낼 때 쓴 연꽃으로 만든 배이다. 수면 위에서 흔들리는 연잎을 태일연주에 비유한 것이다. 먼지……걸음이라 연의 자태를 신선에 비유한 것이다.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의 〈수선화(水仙花)〉 시에 "능파선자가 버선에 먼지를 날리면서, 물 위를 사뿐사뿐 달빛 아래 걷네.[凌波仙子生塵襪, 水上盈盈步微月.]"라고 하였다. 처마에……아꼈는데 《사기》 〈원앙열전(袁盎列傳)〉에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이는 처마 밑에 앉지 않는다.[千金之子, 坐不垂堂.]"라고 하였다. 이는 위험한 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계한 말인데, 여기서는 연잎 가장자리에 이슬이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는 모양을 형용했다. 누대에서……여겼네 연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석숭(石崇)의 애첩 녹주(綠珠)에 비유한 것이다. 석숭의 반대 세력이었던 손수(孫秀)가 녹주를 탐하여 집요하게 요구하였으나, 석숭이 끝내 받아들이지 않자, 손수는 석숭을 제거할 계책을 꾸몄다. 이 때문에 석숭이 반악(潘岳) 등과 정변을 도모하였는데 손수가 계획을 미리 알고 석숭을 소환하였다. 이에 석숭이 녹주에게 "내가 지금 너로 인해 죄를 얻게 되었다."라고 하자, 녹주는 죽음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한 뒤 누대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晉書 石崇列傳》 구슬……함이요 연잎의 이슬방울이 떨어진 것을 요 임금이 진주를 버린 일에 비유한 것이다. 요 임금과 순 임금이 벽옥(璧玉)을 산에 던지고 진주를 골짝에 던져서 진귀한 보물을 좋아하는 음탕하고 간사한 욕심을 막았다고 한다. 《資治通鑑 唐紀 太宗皇帝 貞觀10年》 옥을……듯하여라 연잎의 이슬방울이 떨어진 것을 범증(范增)이 옥술잔을 부순 일에 비유한 것이다. 범증은 항우(項羽)의 모신(謀臣)으로, 홍문(鴻門)의 연회에서 항우에게 유방(劉邦)을 죽이라고 간하였다. 항우가 이를 듣지 않자, 연회가 끝난 뒤 범증은 항우에게 받은 옥술잔을 부수었다. 훗날 한나라 유방이 형양(滎陽)에서 항우의 공격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진평(陳平)의 계략을 받아들여 항우가 범증을 의심하게 만들었는데, 항우의 의심을 받은 범증은 화가 난 나머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史記 項羽本紀》 《史記 陳丞相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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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짓다 又 침상 베갯머리 대나무 아래 샘과 가까우니밤비 내린 뒤 졸졸 물 흐르는 소리 들리네은자 일어나자 새로운 흥취 일어작은 못가에 지팡이 짚고 거니네못에 무엇이 있는가, 마름과 연 있다네푸른 연 깨끗이 서 있어 천 줄기 튼튼하네잔잔한 물결 동하지 않아 푸른 연잎 고요하고밤이슬 둥글게 맺히고 선장50) 평평하네여룡이 보배를 토하여 천진을 드러내고노방51)이 진주를 옮겨오니 밝은 달인 듯하여라자욱한 연기와 안개가 잘 보호해 주고저물녘에 갑자기 맑은 바람 생겨나누나태을주는 가벼우니 절로 흔들리고수선의 걸음 경쾌하니 얼마나 사뿐사뿐한가오자마자 도로 가고 흩어졌다 도로 모이니마치 조물주와 권형을 다투는 듯하여라매우 둥근 것은 본래 멈춰 있지 않으니달리는 형세 소반의 물 기울인 것과 비교해 어떠한가처마 밑에 있던 처음엔 수천 금처럼 여기다가52)누대에서 떨어질 적엔 곧 투신한 녹주처럼 가벼이 여겼네53)강직한 신하 손에서 옥잔 부서지듯 분분하고54)교인의 눈에서 눈물 떨어지듯55) 찬란하네낭랑한 낙수 곧 텅 비고하나하나 더해져 투명한 수정이 되었네강비는 패옥을 누구에게 풀어서 줄거나56)망상은 강에 임해 무엇을 하려는가57)못에 숨어 비록 초복으로 돌아갔으나58)바다로 들어가 연성59)을 버린 것 안타깝도다사물의 이치 곰곰이 생각하며 앉아서 탄식하니번복되는 것이 참으로 덧없는 세상 물정 같구나초로인생에 잠시 사는 몸으로명리의 장에서 다투고 또 다투네집에 황금을 쌓아 놓고60) 말로 구슬 헤아렸으니61)풀 움직이고 풍진 일어날 줄 어찌 알았으랴삼천 구슬 신발과 삼천 개 후추알하루아침에 남김없이 다 흩어졌구나당시에 단지 연에 맺힌 이슬의 위태로움만 말했으니배 가르는 우매한 계책62) 끝내 어찌 이룰 수 있으랴아이 불러 구슬 팔아 술 사오게 하니연 구경은 모름지기 큰 술잔에 걸맞으리 床頭枕近竹下泉夜雨餘涓流有聲幽人起來有新趣小池塘邊扶杖行池塘何有有芰荷碧藕淨植强千莖微波不動翠蓋靜宿露成團仙掌平驪龍吐寶見天眞老蚌輸珍疑月明烟光霧色好護持向晩忽有淸風生太乙舟輕自搖搖水仙步促何盈盈纔來還去散還聚似與造物爭權衡至圓本自無定住走勢如何盤水傾垂堂初似累金重墮樓旋覺投珠輕紛如玉碎鯁臣手粲若泣下鮫人睛琅琅落水便成空一一添作玻瓈泓江妃爲珮爲誰解罔象臨水將何營藏淵雖是反初服入海可惜遺連城細思物理坐歎息翻覆眞如浮世情人生草露片時身名利場中爭又爭屋頹黃金斗量珠寧知草動風塵驚三千珠履三百椒一朝散盡無餘贏當時只道荷露危剖身愚計終何成呼兒賣珠買酒來賞荷仍須稱大觥 선장 선인장(仙人掌)과 같은 말로, 한 무제(漢武帝)가 신선술에 미혹되어 동(銅)으로 선인(仙人)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손바닥에다 승로반(承露盤)을 떠받치게 하여 천상의 감로(甘露)를 받게 하였다. 