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9212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기해봉사 【선조 32년(1599) 8월 2일, 전 별좌로 산거(散居)해 있을 때.】 己亥封事 【宣祖, 三十二年八月初二日, 以前別坐散居時.】 삼가 아룁니다. 옛날 제왕은 어려움을 구제하고 막힌 것을 제거하는1) 때를 당하여 하늘의 뜻이 이미 돌아왔다고 여기지 않고 천명을 받들어 따르는2) 정성을 더욱 생각하였으며, 인심이 이미 안정되었다고 여기지 않고 위로하며 기뻐하는 도리를 더욱 지극히 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 품은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깨우쳐 이끌어준 뒤에야 아래에서 막히는 마음이 없고, 원통함을 풀어줄 수 있다면 반드시 씻어준 뒤에야 위에서 슬퍼하는 환란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이요,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하늘과 사람의 사이입니다.지금 우리나라는 막힌 운수가 다시 형통하여 흉악한 적이 물러가 변방의 경계가 조금 느슨해졌고, 세자3)가 탄생하는 상서를 맞아 경사가 종묘사직에 이어졌으니, 오늘날 하늘의 뜻이 보살펴 도와주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군신(君臣)을 거짓으로 속여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4) 통쾌하게 분별하니 신민(臣民)은 서로 기뻐하고, 전쟁의 아픔에서 막 일어나 사졸들이 편히 쉬게 되니5) 오늘날의 인심이 대체로 안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뜻이 이미 돌아오고 인심이 이미 안정되었는데 전하께서 정사를 근심하고 부지런히 하는 마음이 하나같이 불쌍히 여기고 슬퍼하는 마음에서 나와 백성의 괴로움을 돌보고 날마다 조세를 덜어 감면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며, 하늘의 재앙을 두려워하여 수신(修身)하고 반성하는 도리를 더욱 부지런히 하시니, 이것은 바로 성탕(成湯)이 백성과 함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성대한 마음6)인 것입니다. 마땅히 한 사람의 백성과 하나의 사물도 은택을 입지 않음이 없으나 홀로 역적의 변란에 갑자기 걸려 황천에서 원통함을 품고 있는 사람이 지금까지도 억울함을 깨끗이 씻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하늘과 사람이 감응한 바를 성상께서 마땅히 측은하게 생각하실 바가 아니겠습니까?아! 지난해 국운이 불행하여 역적의 변란이 사대부의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정여립은 당초에 불을 지르고 사람을 겁박하는 도적이 아니어서 왕망(王莽)7)처럼 세상을 속이는 교묘한 재주를 끼고, 육당(陸棠)8)처럼 착한 척하는 명성을 가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온 나라의 선비들 중에 그 이름을 알거나 그 얼굴을 보지 못한 자가 없었는데, 겸허하거나 선을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속임을 당하였으니, 그 극악무도한 형태가 이 지경에 이를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꿰미에 가득 찬 죄가 갑자기 천만 뜻밖에 일어나니, 당시 속았던 선비들은 마음으로 놀라고 뼛속까지 통분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자신들이 밝지 못했던 죄를 후회하였습니다. 성상께서 밝게 살피고9) 널리 비추시어 거울과 저울대처럼 스스로 바르게 하고, 일찍이 옥과 돌이 함께 불타는 것을 아프게 여기시어 요수(要囚)10)를 크게 결단할 때 더욱 간절하고 신중히 분별할 것을 생각하셨으니 어찌 청명한 아래에서 원통한 마음을 품은 자가 있었겠습니까?다만 간신 정철(鄭澈)은 사납고 고약한 성질로서 잔인하고 독한 마음을 품고, 겉으로는 희학(戱謔)과 방탕으로 가식을 떨지만 속으로는 시기심이 가득하니, 맑은 의논에 용납되지 않아 항상 불평하는 마음을 품고 몰래 그 틈을 엿보아 반드시 보복하고자 하더니 오늘에야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겨 몸소 심문하는 관원이 되어 일망타진할 계책을 만들었습니다. 평소에 조금이라도 흘겨보는 눈초리가 있는 자는 은밀하게 경박한 무리를 사주하였으니, 소장(疏章)에 나오지 않으면 반드시 대론(臺論)11)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만약 하늘같은 성상이 아니었다면 당대의 충성스럽고 현명한 사람 중에 반드시 남은 자가 없었을 것이니 당시의 일이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그 당시 원통함을 안고 죽음에 나아간 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신들이 거주한 도내(道內)에서 가장 원통한 자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정개청은 진실한 실천으로 덕이 완성되었고 행동은 존엄하였으며 한결같이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학문을 따라 사도(斯道)를 밝히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습니다. 일찍이 호남 일부 선비들의 습관이 간신 정철에게 물들어 오로지 교만하고 포학하기에만 힘쓰고 의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 걱정이었으니, 어떤 이는 스스로 절의를 표방하였으나 명교(名敎)12)에는 전혀 몽매하였고, 어떤 이는 청담(淸談)을 흠모하고 본받는다고 하나 실은 이록(利祿)을 탐하였습니다. 그 귀결점을 돌아보면 모두 세교(世敎)에 해로움이 있기 때문에 정개청은 매번 이를 일세(一世)를 그르치는 폐해라 여겨 후학의 폐단이 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급기야 《주자어류(朱子語類)》13)를 읽다가 혹자가 이천(伊川)의 말을 인용하며 "진송(晉宋)의 청담(淸談)이 동한(東漢)의 절의(節義)로 인하여 한번 물결이 쳐서 이에 이르렀다."고 하자, 주자(朱子)가 "동한에서 절의를 숭상할 당시에도 청담과 같은 의사가 본래 그 속에 들어 있었다. 대개 당시 절의를 숭상하는 사람들은 온 세상을 거만하게 흘겨보고 조정을 더럽게 여기는 뜻이 있었는데, 이러한 의사에서 자연히 천하를 경시하는 마음이 있게 되어, 얼마 있다가 청담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14) 또 "절의 있는 선비는 진실로 마땅히 말할 지위에 있지 않았으니, 재앙에 이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하였습니다.15) 또 "후한(後漢)의 명절(名節)이 말년에 이르러서는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기는 폐단이 있었다. 이것이 그치지 않고 쌓이면 그 폐단이 반드시 허탄(虛誕)함에 이르러 노장(老莊)으로 들어가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16) 또 "진송(晉宋)의 인물이 비록 청고(淸高)한 것을 숭상한다고 말하였으나 개개인마다 관직을 탐내었으므로 이쪽에서는 청담을 말하지만 저쪽에서는 일면 권세를 부리며 뇌물을 받았다."라고 하였습니다.17) 정개청은 이 주자의 논설로 인하여 진・송 시대 청담의 폐해를 밝혀 호남의 선비 습관에 대한 폐단을 구제하려 한 것이었습니다.그러나 간적(奸賊)은 평생 심술이 군자의 올바른 견해에 드러남을 미워하여 은밀히 죽이려는 마음을 품었으되 엿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역적의 변란이 일어나자 간적은 본도(本道)에서 행동에 검속(檢束)이 없고 망령된 홍천경(洪千璟),18) 임회(林檜)19)와 같은 무리들을 사주하여 이에 정개청이 저술한 논설에 임의로 '배(排)'자를 더하여 배절의(排節義)20)라 지목하고, 유생들의 공론으로 빙자하여 상소를 올려 모함하니, 일시에 이름난 선비들이 모두 그 상소에 들어가 거의 한 그물에 모조리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성상이 실상을 밝게 살핌을 힘입어 상소의 앞부분에 이름을 올린 10여 명을 잡아와서 장차 무함한 죄를 다스리려고 하였으나, 정철이 대간(臺諫)을 사주하여 이를 막고 도리어 정개청이 저술한 절의설에 대해 엄한 형벌을 내릴 것을 청하여 마침내 먼 변방에서 죽게 하였으니, 천지 사이의 원통함 중 무엇이 이보다 더할 수 있겠습니까?아! 하늘은 푸르지만 말이 없고 죽은 사람 또한 구천에서 스스로 밝히지 못하니, 신들이 청컨대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그가 지은 글의 뜻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그 글의 첫머리에 "동한의 절의를 공명(功名)과 비교한다면 그 고상함이 오히려 완고한 자를 격동시키고 나약한 자를 일으킬 수 있으며, 진송의 청담을 이익만 도모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 기개가 또한 세상의 마음을 바로잡고 외물을 진정시킬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그는 참된 절의를 비방한 것이 아니고, 다만 그 말류의 폐단을 구제하려 한 것이 분명합니다. 또 이르기를 "그 처음을 살펴보면 모두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학문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니, 절의라는 것은 바로 명덕(明德) 가운데 한 가지 일이요, 명덕이라는 것은 바로 절의의 근본인 것입니다. 만일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명덕(明德)을 알게 하면 환란에 임하거나 생사의 기로에 처할 때에 의리가 있음을 알고 이욕이 있음을 알지 못하며, 임금이 있음을 알고 자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며, 절의에 대해 기약하지 않아도 높은 절의가 곧바로 해와 달과 함께 다투어 빛날 것이 분명합니다. 또 "이륜(彝倫, 사람으로서 떳떳이 지켜야할 도리) 밖에서 독선(獨善)하며, 자신을 단속하고 예방하는 절도를 스스로 방일(放逸)한 것은 말세에 숭상하는 일이요, 성현의 중화(中和)하는 도(道)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중화(中和)의 두 글자는 만 가지 선(善)이 구비되어 오직 요(堯), 순(舜), 공자(孔子), 맹자(孟子)만이 해당할 것입니다. 만일 자식이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 신하가 신하된 도리를 다하여 삼강오륜의 도리에 이르기까지 각각 그 마땅함을 얻지 아니함이 없으면 곳곳마다 중도(中道)를 얻어 중화(中和)라고 말할 수 있으니, 이 어찌 절의를 버리고 말한 것이겠습니까? 이 두어 조목을 가지고 그 뜻을 궁구해 보면 그가 저술한 논설은 정자·주자가 남긴 의론을 조술(祖述)21)하여 절의의 근본을 북돋고 후세에 허황되고 실상이 없는 폐단을 구제하려 한 것이니 뜻이 지극히 깊고 간절합니다. 그러나 도리어 간적이 중상모략하는 자료가 되어 사방에 방문(榜文)을 게시하여 온 세상의 이목을 어지럽히기게 이르렀으니, 어떻게 통분함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아! 고금 천하에 비록 사림의 화가 많이 있었으나, 어찌 오늘날처럼 참혹함이 있었겠습니까? 정개청은 머리가 세도록 경서(經書)를 연구하면서 산림에 자취를 감춰 본래부터 역적과는 서로 접촉하지 않다가 계미(癸未 1583)년에 사서 교정 낭청(四書校正郞廳)으로 공무를 보는 좌석에서 함께 나란히 하고서야 비로소 그 얼굴을 알았으나 갑자기 어버이 병환으로 먼저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그 교분이 매우 얕았으며, 마침 동료였기 때문에 편지로 서로 안부를 물은 것이 겨우 두 차례였을 뿐 이것은 마음을 비우고 있다가 속임을 당한 소치에 불과하니 한때 사대부가 살피지 못한 공죄(公罪)입니다.그 아우 정대청(鄭大淸) 또한 일찍이 학문에 종사하여 행실이 효우(孝友)에 독실하였는데, 형이 무고하게 죽은 것을 애통하고 신원(伸冤)될 것을 바라며 상복을 입고 슬퍼하다가 파리하여 장차 죽을 지경에 이른 것이 지금 10년의 오랜 세월에 이르렀으니, 대개 보고 들은 자라면 누구인들 오열하며 상심하지 않겠습니까? 