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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鄭氏)【세륜(世綸)】에게 답하는 편지 答鄭【世綸】書 그대의 나이가 아직 성동(成童)이 되지 않았는데 몸을 가다듬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부모를 섬기고, 그 부모를 섬겨 천지가 사람에게 부여한 이치에 도달하며, 더구나 부모가 질병에 걸린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책망하고 스스로 경계하여 배움을 두터이 하고 몸을 바로 세우는 근본으로 삼을 줄 아니, 기질의 아름다움과 심지(心志)의 순수함을 아름답게 여기고 훌륭하게 여길 만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이로 인하여 뜻을 세우고 배움을 부지런히 하고 힘써 행하여 원대한 데까지 이른다면, 성현(聖賢)이 되는 일은 이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요 경공(卿公)이 되는 일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힘쓰십시오.만약 이러한 자질을 가지고서 배움에 힘쓰지 않고 이러한 뜻을 가지고서 행하기를 부지런히 하지156) 않는다면 반드시 시골의 수준 낮은 사람이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라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157) 그대는 힘쓰십시오.마음을 평안히 하고 기운을 고르게 하여 그 자질을 고요히 기르고 책 상자를 짊어지고서 학문을 이룬 이에게 속히 의탁하기를 저는 날마다 바랍니다.임인년(1662, 39세) 12월 20일, 남교(南郊)의 병든 이는 쓰다. 爾年尙未成童。能知脩身正心以事父母。事其父母。以達於天地賦人之理。又况仍其疾病。乃知自責自警。以爲篤學立身之根本。氣質之美。心志之純。可嘉可善若此。仍此立志。勤學力行。以至遠大。則爲聖爲賢。自此可始。爲卿爲公。亦不外此矣。爾其勖哉。若有此質而學不力。有此志而行不動。則必不免鄕里下品之人。可不畏哉。日月逝矣。歲不我延。爾其勖哉。平心調氣。靜養其質。負笈擔書。速歸成學。余日望焉。壬寅十二月二十日。南郊病夫書 부지런히 하지 원문은 '동(動)'인데, 문맥을 살펴 '근(勤)'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세월은……않으니 《논어》 〈양화(陽貨)〉에,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라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日月逝矣 歲不我與]"라 하였고, 주희(朱熹)의 〈권학문(勸學文)〉에,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라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 아, 늙었구나, 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가.[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日月逝矣 嵗不我延 嗚呼老矣 是誰之愆]"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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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군(尹君)【선삼(先三)】 및 문생(文生)【팔주(八柱)】, 조카 정씨(鄭氏)【세경(世經)】 등에게 주는 경계의 편지 與尹君【先三】曁文生【八柱】鄭侄【世經】等戒書 그대들은 시골 사람과 어울려 살고 서로 접하여 일찍이 이 일을 한 적이 없었으니, 오늘부터 시작하여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향당(鄕黨)에서는 화목함을 위주로 삼고 남을 대할 때는 공경함을 위주로 삼아야 하니, 화목하면 습속이 점차 충후(忠厚)해지고 공경하면 남들 또한 나를 공경하게 됩니다. 함께 있을 때 비록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나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노기를 얼굴에 드러내거나 말에 성난 기운을 드러내어 한 고을 안의 풍랑을 격하게 이루어서는 안 됩니다.절대로 다른 사람과 마음을 풀어놓고158) 희학(戱謔)을 일삼아서는 안 되며, 또한 다른 사람과 다름을 너무 드러내서도 안 됩니다.편지를 쓸 때는 서로 논란(論難)하기를 힘쓰고 한가할 때에는 함께 좋은 이야기를 해야 하니, 세상의 일을 언급하고 시비를 다투어 논하여 남에게 이기기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서책과 필묵 및 침구류 따위에 이르러서도 또한 각자 자신의 것을 단속해야 하니, 다른 사람들의 것과 섞어서 함께 두어 혐의의 단서를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음식이 비록 혹 극진하지 않더라도 또한 스님들을 대뜸159) 꾸짖거나 성을 내서는 안 됩니다.왕래할 때에는 고삐를 나란히 하고 채찍을 함께하여 질서정연하게 차례를 두어야지,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하여 거리가 떨어지거나 나란하지 않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이러한 몇 마디의 말은 모두 아끼는 지극한 정에서 나온 것이니, 늙고 졸렬하며 쓸모없는 사람의 헛소리라 치부하지 말고 깊이 단속하여 행한다면 그대들의 실제 행동에 또한 작은 도움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정처직(鄭處直) 군에게도 전해 드려 임인년(1662, 39세)의 일을 기억하도록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160)을사년(1665, 42세) 6월 그믐날 쓰다. 