《漢書 郊祀志》 노방 진주를 품고 있다고 하는 늙은 조개이다. 한나라 공융(孔融)의 〈여위단서(與韋端書)〉에 "뜻밖에 근래에 두 진주가 늙은 조개에서 나왔다.[不意雙珠, 近出老蚌.]"라고 하였다. 처마……하다가 연잎 가장자리에 맺혀 있는 이슬의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누대에서……여겼네 연잎에서 이슬이 떨어지는 모습을 석숭의 애첩 녹주(綠珠)에 비유한 것이다. 강직한……분분하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옥술잔이 부서지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강직한 신하는 범증(范增)을 가리킨다. 홍문(鴻門)의 연회에서 범증이 항우(項羽)에게 유방(劉邦)을 죽일 것을 간하였으나 항우가 이를 듣지 않자, 연회가 끝난 뒤 범증이 항우에게 받은 옥술잔을 부수었다. 《史記 項羽本紀》 교인……떨어지듯 이슬을 형용한 것이다. 바닷속에 사는 교인이 물에서 나와 인가에 머물면서 비단을 짜서 팔았는데, 떠날 때 주인에게 그릇을 달라고 하여 눈물을 흘려 진주를 만들어 주인에게 주었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續集 卷25 鮫人泣珠》 강비는……줄거나 이슬을 강비의 패옥에 비유한 것이다. 옛날에 정교보(鄭交甫)가 강한(江漢) 사이에 놀러 나갔다가 신녀인 강비(江妃) 두 여인을 만났는데, 정교보는 두 여인이 차고 있는 패옥(佩玉) 마음에 들어 그들이 신녀인 줄 모르고 명주를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두 여인이 자신들이 차고 있는 패옥을 풀어 정교보에게 주었다. 《列仙傳 江妃二女》 망상은……하려는가 황제(黃帝)가 적수(赤水)에서 현주(玄珠)를 잃어버렸는데, 아무도 찾지 못하고 상망(象罔)이 찾아냈다는 고사가 있다. 상망이 바로 망상(罔象)이다. 《莊子 天地》 초복으로 돌아갔으나 초복(初服)은 벼슬하기 전에 입는 옷으로, 벼슬을 떠나 처음 은거하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연성 연성벽(連城璧)의 준말로, 화씨벽(和氏璧)을 가리킨다.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에게 화씨벽을 15성(城)과 바꾸자고 청했기 때문에, 화씨벽을 연성이라 한다. 《史記 廉頗藺相如列傳》 쌓아 놓고 대본에는 '頹'로 되어 있는데, 문맥에 의거하여 '頹'를 '堆'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집에……헤아렸으니 전당호(錢塘湖) 일대를 지배하던 전씨(錢氏) 가문이 번창할 때에는 황금을 집에 쌓아 놓았다고 하는데, 송나라 소식(蘇軾)의 〈영은사에서 노니는데[遊靈隱寺……]〉시에 "집에 황금 쌓아 놓고 말로 구슬을 되더니, 운이 다함에 쪽지를 보내 부를 필요도 없어졌다네.[屋堆黃金斗量珠, 運盡不勞折簡呼]"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연잎 위에 이슬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을 형용하였다. 배를……계책 당 태종(唐太宗)이 시신(侍臣)에게 "내가 듣건대 서역의 장사꾼은 아름다운 구슬을 얻으면 배를 갈라서 그 속에 숨긴다 하니[剖身以藏之], 그런 사실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資治通鑑 唐太宗 貞觀 元年》 여기서는 연잎의 이슬을 온전히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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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인초63) 虞美人草 진나라 여인은 촉산 속에서 돌로 변하고64)제왕의 딸은 상강 가 대나무에 눈물 흘렸네65)정령이 사물에 의탁해 끝내 사라지지 않으니이 모종의 슬픔과 원한 천년만년 이어지네상심한 것으로는 또한 언덕 위 풀 있으니전생에 우미인이었다고 사람들이 말하누나가녀린 허리로 초왕에게 가장 어여쁨 받았으니66)팔 년 동안 전장을 따라다녔네 秦女化石蜀山中帝子泣竹湘江濱精靈托物竟不滅一般哀怨千千春傷心亦有原上草人道前身虞美人纖腰最怶楚王憐八載追隨戎馬塵 우미인초 우 미인(虞美人)은 항우(項羽)의 애첩이다. 항우가 유방(劉邦)에게 패하여 오강(烏江)에서 죽을 때, 우 미인은 그 전날 밤 항우가 준 칼로 자결하였는데, 그 뒤 우미인의 무덤 위에 풀꽃이 돋아났으므로 사람들이 우미인초(虞美人草)라고 불렀다. 이를 소재로 한 송나라 증공(曾鞏)의 〈우미인초행(虞美人草行)〉 시가 유명하다. 진나라……변하고 진 혜왕(秦惠王)이 촉왕에게 다섯 미녀를 바치자, 촉왕이 다섯 명의 역사를 보내어 맞아오게 하였는데, 미녀를 데리고 오다가 뱀이 산의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다섯 역사가 뱀을 끌어내었다. 그러자 산이 무너져 촉나라로 통하는 길이 생겼고, 진나라의 다섯 미녀는 산 위로 올라가서 돌로 변했다고 한다. 《藝文類聚 卷7》 제왕의……흘렸네 제왕의 딸은 요(堯) 임금의 두 딸이며 순(舜) 임금의 비(妃)가 된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가리킨다. 그들은 순 임금이 창오산(蒼梧山)에서 죽자 그쪽으로 달려가 슬프게 울어 눈물이 소상강 가의 대나무에 뿌려졌는데, 그 눈물로 대나무에 반점이 생기게 된 것을 소상반죽(瀟湘斑竹)이라 한다. 