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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 선생이 외재에 답한 편지 尤庵宋先生答畏齋書 정 평사의 일은 어렸을 때 일찍이 그가 지은 임진년 격문을 읽어보고 그 사람됨을 상상하였으나, 그가 이룬 사업이 이와 같은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네. 옛날 책에 '큰 난리에 항쟁한 사람에게 제사 지낸다.'10)는 글이 있으니, 지금 처음 의병을 일으킨 지역에 제사 지내는 것을 어찌 의심하겠는가. 나의 견해가 이와 같은데, 잘 모르겠네만 여론은 어떠한가. 鄭評事事, 兒時嘗讀其壬辰檄文, 想像其爲人矣, 不料其事業如此也。古書有抗大難則祀之之文, 今以此俎豆於首事之地, 何疑何疑。鄙見如此, 未知輿情如何也。 큰……지낸다 우암의 이 말은 전고에 보이지 않고 다만 《예기》 〈제법(祭法)〉에서 "큰 환란을 막은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낸다.[能捍大患則祀之]"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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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이공 민서 이 외재에게 답한 편지 西河李公【敏敍】答畏齋書 별지에서 말씀하신 정공의 일에 대해 아우도 또한 귀와 눈으로 직접 목도하지 못하였기에 그가 어떤 사람인줄 잘 알지 못하며, 또한 죄를 얻게 된 까닭이 어떠한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강 그 사람에 대해 듣건대, 선배와 장자들이 또한 대부분 허여하였다고 합니다. 지난번 백헌11)을 뵈오니 또한 기상이 큰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박래장(朴來章)의 옥사에 그가 연루되었는데, 조정에서 또한 그것이 거짓됨을 분별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마침 시안(詩案) 때문에 대간에서 엄하게 논죄한 자가 있어서 곤장을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과연 그렇다면 원통하게 죽은 사람의 연좌된 죄명이 비록 무겁지만 후대의 공론은 그를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그가 변방에서 의병을 일으킨 공이 사람들의 이목에 선하여 가릴 수 없으니, 그렇다면 사당을 세워 제향을 지내도 혐의할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변방 백성들을 고무시켜서 그 유익함이 적지 않으니, 형이 방백과 더불어 더욱 더 깊이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가운데 전투하다가 죽은 자손을 녹용(錄用)하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처리할 바가 아니니 형이 주장(主將)과 서로 의논하여 조정에 직접 청하면 사의(事宜)에 합당할 것 같으니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저희 집안에 마침 정공의 집 자손과 잘 아는 자기 있는데, 그 사람이 곡절을 대략 써서 보여주었기에 그 종이를 아울러 보냅니다. 연좌된 시안도 또한 그 종이의 끝 부분에 있으니, 이것을 본다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別紙所敎鄭公事, 弟亦耳目所未逮及, 未詳其何等人。且得罪之故, 亦未知其如何, 而槩聞其人, 先輩長者, 亦多見許。向拜白軒, 亦言其磊落人。且朴來章之獄, 其所連引, 朝廷亦辨其虛枉, 而其時適以詩案, 有臺諫深論者杖死云。果爾則冤死之人所坐罪名雖重, 後來公議, 不可棄其人。且其邊上倡義之功, 在人耳目者, 有不可掩, 則立祠以享, 似無所嫌。此等擧措, 聳動邊民, 爲益非細。兄與方伯令公, 更加商量爲妙。