신들이 15~6세 때로부터 일찍이 외종숙(外從叔) 유희춘(柳希春)22)에게 수학하였는데, 유희춘은 정개청을 함양한 공력이 깊어 마땅히 후배들의 사표(師表)가 될 것이라 여겨 신들에게 빨리 가서 따르도록 권하였으니, 신들이 마침내 자신의 몸을 맡겨 스승23)으로 섬기고 따른 지 거의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가 외우고 강론하는 것은 《소학(小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육경(六經)의 책에 지나지 않았고, 그가 강론하며 밝혔던 것도 다만 인(仁)·의(義)·예(禮)·악(樂)·천리(天理)·인욕(人慾)을 분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귀결점을 살펴보니 신하된 자는 충성하고 자식된 자는 효도하라는 것 아님이 없거늘, 어찌 감히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부하고 이미 죽은 스승을 두둔하여 성상을 기망하고자 하였겠습니까?삼가 생각건대 스승과 제자의 의리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떳떳한 본성에 근거하여 차마 존망(存亡) 때문에 그 마음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들은 망령된 생각에 사유(師儒)가 역당(逆黨)에 연좌됨이 진실로 사문(斯文)의 성쇠와 치도(治道)의 고하(高下)에 관계된다고 여겼으므로 지난 을미년(1595) 봄 신들이 감히 발을 싸매고 천 리 길을 와서 구중궁궐에 원통함을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성상께서 소원하고 미천한 신하의 말을 굽어 살피어 채택하여 주시고, 이에 지당한 의론이라고 하유(下諭)하시니, 정녕 혈기 있는 모든 이들 중에 흥기하고 감격하여 울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당시에 대신(大臣)의 회계(回啓)24)하는 말이 애매모호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성상께서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뜻이 조정과 재야에 명백히 선포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 조정의 의론과 대각(臺閣)의 논의가 지성으로부터 나와 기필코 국시(國是)25)를 정하고자 하였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였으니, 인심이 더욱 막히고 사론(士論)이 더욱 격절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아! 10년이면 반드시 회복하는 것은 천도(天道)이며, 민멸되었다가도 다시 펴지는 것은 공론입니다. 지난날 다행히 하늘이 성상의 마음을 열어 민심을 통촉하시어 당시에 모함 받아 귀양 갔던 자들이 모두 용서받고,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원통함을 풀어 높은 벼슬의 포증(褒贈)이 이미 최영경에게 더하였으나, 유독 정개청만은 아직 은전이 늦어지고 있으니, 어찌 오구(梧丘)26)가 구천에서 눈을 감지 못할 뿐이겠습니까? 민심이 꽉 막히고 선비의 기상이 사라져 천하의 어짊이 이에 이르러서 유감이 없지 않을까 두렵습니다.신들이 지난 사적을 살펴보니 동탁(董卓)의 화27)가 바야흐로 커질 때 식자들은 금고(禁錮)의 형벌을 풀어줄 것을 급선무로 삼았고, 백안(伯顔)의 난이 비로소 성대했을 때 왕응린(王應麟)은 제왕(濟王)의 후손 세울 것을 청하였으니,28) 한두 명의 군자가 원통함을 머금은 것이 적(敵)과 보루에서 대치하는 것보다 급하지 않은 것 같으나, 옛 사람들이 반드시 이에 급급한 까닭은 어찌 한 사람의 마음이 곧 천만인의 마음 같아 보이지만 인심의 향배와 천명(天命)의 길흉에 진실로 크게 두려워할 만한 것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두 더불어 유신(維新)하는 날이 진실로 적과 보루에서 대치하는 때와 다르며, 원한을 머금고 죽은 혼백이 당고(黨錮)29)와 제왕(濟王)30)의 원통함보다 더 심함이 있으니, 오늘날의 급선무는 그 원통함을 씻어 인심을 위로하고, 인심을 위로하여 천심(天心)을 흠향하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신들이 간절하게 피눈물을 흘리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전하를 위함이요, 억울한 자를 위함이 아니라 사직을 위해서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특히 초야의 말을 받아들이시고, 비와 이슬31) 같은 은택을 널리 펼치시어 오랫동안 막혔던 인심과 땅속에 묻혀 썩은 백골로 하여금 푸른 하늘의 대낮처럼 시원함을 보게 하신다면 진실로 사도(斯道)를 붙들고 국가의 명맥을 오래케 하는 하나의 큰 기틀이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는 유념하여 받아들이소서. 신들은 지극히 황공하여 떨며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비답(批答)에서 대략 "처음부터 역적으로 지목하여 국문하였던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고, 또 "대개 옳고 그름은 마땅히 조정의 처분에서 나올 것이니, 너희들의 뜻이 비록 근실(勤實)하지만 매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伏以古之帝王, 當濟屯傾否之時, 不謂天意之已回, 而益思其奉若之誠, 不謂人心之已安, 而更盡其慰悅之道. 民有所抱而必使之導達, 然後下無壅閼之情, 冤有可釋而必爲之湔滌, 然後上無感傷之患. 然則不可不通者, 冤鬱之情, 而不可不愼者, 天人之際也. 今我國家否運重亨, 劇寇退遁, 而邊警少弛, 春闈誕祥而慶延宗祊, 則今日之天意, 可謂眷佑矣. 邦誣快辨而臣民胥悅, 鎗病初起而士卒息肩, 則今日之人心, 可謂粗安矣. 天意已回, 人心已安, 而殿下憂勤之念, 一出於惻怛, 恤民隱, 而日下蠲免之令, 懼天災而益勤修省之道, 此政成湯與民, 更始之盛心也. 宜無一民一物之不被其澤, 而獨有橫罹逆亂, 抱冤重泉者, 尙不能昭雪於此時, 則豈非天人之所感, 而聖明之所當惻念者乎. 嗚呼! 頃年, 邦運不淑, 逆賊之變, 出於搢紳之間. 汝立初非放火劫人之賊, 挾王莽欺世之巧, 假陸棠詐善之名, 一國士類, 莫不有知其名見其面者, 而虛懷好善之人, 最爲所誣, 夫豈知窮凶大懟, 至於此極也? 貫盈之罪, 忽出於千萬意慮之外, 一時受欺之士, 莫不心驚骨痛, 悔自己不明之罪, 而自上离明旁燭, 鑑衡自正, 睿念嘗軫於玉石之俱焚, 愼簡益切於要囚之丕蔽, 則豈有含冤抱痛於淸明之下哉? 第以奸臣鄭澈, 以狠愎之資, 懷慘毒之心, 外假謔浪, 內實猜忌, 爲淸議所不容, 常有怏怏之心, 陰伺其隙, 以爲必報之地, 自幸今日可遂吾志, 身爲案問之官, 乃成網打之計. 平日少有睚眥者, 陰嗾浮薄之輩, 非出於疏章, 則必發於臺論, 倘微聖明如天, 一世之忠賢, 必將無遺類矣. 當日之事, 可不寒心哉? 其一時抱枉就死者, 不知其幾何, 以臣等所居一道內之最爲冤痛者言之, 鄭介淸眞踐履實, 德成行尊, 一從程朱之學, 以闡明斯道爲己任. 嘗患湖南之一種士習, 薰染於奸澈, 專務驕虐, 不循義理, 或自托於節義, 而專然曚昧於名敎, 或慕效於淸談, 而實是貪戀於利祿. 顧其歸則俱有害於世敎, 故介淸每以是爲誤一世之害, 恐爲後學之弊, 而及讀朱子語類, 有或引伊川之言, 而晉宋淸談, 因東漢節義, 一激而至此, 朱子曰: "東漢崇尙節義之時, 便自有這箇意思了. 蓋當時節義底人, 便有傲睨一世, 汚濁朝廷之意, 這意思, 便自有高視天下之心, 小間流入於淸談." 又曰: "節義之士, 固非是其位之所當言, 宜足以致禍." 又曰: "後漢名節, 至於末年, 有貴己賤人之弊. 積此不已, 其弊必至於虛浮, 入老莊." 又曰: "晉宋人物, 則雖曰尙淸高, 然箇箇要官職, 這邊一面淸談, 那邊一面招權納貨云云." 因此朱子之說, 以發明晉宋淸談之害, 以救湖南士習之痼弊, 而奸賊惡其平生心術敗露於君子之正見, 陰畜欲殺之心, 而無隙可乘. 及逆變之出, 奸賊指嗾本道無行檢悖妄如洪千璟·林檜輩, 乃於介淸, 所著說上, 任加排字, 目之以排節義, 托以儒生公議, 上疏構陷, 一時名流, 盡入於其疏, 幾爲打盡於一網之中. 而幸賴聖上洞燭情狀, 乃以疏頭十餘人拿來, 將治誣捏之罪, 而澈也嗾臺諫沮之, 反以介淸所著節義說, 請爲嚴刑, 竟死於絶域. 天地間冤痛, 孰加於此乎? 嗚呼! 天旣蒼然而無語, 死者亦不得自明於九原, 臣等請代死者, 釋其著書之旨也. 其書之首曰: "東漢節義, 較以功名, 則其高尙猶可以激頑起懦, 晉宋淸談, 視之謀利, 則其氣岸, 亦足以矯情鎭物"云, 則非訾其眞節義, 而只救其末之弊明矣. 又曰: "源其所始, 皆不知有明德新民之學"云, 則節義者, 卽明德中一事, 明德者, 乃節義之根柢也. 如使人皆知明德, 則臨患難處死生, 知有義而不知有利, 知有君而不知有身, 不期於節義, 而節義之高, 直與日月爭光明矣. 又曰: "獨善於彝倫之外, 自逸於檢防之節, 是衰世之所尙, 而非聖賢中和之道"云, 則中和二字, 萬善具足, 唯堯舜孔孟, 可以當之. 如子而盡爲子之道, 臣而盡爲臣之道, 以至於三綱五常, 莫不各得其當, 而隨處得中, 乃可謂之中和, 是豈捨節義而言之乎? 將此數條而究其旨, 則其所著說, 乃祖述程朱之餘論, 以培壅節義之根本, 而救後世浮虛無實之弊也, 至深且切矣, 而反爲奸賊射影之資, 至於榜示四方, 以惑亂一世之耳目, 可勝痛哉? 嗚呼! 古今天下, 雖有士林之禍, 豈有如今日之慘酷哉? 介淸白首窮經, 晦跡林下, 本與逆賊不相接, 而歲在癸未, 以四書校正郞廳, 同列公座, 始知其面, 而旋以親病先歸, 則其相知之分甚淺, 而適以同僚故,以書相問者, 纔二度, 此不過虛懷見欺之所致, 是則一時士夫不察之公罪也. 其弟大淸, 亦嘗從事於學而行篤孝友, 痛兄非辜, 冀其伸雪, 悲哀服喪, 枯朽將死, 今至十年之久, 凡在瞻聆, 孰不嗚咽而傷痛哉? 臣等自十五六歲時, 嘗受學於表從叔柳希春, 希春以鄭介淸爲涵養功深, 宜後生師表, 勸臣等亟往從之, 臣等遂委己從事於函丈之間, 幾二十餘年. 其所誦說者, 不過小學語孟六經之書, 所講明者, 又只是仁義禮樂天理人欲之辨, 而考其歸趣, 無非爲臣者忠, 爲子者孝而已, 豈敢阿其所好, 欲護已死之師, 而欺罔聖聰哉? 第念師生之義, 根於秉彝之天, 不忍以存亡貳其心, 而妄謂師儒坐黨, 實關於斯文之盛衰治道之汚隆, 故頃在乙未春, 臣等乃敢千里裹足, 訟冤於九重. 自上俯採疏賤之言, 乃以至論下諭, 丁寧凡有血氣者, 莫不聳動感泣, 而第緣當時大臣回啓之辭, 糢糊不明, 遂使聖上好善惡惡之意, 不得昭布於朝野, 厥後廟堂之議, 臺閣之論, 未聞有出血誠擔當期以必定國是者, 人心之愈鬱, 士論之益激, 政在於此也. 嗚呼! 十年而必復者, 天道也, 泯滅而再伸者, 公論也. 頃幸天啓聖心, 洞燭輿情, 其一時被誣竄謫者, 並皆蒙宥, 枉死者, 得以伸雪, 崇秩之褒, 已加於永慶, 而獨於介淸, 尙稽恩典, 豈唯梧丘之目, 不瞑於九原而已? 抑恐羣情堙鬱, 士氣銷鑠, 天地之仁至此, 而不能無憾也. 臣等考諸往牒, 董卓之禍方張, 而識者以解黨錮之禁爲先, 伯顏之亂始熾, 而應麟以立濟王之後爲請, 一二君子之含冤, 似不急於臨敵對壘之日, 而古人之所以必汲汲於此者, 豈不以一人之心, 卽千萬人之心, 而人心之向背, 天命之吉凶, 實有大可畏者而然歟? 咸與維新之日, 固異於臨敵對壘之時, 而茹恨閉骨之魂, 有甚於黨錮濟王之冤, 則今日之急務, 其不在於釋冤枉而慰人心, 慰人心而享天心乎? 此臣等之所以懇懇瀝血不能已者, 非爲死者也, 爲殿下也, 非爲冤枉也, 爲社稷也. 伏願殿下, 特採草野之言, 渙發雨露之澤, 使久鬱之人心, 入地之朽骨, 快覩靑天之白日, 則實扶斯道壽國脈之一大機也. 伏惟殿下, 留神採納焉. 臣等不勝兢惶戰慄之至, 謹昩死以聞.答略曰: "初非指爲逆賊而鞫之也." 又曰: "大抵是非, 當出於朝廷, 爾等之志雖勤, 不須每煩." 막힌 것을 제거하는 원문의 '경비(傾否)'는 비색(否塞)한 운수를 없앴다는 말이다. 《주역》 〈비괘(否卦) 상구(上九)〉에 "상구는 비색함을 제거하는 것이니 먼저는 비색하고 뒤에는 기쁘다.〔上九, 傾否, 先否後喜.〕"라고 하였다. 천명을 받들어 따르는 《서경》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유하가 덕에 어두워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거늘 하늘이 마침내 왕에게 용맹과 지혜를 내려주시어 만방을 표정하여 우왕(禹王)이 옛날 행하셨던 것을 잇게 하시니, 이는 그 떳떳함을 따라서 천명을 받들어 순히 하셔야 할 것입니다.〔有夏昏德, 民墜塗炭, 天乃錫王勇智, 表正萬邦, 纘禹舊服, 玆率厥典, 奉若天命.〕"라고 한 표현에서 따온 것이다. 세자 원문의 '춘위(春闈)'는 봄에 시행하는 과거 시험장을 말하나, 여기에서는 '춘궁(春宮)'과 같은 말로 세자를 가리킨다. 군신(君臣)을 …… 왜곡하는 것을 원문의 '방무(邦誣)'는 군신(君臣)을 거짓으로 속여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례》 〈추관(秋官) 사사(士師)〉에 죄와 사건을 판결한 여덟 가지 성례(成例)인 팔성(八成) 가운데 하나이다. 편히 쉬게 되니 원문의 '식견(息肩)'은 짐을 내려놓고 어깨를 쉰다는 뜻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년에, "정나라 성공이 병을 앓았을 때 자사(子駟)가 진(晉)나라에 식견(息肩)하기를 청하였다.〔鄭成公疾,子駟請息肩於晉.〕" 하였다. 성탕(成湯)이 ……마음 은(殷)나라 왕 성탕(成湯)의 천품은 지극히 어질어 금수(禽獸)까지도 살리려 하였으며, 7년의 큰 가뭄이 있을 때에는 자신이 희생(犧牲)이 되어, 상림(桑林) 들에 나가 비를 빌어서 큰 은택을 백성들에게 입히기도 하였다. 《십팔사략(十八史略)》 은기(殷紀). 왕망(王莽) 한(漢)나라 효원황후(孝元皇后)의 친정 조카이다. 자는 거군(巨君)이다. 대사마(大司馬)로 선정을 베풀어 인심을 얻었다. 평제(平帝) 때에 안한공(安漢公)이라 불렀고 지위가 더욱 귀해지자, 평제를 시해하고 유자(孺子) 영(嬰)을 세워 섭정(攝政)하고 가황제(假皇帝)라 불렀다. 마침내 한실(漢室)을 찬탈(簒奪)하고 국호(國號)를 신(新)이라 하였다. 뒤에 법령이 까다로워 민심을 잃고 난리가 사방에서 일어났다. 광무제(光武帝)에게 패하여 죽었다. 