《博物志 卷8》 받았으니 대본에 '怶'로 되어 있는데, 문맥에 의거하여 '怶'를 '被'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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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석67) 叱石 금화산 속 양 치는 소년바로 금화산 아래 집에 있네하루아침에 양을 치러 산속으로 떠나금광초 잘못 먹고 넋을 단련했지형이 말하길 "아, 우리 아우 돌아오지 않고날 저무는데 양 또한 어디 갔는가?" 하였네찾아가자 아우만 보일 뿐 양은 보이지 않고아지68)에 봄풀은 절로 푸르네형은 아우가 이미 신선이 된 줄 몰랐으니양이 지금 돌로 변했을 줄 어찌 알았으랴산 동쪽에 드러누워 있는 것 내 양이니내 양을 내가 부르고 이어 채찍 휘두르네잠깐 사이에 우뚝한 돌부리 긴 수염으로 변하니더 이상 예전의 가지런한 흰 돌 아니어라삼백 마리 양 떼가 한꺼번에 일어나니소와 바꿀만한 양 없다고 누가 말하랴69)양이 처음에 돌로 변했을 적엔 이끼만 꼈었는데돌이 도리어 양이 되자 다시 털과 가죽 생겼네선가에선 양과 돌로 형체와 정신 뒤바뀌고이 세상에선 해와 달이 고금을 이루네천년 전 자취 양은 없어지고 말았으니돌인지 양인지 끝내 어떻게 가려내랴이교의 사람70)과 북평의 호랑이71)이 같은 괴이한 설은 풀기 어려울 듯하도다 金華山中牧羊兒乃在金華山下宅一朝牧羊山中去誤飡金光草鍊魄兄曰嗟余季不歸羊亦何之日之夕尋惟見季未見羊春草阿池自在碧阿兄不料弟已仙那識羊今化爲石山東僵臥是我羊我羊我叱仍揮策須臾犖角變長髥非復從前齒齒白三百維羣一時起誰謂無羊牛可易羊初化石但莓笞石反爲羊更毛革仙家羊石幻形神世界日月成今昔千年遺跡歸亡羊石耶羊耶竟何擇圮橋爲人北平虎一般怪說疑難釋 질석 돌을 꾸짖어 양을 만들었다는 '질석성양(叱石成羊)'의 고사를 말한다. 황초평(黃初平)이 15세에 양을 치다가 신선술을 닦으러 도사(道士)를 따라 금화산(金華山) 석실 속에서 수도하였는데, 40년 뒤에 형이 찾아와서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황초평이 백석(白石)을 향해 "양들아, 일어나라![羊起]"라고 소리치니, 그 돌들이 수만 마리의 양으로 변했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後集卷39 初平叱羊》 아지 가축을 기르는 곳을 의미한다. 《시경》 〈소아(小雅) 무양(無羊)〉에 "혹은 언덕에서 내려오고 혹은 못에서 물을 마시며[或降于阿, 或飮于池], 혹은 자고 혹은 움직이도다. 네 목동이 오매 도롱이를 메고 삿갓을 썼도다."라고 하였다. 삼백……말하랴 《시경》 구절과 《맹자》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시경》 〈소아(小雅) 무양(無羊)〉에 "누가 너더러 양이 없다 하리오? 삼백으로 떼를 지었도다.[誰謂爾無羊? 三百維群.]"라고 하였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선왕(齊宣王)이 흔종(釁鍾)에 끌려가는 소를 보고 측은히 여겨 양으로 바꾸라고 한 고사가 있다. 이교의 사람 장량(張良)이 하비(下邳)의 이교(圮橋)에서 한 노인을 만나 태공(太公)의 병법을 전수 받았다는 고사가 있다. 북평의 호랑이 한나라 이광(李廣)이 어느 날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우북평(右北平)의 바위를 범으로 보고서 활을 쏘았더니, 화살이 돌에 박혀 버렸다고 한다. 《史記 李將軍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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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무사로 연경에 가는 월사 이 상국 정귀 에게 주다351) 2수 贈辨誣使月沙李相國 廷龜 赴京【二首】 우리 성왕의 충정 중국 성황도 아시니변무사가 어찌 다시 갈 필요가 있으랴괜스럽게 우리 어진 정승 월사공께서일생토록 수고스럽게 시를 외워서지이번 사행 무슨 일로 또 이런 때 떠나는가어려운 일에 그대가 잘 변설할 줄 알아서지나 같은 이는 근년에 벙어리 되었으니말도 잘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시 지일 수 있으랴 聖王衷悃聖皇知辨使何須再去爲多事月沙賢相國一生勤苦誦夫詩斯行何事又斯時多難知君善說辭如我年來作喑啞不能爲語況能詩 변무사로……주다 1598년(선조31)에 명나라 사람 정응태(丁應泰)가 경리(經理) 양호(楊鎬)를 무고하였으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양호가 왜적을 물리치는 데 공이 있다고 하면서 비호하였다. 그러자 정응태가 이에 반감을 품고 우리나라를 무고하기를 "왜를 꾀어서 함께 중국을 침범하고 요하(遼河) 동쪽을 탈취하여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려 한다."라고 하였으며, 또 조(祖)니 종(宗)이니 하는 왕의 칭호를 가지고 무고하였다. 이때 이정귀가 〈무술변무주(戊戌辨誣奏)〉를 작성하여 진주 부사(陳奏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정응태가 무고한 사실을 밝혀 그를 파직시켰다. 