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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2) 附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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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敍述 선생은 고금의 일에 널리 통달하여 남쪽 지방 이학(理學)의 종장이다.【본주 《여지승람(輿地勝覽)》】조용주(趙龍洲)가 선생의 인품과 문장이 초연히 자득한 것을 보고 매양 '임하제일인(林下第一人)'이라고 칭송하였다.【문인 이문석(李文碩)의 기록】묻기를 "아래에서 빈사(賓師)로 자처하는 혐의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자연히 등급이 있는 것이다. 빈사로 자처하는 경우도 있고 위포(韋布)로 자처하는 경우도 있다. 정도응(鄭道應)과 김만영(金萬英)은 아직 젊으니, 더욱 태학에 두어 그 재능을 성취할 수 있게 함이 좋다." 하였다.【《명재집(明齋集) 〈남유기문(南遊記聞)〉》】내가 들으니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벗을 통해 자신을 완성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하였는데, 오늘날 이 의미를 아는 자는 대개 드물다. 독서를 하다 의심이 있을 때 벗이 아니면 누구에게 질정 (質正)하며, 행동을 하다가 잘못이 있을 때 벗이 아니면 누구에게 듣겠는가? 지금 우리 그대는 여러 책을 배운 것이 아직은 두루 넓지 못하고 행동을 하는 데에 아직은 요체를 다 갖추지 못하였다. 서둘러 자기보다 나은 이를 가까이하고 그들의 깨우침과 도움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보완해 가야지, 떨어져 지내며 독학을 하다가 몽매함에 빠지는 부끄러움1)을 자초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남쪽 지방 선비 중에 들어본 사람은 김만영(金萬英) 군이고 직접 본 사람은 유진석(柳震錫) 군이니, 그대가 돌아가 그들을 찾는다면 서로 도우며 연마하는 이익2)이 어찌 크다 하지 않겠는가?【《명재집(明齋集) 〈송임사가서(送林士駕序)〉》】선생은 남쪽 지방의 도학지사(道學之士)이다. 또 말하기를 "바라보면 진중하여 진실로 군자이다."라고 하였다.【문인 임효복(任孝復)의 기록.】명재(明齋) 윤 선생(尹先生)이 일찍이 선생을 칭찬하고 추켜세우며 말하기를 "남쪽 지방에 김만영 군이 있는데 참으로 호걸지사이다."라고 하였다.【서하(西河) 임원(任遠)의 어록】선생이 일찍이 〈서과(西瓜)〉 시 절구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색은 가을하늘이 막 갠 뒤와 같고, 모습은 태극이 아직 나누어지기 전과 같네. 붉은 중심을 쪼개자 감로(甘露)가 흘러내리니,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이로부터 샘 찾는 일 게을러졌으리.3)"【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이 지은 《기아(箕雅)》에 들어있다.】선생은 강하의 큰 국량(局量)이요, 사림의 종장(宗匠)이니, 세상에서 "호남부자(湖南夫子)"라고 일컬었다.【문인 이석삼(李錫三)의 기록】남약천(南藥泉)이 진휼 어사(賑恤御史)로 영남에 갈 때 상(上)이 인견(引見)하며 인재를 살펴 찾으라는 뜻으로 명하였다. 약천이 물러나서 상소하기를 "신이 일찍이 김만영을 조정에 천거하였는데 상께서 채용의 뜻이 없었습니다. 이제 신이 비록 인재를 찾더라도 나라에 끝내 어찌 보탬이 되겠습니까."라고 하니 상이 특별히 전조(銓曹)에 교지를 내려 속히 직사를 부여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므로 교관(敎官)에 제수되었고 시남(市南) 유계(兪棨) 또한 극론(極論)하여 천거하였다.【남구만(南九萬) 《약천집(藥泉集)》】남북으로 관직에 매여서 경성(京城)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더구나 남쪽 소식은 하늘 멀리 묘연하였는데 오늘 임 참봉(林參奉) 형제를 통해 지난해에 영종(令從)인 세마(洗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여기에서 그친 것은 운명이니 어찌 하리오 어찌 하리오, 사무치는 슬픔을 이길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대는 일가 형제의 의리가 있는데 그 슬픔을 어찌 다 말하겠습니까? 세마의 남은 자식들은 있는 지, 나이는 장성했는지 모르겠으니 알려주기 바랍니다. 뒷일을 처리하고 유문을 수습하는 것은 책임이 그대에게 있으니 신경을 써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그 가운데 당본(唐本) 도서(道書) 4권은 세마(洗馬) 생존 시에 보내 드렸는데 이 책은 바로 다른 사람에게서 빌린 것입니다. 그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지금 물어볼 데가 없으니, 바라건대 그대가 그 집에 물어보고 찾아서 돌려주면 어떻겠습니까? 길이 몹시 멀어서 적당한 인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임 정자(林正字)가 가니 만약 그 편에 돌려보내준다면 사라질4) 염려가 없겠으니 유념해주면 어떻겠습니까? 이번 가을 과거(科擧) 때문에 반드시 한양에 가게 되어 만날 수 없을 것 같으니 더욱 그립고 서글픕니다.【약천이 남포선생의 종제(從弟) 해영(海英)에게 주는 편지】동춘(同春)5) 송준길(宋浚吉)이 이조 판서를 할 때 상(上)이 전교하기를 "이번 발인(發靷) 때 외지에 있는 전직 조관(朝官)으로 학업과 학행이 있는 사람 중에 와서 모인 자들을 일일이 서계(書啓)하라." 하였다. 이에 참판 이일상(李一相)·참의 조복양(趙復陽)과 함께 아뢰기를 "전(前) 교리(校理) 이수인(李壽仁)은 시종지신(侍從之臣)으로서 명리(名利)를 탐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 뜻을 지켜 세상의 칭송을 받으며, 사업(司業) 윤선거(尹宣擧)·사업(司業) 윤원거(尹元擧)는 모두 실직(實職)이 있으므로 비록 원단자(元單子)의 전직 관함(官銜)의 수에는 나오지는 않으나 일찍이 탑전에서 자세히 진달한 적이 있습니다. 전(前) 좌랑 신석번(申碩蕃)·전(前) 좌랑 최휘지(崔徽之)는 일찍이 선왕조 때 직출육품(直出六品)6)하였고 전(前) 자의(諮議) 이상(李翔)·전(前) 자의(諮議) 송기후(宋基厚)는 일찍이 이미 강직(講職)에 제수된 적이 있으며, 전(前) 세마(洗馬) 김만영(金萬榮)은 일찍이 자의(諮議)에 의망(擬望)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석번(申碩蕃)·이상(李翔)이 더욱 두드러진 자입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이번에 초계(抄啓)한 사람들은 다음 차례가 비록 비어있지 않았더라도 모두 직사를 부여하라." 