《漢書 卷99 王莽傳》 육당(陸棠) 구산(龜山) 양시(楊時)의 사위로, 그가 구산을 찾아올 적마다 용모가 장중하고 언제나 단정하게 앉아 있어 사람들이 경탄하였다. 이에 구산이 사위로 삼았는데 후에 난리를 일으킨 범여위(范汝爲)의 무리가 되었다가 범여위가 패하자 극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朱子書節要講錄刊補 卷3 答楊子直》 밝게 살피고 원문의 '이명(离明)'은 원래 밝은 해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임금에 위에서 밝게 비추는 것을 말한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이(离)는 불이 되고 해가 된다.[离爲火, 爲日.]"라고 하였다. 요수(要囚) 요수는 죄인을 심문하여 죄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대론(臺論)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공론(公論)을 말한다. 명교(名敎) 명분(名分)을 중시하는 예교(禮敎)를 이르는 말로 흔히 유교(儒敎)를 지칭한다. 《주자어류(朱子語類)》 주자와 제자들의 문답(問答)을 기록하여 모은 책이다. 송(宋)나라 경정(景定) 4년(1263, 이종4)에 여정덕(黎靖德)이 분류, 편집하여 함순(咸淳) 6년(1270, 도종6)에 《주자어류대전(朱子語類大全)》 140권을 간행하였다. 혹자가 …… 하였습니다 《주자어류》 권34 〈논어(論語)16 술이편(述而篇)〉 자위안연왈장(子謂顔淵曰章)에 나온다. 절의의 …… 하였습니다 《주자어류》 권135 〈역대(歷代)2〉 문기원조(問器遠條)에 나온다. 후한의 …… 하였습니다 《주자어류》 권129 〈본조(本朝)3 자국초지희령인물(自國初至煕寧人物)〉에 나오는데, 대본은 원문의 일부 내용을 생략하고 인용하였다. 비록 …… 하였습니다. 《주자어류》 권34 〈논어16 술이편〉 자위안연왈장(子謂顔淵曰章)에 나온다. 홍천경(洪天璟) 1553~1632.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군옥(羣玉), 호는 반환・반항당(盤恒堂)이다. 기대승(奇大升)ㆍ이이(李珥)ㆍ고경명(高敬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김천일(金千鎰)을 따라 군량의 수집과 수송을 담당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도원수 권율(權慄) 휘하에서 의병모집의 격문을 작성하였다. 1609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하였다. 월정서원(月井書院)에 제향되었다. 임회(林檜) 1562~1624.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공직(公直), 호는 관해(觀海)이다. 정철(鄭澈)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1611년 50세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이 되었으나 대북파 정인홍(鄭仁弘)・이이첨(李爾瞻)에게 모함을 당하여 곧 사직하였고, 1613년에는 양산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대북파가 몰락하고 서인이 집권하자 예조 정랑에 복직되었으며,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에 경안역(慶安驛)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배절의(排節義) 선조(宣祖) 때 정여립(鄭汝立)의 옥사로 화(禍)를 입은 정개청(鄭介淸)이 지은 〈동한절의진송청담설(東漢節義晉宋淸談說)〉을 가리킨다. 그 내용이 절의를 배척한 것이라고 하여서 정철(鄭澈) 등으로부터 비난을 받아 화를 입었다. 정개청은 본래 서인(西人) 박순(朴淳)의 문인이었으나, 박순이 영의정에서 파직되자, 동인(東人) 이발(李潑)ㆍ정여립과 교분을 맺음으로써 스승을 배반하였다는 비난을 받고는 〈절의청담변(節義淸談辨)〉을 지어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니, 정철 등 서인으로부터 '배절의론'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조술(祖述) '조(祖)'는 조종(祖宗)처럼 높인다는 뜻이요, '술(述)'은 이어서 따른다는 뜻이니 '조술한다'는 말은 높이어 따른다는 말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30장에 "공자는 멀리 요 임금과 순 임금을 조종(祖宗)으로 받들어 계승하고, 가까이로는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법도를 드러내 밝혔다.〔仲尼, 祖述堯舜, 憲章文武.〕"라는 하였다 유희춘(柳希春) 1513~1577.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이며,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외할아버지 최보(崔溥)의 학통을 계승해 이항(李恒), 김인후(金麟厚) 등과 함께 호남 지방의 학풍 조성에 기여하였다. 저서에 《미암일기(眉巖日記)》, 《역대요록(歷代要錄)》, 《주자어류훈석(朱子語類訓釋)》, 《시서석의(詩書釋義)》 등이 있다. 스승 원문의 '함장(函丈)'은 선생(先生)이나 장자(長者)가 앉는 자리를 뜻하는 말로, 함연(函筵)이라고도 한다. 제자는 스승의 자리와 한 발[一丈]의 거리를 둔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회계(回啓) 임금의 물음에 대하여 신하들이 심의하여 대답하던 일을 말한다. 국시(國是) 국민 전체가 옳다고 인정한 주의(主義)와 시정(施政)의 근본 방침으로 다시 말해, 확정되어 있는 한 나라의 방침을 말한다. 오구(梧丘) 죄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가리킨다. 제 영공(齊靈公)이 사냥갔을 때 무죄한 다섯 장부(丈夫)를 죽여 그들의 머리를 잘라 묻었는데, 그 뒤에 경공(景公)이 오구(梧丘)에서 사냥할 때 꿈에 다섯 장부가 나타나서 무죄함을 호소했다. 경공은 그곳을 파서 다섯 해골을 찾아내어 장사를 잘 지내주었다 한다. 《안자(晏子)》 잡하(雜下). 동탁(董卓)의 화 후한(後漢)의 장군으로, 낙양(洛陽)에 입성하여 소제(少帝)를 폐하고 헌제(獻帝)를 옹립하여 정권을 전횡하였다. 원소(袁紹)가 기병하여 동탁을 토벌하러 나서자, 낙양의 궁묘(宮廟)와 100리에 걸친 지역을 불태우고 장안(長安)으로 천도하였으며 스스로 태사(太師)가 된 후에는 횡포가 더욱 심하였는데, 이후 왕윤(王允)과 여포(呂布)에게 살해되었다. 《後漢書 卷72 董卓列傳》 백안(伯顏)의 …… 청하였으니 송(宋) 나라 영종(寧宗)이 아들이 없어서 종실 중에서 제왕 횡(濟王竑)을 양자로 데려왔는데, 그때의 권력 있는 신하 사미원(史彌遠)의 참소로 죄없이 죽고, 다시 다른 종실에서 양자하여 들여서 후에 이종(理宗)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북쪽에서 몽고의 대군이 침입하여 내려오는데 백안(伯顔)은 몽고의 대장이었다. 그의 침략으로 송 나라의 국운은 풍전등화 같았으나, 그때 왕응린이라는 사람이 제왕(濟王)이 무죄하게 죽은 것을 말하고 그를 위하여 입후(立后)할 것을 청하였다. 당고(黨錮) 후한(後漢)의 환제(桓帝) 때 진번(陣蕃)ㆍ이응(李膺) 등 우국지사가 환관(宦官)의 발호를 미워하여 대학생(大學生)들을 거느리고 환관을 공격하니, 환관들이 조정을 반대하는 당인(黨人)이라고 도리어 몰아 이들 자식들을 옥에 가두고 그 사진(仕進)의 길을 막았으며, 영제(靈帝) 때 두무(竇武)ㆍ진번(陣蕃) 등이 환관 등을 죽이려 하다가 일이 누설되어 그와 뜻을 같이하는 1백여 명과 함께 피살한 사건을 말한다. 제왕(濟王) 송나라 조횡(趙竑)으로, 기왕(沂王) 조병(趙抦)의 후사가 되어 황자(皇子)에 책립되었으나, 사미원(史彌遠)의 농간으로 이종(理宗)이 즉위한 뒤 제왕에 봉해지고 핍박을 당하여 죽었다. 《宋史 卷255 鎮王竑列傳》 비와 이슬 원문의 '우로(雨露)'는 곧 촉촉이 내려 적셔 주는 비와 이슬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임금의 은택(恩澤)에 비유한다. 당나라 고적(高適)의 〈협중으로 가는 이소부와 장사로 가는 왕소부를 보내다〔送李少府貶峽中王少府貶長沙〕〉 시에 "지금은 태평성대 은택이 많아 잠시 이별하는 것이니 주저하지 말게.〔聖代即今多雨露, 暫時分手莫躊躇.〕"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세 아들 찬소, 계소, 위소에게 경계하다 戒三子纘素繼素緯素 장남은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고, 차남은 허술하여 실속이 없으며, 막내는 협애(狹隘)한데, 모두 식견(識見)이 없다. 그리고 또한 각자의 기질에 병통이 있으니 만약 학문의 공과 변화의 힘을 이루는 데 급급하지 않으면 단지 옛 기량에만 의지한 채 향상되는 점을 보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은 나이가 서른에 가까운데 아직 뜻을 세우지 못하고 답습에만 골몰하여 시골 사람과 똑같은 모양이니 부모와 형제의 책망이 이른 것이다. 옛 사람이 말하지 않았느냐? "말이 충신(忠信)하지 못함이 하등인이고, 행실이 독후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하등인이다."34)라고 하등의 말을 듣고 하등의 일을 하니 너희들은 장차 하등의 인물이 되는 데 그치려고 하느냐?아! 이미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자질이 아름답고 또 부지런히 교육하였으나 아직 작은 효과도 보지 못하고 세월만 흘러가 장차 어찌할까? 어버이를 섬기는 절차며 몸을 행하는 방법이며 말하고 행동하는 사이에 속세의 하등인과 똑같다면 풍모와 절조가 늠름하고 준엄하며 학문이 높고 밝음은 더욱 바랄 수 없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힘써 사우(師友)를 따르고 도의(義議)를 강론하였으나 아직도 진실한 공부를 하지 못하였고, 때때로 또 불우(不遇)하여 궁려(窮廬)의 탄식35)만 하니, 너희들은 늙은 아비를 경계로 삼아 후회가 없어야 한다. 너희들은 몸을 세우고 뜻을 독실히 하여 존심양성(存心養性)36)을 몸소 알고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실천하는 것을 배운다면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고, 오히려 향상되고 진보되는 점이 있을 것이다. 분수 밖에서 몸을 영화롭게 하고 집에 거처하면서 편안히 있는 것을 군자는 부끄럽게 여기니,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경계하고 경계하며 반드시 겸손하고 공경하면서 스스로 수양하고 맑은 절조로 스스로 힘써 《소학(小學)》을 읽고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배워 몸을 검속(檢束)하는 방도로 삼아라. 사서(四書)를 말미암아 육경(六經)에 통달하는 것을 학문하는 방법으로 삼고, 여러 서책을 널리 통섭하여 이치에 밝고 의리를 정밀히 하면 어찌 옛사람에게 미치지 못하겠느냐? 너희들이 만약 우둔하고 완악하여 가르칠 수 없다면 그만이니 꾸짖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자질은 가르칠만한 훌륭한 점이 있는 것 같고, 학문은 조금 문리에 통한 점이 있는 것 같으니, 지금 만약 뜻을 세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오히려 기대할 만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뜻을 세우지 않으며 배움에 독실하지도 않아 이와 같이 끝나버릴 뿐이라면 결국 소인으로 귀착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은 분명하다. 삼재(三才)37)에 참여한 이 몸이 가엾지 않느냐? 원컨대 너희들은 마음을 고치고 반성하여 늙은 아비의 보잘 것 없는 지극한 바람에 부응하라.돌아보건대 너희들은 가엾게도 일찍 어미38)를 여의어 어여삐 여겨 가르치지 않았더니 엄숙하게 공경하는 마음이 매우 부족하였다. 그래서 예(禮)가 없고 의(義)가 없어 도리어 이치에 어긋난 일을 하니, 이것은 자식의 죄가 아니라 실로 아비의 허물이다. 하물며 아비가 비록 자애롭지 않을지라도 자식은 효도하지 않아서는 안 되고,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가 없으니39),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의리는 크다고 할 것이다. 하늘의 법과 땅의 의리,40) 삼강오상(三綱五常),41) 윤리와 기강의 중차대한 것이며, 온갖 행실의 근원이요 인도(人道)의 떳떳함이니, 배우려는 사람은 이를 배울 따름이고, 행하는 사람은 이를 행할 뿐이다. 효도하는 집안에서 충신을 찾는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너희들의 식견이 여기까지 이르지 못하였으니 더욱 더 생각하고 힘써라. 내가 말한 바를 빈 말로 돌리지 않는다면 사람이 사람 되는 도리를 다할 것이요, 성인을 배우고 현인에 이를 것이다.