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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옛 성주의 시에 차운하여 산재의 고요한 책상에 올리다 謹次舊城主韻仍呈山齋靜案 【韓應夢, 淸州人, 居尼山.】 【한응몽, 청주 사람으로 이산에 거주하였다.】공수와 황패73)는 청렴함으로 예전에 은택 내려 龔黃淸簡昔蒙賜일부의 백성들은 먹고 자는 일만 했었지 一部生民但食眠다시 창주에 들어가 자리 나눠 앉았으니 又入滄洲分半席층층의 푸른빛이 호숫가와 맞닿아 있구나 層層蒼翠接湖邊 龔黃淸簡昔蒙賜, 一部生民但食眠.又入滄洲分半席, 層層蒼翠接湖邊. 공수와 황패 원문 '공황(龔黃)'은 '공수(龔遂)'와 '황패(黃覇)'를 말하는데, 두 사람 모두 한(漢)나라 때 백성을 잘 다스리던 관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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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언장편 七言長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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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수가 공을 이루면 일만 해골이 썩나니124) 【만력 1579년 진사 합격.】 一將功成萬骨枯 【萬曆己卯進士入格】 나는 삼대125)가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我思三代不能回역사서126)를 보다가 장탄식을 하였네 目擊靑史興長吁주나라 진나라 이후 수천 년 동안 周秦以後數千載어지러운 전쟁이 어느 때든 없었겠는가 紛紛戰爭何時無예로부터 명장들은 제마다 공을 세웠으나 古來名將各立功어찌하여 일만 해골을 썩게 하였나 幾敎萬骨翻成枯적개심으로 처음에는 성 밖에서 명을 받고 敵愾初承閫外命칼을 뽑고 단에 오르면 마음이 거칠어졌네 扙劍登壇心膽麤만 리의 요망한 기운 재빨리 쓸어버리고 萬里妖氛擬迅掃하늘의 기둥을 내가 지탱하리라 여겼네 自謂天柱吾當扶웅대함과 지략을 다투는 기각의 형세127)로 爭雄鬪智勢猗角양 보루를 비바람처럼 몰아쳐 삼군이 외치네 兩壘風雨三軍呼우레 같고 번개 같으며 호령조차 엄하지만 雷騰電過號令嚴칼 끝에 뿌린 피는 모두 무고한 자의 것 劍頭洒血皆無辜그런 뒤에 장군은 큰 공훈을 세우고 然後將軍樹大勳각자의 이름이 운대도128)에 들어가네 姓名各入雲臺圖공을 탐하려고 옥문관129)을 다투어 나아가 貪功爭出玉門關어느새 수고롭게 이오130)에 이르렀네 勞勞不覺窮伊吾청해성131)에 백골이 높이 쌓여 靑海城頭白骨高반초132)의 명성에 흉노가 놀랐네 班超聲價驚匈奴삼변133)의 백발 이 비장134)은 三邊白首李飛將한때의 공업이 오랑캐를 감당하였네 一時功業堪葫蘆장평에서 사십만 군사를 한 구덩이 몰살했으니135) 長平一坑四十萬백기는 진정한 장부 되기 어렵네 白起難爲眞丈夫강동의 붉은 수염 손권 말할 것 없으니 莫道江東孫紫髥하물며 업하의 누런 수염 조조를 꼽으랴136) 況數鄴下曹黃鬚공명이 새겨진 이정137)이 어찌 귀할까 銘功彛鼎何足貴백 번의 전쟁 겪고 몸은 썩어가리138) 百戰之餘身亦枯세상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장수 없으니 不戰而勝世無將가련하구나! 어리석은 우리 백성 어육139)이 되었네 可憐魚肉吾民愚지금도 전장에 비바람 부는 저녁이면 至今沙場風雨夕흐느끼는 귀신 통곡 소리 하늘까지 닿네 啾啾鬼哭于雲衢다소간의 공을 이룬 장수들에게 말하노니 爲語多少成功將이 말을 들으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聽此寧不悲來乎원컨대 우리 임금께서 간우를 쥐고 춤추시면 願言吾王舞干羽유묘가 귀순하듯140) 대궐141)로 달려오기를 一格有苗彤墀趨장군과 사졸에게 기이한 공을 요구하지 말고 休令將士責奇功동포들의 몸을 온전하게 하기를 要使同胞全其軀 我思三代不能回, 目擊靑史興長吁.周秦以後數千載, 紛紛戰爭何時無.古來名將各立功, 幾敎萬骨翻成枯.敵愾初承閫外命, 扙劍登壇心膽麤.萬里妖氛擬迅掃, 自謂天柱吾當扶.爭雄鬪智勢猗角, 兩壘風雨三軍呼.雷騰電過號令嚴, 劍頭洒血皆無辜.然後將軍樹大勳, 姓名各入雲臺圖.貪功爭出玉門關, 勞勞不覺窮伊吾.靑海城頭白骨高, 班超聲價驚匈奴.三邊白首李飛將, 一時功業堪葫蘆.長平一坑四十萬, 白起難爲眞丈夫.莫道江東孫紫髥, 況數鄴下曹黃鬚.銘功彛鼎何足貴, 百戰之餘身亦枯.不戰而勝世無將, 可憐魚肉吾民愚.至今沙場風雨夕, 啾啾鬼哭于雲衢.爲語多少成功將, 聽此寧不悲來乎.願言吾王舞干羽, 一格有苗彤墀趨.休令將士責奇功, 要使同胞全其軀. 한 장수가 …… 썩나니 당나라 조송(曹松)의 〈기해세(己亥歲)〉 시에 "그대여 봉작의 일에 대해 말하지 말라, 한 장수가 공 이루면 만 해골이 썩나니.〔憑君莫話封侯事, 一將功成萬骨枯.〕"라고 하였다. 이는 전쟁을 벌여 한 장수가 큰 공훈을 세우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병졸들의 희생이 따른다는 뜻으로, 싸우다 죽은 병졸들의 뼈가 묻히지도 못한 채 전쟁터에서 말라 뒹군다는 것이다. 삼대 하(夏)ㆍ은(殷)ㆍ주(周)나라를 말한다. 이 시대를 이상적인 태평성대로 여겼다. 역사서 원문의 '청사(靑史)'는 역사상의 기록으로, 종이가 없을 때 푸른 대껍질에 사실(史實)을 기록하던 데서 유래한다. 기각의 형세 원문은 '의각(猗角)'인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근거하여 '기각(掎角)'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기각은 의각(犄角)이라고도 쓴다. 사슴을 잡을 때에 뒤에서는 다리를 잡고 앞에서는 뿔을 잡는 것으로, 인신(引伸)하여 군사를 양편으로 나누어 적을 협공하거나 앞뒤에서 견제하는 형세를 이른다.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14년 조에 "비유하면 사슴을 잡을 적에 진나라 사람들은 뿔을 잡고 여러 융족들은 다리를 잡는 것과 같다.[譬如捕鹿 晉人角之 諸戎掎之]"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운대도 운대는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등우(鄧禹) 등 전대(前代)의 명장 28인의 초상화를 그려서 걸어 놓고 추모한 공신각(功臣閣)의 이름으로 그에 대한 그림을 운대도라 한다. 옥문관 중국과 서역(西域)의 경계에 있는 관문이다. 서역에서 옥석(玉石)을 실어 들일 때 이 관문을 지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오 이오로(伊吾盧)로, 신강성(新疆省) 합밀(哈密) 근처에 있으니, 주로 변방 지역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장궁(臧宮)과 마무(馬武)가 서역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공격하기를 청하면서 "칼을 울리고 손뼉을 치며 이오의 북쪽에서 뜻을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後漢書 卷48 臧宮列傳》 청해성 유담(柳談)의 〈양주곡(涼州曲)〉에 "청해성 하늘에는 달이 있으나 황사가 쌓인 곳엔 봄이 없구나.〔靑海城頭空有月 黄沙磧裏本無春〕"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청해성은 감주(甘州) 장액하(張掖河)에서 남쪽 청해(靑海)까지 이른다."라고 하였다. 《唐音 卷10》 반초 후한(後漢) 때의 무장으로, 흉노의 지배하에 있던 50여 나라를 한(漢)나라에 복종시켰고 중국과 서역(西域) 간의 경제와 문화 교류를 촉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삼변 한나라 때의 흉노, 조선(朝鮮), 남월(南越)을 말하는데, 흔히 변경 지역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이 비장 한나라 때의 장수 이광(李廣)을 말한다. 《사기(史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 "이광이 우북평에 있을 때 흉노가 그것을 듣고, '한나라의 비장군(飛將軍)'이라 부르며 수년 동안 그를 피하여 감히 우북평에 들어가지 못했다.[廣居右北平,匈奴聞之,號曰漢之飛將軍,避之數歲,不敢入右北平.]"라고 되어 있다. 장평에서 …… 몰살했으니 장평은 전국 시대 조(趙)나라 군사 40만이 진나라 장수 백기(白起)에게 몰살당한 곳이다. 진나라 백기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에서는 처음에 명장 염파(廉頗)가 장수로 나와 진나라를 상대로 승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진나라의 반간계(反間計)에 속은 조왕(趙王)이 염파를 쫓아내고 싸움에 서투른 조괄(趙括)을 장수로 삼음에 따라, 백기가 이를 이용하여 조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조나라의 투항한 40만 군사를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史記 卷81 廉頗藺相如列傳》 하물며 … 꼽으랴 《왕유집(王維集)》 〈노장행(老將行)〉 "업하의 황수아를 꼽을 것 있겠는가.〔肯數鄴下黃鬚兒〕"에서 따온 말이다. 업하는 조조가 도읍한 업(鄴) 지역을 가리킨다. 이정 종묘(宗廟) 제사에 쓰는 제기(祭器)로 이(彝)는 술항아리이고 정(鼎)은 솥이다. 옛날에는 큰 공을 세우면 그 일을 제기에 새겨 오래도록 전하게 하였다. 썩어가리 원문의 '고(枯)' 아래에 "거듭 '고(枯)'의 오류가 의심스럽다. 혹은 '통(痛)'이 될 수 있다.〔疊枯誤疑. 或爲痛字.〕"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어육 물고기와 육고기를 통칭한 말인데, 사람들을 잔인하게 짓밟아 해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 《후한서(後漢書)》 〈중장통전(仲長統傳)〉에 "백성들을 어육으로 만들어 그 욕심을 채웠다.[魚肉百姓, 以盈其欲.]"라는 구절이 보인다. 간우를 …… 귀순하듯 간우는 방패를 쥐고 추는 간무(干舞)와 새 깃을 쥐고 추는 우무(羽舞)를 함께 칭하는 말로, 성군의 덕화(德化)를 비유한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순 임금이 문덕을 크게 펴면서, 방패와 새 깃을 들고 두 섬돌 사이에서 춤을 추니, 그로부터 70일 만에 유묘족이 귀순하였다.〔帝乃誕敷文德 舞干羽于兩階 七旬有苗格〕"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대궐 원문의 '동지(彤墀)'는 붉게 꾸민 천자의 뜰로, 전하여 조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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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의 피리 소리 속에 관산의 달142) 三年笛裡關山月 옥관의 바람 쌀쌀하니 기러기 울음 구슬프고 玉關風凄雁聲酸수척한 말은 밤에 장성의 굴에서 물을 마시네 瘦馬夜飮長城窟서리 맞은 백초143)가 날리고 갑옷은 차가운데 霜翻白草鐵衣寒일천 리 밖에서 삼 년의 세월을 보냈네 一千里外三年卒처량한 피리 소리에 달은 또한 어떠하였는가 凄凉笛裡月又何이 한 밤 출정나간 사람은 머리가 다 세었네 一夜白盡征人髮마음 아프게 하는 빛 창자 끊어질 듯한 소리 傷心之色斷腸聲서풍에 분부하지만 한이 그치지 않네 分付西風恨未歇임금의 수레 닿는 곳마다 〈식미〉를 읊조리고 龍輿何處賦式微계문144)은 피비린내 옛 대궐마저 혼란하였네 薊門腥塵迷舊闕멀리 고향을 가리키니 눈가에 눈물이 나오고 家山遙指淚眼邊일만 리 변방의 구름 꿈처럼 아득하네 萬里關雲夢怳惚남쪽 동산 풀은 푸른데 서산에 눈이 내리고 南園綠草西山雪푸른 바다 아득한데 물고기는 소식145)이 없네 碧海茫茫魚信沒서릿달 비추는 곳곳마다 옷 다듬이질 하지만 擣衣幾處杵霜月규방의 여인들 꿈에 백골을 보네 半是香閨夢白骨누런 모래 쌓인 속에 화살이 눈앞에 가득한데 黃沙磧裡箭滿眼머리 세게 한 세월 치달려 돌격하듯 따라 붙네 鬂上光陰付馳突천산에 일찍 활 걸었다는146) 소식 아직 못 들었으니 天山未聞早掛弓언제나 오랑캐147)를 평정하고 개선가 부를까 凱歌何時定胡羯아득히 먼 곳에서 삼 년 동안 눈물 뿌렸지만 天涯洒盡三載淚피리 소리에 달 비칠 때 가장 마음이 아팠네 最是傷心笛裡月소리마다 슬픔이 뒤섞여 농수148)에 목이 메고 聲聲悲雜隴水咽변방의 구름 구슬프니 넋이 끊어지네 塞雲凄迷魂斷絶바람 맞으며 고향 돌아가고픈 시문 읊고 나니 臨風咏罷思歸篇외로운 새 지나가는 곳에 변방의 산 우뚝하네 獨鳥去邊陰山兀 玉關風凄雁聲酸, 瘦馬夜飮長城窟.