하였다. 이날 신석번은 주부(主簿)에 제수되고, 최휘지는 별제(別提)에 제수되고, 이상은 사직(司直)에 임명되고, 송기후는 사정(司正)에 임명되고, 김만영은 사용(司勇)에 임명되었다.【기해조보(己亥朝報)】약천(藥泉)이 일찍이 조정에 선생을 천거하여 아뢰기를 "남쪽 지방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감히 쳐다볼 수 없다." 하였다.【어사 때의 포계(褒啓)】민노봉(閔老峯)이 본도의 어사로서 찾아와 하룻밤을 묵으면서 대화를 나누고는 크게 칭찬하면서 말하기를 "영숙(英叔)은 지금 세상의 군자이다." 하였다.【문인 홍최일(洪最一) 기록】김남포(金南圃)의 문장과 효행은 호남 제현들이 거의 미치지 못할 것이다.【상국(相國) 김덕원(金德遠)이 선생의 종질(從侄) 이상(履相)에게 보낸 편지】해옹(海翁) 참의(參議) 윤선도(尹善道)가 만년에 나 경주(羅慶州)의 수운정(峀雲亭)7)에서 선생을 만났는데 단아한 풍의(風儀)와 고명한 재식(才識)을 한 번 보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호남이 이제부터 다시 적막하지는 않겠다." 하였다.【외손 나경성(羅景聖) 기록】 先生博古通今。 爲南中理學之宗。【本州輿地勝覽。】趙龍洲見先生人品文章。 超然自得。 每稱以林下第一人。【門人李文碩錄。】問: "在下無自處以賓師之嫌否?" 曰: "自有等級。 賓師自處者亦有之。 韋布自處者亦有之。 鄭道應,金萬英年少輩。 尤可使置太學。 成就其才可也。"【明齋集南遊記聞。】抑吾聞之。 程子曰: "自天子以至於庶人。 未有不須友以成者。" 今之知此義者盖鮮矣。 讀書有疑。 非友何質? 行己有過。 非友何聞? 今吾子學諸書者尙未盡博。 行諸己者尙未盡約。 急宜親勝己資警益。 以自輔助。 不可索居獨學。 自貽困蒙之吝也。 吾於南中之士。 所聞則金君萬英。 所見則柳君震錫。 吾子歸而求之。 其爲麗澤之益。 顧不大歟?【明齋集送林士駕序。】先生爲南州道學之士。 又曰: "望之凝然。 爲眞箇君子也。"【門人任孝復錄。】明齋尹先生嘗稱詡先生曰: "南中有金君萬英。 眞豪傑士也。"【任西河遠語錄。】先生嘗作西瓜詩一絶曰: "色似秋天初霽後。 形同太極未分前。 碎破丹心甘露滑。 相如從此懶尋泉。"【南壺谷龍翼所撰箕雅入。】先生江河偉量。 士林宗匠。 世稱以湖南夫子。【門人李錫三錄】南藥泉以賑恤御史往嶺南時。 上引見命以採訪人才之意。 藥泉退而上疏曰: "臣曾薦金萬英于朝。 自上無採用之意。 今臣雖採訪人才。 竟何補於國哉?" 上特下旨銓曹。 命斯速付職。 故有敎官之除。 而兪市南棨亦極論薦矣。【南九萬藥泉集。】係官南北。 離京國久矣。 矧南州消息。 渺若天外。 卽因林參奉兄弟。 得前歲令從洗馬。 奄忽捐世。 斯人而止於斯。 命也。 奈何奈何。 不勝痛悼之至。 况尊一家連枝之義。 傷怛可言? 未知洗馬有遺孤而年亦長成否。 示及爲望。 經紀後事。 收拾遺文。 責在於尊。 加意幸甚。 就中唐本道書四卷。 洗馬在世時曾送呈。 而此冊乃借得他人者。 不可不還其主。 而今無可問處。 幸望尊問于其家。 搜得惠還如何? 道路絶遠。 得的便未易。 今林正字行。 若爲付還則可無沉浮之慮。 更須留念。 如何如何? 今番秋科。 想必戾京。 而無緣相奉。 尤用溯悵。【藥泉與先生從弟海英書。】宋同春浚吉吏判時。 上傳敎曰: "今發靷時。 在外前朝官學業學行之人來會者。 一一書啓。" 與參判李一相,參議趙復陽啓曰: "前校理李壽仁以侍從之臣。 恬退守志。 爲世所稱。 司業尹宣擧·司業尹元擧皆有實職。 故雖不出於元單子前銜之數。 而曾於榻前備盡陳達。 前佐郞申碩蕃·前佐郞崔徽之曾於先朝直出六品。 前諮議李翔·前諮議宋基厚曾已授講職。 前洗馬金萬英曾擬於諮議望。 而申碩蕃·李翔尤其表著者也。" 傳曰: "此抄啓之人。 後次雖非闕。 並皆付職事。" 是日申碩蕃除主簿。 崔徽之除別提。 李翔付司直。 宋基厚付司正。 金萬英付司勇。【己亥朝報。】藥泉嘗薦啓先生于朝曰: "南中有人。 不敢仰視。"【御史時褒啓。】閔老峯以本道御史。 來訪一宿。 與語大加稱賞曰: "英叔今之君子也。"【門人洪最一錄】金南圃之文章孝行。 殆湖南諸賢之所不可及。【金相國德遠與先生從侄履相書。】海翁尹參議善道晩年遇先生于羅慶州峀雲亭。 一見風儀之端雅。 才識之高明。 歎曰: "湖南自此更不寂寞。"【外孫羅景聖錄。】 몽매함에 빠지는 부끄러움 현자를 가까이 하지 않아 생기는 병폐를 말한 것이다. 《주역》 〈몽괘(蒙卦) 육사(六四) 상(象)〉에 "곤몽의 부끄러움은 홀로 강명(剛明)한 자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困蒙之吝, 獨遠實也.]" 하였다. 서로……이익 원문의 '이택(麗澤)'으로, 붕우가 서로 도와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태괘(兌卦) 상(象)〉에 "두 연못이 서로 붙어 있는 형상이 태이니, 군자가 보고서 붕우들과 강습한다.[麗澤兌, 君子以朋友講習.]" 하였다. 사마상여(司馬相如)는……게을러졌으리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는 만년에 늘 갈증을 느끼는 병인 소갈증(消渴症)을 앓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史記 司馬相如列傳》 사라질 원문의 '침부(沉浮)'로 서찰이 중간에 유실되는 것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은선(殷羨)이 예장군(豫章郡)의 태수(太守)로 있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즈음에 사람들이 100여 통의 서찰을 주면서 전달해 주기를 청하였는데, 은선이 석두성(石頭城)에 이르러서는 서찰을 모조리 물속에 던져 버리고 "가라앉을 놈은 가라앉고 떠오를 놈은 떠오르겠지. 이 은홍교가 우체부 노릇을 할 수는 없으니.[沈者自沈, 浮者自浮. 殷洪喬不能作致書郵.]"라고 말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任誕》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호이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659년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직출육품(直出六品) 바로 육품직(六品職)에 제수하는 것을 말한다. 나 경주(羅慶州)의 수운정(峀雲亭) 경주 부윤(慶州府尹)을 지낸 나위소(羅緯素)가 기거한 수운정(峀雲亭)을 말한다. 