임인(壬寅 1602)년 11월 16일 노부 금암이 병석에서 썼으니 만력 30년이다. 長乎固滯, 仲也踈虛, 季則阨狹, 俱無見識, 而亦各有氣質病痛, 若不急急致學問之功變化之力, 則只依舊技倆, 未見有長進之處矣. 而輩年近三十, 尙未竪志, 因循汨沒, 與鄕人一樣, 則父兄責望, 到此左矣. 古不云乎? 言不忠信, 下等人也, 行不篤敬, 下等人也. 聞下等之語, 爲下等之事, 則汝等將作何等人物而止乎? 噫! 旣受天質之美, 又有敎育之勤, 未見有寸效, 而歲月如流, 其將奈何? 至若事親之節行身之方言語之間云爲之際, 只是一般俗下人, 則其風節之凜峻問學之高明, 更不可望矣. 吾亦自少厲學, 從師友講道義, 未有眞實工夫, 時又不遇, 徒有窮廬之歎, 汝等戒老父, 未能之悔立而志篤, 乃學存心體認克己踐形, 庶可以變化其氣質, 而猶有所向進矣. 如分外榮身, 居室有便, 君子恥之, 非吾所願欲也. 戒之警之, 須以謙恭自牧, 淸節自厲, 讀《小學》學《家禮》, 以爲檢身之方. 由四書達六經, 以爲爲學之法, 博通群書, 理明義精, 則何古人之不可及哉? 而等若鈍頑, 不可敎則已矣, 不足責, 以質則似有可敎之美, 以學則稍有文理之通, 今若立志, 更進一步, 則猶有所可望矣. 不然而志不立學不篤, 如是而終焉而已也, 則卒未免爲小人之歸也, 昭矣. 參三此身, 可不惜哉? 願汝曹改心存省, 以副老父區區至望也. 顧憐汝曹, 早失天只, 慈而不敎, 殊欠嚴敬之心, 無禮無義, 反致違理之事, 是非子之罪, 實父之過也. 況父雖不慈, 子不可以不孝, 天下無不是底父母, 子之於親, 孝之義大矣. 如天經地義綱常倫紀之重且大者, 而百行之源人道之常, 所以學之者, 學此而已, 行之者, 行此而已, 求忠臣於孝子之門者, 此也. 汝等識見, 未到此地頭, 更加念之勉之. 勿以吾所言, 歸之於空言, 則人之, 而聖可學而賢可至矣. 歲在壬寅 至月初生魄, 老父錦巖病草, 萬曆三十年也. 말이 …… 하등인이다. 《소학》 〈가언(嘉言)〉에 "말이 충신하지 못함이 하등인이요, 행실이 독후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하등인이요, 잘못을 저지르고서 후회할 줄 모르는 것이 하등인이요, 뉘우치되 고칠 줄을 모르는 것이 하등인이다. 하등인의 말을 듣고 하등인의 일을 행하면 비유하건대 마치 방 가운데에 앉아서 사면이 모두 담벽인 것과 같으니, 비록 열어 밝게 하고자 하나 될 수 없을 것이다.[言不忠信, 下等人也, 行不篤敬, 下等人也, 過而不知悔, 下等人也, 悔而不知改, 下等人也. 聞下等之語, 爲下等之事, 譬如坐於房舍之中, 四面皆墻壁也, 雖欲開明, 不可得矣.]"라고 보인다. 궁려(窮廬)의 탄식 허송세월을 하는 데 대한 탄식을 말한다. 궁려는 가난한 사람이 사는 집이다. 제갈량(諸葛亮)의 〈계자서(誡子書)〉에, "나이는 시절과 더불어 치달아 가고 뜻은 날짜와 더불어 떠나가 마침내 쇠락하니 그때 가서 궁려에서 비탄에 잠겨 본들 장차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年與時馳 意與歲去 遂成枯落 將復何及也〕"라고 하였다. 존심양성(存心養性) 원문의 '존심(存心)'은 존심양성의 준말로 본래의 순수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배양한다는 뜻인데 성리학에 있어 심성 수양론을 대표하는 말이다. 《맹자집주》 〈진심장구 상(盡心章句上)〉에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성(性)을 아니,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성을 기름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라고 하였다. 삼재(三才) 천(天)ㆍ지(地)ㆍ인(人)을 가리키는 말로,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하늘의 도(道)를 세움은 음(陰)과 양(陽)이요, 땅의 도를 세움은 유(柔)와 강(剛)이요, 사람의 도를 세움은 인(仁)과 의(義)이니, 삼재를 겸하여 두 번 하였기 때문에 역(易)이 여섯 번 그어서 괘(卦)가 이루어진다.[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 兼三才而兩之, 故易六畫而成卦.]"라고 하였다. 어미 원문의 '천지(天只)'는 어머니의 별칭이다. 《시경》 〈백주(柏舟)〉에 "하늘같은 어머님이 이토록 사람 마음 몰라주시는가.〔母也天只, 不諒人只.〕"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아버지가 …… 없으니 《동몽선습(童蒙先習)》 〈부자유친(父子有親)〉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가 없으니 부모가 사랑하지 않으나 자식은 불효를 해서는 안 된다.〔天下無不是底父母, 父雖不慈, 子不可以不孝.〕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하늘의 …… 의리 원문의 '천경지의(天經地義)'는 천지간의 변경할 수 없는 당연한 도리를 이른다.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25년 조에 "예는 하늘의 법칙이고 땅의 도리이고 사람들이 본받아 이행하는 것이다.〔夫禮 天之經也 地之義也 民之行也〕"라고 하였다. 《효경》 〈삼재(三才)〉에 "효는 하늘의 법칙이고 땅의 도리이다.〔夫孝 天之經也 地之義也〕"라고 하였다. 삼강오상(三綱五常) 원문의 '강상(綱常)'은 유교 도덕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말한다. 삼강은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이고 오상은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나이산의 산재 고요한 책상에 바치다 吟呈羅尼山山齋靜案 【임윤신, 자는 경룡(景龍)이고 풍천 사람으로, 서울에 거주하였다. 가정(嘉靖) 기미년(명종 14, 1559)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감사에 이르렀다.】일찍이 안개와 놀에 약속했으니 夙有煙霞契벼슬에서 물러나74) 몇 칸 집에 살으리 棲遲屋數間거문고 소리에 멀리 물이 흐르고 琴中流水遠처마 밖 한가로운 구름 지나가네 簷外度雲閑아들과 조카는 시서를 공부하고 子姪詩書課손님과 벗은 예를 따짐에 너그럽다 賓朋禮數寬술동이 기울이는데 산은 저물어가고 樽傾山欲夕담소가 끝이 나니 조심히 돌아가시오 談罷戒歸鞍 【任允臣, 字景龍, 豊川人, 居京. 嘉靖己未文科, 官至監司.】夙有煙霞契, 棲遲屋數間.琴中流水遠, 簷外度雲閑.子姪詩書課, 賓朋禮數寬.樽傾山欲夕, 談罷戒歸鞍. 벼슬에서 물러나 원문 '서지(棲遲)'는 놀고 쉰다는 뜻으로, 은거하여 편안하게 노니는 것을 말한다. 《시경》 〈진풍(陳風) 형문(衡門)〉에 "형문의 아래여 쉬고 놀 수 있도다. 샘물이 졸졸 흐름이여 굶주림을 즐길 수 있도다.〔衡門之下, 可以棲遲. 泌之洋洋, 可以樂飢.〕"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북도에서 피난하고 있을 때 짓다 在北道避亂時作 마천령 높은 고개 우뚝하게 솟아 있고험준한 길 구름과 잇닿아 만리에 아득하네땅은 북쪽 관문에 접하여 서리 일찍 내리고하늘은 큰 바다에 닿아 달이 매우 밝구나외로운 신하 백발이 삼천 길이요84)고국은 재가 된 백만 집이라집이 한강 가에 있는데 그 언제가 가려나가을 되자 부질없이 기러기 행렬만 보내네 磨天危嶺鬱嵯峨鳥道連雲萬里賖地接胡關霜落早天連鯨海月明多孤臣髮白三千丈故國灰殘百萬家家在漢濱何日到秋來空送鴈行斜 백발이 삼천 길이요 깊은 시름 때문에 백발이 늘었다는 뜻이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추포음(秋浦吟)〉 시에 "백발이 삼천 길이나 된 것은, 시름 때문에 이처럼 길어졌다네.[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부령 이의신이 집터를 잡다 富寧李宜臣卜居 집터 잡는 일 언제쯤 귀신의 비호를 깨고층층 산봉우리 끊어진 곳에 물 끌어올거나삼경에 달 비추니 황금빛 용솟음치고만 리에 가을 기운 서리니 푸른 하늘 차갑네세상사에 흘러내리는 눈물 금할 수 없고향수는 그저 한잔 술로 달래노라앞길에 승냥이와 이리 흔적 쓸어버린다면돌아가는 길 험해도 어렵다 하지 않으리 卜築何時破鬼慳層巒斷處控波瀾三更月照黃金湧萬里秋涵碧玉寒世事不禁雙淚下鄕愁聊借一盃寬前途若掃豺狼迹歸路羊腸不道難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명나라 장수의 시에 차운하다 공주 목사로 있을 때 짓다 次唐將韻 公州時作。 장군 재기는 문무를 겸비했으니무예와 시를 논하는 것 모두 특출나도다옥 부절170) 지니고 멀리 요동 달을 가르며 와서금 채찍 잡고 곧바로 금강 구름으로 향했네황실은 먼 백성 위무하여 안팎 없이 인을 베풀고왜구는 병력을 남용하여 스스로를 불태우는 형세라진나라 군대 물리친 것은 세 치 혀이니171)구중궁궐에 돌아가 성명한 임금께 아뢰리 將軍才調武兼文說釰論詩兩絶羣玉節遙分遼塞月金鞭直指錦江雲皇家柔遠仁無外海寇窮兵勢自焚退却秦軍三寸舌九重歸奏聖明君 옥 부절 임금이 사신에게 주는 신표로, 여기서는 명나라 황제가 준 신표를 말한다. 진나라……혀이니 장량(張良)이 지략으로서 적군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것을 말한다. 장량은 한 고조(漢高祖)의 모신(謀臣)으로 한 고조를 도와 진(秦)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했었는데, 나중에 유후(留侯)에 봉해진 뒤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지금 세 치의 혀로 제왕의 스승이 되어[今以三寸舌, 爲帝子師] 만호에 봉해지고 열후가 되었으니, 이는 포의에게 극도의 영광으로서 나에게는 더없이 만족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史記 留侯世家》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경학잠【임인년(1662, 현종3) 여름에 생도들이 삼학재에 모여 제술을 일삼았는데 이 글을 써서 경계하였다.】 警學箴【壬寅夏。 諸生會三學齋以事製述。 書此以警之。】 머리에 열이 나도관을 벗지 말고몸에 땀이 나도옷을 벗지 말라겉몸이 단정치 않으면안도 안정되지 않으니문장을 펴낸들누가 너를 공경하랴다리가 피곤해도거만하게 앉지 말고기운이 나른해도쭉 펴고 눕지 말라겉모양이 나태해지면뜻도 바르지 못하니글을 써낸들어찌 일정하고 안정되랴재여의 담장35)을 경계하고우의 촌음36)을 아껴야 하니《대학》에선 어긋남을 경계했고37)〈폄우〉에선 장난질을 경계했다38)과업이 비록 말단의 기예라도어찌 실질의 덕을 소홀하랴39)소자들아 공경히 받아들이고내가 미혹되었다 하지 말라마음과 힘을 전일하게 하여시종일관 쉬지 말아야 하리문사와 덕업을둘 다 어긋남이 없게 하라이 글을 서재 벽에 걸어놓고아침저녁으로 보아야 하리 頭雖熱。 冠不可免。 軆雖汗。 衣不可袒。 外軆不端。 內亦不定。 發爲辭章。 孰肯爾敬。 股雖憊。 坐不可倨。 氣雖倦。 臥不可叙。 形貌旣慢。 志亦不正。 出爲文筆。 安得定靜。 宰墻可戒。 禹陰可嗇。 曾書警悖。 砭愚箴謔。 業雖末藝。 焉忽實德。 小子敬受。 毋謂我惑。 一乃心力。 終始不息。 文詞德業。 兩兼無忒。 揭諸齋壁。 朝暮寓目。 재여의 담장 게으른 것을 비유한 말이다. 공자의 제자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이르기를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쌓은 담장은 손질할 수 없다.[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하였다. 《論語 公冶長》 우의 촌음 짧은 시간을 말한다. 진(晉)나라 도간(陶侃)이 "대우는 성인이면서도 촌음을 아꼈으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촌음도 마땅히 아껴야 한다.[大禹聖人, 乃惜寸陰, 至於衆人, 當惜分陰.]" 하였다. 《晉書 陶侃列傳》 대학에선 어긋남을 경계했고 '증서(曾書)'는《대학》을 가리킨다. 《대학장구》 전10장에 "말이 도리에 어긋나게 나간 것은 또한 도리에 어긋나게 들어오고, 재물이 도리에 어긋나게 들어온 것은 또한 도리에 어긋나게 나가는 것이다.[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하였다. 폄우에서는 장난질을 경계했다 '폄우(砭愚)'는 송유(宋儒) 장재(張載)의 〈동명(東銘)〉을 가리킨다. 그 첫머리에 "장난하는 말도 생각에서 나온 것이요, 장난하는 행동도 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戲言出於思也, 戲動作於謀也.]"라는 말이 나온다. 과업이……소홀하랴 과거공부를 위한 제술(製述)을 하면서도 마음을 바르게 가지라는 충고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자경잠 自警箴 하늘이 너를 낳고세상에 내리면서이름을 사람이라 하고너의 사체를 갖춰주었다선한 성품을 부여하고아름다운 자질 주면서심을 그 장수로 삼고지를 그 병졸로 삼았다[어떤 본에는 '기'로 되어 있다.]