諸君與鄕人羣居相接。曾無此事。今日爲始。不可不愼。鄕黨以和爲主。接人以敬爲主。和則俗漸忠厚。敬則人亦敬我。同處之中。雖有不如意人不如意事。不宜怒形於色。言形於悖。激成一鄕中風浪。切不宜與人敬情恢謔。亦不宜表之異衆。著書則務相論難。乘閑則共打好話。不宜談及世事。爭論是非。取勝於人。至於書冊筆墨及衾枕之類。亦可各自端束。不宜與衆人相雜共置。以起嫌疑之端。飮食雖或未盡。亦不宜據加叱怒於僧輩。至於往來之際。連轡共鞭。秩然有序。不宜或先或後。間斷不齊可矣。凡此數語。皆出於相愛之至情。幸毋置之老拙無用之空談。而熟加裁制而行之。則於諸君之實行。亦不無小補云。此紙仍呈鄭君處直。記得壬寅年事否。乙巳六月晦日書。 풀어놓고 원문은 '경(敬)'인데, 문맥을 살펴 '방(放)'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대뜸 원문은 '거(據)'인데, 문맥을 살펴 '거(遽)'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이……있겠습니까 '정처직(鄭處直)'은 정지(鄭榰)를 가리킨다. 김만영은 정지가 효종의 국상(國祥)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벗들과 월연대(月延臺)에 올라 음악을 즐긴 일을 알고 편지를 보내 그를 책망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남포집》 권4 〈기정처직첩(寄鄭處直帖)〉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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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에서 회포를 서술하다 2수 禁中述懷【二首】 성군의 은혜 크건만 이 몸은 미천하니보답하려는 마음 지녔으나 일마다 어긋나네궐 안에서 꽃을 보니 해를 향하는 것 어여쁘고산속에서 약초를 캐니 돌아가고픈 생각 떠오르네58)노년에 시 읊조림은 가을 벌레가 울듯 괴롭고만년의 계책 저녁 새가 돌아가듯 재촉하네나월과 송운을 밤마다 꿈꾸니59)꿈꿀 땐 그곳이건만 깨고 나면 아니구나홀을 괴고 생각에 잠겨 푸른 산 마주하니60)내 어찌 세상을 등졌으랴, 세상이 나와 어긋난 게지광망(狂妄)한 뜻은 나는 나라고 자신했으나61)졸렬한 계책은 어찌하여 한번 가서 돌아오지 않는가허로는 구름이 북쪽으로 간다는 시구 읊조렸고62)소옹은 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단 말 마음으로 좇았지63)나그네 감흥은 고금에 다를 바 없으니어찌 유독 도연명만 지난날 잘못됨을 깨달았으랴64) 聖君恩重此身微欲報心將事事違禁裡看花憐向日山中採藥憶當歸老吟苦作秋蟲咽晩計催如夕鳥飛蘿月松雲夜夜夢夢時方是覺時非柱笏凝思對翠微吾何違世世吾違狂圖自信我爲我拙計云胡歸不歸許老句吟雲北去蘇翁心逐鵲南飛羈人感興無今古豈獨淵明悟昨非 궐……떠오르네 '향일규(向日葵)'라는 꽃과 '당귀(當歸)'라는 약초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나월과……꿈꾸니 꿈 속에서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나월(蘿月)은 등라(藤蘿) 사이에 뜬 달이고, 송운(松雲)은 푸른 소나무와 흰 구름으로, 고향의 풍광이나 은자의 처소를 의미한다. 홀을……마주하니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초탈한 모습을 말한다.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는 성품이 소방(疏放)하고 구속을 싫어하여, 거기장군(車騎將軍) 환충(桓沖)의 기병참군(騎兵參軍)으로 있을 때 업무를 보라는 환충에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홀(笏)로 턱을 고이고서 "서산에 아침이 오니, 상쾌한 기운이 이는구나."라고 하였다. 《世說新語 簡傲》 광망(狂妄)한……자신했으나 유하혜(柳下惠)의 고사를 인용하여, 관직 생활의 적극적 포부를 말한 것이다. 유하혜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대부로, 벼슬길에 나가서는 어짊을 숨기지 않아 반드시 그 도리를 다하였고, 버림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고 곤액을 당하여도 근심하지 않았으며,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我爲我], 네 비록 내 곁에서 옷을 걷고 몸을 드러낸들 네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孟子 公孫丑上》 허로는……읊조렸지 허로는 당나라 시인 허혼(許渾)을 가리킨다. 허혼의 〈서울에서 한가롭게 지내면서 두 도읍의 벗에게 부치다[京中閒居, 寄兩都親友]〉 시에 "만남과 이별은 때가 있으니 구름 북쪽으로 가고, 부침은 헤아릴 수 없으니 강물 동쪽으로 흘러가네.[聚散有期雲北去, 浮沈無計水東流.]"라고 하였다. 소옹은……좇았지 소옹(蘇翁)은 송나라 시인 소식(蘇軾)을 가리킨다. 삼국 시대 조조(曹操)가 〈단가행(短歌行)〉에서 "달이 밝아 별이 드문데, 까막까치 남으로 날아간다.[月明星稀, 烏鵲南飛.]"라고 하여 전란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상황을 비유했는데, 훗날 소식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막까치는 남으로 날아간다고 한 것은 조맹덕의 시가 아닌가?