其中戰亡子孫錄用事, 非私力所可辦, 兄或與主將相議, 直請於朝廷, 似合事宜, 未知如何。鄙家適與鄭家子孫有相識者, 其人略書曲折以示之, 故其紙幷送耳。所坐詩案, 亦在紙端, 覽此則可詳矣。 백헌 이경석(李景奭)의 호이다. 자는 상보(尙輔), 호는 백헌‧쌍계(雙溪),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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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앵도 하얀 앵도 2수 紅白櫻桃【二首】 흰 쟁반 붉은 소매 있다가 도로 사라지니각자 뛰어난 자태 겨루는 형세 막상막하네괜스럽게 홍문연에서 옥 술잔 깨뜨렸고319)또 어찌하여 금곡원에서 산호를 부쉈나320)붉은 것은 국색이라 가장 요염한 자태요흰 것은 천진난만하니 또한 기특하구나양쪽에서 승부를 가리려 하지 말라모두 조화옹 솜씨로 잘 만들었으니 氷盤紅袖有還無各鬪奇姿勢不俱多事鴻門撞玉斗更何金谷擊珊瑚紅爲國色最妖姿白是天眞亦一奇莫向兩邊分勝負巧成均自化工施 홍문연에서……깨뜨렸고 홍문(鴻門)의 연회에서 범증이 항우(項羽)에게 유방(劉邦)을 죽일 것을 간하였으나 항우가 이를 듣지 않자, 연회가 끝난 뒤 범증이 화가 나서 항우에게 받은 옥 술잔을 부수었다. 《史記 項羽本紀》 금곡원에서 산호를 부쉈나 금곡원은 진(晉)나라의 부호 석숭(石崇)의 별장으로 그는 여기에서 빈객을 불러들여 술을 즐기면서 호화롭게 살았다. 어느 날 진 무제(晉武帝)에게 두어 자쯤 되는 산호수(珊瑚樹)를 하사받은 왕개(王愷)가 석숭에게 이를 자랑하자, 석숭이 그 산호수를 부수고는 자기 집에 있는 산호수를 자랑하였다고 한다. 《晉書 石崇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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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에서 옛일에 감회가 일다 2수 靑鶴洞感舊【二首】 뜨락 가득 홰나무 살구나무 녹음 짙고울긋불긋한 벼랑에 골짜기 깊숙하네예전 사람 술 마시며 시 읊던 일 아련히 떠오르니지는 꽃과 우는 새 모두 마음게 하는구나젊어서 와 노닐던 곳 이제야 비로소 돌아오니당시의 옛 자취 공연히 머리 들어 바라보네푸른 홰나무 뜨락에 석 자 높이 자랐으니모두 우리가 떠난 후에 심은 것이네 滿庭槐杏綠陰陰翠壁丹崖洞府深遙憶昔人觴詠事落花啼鳥摠傷心少小來遊今始回當時陳跡首空擡綠槐庭畔高三尺盡是吾人去後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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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추보13) 신 에 주다〉 시에 차운하다 次贈黃秋浦 愼 韻 꽃은 저물녘 작은 창을 누르고그윽한 새는 울며 사람을 부르네아이를 불러 술로 바꾸게 하고객을 맞이해 봄 경치 구경하기로 약속했네향기로운 풀 밟으니 다시 푸르고맑은 시 읊조리니 더욱 새로워지네좋은 날 크게 취해야 할지니홀로 깨어 있는 신하14) 본받지 말라 花壓小窓晩幽禽啼喚人呼兒敎換酒邀客約尋春芳草踏還綠淸詩吟轉新良辰須大醉莫效獨醒臣 황추보 황신(黃愼, 1560~1617)으로,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사숙(思叔), 호는 추포(秋浦)이다. 홀로……신하 초나라 굴원(屈原)을 말한다. 굴원이 참소를 입고 쫓겨닌 뒤 "뭇사람이 다 취했거늘 나 홀로 깨었는지라, 이 때문에 내가 추방되었노라.[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라고 하였다. 