《남포집(南圃集)》 권5 〈제수운정(題峀雲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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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문[문봉의] 祭文 [文鳳儀] 정신이 순수하고타고난 자질 아름다워남쪽 땅에서 특출하고도의를 창명했도다멀리 사승도 없었으나묵묵히 깨닫고 은연중 계합하며이치를 봄이 분명하여마음으로 알고 정신으로 이해했네위로는 수사8)로 올라가고아래로는 관민9)을 이어서격물치지하고 거경하며성정10)을 근본으로 삼았네함양을 날로 새롭게 하고실천을 더욱 두텁게 하며편달하여 이치를 가까이하고11)이미 발한 뒤에는 성찰하였네12)선조를 받들 땐 효도를 생각하고사람을 대할 땐 온화하게 하며시의를 따라 중도에 처하였고사물을 보고는 조화를 살폈네《주역》의 이치를 탐구했으니선천과 후천13)이요예의 절문을 강구했으니삼백과 삼천14)이었네숙연히 정좌하고좌우에 도서를 두고내면의 미덕이 날로 드러나니풍문이 임금에게 알려졌네15)융숭한 성은으로 옥처럼 다듬어16)일명17)에 처음 임명되었으나임금에게 사은숙배에 하고는옛집으로 수레를 재촉했네부귀는 원하지 않아서가난해도 즐거워하고여유롭게 학문에 푹 잠겨날로 깊은 경지에 나아갔네뭇 입이 떠들어댄들어찌 덕을 해치리오두 번 국상을 만나서는연이어 분곡18) 하였네강습 연마에 부지런하여교학에도 게으르지 않고차근차근 잘 이끌면서정성스레 문답을 했네체질 따라 이롭게 해주니단비와도 같아서많고 많은 생도들이혹 법도를 실천했네행동과 언어도따를 바를 생각하고후학을 계도해 옛 성현 이으니큰 공이 있었네돌아보니 어리석은 내가일찍부터 강학의 말석에 끼었으나비루하게 여기지 않고정성껏 가르쳐서 계발해주었네정은 간절하여 형과 아우였고의리는 두터워 스승과 제자였네의문이 있으면 꼭 풀어서정밀하게 분석하였고주고받은 편지에서는부지런히 배우도록 경계했네재질이 노둔하고 열등하여전현의 뜻을 잇지 못할까 두려워산처럼 앙모하고하늘처럼 받드니다행히도 간혹감독하고 다듬는 은혜가 미쳤네처음을 회복하고 선을 밝혀서19)기질을 변화시켰는데어찌 생각했으랴 오늘상장 짚고 슬픈 노래 부를 줄을옛일을 추억하며눈물을 줄줄 흘리노라도는 장차 땅에 떨어지고학문은 그 정도를 잃겠구나대들보가 부러졌으니우리는 장차 누구를 의지할까20)고단한 신세로쓸쓸히 어디로 갈까내가 운명이 좋지 못하여중도에 밝음을 잃었으니21)홀로 서서 아득하여세상에 무슨 정이 있으랴조촐한22) 조문도오히려 남보다 늦었는데이승과 저승을 돌아보니저절로 마음이 상하네시내와 산은 의구한데인간사는 옛날이 아니네한 잔술 올려 곡을 하고영원히 이별을 하나니오호 영령이시여부디 강림하여 흠향하소서 神精粹然。 天質之美。 挺特南表。 倡明道義。 邈無師承。 默悟暗契。 見理分明。 心融神會。 上溯洙泗。 俯承關閩。 格致居敬。 誠正爲本。 涵養日新。 踐履益篤。 鞭辟近理。 已發省察。 奉先思孝。 接人以和。 隨時處中。 觀物察化。 探賾易理。 先天後天。 講究節文。 三百三千。 肅然靜坐。 左書右圖。 內美日著。 風聽九臯。 恩隆玉汝。 一命初除。 肅謝天廷。 促駕舊居。 富貴非願。 簞瓢可樂。 優遊厭飫。 日造閫域。 衆口雖呶。 何害乎德。 兩遭國恤。 連仍奔哭。 講劘孜孜。 敎學不倦。 循循善誘。 懇懇答問。 因軆而利。 有如時雨。 濟濟生徒。 或蹈規矩。 擧止言談。 可想所從。 開來繼往。 犬有功焉。 顧余顓蒙。 夙廁講末。 不以卑鄙。 懇誨啓發。 情切弟兄。 義毒師生。 有疑必達。 毫分縷析。 往來尺牘。 戒以勤學。 質魯才劣。 恐不承前。 景仰如山。 戴冐如天。 庶幾或者。 董甄惠延。 復初明善。 變化氣質。 豈料今日。 扶杖歌發。 追思疇昔。 有涕沱若。 道將墜地。 學失其正。 樑木其摧。 吾將安倣。 孑孑身世。 踽踽何往。 余命不淑。 中遭喪明。 獨立蒼茫。 在世何情。 漬綿之吊。 尙後於人。 俯仰幽明。 自然傷神。 溪山依舊。 人事非昔。 一盃來哭。 終天永訣。 嗚呼英靈。 庶其歆格。 수사(洙泗) 공자의 유학을 가리킨다.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개의 강물 이름으로, 공자가 이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공자나 유가(儒家)를 뜻한다. 관민(關閩) 송(宋)나라 때 성리학을 가리킨다. 관중(關中)과 민중(閩中)으로, 관중은 장안(長安) 일대로 장재(張載)가 살았고, 민중은 복건성으로 주희(朱熹)가 살았다. 격물치지하고 거경하며 성정 《대학장구》의 팔조목(八條目)에 속하는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을 가리킨다. 곧,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거경(居敬)은 경을 실천한다는 뜻으로 주자학의 학문 수양 방법의 하나이다. 편달하여……가까이하고 원문의 '편벽(鞭辟)은 탐구가 투철하여 정미한 경지에 깊이 들어가는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송나라 명도(明道) 정호(程顥)가 "학문은 다만 채찍질하여 내면에 가까이 하고 자기 몸에 붙기를 요할 뿐이다.[學只要鞭辟近裏, 著己而已.]"라고 하였는데, '편벽(鞭辟)'에 대해 주자(朱子)는 "이것은 낙양 지방의 방언으로, 어떤 곳에서는 '편약(鞭約)'이라고도 하는데, 대체로 채찍질하여 안을 향해 들어가는 것이다.[此是洛中語, 一處說作鞭約, 大抵是要鞭督向裏去.]" 하였다. 《心經附註 卷2 禮樂不可斯須去身章》 이미……성찰하였네 행동을 절도에 맞게 했다는 것이다. '이발(已發)'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정이 발한 것을 가리킨다. 성리학에서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일어나기 이전[未發]의 정(靜)할 때에는 존양의 공부를, 이미 일어나서[已發] 동(動)할 때에는 성찰(省察)의 공부를 강조한다. 선천과 후천 주역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는 것이다. 북송(北宋)의 소옹(邵雍)이 진단(陳摶)의 학문을 터득하여 《주역》을 설명하면서 복희(伏羲)의 역(易)을 선천(先天), 문왕(文王)의 역을 후천(後天)이라 하였다. 예의……삼천 예(禮)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했다는 것이다.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경례가 삼백 가지이고 곡례가 삼천 가지인데, 그 이치는 한 가지이다.[經禮三百, 曲禮三千, 其致一也]" 하였다. 임금에게 알려졌네 원문의 '구고(九臯)'는 본래는 수택(水澤)의 깊은 곳을 이른다. 《시경》 〈소아(小雅) 학명(鶴鳴)〉의 "학이 구고에서 울면 소리가 하늘에까지 들린다.[鶴鳴于九皐, 聲聞于天.]"라는 구절을 원용한 것으로, 군자의 명성이 절로 드러나 임금에게 알려짐을 비유한 것이다. 옥처럼 다듬어 원문의 '옥여(玉汝)'로, 《시경》 〈민로(民勞)〉에 "왕이 너를 옥으로 만들고자 하므로, 이 때문에 크게 간하노라.[王欲玉汝 是用大諫]"고 하였고,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빈천과 근심 걱정은 너를 옥처럼 다듬어 완성시켜 주려는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 하였다. 일명(一命) 조선 시대 관직의 첫 등급인 9품직을 말한다. 주대(周代)의 관계(官階)가 일명(一命)에서 구명(九命)까지 이른데서 유래하였다. 김만영이 세마(洗馬)에 제수된 것을 말한다. 두……분곡(奔哭) 1649년 인조,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분곡한 것을 말한다. 처음을……밝혀서 '복초(復初)'는 본연의 성(性)의 선함을 분명하게 알아서 그 본연을 회복하는 것이고, '명선(明善)'은 이치를 궁구하여 선이 있는 곳을 참으로 아는 것이다. 대들보가……의지할까 대들보가 부러진다는 것은 스승이나 훌륭한 사람의 죽음을 비유한다. 공자(孔子)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태산이 무너지려 하는구나. 들보가 쓰러지려 하는구나. 