[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라고 하였다. 도연명만……깨달았으랴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길을 잘못 들긴 했어도 아직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으니, 지금이 옳고 지난날은 잘못된 것을 깨달았네.[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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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술동이에 들어온 것을 탄식하다 鼠入酒甕歎 큰 쥐야 큰 쥐야나의 곡식 먹지 말라곡식을 먹는 건 그래도 괜찮지만술동이 속 좋은 술은 –원문 1자 결락- 어이할꼬술동이는 네가 넘을 것이 아니요술은 네가 욕심낼 것이 아니로다네 몸은 작은 것 중에 작으나술동이 하나에 누를 끼치기 족하네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손님 저버리게 하여흰 망아지 골짝에 들이지 않네16)널 죽이더라도 남은 재앙 있을 것이요네 살을 찢더라도 진실로 속죄하기 어려우리너는 마치 등잔에 달려드는 부나방 같으니17)나는 파리가 옥 더럽힘18)을 안타까워하노라그 누가 이 허물을 책임질꼬술동이 담당한 아이종을 꾸짖노라아이종이 쥐에게 어금니 있다 하니담장 뚫린 일 송사에 비기네19)진실로 고양이 기르지 않았다면털 있는 짐승끼리 또한 서로 욕보였으리 碩鼠復碩鼠無食我苗粟食苗粟尙可奈【缺】樽中綠樽非爾可越酒非爾可欲有體微乎微累及一罇足令人負佳客白駒不入谷殺身有餘殃磔肉固難贖渠如蛾赴燈我惜蠅汚玉伊誰執此咎典守責僮僕僮言鼠有牙穿墉比訟獄苟爲不蓄猫毛蟲亦相辱 흰 망아지……않네 손님을 머물게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시경》 〈소아(小雅) 백구(白駒)〉에 "깨끗한 저 흰 망아지가, 마당에 난 싹을 먹었다고 핑계 대고, 발을 묶고 고삐를 매어 오늘 아침을 길게 늘여서, 귀한 이 손님을, 더 놀다 가시게 하리라.……깨끗한 흰 망아지가 저 빈 골짜기에 있도다.[皎皎白駒, 食我場苗, 縶之維之, 以永今朝, 所謂伊人, 於焉逍遙.……皎皎白駒, 在彼空谷.]"라고 하였다. 등잔에……같으니 등잔불에 마구 덤벼드는 나방은 세속의 명리를 좇아 허덕이는 무리들을 비유한다. 파리가 옥 더럽힘 소인배가 군자를 무함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백벽청승(白璧青蠅)'이라 하여, 보통 백옥은 어진 사람을, 쉬파리는 참소하는 소인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시경》 〈소아(小雅) 청승(靑蠅)〉에 "앵앵거리는 쉬파리가 울타리에 앉았도다. 화락한 군자는 참소의 말을 믿지 말지어다.[營營靑蠅, 止于樊. 豈弟君子, 無信讒言.]"라고 하였다. 쥐에게……비기네 《시경》 〈소남(召南) 행로(行露)〉의 구절을 인용하여, 쥐에게 어금니가 있기 때문에 담장이 뚫린 것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소연하는 아이종의 모습을 읊은 것이다. 《시경》 〈소남 행로〉에 "누가 '쥐가 어금니가 없으리오. 없다면 어떻게 내 담을 뚫었겠는가.'하며, 누가 '네가 실가의 예가 없으리오. 없다면 어찌 나를 송사에 불러들였겠는가.' 하건만, 비록 나를 송사에 불러들였으나 또한 나는 너를 따르지 않으리라.[誰謂鼠無牙, 何以穿我墉? 誰謂女無家, 何以速我訟? 雖速我訟, 亦不女從.]"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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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하여 강여관과 덕휘 두 현인에게 주다 醉贈姜汝寬德輝二賢 물이 있으나 맑은 위수가 아닌데 有水非淸渭젊은 강태공 두 사람이 오니 雙來少太公윤건을 한 늙은 제갈공명이 綸巾老諸葛초당 안으로 맞이하여 들어갔네 迎入草堂中검법을 논하니 용담70)이 말라버렸고 說劍龍潭渴병법을 말하니 호랑이 굴이 텅 비네 談兵虎穴空풍리71)가 평탄한 길을 지나가고 風驪過坦道횡운골72)이 험준한 산에서 내려오네 雲鶻下危峰나는 진실로 산속의 주인인데 余固山中主그대는 어찌 교외의 늙은이인가 君胡野外翁일천 잔 마셔도 취하지 않는데 千盃不成醉비와 눈으로 동서가 어두어지네 雨雪暗西東 有水非淸渭, 雙來少太公.綸巾老諸葛, 迎入草堂中.說劍龍潭渴, 談兵虎穴空.風驪過坦道, 雲鶻下危峰.余固山中主, 君胡野外翁.千盃不成醉, 雨雪暗西東. 용담 위험하고 흉악한 소굴로 '호혈(虎穴)'과 같은 의미이다. 풍리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주역》 팔괘(八卦)의 근원이 된 하도(河圖)를 지고 나왔다는 용마(龍馬)이다. 