《楚辭 漁父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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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경을 보내다〉 시에 차운하다 次送趙雲卿韻 얼굴 붉은 것은 술 좋아하기 때문이요머리털 센 것은 시대를 근심하기 때문이라동이와 장삼이 같은 궤변15)에안위는 실낱에 솥을 단 듯 위태로워라서쪽으로 가는 사신길 다급한데남쪽으로 가는 격서는 더디네제갈량이 몸소 농사지을 때출병할 줄 누가 알았으랴16) 顏紅緣嗜酒髮白坐憂時同異臧三耳安危鼎一絲西朝冠蓋急南國羽書遲諸葛躬耕日誰知可出師 동이……궤변 ; 원문의 동이(同異)는 "견백동이(堅白同異)"의 준말이고, 장삼이(臧三耳)는 "노비의 귀는 세 가지"라는 의미다. "견백동이"는 전국 시대 조(趙)나라 공손룡(公孫龍)이 주장한 궤변으로, 단단하고 흰 돌의 경우 눈으로 보아서는 색깔이 흰 것은 알 수 있지만 단단한지는 모르며 손으로 만져보아서는 단단한지는 알 수 있지만 색깔이 흰 것인지는 모른다는 내용이다. 또 공천(孔穿)과 공손룡이 "노비의 귀는 세 가지"라는 논쟁을 벌였는데 공손룡의 논리가 정연하여 공천이 응대하지 못하고 가버렸다. 《公孫龍子 堅白論》 제갈량이……알았으랴 삼국 시대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으로 은거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가 유비(劉備)에게 되었는데, 유비가 세상을 떠난 뒤 위(魏)나라 정벌을 나서면서 유선(劉禪)에게 〈출사표〉를 올렸다. 《古文眞寶 後集 卷1 出師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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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도에서 순행할 때 짓다 2수 在北道巡行時作【二首】 변방을 두루 다님에 길 끝없으니바다는 서쪽에 있고 백두산은 동쪽에 있네오경의 꿈속에서 고향을 헤메고천 리 떨어진 곳의 군장은 삭풍을 띠고 있다참으로 객지에서 병든 학과 같으니돌아가는 기러기 소리 근심 속에 차마 듣지 못하겠어라곁에 있는 사람이 내 심사 알지 못하여치료법으로 수웅을 잘못 권하네-병으로 수웅(水雄)을 복용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지세는 뱀과 같아 변새로 깊숙이 들어가 있고긴 강물 일대는 우리 동방의 국경이라백두산엔 천년토록 녹지 않는 눈 쌓여 있고청해성은 만 리 밖에서 불어온 바람을 맞누나길은 변방에 막혔으니 꿈속에서 찾아가고구름은 진수82)에 이어지니 변방 기러기를 보내네청명한 시대에 성군께 보답할 계책 없으니진실한 마음 부질없이 옛 검의 웅장함에 기대노라83) 踏遍關河路不窮滄溟西畔白山東五更魂夢迷鄕國千里戎裝帶朔風正是客中同病鶴不堪愁裡聽歸鴻傍人莫識余心事錯把醫方勸水雄【以疾服水雄故云。】地勢如蛇入塞窮長流一帶限吾東白頭山戴千秋雪靑海城臨萬里風路隔漢關勞夢蝶雲連秦樹送邊鴻淸時無策酬明主肝膽空憑古釰雄 진수(秦樹) 진수는 멀리 떨어진 지역을 비유하는 말로, 붕우 간에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 그리워하는 정을 표현할 때 쓰인다.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영호 낭중에게 부치다[寄令狐郞中]〉 시에 "숭산의 구름 진 땅의 나무 오래도록 떨어져 있는데, 잉어가 멀리 한 장의 편지 가져왔네.[嵩雲秦樹久離居, 䨇鯉迢迢一紙書.]"라고 하였다. 진실한……기대노라 당나라 한유(韓愈)의 〈장철에게 답하다[答張徹]〉 시에 "진실한 마음은 하나의 옛검처럼 강직하고, 우리 신세는 파도에 떠다니는 두 부평초라.[肝膽一古劔, 波濤兩浮萍.]"라고 하였다. 《全唐詩 卷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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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지73)의 원시를 부기하다 附洪仁祉韻 한나라와 당나라의 경조, 송나라의 개봉기자 나라의 제도가 대체로 이와 같네호적 모두 실어 오니 백성 수 많고산하가 감싸 호위하니 국도 웅건하여라간사함을 드러내고 숨긴 것을 들춰냄이 중요한 방도이니법 바로잡음에 사사로움 없이 단지 공정하게 하네스스로 부끄러워라, 못난 이 몸 한갓 녹만 축내면서도뻔뻔스레 백발 노인으로 분주히 달려간 것이 漢唐京兆宋開封制度箕邦略與同版籍總輸生齒盛山河擁衛國都雄發奸摘伏須要道正法無私只自公自愧蒙聾徒竊祿强顔趨走白頭翁 홍인지(洪仁祉) ?