《宣祖修正實錄 31年 9月 1日》 《燃藜室記述 楊鎬劾去遣使 辨誣條》 《月沙集 戊戌辨誣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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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수의 〈광릉사〉 시18)에 차운하다 次歐陽公廣陵寺韻 온갖 전투 겪은 장군 늙었지만허리에 찬 검은 아직도 남아있네돌아와 작은 방에 앉아비바람 부니 겹겹 문을 닫네강 가까워 안개 막 자욱하고산 깊어 해가 이미 저물었네일편단심으로 국가를 근심하여하나하나 살쩍이 희끗희끗 해지누나 百戰將軍老腰間劍尙存歸來坐一室風雨掩重門江近烟初瞋山深日已昏丹心憂大國一一鬢生痕 구양수의 〈광릉사〉 시 구양수가 쓴 원운의 제목은 〈광애사(廣愛寺)〉인데, 《농포집》에는 〈광릉사〉로 잘못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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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산 杏山 들판 드넓고 또한 언덕 높으니올라가 굽어보니 눈 가득 가을빛이네구름은 천 리 멀리 연이어 있고달은 고향과 타향의 근심 함께 비추누나담력은 검에 남아 있건만용모는 거울에 부끄럽네평소 사방을 경영할 뜻 두었는데오늘에서야 비로소 두루 살펴보노라 曠野亦高丘登臨滿目秋雲連千里色月共兩鄕愁膽氣龍刀在容華鵲鏡羞平生四方志今日始觀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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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성에서 최노첨을 작별하다 雙城別魯詹 말없이 그윽한 회포에 한 잔 술 드니용흥강 가에 해가 서쪽으로 지는구나만 겹 산에서 남쪽으로 떠나는 이 전송하는데천 리 떨어진 고향의 봄이 기러기 따라 북쪽으로 왔네계절의 경물과 세상 물정 모두 변했으니나라 은혜와 고향 생각에 함께 서성이네시국이 위급한데도 오히려 쌍성 다스리는 관원 되었으니명철한 임금이 재주 없는 자 버린다고 누가 말하랴 脈脈幽懷酒一盃龍興江上日西頹萬重山送人南去千里春隨鴈北來節物世情同變換國恩鄕思共徘徊時危猶佩雙城印誰道明君棄不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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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건원보에 이르러 옛일을 회상하다 到古乾元 懷古 선리88)의 강토가 철목89)과 잇닿아 있는데예전부터 화이(華夷)가 강 하나로 나뉘었지얼음 단단하니 어룡도 추위에 떨 줄 알겠고보(堡) 오래되었으니 새 지저귀는 소리만 들리네발해는 바람이 거세 흰 파도가 많고음산은 해가 멀어 날이 쉬이 어두워지네권하노니, 그대 다시 술 한 잔 드시고세상만사에 상심한 것 다시 말하지 마오 仙李疆連鐵木元向來夷夏一江分氷堅認有魚龍冷戍古惟聞鳥雀喧渤海風高多白浪陰山日遠易黃昏勸君更進一盃酒萬事傷心勿復言 선리 '선리'는 오얏나무 아래서 태어난 노자(老子)를 시조로 삼은 모든 이씨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완산 이씨(完山李氏)인 조선 왕실을 가리킨다. 철목 몽고족을 가리킨다. 몽고국을 건국한 칭기즈칸의 이름이 테무친(鐵木眞)이므로, 원나라 또는 몽고족을 '철목(鐵木)'이라 일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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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에 제하다 題柱 금우89) 가는 길 옥루90) 동쪽에서 나오고진나라 변새는 만 겹 숲으로 멀리 이어졌네남아의 가슴 속에 한 자루 장검 지녔으니이제 떠나면 공명은 손바닥 가리키듯 분명히 취하리라다시 올 적에 의당 비단옷 입고 오리니내 그렇지 못하면 다리 기둥의 글귀처럼 하리라91)아미산의 빼어난 기운이 인재를 낳았으니사마상여의 문재(文才)에 누가 짝하랴글솜씨는 삼협의 물을 거꾸로 쏟아낸 듯하고92)필력은 천근의 쇠뇌를 당길 듯하였으니풍류 있는 운치에 녹기금을 하사받고93)양대의 한줄기 비를 훔쳤네94)집은 그저 사방 벽만 있고 숙상구95) 헤졌는데가슴 속 문자는 오히려 기세가 성대했네곤붕96) 장차 벽해에 올 것이요봉황이 어찌 단혈산에 숨으랴97)동쪽으로 장안 바라보자 험한 길 이어지니어찌 돌아가 성주에게 구하지 않으랴채색 구름 사이의 백제성98) 돌이켜 생각하니한 필 말로 가는 행장 어찌나 쓸쓸한지물결에 누운 용처럼 긴 다리 가로 놓여 있는데다리 밑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라사람이 살아감에 어찌 흘러가 돌아오지 않는 물을 배우랴죽기 전에 돌아오는 것은 운수 있음을 알겠네지금 천자께서 현자를 급히 구하시니바람과 구름이 용, 범과 성대히 만났네99)하늘이 내게 주신 재주 필시 쓸 곳 있으리니어찌 울울하게 촉 땅에 있을 수 있으랴이번에 가면 마땅히 큰 금인 얻을 것이요100)허리춤에 한 장 두 자의 인끈 늘어뜨리리101)이 다리 곁에 수레가 나는 듯이 지나가면구경하는 자들이 담처럼 빙 둘러싸니고향 이웃은 옛 견자102)인줄 알아보고백성들은 지금의 수령 되었다 소리치리다시 찾아가면 응당 예전 자취 –원문 1자 결락- 있을 테니자획이 희미해도 발꿈치와 팔꿈치 분별하네103)아, 뜻을 두어 사업 끝내 이루었으니훗날 높은 수레 타고 물가에 왔네참으로 다리는 저버리지 않았는데 사람만 홀로 저버렸으니백발로 읊조리는 소리 참으로 괴롭구나 金牛路出玉壘東秦塞遙連萬重樹男兒肝膽一長釰此去功名指掌取重來當作衣錦人余所否者如橋柱峨嵋山秀鍾豪英司馬才華誰與伍詞源倒流三峽水筆力挽回千斤弩風情付與綠綺絃偸得陽臺一片雨家徒四壁鷫鸘弊文字胸中猶鬱怒鯤鵬將儀碧海鱗鳳凰寧藏丹穴羽長安東望鳥道通盍歸乎來干聖主翻思白帝彩雲間匹馬行裝何踽踽長橋橫作臥波龍橋下東流自今古人生肯學水不迴未死歸來知有數當今天子急賢良盛會風雲龍與虎天生我才必有用鬱鬱安能久西土玆遊當取印如斗腰下仍垂丈二組翩翩四蓋此橋邊會使觀者如墻堵鄕鄰識得舊犬子士女喚作今明府重尋應有往跡【缺】字畫依俙辨跟肘于嗟有志事竟成他日高車來水滸眞無負橋獨負人白頭之吟聲正苦 금우 촉(蜀) 지역의 금우협(金牛峽)을 말한다. 