《王按集 益州夫子廟碑》 횡운골 천리마처럼 빨리 달리는 말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탔던 팔준마(八駿馬)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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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배율 五言排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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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주다 贈友人 매화와 국화는 진짜 도연명73)이요 梅菊眞元氣거문고와 책은 가짜 두보74)라네 琴書僞拾遺삼대 이래의 인물 초대하여 相邀三代下함께 오호75)의 물가에 앉았네 共坐五湖湄검법을 말하던 백원76) 죽어 說劍白猿死병법을 논하던 황석77)이 슬퍼하네 談兵黃石悲누가 은둔한 이내 신세 가련히 여길까 誰憐身在遯기구한 운수를 만나 절로 애석하구나 自惜數逢奇변화의 눈물78) 어찌 뿌리리 卞淚何堪洒제나라 피리79) 불지 않으리 齊竽不肯吹푸른 산에 병든 학이 살고 靑山棲病鶴푸른 풀에 풍리80)가 누워 있네 綠草臥風驪일천 척 소나무 우뚝한데 落落松千尺계수나무 한 가지 쓸쓸하네 蕭蕭桂一枝성스럽고 밝은 시대 유유자적하며 優游聖明代태평가를 부르고 읊네 歌咏太平辭어찌 바람 앞 사초81)이겠는가 豈是風前麝골짜기 속 지초 향 희미하네 依俙谷裡芝초가집에 밤 깊은데 茅齋夜深處이끼 낀 언덕에 달빛 잠겼네 苔塢月沈時양춘곡82)을 연주하려다 欲奏陽春曲도리어 맹호연83)의 가사를 읊었네 還題孟浩詞길이 먼 곳으로 떠난84) 자가 아니라면 能非長往者어찌 고요히 생각하지 않으리 寧不靜言思 梅菊眞元氣, 琴書僞拾遺.相邀三代下, 共坐五湖湄.說劍白猿死, 談兵黃石悲.誰憐身在遯, 自惜數逢奇.卞淚何堪洒, 齊竽不肯吹.靑山棲病鶴, 綠草臥風驪.落落松千尺, 蕭蕭桂一枝.優游聖明代, 歌咏太平辭.豈是風前麝, 依俙谷裡芝.茅齋夜深處, 苔塢月沈時.欲奏陽春曲, 還題孟浩詞.能非長往者, 寧不靜言思. 도연명 원문의 '원기(元氣)' 아래에 "아마도 '亮' 자의 오류인 듯하다.〔恐亮字之誤〕"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문맥에 맞게 '氣'를 '亮'으로 바꿔 번역하였다. 원량(元亮)은 도연명(陶淵明)의 자이다. 두보 원문의 '습유(杜拾遺)'는 당 현종(唐玄宗) 때 우습유(右拾遺)를 지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오호 옛날 월나라 지역의 호수이다. 백원 춘추 시대 월인(越人) 처녀가 월왕(越王)에게 검술을 가르치려고 길을 가던 도중에 '흰 원숭이〔白猿〕'가 변신한 원공(袁公)이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요청을 받고는 검술 시합을 하였는데, 원공이 그녀를 상대하다가 나무 위로 날아올라 다시 흰 원숭이로 몸을 바꿔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吳越春秋 卷9 句踐陰謀外傳》. 여기에서 유래하여 후대에 검술의 명인을 백원공(白猿公) 혹은 백원옹(白猿翁)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황석 진(秦)나라 말기의 은사(隱士)로 황석공(黃石公)을 말한다. 장량(張良)에게 치국(治國)의 대도(大道)와 병법(兵法)을 전수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소서(素書)》라 하며, 《삼략(三略)》 또한 그가 전한 책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다만 두 책의 내용이 서로 비슷한바, 태공의 《삼략(三略)》을 황석공이 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변화의 눈물 재능을 지니고도 세상에 쓰이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한 말이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 화씨(和氏) 즉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직경이 한 자나 되는 박옥을 얻어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 보고 돌이라 하여 두 발이 잘리고 말았다. 그 후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형산 아래서 박옥을 안고 사흘 밤낮을 울어 피눈물이 흘렀다. 문왕이 이 사실을 듣고 사람을 보내 "천하에 발이 잘린 사람이 많은데 그대만이 유독 이렇게 우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발이 잘린 것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보배로운 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미치광이라 하니, 이 때문에 제가 슬피 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옥공(玉工)을 시켜 박옥을 다듬게 하니, 직경이 한 자나 되고 티 한 점 없는 큰 옥이 나왔다 한다. 《韓非子 和氏》 제나라 피리 자격도 없는 사람이 허명(虛名)만 지니고서 자리에 끼어 있는 것을 말한다. 제 선왕(齊宣王)이 피리 연주를 좋아하여 항상 300인을 모아 합주(合奏)하게 하자, 남곽 처사(南郭處士)라는 사람이 그 자리에 슬쩍 끼어들어 국록을 타 먹곤 하였는데, 선왕이 죽고 민왕(湣王)이 즉위한 뒤에 한 사람씩 연주하게 하자 본색이 드러날까 겁낸 나머지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韓非子 內儲說上》 풍리 풍리는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주역》 팔괘(八卦)의 근원이 된 하도(河圖)를 지고 나왔다는 용마(龍馬)이다. 사초 사향초(麝香草)의 준말로 자술향(紫述香)의 별칭인데, 현인 군자의 아름다운 덕을 비유한다. 양춘곡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文)〉이란 글에 보이는 〈양춘백설가(陽春白雪歌)〉로, 지음(知音)의 노래를 뜻한다. 