~?.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응휴(應休)이다. 첨지중추부사 홍덕연(洪德演)의 둘째 아들로, 1546년(명종1) 생원시에 합격했으며, 1567년에 형조 좌랑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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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1591, 선조24) 7월 그믐에 북평사에 제수되어, 8월에 길을 떠나 저녁에 누원에 묵었는데, 홍이신이 술과 과일을 대접하고 4운시 세 수를 지어 증별하기에. 내가 그중 한 수에 차운하여 주고 작별하였다 이하 32수는 북로에 있을 때 지은 시이다. 辛卯七月晦 除北評事 八月發程 暮投樓院 洪而信待以酒果 作四韻三首 贈別余次其一酬別【以下三十二首 北路時作】 한 번 만나봄에 의기 호방하다 서로 추양(推讓)했으니친밀한 정 어찌 꼭 오래 사귄 벗이어야 하랴술잔 앞에서 정담 나눌 제 함께 주미를 휘둘렀는데79)변경으로 떠나는 행장 홀로 깃발을 잡았네80)잿마루의 나무는 서리 맞아 바람에 잎 떨구고변새 기러기는 빗속에 길 잃고 빈 해자에 내려온다병든 뒤로 큰 술잔 마시기 두려우니누런 국화와 흰 막걸리 헛되이 저버렸네 一見相推意氣豪情親何必舊同袍樽前細話雙揮麈關外行裝獨擁旄嶺樹經霜吹落葉塞鴻迷雨下空壕病來㥘殺深杯飮虛負黃花與白醪 주미를 휘둘렀는데 청담(淸談)를 나눈다는 의미이다. 주미(麈尾)는 이야기를 나눌 때 벌레를 쫓거나 먼지를 털어내던 일종의 먼지떨이로, 옛날에 청담을 하던 고사(高士)들이 주미를 손에 들고 담론하였다고 한다. 깃발을 잡았네 군대를 통솔한다는 의미로, 정문부가 함경북도 병마평사로 부임하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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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사 감회 농암 김창협 彰烈祠感懷【農巖 金昌協】 예전에 왜구가 난 일으켜병진이 이 땅에 가득했지정공은 좌막으로 분발해단에 올라 깃발 세우고 북 울렸네진들을 감격시켜 발동하니의병들 구름처럼 모여들었네눈물 흘리며 행재소 바라보고담소하며 역도 잡아 참수하였네75)쉬지 않고 승승장구 나아가비바람 몰아치듯 적을 격파했네공 높아지자 모함76)도 받고사실 가려져 아는 이 드무네충성과 공적 막혀 드러나지 않다가숨겨진 울분 오래되어서야 분출하네해변에 우뚝한 새로운 사당에영원히 향기로운 제물 올리네후세에게도 장려할 만하니하늘에는 본래 정해진 운수가 있다오 島夷昔構患兵塵彌茲土鄭公奮幕佐登壇建旗鼓感激列鎭動雲蒸義旅聚涕淚望行在談笑取逆竪長驅無留行破敵若風雨功高有媒蘖事昧限聞覩忠績鬱不揚幽憤久乃吐新廟抗海堧椒荔永終古來者亦可勸天定固有數 담소하듯……참수하였네 임진왜란 때 회령의 국경인과 경성의 국세필 등이 반란을 일으켜 두 왕자와 대신들을 잡아 왜적에게 넘기고 항복하자, 정문부가 강문우·최배천 등과 합세하여 이들을 참수한 일을 말한다. 《農圃集 年譜》 매얼(媒蘖) 죄를 양성하여 모해(謀害)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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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룡당을 지나며 감회가 있다 2수 한포재 이건명 過燭龍堂有感【二首 寒圃齋 李健命】 무계호의 유묘 이름 예전에 들었으니지금 참배하며 의로운 명성 우러르네당시 열군에 개결한 사람 하나 없었으니뛰어난 공로 변성만 빛내지 않으리라선군께서 변방에서 기문78) 보내시니평생 꿈속에서도 감히 잊지 못하겠네지금까지 풍수의 여한79)이 남아있으니서당 지나며 흐르는 눈물 어이 참으랴­서당의 기문은 바로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가 지었으므로 시에서 언급한 것이다.