철인이 시들려 하는구나."라고 읊조렸는데, 자공(子貢)이 이 소식을 듣고는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는 장차 누구를 우러르며, 들보가 쓰러지고 철인이 시들면 우리는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는가?[泰山其頹, 則吾將安仰, 梁木其壞, 哲人其萎, 則吾將安放?]" 하였다. 《禮記 檀弓上》 밝음을 잃었으니 원문의 '상명(喪明)'으로,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자하가 아들을 잃고 실명을 했다.[子夏喪其子而喪其明.]"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아들을 잃은 것을 말한다. 조촐한 원문의 '지면(漬綿)'으로, 술에 적신 솜인데 제물(祭物)을 뜻하는 겸사이다. 멀리 있는 친지(親知)의 무덤을 찾아가 조문(弔問)하려면 술을 가지고 갈 수 없으므로 솜을 술에 담갔다가 말려 가지고 가서 다시 물에 담가서 술기운이 우러나게 하여 잔을 올리는 것이다. 《後漢書 권53 徐穉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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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문[나위] 又 [羅褘] 유세차 신해년(1671, 현종12) 10월 기묘삭 16일 갑오에 금성(錦城)의 친척 나위(羅褘)는 맑은 술과 여러 제물로 공경히 남포(南圃) 선생의 영전에 제사하나이다.아! 제가 선생의 문하에 오른 지 무릇 몇 년입니까? 홀연히 상봉했을 때 난초의 방에 들어간 것 같았고,23) 며칠을 서로 대하고는 바로 아교와 칠24) 같은 의리가 있게 되었습니다. 1년 2년 집안의 우호도 더욱 돈독해지고 친애의 정과 깊은 교분은 이미 남의 지목을 받은 것도 오래되었지요. 그런데 어찌 알았겠습니까, 오늘 선생이 갑자기 떠나시어 저에게 끝없는 슬픔을 안겨줄 지를?선생의 선부군(先府君) 어르신은 바로 저의 고조부 직계 후손의 사위이셨는데 어릴 때부터 어진 소문이 났고 집안은 깊은 덕을 쌓았습니다. 선비(先妣)는 나씨(羅氏)로 시집을 와서 예를 받드는데 곤도(坤道)25)가 곧고 조용하여서 인척(姻戚)들은 빛이 나고 거동은 모범이 되었습니다. 복(福)을 끝없이 행하니 남은 경사26)로 보답이 있었습니다. 갑자년(甲子年, 1624)27)에 선생이 탄생하니 영준한 자질이 특출하였고 강하(江河)와 같은 큰 국량 있었습니다. 순수하게 화순 단정하였고 안팎으로 법도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성취가 있었습니다. 주공(周公)과 문왕(文王)의 효상(爻象)28)도 이해하고 스스로 해석하였습니다. 공자(孔子) 성인의 과목을 두루 갖춰 터득하여 돈민(敦敏)의 후예로서 마침내 대유(大儒)가 되었고 사림의 종장이 되니 당시에 "호남부자(湖南夫子)"라고 일컬은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겨우 관례(冠禮)를 한 뒤에 명성이 조정에 널리 퍼지고 천거하는 계문(啓聞)이 멀리 임금에게 들어가니 세자의 보필로 발탁되어 이름이 관원들 사이에서 빛났습니다. 그러나 성품이 귀하게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뜻이 한가히 사는 데 있었기에, 사은숙배를 하고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산림을 굳게 지켰습니다. 부귀를 뜬구름처럼 본 것이 어찌 우연이었겠습니까. 이 이후로 광채를 품어 감추고, 남을 가르치는 데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을29) 사모하여 영평(永平)의 남쪽에 서재를 짓고 뜻있는 선비들과 날마다 성현의 경전을 강구(講究)한 것이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그 후 영평(永平)의 선비들이 모두 학문과 실천에 독실하였으므로 다른 고을에도 파급되어 경앙(景仰)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훈도와 인재 육성30)에서 거의 추로(鄒魯)31)의 유풍을 볼 수 있었습니다.말세가 되니 야박함이 많아져서 사람들의 마음이 자기와 다른 사람을 꺼리며,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함이 예나 지금이나 물결에 휩쓸려가듯 똑 같으니, 숙손(叔孫)이 중니(仲尼)를 비난하는32)것과 불행히도 가까웠습니다. 아 아! 심합니다. 성대한 명성 아래에 훼예(毁譽)가 많았으니 형세가 본디 그러한 것일까요?을사년(1665, 현종5)33) 초봄에 금성(錦城) 서호(西湖) 가의 집으로 옮기고 좌우에는 거문고와 책을 두고 꽃과 대나무로 스스로 즐겼습니다. 친척들과의 정담을 즐거워하고 난정(蘭亭)에서 계사(禊事)를 행하여34) 돈독하고 화목한 의리를 친소간에 밝게 드러내니, 세속이 숭상하는 아름다움이 원근에 미쳐서 향린(鄕隣)의 행운이 매우 많았습니다.내가 정미년(1667, 현종8)에 반남(潘南)에서 호수로 선생을 찾은 것은 바로 가을 7월 상순이었습니다. 곤궁한 처지라서 피우(避寓)를 해야 하는데 갈 곳이 없었습니다. 선생이 이때 나에게 일러 말하기를 "영중(英仲)의 서실이 좁고 누추하지만 외딴 곳이라 사람도 적으니 피해 있을 만하고 독서할 만하며, 또 세상 근심을 달랠 수 있다." 하기에 즉시 영중과 함께 가서 보고는 몇 달을 머물렀습니다. 선생의 거처와 거리가 만 2리쯤도 안되니 도보로 왕래하면서 서로 찾은 것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시편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아양곡(峨洋曲)〉에 부치니35) 친밀한 교분과 신뢰하는 정의(情義)는 이전보다 갑절이나 더해졌습니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목이 타고 굶주린 것 같았습니다. 만날 때마나 기뻐하여 마치 폐간(肺肝)을 서로 비춰보는 것 같았습니다. 다소라도 마음에 품은 것은 반드시 말하여 숨김이 없었습니다. 친족의 의리에 분수가 있다는 것도 도리어 잊고 문득 사제(師弟)36)간이 되어 노닐었습니다.내가 이때 얻은 것은 전일과는 크게 달랐으니 요컨대 가슴속으로부터 환히 밝아져서 마음이 난초의 방에 이끌려 마치 꽃향기에 적신 것 같았습니다. 중간에 이별하여 별처럼 서로 흩어졌는데 번잡한 세상일까지 또 따라서 침범하니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이 벌써 여러 해를 지났습니다. 그런데 잠깐 머리를 돌리는 사이에 조물주가 많이 시기하여 백우(伯牛)처럼 병들고 안자(顔子)처럼 불행할37) 줄 어찌 생각했겠습니까? 지위는 그 덕에 차지 못하였고 나이는 50을 넘지 못하였으니 하늘이 빼앗아 감이 이렇게 빠른 것입니까? 아! 슬픕니다. 아! 애통합니다.누가 그렇게 시켰습니까? 신선의 풍골이라고 하여 하늘이 풍진 세상에 오랫동안 놓아두지 않으려 한 것입니까? 