어떤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처음에 〈하리파인(下里巴人)〉이란 노래를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다음으로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다음으로 〈양춘백설가〉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던바 곡조가 더욱 높을수록 그에 화답하는 사람이 더욱 적었다 한다. 《文選 卷45》 맹호연 당나라의 시인으로, 양양(襄陽) 사람이기 때문에 맹양양(孟襄陽)이라고도 불린다. 고향 부근의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다 마흔에 진사과(進士科)에 응시했으나 실패한 뒤 평생 처사(處士)로 지냈다. 전원(田園)의 산수 경치와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의 심정을 묘사한 작품이 많다. 《新唐書 卷203 孟浩然列傳》 길이 먼 곳으로 떠난 원문의 '장왕(長往)'은 멀리 가서 영원토록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은사(隱士)들의 은거를 의미한다. 공치규(孔稚珪)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장왕했던 유인을 탄식한다.[或歎幽人長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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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경서문대 經鋤問對 시골 농사꾼은 세상의 일에 대해 알고 힘쓰는 것이 없어 손으로 호미 들고 김매고 농사지어서 어버이 모시는 계책으로 삼고 있다. 날마다 2, 3명의 일꾼을 데리고 동쪽 언덕 아래에서 농사일하느라 체력이 다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면 호미를 놓고 언덕에 올라가 즐겁게 옛 경(經)을 읽는다. 객이 방문하여 길게 읍하고 말하기를 "무의(巫醫)·악사(樂師)·재장(梓匠)·윤여(輪輿)는 천한 기술이지만 본디 밭 갈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하물며 옛 경을 다스리는 것 또한 밭 갈면서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농부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신지(莘摯)의 뢰(耒)37)와 원량(元亮)의 서(鉏)38)를 객 또한 들어보았는가?"라고 하니, "들어봤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기를 "사군자(士君子)가 마음을 세움에 마땅히 이윤(伊尹)을 뜻 삼아 궁(窮)하여도 또한 행하며 달(達)하여도 또한 행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끝내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도연명이 지킨 절개를 지키고 사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라고 하였다.객이 발끈하여 응대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말은 응결되어 있고 사납습니다. 이윤은 성인이요, 도연명은 현인입니다. 한쪽은 성인이고 다른 한쪽은 현인이지만 성인·현인을 자처하지 않았는데 더군다나 그대가 자처하겠습니까? 그대가 어려서 학문을 좋아했다고 하지만 나이 먹어 이룬 것이 없고 하나의 뜻도 세우지 못하고 많은 허물이 운집하였으며 궁하여도 굳게 지키지 못하고 한갓 사체(四體)의 부림을 받고 있는데도 어찌 그대가 높고 크게 뜻을 세워 행동이 미치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농부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고 저 사람이 옳지 않다. 그러나 곤(鯤)이 깃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를 갈 뜻이 있고,39) 대안(岱鴈)은 털이 없는데도 천 리를 번개처럼 날아갈 마음이 있으니 군자가 담대(膽大)함을 귀하게 여기고, 자중(自重)한 것은 진실로 이 도(道)를 지극히 원대하고 여기고, 이 임무를 지극히 중하게 여겨서이다. 용도(容刀)의 배로는 바다를 건너기 부족하고, 한 척의 칼을 뽑아서는 적을 제압할 수 없으므로 옛사람이 마음에 반드시 성인이 되기로 기약했던 것은 어째서이겠는가? 나와 성인은 처음에는 조금도 다름이 없지만 진실로 그 같음을 알아서 작은 차이도 없게 하면 나 또한 한 사람의 성인일 뿐이니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 비록 그렇지만 성인도 사람이니 사람이면서 사람을 배우면 사람이 각각 능하게 된다. 하늘에 대해서는 높고 위대함을 말로 형용할 수 없는데도 옛날 사람들이 하늘과 덕을 나란히 한자가 있다고 한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인의(仁義)일 뿐이니 그대의 말이 비루하여 자포자기에 빠진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객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습니다. 청컨대 그대의 농사짓는 즐거움을 묻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기를 "천지는 지극히 크고 만물은 지극히 많아도 도(道)가 그것들 사이에 깃든다. 천지는 부모요, 만물은 동포이니 달(達)하여 구제[濟]를 겸하는 것은 그 즐거움을 함께하는 것이요, 궁(竆)하여 검약[約]을 지킴은 함께 즐기는 것이 아니다. 