­ 武溪遺廟舊聞名瞻拜于今仰義聲列郡當時無一介奇功不獨耀邊城先君記語寄遐鄕夢想平生未敢忘風樹卽今餘恨在可堪揮涕過書堂【堂記, 卽西河所作, 故詩語云云。】 기문 이민서(李敏敍)의 《서하집(西河集)》 권13에 〈경성촉룡서당기(鏡城燭龍書堂記)〉가 실려 있다. 풍수의 여한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지만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으로, 부모를 여읜 자식의 슬픔을 말한다. 《韓詩外傳 卷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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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우연히 읊다 乘舟偶吟 달은 천황씨6)의 눈 같고 月似天皇目산은 공자의 인자함 같네 山如孔子仁조각배 타고 강물을 건너니 片舟過江水나 또한 무릉도원7) 사람일세 吾亦武陵人 月似天皇目, 山如孔子仁.片舟過江水, 吾亦武陵人. 천황씨 중국의 태고 시대를 살았던 전설상의 임금이다. 삼황(三皇), 즉 천황씨(天皇氏)와 지황씨(地皇氏)와 인황씨(人皇氏) 가운데 으뜸으로, 12명의 형제가 각각 일만 팔천 년씩 살았다고 한다. 무릉도원 속세를 벗어난 이상향을 가리킨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동진(東晉)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의 한 어부가 일찍이 시내를 따라 한없이 올라가다가 문득 도화림(桃花林)이 찬란한 선경을 만났는데, 그곳에는 진(秦)나라 때 피란 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陶淵明集 卷6 桃花源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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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령으로 가는 도중에 〈경성에서 사냥하는 것을 보다〉 시에 차운하다 在富寧道中 次鏡城觀獵韻 충신에 의지해 유관85)을 나서니임지는 어찌 맥과 만을 나누랴예로부터 강물은 발해로 흘러가고일찍이 봄빛은 음산에 당도한 적 없어라물가 모래톱엔 눈 쌓이고 어촌엔 눈 적고비탈길에 석양이 지니 사냥간 이들 돌아오네집이 한강 가에 있으니 그 언제나 가려나부질없이 풍월만 절로 한가롭게 있을 뿐 仗來忠信出楡關任地何分貊與蠻從古江流通渤海不曾春色到陰山沙汀積雪漁村少磴路斜陽獵騎還家在漢濱何日到漫敎風月自閒閒 유관 임유관(臨楡關)으로 산해관(山海關) 축성 이전에는 관문의 기능을 담당하다가 산해관을 지은 이후로는 역참의 기능만 남아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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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재의 원운을 부기하다 附德哉韻 사기가 무지개처럼 뻗쳐 북쪽 변방에 빛나니위엄이 이미 퍼져 남만86)을 복종시켰네성안의 혼백은 시퍼런 칼에 노닐고다리 위 암수 새는 백두산에 날아오르네날쌘 기병이 어지러이 따르고 사냥개는 -원문 1자 결락-조각배는 멀리서 저물녘에 돌아오네인연 따라 매양 시 읊느라 괴로워했으니도리어 우습구나, 이내 삶 잠시도 한가롭지 않은 것이 兵氣成虹耀北關威稜已播服南蠻城中魂魄遊靑釰梁上雌雄掣白山輕騎亂從田犬【缺】片帆遙趁夕陽還隨緣每被吟詩苦却笑吾生暫不閒 남만 남쪽 지방의 오랑캐라는 말로, 여기서는 일본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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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부사로 부임하는 김이경180)을 보내다 送金而敬赴原州 고을이 명산 가까이 있으니 