밖에 몸을 이룬 건이목구비요안에 정해진 건인의예지다상제가 너에게 일러"너에게 허령40)을 주니안으로 너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지 말고밖으로 너의 몸을 태만하게 하지 말라" 했으니오직 공경하고 의롭게 하여곧게 하고 바르게 하라상제가 너에게 일러"너에게 지각을 주니너의 기를 태만히 펴지 말고너의 사욕을 지나치게 하지 말라" 했으니오직 정밀하고 전일하게 하여사욕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라상제가 너에게 일러"너에게 천명을 주니너의 행위를 경솔히 하지 말고너의 동정을 잊지 말라" 했으니오직 장중하고 신중히 하여진실로 그 성을 따라야 하리상제가 너에게 일러"명철해야 성스럽게 되니흐리멍덩 어둡지도 말고꼿꼿하여 광망하지 말며선을 숨겨 감추지 말고악을 가려 키우지 말라" 했으니밝게 하고 드러내서너의 빛을 나타내라아 너 소자여상제가 이미 너에게 명했으니너의 몸을 태만히 하지 말고진실로 상제의 명을 받들라홀로 있으니 삼가지 않는다 하지 말고어두운 곳이라 공경하지 않는다 하지 말라상제가 너를 굽어보고반드시 너에게 재앙을 내리리라안과 밖을 장중하고 공경히 하여혹시라도 감히 잊지 말라겉과 속을 단정하고 전일하게 하여너의 지조를 소홀히 말라상제가 너를 굽어보고반드시 너에게 복을 내리리라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너의 용의를 태만히 하지 말고취하고 버림을 공명히 하여너의 심사를 음탕하게 하지 말라상제가 너를 굽어보고반드시 너에게 죄를 내리리라의롭지 않은 재물을 탐하지 말고예가 아닌 부귀를 부러워 말지니상제가 너를 굽어보고반드시 큰 복록을 주시리라아 너 소자여반드시 삼가고 독실하게 하며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써서상제의 명을 어기지 말라 天乃生汝。 降之于世。 名之曰人。 具汝四軆。 稟之以善性。 投之以美質。 心爲之師。 志 一作氣 爲之卒。 軆之於外。 耳目口鼻。 定之於內。 仁義禮智。 上帝謂汝。 投爾虛靈。 勿內荒爾心。 勿外慢爾形。 惟敬惟義。 以直以方。 上帝謂汝。 稟爾知覺。 勿怠舒爾氣。 勿放過爾慾。 惟精惟一。 以克以復。 上帝謂汝。 賦爾于命。 勿輕爾作爲。 勿忘爾動靜。 惟莊惟愼。 允率厥性。 上帝謂汝。 惟明作聖。 勿汶汶而昏。 勿狷狷而狂。 勿隱善而藏。 勿揜惡而長。 惟明惟顯。 用表爾光。 嗟汝小子。 帝旣命汝。 毋怠汝躬。 允承帝命。 毋謂獨而不愼。 毋謂暗而不敬。 上帝臨汝。 必降爾殃。 內外莊敬。 毋或敢忘。 表裏端一。 毋忽汝執。 上帝臨汝。 必降汝福。 夙興夜寐。 毋怠爾容儀。 取舍公明。 毋淫爾心思。 上帝臨汝。 必降爾罪。 毋貪不義財。 毋慕非禮貴。 上帝臨汝。 必投介祿。 嗟汝小子。 必愼必篤。 夙夜孜孜。 毋虧上帝命。 허령(虛靈) 텅 빈 가운데 신령하다는 뜻으로 마음을 가리킨다. 《대학장구》 경1장 명덕(明德)의 주에서 주희(朱熹)는 "밝은 덕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얻은 것으로, 허령하고 어둡지 않아서 온갖 이치를 구비하고 만사에 수응하는 것이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또 又 너희들은 모두 약관(弱冠) 남짓의 나이인데 재주가 오히려 지금 사람들의 과거(科擧) 글에 미치지 못하니 어찌 과거에 급제하여 몸을 영화롭게 하고 쇠약한 우리 가문을 부지 하겠느냐? 단지 한 가지 기량으로는 천지 사이에서 한낱 용렬한 사람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너희들의 기질과 품성이 맑고 순수함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또한 바탕이 있어 배울 수 있으니, 만약 옛 사람의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세워 안으로는 마음을 다스리며 밖으로는 용모를 단정하게 하여 반드시 '경근(敬勤)' 두 글자로 시작하고 이를 따라서 올라가면 조존성찰(操存省察)42)하여 이윤(伊尹)이 뜻한 바에 뜻을 두고 안연(顏淵)이 배운 바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43) 힘쓰고 힘써 순서를 따르며 부지런히 글을 읽어 마음을 열고 이치를 밝히며, 공경히 존양(存養)하여 자기 사사로움을 제거하면 옛 사람의 문정(門庭)을 거의 엿볼 수 있으니, 어찌 스스로 향리 속의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게 될까 걱정하느냐?아! 사람이 사람이 된 까닭은 보잘 것 없는 몸으로 천지에 참여하여 나란히 서 있으니 그 책임이 지극히 중대하다. 그러나 그 뜻을 세우지 못하고 답습에만 골몰하여 쉽게 자포자기에 이르는 사람이 된다면 어찌 애통하고 애석한 일이 아니겠느냐? 나 또한 18, 19세부터 개연(慨然)히 도를 구하려는 뜻이 있어 집안사람들의 생산 작업은 일삼지 않고 사우(師友)의 뒤를 따라 몸을 맡겨 종사하였다. 뜻을 독실히 하였던 처음에는 성현을 배워 이를 수 있다고 여겼으니, 어찌 오늘날 용렬하게 무너짐이 너무 심하여 다시는 초심을 떨쳐 일으키지 못하리라 생각이나 했겠느냐? 마침내 평생을 시세(時勢)에 따르다가44) 뜻을 세운 대본(大本)과 사우에게 얻은 것을 여기에 이르러 다 잃어버렸으니, 한밤중에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두렵고 너희들에게 저절로 부끄러웠다.이미 네 아비는 배운 것이 없어 텅 빈 것 같다. 또 먹고 입는 생각으로 근심하나 먹고 입는 것은 지극히 미미하고 지엽적인 일이니, 못 얻었다고 해서 반드시 죽지는 않는다. 예로부터 젊은 나이의 학자가 어찌 차마 이 속에서 스스로 골몰하는가라는 분명한 훈계가 있었다. 옛날에 자공(子貢)은 넉넉함과 검소함의 사이에 마음을 두었으나 재물과 이익의 해가 심하여 안자(顔子)와 증자(曾子)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후학들이 살펴 유념해야 할 곳이다. 바라건대 너희들이 외물의 유혹에 초연하여 새로운 마음을 일으키고 뜻과 학문을 독실하게 하여 선대의 뜻과 공업을 잘 계술(繼述)한다면45) 내가 비록 죽더라도 지하에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내 세 아들에게 바라건대 경계하고 경계하며 게을리 태만하지 말라. 인의(仁義)와 충신(忠信)은 사람의 본성이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공손히 따르는 것은 사람의 행실이니, 배우는 것은 이것을 배울 따름이니 어찌 이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겠느냐? 다시 말하건대 학문을 강론하여 이치를 밝히고 극기복례하여 실천하는 것을 내면의 자기 공부로 삼는다면 진실로 지금 사람이 옛 사람처럼 되어 몸도 이미 대장부요 마음도 대장부일 것이다. 부디 너희들에게 바라는 점이니 너희들은 경계하라. 而輩年皆弱冠餘, 以才則猶不逮今之人科擧之文, 其何以決科榮身, 以扶持我衰門耶? 只是一種伎倆, 天地間一庸人而止耳. 然而汝輩氣稟, 雖不至於淸粹, 亦可以有質而可學, 若竪志於古人爲己之學, 內以治心, 外以整容, 須着敬勤二字, 循之以上, 則操存省察, 足以志伊尹之所志, 學顏淵之所學, 勉勉循循, 勤以讀書, 開心明理, 敬以存養, 克去己私, 則庶可以覬覦古人門庭, 何患乎自歸了鄕里中常人乎? 噫! 人之所以爲人, 以渺然之身, 參天地而並立, 則其責至重至大, 但其志不立, 因循汨沒, 甘爲自棄底人, 寧不痛惜? 吾人亦自年十八九, 慨然有求道之志, 不事家人生産作業, 追從師友, 委己從事, 篤志初頭, 以爲聖賢可學而至, 豈意今日庸頹已甚, 無復振起初心. 畢竟是乾沒平生, 立志之大, 師友之得, 到此喪盡, 每中夜思之, 惕然自愧汝輩. 旣無汝父之學, 而空空如也. 又病於衣食之念, 衣食至微末事, 不得未必死. 古有明訓, 年少學子, 何忍自汨了這裡耶. 昔子貢留心於豐約之間, 而財利之害甚, 至於不及顔曾, 則宜後學省念處. 幸汝輩超然外誘, 以起新意思, 篤志篤學, 善繼善述, 則吾雖死矣, 亦可以瞑目於地下矣. 願吾三子, 戒之警之, 毋怠毋荒. 至若仁義忠信, 人之性也, 孝親悌順, 人之行也, 所以學者, 學此而已, 豈可外求於他乎? 復以講學明理克己踐形, 爲向裏自做底工夫, 則實今人之古人, 身旣丈夫, 心亦丈夫, 須有望於汝輩也. 汝輩戒之. 조존성찰(操存省察)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성찰하는 공부를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져 일정한 시간과 방향 없이 움직이는 것이 마음이다."라고 하였다. 이윤(伊尹)이 …… 것이다 《근사록(近思錄)》 권2 〈위학류(爲學類)〉에 "이윤이 뜻을 두었던 것에 뜻을 두고 안연이 배웠던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여 이들을 능가하면 바로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요, 제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비록 따라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명성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志伊尹之所志, 學顔子之所學, 過則聖, 及則賢, 不及則亦不失於令名.〕"라는 송유(宋儒) 주돈이(周敦頤)의 말이 나온다. 시세(時勢)에 따르다가 원문의 '건몰(乾沒)'은 《사기집해(史記集解)》 권122 〈혹리열전(酷吏列傳) 장탕전(張湯傳)〉 주(注)에 "시세에 따라 부침(浮沈)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선대의 …… 계술(繼述)하면 원문은 '선계선술(善繼善述)'인데, 선계는 선대의 뜻을 잘 계승하는 것을 말하며, 선술은 선대의 공업을 잘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효도란 것은 어버이의 뜻을 잘 계승하며, 어버이의 사업을 잘 따라 행하는 것일 뿐이다.[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라고 하였다. 《中庸章句 第19章》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금성 객관의 방회연에서 정제독【인귀】의 시에 차운하여 동년들에게 보이며 화답을 구하다 錦城館榜會宴席次鄭提督【仁貴】韻示諸同年索和 을묘년 사람이 원우 때 사람75)과 같으니 乙卯人同元祐人담담한 사귐은 곳곳마다 신묘하지 않은 곳 없다네 淡交無處不爲神벽오헌 밖에 많고 많은 대나무여 碧梧軒外千竿竹당시의 좋은 모임을 다시 기억하시게 更記當年此錦茵 乙卯人同元祐人, 淡交無處不爲神.碧梧軒外千竿竹, 更記當年此錦茵. 원우 때 사람 원우(元祐)는 송나라 철종(哲宗)의 연호이며, 당시 왕안석(王安石)의 신당(新黨)에 격렬하게 반대했던 사마광(司馬光), 정이(程頤), 소식(蘇軾), 유지(劉摯) 등이 바로 원우 때의 사람들이다. 여기에서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의미 정도로 사용되었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저물녘 교외를 지나다 우연히 뱁새들이 무리 지어 지저귀는 것을 보고 日暮過郊外。偶見鷦鷯羣噪。 내 말하노니 숲속에 모여 있는 뱁새들아아침저녁 내내 옹기종기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구나울타리 밑에서 단지 물고기 개미와 다툴 줄만 아니구름 너머에 봉황과 수리 있는 줄 어찌 알겠는가누런 고니 날개 주변에 밝은 해 돌아오고266)큰 붕새 머리 위에 높은 하늘 이고 있네267)나는 조류 가운데 그대 작은 존재임을 알겠으니푸른 하늘을 향해 함부로 교만하게 굴지 말라 我語林間衆鷦鷯羣飛簇簇竟曛朝籬根但識爭魚蟻雲外何知有鳳鵰黃鵠翼邊回白日大鵬頭上戴層霄吾知羽族君爲小莫向靑天浪自驕 누런……돌아오고 원문의 '황곡(黃鵠)'은 한 번 날아 천 리를 가는 새로, 속세를 벗어나 은거하는 현사(賢士)를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복거(卜居)〉에 "차라리 황곡과 나란히 높이 날까? 아니면 닭 오리와 먹이를 다툴까?[寧與黃鵠比翼乎 將與雞鶩爭食乎]"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큰……있네 붕새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은 곤이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인지 모른다. 변화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은 붕이다. 붕의 등짝은 몇 천 리인지 모른다.……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 갈 때에는 물결을 치는 것이 삼천 리요,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를 올라가 여섯 달을 가서야 쉰다.[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라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벽 위에 쓰다 書壁上 나의 삶 계획이 이미 잘못되었음을 비웃을 만하니십 년 동안 농사지으며 사립문에서 늙어가네종은 누런 콩 거두어 띠풀을 엮어 묶고여종은 푸른 실 물들여 대나무 옆에서 말리네문 밖에선 조세 독촉하는 아전 날마다 두려워하고집 안에선 베 짜는 틀로 항상 작업하네작은 상엔 다행히 《심경(心經)》268) 있으니분수를 편안히 여기고 기미를 알아 즐거이 굶주림 견디네 堪笑吾生計已非十年農圃老柴扉奴收黃豆編茅束婢染靑絲傍竹晞門外日懼催租吏室中時課織布機小床賴有西山訣安分知幾樂忍飢 심경(心經) 원문은 '서산결(西山訣)'이다. 서산(西山)은 송(宋)나라 진덕수(眞德秀)의 호로, '서산결'이란 곧 그가 엮은 《심경(心經)》을 말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덕성문학도 德性問學圖 《중용(中庸)》의 이 일절(一節)은 학문하는 본말공부 (本末工夫)를 다 갖추고 있어서 선유(先儒)가 이것에 삼가지 않음이 없었지만 다만 우리 자양(紫陽)115)선생만이 더욱 이것에 정밀(精密)하였다. 