霜翻白草鐵衣寒, 一千里外三年卒.凄凉笛裡月又何, 一夜白盡征人髮.傷心之色斷腸聲, 分付西風恨未歇.龍輿何處賦式微, 薊門腥塵迷舊闕.家山遙指淚眼邊, 萬里關雲夢怳惚.南園綠草西山雪, 碧海茫茫魚信沒.擣衣幾處杵霜月, 半是香閨夢白骨.黃沙磧裡箭滿眼, 鬂上光陰付馳突.天山未聞早掛弓, 凱歌何時定胡羯.天涯洒盡三載淚, 最是傷心笛裡月.聲聲悲雜隴水咽, 塞雲凄迷魂斷絶.臨風咏罷思歸篇, 獨鳥去邊陰山兀. 삼 년의 …… 달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세병마행(洗兵馬行)〉이란 시에 "삼 년 동안 강적(羌笛) 소리에 관산의 달 보았고, 만국의 군대 앞에 초목이 바람에 흔들리네.[三年笛裏關山月, 萬國兵前草木風.]"라는 구절이 보인다. '관산의 달[關山月]'은 한나라 때 악부(樂府)의 곡명이다.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악부시이다. 문인들이 이 제목의 악부시를 지어 병사가 오랫동안 수자리를 나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여 가족과 떨어져 있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였다. 백초 목초(牧草)의 일종으로, 건조할 때 흰색이 되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주로 황사(黃沙)와 함께 변경 지역의 황량한 풍경을 말할 때 쓰인다. 계문 북경의 덕승문(德勝門) 밖의 지역으로, 요동과 함께 우리나라로 통하는 관문이다. 물고기는 소식 소식을 전해 주는 편지를 뜻한다. 고악부(古樂府)에 "손님이 먼 지방으로부터 와서 나에게 한 쌍의 잉어를 주었네. 아이를 불러 잉어를 삶게 하니, 뱃속에 한 자의 흰 비단 편지 있었네.[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童烹鯉魚, 中有尺素書.]"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前集 卷3 樂府上》 천산에 …… 걸었다는 오랑캐를 평정한다는 뜻이다. 두보의 〈개부 가서한에게 드리는 시〔投贈哥舒開府翰〕〉에 "청해엔 화살을 전함이 없고, 천산엔 일찍 활을 걸어 놓았네.〔靑海無傳箭 天山早掛弓.〕"라고 하였다. 오랑캐 흉노의 별종인 오호(五胡) 중 갈족(羯族)을 일컫는 말인데, 보통 북쪽 오랑캐란 말로 쓰인다. 호락(胡狢)ㆍ호로(胡虜)ㆍ호맥(胡貊)ㆍ호학(胡貉)이라고도 한다. 농수 섬서성의 농현(隴縣) 서북쪽에 있는 농산(隴山)에서 발원하는 강인데, 이 지역은 중국 서쪽 변경의 요해처이므로 흔히 변경 지방에 있는 강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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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가 춘심을 두견새에 의탁하다149) 望帝春心托杜鵑 가을 깊은 화표150)에 학이 슬피 조문하고 秋深華表鶴悲弔세밑에 남쪽 변방 원숭이가 구슬피 우네 歲暮南塞猿哀吟사물의 본성에 유래가 있음을 알고 나니 憑知物性有自來봄 숲에서 우는 두견새가 더욱 가엽구나 更憐杜宇鳴春林어느 해에 망제는 나라 떠나 시름겨웠나 何年望帝去國愁가만히 불어오는 동풍에 마음이 한량없네 暗入東風無限心잠총은 몇 해 동안 진나라와 왕래하지 않았으나151) 蠶叢幾歲隔秦煙갑자기 시체가 있다는 보고에 강가로 왔네 有屍忽報來江潯천인이 따르고 복종함에 어찌 까닭이 없겠는가 天人歸命豈無以선위를 받는 날 임금으로 통치함을 사양했네 禪受此日辭君臨금구152)가 이미 별령153)의 손에 떨어졌으니 金甌已落鼈靈手고국의 풍광에 슬픔을 금할 수가 없었네 故國風日悲難禁호화롭지만 적막한 초나라 구름 텅 비었으나 豪華寂寞楚雲空옛날에 놀던 어느 곳이든 봄빛은 깊어가네 舊遊何處春光深처량하게도 다시 대궐154)154) 대궐 : 원문의 '풍신(楓宸)'은 제왕의 궁전을 말한다. '신(宸)'은 북신(北辰)이 있는 곳으로 임금의 궁궐을 뜻하는데, 한(漢)나라 때 그곳에 단풍나무를 많이 심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을 다스리지 못하여 凄凉無復御楓宸지난 일들 연기 따라 잠기니 가련하구나 可憐往事隨烟沈문득 불여귀거라는 소리가 한스러워 翻將不如歸去恨강남의 새에게 아득히 주었네 悠悠付與江南禽강남의 태양이 무성한 숲속으로 떨어지는데 江南日落樹依依봄빛은 침침한 연기 속에 일렁이네 韶光蕩漾烟陰陰화려한 옛 습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繁華舊習未全除밤마다 꽃 사이에서 길게 읊조리네 夜夜長占花間音나그네 넋 쓸쓸하나 돌아갈 기약도 없는데 羈魂零落去無期고향의 연기와 나무가 텅 비어 서늘하네 故山煙樹空森森용루155)와 봉궐156) 촉 땅 서쪽에 있으니 龍樓鳳闕蜀天西떨어진 꽃과 향초를 무슨 수로 찾겠는가 落花芳草何由尋봄이 오고 가는 것은 해마다 반복하는데 春來春去年復年부질없이 세월 빨리 흘러감에 놀라네 最驚歲月空駸駸배꽃에 내리던 비는 밤 깊은 뒤 그쳐 梨花雨歇夜深後달157)은 엄습해오는 구름을 허락지 않네 銀蟾不許雲侵侵다정해라 마음껏 울어 그치지 않으니 多情一任啼不歇소리마다 푸른 산봉우리 찢으려 하네 聲聲欲裂蒼山岑삼파협에 노두158)의 마음이 더해지니 三巴添却老杜心곳곳마다 시름겨운 사람 마음 젖시네 到處沾盡愁人襟울 때 그저 이전의 원통함을 하소연하니 啼時只管訴前寃애원함이 옹문자주의 금곡159)과 같구나 哀怨不啻雍門琴산속의 오늘 밤 나그네 회포 외로운데 山中今夜客懷孤듣고 나니 나도 몰래 수심 견딜 수 없네 聞爾不覺愁難任누가 슬픈 소리를 청상160)에 들였나 誰將哀響入淸商남은 한이 이어져 지금까지 전승하네 遺恨綿綿傳至今 秋深華表鶴悲弔, 歲暮南塞猿哀吟.憑知物性有自來, 更憐杜宇鳴春林.何年望帝去國愁, 暗入東風無限心.蠶叢幾歲隔秦煙, 有屍忽報來江潯.天人歸命豈無以, 禪受此日辭君臨.金甌已落鼈靈手, 故國風日悲難禁.豪華寂寞楚雲空, 舊遊何處春光深.凄凉無復御楓宸, 可憐往事隨烟沈.翻將不如歸去恨, 悠悠付與江南禽.江南日落樹依依, 韶光蕩漾烟陰陰.繁華舊習未全除, 夜夜長占花間音.羈魂零落去無期, 故山煙樹空森森.龍樓鳳闕蜀天西, 落花芳草何由尋.春來春去年復年, 最驚歲月空駸駸.梨花雨歇夜深後, 銀蟾不許雲侵侵.多情一任啼不歇, 聲聲欲裂蒼山岑.三巴添却老杜心, 到處沾盡愁人襟.啼時只管訴前寃, 哀怨不啻雍門琴.山中今夜客懷孤, 聞爾不覺愁難任.誰將哀響入淸商, 遺恨綿綿傳至今. 망제는 …… 의탁하다 망제는 전국 시대 말엽의 촉(蜀)나라 왕 두우(杜宇)로, 억울하게 왕위를 선양한 뒤에 서산(西山)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죽었는데, 그의 원통한 넋이 두견새가 되어 돌아와 봄이면 밤낮으로 애절하게 피를 토하며 운다는 전설이 있다. 당 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금슬(錦瑟)〉에 "금슬은 뜬금없이 오십 줄, 줄 하나 기러기발 하나에 꽃다운 시절 그리워하네. 장생은 꿈에서 깨어나 나비인가 어지러웠고, 망제는 춘심을 두견새에 의탁했지. 푸른 바다 달 밝은데 진주는 눈물 흘리고, 남전 따스한 햇살에 옥에선 연기 피어나네. 이 사랑 추억이 될 수 있겠으나, 그때 되면 이미 모든 것이 아득할 것.〔錦瑟無端五十弦 一弦一柱思華年 莊生曉夢迷蝴蝶 望帝春心托杜鵑 海月明珠有淚 藍田日暖玉生烟 此情可待成追憶 只是當時已惘然〕"라고 했다. 화표 화표주(華表柱)로 궁전이나 능묘 등 대형 건축물 앞에 장식용으로 세우는 돌기둥을 말한다. 과거 요동 사람으로 신선이 된 정영위(丁令威)가 학이 되어 천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화표주 위에 내려앉았더니, 한 소년이 활을 쏘려고 하자 허공으로 날아올라 배회하면서 "새여 새여 정영위로다,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 처음 돌아왔네.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은 바뀌었나니, 신선술 왜 아니 배워 무덤만이 즐비한고?[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라고 탄식한 전설이 《수신후기(搜神後記)》에 전한다. 잠총은 …… 않았으나 잠총(蠶叢)은 옛날 촉(蜀)나라의 선왕(先王)이다. 양웅(揚雄)의 《촉국본기(蜀國本紀)》에 의하면, 촉국에는 어부(魚鳧), 잠총 등 수많은 선왕이 있었다고 하였고,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에 "잠총과 어부 등이 개국한 지가 어이 그리 아득한고. 오늘날까지 사만팔천 년을, 진나라 변새와도 서로 왕래하지 않았네.〔蠶叢及魚鳧 開國何茫然 爾來四萬八千歲 不與秦塞通人煙〕"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3》 금구 금으로 만든 사발로 흠이 없고 견고하다 하여 강토(疆土)를 비유한다. 양 무제(梁武帝)가 "나의 국토는 오히려 금구와 같아 하나의 상처도 흠도 없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梁書 卷38 朱異列傳》 별령 옛날 촉나라 망제는 별령이란 초나라 귀신에 현혹되어 왕위를 잃고 객지를 떠돌며 돌아가지 못하였는데, 죽어서 두견새가 되어 매년 봄바람이 불고 가을 달이 뜨면 '귀촉도 불여귀(歸蜀道不 如歸)'라고 울면서 끝내 피를 토하였다고 한다. 용루 왕세자의 거처 및 왕세자를 가리키는 말로 조정을 의미한다. 중국 한(漢)나라 때 〈성제기(成帝紀)〉에서 나온 말로, 성제(成帝)가 태자로 있을 때 계궁(桂宮)에 거처하였는데 임금이 태자를 불러 용루문(龍樓門)으로 나오게 하였다는 데서 비롯하였다. 봉궐 한 무제(漢武帝)가 세운 궁궐의 이름인데, 구리로 만든 봉황이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궁궐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달 원문의 '은섬(銀蟾)'은 달을 말한다. 달에 토끼와 두꺼비가 산다는 전설이 있어 옥토(玉兔), 은섬이 달의 이칭이 되었다. 노두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같은 두씨(杜氏)로 유명한 두목지(杜牧之)가 있기 때문에 두보는 노두, 두목지는 소두(少杜)라 하였다. 옹문자주의 금곡 옹문자주는 본디 금곡(琴曲)에 뛰어나서 거문고 연주로 사람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는데, 그가 일찍이 맹상군 앞에서 인생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소재로 하여 거문고를 한 곡조 타니, 맹상군이 슬퍼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고사가 전한다. 《설원(說苑)》 선설(善說) 청상 악부(樂府)의 가곡(歌曲) 이름으로, 가을에 속하는 상성(商聲)의 맑고도 슬픈 노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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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새는 멋대로 날지 않는다 好鳥不妄飛 바람 불어 천길 높이 날아오른 봉황은 天風彩鳳上千仞훨훨 나는 날개161)로 사람에 얽매이지 않네 飄飄六翮無人鞿청전162)에서 내려온 맑고 깨끗한 외로운 학은 淸霜孤鶴下靑田멀리 나는 날개로 위기를 뛰어넘네 迢迢逸翰超危機좋은 새는 날고 멈추기를 선택할 줄 알아서 憑知好鳥擇飛止영험한 마음으로 기미를 미리 알아 해를 멀리 하네 遠害靈心先炳幾서식하여 어찌 백량대163) 연회 함께 하리 棲息寧同栢梁燕높이 날아올라 풍성한 벼와 기장 돌아보네 高超肯顧稻粱肥왕손의 담장 밖에 따르지 않나니 王孫墻外不相隨도성 거리의 꽃나무에 어찌 날겠는가 紫陌芳樹何曾飛일생을 푸른 산과 흰 구름 가에 살아가면서 生涯靑嶂白雲邊날아가고 날아오며 의지할 바를 아네 飛去飛來知所依산바람 계곡의 달과 좋은 이웃 되었으니 山風溪月好爲隣몸을 돌려 세속을 향해 가지 않네 將身不向紅塵歸길이 자유롭게 노닐리라 그윽히 맹세하니 幽盟長占自在遊허공에 깃털은 찬란한 빛 자아내네 半空毛羽生光輝조도164)에서 어찌 사람이 쏠까 걱정하리 鳥道何憂罹人射불필요한 물건은 군왕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네 長物不畏君王威다시 생각건대 화를 피하는 것은 사람과165) 새가 같으니 翻思避禍人與鳥모두 한결같은 이치로 서로 어긋남이 없네 全身一理無相違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君不見진나라 법이 만들어지자 기러기 이미 날아오르고 秦法初成鴻已擧상안166)의 풍광에 안개가 미세하게 날림을 商顔風日烟飛微또 보지 못했는가 又不見부춘산 가운데에서 봉황이 나오지 않고 富春山中鳳不出동강 물가에서 양 갖옷167) 반쯤 걸쳤네 羊裘半脫桐江磯아! 