아니면 시운이 쇠하려고 하니 호걸 재사로 하여금 쓰러지려는 국가를 부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도(道)가 심히 곤궁해지니 군자로 하여금 시들어가는 사문(斯文)을 진작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하늘에 닿는 영기(英氣)와 고금을 꿰는 식견을 이내 생애 천지에서 다시 어찌 대할까요? 아! 슬픕니다. 아! 애통합니다.봄여름 사이 역병이 전화(戰禍)와 같아서 제가 임시 거소에 몸을 기탁한 지 7일 째에 선생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또 며칠 만에 흉음(凶音)이 갑자기 전해지니 꿈입니까, 참입니까? 막 밥을 먹으려다 수저와 젓가락을 던지며 슬피 부르짖고 길이 통곡하면서 한참을 얼굴을 가리고 울었습니다. 옆 사람들도 참담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는데 마치 친척의 상을 당한 것 같았습니다. 원근에서 선생의 부음을 듣고 와서 저를 위로한 사람 또한 많았으니 평일에 저와 선생의 정의(情義)가 골육(骨肉)과 같아서였겠지요.제가 듣건대 대덕(大德)은 반드시 장수한다던데,38) 우리 선생의 순명성덕(純明盛德)으로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제가 또 듣건대 선인에게 복을 주고 악인에게 화를 내리는 이치가 있다던데,39) 말세의 풍속을 돌아보면 흉한 자와 간사한 자가 늙도록 죽지 않은 자가 많습니다. 어찌하여 우리 선생처럼 순명성덕한 사람을 빼앗아 가며 화를 참혹하게 내립니까? 이른 바 하늘이라는 것도 불인(不仁)하고 이치라는 것도 믿기 어렵습니다. 아! 슬픕니다. 아! 애통합니다.후손이 고아하고 수려한 데서 천륜(天倫)을 볼 수 있습니다. 임종할 때 한 마디 말도 끝내는 백년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영중(英仲)과 사형(士亨) 또한 호우(湖右)의 명사로 칭송을 받고 있으니 훗날 집안의 명성이 더욱 커질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의탁했던 옛정이 변치 않고 쇠하지 않는 것이 구구한 저의 바람이니 이를 믿을 따름입니다. 더구나 제 선조(先祖)의 유장(遺狀)을 선생이 기초하다가 완성하지 못했으니 천추에 이 한을 이승과 저승사이에 영원히 맺게 되었습니다. 포복하여 오늘 와서 상여 줄을 잡고 크게 통곡하며 변변찮은 술과 짧은 제문으로 정을 다할 수 없음을 선생께서는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아! 슬픕니다. 아! 애통합니다. 維歲次辛亥十月己卯朔十六日甲午。 錦城戚人羅褘謹以淸酌庶羞之奠。 敬祭于南圃先生之靈。 嗚呼! 自我登先生門凡幾年乎? 忽然相逢。 如入芝蘭之室。 數日相對。 便有膠漆之義。 一年二年。 世好益篤。 親愛之情。 契托之深。 旣爲人指者久矣。 那知今日。 先生逝之奄忽。 令我抱無涯之戚耶? 伏惟先府君尊丈。 卽我高祖考直派贅郞也。 夙歲仁聞。 家積玄德。 而先妣羅氏于歸奉禮。 坤道貞靜。 姻族有輝。 壼儀是式。 福行無彊。 餘慶有報。 歲在蒼鼠。 降生先生。 英姿特異。 江河偉量。 粹然和正。 內外規度。 髫齡志學。 不敎有成。 周文爻象。 理會自解。 孔聖科目。 紆餘備得。 敦敏之後。 遂成大儒。 爲士林之宗匠則當時稱湖南夫子者有由然矣。 甫及冠後。 聲名洋溢乎朝廷。 薦聞遠入於九重。 擢爲儲輔。 名耀縉紳。 而性不喜貴。 志在投閑。 肅謝還鄕。 固守山林。 其視富貴如浮雲。 豈偶爾哉? 自玆以往。 含光蘊彩。 慕誨人之不倦。 結書舍於永平之南。 與有志之士。 日日講究於聖經賢傳者有年。 厥後永之士皆篤於文行。 故延及他鄕。 莫不景仰。 薰陶樂育。 庶見鄒魯之風矣。 亥世多薄。 人情忌殊。 媢疾彦聖。 今古滔滔。 叔孫譏仲尼不幸近之。 噫噫! 亦甚矣。 盛名下多毁譽。 勢固然歟? 靑蛇春初。 移寓錦西湖上之宅。 左琴右書。 花竹自娛。 悅親戚之情話。 修禊事於蘭亭。 敦睦之義。 昭彰親疏。 俗尙之美。 攸曁遠近。 鄕隣之幸。 已萬萬矣。 余於丁未歲。 自潘而訪先生於湖。 卽秋七月上浣也。 竆困避寓。 無處可往。 先生時謂余曰: "英仲書室。 雖窄陋。 地僻人小。 可以爲避寓。 可以爲讀書。 亦可以消遣世慮。" 卽與英仲往觀而仍留數月。 距先生居不滿二里許。 徒步往來。 相尋者數矣。 唱酬詩篇。 付心峨洋。 交契之深密。 情義之相孚。 尤倍前矣。 一日不見。 如渴如飢。 見輒歡猶肺肝相照。 多小所懷。 必陳無隱。 而還忘族義之有分。 轉作函丈間從容。 余時所得。 與前日大異。 要自胸中豁然以明。 嬰情芝室。 如襲馨香。 中間聚散。 若星相離。 塵宂世故。 又從而侵之。 不獲承誨。 已經年所。 豈料轉頭之間。 造物多倪。 伯牛斯疾。 顔子不幸? 位不滿其德。 年不踰知命。 而天奪之速耶? 嗚呼哀哉! 嗚呼痛哉! 夫孰使然耶? 以神仙中骨。 天不欲久落於風塵者乎? 抑時運欲衰。 不令豪傑之才有扶於家國之將顚耶? 吾道竆甚。 不令君子之流。 有振於斯文之凋喪耶? 竆天之英。 貫古之識。 此生天地。 更於何相對耶? 嗚呼哀哉! 嗚呼痛哉! 春夏癘疫。 有同兵燹。 余自寓所。 寄身佛舍之七日。 聞先生遘疾。 又數日凶音忽傳。 夢耶眞耶? 方對食投匙箸。 悲呼長慟。 掩泣者良久。 傍人之慘顔出涕。 有如親戚之喪。 遠邇之聞先生訃而來慰我者亦多。 則平日吾於先生。 情義若同骨肉者然歟。 吾聞大德必得壽。 以吾先生之純明盛德。 何爲而至斯耶? 吾又聞福善禍淫之理。 顧瞻末俗。 兇者奸者老而不死者多矣。 何奪於吾先生純明盛德者而禍之慘耶? 所謂天者不仁矣。 理者難諶也。 嗚呼哀哉! 嗚呼痛哉! 嗣胤之雅麗明秀。 可見天倫。 臨終一語。 竟爲百年之型範。 而英仲士亨亦見湖右之名稱。 他日家聲。 知有更大。 舊情推托。 不替不衰。 區區所願。 惟恃而已。 况我先祖遺狀。 先生能構草而未及成章。 千秋此恨。 永結幽明。 匍匐今來。 執紼增慟。 薄醪短篇。 情不可盡。 先生其知也耶? 其不知也耶? 嗚呼痛哉! 난초의……같았고 훌륭한 인품에 감화되었다는 말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지초와 난초의 방에 들어간 것 같아서 오래되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니 곧 그에게 동화된 것이다.[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하였다. 아교와 칠 '교칠(膠漆)'은 아교나 옻으로 칠을 하면 떨어지지 않으므로 깊은 우정을 비유한다. 곤도(坤道) 부녀자의 순종하는 덕을 말한다. 《주역(周易)》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땅의 도는 그 순하도다. 하늘을 받들어 때로 행한다.[坤道其順乎, 承天而時行.]" 하였다. 남은 경사[餘慶] 조상의 음덕으로 후손이 번창함을 뜻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적선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 하였다. 갑자년(甲子年, 1624) 원문의 '창서(蒼鼠)'로, 푸른 쥐의 해이다. 푸른 색은 천간(天干)의 '갑(甲)'에 해당하고, 쥐는 지지(地支)의 '자(子)'에 해당한다. 주공(周公)과 문왕(文王)의 효상(爻象) 《주역》을 말한다. 