전국 시대 진 혜왕(秦惠王)이 촉을 정벌하고 싶었으나 길이 험해 정벌하지 못하자, 돌로 다섯 마리의 소를 만들어 촉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세우고 소의 항문 아래에 황금을 놓아두었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돌 소가 황금 똥을 눈다고 하자, 이 소문을 들은 촉왕은 천여 명의 군사와 다섯 명의 역사(力士)를 동원하여 성도(成都)로 운반해 갔다. 이 때문에 촉으로 들어가는 길이 뚫렸다. 《水經注 沔水》 옥루 촉나라 수도인 성도의 서북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내……하리라 공명을 이루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뜻이다. 한나라 때 촉군 성도 사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촉군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갈 적에 성도의 승선교(昇仙橋) 기둥에 "고거사마(高車駟馬)를 타지 않고는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라고 썼다. 《水經注 江水》 글솜씨는……듯하고 삼협에서 쏟아져 흐르는 물처럼 거침없고 웅장한 문장을 말한다. 삼협은 양자강(揚子江) 상류의 험난하기로 유명한 세 협곡으로, 구당협(瞿塘峽), 무협(巫峽), 서릉협(西陵峽)의 합칭이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취가행(醉歌行)〉 시에 "글 솜씨는 삼협의 물을 거꾸로 쏟아낸 듯하고, 필력은 천 명의 적군을 홀로 쓸어낼 기세로다.[詞源倒流三峽水, 筆陣獨掃千人軍.]"라고 하였다. 풍류……하사받고 사마상여가 〈옥여의부(玉如意賦)〉를 지어 양왕(梁王)에게 바치자, 양왕이 기뻐하여 사마상여에게 녹기금(綠綺琴)이라는 명금(名琴)을 하사했다. 《古琴疏》 양대의……훔쳤네 사마상여가 탁문군(卓文君)을 꾀어 부부가 된 일을 초 양왕(楚襄王)의 고사에 빗댄 것이다. 초 양왕이 고당(高唐)에서 놀다가 꿈속에서 무산(巫山)의 신녀를 만나 잠자리를 함께하였는데, 이별하는 즈음에 신녀가 "저는 무산의 양지쪽 언덕에 사는데, 아침이면 떠가는 구름이 되고 저녁이면 내리는 비가 되어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양대(陽臺)의 아래로 내려옵니다."라고 하였다. 《文選 卷19 高唐賦》 숙상구(鷫鸘裘) 숙상이란 새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으로, 사마상여가 몹시 가난할 때 입었던 옷이다. 사마상여가 일찍이 부인 탁문군(卓文君)과 함께 고향인 성도(成都)로 돌아갔을 적에 워낙 가난했던 탓에 자기가 입고 있던 숙상구를 전당 잡히고 술을 사서 탁문군과 함께 마시며 즐겼다는 고사가 있다. 《前漢書 司馬相如傳》 곤붕(鯤鵬) 북명(北溟)에 크기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는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그 물고기가 변하여 '붕(鵬)'이라는 새가 된다고 한다. 《莊子 逍遙遊》 봉황이……숨으랴 훌륭한 인재가 숨지 않을 것이란 의미이다. 단혈산(丹穴山)은 봉황이 산다고 하는 전설적인 산으로 단산(丹山)이라고도 한다. 《山海經 南山經》 백제성(白帝城) 사천성 봉절현(奉節縣) 동쪽 백제산에 있는 성으로, 매우 높고 가파른 모습이 두보(杜甫)의 시 〈백제성최고루(白帝城最高樓)〉에 잘 나타나 있다. 바람과……만났네 성군(聖君)과 어진 신하가 만났다는 의미이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雲從龍, 風從虎.]"라는 말에서 나왔다. 큰……것이요 높은 관직에 오를 것이라는 의미이다. 진(晉)나라 왕돈(王敦)이 반란을 일으켰을 적에 상서 좌복야(尙書左僕射) 주의(周顗)가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금년에 도적놈들을 죽이기만 하면 말만큼 큰 금인을 팔뚝에 차리라.[今年殺諸賊奴, 取金印如斗大繫肘.]"라고 하였다. 《晉書 卷69 周顗列傳》 허리춤에……늘어뜨리리 지방관이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서》 〈엄조전(嚴助傳)〉에 "폐하는 사방 한 치의 도장과 한 장 두 자의 인끈[丈二之組]으로 외방을 다스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견자(犬子) 사마상여의 아명(兒名)이다. 사마상여는 전국 시대 조(趙)나라 인상여(藺相如)를 사모하여 훗날 스스로 '상여'라고 개명하였다. 《史記 司馬相如列傳》 자획이……분별하네 글씨가 마멸되어 온전하지 않은 것을 비유한 말이다. 송나라 소식(蘇軾)의 〈석고가(石鼓歌)〉 시에 "흐릿하여 반은 이미 흉터나 굳은살 같고, 구불구불한데 그래도 발꿈치와 팔꿈치는 분별할 수 있네.