저들은 살길 찾아 먹이를 다투고 탐하다가 嗟彼謀生競貪餌도리어 앞길이 그물로 에워싸임을 잊었네 却忘前程羅四圍정신없이 마시고 쪼다가 피할 줄 모르고 紛紛飮啄不知避그물에 떨어져 잡히지 않음은 예로부터 드물었네 罔墜網罟從來稀팔뚝 위 매를 동문 어디에서 다시 얻겠는가 臂鷹東門寧復得아! 화정의 외로운 학168)은 이미 글렀구나 孤鶴華亭嗟已非감회가 일어나 읊조린 이가 있으니 그는 누군가 興懷有咏彼何人만고토록 주옥같은 시문이169) 끊이지 않았네 萬古未免聯珠璣내 이제 산림에서 좋은 새에 대해 배우고 我今山林學好鳥시 한 수 읊조리며 사립문을 걸어 닫았네 題詩一嘯扃柴扉 天風彩鳳上千仞, 飄飄六翮無人鞿.淸霜孤鶴下靑田, 迢迢逸翰超危機.憑知好鳥擇飛止, 遠害靈心先炳幾.棲息寧同栢梁燕, 高超肯顧稻粱肥.王孫墻外不相隨, 紫陌芳樹何曾飛.生涯靑嶂白雲邊, 飛去飛來知所依.山風溪月好爲隣, 將身不向紅塵歸.幽盟長占自在遊, 半空毛羽生光輝.鳥道何憂罹人射, 長物不畏君王威.翻思避禍人與鳥, 全身一理無相違.君不見, 秦法初成鴻已擧, 商顔風日烟飛微.又不見, 富春山中鳳不出, 羊裘半脫桐江磯.嗟彼謀生競貪餌, 却忘前程羅四圍.紛紛飮啄不知避, 罔墜網罟從來稀.臂鷹東門寧復得, 孤鶴華亭嗟已非.興懷有咏彼何人, 萬古未免聯珠璣.我今山林學好鳥, 題詩一嘯扃柴扉. 날개 원문의 '육핵(六翮)'은 튼튼한 날개를 가리킨다. 공중에 높이 나는 새는 여섯 개의 튼튼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깃촉이 있다고 한다. 청전 학이 나는 고장의 이름이다. 《초학기(初學記)》 제30권에, "수목계(洙沐溪)가 있는데, 청전(靑田)에서의 거리가 9리이다. 이 가운데 백학(白鶴) 한 쌍이 살면서 해마다 새끼를 낳는데, 새끼들은 다 자라면 모두 떠나가고 오직 어미 백학 한 쌍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색깔이 아주 희어서 사랑스러운 바, 이는 신선이 기르는 학이라고 한다." 하였다. 백량대 한 무제(漢武帝)가 장안성(長安城)에 건립하여 연회를 베풀고 시를 읊는 장소로 쓰던 누대를 말한다. 높이가 20장(丈)이고 향백(香柏)으로 전각의 들보를 만들어 향기가 수십 리까지 퍼졌다 한다. 조도 새만이 날아서 통과할 수 있는 좁고 험준한 산길을 이른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 〈촉도난(蜀道難)〉에 "서쪽으론 태백산에 조도가 있으니, 아미산 꼭대기를 횡단할 수 있네.[西當太白有鳥道, 可以橫絶峨眉巔.]"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前集 卷7 蜀道難》 과 원문에는 '여(與)' 아래에 "아마도 여(如) 자의 오류인 듯하다.〔恐如字之誤〕"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상안 진(秦)나라 말기에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 등 네 명의 은자가 은거하였던 산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상산(商山)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을 '상산사호(商山四皓)'라고 부른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부춘산(富春山) …… 갖옷 원문의 '양구(羊裘)'는 양피(羊皮)로 지은 갖옷을 말하는데,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의 어릴 적 학우(學友)이기도 했던 은사(隱士) 엄광(嚴光)이 광무제가 등극한 이후로는 광무제의 간곡한 부름을 끝내 거절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하면서 양구를 입고 동강(桐江)에서 낚시질을 하며 일생을 보냈던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 봉황은 엄광을 가리킨다. 화정(華亭)의 외로운 학 화정은 지금의 상해시(上海市) 송강현(松江縣) 서쪽에 있는데, 학의 산지로 유명하다. 진(晉)나라 육기(陸機)가 벼슬길에 들어서기 전에 동생 육운(陸雲)과 함께 이곳에서 10여 년을 살았는데, 나중에 참소를 받고 처형당하기 직전에 "화정의 학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만 그 일이 또 어떻게 가능하겠는가.〔欲聞華亭鶴唳 可復得乎〕"라고 탄식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尤悔》 주옥같은 시문을 원문에는 '聯珠璣(련주기)' 아래에 "아마도 오류인 글자가 있는 듯하다.〔恐有誤字〕"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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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부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 送羅仲孚解官歸鄕 【백광훈, 자는 창경(彰卿)이고, 호는 옥봉(玉峰)이며, 본관은 수원으로, 해남에 거주하였다. 시와 글씨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 일찍이 원접사(遠接使)의 백의(白衣) 종사관(從事官)을 지냈고, 벼슬은 참봉(參奉)에 그쳤다. 공이 금오랑(金吾郞)에서 체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옥봉이 이 이별시를 써 주었다.】인간 세상의 맛을 다 보더니 嘗盡人間味고향으로 돌아가는 계책이 가장 낫네 歸田策最良이미 가시덤불처럼 몸을 버렸으니 已拚身似更남은 것이라곤 서리 같은 살쩍뿐 贏得鬂成霜연못엔 마름과 연꽃 아름답고 水國菱荷足동산엔 토란과 밤꽃 향 가득 山園芋栗香유유히 베개 높이 벤 곳에 悠然高枕處대궐의 꿈 아득하네 雲闕夢蒼茫 【白光勳, 字彰卿, 號玉峰, 水原人, 居海南, 以詩調筆法, 名於世. 嘗爲遠接使 白衣從事官, 官止參奉. 公以金吾郞見遞還鄕時, 玉峰有此別章】嘗盡人間味, 歸田策最良.已拚身似更, 贏得鬂成霜.水國菱荷足, 山園芋栗香.悠然高枕處, 雲闕夢蒼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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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모임 族會 산 근처 강가에 바위가 돈대를 이루니올라가 굽어보자 아름다운 계절에 온갖 꽃이 피어 있네강산은 만고토록 조금도 금하지 않고꽃과 버들 봄 내내 웃으며 시기하지 않네사람은 흰 기러기 노니는 물가에서 이르고술은 붉은 살구 열린 동(洞)238)에서 오네더구나 상 나란히 한 이들 모두 형제이니그 속에서의 기쁜 마음 금할 길이 없네 山近江頭石作臺登臨佳節百花開江山萬古渾無禁花柳三春笑不猜人自白鷗洲上至酒從紅杏洞中來連床况是皆兄弟箇裏歡情不自裁 붉은……동 원문은 '홍행동(紅杏洞)'이다. 살구꽃이 핀 곳은 흔히 술집을 가리킨다. 당나라 두목(杜牧)의 시 〈청명(淸明)〉에, "묻노니 술집이 어디에 있는가? 목동이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借問酒家何處有 牧童遙指杏花村]"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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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大學 성인(聖人)의 문하인 증삼(曾參)이 그 종지(宗志)를 얻었으니246)팔조목(八條目)과 삼강령(三綱領)247)에 차례로 통달하였네천하 국가 다스림에는 근본이 있고248)소인과 군자는 도(道)가 같지 않네249)수신(修身)을 통해 신민(新民)의 공효를 볼 수 있고250)신독(愼獨)251)을 통해 비로소 입덕(入德)의 공을 알겠네252)성의관(誠意關)253)의 주인은 누구인가영대(靈臺) 위의 성성옹(惺惺翁)이라네254) 聖門參也得其宗八目三綱次第通天下國家治有本小人君子道無同修身可見新民效愼獨方知入德功誠意關中誰是主靈臺臺上一惺翁 성인(聖人)의……얻었으니 증삼(曾參)은 곧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를 가리킨다. 《대학(大學)》은 증자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팔조목(八條目)과 삼강령(三綱領) 《대학》의 기본인 세 강령과 여덟 조목을 말한다. '삼강령(三綱領)'은 명명덕(明明德)‧신민(新民)‧지어지선(止於至善)이고, '팔조목(八條目)'은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이다. 천하……있고 《대학》의 팔조목을 따르자면,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를 하기에 앞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 등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거쳐야 한다. 소인과……않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행실이 판이하게 다름을 말한 것이다. 《대학장구》 전(傳) 3장에, "군자는 그 현명함을 현명하게 여기고 그 친함을 친하게 여기며, 소인은 그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그 이로움을 이로워한다.[君子 賢其賢而親其親 小人 樂其樂而利其利]"라 하였다. 수신(修身)을……있고 '수신(修身)'은 《대학》의 팔강령 가운데 하나로 '몸을 닦는 것'을 말하며, '신민(新民)'은 《대학》의 삼강령 가운데 하나로 '백성을 새롭게 함'을 말한다. 신독(愼獨) 원문은 '신독(愼篤)'인데, 문맥을 살펴 '독(篤)'을 '독(獨)'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신독(愼獨)을……알겠네 '신독(愼獨)'은 홀로 있을 때에도 행동을 삼가는 것을 말한다. 《대학장구》 전 6장에,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임이 없는 것이다. 악을 미워하기는 악취를 미워하는 것과 같이 하며, 선을 좋아하기는 미인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하니, 이것을 자겸(自慊)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慊 故君子必愼其獨也]"라 하였다. 또 《대학장구》 경(經) 1장 서두에, "정자가 이르기를, '대학은 공 씨가 남긴 책으로 초학자가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 하였다.[子程子曰 大學 孔氏之遺書 而初學入德之門也]"라 한 대목이 보인다. 성의관(誠意關) 뜻을 성실히 하는 공부를 관문에 비유한 말이다. 주희(朱熹)는 《대학장구(大學章句)》의 〈성의(誠意)〉 장을 설명하면서 "이 관문을 통과하면 바야흐로 도를 깨달음이 확고해진다.[過此關 方得道理牢固]"라 하였다. 《朱子語類 卷16》 또 "성의는 선악관(善惡關)이니, 뜻을 성실히 하면 선해질 것이고, 뜻을 성실히 하지 못하면 악할 뿐이다. 또 성의는 인귀관(人鬼關)이니, 뜻을 성실히 하면 사람일 것이고, 뜻을 성실히 하지 못하면 귀신일 뿐이다.[誠意是善惡關 誠得來是善 誠不得只是惡 誠意是轉關處 誠意是人鬼關 誠得來是人 誠不得是鬼]"라 하였다. 《朱子語類 卷15》 영대(靈臺) 위의 성성옹(惺惺翁)이라네 '영대(靈臺)'는 신령스러운 대(臺)란 뜻으로 마음을 가리킨다. '성성옹(惺惺翁)' 역시 마음을 가리킨 것으로 깨끗한 마음은 어둡지 않고 항상 깨어 있다 하여 이러한 말로 의인화한 것이다. 