주 문왕(周文王)이 괘사(卦辭)를 짓고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남을……것을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가 "성과 인으로 말하면 내 어찌 감히 자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인성(仁聖)의 도를 행하기를 싫어하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는 데 게을리 하지 않는 것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若聖與仁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하였다. 인재 육성 원문의 '낙육(樂育)'으로, 본래 영재(英才)를 육성하는 즐거움을 말한다. 맹자(孟子)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孟子 盡心上》 추로(鄒魯) '추로(鄒魯)'는 공자가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이었고, 맹자가 전국 시대 추(鄒) 땅 사람이었던 데에서 온 말이고, 여기서는 유학을 가리킨다. 숙손(叔孫)이 중니(仲尼)를 비난하는 숙손은 노(魯)나라 대부 숙손 무숙(叔孫武叔)이다. 《논어》 〈자장(子張)〉에 "숙손무숙이 중니를 헐뜯으니, 자공이 말하였다. '그러지 말라, 중니는 헐뜯을 수 없는 분이다.' 하였다.[叔孫武叔毁仲尼, 子貢曰, 無以爲也, 仲尼不可毁也.]" 하였다. 《論語 子張》 을사년(1665, 현종5) 원문의 '청사(靑蛇)'로, 청색은 천간(天干)의 '을(乙)' 해당하고, 뱀은 지지(地支)의 '사(巳)'에 해당한다. 친척들과의……행하여 도잠(陶潛)처럼 전원의 흥취를 즐기고 왕희지(王羲之)처럼 명사들과 어울리며 살았다는 말이다.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친척들과의 정담을 즐거워하고, 거문고와 서책을 즐기면서 시름을 푼다.[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라고 하였다. 왕희지(王羲之)의 〈난정기(蘭亭記)〉에 "영화 9년 계축년 3월 초에 회계 산음의 난정에 모였으니, 계사를 행하기 위해서이다.[永和九年, 歲在癸丑, 暮春之初, 會于會稽山陰之蘭亭, 修禊事也.]"라고 하였다. 마음을 아양곡(峨洋曲)에 부치니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사이가 된 것을 말한다. 원문의 '아양(峨洋)'으로, 거문고 곡 이름이다. 춘추 시대(春秋時代)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타면서 고산(高山)에 뜻을 두자 종자기(鍾子期)가 "높고 높기가 마치 태산과 같도다![峨峨兮若泰山]"라고 하였고, 또 유수 (流水)에 뜻을 두자 "넓고 넓기가 마치 강하와 같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하였다. 《列子 湯問》 사제(師弟) 원문의 '함장(函丈)'인데, 본디 옛날에 스승의 자리와 제자의 자리에 일장(一丈)의 사이를 둔 데서 나온 말이다. 《禮記 曲禮上》 백우(伯牛)처럼……불행할 운명으로 단명하였다는 말이다. '백우(伯牛)'는 공자의 제자 염백우(冉伯牛)이다. 《논어》 〈옹야(雍也)〉에 "염백우(冉伯牛)가 병을 앓자 공자가 문병할 때 남쪽 창문으로 그의 손을 잡고 '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는데, 운명인가보다.' 하였다.[伯牛有疾, 子問之, 自牖執其手曰, 亡之, 命矣夫.]" 하였다. '안자(顔子)'는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이다. 《논어》 〈옹야(雍也)〉에 "안회라는 자가 배움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수명이 짧아 죽었습니다.[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하였다. 대덕(大德)은 반드시 장수한다던데 《중용장구》 제17장에 "큰 덕을 소유한 사람은……반드시 합당한 수명을 누린다.[大德,……必得其壽.]" 하였다. 선인에게……있다던데 《서경》 〈탕고(湯誥)〉에 "하늘의 도는 선인에게 복을 내리고 악인에게 화를 내린다.[天道, 福善禍淫.]"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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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첩 응제 春帖應製 섣달 궐에 내린 눈 녹아내리고봄날 구름 비단 창에 밀려오네멍하니 새로 찾아온 제비를 보니오고 가며 쌍쌍이 저저귀네 臘雪乾瑤陛春雲撲繡窓佇看新鷰到來去語雙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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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솟은 바위 立巖 우뚝 솟아 위태로워 넘어질 듯한 형세꼿꼿하여 기울어진 그림자 없네천지신명이 지켜주는 바이니들판 강물에 깎이지 않았네 孤危勢欲仆正直影無斜神明之所護野水莫相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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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산의 창고에서 짓다 갑오년(1594, 선조27) 가을 永興山倉作 甲午秋 단풍잎 떨어지자 가을 강물 차갑고덩굴 깊어 밤 오솔길 어둡네산골은 우물에 앉은 듯 좁고밝은 달은 동서를 나누었네 楓落秋江冷藤深夜逕微峽中如坐井明月隔東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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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 天壇 대월271)의 마음은 항상 상제 곁에 있으니남교272)에서 목욕재계하고 다시 제단 쌓네성군은 본래 하늘과 똑같이 장수 누리거늘신령께 기도한 한 무제 도리어 우습구나273) 對越心常在帝傍南郊齋沐更壇場聖君自與天齊壽却笑祈靈漢武皇 대월 '대월'은 '대월상제(對越上帝)'의 줄임말로, 상제를 우러러 마주하는 지극한 정성을 뜻한다.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에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공손하게 하여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힌 채로 거처해서 상제를 마주하듯이 하라.[潛心以居, 對越上帝.]"라고 하였다. 남교의 천단 명나라 영락제(永樂帝) 때 북경 남교(南郊)에 천단(天壇)을 쌓아 교사(郊祀)를 행하였다. 신령께……우습구나 한 무제(漢武帝)는 도가(道家)를 숭상하여 이소군(李少君)을 비롯한 방사(方士)들을 우대하였다. 