평소에 힘쓰는 것이 이 두 가지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116) 이에 삼가 손으로 그려서 도(圖)를 만들어 항상 마음과 눈으로 관찰하고 살피었고, 또 진서산(眞西山)117)의 《심경心經》 말장(末章)과 황돈(篁敦)이 주워 모은 전체 대용(大用)의 설을 참고하였다.118)오명중(吳明仲)119)이 나를 용두초사(龍頭草舍)로 방문하여 며칠간 머무르 면서 〈퇴계심통성정도(退溪心統性情圖)〉120)를 읽고, '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의 말에 이르러 명중이 의심하여 말하기를 "리(理)는 본래 적연부동(寂然不動)하니 어찌 리가 먼저 발하는 이치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당연히 처음에는 그의 말을 잠시 의심하여 답을 하지 못하였다. 물러감에 미쳐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성(性)은 곧 리이니 그것이 미발(未發)을 당하여 리는 성에 갖추어져 있다. 그것이 기발(旣發)에 미쳐서 리기(理氣)가 동(動)하여 정(情)이 된다. 그렇다면 이 리의 미동(未動)은 성이 되고 기동(旣動)은 정이 되기 때문에 리는 본래 적막한 느낌이 있는데 적(寂)이라는 것은 체(軆)요 감(感)이라는 것은 용(用)이다. 이미 감(感)이라고 했다면 동(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리가 먼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다. 리의 지선(至善)은 혹 어둡고 혹 박잡한 기에 섞이지 않으니 이것이 중절(中節)의 정이 되고, 기가 발하여 리가 따르는 것은 지선의 리가 기에서 명(命)을 들으니 이것은 부중(不中)의 정이 된다.121) 어찌 리의 적연부동함이 마치 고목의 죽은 재처럼 반드시 기가 발하기를 기다린 후에 리가 따라서 발함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그 후에 황면재(黃勉齋)122)가 "사물에 감응하여 동하는 경우, 혹은 기가 동하고 리가 따르며 혹은 리가 동하고 기가 낀다. 이로 말미암아 지선의 리가 기의 명령을 들으니 이로 인하여 선악이 갈라진다."라고 말한 것을 보았다. 그런 연후에 왕성히 크게 깨달았고, 또 퇴계 리발의 설을 알았으니 나의 소견이 아니고 유래가 있는 것이다.【명중의 이름은 이정(以井)이고 한림(翰林) 희도(希道)의 아들인데 상상(上庠)123)에 올랐다가 일찍 죽었다.】주자(周子)가 말하기를 "태극(太極)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는다."124)라 하니 대개 태극은 리이다. 만약 "리는 전혀 발한 것이 없다."라고 한다면 주자가 무엇 때문에 "태극이 동한다."라고 말했겠는가? 주자(朱子) 또한 말하기를 "기에 이미 동정이 있으면 실린 리 또한 어찌 동정이 없겠는가?"라고 하였다. 대개 기란 리의 기(器)이다. 지금 기를 보니 또한 미악(美惡)이 있다. 만약 여기에서 리라고 한다면 하늘에 있고 사람에게 있는 것이 본래 선악의 다름이 없다. 혹자가 주자에게 묻기를 "성(誠)이란 이 책의 추뉴(樞紐)이고 수장(首章) 한편의 요체인데 성(誠)을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수장의 천명지성(天命之性)의 성(性) 자는 21장 자성명(自誠明)의 성(誠)과 동의어이고,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의 도(道) 자는 20장의 성지(性之)의 성(誠)과 서로 유사하며,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의 교(敎) 자는 25장의 성자비자성기야(誠者非自成己也)·소이성물(所以成物)의 성(誠) 자와 서로 흡사하다. 계구신독(戒懼愼獨)125) 즈음에 성(誠)이 없으면 진실로 망령되지 않을 수 없어서 존양성찰(存養省察)의 공부126)가 세워지지 않게 된다. 미발에 중정(中靜)이 성(誠)이고 기발에 화동(和動)이 성(誠)이다.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길러지는 데에 이르면 지성(至誠)의 도(道)가 천지에 참여하여 화육(化育)을 돕는 극치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장(首章)에서 비록 성(誠) 자를 말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성(誠)의 도가 그 가운데에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2장의 물건을 그릇에 담는 것에 이르러서는 담긴 물건이 움직이면 그릇이 따라서 움직이고 그릇이 움직이면 담긴 물건 또한 움직일 것이다. 리와 기가 어찌 항상 서로 떨어짐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리가 발하면 기가 따른다.'라는 것이 과연 근거가 없겠는가?"라고 하였다.매번 《중용》 수장에서 '천명을 일러 성이라고 한다.'라고 하고, 《장구》에서 '기가 형을 이루면 리 또한 그곳에 부여된다.'127)라고 하는 구절을 읽음에, 대개 자사(子思)가 다만 리를 말하고 기를 말하지 않았는데 주자(朱子)가 한 개 기(氣)자를 첨가해서 리는 허투루 행할 수 없으니 반드시 기에 깃들게 하고 기는 스스로 선할 수 없으니 반드시 리에 도움을 받도록 밝혀놓았다. 이곳이 주자장구에서 앞에 현인이 발하지 못한 것을 발하여 크게 공이 있는 곳이다. 기가 비록 혼(昏)·명(明)의 다름이 있더라도 리의 밝은 것은 본디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이미 밝은 리를 따른다면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은 즉 형을 이룬 기이니 또한 하늘의 명이고, 사람의 기질에서 미악(美惡)의 다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그렇지 않음이 없다.혹자가 묻기를 "《중용》은 실로 중화의 뜻을 겸했는데 기발의 뒤에 또한 중(中) 자를 썼습니까?"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그렇다. 발이중절(發而中節)의 중(中), 용기중어민(用其中於民)의 중(中), 군자시중(君子時中)의 중(中)은 기발의 중이고, 천하대본(天下大本)의 중(中), 치중(致中)의 중(中), 중립불의(中立不倚)의 중(中)은 미발의 중이다. 군자중용(君子中庸)의 중(中), 택호중용(擇乎中庸)의 중(中)은 기발·미발을 겸해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혹자가 묻기를 "수장에 또한 비은(費隱)의 도(道)가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답하기를 "12장에서 '비이은(費而隱)'을 말했고, 수장에서 '은이비(隱而費)'를 말함에 대개 비(費)와 은(隱)128)의 도는 일이 그렇지 않음이 없고, 물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크게는 천지요 은미하게는 부부(夫婦)이다. 티끌 하나의 작은 것과 만사의 광대함에도 리가 있지 않음이 없고 리에 은(隱)이 있고 비(費)가 있지 않음이 없다. 만약 수장으로 논한다면, 성(性)에서는 성 가운데에 비은(費隱)이 있으나 도(道)에서는 성(性)은 은이고 도는 비이다. 만약 오로지 도를 말하면 도 가운데 또한 비은이 있다. 교(敎)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비하여 은처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예악(禮樂)·형정(刑政)의 소이연(所以然)129)을 구한다면 또한 지극히 은(隱)한 것이 그곳에 있게 된다. 그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것은 비이고, 그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은 은이다. 그 '희로애락의 미발'이라고 한 것은 은이고 그 '발하여 절도에 맞다.'라고 한 것은 비이다. '은미한 곳에서 신독한다.'는 것은 은이고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길러진다.'는 것은 비이다. 그러나 비 가운데 은이 있고, 은 가운데 또한 지극한 은이 있으니 일면을 통찰하여 숙독하고 정밀하게 탐구하면 그 맛이 무궁할 것이다. 몸가짐을 지극히 단속하고 미치는 것이 지극히 넓은 것은 비은(費隱) 두 글자가 최고일 테니 지극히 정미함을 미루고 만 가지 변화를 확대하여 비은(費隱) 위에서 공부한다면 얻는 것이 매우 넓을 것이니 학자는 마땅히 백배로 사색해야 할 곳이다."라고 하였다. 按中庸此一節。 該盡爲學本末工夫。 先儒莫不致謹於此。 而獨我紫陽老先生尤爲精密於此。 平生用力。 不外此二者。 玆謹手畫爲圖。 常常觀省于心目。 而又以心經末章及篁敦所摭全體大用之說參看。 吳明仲訪余於龍頭草舍留數日。 讀退溪心統性情圖。 至理發而氣隨之語。 明仲疑曰: "理本寂然不動。 安有理先發之理哉?" 余當初暫疑其言而不能答。 及退而自思。 以爲'性卽理也。 當其未發。 理具於性。 及其旣發。 理氣動而爲情。 然則是理之未動爲性。 旣動爲情。 故理固有寂感。 而寂者軆也。 感者用也。 旣曰感則非動而何? 故理先發而氣隨之。 理之至善。 不渾於或昏或駁之氣則是爲中節之情。 氣發而理隨之。 理之至善。 聽命於氣則是爲不中之情。 安有理之寂然不動。 如枯木死灰。 必待氣發而後理隨而發哉?' 其後見黃勉齋氏之說曰: "及其感物而動則或氣動而理隨之。 或理動而氣挾之。 由是至善之理。 聽命於氣。 善惡由之而判矣。" 然後汪然大覺。 又知退溪理發之說。 非自家所見而有自來矣。【明仲名以井。 翰林希道之子。 登上庠早歿。】 周子曰: "太極動而生陽。" 盖太極理也。 若曰'理全無所發'。 周子何以曰'太極動'云哉? 朱子亦曰: "氣旣有動靜則所載之理。 亦安得無動靜。" 盖氣者理之器也。 今觀氣亦有美惡。 若此理則在天在人。 固無善惡之殊。 或問朱子曰: "誠者此篇之樞紐。 首章一篇之軆要。 而不言誠何也?" 曰: "首章天命之性性字。 與二十一章自誠明之誠同意。 率性之謂道道字。 與二十章性之之誠相類。 修道之謂敎敎字。 與二十五章誠者非自成己也。 所以成物之誠字相似。 戒懼愼獨之際。 非誠不能眞實无妄。 而存養省察之工夫。 不能以立矣。 未發而中靜而誠也。 旣發而和動而誠也。 至於天地位萬物育則至誠之道。 可以參天地贊化育之極矣。 然則首章雖不言誠字。 誠之道貫徹於其中矣。 至於二章以物盛於器。 所盛之物動則器隨而動。 器動則所盛之物亦動。 理與氣何常有相離哉? 然則理發而氣隨者。 果無據歟?" 每讀中庸首章曰'天命之謂性'。 章句曰'氣以成形。 理亦賦焉'。 盖子思但言理而不言氣。 朱子添得一氣字。 以明理不可虛行而必寓於氣。 氣不能自善而必資於理。 此朱子章句發前賢之未發而大有功處也。 氣雖有昏明之殊。 而理之明者固自若也。 循其已明之理則可以變化氣質矣。 天命之謂性則成形之氣。 亦天之命也。 而人之氣質有美惡之殊者可見。 在天之以下無不皆然。 或問"中庸實兼中和之意。 則旣發之後。 亦下中字否?" 曰: "然。 發而中節之中。 用其中於民之中。 君子時中之中。 旣發之中也。 天下大本之中。 致中之中。 中立不倚之中。 未發之中也。 君子中庸之中。 擇乎中庸之中。 兼旣發未發而言也。" 或問"首章亦有費而隱之道歟?" 曰: "十二章言費而隱。 首章言隱而費。 盖費隱之道。 無事不然。 無物不有。 大而天地。 微而夫婦。 一塵之細。 庶事之廣。 莫不有理。 而理莫不有隱有費。 若以首章論之。 在於性則性之中有費隱。 在於道則性隱而道費。 若專言道則道之中亦有費隱。 至於敎則似若專費而無隱處。 然求其禮樂刑政之所以然則亦有至隱者存焉。 其曰: '不可須臾離者費也。' 而其曰: '不睹不聞者隱也。' 其曰: '喜怒哀樂之未發者隱也。' 而其曰: '發而中節者費也。' '愼獨於隱微者隱也。' 而天地位萬物育者費也。 然費之中有隱。 隱之中亦有至隱。 透得一面。 熟讀精探。 其味無竆。 所操至約而所及極博者。 無過於費隱二字。 推之至精。 擴之萬變。 費隱上做工夫。 所得甚廣。 學者當可百倍思索處。" 자양(紫陽) 안휘성(安徽省)에 있는 산 이름인데, 여기서는 송(宋)나라 주희를 가리킨다. 주희의 아버지 주송(朱松)이 안휘성(安徽省) 흡현(歙縣)에 있는 자양산(紫陽山)에서 독서하였는데, 주희가 그곳에 청사(廳事)를 자양서당(紫陽書堂)이라 하였으므로, 자양은 주희의 호(號)가 되었다. 후세 사람들이 흡현에 자양서원(紫陽書院)을 세웠다. 평소에 …… 않는다 《중용》에 보이는 도문학(道問學)과 존덕성(尊德性)을 말한다. 《중용장구》 제27장에 "군자는 덕성(德性)을 높이며 학문(學問)을 말미암는다.[君子尊德性而道問學.]"라고 하였다. 존덕성(尊德性)은 나에게 내재해 있는 천부(天賦)의 덕성을 지켜 가는 것으로 성의 정심(誠意正心)이 이에 해당되고 도문학(道問學)은 외재해 있는 온갖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터득해 가는 것으로 격물 치지(格物致知)가 이에 해당된다. 정주학파(程朱學派)에서는 도문학을 중시하는 한편 존덕성도 강조하였으며, 육왕학파(陸王學派)는 존덕성에 치중하였다. 진서산(眞西山) 남송(南宋)의 학자 진덕수(眞德秀, 1178~1235)로, 자는 경원(景元), 호는 서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복건성(福建省) 포성(浦城) 출신으로, 벼슬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는데 강직하기로 유명하였다. 