《심경부주(心經附註)》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에, 사양좌(謝良佐)가 "경은 항상 성성하는 법이다.[敬是常惺惺法]"라고 한 데 대해, 주희(朱熹)가 "서암의 중은 매일 항상 스스로 '주인옹은 성성한가?'라고 묻고는 '성성하다.'라고 스스로 대답하곤 했다.[瑞巖僧 每日間 常自問主人翁惺惺否 自答曰惺惺]"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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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論語 천지의 정기(精氣) 받아 소왕(素王)255)이 나시니옥으로 금속 악기 소리 거두어 집대성(集大成)하셨네256)예악(禮樂)과 위의(威儀) 담장 안에 갖추어지고257)전장(典章)과 문물(文物)로 방 안이 환하네258)인(仁)을 두터이하고 의(義)를 넓힘에 하늘과 사람이 바로 서고부친께 효도하고 임금께 충성함에 나라가 평안해지네하도(河圖)와 낙서(洛書) 비록 보지 못하였으나259)가을날 햇볕과 강한(江漢) 같은 덕 지금까지 맑네260) 乾坤精氣素王生玉振金聲集大成禮樂威儀墻內備典章文物室中明敦仁博義天人立孝父忠君家國平河洛圖書雖未見秋陽江漢至今淸 소왕(素王) 제왕(帝王)의 덕을 지니고도 제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성인(聖人)을 이르는 말로,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 "공자는 왕을 하지 않았으니, 소왕의 업은 《춘추》에 있다.[孔子不王 素王之業 在於春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옥으로……집대성(集大成)하셨네 공자가 성인(聖人)의 덕을 크게 이루었음을 말한 것이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공자 같은 분을 두고 집대성했다고 하는 것이니, 집대성이란 금속 악기 소리[金聲]로 시작하여 옥의 악기로 소리를 거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孔子之謂集大成 集大成也者 金聲而玉振之也]"라 하였다. 예악(禮樂)과……갖추어지고 공자의 학문 수준을 표현한 말이다. 《논어》 〈자장(子張)〉에, 자복경백(子服景伯)이 숙손무숙(叔孫武叔)의 말을 빌려 자공(子貢)이 공자보다 낫다는 말을 전하자 자공이 "집에다 비유하자면 나의 담장은 어깨 높이라 나의 살림을 엿볼 수 있지만, 부자의 담장은 몇 길이라 문을 통해 들어가 보지 못하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성대함을 알 수가 없소. 그런데 그 문으로 들어가 본 이도 사실 드무니 숙손무숙의 말이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譬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百官之富 得其門者或寡矣 夫子之云 不亦宜乎]"라 하여 공자의 학문을 높은 담장에 비유한 대목이 나온다. 전장(典章)과……환하네 공자의 학문 경지를 표현한 말이다. 《논어》 〈선진(先進)〉에, "자로(子路)는 마루에는 올랐으나 아직 방에는 들어오지 못하였다.[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라 하여 학문 경지를 집 구조에 비유한 대목이 나온다. 하도(河圖)와……못하였으나 공자가 결국 세상에 도(道)를 실현하지 못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하도(河圖)'는 복희씨(伏羲氏) 때에 하수(河水)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1부터 10까지 그려져 있던 그림으로 복희씨가 이것을 보고 《주역》의 팔괘(八卦)를 그었다 하며, '낙서(洛書)'는 하(夏)나라 우왕(禹王) 때에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1부터 9까지 그려져 있던 그림으로 우왕이 이것을 보고 《서경》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 한다. 때문에 하도와 낙서는 도를 전하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가을날……맑네 공자의 덕을 찬미한 것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증자(曾子)가 공자를 찬미하여 "선생의 덕은 강수(江水)와 한수(漢水)로 씻는 것과 같고 가을볕으로 쪼이는 것과 같아서 깨끗하고 깨끗하여 더할 수 없다.[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已]"라 한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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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왕이 한신을 대장군에 임명하는 내용으로 상정하여 지은 제서 擬漢王拜韓信大將制 먼저 관중에 들어와 차지하게 되면우리가 왕이 되어 다스릴 땅을 잃게 되네.반드시 천하를 취하려고 한다면그대를 장수 삼지 않고 그 누구리오.이에 총융으로 명하여장차 분곤의 책무18)를 맡기노라.다만 그대는 허리에 검 한 자루 찼으나가슴에는 《육도》19)가 서려 있어라.백정의 소년들이바지 아래로 나올 용기20)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성 아래의 빨래하는 유모는낚시 드리운 풍모를 일찍 알았어라. 21)군웅이 일어날 때 진에서 도망하여칠 척의 몸을 일으켜 초나라로 찾아갔네.자신을 알아주지 않아 이에 그만두었으니어린 애와는 어찌 함께 일을 꾀하랴.22)멀리서 찾아왔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과인은 원컨대 마음을 차분히 하고 가르침을 받들겠노라.지난번 항우가 맹약을 저버린 까닭에이렇게 한나라 땅이 봉지를 옮기게 되었네.남정23) 가는 길은 고향에서 점점 멀어지니진나라 변새 천 겹의 숲을 바라보누나.서쪽의 풍토는 절로 달라탕산의 오채색 구름24)을 꿈꾸누나.전사들 대부분 동으로 돌아갈 생각하고그대 또한 뒤에 있다가 서로 헤어졌구나.나를 뒤좇지 않은 탄식이 바야흐로 깊은데다행이도 왕을 위해 머문 사람들이 있구나.재상이 둘도 없는 인재25)라고 천거하니경감26)을 통해 나아간 것이 아니어라.장군의 재주를 제일로 발탁하니염파의 앞에 있는 것이 합당하네.생각건대 지금은 처음 의례를 만드는데더구나 나는 본래 거만하여 무례하지만다행이도 장인의 점괘라 길하리니27)어찌 어린아이라고 부름28)과 같게 하랴.깊이 계합하니어찌 다만 간(諫)을 들어주고 계책을 따를 뿐이겠는가.예우의 성대함은마땅히 비를 들고29) 바퀴를 밀어주는 자와 같게 하리.이에 길일로써단을 만들고 예의를 갖춰그대를 제수하여 대장군으로 삼노니그대는 답답하게 오래 머무르는 나를 불쌍하게 여겨그대의 다다익선의 능력을 바치도록 하라.풍운의 용호30)라인걸로써 귀신의 조화를 운용하였고전사와 말의 군수와 군량은천부를 이용하고 지리를 따랐어라.때를 기다려 움직이고날을 지적하여 기약하여옥루31)의 겹겹 관문을 열고서금우의 옛길32)로 나왔어라.함곡관을 다시 수리하여만전을 기하여 조룡33)의 터를 차지했으며곧바로 팽성을 공격하여목후34)의 소굴을 일거에 소탕하였어라.강중에서의 원통35)을 씻을 수 있다면천하의 바람이 돌아올 것이니그런 뒤에 조나라를 정복하고 연나라를 으르며위나라를 사로자고 제나라로 내려가서 신하라고 칭하게 할 것이며장강을 따라 내려 낙을 넘어회수를 배를 띄워 황하에 이르기까지 조공을 바치게 할 것이니그렇다면 벼슬과 상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부귀를 마땅히 그대와 나눌 것이라.억만 년 한나라 왕업천자는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는 것과 같고육백 리 초나라 땅장부가 곧 남면하여 고라고 칭하리라.나 한 사람을 보필함36)을힘쓰시라 그대여.오호라 하늘이 준 바이니군중에서 한 명의 한신을 얻었어라.감히 나를 대적할 이 없으니삼진37)도 눈 아래 없어라.이에 볼 것이니 오늘 장수로 임명하매영원토록 그 공에 의지할 것을. 先入定關中失吾當王之地必欲取天下非爾爲將而誰肆命摠戎且與分閫惟爾腰帶一釰胸蟠六鞱屠中少年豈知出桍之勇城下漂母早識垂釣之風當羣雄起而亡秦挺七尺薄言歸楚莫己知斯可已矣竪子何足與謀自遠來不亦樂乎寡人願安承敎頃緣項氏之背約有此漢地之移封南鄭之道途漸遙秦塞望千重之樹西蜀之風土自別碭山夢五彩之雲士多思歸于東爾亦相失在後方深不予追之歎賴有爲王留之人相臣薦其無雙非因景監而進將才擢爲第一合在廉頗之先念今草創之儀矧予素慢無禮幸卜丈人其吉寧若小兒之呼契合之深豈但言聽計從而已禮遇之盛當如擁篲推轂者然玆以吉日設壇具禮拜爾爲大將軍爾其悶予鬱鬱久居效爾多多益辦風雲龍虎以人傑而運神機士馬財粮用天府而因地利待時而動指日爲期開玉壘之重關出金牛之故道重修函谷萬全據祖龍之墟直擣彭城一擧蕩沐猴之窟江中之冤可雪天下之望攸歸然後仆趙愶燕擒魏下齊而稱臣沿江逾洛浮淮達河而來貢則爵賞非所惜也富貴當與共之漢業億萬年天子譬北辰之居所楚地六千里丈夫卽南面而稱孤弼予一人勖哉夫子嗚呼殆天所授得一韓於軍中莫我敢承無三秦於眼底試看今日之拜將可使永世而賴功 분곤 고대에 임금이 출정하는 장수를 보낼 때 꿇어앉아 수레바퀴를 밀며 "궐문 안은 과인이 다스리고 궐문 밖은 장군이 다스린다."라고 하였다. 《漢書 卷50 馮唐傳》 육도 중국 주(周)나라 때 태공망(太公望)이 지은 여섯 종류의 병서(兵書)라고 한다. 바지……용기 한신(韓信)이 젊어서 가난할 때 회음(淮陰) 도중(屠中)의 소년들이 그를 모멸하여 "비록 허우대는 크고 그럴듯하게 도검(刀劍)을 찼지만 마음속은 겁이 많다." 하면서 "한신아, 능히 죽일 수 있거든 나를 찌르고 죽일 수 없거든 내 가랑이 아래로 지나가라." 하니, 한신이 그들을 죽일 수 있음에도 모욕을 참고 가랑이 아래로 기어갔고, 저자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한다. 《史記 卷92 淮陰候列傳》 빨래하는……알았어라 한신이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굶주린 채 회음성(淮陰城) 밑에서 고기를 낚고 있었는데, 빨래하는 부인[漂母]이 그를 동정(同情)하여 여러 날 밥을 주었다. 한신이 감사하여 "내가 성공하면 부인에게 후히 갚겠습니다."라고 하니, 부인이 "내가 왕손(王孫)인 그대를 동정한 것이지, 어찌 뒷날에 보답을 받기를 바란 것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 뒤에 한신이 초왕(楚王)이 되어 빨래하던 부인을 찾아서 금 천 근을 주었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어린……꾀하랴 원래 항우의 책사인 범증(范增)이 항우한테 한 말이다. 남정 유방이 관중에 먼저 들어갔으나, 항우는 먼저 들어간 자를 왕으로 삼는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파와 촉, 한중도 관중(關中) 땅이라고 하면서 유방을 한왕(漢王)으로 삼아 그곳의 왕이 되게 하고서 남정에 도읍하게 하였다. 탕산의 오채색 구름 한 고조(漢高祖)가 미천하였을 때 망탕산(芒碭山)에 은거하였었는데 은거한 산 위에 항상 구름 기운이 있어, 여후(呂后)가 그 구름 기운을 보고 찾았다 한다. 《史記 高祖本紀》 둘도 없는 인재 한나라 승상 소하(蕭何)가 한 고조(漢高祖)에게 한신(韓信)을 천거할 때 했던 말 가운데 "여러 장수는 얻기가 쉽지만, 한신 같은 사람은 둘도 없는 국사입니다.[諸將易得耳, 至如信者, 國士無雙.]"라고 하였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경감 상앙(商鞅) 이 처음 진(秦) 나라에 들어가서 환관(宦官) 경감(景監) 의 소개로 진왕을 만나니, 조량(趙良) 이 그의 소개자가 부정함을 비난하였다. 《史記 卷68 商君列傳》 장인의 점괘라 길하리니 《주역》 〈사괘(師卦)〉에 "사(師)는 바르니, 장인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으리라.[師貞, 丈人吉, 無咎.]" 하였다. 사(師)는 군대를 거느리는 자를 말하며, 장인은 존엄한 어른을 말한다. 전(傳)에 말하기를, "사(師)의 도는 정도(正道)를 근본으로 삼는다. 