어찌 우연이랴지방 관원으로 나아가서 속세 인연 털어내네사또가 좋아하는 것은 거문고와 책과 학이요조화옹의 기묘한 솜씨 일만이천봉 빚었구나봄나물이 쟁반에 오르니 약물 넉넉하고고승이 좌중에 있으니 시편이 충분하네도화원 냇물 세상으로 흘러나와 강이 되니편지 한 번 두 번 전하는 것 아끼지 마오 邑近名山豈偶然一麾歸去擺塵緣使君長物琴書鶴造化奇功萬二千春菜登盤饒藥餌高僧在座足詩篇仙源出世爲江漢休惜魚書一再傳 김이경 김정목(金庭睦, 1560~1612)으로,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이경(而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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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181)의 시에 차운하여 북쪽으로 가는 박열지182)를 보내다 次敬叔 送說之北行 이별에 임해 웃음 머금고 간장183)에 기대니나도 모르게 돌아가는 길에 변방 땅을 지났네초목은 그래도 나와 오래 알고 지냈으니강산 저 머나먼 변방이라 말하지 말라그 당시 부러진 창이 모래에 묻힌 곳지금은 꽃 피어 길 양쪽 향기로워라이곳은 젊은이가 객살이 해도 좋으니춘풍이 이별의 애간장 녹일 것 없네 臨分含笑倚干將不覺歸程度塞隍草木猶爲吾舊識江山莫說彼要荒當時折戟沈沙處今日開花夾路香此地少年爲客好春風不用斷離腸 신경숙 신흠(申欽, 1566~1628)으로,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숙(敬叔), 호는 현옹·상촌(象村)·방옹(放翁),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박열지 박동열(朴東說, 1564~1622)로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열지(說之), 호는 남곽(南郭)ㆍ봉촌(鳳村)이다. 간장(干將) 오나라에 있었다는 명검(名劍)인 간장검(干將劍)이다. 춘추 시대 오나라 오나라의 간장(干將)과 막야(莫邪) 부부가 두 개의 칼을 만들어 하나는 간장검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막야검이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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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재의 원시를 첨부하다 附德哉韻 약을 훔쳐 언제 월궁에서 내려왔나236)아리따운 선녀의 자태 더할 나위 없구나두 눈썹은 구름에 덮인 푸른 산빛 같고양 뺨은 빗속의 붉은 복사꽃 같았네해로 한다 맹세해 놓고 홀로 되었으니젊을 때는 무리보다 못해 부끄러워했지천금으로 사마상여의 소갈병을 살 수 있다면저자에서 기꺼이 숙상구 입은 노인237)이 되리라 竊藥何時下月宮仙姿綽約態無窮雙蛾山色雲邊綠兩頰桃花雨裏紅偕老誓言成獨處少年羞恥讓稠中千金可買相如渴市上甘爲鷫被翁 약을……내려왔나 옛날 하(夏)나라 때 유궁후예(有窮后羿)가 일찍이 선녀 서왕모(西王母)에게서 불사약(不死藥)을 구해 놓았는데, 그의 아내인 항아(姮娥)가 그것을 먼저 훔쳐 먹고 신선이 되어 달 속으로 달아나서 달의 정기(精氣)가 되었다고 한다. 《說郛》 여기서는 그 전설을 반대로 구사하였다. 저자에서……노인 한(漢)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입었던, 기러기와 비슷한 숙상이라는 새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 이름인데, 흔히 가난한 사람이 입는 옷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사마상여가 일찍이 부인 탁문군(卓文君)과 함께 고향인 성도(成都)로 돌아갔을 적에 워낙 가난했던 탓에 자기가 입고 있던 숙상구(鷫鸘裘)를 전당 잡히고 술을 사서 탁문군과 함께 술을 마시며 