주자의 재전제자(再傳弟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수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성경현전(聖經賢傳)의 긴요한 내용을 뽑아 《심경(心經)》을 편찬하여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대학연의(大學衍義)》·《서산독서기(西山讀書記)》·《문장정종(文章正宗)》·《서산문집(西山文集)》 등이 있다. 황돈(篁敦)이 …… 참고하였다 황돈은 명(明)나라의 학자 정민정(程敏政, 1445~1499)의 별호로, 진덕수(眞德秀)의 《심경(心經)》에 여러 학자의 주석을 첨부하여 해설한 《심경부주(心經附註)》를 저술하였다. 오명중(吳明仲) 오이정(吳以井, 1619~1655)으로,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명중(明仲), 호는 장계(藏溪)이다. 1639년 사마양과(司馬兩科)에 합격하고 1651년 정시(庭試)에 응하였으나, 자급(資級)이 없다는 이유로 낙방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장계유고(藏溪遺稿)》가 있다. 〈퇴계심통성정도(退溪心統性情圖)〉 심통성정(心統性情)은 장재(張載)가 만든 개념으로서 주희가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장재의 이 개념은 심(心)과 성정(性情)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지만, 이후로 이 개념을 발전시켜서 이(理)와 기(氣), 체(體)와 용(用)의 개념을 도입하여 심(心)을 해석하려고 하였다. 퇴계 이황은 임은 정씨(林隱程氏) 정복심(程復心, 1257~1340)의 《사서장도(四書章圖)》에서 영향을 받아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만들었는데, 그중 제6도 해당하는 것이 〈심통성정도〉이다. 리가 …… 된다 이발기발(理發氣發)은 '이도 발하고 기도 발한다.[理氣互發]'라는 뜻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제창한 설이다. 그가 처음에 "사단은 이의 발이고, 칠정은 기의 발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라고 주장했다가,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과의 토론을 거친 끝에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이다.[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라고 수정하며 논쟁을 마무리 지은 고사가 있다. 반면에, 율곡(栗谷)은 "사단(四端)과 칠정(七情) 모두 기(氣)가 발하는데 이(理)가 이에 타는 것(주재)이다.[四端七情, 皆氣發而理乘之.]" 하여,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說)을 주장하였다. 황면재(黃勉齋) 남송(南宋)의 성리학자 황간(黃榦, 1152~1221)으로, 자는 직경(直卿), 호는 면재,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민현(閩縣) 장계(長溪) 출신으로, 주희(朱熹)와 유청지(劉淸之)에게 수학하였는데, 주자는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학문을 전수하고 사위로 삼았다.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에서 강학하였으며, 주자의 뜻에 따라 《의례경전통해속(儀禮經傳通解續)》을 편찬하였다. 저서에 《오경통의(五經通義)》, 《사서기문(四書記聞)》, 《면재집(勉齋集)》 등이 있다. 상상(上庠) 태학(太學)을 말하는 것으로 곧 성균관(成均館)이다. 소과(小科)에 급제한 자들이 들어갔으므로 초시에 합격했다는 말로도 쓰인다. 태극(太極)이 …… 낳는다 주돈이(周敦頥)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아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하고, 정하여 음을 낳아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라고 하였다. 계구신독(戒懼愼獨)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章)에 보인다.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보이지 않아도 조심하는 것이요, 들리지 않아도 두려워하는 것이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고 하였고, 바로 뒤에 "숨겨진 것보다 잘 드러난 것이 없고 작은 것보다 잘 나타난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가는 것이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고 하였다. 존양성찰(存養省察)의 공부 정(情)이 발동하기 이전의 정시(靜時)에 마음을 보존하고 성품을 함양하는 공부와 발동한 뒤의 동시(動時)에 인욕이 싹트려는 기미에 살피는 공부를 말한다. 《중용장구》 제1장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한다.[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한 것은 존양공부를 가리키며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必愼其獨也.]" 한 것은 성찰 공부를 말한다. 기가 …… 부여된다 《중용장구》 제1장에 "하늘이 명하신 것을 성이라 이른다.[天命之謂性.]"라고 하였는데, 주희의 주(注)에 "하늘이 음양(陰陽)·오행(五行)으로 만물을 화생(化生)할 적에 기(氣)로써 형체를 이루고 이 또한 부여하니 명령함과 같다. 이에 사람과 물건이 태어남에 각각 부여받은 바의 이를 얻음으로 인하여 건순(健順)·오상(五常)의 덕을 삼으니, 이른바 성이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비(費)와 은(隱) 《중용장구》 제12장에 "군자의 도는 비하고 은하다.[君子之道, 費而隱.]"라고 하였는데, 그 주를 참고하면 "군자의 도는, 그 작용은 광대무변하지만 그 본체는 은미하여 알기 어렵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역시 《중용장구》 제12장 중 "《시경》에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라고 하였으니, 천지의 도가 위아래로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의 주에 "자사는 이 시를 인용하여 만물을 낳고 기르는 천지의 기운이 흐르고 퍼져서 위아래에 분명히 드러남은 모두 이 이치의 운용임을 밝혔으니, 이른바 비이다. 그러나 그리된 까닭은 보거나 들을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른바 은이다.[子思引此詩, 以明化育流行, 上下昭著, 莫非此理之用, 所謂費也. 然其所以然者, 則非見聞所及, 所謂隱也.]"라고 하였다. 소이연(所以然) 그렇게 된 원인, 즉 본체를 일컫는 말로 형이상자(形而上者)에 해당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인심도심도 人心道心圖 성명(性命)을 통섭하고 형기(形氣)를 포괄하고 일신(一身)의 주재(主宰)가 되는 것은 심(心)이다. 리(理)는 기(氣)에 깃들고 기는 형(形)에 깃들고 심은 가운데에서 통섭하니 이른바 심이라는 것은 하나일 뿐이지만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리는 허령불매(虛靈不昧)130)하니 심의 체(體)이고 지각운동(知覺運動)은 발하여 용(用)에 응하는 것이니 심의 용이다. 그 지각의 때를 당하여 성명(性命)의 바름[正]에 근원 하는 것을 '도심(道心)'이라 말하고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나는 것을 일러 '인심(人心)'이라고 한다. 이 때를 당하여 원(原)은 은미하여 드러나지 않고 생(生)은 쉽게 위태로움에 흐르니 두 가지 것의 경계(經界)가 처음에는 나누어져서 귀결 처에 미치지 못할 뿐이다. 이 지경에서는 선악(善惡)·성광(聖狂)이 갈림길에 임한 것과 같아서 이에 성인이 정일(精一)의 공(功)을 더하여 중(中)을 잡았다.131)도심을 위주로 하는데 이르러서는 인심이 명령을 듣고 간직한 마음[操存]132)이 출입함에 발한 것이 모두 절도에 맞게 된다. 중인은 정일(精一)의 공(功)을 이루지 못하여 사(私)에서 생기는 것이 위태롭고, 인욕이 골몰(汨沒)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바름에 근원 한 것이 은미하여 이미 끊어지게 된다. 선악(善惡)·성광(聖狂)은 여기에 이르러 서로의 거리가 만 리나 되고 득실이 하늘과 땅의 차이가 되기 때문에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은 외면상의 행동은 같으나 내면의 실정은 다르다.'133)라고 한 것이니 대개 요순(堯舜) 이후 정주(程朱) 이전의 전후 수천 년은 그 도리[一揆]134)를 닦고 같은 영역에 귀착되는 것이 모두 여기에 근본하였다. 그 말과 그 법은 모두 방책(方策)135)에 실어 후세에 남겼으니 비록 저 같은 무지한 사람도 대충 경전 중에서 그 말들을 얻었다. 저 알지도 못하고 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와 대충 그 방법을 통하고서 나처럼 포기한 자는 '자적(自賊)'136)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일찍이 주자가 인심도심(人心道心)137)의 설과 오봉(五峯)의 동행이정(同行異情)138)의 말을 채집 하여 손으로 그려 도를 완성하여 사색과 성찰의 도구로 삼았다. 그러나 과연 주자 선생의 뜻에 합당한지 모르겠다. 인하여 그 말들을 기록하여 지혜 있는 자가 질정해 주기를 기다린다. 統性命包形氣。 作一身之主宰者心也。 理寓於氣氣寓於形。 心統於中。 所謂心者一而已矣。 而仁義禮智之理。 虛靈不昧者。 心之體也。 知覺運動發而應用者。 心之用也。 當其知覺之際。 原於性命之正。 是謂道心。 生於形氣之私。 是謂人心。 當此之時。 原者微而不著。 生者易流於危。 二者經界始分而未及歸宿地耳。 在此地頭。 善惡聖狂。 有若臨歧然。 於是聖人加精一之功而執中焉。 以至於道心爲主。 人心聽命。 操存出入。 發皆中節。 衆人不能致精一之功而生於私者。 危而至於人欲之汨沒。 原於正者。 微而已絶矣。 善惡聖狂。 至此而相去萬里。 得失天壤。 故曰: '天理人欲。 同行異情也。' 盖堯舜以下。 程朱以上。 前後數千載。 其所以脩之一揆。 歸之一域者。 皆本於此也。 其言其法。 具載方策。 以貽後世。 雖以某之無知。 粗得其說於經傳中矣。 彼不知而不爲者。 無可怪者。 粗通其方而自棄如我者。 其名曰'自賊'。 可不懼哉? 嘗採朱夫子人心道心之說及五峯同行異情之語。 手畫成圖。 以爲思省之具。 然未知果合於朱夫子之意否。 仍錄其說。 以待知者正焉。 허령불매(虛靈不昧) 사람의 마음은 공허하여 형체가 없으나, 그 기능은 거울처럼 맑고 환함을 이른다. 《대학장구》 제1장의 '명덕(明德)' 주석에서 주희(朱熹)는 "명덕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타고난 것으로, 허령불매하여 뭇 이치[衆理]를 갖추어 만사(萬事)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일(精一)의 …… 잡았다 집중(執中)은 중도(中道)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순임금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안 성인이기 때문에 요(堯) 임금이 그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집중(執中)'이라는 말만을 전수하였고, 우 임금은 배워서 이치를 안 성인이기 때문에 순임금이 그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공력을 쓰는 차례를 가지고 전수한 것이라 말한 것이다. 조존(操存) 마음을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공자가 이르기를 '잡고 있으면 보존되고, 놓아 버리면 없어지며,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고, 어디를 향할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하였다."라고 한 데서 나왔다. 천리(天理)와 …… 다르다 송유(宋儒)인 오봉(五峯) 호굉(胡宏)이 "사람들이 천리(天理)와 인욕 (人欲)을 대하는 것이, 외면상의 행동은 같아도 내면의 실정은 다르다.[天理人欲, 同行異情]."라고 말한 내용이 《심경부주(心經附註)》 〈인심도심장(人心道心章)〉에 나온다. 일규(一揆) 동일한 도리라는 말인데,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서 맹자가 순(舜)임금과 주 문왕(周文王)의 정치를 논하면서, 비록 천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앞의 성인과 뒤의 성인의 그 도리가 똑같다.[先聖後聖, 其揆一也.]"라고 말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방책(方策) 서책(書冊)이다. 