군대를 통솔하고 무리를 거느림은 사람들이 존신(尊信)하고 외복(畏服)하는 자가 아니면 어찌 인심의 따름을 얻겠는가."라고 하였다. 어린아이라고 부름 한(漢)나라 소하(蕭何)가 유방(劉邦)에게 "왕께서는 평소에 거만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고 계시는데, 지금 대장을 임명하면서도 마치 어린아이를 부르는 것처럼 하고 있기 때문에 한신(韓信)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떠나간 것이다.[王素慢無禮, 今拜大將如呼小兒耳, 此乃信所以去也.]"라고 충고하여 다시 예우하게 했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비를 들고 맹자가 연(燕)나라로 가자 소왕(昭王)이 빗자루를 들고 앞에서 달리며 제자의 자리에 앉아서 수업 받기를 청하였다. 《史記 卷74 孟子列傳》 풍운의 용호라 용호(龍虎)가 풍운(風雲)을 만나서 세력을 떨치듯, 명군(明君)과 현신(賢臣)이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라고 하였다. 옥루 중국의 촉(蜀) 나라 수도인 성도(成都)의 서북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금우의 옛길 전국 시대 진 혜왕(秦惠王)은 촉(蜀)을 치려 했으나 길을 알지 못하므로 돌을 깎아 다섯 마리의 소를 만들어 뒤에 금을 넣어 놓고는 이것을 촉도에 갖다 놓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는 돌소가 금똥을 눈다고 하자, 이 소문을 들은 촉왕(蜀王)은 천여 명의 군사와 다섯 명의 역사(力士)를 동원하여 성도(成都)로 운반해 갔다. 이 때문에 길이 뚫려, 진 나라는 마침내 이 길을 따라 촉을 공격하여 탈취했으므로 이 길을 금우도(金牛道)라 하였다. 조룡 조룡(祖龍)에서 조(祖)는 시(始)의 뜻이고, 용(龍)은 임금을 상징하는 말로, 시황제를 가리킨다.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진시황 36년 가을에 사자(使者)가 화음(華陰)의 평서도(平舒道)를 지날 때 손에 벽(璧)을 쥔 사람이 사자의 길을 막으면서 "나 대신 이것을 호지군(滈池君)에게 전해 주오. 금년에 조룡이 죽을 것이오."라고 하였는데, 다음 해에 진 시황이 죽었다고 한다. 목후 항우(項羽)가 진나라 궁궐을 모두 불태우고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며 "부귀해지고 나서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비단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니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주겠는가."라고 하자, 유세하는 자가 "초나라 사람은 원숭이를 목욕시키고 갓을 씌워 놓은 것과 같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로구나.[人言楚人沐猴而冠耳, 果然.]"라고 하였는데, 항우가 이 말을 듣고는 그를 삶아 죽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7 項羽本紀》 강중에서의 원통 당시 초나라 왕인 의제를 죽인 것을 이른다. 《역대사선(歷代史選)》 〈초한기(楚漢紀)〉에서 "10월에 서초 패왕(西楚霸王) 항적(項籍)이 사람을 보내어 의제(義帝)를 재촉하여 떠나가게 하니, 그 대신(大臣)들이 점차 배반하였다. 항적은 마침내 몰래 형산왕(衡山王) 오예(吳芮), 구강왕(九江王) 경포(黥布), 임강왕(臨江王) 공오(共敖)를 시켜서 의제를 공격하여 장강(長江) 한가운데서 살해하였다."라고 하였다. 나……보필함 《서경》 〈주서(周書) 주관(周官)〉에 "소사ㆍ소부ㆍ소보를 삼고라 하니, 삼공의 다음이 되어 조화를 넓혀 천지를 공경하고 밝혀 나 한 사람을 보필한다.[少師少傅少保 曰三孤 貳公弘化 寅亮天地 弼予一人]"라고 하였다. 삼진 진나라를 가리킨다. 진나라가 망한 뒤에 항우가 관중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각기 옹왕(雍王)ㆍ새왕(塞王)ㆍ적왕(翟王)을 봉해 주었기 때문에 삼진(三秦)이라고도 부른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송나라 종정경인 사뇨38)가 자신의 온 가족을 걸고 악비를 보호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상정하여 지은 제서 열여섯 살에 장난삼아 짓다. 宋宗正卿士褭請以百口保岳飛無他【十六歲作】 업적은 항상 기록되어야 하니네 글자39)에서 이미 가상하게 여김이 부족함이 없어라.감옥에 묶여 있는 것 그의 죄가 아니니온갖 방법으로 보호하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어라.죽음에 처해진 충신이 온전하기를 바라며감히 피를 토하는 충간을 아뢰었네.삼가 살펴보니 원수의 분곤에적신이 공을 방해함을 면키는 드물어라.다섯 달 의양에서감숙은 한나라를 끼고 돈다는 의논에 곤욕을 당하였고40)삼년 즉묵에서악의는 제나라 왕이 되려 한다는 참소에 걸려들었네.41)참으로 간혹 참소를 믿고 무고를 받아끝내 반드시 장수를 죽이고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네.삼가 생각건대 황제 폐하께서는한나라42)가 위태로울 때 태어나셔서쇠퇴한 주나라를 부흥시키는데 뜻을 두었어라.구묘가 비린내 나는 오랑캐에게 엎어진 것을 애통하게 여기고얼음을 안고 불을 안고서43) 게으르지 않았네.두 황제가 사막으로 파천함을 분을 내어거적 위에서 자고 창을 베는 것44)을 감히 잊으랴.이에 북 소리 듣고서 장수의 생각45) 간절하였으니부월을 하사할 적임자를 고심해서 골랐어라.돌아보고 다만 악비를 장수로 삼았으니실로 둘도 없는 국사라네.마음의 《육도》는 치밀하여귀신도 간담이 놀라고흉중의 십만 갑병은 웅건하여오랑캐도 벌벌 떠누나.어찌 다만 재략만 매우 뛰어나랴아니 또한 충절도 우뚝하여라.한과 적이 둘이 서니살아서 같은 하늘 이고 사는 게 부끄럽고쉽거나 어려움에 한 마음이니죽어서 가죽에 쌓여도46) 한스러움이 없어라.이에 〈유월장〉의 잠깐 오랑캐 친 것47)을 좇아군후를 모아서 정벌에 나섰네.깨끗하고 빛나는 정신이여큰 성공은 이윽고 파죽지세처럼 거두었고정정당당한 깃발이여진의 형세는 동이의 물을 쏟듯이 굳건하네.48)회복할 기약을짧은 시간에 기다릴 수 있어라.어찌 생각이나 했으리, 나라를 팔아먹은 매우 사악한 이가몸을 아끼지 않은 외로운 충신을 얽을 줄을.진을 함락하고 예봉을 꺾으니악야49)라고 부르기를 그치지 않거늘베틀을 내려놓고 북을 던지니증자 모친의 의혹은 더욱 깊어졌어라.50)천문에서 척적51)의 조서가 내려와감옥에서 충신이 원통한 마음 지녔네.대의는 적개심에 늠름하니신명에 질정하여도 부끄럽지 않아라.정성은 근왕에 빛나니해, 별과 함께 환하리라.이에 여러 사람의 눈을 가리기는 어려운데더구나 감히 임금의 총명52)을 속이랴.그러므로 미천한 신하가 속이지 않는 것으로 임금을 섬기니53)의리는 마땅히 그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 하였지만참으로 성상께서 나는 믿지 못하니삼족 모두 죄를 용서할 수 없다라고 하였네.이에 종족을 이삼하는 형벌54)을 받게 되었으니충정하여 두 마음을 지니지 않은 이를 보호하려 하였어라.한 마디 말로 임금을 깨우치지 못하여구설로 다투기 어려운 것을 참으로 알았누나.지성이면 하늘도 돌릴 수 있으니감히 골육이 연좌됨을 피하랴.더구나 이 어진 장수의 생사는실로 종사의 안위와 관련됨에랴.노련한 장군의 예봉을 꺾어정군이 날랜 용기를 가로막고55)편안함을 찾아 싸움을 잊어버리니한나라 의례가 좌임56)의 풍습으로 바뀌었네.충성을 하는데 어찌 자신을 도모하랴애석하도다! 어진이 나라를 지키려고 한 것이.신이 삼가 살피건대 강화하여 원망을 그만 두는데어진이가 죽으니 나라가 병든다는 말57)을 생각하게 되누나.특별히 십대는 용서한다58)는 공훈을 기록하여온 집안 식구의 목숨을 걸고 보존해달라는 청을 곡진히 따라 주십시오.그렇다면 만리장성이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니어찌 국경이 쪼그라드는 근심이 있으리오.다섯 길의 요성59)이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았으니영토를 회복할 업적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신은 삼가 마땅히 사사로움을 잊고 나라에 몸을 바치리니사람을 천거하여 임금을 섬깁니다.60)죽은 이를 살려주고 뼈에 살이 붙게 하는 은혜를 받았으니목숨을 바쳐서 보답할 것을 삼가 기약합니다.적을 토벌하고 원수를 갚는 의리에 의거하여괴수의 목을 바쳐서 위엄을 떨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成績紀于常四字旣勤於嘉乃在絏非其罪百口願保其無他冀全喪元之忠敢進瀝肝之說竊觀元帥之分閫罕免賊臣之妨功五月宜陽甘茂困挾韓之議三年卽墨樂毅罹王齊之讒苟或信譖而受誣終必殺將而覆國欽惟皇帝陛下生當漢厄志興周衰痛九廟覆沒腥膻抱氷握火之匪懈憤二聖播越沙漠寢苫枕戈之敢忘肆切聽鼓之思益擇授鉞之任顧惟岳飛爲將實是國士無雙密勿心上之六鞱鬼神膽破磊落胸中之萬甲戎虜心寒豈但才略之敻超抑亦忠節之卓冠漢賊兩立生有愧於戴天夷險一心死無憾於裹革爰追六月之薄伐式總羣后而徂征濯濯靈赫赫聲功已收於破竹井井旗堂堂陣勢有同於建瓴恢復之期日月可待何圖賣國之巨慝竟搆匪躬之孤忠陷陣摧鋒岳爺之呼未訖下機投杼曾母之惑滋深尺籍飛詔於天門寸忱抱冤於牢獄犬羊2)凜凜於敵愾質神明而無羞精誠耿耿於勤王與日星而同炳兹難掩乎十目矧敢誣於四聰故微臣事君勿欺義當伸其見枉苟聖上謂余不信罪罔赦於惟均肆冒宗族之夷三庸保忠貞之不二一言不能悟主固知口舌之難爭至誠庶幾回天敢避骨肉之隨坐況此良將之存沒實關宗社之安危挫銳老師鄭軍沮右抽之勇偸安忘戰漢儀易左袵之風爲忠寧自謀身惜賢所以衛國臣伏望察講和之釋怨念云亡之殄邦特錄十世宥之勳曲從百口保之請則萬里之長城不毀何有縮境之憂五丈之妖星未隳可期復疆之績臣謹當忘私徇國以人事君荷生死肉骨之恩竊期隕首而圖報仗討賊復讐之義佇見獻馘而伸威 사뇨 제안군왕(齊安郡王) 조사뇨(趙士褭)이다. 그는 악비가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자신의 온 가족을 걸고서 악비를 구하려고 하다가 고종의 미움을 받아 건주(建州)로 쫓겨나 그곳에서 죽었다. 네 글자 악비(岳飛)는 국문(鞫問)을 받을 당시에 자신의 옷을 찢어서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고 새긴 문신을 보여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宋史 卷365 岳飛列傳》 다섯……당하였고 전국 시대 진(秦)나라 무왕(武王)이 장군 감무(甘茂)를 시켜서 한(韓)나라 의양(宜陽)을 치게 할 때, 감무가 다른 신하들의 모함을 받아 끝까지 신뢰받지 못할 것을 걱정하며 출정하려 하지 않자, 무왕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이다. 그대와 맹세를 하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식양(息壤)에서 무왕이 감무와 맹세를 하였다. 감무가 의양을 공격했는데 5개월이 지나도록 함락하지 못하자, 무왕이 공손연(公孫衍) 등의 말을 듣고는 감무를 소환하니, 감무가 말하기를 "식양이 저기에 있습니다.[息壤在彼]" 하니, 무왕이 "맹세한 적이 있다."라 하였다. 《史記 卷71 甘茂列傳》 삼년……걸려들었네 전국 시대 연(燕)나라의 장수이다. 소왕(昭王)에게 등용되어 상장군(上將軍)으로서 조(趙), 초(楚), 한(韓), 위(魏), 연(燕) 다섯 나라 군사를 거느리고 제(齊)의 70여 성(城)을 항복받았고 거(莒), 즉묵(卽墨) 두 성만이 남았다. 마침 소왕이 죽고 평소에 악의를 언짢게 여기던 혜왕(惠王)이 즉위하자 제(齊)나라의 장수 전단(田單)이 "악의가 제나라의 왕이 되려 한다."라고 반간(反間)을 놓았는데, 혜왕이 이 말을 믿고 악의를 의심하여 기겁(騎劫)을 악의 대신 장군으로 삼고 악의를 불러들였으나, 주벌(誅罰)될 것을 염려하여 조(趙)나라로 갔다. 《史記 卷80 樂毅列傳》 한나라 여기서는 송나라를 가리킨다. 얼음을……안고서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항복한 후 그 원수를 갚으려고 괴롭고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뜻에서 겨울이면 얼음을 안고 여름이면 불을 잡았다고 한다. 