즐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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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길의 〈김군실이 전사한 것을 애도하다〉 시에 차운하다 次朴季吉哀金君實戰亡 기억하노니, 지난번에 쌍성에서 술자리 열고그대를 전송하고 아울러 잘 돌아오라 축원했지그 당시 허리에 용도를 차고 떠났는데지금은 몸이 말가죽에 실려 돌아왔네157)생각건대 그대의 성음과 용모 꿈속처럼 아련하니차마 그대의 몸을 저 멀리 산귀퉁이에 둘 수 있으랴쓸쓸히 밤비 내리는데 사립문 닫으니등잔 아래 어찌 굳이 홀로 술잔 들 것 있으랴 憶昨雙城尊酒開送行兼祝好歸來當時腰佩龍刀去今日身從馬革回想得音容如夢裏忍敎形魄隔山隈蕭蕭夜雨柴門掩燈下何必獨把盃 몸이……돌아왔네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하여 시신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한나라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사나이는 변방의 들판에서 쓰러져 죽어 말가죽에 시체를 싸서 돌아와 땅에 묻히는 것이 마땅하다.[男兒要當死於邊野, 以馬革裹屍還葬耳.]"라고 하였다. 《後漢書 馬援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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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길의 시에 다시 차운하여 답하다 再次答朴季吉 붕새는 하늘을 향해 만 리를 날아가는데158)그대가 지금 이쪽으로 향하는 것을 탄식하네명리의 장은 와각 싸움159) 수많은 변화 겪었으니나그네 길 굽이굽이 몇 번이나 꺾였던가초나라 지역에 눈이 내려 진령 밖에서 온통 길 헤매니나그네의 넋은 때로 –원문 1자 결락- 고향의 모퉁이당시의 일을 심상하게 말하지 말라술동이 앞 한 잔 술에 마음 부치노라 霄漢鵬程萬里開歎君今向此中來名場蝸角經千變客路羊腸度幾回楚雪全迷秦嶺外旅魂時【缺】故山隈等閒莫說當時事付與尊前酒一盃 붕새는……날아가는데 원대한 뜻을 품었다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붕새가 남쪽 바다로 날아갈 때에 물을 삼천 리나 치고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를 날아올라 여섯 달을 날고서야 쉰다.[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라는 고사가 전해진다. 와각의 싸움 사소한 이익을 가지고 다투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달팽이 뿔 왼쪽의 나라 촉(燭)과 오른쪽의 나라 만(蠻)이 날마다 서로 땅을 놓고서 다투었다.[有國於蝸之左角者曰觸氏 有國於蝸之右角者曰蠻氏 時相與爭地而戰]"라는 고사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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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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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박계길의 〈삼월삼짇날〉 시에 차운하다 4수 次朴季吉三月三日韻 四首 만남이 무슨 일로 이토록 늦어졌는가함께 그윽한 회포를 술잔에 부치네옥을 안은 그대는 마치 초나라로 가는 것 같고162)거문고 타는 나는 종자기를 만난 듯하여라163)문단에서 문예 겨루어 삼협을 기울였고164)교우의 도는 마음을 터놓아 온갖 의심 끊어냈네시내와 산 나누어 갖고 지척 거리에 있으니소박한 평민 차림으로 서로 잘 어울려 지내네산속에 약속 있으니 돌아감이 어찌도 이리 더딘가계주의 짙은 향이 술잔에 가득하누나백 년 세월 아득히 꿈처럼 지나가고석 달 봄이 갑자기 기약한 듯이 찾아왔네장주인지 나비인지 나는 분별 못하는데어목과 수주165)는 사람들이 혹 