방(方)은 목판(木版)이고, 책(策)은 간책(簡策)인데, 옛날에 종이가 없을 때에 목판이나 간책에 모든 것을 기록하였으므로 서책의 대명사로 쓰인다. 자적(自賊) 스스로 해친다는 말로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나온다.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이고,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사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체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이고, 자기 군주가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知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인심도심(人心道心) 《고문상서(古文尙書)》 대우모(大禹謨)에 나오는 말이다. 원래 요(堯)가 순(舜)에게 전할 때에는 '윤집궐중(允執厥中)'이라는 네 글자에 불과하였는데, 순이 우(禹)에게 전할 때에 이렇게 덧붙여서 말했다고 한다. 주희(朱熹)가 이 대목을 요와 순과 우가 서로 도통(道統)을 전한 '십륙자 심전(十六字心傳)'이라고 강조한 뒤로부터 이 말이 송명(宋明) 이학(理學)에서 막중한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주희는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심성(心性)의 본체라는 이(理)의 측면에서는 하나라는 이일(理一)의 입장을 전제하면서도, 그것이 발현되어 나오는 용(用)의 분수(分殊)라는 측면에서 보면 도심은 공정 무사한 이른바 '성명지정(性命之正)'에서 나오고 인심은 사벽(邪僻)의 요소가 내재한 이른바 '형기지사(形氣之私)'에서 나오는 만큼 도심과 인심은 둘로 나뉘어진다는 '도심인심위이(道心人心爲二)'라는 명제를 제기하고는, 여기에 이기(理氣) 및 선악(善惡) 등의 이론과 도덕 수양의 실천 문제를 결부시켜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반면에 육구연(陸九淵) 등은 정주(程朱)의 이러한 '일분위이(一分爲二)'의 마음에 대한 이론을 반박하며, 도심과 인심이 두 가지가 아니고 모두 지선(至善)의 본심(本心)인 만큼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도심과 인심으로 분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도심인심합일(道心人心合一)'의 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 이후로 이 두 학파의 논란이 끈질기게 계속되다가, 급기야는 청(淸) 나라 고증학자들의 실증적 조사 결과에 따라 《고문상서》가 위서(僞書)라는 판명이 내려지면서 이 논쟁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오봉(五峯)의 동행이정(同行異情) 오봉은 송나라 성리학자 호굉(胡宏, 1106~1161)으로, 자는 인중(仁仲), 오봉은 그의 호이다. 호안국(胡安國)의 아들로 남송 호상학파(湖湘學派)의 개창자다. 어린 시절 양시(楊時)와 후중량(侯仲良)에게 배웠으며, 아버지의 이학사상(理學思想)을 계승하여 도학 진흥을 평생의 임무로 여겼다. 저서로는 《지언(知言)》, 《황왕대기(皇王大紀)》 등이 있다. 호굉(胡宏)은 《지언(知言)》에서 천리와 인욕이 체는 같으나 용이 다르며[同體異用.], 행은 같으나 정이 다르다.[同行異情.]고 주장하였다. 주자(朱子)는 이러한 호굉의 주장 중에서 '체는 같으나 용이 다르다.[體異用.]'는 설은 비판하고 물리쳤으나, '행은 같으나 정이 다르다.[同行異情.]'는 설은 긍정하여 받아들였다. 즉 시청언동(視聽言動)이나 식색(食色)과 같은 행동은 성인도 범인과 마찬가지이지만, 성인은 그것이 예(禮)와 합치되게 함으로써 천리(天理)를 따른다는 점에서 정(情)이 다르다고 보았다. 《朱子語類 卷101 程子門人 胡康侯》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융길 북도평사를 보내다 送隆吉北道評事 예전에 내가 마천령 밖으로 갔었는데돌아오니 칼집 속 노룡이 우네군영에 본래 변방을 다스리는 계책 있는데막부에 부질없이 좌막의 이름 걸었네관새는 지금 행락하는 곳 되었으니장부가 어찌 이별의 정 느끼랴다만 장백산은 예전 그대로일 것이니이르노니, 구태여 오랑캐 병사에게 보낼 것 없네 昔我磨天嶺外行歸來鞘釰老龍鳴柳營自有籌邊手蓮府空題佐幕名關塞今爲行樂地丈夫那作別離情祗應長白山依舊寄語無勞送虜兵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이중립이 생선을 보내준 것에 감사하다 謝李中立饋魚 그대 용흥강가에 살다가멀리 와서 나에게 한 쌍의 잉어를 주누나칼날에 가볍게 눈이 날리는 것257)을 점차 알겠고도마 위에 가늘게 은을 부수는 걸258) 바야흐로 보누나천고에 남긴 한 초나라 혼백을 묻고259)삼추에 돌아갈 흥 오나라 사람을 흔드누나산에 사니 동산의 채소 맛에 오랫동안 질려하였는데집을 옮겨서 이웃에 함께 사는 것이 어떠하신가 君在龍興江水濱遠來遺我一雙鱗刀頭漸覺輕翻雪机上方看細斫銀千古遺冤埋楚魄三秋歸興動吳人山居久厭園蔬味肯許移家共卜鄰 눈이 날리는 걸 물고기를 가늘게 떠서 쟁반에 담은 것이 마치 하얀 눈이 쌓인 듯하다는 말이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관타어가(觀打魚歌)〉에 "요리사가 좌우로 서리 같은 칼을 휘두르니, 회가 금반에 날아들며 흰 눈이 높이 쌓이는 듯하다.[饔子左右揮霜刀, 鱠飛金盤白雪高.]"라고 하였다. 은을 부수는 걸 은빛의 물고기를 잡아 회를 뜬 것을 말한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배정광문유하장군산림(陪鄭廣文游何將軍山林)〉에서 "은 실 같은 신선한 붕어 회, 골짝 푸른 물로 끓인 향기로운 미나리 국.[鮮鯽銀絲鱠, 香芹碧澗羹.]"라고 하였다. 천고에……묻고 굴원의 《초사》 〈어부사(漁父辭)〉에서 "차라리 상강에 빠져 죽어서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낼지언정, 어찌 이 깨끗한 몸으로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는가.[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라고 하였다. 초나라 사람들이 굴원의 투신자살을 슬퍼하여, 물고기한테 굴원의 시체를 뜯어 먹지 말라고 대통에다 쌀을 넣어 물에 던진다고 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외재가 농암 김공 창협 에게 준 편지 畏齋與農巖金公【昌協】書 고 평사(評事) 정문부(鄭文孚) 공의 사적은 《북관지(北關志)》에 적혀 있다네. 대개 임진왜란을 당하여 진보(鎭堡)의 반란병들이 수령과 장수를 앞 다퉈 결박하고 온 성안의 사람들이 왜적을 따랐으나, 정공은 경성(鏡城) 어란리(禦亂里) 어느 유생의 집에 숨어서 제생(諸生)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반란의 역적을 죽이고 왜구를 토벌하였으니 관북이 마침내 평정되었네.그 당시 방백(方伯)이란 자는 쥐처럼 숨어 다니면서 목숨을 건졌는데, 정공이 낮은 벼슬로 큰 공을 세운 것을 시기하여 사실과 반대로 조정에 알리니 난리에 참여했던 군사들이 한 명도 고신을 얻지 못하였네. 이에 백성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탄식하면서 왕의 일이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네.선친이 손수 초를 잡은 두어 장의 종이가 집안에 보관된 문서에서 발견되었기에 내가 이로 인하여 방백 노봉 민 상공에게 품의하고서 어란리에 사우를 세워 정공을 제사지내고 의사 네 사람으로 배향하였네. 또한 사당의 곁에 서당을 세워 마을의 제생들이 학문을 익히는 장소로 삼고서 촉룡(燭龍)으로 명하였네. 조정에서 서원에 창렬(彰烈)이란 현판을 내렸는데, 내가 또 사지(祠志)를 만들어 보관하게 하였네.원컨대 중화(김창협의 자)가 이 지역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사원을 찾아가 제생들을 불러 보며, 서원에 폐지되거나 그만두는 일이 생기면 힘을 다하여 진작시키게. 훗날 북관에 변고가 발생한다면 지방민들에게 권면되는 바가 있을 것이며 나라가 이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일세. 故評事鄭公文孚事蹟, 付于《北關志》。蓋當壬辰之亂, 鎭堡叛兵, 爭縛守將, 擧城附賊, 鄭公投匿鏡城禦亂里儒生家, 與諸生共起義兵, 誅叛賊討倭寇, 關北卒就平定。而其時爲方伯者, 鼠竄偸生, 忌鄭公以小官立大功, 反實以聞, 從難之士, 不得一告身, 人心憤惋, 以爲王事不可成云。先人手草數紙, 見遺於家藏, 故余因此稟議于方伯老峰閔相公, 建祠宇於禦亂里祀鄭公, 以義士四人配之。又作書堂于祠側, 爲里中諸生肄業之所, 名以'燭龍'。朝廷賜祠額曰'彰烈', 余又爲祠志, 以藏之。願仲和入其境, 先訪此祠, 招見諸生, 事有廢墜, 爲致力而振起, 他日關北有變, 土人有所興勸, 而國家可從而得力也。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잠 箴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자신잠 自新箴 천명이 밝게하늘에서 내려오고하늘에서 내려와천하에 베풀어진다사람이 이를 얻어서바로 명덕이라 하니하늘에서 내려온지라밝고도 깨끗하다밝고도 깨끗하니광대하게 통철한다저울처럼 공평하고거울처럼 맑으며비어 있되 신령하여이치와 일이 모두 드러난다그러나 혹 가려지면본연의 성이 닫히니신령함이 되레 막히고광대함도 좁아진다밝게 비추는 거울을먼지와 때가 차지하고깨끗한 보옥도티와 흠이 쌓이나니다듬지 않고 쪼지 않으면하자가 절로 벗겨지지 않는다빨지 않고 닦지 않으면먼지가 어찌 절로 씻기랴몸의 때는씻어서 말끔해지지만마음의 가려짐은예가 아니면 씻기 어렵다머리 감고 몸을 씻어내 몸을 정결히 하듯씻어내고 빨아내어내 덕을 새롭게 하라어떻게 새롭게 하는가날로 새롭고 또 새롭게 하라명덕이 밝아지는 것은사람으로 인해 밝아진다밝히지 않으면 밝지 않고새롭게 하지 않으면 새로워지지 않는다명덕은 저기에 달려 있으나새롭게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명덕이 밝아지는 지 여부는내가 새로워지는 지 여부에 달려있고내가 새로워지는 지 여부는마음이 바른 지 여부에 달려있다마음이 진실로 바르면나는 절로 새로워지고내가 정말 새로워지면덕은 절로 새로워진다구습을 바꾸고 없애면신명이 펴질 것이다사욕이 와서 물들면 보존하지 못하고앞서 바로잡으면 도리어 허령해진다나의 마음과 몸은나란히 어두움과 밝음의 원인이 된다내 몸은 내가 붙드는 것이고내 마음은 내가 적시는 것이다새롭게 하느냐 새롭게 하지 않느냐는나에게 달려 있지 어찌 저에게 있겠는가내가 명덕을 밝히려 한다면어찌 밝아지지 않겠는가내가 새롭고 새로워지려 한다면어찌 새로워지지 않겠는가악이 있으면 제거하고사욕이 있으면 저지하라사욕을 막고 인을 행하면심덕이 모두 새로워질 것이다나의 덕이 이미 새로워지면백성의 덕도 새로워질 것이다백성이 이미 새로워지면나라가 평안해질 것이다아 나 소자여어찌 각기 힘써 바로잡지 않으랴 命之赫然。 降之自天。 降之自天。 天下來宣。 人於是得。 乃謂明德。 降之自天。 明且潔焉。 旣明且潔。 廣大通徹。 如衡之平。 如鑑之淨。 虛而且靈。 理事具形。 然或有蔽。 本然性閉。 靈者反塞。 廣者又窄。 昭然明鑑。 塵垢是陷。 潔然寶玉。 瑕玷是積。 非磨非琢。 玼不自剝。 不濯不硏。 塵豈自湔。 身上之垢。 浴以淸瀏。 心上之蔽。 非禮難洗。 沐矣浴矣。 我身潔矣。 滌焉濯焉。 我德新焉。 如何以新。 日新又新。 惟明之明。 因人以明。 不明不明。 不新不新。 明者在彼。 新之在己。 明之明否。 在我新否。 在我新否。 在心正否。 心苟正矣。 我自新矣。 我苟新矣。 德自新矣。 舊習革去。 新命有舒。 來染未全。 前正反虛。 惟我心身。 昏明並因。 我身我持。 我心我洽。 惟新不新。 在己焉彼。 我欲明明。 胡焉不明。 我欲新新。 焉乎不新。 有惡斯去。 有慾斯沮。 窒慾行仁。 心德具新。 我德旣新。 民德可新。 民旣新矣。 國可平矣。 嗟余小子。 盍各勉正。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연경으로 부임해 가는 월사 이상서19)를 보내다 2수 送月沙李尙書赴燕京【二首】 조정에서 사신 임무 중시하니어진 대부를 잘 가려 뽑았네일찍이 시경 삼백 편을 외웠고사천 리 길을 거듭 다녔지견식은 주나라 예악에 훤하고자취는 우임금 산천에 익숙하네일 마치고 빨리 돌아와야 할지니궁궐 마지20)가 그대를 기다려 펼쳐지리라연경이 또 만 리나 떨어져 있으니가는 도중에 귀밑머리 먼저 세겠지천자를 알현하기 위해 급히 떠났다가고국 그리는 마음에 바삐 돌아오네일찍이 객지에서 고생한 것 떠오르니다시 이렇게 그대를 송별하니 서글프구나다행히도 몸은 여전히 건강하니요동이 추워도 또한 무방하네 朝廷重專對妙揀大夫賢夙誦詩三百重遊路四千眼明周禮樂迹慣禹山川竣事歸須早宮麻待子宣燕京且萬里半道鬢先蒼去爲朝天急歸因懷土忙憶曾爲客苦復此送君傷所賴身猶健遼寒也不妨 월사 이상서 이정귀(李廷龜, 1564~1635)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마지(麻紙) 조서(詔書)를 가리킨다. 당나라 때 사서(赦書), 덕음(德音), 건저(建儲) 등 중요한 일이 있기나 장상(將相)을 임명하고 체직시킬 때 모두 백마지(白麻紙)를 사용하였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