나의 뜻이 나의 마음의 수고로움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천하와 그 도를 함께하는 것이요, 나의 뜻이 나의 힘의 수고로움을 행할 수 없는 것은 밭고랑 사이에서 그 분수를 스스로 즐기는 것이다. 봄에 밭 갈고 가을에 수확하는 것은 천시(天時)의 서권(舒捲)를 따르는 것이요, 행(行)을 즐기고 위(違)를 걱정하는 것은 도체(道軆)의 자연(自然)을 감당하는 것이다. 서쪽 들에서 일을 마치고 유연히 돌아오니 책상에는 책이 있어서 흔연히 함영(涵泳)하니 그 가운데에 천지가 있고 그 가운데에 만물이 있다. 부자(父子)가 갖추어져야 군신(君臣)이 갖추어지고 형제(兄弟)가 있어야 부부(夫婦)가 유별하게 된다. 희(羲)·농(農)·요(堯)·순(舜)이 호호희희(皡皡熙熙)40)하고, 공(孔)·맹(孟)·정(程)·주(朱)가 혼혼(混混)41)·원원(元元)하여 모두 거두어 함께 엮어서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니 일상생활 사이에 주옹(主翁)은 아마도 그 즐거움이 있지 않겠는가? 별안간 언덕을 지나 골짜기를 찾아서 나의 남쪽 밭을 돌보니 쭉정이가 자라지 않고 오곡이 잘 자라고 있다. 황충이 다 사라지고 때에 맞는 비가 내리니 시골의 백성과 늙은이가 모두 노래 부르고 흥얼거리고 읊조리고 손뼉 치면서 서로 얼싸안고 서로 읍하고 축하하여 한갓 덕색(德色)을 드러내고 발해(哱咳)를 드러내지 않으니, 말하고 웃는 즈음에 주옹은 아마도 그 즐거움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나의 농사짓는 즐거움이다."라고 하였다.객이 말하기를 "우리 그대의 즐거움은 이미 들었습니다. 청컨대 성인을 배우는 도를 듣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기를 "농부가 배움은 소를 채찍질하여 부지런히 밭을 가는 일뿐이다. 쟁기를 잡는 손은 실제로 리(理)를 탐구하는 손이 아니니 권농가를 부르는 입술이 어찌 도를 강론하는 입이겠는가? 성현(聖賢)의 모범(模範)이 책에 밝게 빛나 천년 만 년 빛이 해·달과 같을 것이니 진실로 바보가 아니면 누가 보고 아는 것이 불가능하겠는가? 비록 그러나 지극히 은미한 것은 드러나기 어렵고 지극히 위태로운 것은 타기[乘] 쉬우니 하나의 근본이 비록 같더라도 만 가지로 각각 달라지니42) 만 가지의 다름으로써 타기 쉬움의 위태로움에 골몰하면 동일한 하나의 근본이 더욱 은미해진다. 정주(程朱) 이후로 위아래 천년 백 년 동안 하나로 꿰뚫는 전통 위에서43) 공자·맹자를 접한 자를 아직 보지 못했다. 옷깃은 푸르고 소매는 노란 고준한 담론을 하는 자가 분분하게 함께 일어나 각각 논한 것이 달라서 대도(大道)를 잃어버렸다. 지금의 학자는 그 만 가지 다른 것을 하나로 하여 근본 하나에 함께 귀착시키고 그 지극히 위태로운 것을 눌러서 그 은미한 것을 드러내게 하니 그 요체는 치지(致知)·역행(力行)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치지(致知)의 잘못은 쉽게 박잡(博雜)한 데에 이르고 역행(力行)의 잘못은 쉽게 고루(固陋)한 데에 흐르는 것이니 박잡한 것은 구이(口耳)의 학문44)이 되고 고루한 것은 황로(黃老)의 학문45)이 된다. 이것이 이른바 '묘목을 심어놓고 김매지 않아 도리어 쭉정이만 자라고, 오동나무를 심고 가꾸지 않아 가시덤불이 되었다.'라는 것이다. 반드시 앎은 잡다한 것에 흐르지 않아야 하고, 행동은 누추한 곳에 흐르지 않아서 정일(精一)하고 택집(擇執)하고46) 먼저 박(博)하고 나중에 약(約)한 연후에 큰 근본이 세워져서 그 쓰임이 행해지게 되고 몸가짐이 약(約)하고 시행하는 것이 넓게 된다.47) 이것이 성인을 배우는 대강이다."라고 하였다.객이 말하기를 "어떻게 하여야 치지(致知)라고 할 만하며48) 어떻게 하여야 역행(力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기를 "만물·만사의 이치를 미루어 내 마음에서 이루는 것을 '치지(致知)'라고 하고, 이미 알아서 내 몸에서 행해지면 '역행(力行)'이라고 한다. 앎이 부진하면 마음이 넓지 못하여 막힌 것이 많게 되고 행동이 힘이 약하면 아는 것이 헛된 것을 갖추게 되어 무용하게 된다. 비록 그렇지만 이 마음이 경(敬)에서 먼저 세워지지 않으면 우리가 앎이 정일(精一)하고 택집(擇執)하지 못하여 잡다함에 흐르고, 우리의 행동이 굳게 지키지 못하여 누추한 데에 흐르게 된다.49) 이런 까닭에 군자는 거경(居敬)을 크게 여기고 궁리(竆理)를 귀하게 여겼다.50) 아! 후세에 한 무리의 선비가 성리(性理)를 고준하게 담론하고51) 고금(古今)을 달려가 말하여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수천 번 재잘거려 아침부터 하루를 다 하여도 아직 귀일한 자를 보지 못했으니 그가 큰 근본에 과연 세운 것이 있는가? 슬프도다!"라고 하였다.객이 말하기를 "세상의 군자는 학문(學問)·절의(節義)를 둘로 나누어 절의를 실제 행동으로 생각하고 학문을 귀히 여기지 않으니 이런 논의는 어떠한지요?"라고 하였다. 말하기를 "이런 논의가 바로 말세의 탄식이다. 중고(中古) 이전에 어찌 이런 논의가 있었겠는가? 대저 절의는 바로 학문 중에 하나의 일이니 만약 절의를 중하게 여긴다면 주공·공자는 백이(伯夷)만 못하고 육수부(陸秀夫)52)·문천상(文天祥)53)은 정주(程朱)보다 뛰어나겠지? 주공·공자가 백이에 대해서는 일지(一指)에서 견배(肩背)이고 육수부·문천상이 정주에 대해서는 근본(根本)에서 일지(一枝)이니 나란히 놓고 논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후세의 사람이 명(名)을 학문이라고 여기는 자가 있는데 군신의 큰 절의에 대해서도 도리어 범인의 아래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 때문에 말세의 논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객이 말하기를 "세상의 군자는 도를 행하는 것을 절의(節義)라고 생각하여 도를 행하지 않으면 절의가 아니라고 하는데 진실로 그러합니까?"