이소군이 한 무제에게 조(竈)에 제사 지내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아뢰자, 무제가 친히 조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史記 孝武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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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영의 뒷산에서 달을 읊으며 심약의 시에 차운하다 行營後峰咏月 次審藥韻 만 리 떨어진 외로운 성 달 아래서 읊조리니깊은 밤 피리 소리 차가운 숲 흔드누나강남에는 매화가 피었다는데변방엔 눈 가득하니 어디서 매화를 찾을거나 萬里孤城月下吟夜深鳴籟動寒林梅花消息江南路雪滿關山何處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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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삼짇날에 행영에서 우연히 읊다 三月三日 行營偶吟 산성의 가랑비 저녁에 부슬부슬 내리니땅에 닿은 층층 구름 습하여 날아가지 않네바야흐로 강남의 늦봄인데매화 다 떨어지도록 돌아가지 못하누나 山城小雨晩霏霏接地層雲濕不飛正是江南春暮月梅花落盡未言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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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산235)에 이르다 到古豐山 나그네 방 쓸쓸한데 밤은 유독 더디니돌아갈 노정 헤아려 보자 그리움 이누나내일 아침 잘 달리는 말로 재빨리 북방을 떠나오산236)의 산 아래서 약속에 맞추어 만나리라 客房寥落夜偏遲算得歸程有所思快馬明朝催北去鰲山山下趁幽期 고풍산(古豐山) 함경북도 북부에 위치한 북방 방어의 요충지이다. 오산(鰲山) 함경북도 회령(會寧)의 옛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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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군과 서시가 마주 보고 있는 그림 통주로 가는 배 안에서 어떤 이에게 주었다. 昭君西子相對圖【通州舟中贈人】 왕소군이 서시와 마주한 모습 그려냈으니조물주 솜씨 빼앗은 필법 지닌 이 누구인가그 당시 모연수가 있지 않았다면응당 흉노 군대가 월나라 군대 되었으리270) 畫得昭君對西子誰將筆法奪天成當年不有毛延壽應使胡兵作越兵 그……되었으리 모연수(毛延壽)가 없어 왕소군(王昭君)이 한 원제(漢元帝)의 총애를 얻었다면, 서시(西施)에게 미혹된 오나라 왕을 월나라가 쉽게 정벌했듯이, 흉노도 한나라를 쉽게 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미녀 왕소군은 본래 한 원제(漢元帝)의 후궁이었는데, 화공 모연수(毛延壽)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탓에 초상화에 예쁘게 그려지지 않아 왕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훗날 흉노의 호한야(呼韓邪) 선우(單于)가 한나라에 미인을 요구했을 때 한 원제가 왕소군을 보내서, 왕소군은 결국 호한야의 비가 되었다. 《前漢書 匈奴傳下》 《後漢書 南匈奴列傳》 서시는 월나라의 미녀로,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서시를 오나라 부차(夫差)에게 보내 미인계를 써서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했다. 《史記 淮南衡山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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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고 험한 문체를 경계하다 戒文體奇險 문장이 기이하면 사람들 모두 놀라지만사람 놀라게 하는 건 좋은 문장 아니라오한번 보라, 양 창자처럼 험한 무산 협곡이도성과 황궁의 평탄한 길만 못한 것을 文到奇來人共驚驚人非是善爲鳴試看巫峽羊腸險不及天街皇路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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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시름과 술의 경중을 논하다 山愁酒輕重論 옛사람들은 비록 산이 무겁다고 하지만시에서는 오직 시름을 이길 수 없다 하네시름이 산보다 무겁다면 시름이 가장 무거우니술이 무슨 힘으로 시름 녹일 수 있으랴 古人雖曰山爲重詩上唯云不勝愁愁重勝山愁最重酒能何力却消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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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저녁 봉화 南山夕烽 팔도가 한 번의 봉화로 소식을 통하니청해에 화살로 전할 소식 없음 알겠네304)근래에 노안이 와 바라본 적이 드물어산마루에 듬성한 별 걸린 줄 착했노라 八路開通一炬煙應知靑海箭無傳年來老眼稀相望錯認疎星嶺上懸 청해에……알겠네 변란이 없다는 뜻이다. 옛날 오랑캐들이 전쟁을 일으킬 때 화살을 전달하여 신호를 삼았다. 당나라 두보의 〈개부 가서한에게 드리다[投贈哥舒開府翰]〉 시에 "청해엔 화살을 전할 필요가 없고, 천산엔 일찍 활을 걸어 놓았네.[靑海無傳箭 天山早掛弓]"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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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총328) 5수 靑塚【五首】 한나라 그리는 심사 봄풀만이 알아주니오랑캐에 시집간 신세 천명이니 어찌하랴밝은 천자와의 얕은 인천 본래 끊겼으니못난 재주의 천한 화공 어찌 원망하랴329)황금은 평생의 신세 그르칠 수 있고청총에는 부질없이 한 조각 봄 머무르네꽃다운 마음은 이미 한나라 풀 되었을 것이요향긋한 유골은 오랑캐 먼지 되지 않으리여인의 죽음이 풀조차 슬픔 느끼게 하였으니세간 소인배들 행여 그 풍모 들었으려나이릉은 해 향하는 해바라기 배우지 않고백골로 하얀 무덤 속에서 수치를 견디네330)백골이 북쪽 변방 끝에서 진토 되었으니천추에 한나라와의 인연 어찌 회복하랴꽃다운 마음은 향긋한 풀 되었을 것이요밝은 달은 무슨 마음으로 거울처럼 둥근가식물이 미물인데도 또한 감통하니여인은 기질 치우쳤다는 말 공정치 않네숫양에 젖 안 나와도 한나라로 생환했으니소무의 화상은 화공을 부끄럽게 하는구나331) 思漢心惟春草知嫁胡身奈老天爲薄緣自絶明天子拙筆何尤賤畵師黃金解誤百年身靑塚空留一片春已是芳心爲漢草未應香骨化胡塵女死能令草感衷世間髥婦儻聞風李陵不學葵傾日枯骨堪羞白塚中白骨成塵紫塞邊千秋那復漢宮緣芳心可是爲芳草明月何心鏡樣圓植物雖微亦感通婦人偏塞語非公羝羊未乳生還漢蘇武圖形愧畵工 청총(靑塚) 왕소군(王昭君)의 무덤이다. 