의심하네종일토록 오직 많이 마시고 취할지니또 장차 청풍 명월과 어울리리새는 짹짹 지저귀며 봄 낮 더디게 가고유인은 시상이 깊은 술잔 속에 있네좋은 날은 흘러가는 물과 같으니 어찌할 수 있으랴좋은 벗은 구름과 같아 본래 기약할 수 없는 법버들 구경 꽃 구경하니 온통 흥이 일고갈매기와 맹세하고 백로와 어울리니 서로 의심하지 말라도화원에서 돌아갈 길 잃을까 두려워 말라흐르는 강에 고기잡이배 절로 따라가면 될 뿐변방 성 봄날 저녁에 나그네 걸음 더디고끊임없는 공연한 시름 한 잔 술에 부치노라두우화엔 울면서 토한 피 묻어 남아있고166)왕손초는 푸르러 떠나서 돌아올 기약 없네167)나그네 회포 마치 술과 같아 절로 취하고세로엔 갈림길 많으니 참으로 의심스럽구나남국의 미인 저 하늘 끝에 있으니편지 혹여 기러기 행렬 따라 올거나 相逢何事太遲遲共把幽懷付酒巵抱玉君如遊楚國彈琴我似遇鍾期詞場戰藝傾三峽交道論心絶九疑分占溪山咫尺地黃冠野服好追隨山中有約歸何遲桂酒濃香滿斗巵百歲茫茫去若夢三春忽忽來如期莊周蝴蝶我無別魚目隋珠人或疑終日惟須酩酊醉且將明月淸風隨鳥語喃喃春晝遲幽人詩思在深巵良辰似水能何許勝友如雲本不期問柳尋花渾漫興盟鷗羣鷺莫相疑仙源休怕迷歸路流水漁舟自可隨邊城春暮客行遲脈脈閒愁付一巵杜宇花殘啼有血王孫草綠去無期羈懷如酒自成醉世路多岐眞可疑南國美人天一畔緘書倘與鴈行隨 옥을……같고 나라에 재주를 바치려 한다는 뜻이다. 춘추 시대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박옥(璞玉)을 얻어 초왕(楚王)에게 바쳤다가 임금을 속인다는 누명을 쓰고 두 차례나 발이 잘렸으나, 나중에 초나라 문왕(文王)에게 진가를 인정받고서 천하 제일의 보배인 화씨벽(和氏璧)을 만들게 되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韓非子 和氏》 거문고……하여라 마음을 알아주는 벗을 만났다는 뜻이다. 춘추 시대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탔는데, 종자기(鍾子期)는 그 소리를 잘 알아들어, 백아가 산을 두고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가 "높은 산이 우뚝 솟았도다."라고 하였고, 물을 두고 타면 종자기가 "물이 넘실넘실 흐르도다."라고 했다. 《呂氏春秋 本味》 삼협을 기울였고 박길재의 문장이 힘차고 뛰어나다는 뜻이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취가행(醉歌行)〉 시에 "문장의 근원은 삼협의 물을 기울인 듯하고, 필력의 전진은 천군을 쓸어 낼 기세로다.[詞源倒流三峽水, 筆陣獨掃千人軍.]"라고 하였다. 어목와 수주 참과 거짓을 혼동함을 비유할 때 쓰이는 말이다. 어목(魚目)은 물고기의 눈이고, 수주(隋珠)는 수후(隋侯)의 보배로운 구슬로, 한나라 위백양(魏伯陽)의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 "어목이 어찌 구슬이 될 수 있으랴. 쑥은 오동나무가 되지 못하네.[魚目豈爲珠, 蓬蒿不成檟.]"라고 하였다. 두우화엔……남아있고 두우화(杜宇花)는 곧 두견화로, 두견화에 얽힌 고사를 인용하여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형용한 것이다. 촉나라 망제(望帝)가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는데, 항상 한밤중에 피를 토하면서 불여귀(不如歸)라고 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몹시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견새가 토한 피가 묻어 붉게 된 꽃을 두견화라고 한다. 《華陽國志 卷3 蜀志》 왕손초……없네 왕손초(王孫草)는 궁궁이[蘼蕪]의 별칭으로, 고향 떠난 사람의 수심을 불러일으키는 정경을 형용하는 말로 쓰인다. '왕손초'라는 이름은 〈초은사(招隱士)〉에 "왕손이 떠나가 돌아오지 않으니, 봄풀은 자라서 무성하도다.[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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