거적……것 자식이 부모의 원수를 갚을 일념으로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항상 원수를 칠 준비를 하는 것을 말한다. 《禮記集說 卷8》 북……생각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군자가 고비의 소리를 들으면 장수의 신하를 생각한다.[君子聽鼓鼙之聲, 則思將帥之臣.]"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죽어서 가죽에 쌓여도 '과혁(裹革)'은 가죽에 싼다는 뜻으로, 전장에서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뒤 말가죽에 싸여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사나이라면 마땅히 전쟁터에서 죽어 말가죽에 시체를 싸서 돌아와 묻혀야 하니, 어찌 아녀자의 손에 죽을소냐.[男兒當以馬革裹尸還葬, 安可死於兒女手乎?]"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유월장……것 유월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주(周)나라 선왕(宣王)의 북벌을 찬미하였다. 동이의……굳건하네 병의 물을 집 위에서 쏟듯이 형세가 강하다는 비유한다. 악야 《치평요람》 〈송 고종〉에 홍호(洪皓)가 금나라에 있을 때 납서(蠟書)를 보내어 아뢰기를, "금나라 사람들이 두려워서 복종한 자는 오직 악비뿐이었고, 심지어 악야(岳爺)라고 불렀습니다. 그 뒤에 악비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여러 추장들이 술을 마시며 서로 경하하였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유준(李有駿)의 《몽유연행록(夢遊燕行錄)》에서 "북방의 풍속은 존귀한 자를 칭하여 '대인(大人)'이라 하고, 그 다음을 '노야(老爺)'라고 한다. 예컨대 금(金)나라 사람들이 '악야(岳爺)'나 '종야(宗爺)'라고 칭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베틀을……깊어졌어라 어떤 사람이 증자의 어머니에게 와서 "증삼(曾參)이 사람을 죽였다."라고 말하자, 증자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하고 태연히 베를 짰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해도 믿지 않았으나, 다시 다른 사람이 와서 똑같은 말을 하자 증자의 어머니가 북[杼]을 던지고 담을 넘어 달아났다고 한다. 즉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도 참소하는 말이 반복되면 의심하게 된다는 뜻의 고사이다. 《全國策 秦》 척적 군령(軍令)을 기록하는 문서로 병적(兵籍)을 가리킨다. 한 자[尺] 정도의 판(板)에 적었으므로 척적이라 하였다. 임금의 총명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순 임금을 칭송하면서 "사방의 문을 여시고, 사방으로 눈을 밝히시고, 사방으로부터 잘 들리도록 하셨다.[闢四門 明四目 達四聰]"라고 하였다. 속이지……섬기니 임금에게 진실을 가지고 직간한다는 뜻.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자로가 임금을 섬기는 것을 묻자, 공자가 "속이지 말고 범하여야 된다.[子曰: 勿欺也而犯之.]" 하였다. 종족을 이삼하는 형벌 죄를 범한 본인과 함께 삼족을 멸하는 형벌. 삼족은 친계(親系)ㆍ모계(母系)ㆍ처계(妻系)이다. 정군이……가로막고 《시경》 〈정풍(鄭風) 청인(淸人)〉에 "청읍 사람이 축 땅에 있으니, 네 마리 갑옷 입힌 말이 유유자적하도다. 왼쪽 사람은 수레를 돌리고 오른쪽 사람은 칼을 뽑거늘, 중군은 아름답게 있도다.[淸人在軸 四介陶陶 左旋右抽 中軍作好]"라고 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이 편은 춘추(春秋) 시대 정 문공(鄭文公)이 신하인 고극(高克)을 미워한 나머지 그를 장수로 임명하여 군사를 주어 하수(河水) 위에 가서 적(賊)을 방어하라고 내친 뒤, 종시 그를 불러들이지 않으므로, 그에 따른 군사들이 오랜 세월에 지쳐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것을 읊은 시이다. 좌임 오랑캐의 풍속을 가리킨다.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있는 "관중(管仲)이 없었으면 내가 오랑캐처럼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었을[左袵] 것이다."고 하였다. 어진이가……말 《시경》 〈첨앙(瞻卬)〉에서 "현인이 죽으니, 나라가 병들었네.[人之云亡 邦國殄瘁]"라고 하였다. 십대는 용서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1년조를 보면,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기해(祁奚)가 선자(宣子)를 만나 숙향(叔向)의 공과(功過)를 논하면서 "오히려 10대의 자손이라도 용서해 줄 수 있다.[猶將十世宥之]"라고 하였다. 다섯 길의 요성 《천동상위고(天東象緯考)》에서 요성은 길이가 길면 재앙도 크고 오래간다고 하였는데, 다섯 길의 요성은 재앙이 5년은 간다고 하였다. 사람을……섬깁니다 《서경(書經)》 〈주관(周官)〉의 주(註)에 "대신은 인재를 발탁하여 임금을 섬긴다.[大臣以人事君]"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저본에는 '犬羊'으로 되어 있으나, 고전번역원DB에는 '大義'로 되어 있는데, 후자가 내용상 옳기에 이에 의거하여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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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에서 올린 팔준도에 대한 전문 集賢殿進八駿圖箋 하늘에 비룡이 있으니성조가 국운을 연 것을 우러르네.응당 팔준마를 그려신물이 충성 바친 것을 생각하여야 하네.감히 새 그림을 그려전하께서 보게 하누나.삼가 생각건대, 천록(天祿)이 여말에 떠나하늘이 성인을 태어나게 하였네.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니참된 군주를 오랫동안 기다렸는데집안을 나라로 만들어마침내 큰 공훈 있는 이들을 모았네.이에 예지로 임하였으며또한 사람과 사물들의 도움에 힘입었어라.어찌 다만 용의 비늘 잡고 봉황 날개에 붙은61) 선비만앞 다퉈 전쟁터에서 공을 세웠으랴.귀한 것은 귀신처럼 내달리며 번개처럼 빠르던 말도능히 사슴을 좇는 위업을 도운 것이지.62)크고 작은 수백 번의 전투에서천만의 중군 사이로 드나들면서험지를 평지처럼 내달리니어찌 번거롭게 조보63)가 말을 몰게 하리오.오직 마음먹은 대로 향하니왕량64)이 채찍 잡을 수고가 필요 없어라.이는 사람과 한 마음이 되어서니그러므로 세 번 이기는65) 공을 거두었네.금옥의 체구는위태로운 길에서 만전을 보장하였고봉의 가슴과 용의 갈기는어찌 평범한 말과 함께 죽어 썩어가겠는가.다만 당대에 훌륭함을 칭송하였을 뿐 아니라후대에도 밝게 드러내 보여야 하네.더구나 땅의 쓰임으로 가장 뛰어나며66)또한 하늘의 운수와 관련되어 나옴에랴.그렇다면 말 위에서 세운 공업으로한나라가 사백 년 전해진 것을 알 것이니마굿간에서 비범하여67)능연각의 스물여덟 장군과 나란한 것이 마땅하도다.아름다워라, 세상에 드러낸 행위여이 계술의 나라에서 행해야 하네.이를 늦출 수 있는가대개 기다려 때가 되었어라.삼가 생각건대, 몸소 크나큰 명에 응하여커다란 계책 이룰 것을 생각하였네.가득한 것을 들고 이룬 것을 지켜68)썩은 줄로 여섯 마리 말을 모는 듯하였네.69)공덕을 숭상하여죽은 뼈를 사면서 천금을 버렸어라.70)창업의 어려움을 깊이 생각하고훌륭한 근신(近臣)을 더욱 생각하네.드디어 기린마를 그리는 날에또한 개와 말에게 수레 덮개와 휘장으로 덮는 은혜를 미뤘어라.71)이에 유신에게 명하여그림을 그리게 하였네.삼가 생각건대 신은 활과 말 타는 솜씨가 부족하고몸은 문한의 관직에 있으니전장에서 말을 타고 내달릴 때비록 사람을 쏠 때 먼저 말을 쏘는 법72)엔 어두우나성열을 그려내면서살은 그리고 뼈는 그리지 않았다는 기롱은 면할 수 있어라.외람되건대 용광은그 준마의 덕에 걸맞으니그림은 비록 화가의 손을 빌리지만기리는 노래는 큰 공을 빠트리지 않으리.혹여 한가롭게 지내실 때때로 을람73)을 주십시오.복희가 괘를 그린 것74)과 많이 들어맞으리니길이 상서로운 세상의 보배가 될 것이어라.무제가 지은 노래75)에 보태어공적을 벌여놓은 뜻을 더욱 밝히누나. 在天飛龍仰聖祖之啓運應圖駿馬思神物之效勞敢作新圖庸徹睿鑑竊惟祿去麗季天生聖人濟世安民久有待於眞主化家爲國終能集乎大勳玆因睿智之有臨亦賴人物之恊力豈但攀鱗附翼之士爭輸汗馬之功所貴神行電邁之駒能贊逐鹿之業大小數百餘戰出入千萬中軍履險若平何煩造父之爲御惟意所向不勞王良之執鞭是與人爲一心故收功於三捷金軀玉體保萬全於危途鳳臆龍鬐豈同腐於凡馬不但稱美於當世可使昭示於來今矧惟地用之良亦關天數而出則知馬上功業爲漢家四百年之傳宜乎櫪下權奇與烟閣卄八將爲列猗歟顯揚之擧屬兹繼述之朝斯可緩乎蓋有待矣恭惟躬膺駿命思纂鴻圖持盈守成用朽索而馭六馬尙功崇德買死骨而捐千金深惟創始之艱益思股肱之美遂於麒麟圖畵之日亦推犬馬蓋帷之恩爰命儒臣俾擧繪事伏念臣手乏弓馬之技身忝文翰之官馳騁戰場縱昧射人先射馬之法鋪張聖烈庶免畵肉不畵骨之譏叨此龍光稱其驥德丹靑雖倩於畵手贊咏不遺於膚公倘在燕閒時賜乙覽數叶羲皇之畫卦永爲瑞世之珍光增武帝之作歌益昭序績之意 용의……붙은 영주(英主)를 섬겨 공명(功名)을 세우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한나라 양웅(揚雄)이 지은 《법언(法言)》 〈연건(淵騫)〉의 "용의 비늘을 그러잡고 봉의 날개에 달라붙는다.[攀龍鱗附鳳翼]"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사슴을 좇는 위업 사슴을 쫓는다[逐鹿]는 말은 제왕의 자리를 다툼을 말한다. 《사기(史記)》 〈회음후전(淮陰候傳)〉에서 "진(秦)나라가 그 사슴을 잃으니 천하가 다 함께 쫓는다."라고 하였다. 조보 조보는 주(周)나라 목왕(繆王) 때 사람으로 말을 잘 몰았다. 왕이 서쪽으로 가서 수렵에 빠져 돌아오길 잊었는데, 서언왕(徐偃王)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가 왕의 말을 몰아 하루에 천 리를 달려가 서언왕을 공격하여 대파시켰다. 그 공으로 조성(趙城)을 받았다고 한다. 《史記 卷43 趙世家》 왕량 《맹자》에 보이는 말을 잘 모는 인물이다. 세 번 이기는 삼첩(三捷)은 삼전삼첩(三戰三捷)의 준말로서 《송사(宋史)》 〈우고전(牛皐傳)〉에서 "우고가 극악한 적 양진(揚進)을 노산(魯山)에서 토벌하였는데 세 번 싸워 세 번 이기자 적당이 무너져 흩어졌다."라 하였다. 땅의……뛰어나며 《사기(史記)》 권30 〈평준서(平準書)〉에 "하늘에 쓰이는 것은 용만 한 것이 없고, 땅에 쓰이는 것은 말만 한 것이 없으며, 사람에게 쓰이는 것은 거북만 한 것이 없다.[天用莫如龍 地用莫如馬 人用莫如龜]"라고 하였다. 비범하여 '권기(權奇)'는 훌륭한 말이 잘 달림을 형용한 말이다. 《한서》 권22 〈예악지(禮樂志) 천마가(天馬歌)〉에, "뜻이 호방하고 정신이 권기하다.[志俶儻精權奇]" 하였다. 가득한……지켜 《시경》 〈대아(大雅) 부예((鳧鷖)〉의 서(序)에서 "〈부예편〉은 이룬 것을 지킨 것을 말하고 있다. 태평한 군자가 능히 가득찬 것을 간직하고 이룬 것을 지킴으로써 천지신명과 조고의 영령이 그것을 안락하게 여기는 것이다.[鳧鷖 守成也 太平之君子 能持盈守成 神祇祖考安樂之也]"라고 하였다. 썩은……듯하였네 《서경》 〈오자지가(五子之歌)〉에 "내가 억조의 백성 위에 임하는 것이 마치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마리의 말을 모는 것처럼 조심스럽기만 하니,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로서 어떻게 공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予臨兆民 凜乎若朽索之馭六馬 爲人上者 奈何不敬]"라는 말이 나온다. 죽은……버렸어라 인재를 불러 모은 것을 이른다. 전국 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에게 곽외(郭隗)가 "죽은 말 한 마리의 뼈를 500금(金)에 사들였더니, 1년도 채 안 되어서 살아 있는 천리마 세 마리가 찾아왔다."