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이것 또한 말세의 탄식이다. 중고(中古) 이전에 어찌 이런 논의가 있었겠는가? 옛날의 군자는 대본(大本)과 달도(達道)54)가 세워지지 않음을 걱정했지, 절의가 행해지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대본·달도가 이미 세워지면 절의는 논할 것이 못 된다. 만약 도를 행하는 것을 절의로 삼는다면 이부주소(伊傅周召)55) 등의 무리를 모두 절의의 선비라고 지목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독실하게 믿고 학문을 좋아한다.'56)라고 하였고, 또 '나라에 도가 없는데 부유하고 또 귀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57)라고 하였는데 이것으로써 본다면 비록 나라를 위해서 죽더라도 그 도를 선하게 하지 못하면 절의가 아니다. 비록 몸이 도덕적이라고 하더라도 도가 없는 세상에서 행해지지 않는 것을 또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사(時事)가 어떠한가를 헤아리지 못하면서 반드시 도를 행하는 것으로 뜻 삼고, 반드시 절의를 세우는 것을 뜻 삼고도 도의 선(善), 불선(不善)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 대본이 이미 잘못된 것이니 어찌 논할 것이 있겠는가? 자사(子思)는 '나라에 도가 행해질 때는 자기 뜻을 표현하여 나라에 보탬이 되게 해야 하겠지만,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침묵으로써 자신의 몸을 보전해야 할 것이다.'58)라고 하여 이미 명철(明哲)하게 그의 몸을 보존하였으니 사군자(士君子)의 도와 덕을 품은 자가 어찌 이 말로써 종신의 경계로 삼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객이 말하기를 "성현이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그 도가 같지 않으니 공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은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많았고, 증자는 명덕설(明德說)59)을 좇고, 자사는 성도설(性道說)을 좇고, 맹자는 항상 인의(仁義)를 말했습니다. 송(宋)의 선정신(先正臣)60)은 경(敬)을 위주로 했고, 횡거(橫渠)61)의 가르침은 예(禮)를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성인 문하에서 당(堂)에 올라간 자가62) 많게는 70명에 이르렀는데 성(性)과 천도(天道)는 오직 증자(曾子)·자공(子貢)만이 들을 수 있었고,63) 이미 대의(大意)를 보았던 증칠(曾漆)64) 이하는 참여하여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중용》·《대학》의 책은 근본을 맨 먼저 드러내어 미묘함을 드러내 밝혔고, 송나라의 선정신(先正臣)이 초학자를 가르치고 인도함에 반드시 본원(本源) 함양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성리(性理)를 담론하는 학문은 그 흐름의 폐단이 정문(程門)의 고학(高學)에서 점점 선불교에 흘러 들어가는 것이 태반이어서 강서(江西)의 학문65)은 머리를 치며 울부짖는 자가 현자의 뜻을 훼손하는 자가 많았습니다. 만약 고정(考亭) 선생66)이 백 가지 지류를 막아서 동쪽으로 흘러가게 하지 않았다면 어찌 천하에 유가의 의관을 몰아서 불교의 신자에 들어가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강호(江湖)의 이설을 다 제거하지는 못해서 천 년이나 폐단이 흘러 지금까지도 끊지를 못하였습니다. 명대의 학자가 많지 않은 것은 아닌데 옛길로 함께 향하여 붉은 깃발을 이미 세우고 상제가 곁에 있어도 몽매하여 높일 줄을 모릅니다. 지금의 학자가 만약 대로를 평이하게 걷고자 한다면 거의 한쪽으로 치우치는 폐단을 면할 것이니 무슨 도를 써야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농부가 머릴 긁적이며 용모를 고치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아! 우리 그대와 도를 말할 수 있겠구나. 옛날에 주공이 예를 제정하면서 문(文)으로 최상 삼았으니 빛나도다! 문(文)이여. 빈빈(彬彬)함을 상상할 수 있었는데67) 선배 야인(野人)에 미쳐서 그 혜택이 이미 끊어졌다. 후배 군자(君子)가 문(文)이 그 질(質)을 멸하여68) 무무(貿貿)69)하게 예악(禮樂)을 꾸미고 장식하여 옛 도가 이미 없어지자 이 때문에 공자께서 가르침을 설하고 먼저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따르게 하고 음탕한 음악과 간악한 예가 그치게 하여 귀와 눈으로 접하지 못하게 한 연후에 큰 근본이 세워질 수 있었다. 이른바 밖을 다스려서 그 가운데를 정성스럽게 하고자 한 것이므로 안자(顔子)가 우뚝 뜻을 세운 것이 극기(克己)70)·사물(四勿)71)의 뒤에 있었고 증자(曾子)의 일관충서(一貫忠恕)는 하루에 몸을 세 번 살핀 후에 있었다. 