[模糊半已似瘢胝, 詰曲猶能辨跟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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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밝고 꽃 지는데 또 황혼이 드네72) 14세에 승보시(陞補試)에서 장원을 한 시이다. 月明花落又黃昏【十四歲陞補壯元】 금옥에 주렴 드리우니 제비가 춤 멈추고사창에 해지니 이제 막 문을 닫네미인이 눈썹 찡그리며 황혼을 근심하니홀로 난간에 기대 눈물 머금은 흔적 있네임 그리워 차마 밝은 달 보지 못하는데낙화는 어째서 다시 황혼에 흩날리는가꽃이 오래된 가지에서 떨어짐은 첩의 신세 같고달이 찼다가 이지러짐은 임금 은혜와 같아라둥근 달 한번 이지러졌으니 언제나 차오를거나가지에서 떨어진 꽃 도와주기 어려워라이별한 마음 사물을 보고는 긴 생각에 잠기니묵묵히 그리워하는 마음 남모르게 녹이누나창 앞에 오랫동안 임금님의 왕래 끊겼으니궐의 뜰 적막하고 푸른 이끼만 가득하네오늘 밤에 어젯밤 뜬 달 다시 마주하고지난해 피었던 꽃 올해의 정원에 피었구나꽃 끝없이 피고 달빛 매우 밝은데몇 번이나 외로운 방에서 짝 잃은 원앙 슬퍼했나누가 새끼줄 끊어진 뒤 은병을 끌어올려 주려나73)한스럽게도 남은 목숨 한낮의 촛불처럼 꺼져 가누나74)앞뜰에선 노래하고 뒤뜰에선 춤추는데따로 그 누가 있어 임금님을 따르는가달 밝을 때 꽃 구경하며 즐거움 그지없으니깊은 궁전 외로운 첩의 원통함 누가 알랴문밖에 어가 지나가는 소리 어이 견딜꼬부질없이 왕림하신 임금님 서글피 바라보노라요금 소리 그치자 밤 더욱 깊어가고지는 달 희미하고 꽃은 말이 없구나 簾垂金屋燕舞罷日落紗窓初掩門佳人眉斂薄暮愁獨倚雕欄含淚痕思君不忍見明月落花何更飄黃昏花辭故條似妾身月有盈虧同主恩圓光一虧幾時盈落紅辭條難可援離心觸物結長想脈脈暗銷相思魂窓前久斷鳳輦來玉階寥落靑苔繁今宵還對昨夜月去年花發今年園花開無限月明多幾度孤房悲隻䲶銀甁誰引斷繩後晝燭恨殺殘生存前庭歌吹後庭舞別有何人隨至尊看花趁月樂未央深院誰知孤妾冤那堪門外度金輿悵望空自臨高軒瑤琴彈罷夜又深落月依依花不言 달……드네 당나라 두목(杜牧)의 〈궁원(宮怨)〉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새끼줄……주려나 임에게 버림받은 신세를 비유한 말이다.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우물 밑 은병을 끌어올리다[井底引銀甁)]〉 시에 "우물 밑에서 은병을 끌어 올리는데, 은병이 올라오려 하나 줄이 그만 끊어졌네.[井底引銀甁, 銀甁欲上絲繩絶.]"라고 하였다. 남은……가누나 한낮에 촛불을 켜도 그 불빛이 희미하듯 인생의 의미가 전혀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당나라 장적(張籍)의 〈남편이 전장에 나간 부인의 원통함[征婦怨]〉 시에 "남편은 전장에서 죽고 자식은 배 속에 있으니, 첩의 몸이 살아 있은들 대낮의 촛불 같구나.[夫死戰塲子在腹, 妾身雖存如晝燭.]"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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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무를 대신하여 이릉을 부르다75) 代蘇武招李陵 아, 나의 벗 이소경76)이여나라에 목숨 바치는 일 그대가 능한 바로다때가 불리하여 일이 이미 어그러졌으니지난 일은 어찌할 수 없으나 다가올 일은 징계할 수 있네부르고 부르는데 어찌하여 일찍 돌아오지 않는가전화위복이 되어 시의를 타게 되리라그대 집안 진농에 굳센 기운 넉넉하니하물며 비장군의 손자임에랴77)만 리에 창 휘두르며 호랑이 굴에 들어갔으니천상에 날아오르는 가을 매와 같았네오천의 천자 군대는 의용을 지녔고십만의 오랑캐 기병은 날쌤을 자랑했지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듯 대적할 수 없는 형세이니나라에 충성을 바치려는 초심에 괜스레 가슴 쳤네어찌 위율78)을 따라 목숨을 보존하랴조말79)과 명성 같아지길 맹세했다네형법에 연좌할지 말지는 어찌할 수 없으니성주께서 불쌍히 여겨주심은 얼마나 사사로운가음산80)은 본래 한나라 일광과 떨어져 있는데기인은 이미 하늘이 무너질까 곡을 했네81)임금께 충성하지도 어버이께 효도하지도 못했으니오랜 세월 흐르며 나그네 근심만 더하였네그대 아는 이 없는데 하물며 그대 마음을 알랴그대 알고 그대 마음 아는 이는 오직 이 벗 뿐남들은 모두 의심하나 나는 불러주니그대를 믿지 않으면 내가 누구에게 기대랴천 마디 말이 간절한 충고만 못하니어찌 굳이 임금님의 조서로 부를 것 있으랴그대가 오고 안 오는 건 다시 말하지 않겠으니그대에게 또한 내 일찍이 말했었지포로 되었으니 신하의 절개 지켰다 감히 말할 수 있으랴사명(使命)을 저버렸으니 국법으로 다스려야 마땅하네남은 목숨 아침이슬과 함께 사라지지 않아대뢰로 선황의 능에 와서 알현하네투항하도록 회유해 일찍이 육가의 공을 능멸했고82)관작과 포상은 미워하는 옹치에게 먼저 내렸네83)조정은 본래 공신에게 박하게 대하지 않나니그대 같은 이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을 어찌 의심하랴돌아와 한나라 신하가 되고 오랑캐 되지 말지니차마 전취를 걸치고 비단옷을 버릴 수 있으랴84)천산85)에는 자고로 세 길이나 눈이 쌓여 있고발해는 봄이 없이 천 척 얼음이 얼어 있네종남산과 위수를 꿈에서도 보지 못하리니지금 꽃과 버드나무의 봄 풍광 어려 있다오바람에 의지하는 말의 본성 