흉노 땅에 시집간 왕소군은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결국 자결하였다. 흉노 땅은 본래 백초(白草)가 많은데 유독 왕소군의 무덤에만 청초(靑草)가 자랐으므로 그녀의 무덤을 청총(靑塚)이라 불렀다. 《西京雜記 卷2》 밝은……원망하랴 한나라 원제(元帝)는 후궁이 매우 많아서 그림을 보고 궁녀를 골랐다.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않아 화공 모연수(毛延壽)가 초상화를 제대로 그려 주지 않았으므로 원제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흉노의 선우(單于)에게 시집보낼 이로 뽑혔다. 왕소군이 떠날 때, 원제는 왕소군이 절세미인이었다는 것을 알고, 뇌물을 받은 모연수 등의 화공을 기시형(棄市刑)에 처했다. 《漢書 匈奴傳下》 이릉(李陵)은……견디네 한나라에 대한 절조를 지킨 왕소군과 달리 이릉은 두 임금을 섬겼다는 뜻이다. 이릉은 한 무제(漢武帝) 때 흉노와의 전쟁에 기도위(騎都尉)로 출전하여 전쟁을 치르다가, 전세가 기울고 무기와 식량이 떨어지자 결국 흉노에게 투항했다. 이후 이릉은 흉노 선우의 딸과 결혼하고 우교왕(右校王)에 봉해져, 선우의 군사·정치의 고문으로 활약하다 몽골고원에서 병사하였다. 《漢書 李陵傳》 흉노 지역은 백초가 많으므로 백총(白塚)이라 한 것이다. 숫양에……하는구나 한 무제 때 소무(蘇武)가 중랑장(中郞將)으로 흉노에게 사신으로 갔는데, 항복하라는 흉노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아 흉노 땅에 구금되었다. 흉노 선우가 소문에게 양을 기르게 하고 "숫양[羝羊]한테 젖이 나와야 돌려보내 주겠다."라고 하였는데, 소무는 흉노 땅에서 고생하다가 19년만에 한나라로 돌아왔다. 《漢書 蘇武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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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당의 춘첩 2수 客堂春帖【二首】 봄이 오니 축원하는 바 무엇인가복록이 때와 함께 새로워지는 것이라부모님 나이 산릉처럼 많으시고임금님 은혜 우로처럼 고루 퍼지네맑은 술동이 곳곳마다 가득하니귀한 소님들 자주 오는구나삼한 땅에서 노래하고 춤추니만나면 모두 좋은 사람이어라북쪽 땅에 한 해가 저문 뒤봄바람에 맑은 기운이 새로워지네뜰의 매화 향기 진동하려 하고문앞 버들 이제 막 푸르러졌어라세도가 태평함을 바야흐로 보니봄놀이 자주 해도 싫증이 나지 않아라객당 가득 귀한 손님들 취하니모두 태평시대 백성이구나 春來何所祝福祿與時新親壽崗陵久君恩雨露均淸樽隨處滿佳客到來頻歌舞三韓地相逢盡好人北陸窮陰後東風淑氣新庭梅香欲動門柳綠初均世道方看泰春遊不厭頻滿堂佳客醉渾是太平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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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변관에서 병을 앓으면서 유인길이 보내 준 시에 차운하다 吟病安邊館 次柳寅吉見贈韻 세도가 날마다 무너진다 하지만왕의 교화 어찌 크게 손상되었으랴다만 일신의 출처를 가지고행동이 둥글고 모난 것 따지지 말라옥처럼 훤칠하니 원래 중정하고난초 같은 향기 겉으로 드러나네벗이 오는 것 참으로 즐거우니알려지지 않은들 또한 어떠하리 世道日云降王風何太傷但將身出處莫較行圓方玉立元中正蘭芬自外彰朋來信可樂不聞亦何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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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에서 옛일을 회상하다 松京懷古 고려 왕이 이곳에 도읍하여 국토를 지켰는데오백 년 뒤에 국운이 다하였네옛 도성엔 사람 없고 산만 홀로 서 있으며황폐한 누대엔 한 서리고 달만 그저 떠 있구나삼한일통 이룬 전대 공업을 생각하니미인과 요승이 판치던 말류 서글프도다65)푸른 소나무 지금 다 시들어 떨어졌으니계림의 누런 잎 다 같이 가을이네66) 麗王城此護金甌五百年來覇氣收故國無人山獨立荒臺有恨月空留三韓一統思前烈艶色妖僧悼末流靑木至今凋落盡鷄林黃葉一般秋 미인과……서글프도다 요승은 신돈(辛旽)을, 미인은 신동의 비첩인 반야(般若)를 가리킨다. 푸른……가을이네 최치원이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일어날 것을 예견한 시를 차용하여, 고려 왕조도 사라졌음을 형용한 것이다. 최치원(崔致遠)이 잠저(潛邸) 시절의 왕건(王建)에게 보낸 편지에 "계림의 잎은 누렇고, 곡령의 솔은 푸르다.[鷄林黃葉, 鵠嶺靑松.]"라고 하였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21 慶尙道 慶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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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낙방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년 벗에게 주다 贈年友下第還鄕 실의한 사람 호남 옛 집으로 돌아가니아, 그대 이러한 이별에 마음 어떠한가지난해 사마방엔 나란히 이름 올랐었는데지금 용문에선 이마를 부딪힌 잉어 되었네67)허리에 찬 청평검은 세 자 쯤 되는데68)눈앞의 누런 잎은 구월의 가을빛이구나갈림길에 임하여 다시 올 기약 물어보니가랑비 내리고 복사꽃 피는 삼월 초라 하네 落魄湖南返舊廬嗟君此別意何如去年馬榜連行鴈今日龍門點額魚腰下靑萍三尺許眼前黃葉九秋餘臨岐爲問重來約細雨桃花三月初 지금……되었네 정문부의 벗이 대과(大科)에서 낙방했다는 뜻이다. 용문(龍門)은 황하(黃河)에 있는 물살이 매우 센 여울목인데, 잉어가 이곳을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되지만 뛰어넘지 못하면 석벽에 이마를 부딪치고 다시 떨어진다는 '용문점액(龍門點額)'의 고사가 있다. 《水經注 河水》 허리에……되는데 청평검(靑萍劍)은 전국 시대 월(越)나라 구천(句踐)의 명검으로, 벗이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하나라 진림(陳琳)의 〈동아왕에게 답하는 전[答東阿王箋]〉에 "군후께서는 고세(高世)의 재주를 체득하고 청평검과 간장검을 잡았습니다.[君侯體高世之才, 秉靑蓱干將之器.]"라고 하였다. 《文選註 卷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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