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자기부터 우선 대우를 잘해 주면 천하의 현사들이 저절로 모여들 것이라고 말하자, 소왕이 연경(燕京)에 황금대를 세우고 인재를 초빙하니, 악의(樂毅)와 극신(劇辛) 등의 명사가 대거 찾아왔다는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燕策》 개와……미뤘어라 견마(犬馬)도 사람에게 공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자가 옛말을 인용하여 " '해진 휘장[敝帷]'을 버리지 않는 것은 말[馬]을 묻기 위함이요, '해진 수레 덮개[敝蓋]'를 버리지 않는 것은 개[犬]를 묻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 데서 온 말로, 은혜가 하찮은 미물에까지 미침을 뜻한다. 《禮記 檀弓下》 사람을……법 두보의 〈전출새(前出塞)〉에서 "사람을 쏘려면 먼저 말을 쏘고, 적병을 사로잡으려면 먼저 임금을 사로잡는다.[射人先射馬, 擒賊必擒王.]"라고 하였다. 을람 제왕이 을야(乙夜, 22시 전후)에 하는 독서를 가리킨다. 당(唐)나라 문종황제(文宗皇帝)가 "만약 갑야(甲夜)에 정사를 살피지 않고, 을야(乙夜)에 책을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제대로 된 임금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杜陽雜編 卷中》 복희가……들어맞으리니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등에 하도를 지고 나왔다고 한다. 이것이 복희씨에 의해 《주역》 팔괘(八卦)의 근원이 되었다. 무제가 지은 노래 《한서》 권6 〈무제기(武帝紀)〉에 "태초(太初) 4년에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가 대완왕(大宛王)의 머리를 베고 한혈마를 획득하여 돌아오니, 〈서극천마가(西極天馬歌)〉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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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로 부임하는 농포에게 주어 작별하다 체소 이춘영 贈別農圃赴吉州【體素 李春英】 젊은 나이에 위엄과 명성 독차지하고가을바람에 고삐 잡고 옛 성황을 가네장백산에 이어진 오랑캐 산 보이는데거친 땅44)으로 흐르는 농수45)에 상심하네훗날 운대에서 공신 화상 그릴 때역사에 몇 사람이나 향기로운 이름 남길까늠름하게 떠나가는 저 진정한 대장부여갈림길에서 부질없이 슬퍼하지 마시오 早歲威名獨取將秋風按轡舊城隍胡山入眼橫長白隴水傷心下大荒異日雲臺圖畫出幾人靑史姓名香玆行落落眞男子不用臨岐枉斷腸 거친 땅 원문의 '대황(大荒)'은 특히 국경 밖 타국의 황량한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농수(隴水) 농수는 섬서성(陝西省) 농현(隴縣)의 서북쪽에 있는 농산(隴山)에서 발원하는 물이다. 이 지역은 중국 서쪽 변경의 요해처이기에 흔히 변경 지방에 있는 물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옛날에 행역(行役) 나간 사람들이 이 산에 올라 고향을 생각하며 슬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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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46)에서 농포의 시에 차운하다 모두 6수인데 다 기록하지 못했다. 석담 이윤우 在輸城次農圃韻【合六首而未盡記. 石潭 李潤雨】 문무의 재능 모두 갖춘 장상의 자질로이곳 변방에서 이십 년을 헛되이 보냈네마침 지금 성상께서 애타게 어진이 구하니대궐의 뜰에 오르는 모습 보게 되리라­《석담집(石潭集)》에 "자허 영공(子虛令公 정문부)이 관북에 들어간 지 지금까지 20년이 넘었다."라고 하기에 이른 것이다.­ 文武俱全將相姿卄年虛負此邊陲祗今聖上求如渴佇見飛騰上玉墀【《石潭集》曰"子虛令公入關塞, 今踰二十年"故云。】 수성(輸城) 함경북도 청진시(淸津市) 수성동(壽城洞)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역참이다. 석담 이윤우는 1612년 4월에 수성 찰방(輸城察訪)에 제수되었다. 《石潭集 年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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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孟子 호연(浩然)한 기운261) 가을 하늘과 닮았으니추(鄒)나라에서 아성(亞聖)의 자태 지닌 분 나왔다네262)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학설 힘껏 배척하고263)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요순(堯舜)의 다스림을 회복하는 데 뜻을 두었네제 선왕(齊宣王)과 양 혜왕(梁惠王)은 맹자의 말을 써 주지 않았고264)안평중(安平仲)과 관이오(管夷吾)가 한 일 하지 않기로 맹세했네265)인욕(人欲)이 이미 다함에 천리(天理)가 바루어지니지금까지 이어지는 공덕 후세 사람들이 알고 있네 浩然之氣秋天像孕出鄒邦亞聖姿力排楊朱墨翟徒志復文武唐虞治齊宣梁惠言無用平仲夷吾矢不爲人欲已消天理正至今功德後人知 호연(浩然)한 기운 천지(天地) 사이에 성대히 유행(流行)하는 정기(正氣)를 말한다. 맹자가 자신의 부동심(不動心)을 말하면서 "나는 말을 알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라 하니, 공손추(公孫丑)가 "감히 묻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 하는 것입니까?[敢問 何謂浩然之氣]"라고 물었다. 이에 맹자가 이르기를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 기운 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곧음으로 길러서 해치지 않으면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되느니라.[難言也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乎天地之間]"라 한 데서 나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上》 추(鄒)나라에서……나왔다네 맹자는 전국 시대 추(鄒)나라 출신이며, '아성(亞聖)'은 '다음가는 성인'이라는 뜻으로 맹자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양주(楊朱)와……배척하고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은 전국 시대의 학자들로 각각 위아설(爲我說)과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는데, 맹자는 이들의 설을 극력 비판하였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양주는 자신만을 위하니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요, 묵적은 똑같이 사랑하니 이는 아비를 무시하는 것이다. 아비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면 이는 금수이다.……양주와 묵적의 도가 종식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부정한 학설이 백성을 속여 인의(仁義)를 꽉 막는 것[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楊墨之道不息 孔子之道不著 是邪說誣民充塞仁義也]"라 한 대목이 보인다. 제 선왕(齊宣王)과……않았고 제 선왕(齊宣王)과 양 혜왕(梁惠王)은 전국 시대의 제후다. 맹자는 이들의 초빙을 받아 왕도 정치를 실현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맹자집주(孟子集註)》 〈서설(序說)〉에, "도에 이미 통달한 뒤에 제나라에 가서 선왕을 섬겼으나 선왕이 쓰지 못하였고, 양나라에 갔으나 양 혜왕도 말한 바를 행하지 못하였으니, 오활하여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여김을 받은 것이다.[道旣通 游事齊宣王 宣王不能用 適梁 梁惠王不果所言 則見以爲迂遠而濶於事情]"라 한 대목이 보인다. 안평중(安平仲)과……맹세했네 '안평중(安平仲)'은 춘추 시대 제 경공(齊景公) 때의 재상 안영(晏嬰)이고, '관이오(管夷吾)'는 제 환공(齊桓公) 때의 재상 관중(管仲)으로, 모두 제후의 패업(霸業)을 도운 인물들이다. 맹자는 이들과 달리 왕도(王道)를 추구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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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린 뒤 雨後 안개비 내리는 쓸쓸한 마을 대나무 사립을 여니무성한 늙은 나무 울타리 주위를 감쌌네새 처마 속에서 지저귀고 이웃 노인 지나가며닭 정원 옆에서 울고 들판의 객 돌아가네바람이 구름 끝으로 들어가니 호연(浩然)한 기운 불어오고구름이 산봉우리에 거두어지니 희미한 빛 비치네한가한 중에 다만 뽕나무와 삼 자라남을 기뻐하니거리 밖에서 어찌 굳이 시비(是非)를 물으리오 烟雨荒村開竹扉陰陰老木護籬圍鳥呼簷裏隣翁過鷄唱園邊野客歸風入雲端吹浩氣雲收山角映暉微閒中只喜桑麻長巷外何須問是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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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사 병서 약천 남구만 彰烈祠【幷序 藥泉 南九萬】 경성부(鏡城府)에서 남쪽으로 1백 리에 어란리(禦亂里)가 있는데, 혹은 어랑리(漁郞里)라고도 한다. 마을에 팔경대(八景臺)가 있고 팔경대 남쪽으로 10리쯤에 무계호(茂溪湖)가 있으니, 바로 임진왜란 때 의사 이붕수(李鵬壽)가 평사 정문부(鄭文孚)를 맞이하여 의병을 일으킨 곳이다. 금상 을사년(1665, 현종6)에 평사(評事) 이단하(李端夏)가 앞장서 발의하여 무계호 가에 사당을 세워 정공을 제향하고, 함께 맹약한 이붕수 등을 배향하였으며, 또 그 옆에 촉룡서당(燭龍書堂)을 세워 유생들이 학업을 닦는 장소로 삼았다. 사당은 서쪽 봉우리 아래 높은 언덕에 있고, 앞에 작은 산이 있는데 마치 초승달이 뜬 것처럼 가로질렀고, 반쯤은 호수에 잠겼으며 푸른 산에는 초목이 울창하였다. 사면의 산들은 마치 채색 병풍이 두른 것처럼 깎아질러 서 있고 그 가운데는 편평하고 둥글게 호수를 이루어 너비가 9리쯤 된다. 연잎과 마름은 씻은 듯이 맑고 푸르며 온화하고 청려(淸麗)하여 거의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북도의 산천은 대체로 험준하여 훤히 터져 활달한 장관은 원래 쉽게 볼 수 있지만, 이곳처럼 산이 감싸고 물이 돌아 그윽하고 고요한 곳은 없다. 이는 아마도 하늘이 또한 정공의 충렬(忠烈)을 드러내려고 특별히 변방 지역에 별천지를 설치해서 그 영령을 편안히 하려는 것인 듯하다.정공의 사당 곁에 자리한 무계호에푸른 산이 호숫가에 우뚝 서있네잔잔한 구리의 호수에 잔물결 멈추고사방 겹겹의 산봉우리 병풍처럼 둘렀네당신은 변란 당하여 충절 드러내어궁벽한 변방 땅에 별천지 만들었네다시금 촉룡 서당의 기문 읽고서멀리 두 이공77) 생각에 경도를 바라보네 鏡城府南一百里, 有禦亂里, 或稱漁郞里。里有八景臺。臺南十里許, 有茂溪湖, 乃壬辰倭亂時, 義士李鵬壽邀鄭評事文孚, 起兵處也。今上乙巳, 評事李端夏倡議, 立祠于湖上, 享鄭公而以同盟人鵬壽等配之, 又作燭龍書堂于其側, 以爲儒生居業之所。祠在西峯下高阜, 而前有小山, 橫抹如新月之吐, 半浸湖水, 蒼翠蔚然。四面諸山削立如彩屛之圍, 而其中平圓成湖, 縱廣九里。芰荷、菱芡, 綠淨如拭, 蘊藉淸麗, 殆不可名言。