진실로 빼앗을 수 없고해 향하는 해바라기 마음 오히려 늘 있다네사람 마음이 어찌 사물만 못해서야 되겠나그대 마음 생각하니 슬픔 가눌 수 없구나숫양 젖 않 나와도 또한 돌아올 수 있었으니86)그대 높은 누대에 올라 고향 바라볼 것 없다오올 적에 미리 편지로 내게 알려 주게나흰 기러기는 층층 관산에 막히지 않으리만나서 이별할 때의 옷 다시 잡으리니십구 년의 일이 등잔 아래로 돌아가네그대와 함께 태사공87)을 같이 위로하니술동이 안의 술 승수(澠水)88)처럼 깊네 吁嗟吾友李少卿許國忘身君所能時乎不利事已謬往者難追來可懲招招胡不早歸來轉禍爲福時宜乘君家秦隴勁氣饒況是飛將之雲仍橫戈萬里入虎穴有如雲路揚秋鷹天兵五千負義勇虜騎十萬誇驍騰强呑弱肉勢不敵報國初心空撫膺寧從衛律保軀命誓與曺沫同名稱常刑無奈毋隨坐聖主何私應見矜陰山自隔漢日光杞人已哭皇天崩忠君孝親兩孤負歲月坐與羈憂增無人知子況知心知子知心惟爾朋人皆見疑我見招子如不信吾誰憑千言不如忠告切十行何須恩詔徵君來不來言不再爲君聊亦陳吾曾爲俘敢言臣節全辱命宜將王法繩殘生不與朝露晞大牢來謁先皇陵招降曾蔑陸賈功爵賞先於雍齒憎朝廷本非薄功臣如子何疑雲路登歸爲漢臣否爲夷忍荷氈毳遺紈繒天山自古三丈雪瀚海無春千尺氷終南渭水夢見未只今花柳韶光凝依風馬性固莫奪向日葵心猶有恒人情豈可不如物想子心懷悲不勝羝羊不乳亦可歸望鄕高臺君莫升來時豫將書報我白鴈不阻關山層相迎重把別時衣十九年事歸挑燈與君同慰太史公尊中有酒深如澠 소무를……부르다 한나라 장군 소무(蘇武)가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가서 억류되어 있다가 19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갈 때, 흉노에 항복하여 그곳에 살고 있던 한나라 장군 이릉(李陵)과 시를 주고 받았다. 《前漢書 李廣傳》 이소경 소경(少卿)은 이릉의 자이다. 이릉은 한 무제(漢武帝) 때 흉노와의 전쟁에 기도위(騎都尉)로 출전해서 5000명의 보병으로 흉노의 8만 기병과 8일 동안 싸웠는데, 결국 중과부적인 데다 무기와 식량도 떨어져서 흉노의 선우에게 투항하여 오랑캐 땅에서 일생을 마쳤다. 《前漢書 李廣傳》 그대……손자임에랴 이릉이 농서(隴西) 출신이므로, 진농이라 한 것이다. 이릉의 조부인 이광(李廣)도 한나라의 명장으로 '비장군(飛將軍)'이라고 불렸다. 위율(衛律) 위율은 소무의 벗으로, 흉노에 투항하여 부귀를 누렸다. 소무가 흉노에 사신으로 갔을 때, 위율이 소무에게 흉노에 투항하여 안락하게 살자고 회유하자, 소무는 회유를 거절하고 위율을 꾸짖었다. 《前漢書 蘇建傳》 조말(曹沫) 조말은 춘추 시대 노나라 장수이다. 제 환공(齊桓公)이 노나라를 침공했을 때, 조말이 제나라 군대와 세 차례 싸워 모두 패배하자, 노 장공(魯莊公)이 수읍(遂邑)을 바치는 조건으로 화해를 청하였다. 제 환공이 그 뜻을 받아들여 규구(葵丘)에 모여 맹약을 막 체결하려 할 때, 조말이 단상(壇上)에서 제 환공에게 비수를 들이대며 협박하여 빼앗긴 노나라 땅을 돌려받았다. 《史記 曹沫列傳》 음산(陰山) 흉노족의 땅에 있던 산으로, 현재 내몽고(內蒙古)의 자치구(自治區) 남쪽으로부터 동북쪽으로 내흥안령(內興安嶺)까지 뻗어 있는 음산산맥(陰山山脈)을 가리킨다. 기인은……했네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의미이다. 기(杞)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여 침식(寢食)을 전폐했다는 고사가 있다. 《列子 天瑞》 투항을……능멸했고 흉노의 선우가 이릉에게 항복을 종용하여, 이릉이 사신으로 온 것을 능멸했다는 뜻이다. 육가(陸賈)의 공은 사신의 임무를 완수했음을 뜻하는 말로, 사신으로 남월(南越)에 가서 남월의 왕 위타(尉他)로 하여금 칭신(稱臣)하도록 한 일이 있다. 《史記 李將軍列傳》 《史記 陸賈列傳》 관작……내렸네 소무가 자신을 옹치(雍齒)에게 빗대어 자신이 먼저 한 소제(漢昭帝)의 부름을 받아 한나라로 돌아가게 된 것을 겸손하게 표현한 것이다. 옹치(雍齒)는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었는데, 아직 제후로 봉해지지 못한 여러 장수들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장량(張良)의 계책에 따라 그를 먼저 십방후(什方侯)에 봉하였다. 《史記 留侯世家》 차마……있으랴 오랑캐가 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전취(氈毳)는 모전(毛氈)으로 지은 털옷으로, 중국 북방의 융적(戎狄)이 입었던 옷이다. 천산 기련산(祈連山)으로, 흉노족이 주로 살던 북쪽 변방에 있는데 흉노족은 이 산을 천산(天山)이라 하였다. 여름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숫양……있었으니 소무가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구금되어 있을 때, 선우가 소무를 북해(北海)로 옮기고 양을 기르게 하며 "숫양[羝羊]의 젖이 나오면 돌려보내 주겠다."라고 했다. 그 뒤 소무는 갖은 고생을 하며 19년 동안 머물러 있다가 한 소제 때 고국으로 돌아왔다. 《漢書 蘇建傳》 태사공 사마천(司馬遷)을 말한다. 이릉이 흉노에게 항복하자 모든 사람이 이릉을 비난하였는데, 오직 사마천만 그의 신의를 인정하여 변호하다가 한 무제(漢武帝)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宮刑)을 당했다. 승수(澠水) 술이 많음을 형용한 말이다. 춘추 시대에 진후(晉侯)가 제후(齊侯)에게 연회를 베풀었을 때 투호(投壺)를 하면서 서로 응답하며 제후가 "술은 승수와 같고 고기는 언덕과 같다.[有酒如澠 有肉如陵]" 하였다. 《春秋左氏傳 昭公 12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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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계에서 의주로 떠나는 부경사에게 시를 부쳐 작별하다 在江界 寄別赴京使發義州 사헌부 사간원 제공들 다 시를 잘 외니밝은 시대에 관원이 되어 문사가 성대하구나나처럼 재주 없는 자는 끝내 쓸모없고사신 임무는 그대가 아니면 또 그 누가 있겠나세상사는 본래 구름 따라 변하기 쉬우니객지의 소회에는 오직 술이 제격이네멀리 이별의 눈물 가져다 강가에 뿌리니의주에 이르렀는지 아는가 모르는가 臺省諸公盡誦詩策名昭代盛文詞不才如我終無用專對非君更有誰世事自隨雲易變客懷惟與酒相宜遙將別淚臨江灑到得龍灣知未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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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으로 가는 서장관 박호188)를 증별하다 贈別書狀朴箎赴京 문채와 풍류 세상에 보기 드문 영웅이니젊은 나이에 성가가 도성을 진동했도다명성 높아 황금방에서 일등을 차지했고189)길은 아득히 백옥경190)까지 삼천리라요동 바다는 기운 무더워 궂은비 많이 내리고연경 산은 달 어두워 장기(瘴氣) 비껴 있네작별할 제 이별의 한 말할 필요 없으니단지 평안하라 말하며 먼 긴 증별하네 文彩風流間世英妙年聲價動王城名高第一黃金榜路逈三千白玉京遼海氣蒸蠻雨濕燕山月黑瘴雲橫不須臨別談離恨唯說平安贈遠行 박호(朴箎) 1567~1592.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대건(大建)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26세로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상주에서 싸우다가 윤섬(尹暹)·이경류(李慶流)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황금방에서 일등을 차지했고 황금방은 과거 급제자 명단을 게시하는 방(榜)이다. 박호는 1584년(선조17)에 치러진 갑신친시(甲申親試)에서 갑과(甲科) 장원을 차지했다. 백옥경 황제가 거처하는 도성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명나라 황제가 사는 북경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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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제목을 잃다 失題 검은 머리의 재상을 옛날에 영광이라 칭하였나니더구나 태평시절 제일가는 명성으로 손꼽힘에랴예전엔 은대를 맡아 북궐에 -원문 1자 결락-거듭 옥절 지니고서 영남을 다스렸네민풍은 일찍이 감당의 집을 노래하였고238)군무는 세류영239)을 겸하여 행하였네한번 형주를 알게 된 것240)도 지금 이미 늦었는데만약 헤어진다면 그 마음 더욱 아쉬우리 黑頭之相古稱榮況策淸時第一名舊掌銀臺【缺】北闕重携玉節按南溟民風曾詠甘棠舍軍務兼行細柳營一識荊州今已暮若爲離別更關情 감당의 집을 노래하였고 《시경·소남(召南)》 〈감당(甘棠)〉에 "무성한 팥배나무를, 자르고 베지 말라. 소백이 초막으로 삼으셨던 곳이니라.[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라고 하였다. 이는 주나라 소공(召公)이 남국(南國)을 순행하며 문왕의 정교(政敎)를 펼쳤는데, 그가 떠난 뒤에 백성들이 그를 사모하여 그가 자주 쉬던 감당 나무를 베지 말자며 읊은 노래이다. 흔히 지방장관의 치덕(治德)을 칭송할 때 '감당'이란 말을 사용한다. 세류영 한 문제(漢文帝)가 여러 군영(軍營)을 순찰하는 중, 다른 곳에서는 모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지만, 주 아부(周亞夫)의 세류영(細柳營)에 갔을 때는, 군문 도위(軍門都尉)가 장군의 영(令)이 없다고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사절(使節)을 보내어 주 아부에게 통한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며, 군중(軍中)에서는 말을 달리지 못한다고 하여, 문제가 말고삐를 당겨 천천히 다녔고, 본영으로 가 주 아부와 군례로 서로 인사한 다음 돌아갔는데, 문제는 아부 군중의 이러한 일을 도리어 칭찬하였다는 것이다. 《십팔사략(十八史略)》ㆍ《서한기(西漢記)》. 한번……것 훌륭한 현인을 만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당(唐)나라 원종(元宗) 때 사람인 한조종(韓朝宗)이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 이백(李白)이 그에게 보낸 편지에 "살아서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질 것이 아니라, 다만 한 번 한 형주를 알기 원한다."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後集 與韓荊州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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