北地山川, 大抵麤壯軒豁之觀, 則固可易得, 而山彎水環, 未有如此地之幽靜1)1) 靜 : 대본에는 '靚'으로 되어 있는데, 《약천집(藥泉集)》 권28 〈북관십경도기(北關十景圖記)〉에 근거하여 고쳤다.者, 豈天亦欲彰鄭公之忠烈, 特設別區於荒裔之域, 以妥其靈也耶!鄭公祠傍茂溪湖湖上靑峯一抹孤九里湖平纖纊息四圍巒疊畵屛紆人當板蕩彰忠節地到窮荒創別區更讀燭龍書室記遙思二李望京都 두 이공 이붕수(李鵬壽)와 이단하(李端夏)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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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83)에서 크게 이긴 것에 대한 노래 이계 홍양호 臨溟大捷歌【耳溪 洪良浩】 평사 정문부는 비범한 남자로당신 아니면 북도 백성 모두 왜놈 되었네이때 큰 고래84) 치솟는 불처럼 성난 지느러미 번득이니창해는 들끓고 동녘 하늘 붉게 물들었네삼경85)은 불타오르고 팔도는 붕괴되어임금님 멀고 먼 압록강에까지 떠나셨네가장 교활하고 두려운 우두머리 가등청정많은 군사 횡행하다 마침내 북쪽 향하네서릿발 같은 도검 혜성의 불꽃 같고우레 같은 매서운 탄환 사람의 골수 꿰뚫네장군의 대장기 철령에서 꺾였으니86)썰물처럼 밀린 삼군 감히 화살 한 발 쏘지 못했네왜구의 말과 옷87) 북녘들에 가득하고왕업 일어난 마을88)에 비린내 처참하네험준한 마천령을 팔 흔들며 지나가는데구진89)의 여러 군 멀리서 위세 보고 무릎 꿇네사나운 종 배반한 아전 다투어 항복하고곳곳마다 성 뒤집혀 고을 수령 가두었네두 왕자와 대신도 결박당했으니90)나라가 너를 어떻게 저버렸기에 잔인한가천 리 기봉91) 오랑캐가 되었으니관북에 일찍이 의사 한 명 없었겠는가이때 막부92)에서 홀홀단신으로 빠져나와산길 타고 풀숲에 숨으니 모습 초라했네갈림길에서 방황하니 누구와 함께 돌아갈꼬동지 최배천 강문우 이붕수 우연히 만났네눈물 떨구고 피 마시며 우러러 하늘에 맹세하니백 명 의병들 소매 걷어붙이고 일어섰네치마 찢어 깃발 만들고 호미로 병기 삼아백면서생 출신 장군 한 자 채찍 잡았네북 울리고 서서히 행군해 경성 들어가니환영하는 남녀 목숨 살려줄 영웅 기다렸네높이 치솟은 남쪽 누대에 대장 깃발 세우고국세필 역적 놈 목 베어 저자에 매달았네하루아침에 북로를 뒤흔드는 군의 성세배반한 적들 차례대로 사로잡아 죽였네변방 오랑캐 틈 엿봐 잠깐 난동 부려도짐승의 뿔 부러지듯93) 모두 순종하였네왜구들 소문 듣고 군사 거두어 도래하여개미 달라붙듯 육박하여 성가퀴 올랐네성 위에서 북 울리자 화살이 빗발치니해자에 가득 찬 시체에 발 돌릴 틈 없네관군이 패주한 적 추격해 길주 이르니세 번 싸워 세 번 패하여 다 흩어졌네장평94)에서 쌍포95)까지 수백 리 길에창 던지고 징 버려 얼마나 널브러졌나담력 잃은 교만한 왜구 흐느적거리고위축된 모습 토굴 속에 똬리 튼 뱀 같네단천의 대규모 병력 찾아와 맞이해한밤중 재갈 물고 남쪽으로 이동하려는데비산에 복병 심어서 퇴로를 끊어놓고앞에서는 뿔을 뒤에서는 다리를 잡았네96)백탑 언덕과 임명 들판에서 전투 벌여범과 무소 같은 건아의 용맹 자랑하네우왕좌왕 쥐 숨고 토끼 달아나듯이이따금 골통 갈라지고 팔 부러졌네늘어진 머리 맨발의 왜구 경관97)으로 되고긴 끈으로 차곡차곡 왼쪽 귀 꿰었네배 가르고 창자 빼내 탑처럼 세우니못된 놈들 놀라 돌아보니 어찌 접근하랴왜구 우두머리 통곡하며 철령 넘어갈 때머리는 붙어있으나 넋은 이미 나갔네흰 느릅 사당98)에 비로소 전운 걷히니피 묻은 칼 푸른 바닷물로 깨끗이 씻었네북방에 이십삼 개 고을이 있는데한 치 땅까지 모두 우리 땅 되찾았네가련하다 위풍당당하던 세 장사여공 세우자 말 앞에 떨어져 전사했네99)멀리 장계100) 띄워 행조에 아뢰었으니임금 표정 슬프면서도 기뻐하였네총애 받아 새서101)로 관질 올려주고여러 차례 옷과 신 내려주셨네군대 장악한 번신 자신만 지키니임금님 몽진 남일 보듯 하였네어째서 공 없는 자신 부끄러워 남의 공 있음 질시하여하찮은 실수로 죄에 빠뜨려 도리어 훌륭한 공적 덮었는가102)백 년의 공론 끝에 마침내 신원되니보낸 뇌문103) 찬란해 온 나라가 제향하네무계의 호숫가에 자리한 어랑리산천은 울창하고 옛 보루에 둘러있네옛적에 김종서와 윤관이 강토 개척해국위와 병력은 두 장군에게 의지했네공은 변란 만나 맨주먹으로 떨쳐 일어나우뚝 거센 물결 버틴 지주산104) 같았네그렇지 않았다면 두만강 이내 우리 국토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상국의 잠식 여기서부터 시작되었겠지공처럼 수립한 공훈 더욱 탁월하니천 년 전 수양105)과 함께 견줄 만하네생전의 불우와 죽을 때의 억울함 모두 한하지 마소서드높은 명성은 백두산과 나란히 높이 솟았네내가 전장터를 지나다 감개 일어나검 두드리며 길게 노래하니 변치106) 되었네검 두드리며 노래 소리 격렬해지고윙윙 부는 변방 바람소리 그치지 않네 鄭評事奇男子微爾盡黔北人齒時有長鯨怒鬣閃㸌若火熾滄海爲沸東天紫三京焚燒八路崩翠華遙遙鴨水沚其酋淸正最黠驚萬隊橫行遂北指快劒如霜彗日芒毒丸如雷洞人髓元戎旆折鐵嶺上三軍潮退未敢發一矢鳥言卉服滿朔野腥氛慘憺興王里磨天重險掉臂過九鎭諸郡望風跪桀奴叛吏爭倒戈處處翻城囚長吏王子大臣亦受縛國何汝負乃忍爾箕封千里爲戎矣關北曾無一義士維時蓮幕隻身跳山行草伏形容毁彷徨歧路誰與歸邂逅同志崔姜李揮涕飮血仰天誓一百義旅投袂起裂裳爲旂鋤爲兵白面將軍杖尺箠鳴皷徐行入鏡城士女歡迎惟命俟南樓嶪嶪建牙纛磔斮鞠豎懸街市軍聲一朝震北路叛賊次第束身死蕃胡伺釁乍蠢動若崩厥角咸率俾蠻兒聞之卷甲來肉薄登陴如附蟻城上一鼓箭如雨僵尸盈壕不旋趾官軍追奔至吉州三戰三北皆離披長坪雙浦數百里投戈棄鉦何累累驕虜膽破若無骨蝸縮蛇蟠土窟裏端川大兵自來迎半夜銜枚將南徙萆山偃旗截歸路前有角兮後有掎白塔之原臨溟野健兒賈勇如虎兕紛紛鼠竄與兎脫往往裂腦而折臂髧頭裸足化京觀長繩簇簇貫左耳刳肚擢腸立如堠醜類狂顧那嚮邇倭酋大哭走踰嶺頭雖戴矣魄已褫陣雲初霽白楡社血刃淨洗靑海水朔方二十有三州寸地皆還我疆理可憐堂堂三壯士功成身殞馬前墜蠟紙遙飛奏行在至尊動容悲且喜壐書寵嘉進官秩賜賚便蕃及衣履藩臣擁兵但自衛君父蒙塵越人視奈何恥己無功嫌人有媒孽其短反揜美公議百年竟得伸贈誄輝煌邦人祀武溪之上漁郞里山川欝欝環古壘昔日金尹拓疆土國威兵力是憑倚公遭板蕩奮空拳屹若狂瀾障一砥不然不惟豆江以內非吾有荐食上國從此始如公樹立更卓然千載睢陽可幷擬生前落拓死時煩寃俱莫恨巍巍名與白山齊高峙我過戰地起感慨彈劒長歌爲變徵彈劒歌聲激烈邊風獵獵鳴不已 임명(臨溟) 《이계집(耳溪集)》 권5 〈임명대첩가(臨溟大捷歌)〉에 "임명역(臨溟驛)은 성진(城津)과 길주(吉州) 사이에 있는데, 정 평사(鄭評事) 문부(文孚)가 임진년에 이곳에서 왜적을 크게 깨뜨렸고 승전비(勝戰碑)가 있다."라고 하였다. 큰 고래 큰 도적으로 왜적을 말한다. 삼경(三京) 시대에 따라 가리키는 지역이 다소 차이가 있다. 여기서는 서울, 평양, 개성을 말한다. 장군의……꺾였으니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말하기를, "1592년 6월에 왜장 청정이 멀리서 적을 몰아 북방을 노략질하였는데, 병마사 한극함이 마천령을 지켜 관북을 보전하고자 하였으나 군사가 궤멸하여 달아났다." 하였다. 《農圃集 記壬辰擧義事》 왜구의 말과 옷 조언(鳥言)은 새소리라는 뜻으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다. 옛날에 사방 오랑캐와 외국의 말을 가리켰다. 훼복(卉服)은 풀잎으로 짠 의복으로, 섬 오랑캐를 뜻한다. 왕업 일어난 마을 조선 태조의 고향이 함경남도 영흥(永興)이기 때문에 이처럼 말한 것이다. 구진(九鎭) 함경북도 국방의 요지에 둔 진으로, 경성(鏡城)·길주(吉州)·명천(明川)·회령(會寧)·무산(茂山)·종성(鍾城)·온성(穩城)·경원(慶源)·경흥(慶興)의 아홉 고을을 말한다. 이후 행정을 관할하는 고을이 되었다. 두……결박당했으니 1592년(선조25) 7월에 임해군과 순화군 및 그들을 수행한 김귀영, 황정욱 등이 가등청정에게 쫓겨 회령으로 들어갔는데, 회령의 국경인이 반란을 일으켜 이들을 붙잡아 왜적에게 넘기고 항복한 일을 말한다. 《農圃集 年譜》 기봉(箕封) 조선을 말한다. 주 무왕(周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다는 말에서 나왔다. 연막(蓮幕) 막부(幕府)를 뜻한다. 남제(南齊) 때 왕검(王儉)의 막부를 연화지(蓮花池)라고 일컬은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南史 卷49 庾杲之傳》 짐승 뿔 무너지듯 짐승이 그 뿔이 무너지듯이 한다는 뜻으로, 어떤 위세나 힘에 눌리어 기를 펴지 못하고 두려워 쩔쩔매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 에 "마치 짐승이 그 뿔이 무너지듯이 머리를 조아렸다.[若崩厥角稽首]"라고 한 말이 나온다. 장평(長坪) 경성(鏡城)의 두만강 가에 있는 지명이다. 쌍포(雙浦) 길주(吉州)의 임명역(臨溟驛) 근방에 있는 냇물 이름이다. 앞에서는……잡았네 기각지세(掎角之勢)로, 사슴을 잡을 때 한 사람은 뒤에서 다리를, 한 사람은 앞에서 뿔을 잡는 것을 말한다. 인신(引伸)하여 전쟁할 때 양쪽으로 포진하여 적을 협공(挾攻)하거나 앞뒤에서 견제하는 형세를 말한다. 경관(京觀) 무공을 과시하기 위해 적의 시체를 쌓아 만든 큰 무덤을 말한다. 경구(京丘)라고도 한다. 흰 느릅 사당 분유사(枌楡社)의 약칭으로,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고향인 풍읍(豐邑)에 느릅나무를 심어 토지의 신(神)으로 삼은 데서 유래하였다. 이후로 제왕(帝王)의 고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조선 태조의 고향이 함경남도 영흥(永興)이기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가련하다……전사했네 《농포집》 권5 〈임명대첩비명(臨溟大捷碑銘) 병서(幷序)〉에는 이 전쟁에서 이붕수(李鵬壽)·허대성(許大成)·이희당(李希唐)이 전사했다고 나온다. 납지(蠟紙) 밀랍(蜜蠟)을 표면에 바른 종이를 말한다. 여기서는 장계(狀啓)를 말한다. 새서(璽書) 임금의 옥새를 찍은 친서(親書)를 말한다. 어째서……덮었는가 함경감사 윤탁연(尹卓然)은 정문부의 공이 자기보다 뛰어난 것을 시기하고, 북도의 호란을 자기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실정을 뒤집어 그의 공을 숨기고 거짓으로 행조(行朝)에 아뢰었다. 《農圃集 年譜》 뇌문(誄文)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거나 생전의 공덕을 칭송하며 조상(弔喪)하는 말이나 글을 말한다. 죽은 사람의 시호를 내릴 때 이 뇌문을 바탕으로 해서 지었다. 지주산(砥柱山) 중국 하남성(河南省) 삼문협(三門峽)의 지주산(砥柱山)을 말하는데, 이 산이 황하(黃河)의 급류(急流) 가운데 우뚝 버티고 서서 거센 물결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 여기서는 농포 정문부가 임진왜란 때 홀로 의병을 일으켜 관북 지역을 평정한 것을 말한다. 수양(睢陽) 당나라 현종(玄宗) 천보(天寶) 14년(755)에 안녹산(安祿山)이 어양(漁陽)에서 반란을 일으켜 장안을 향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려올 때, 장순(張巡)과 허원(許遠) 두 장수가 이들을 맞아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던 곳이다. 《舊唐書 卷187 忠義列傳下》 여기서는 장순과 허원을 가리킨다. 변치(變徵) 전국 시대 연(燕)나라 태자 단(丹)이 형가(荊軻)를 극진히 대접하여 진왕을 암살하게 하였다. 《전국책(戰國策)》 〈연삼(燕三)〉에 "태자와 그 일을 알고 있는 빈객들은 모두 흰 의관 차림으로 형가를 전송하여 역수가에 이르렀다. 형가는 고점리(高漸離)가 치는 축(筑)에 맞추어 노래하고 있었는데, 변치(變徵) 소리로 불렀다. 인사들 모두가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노래하기를 '바람 소소히 부는데 역수는 차갑고, 장사가 한 번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고 했다."라고 했다. 여기서는 비분강개한 노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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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절구 五言絶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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