이것이 성인 문하의 가르침이니 마치 천지의 생물이 알맹이에서 움이 트고, 움이 터서 싹이 나고, 싹이 자라 가지가 되고, 가지에서 잎이 나고, 잎에서 꽃이 피고, 꽃에서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공자께서 이미 돌아가심에 미쳐서 문하의 제자들이 사방에 흩어져 각각 들은 것만을 높였으니 사문의 도가 밝지 않게 되었다. 증자(曾子)·자사(子思)가 깊이 걱정하고 염려하여 사도(師道)가 전해지지 못할까 고민하고, 구이(口耳)72)의 학문에 황홀(怳惚)해짐을 아파하여 이내 표준을 세워 본체(本體)를 직접 가르치는 것으로 발명(發明)하였으니 대개 부득이한 가르침이었다. 맹자의 법통은 대개 여기에서 얻어졌으나 선인(善人)과 신인(信人)의 사이에 위치하고, 미인(美人)·대인(大人)·성인(聖人)·신인(神人)의 아래 위치한 악정자 극(樂正子克)도73) 마침내 전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시서(詩書)는 열렬하게 불탄 나머지에 겨우 동자(董子)74)를 얻었고, 장구(章句)·문사(文辭) 가운데에서는 다행히 한공(韓公)75)이 있었는데 붓을 빼서 글자나 윤택하게 하여 한갓 조화(藻華)만을 숭상하다가 오계(五季)76)에 극에 이르렀다. 염락(濂洛)77)의 현인들이 천장(千丈)이나 우뚝 서서 한당(漢唐)을 굽어보고, 높고 오묘함을 다하여 위로는 공맹을 접하여 우리 도(道)의 소재를 깨닫고 큰 근본이 세워지지 않은 것을 개탄하였다. 이 때문에 후배를 장려하고 인솔하여 맨 먼저 하나의 근본을 세우고 만 가지 다른 것을 각각 바르게 하고 성(誠)·명(明) 둘을 끌어들여 내외(內外)를 교차하여 수양하였다. 자사·증자【한 편에서는 맹자】의 끊어진 학문이 여기에 이르러서 다시 이어졌으나 문인의 고제(高弟)가 일변에 떨어짐을 면치 못했으니 이것이 있구나! 유학의 도가 행해지기 어려움이여. 육씨(陸氏)의 형제78)가 어질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아호(鵝湖)에서 한 번 만난 것은79) 처음부터 끝까지 합당하지 않아서 마침내 천 년간 이 유가의 도에 큰 하자가 되었으니 주문공 선생의 걱정이 어찌 크지 않았겠는가?"라고 하였다.【삼가 이편을 지은 것을 고찰해보면 마땅히 갑오년(1654, 효종5) 사이인데 혹 내간(內艱)을 만나 마치지 못한 것인가? 이 아래는 생각건대, 틀림없이 동방(東方)과 관계될 터인데 도대체 선생의 깊은 뜻에 기대하는 것이 있어서 지연시킨 것인가? 당일에 선생님에게 질정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經鉏野夫。 於世上事。 無所識務。 手執鉏耰役。 以爲供親計。 一日携園丁二三。 從事於東臯之下。 力倦神疲。 舍鉏登隴。 快讀古經。 有客來過。 長揖而問曰: "巫醫樂師梓匠輪輿。 工之賤者也。 固不可耕且爲也。 况治繹古經。 亦可耕且爲歟?" 野夫笑曰: "莘摯之耒。 元亮之鉏。 客亦聞之歟?" 曰: "聞之矣。" 曰: "士君子立心。 當以尹爲志。 竆亦可行。 達亦可行矣。 倘終不遇。 以陶之所守爲守可也。" 客然應曰: "子之爲言。 癡且狷矣。 伊尹聖也。 淵明賢也。 旣聖且賢。 聖賢不居。 况吾子自居歟? 吾子少雖好學。 晩無所成。 一志未立。 衆咎蝟積。 竆未固守。 徒役四軆。 何子之立志太高而行之不逮耶?" 野夫菀爾對曰: "子言是哉? 夫夫非矣。 然鯤羽未成而有扶搖九萬之志。 岱鴈未毛而有掣電千里之心。 君子之所貴乎膽大而自重者。 誠以斯道至遠。 斯任至重。 容刀之舟。 不足以濟海。 經尺之挺。 未可以制敵。 故古人爲心。 必以聖人自期何者? 我與聖人。 初無小異。 苟知其同而使無小異。 我亦一聖人也。 吾何異哉? 雖然聖人人也。 人而學人。 人各能之。 至於天者。 巍巍惟大。 不可名狀。 而古之人。 有與天合德者。 其故何也? 仁義而已。 子之言。 無乃卑陋而流於自棄耶?" 客曰: "子之言然矣。 請問吾子經鉏之樂?" 曰: "天地至大。 萬物至衆。 而道寓於其間。 天地父母而萬物同胞也。 達而兼濟。 同其樂也。 同其樂也而守約。 不同樂也。 我志可行勞吾心。 與天下同其道也。 我志不可行勞吾力。 自樂其分於畎畝之間。 春耕秋穫。 順天時之舒捲。 樂行憂違。 任道軆之自然。 事畢西疇。 悠然而歸。 有書在床。 欣然涵泳。 其中有天地焉。 有萬物焉。 父子具而君臣備。 兄弟在而夫婦別。 羲農堯舜。 皡皡熙熙。 孔孟程朱。 混混元元。 具收幷集。 萃爲一家。 俯仰之間。 主翁其有樂乎? 俄而經邱尋壑。 睠我南畝。 稊秕未成而五穀克秋。 耗蝗遠蟄而時雨施澤。 村氓里老。 歌者謳者詠者抃者。 提携傴僂。 相揖而賀。 徒見德色。 未覩哱咳。 言笑之際。 主翁其有樂乎? 此吾經鉏之樂也。" 客曰: "吾子之樂。 旣聞命矣。 請聞學聖之道。" 曰: "農夫所學。 策牛勤耕而已。 把犁之拳。 實非探理之手。 農歌之唇。 豈是講道之口? 聖賢模範。 昭在方策。 千秋萬世。 炳若日月。 苟非昏盲。 孰不能見知? 雖然至微者難著而至危者易乘。 一本雖同而萬殊各異。 以萬殊之異。 汨易乘之危。 一本所同者。 微而又微。 程朱以來。 上下千百載。 未聞有以一貫之統上接鄒魯者。 領靑手黃。 高談者紛然並起。 各異所論而大道喪矣。 爲今之學者。 齊其萬殊者而同歸一本。 抑其至危者而使著其微。 其要不過致知力行而已。 然致知之失。 易流於博雜。 力行之失。 易流於固陋。 博雜者爲口耳之學。 固陋者爲黃老之學。 此所謂種苗不耔而反成莠。 樹梧不治而變成棘者也。 必也所知不流於雜。 所行不流於陋。 精一而擇執。 先博而後約。 然後大本立而其用行矣。 所操約而所施博矣。 此學聖之大槩也。" 客曰: "如何斯可謂之致知。 如何斯可謂之力行?" 曰: "萬物萬事之理。 推而致之吾心曰'致知'。 旣知而行之吾身曰'力行'。 知不盡則心不廣而多滯矣。 行不力則所知者爲虛具而爲無用矣。 雖然此心未能先立乎敬。 則吾之所知。 未能精擇而流於雜。 吾之所行。 未能固守而流於陋。 是故君子大居敬而貴竆理矣。 嗚呼! 後世有一種士子。 高談性理。 驟語古今。 對人談說。 喋喋累千而竟朝盡日。 未見歸宿者。 其於大本。 果有所立乎? 悲夫!" 客曰: "世之君子。 有以學問節義。 歧而爲二。 以節義爲實行。 學問爲不足貴。 此論何如?" 曰: "此論乃衰世之嘆也。 中古以上。 豈有此論哉? 大抵節義。 乃學問中一事。 若以節義爲重。 周公孔子不如伯夷。 秀夫天祥過於程朱耶? 周公孔子之於伯夷。 肩背之於一指。 秀夫天祥之於程朱。 一枝之於根本。 比而論之可乎? 後世之人。 有名爲學問。 而至於君臣大節。 反出凡人之下者。 故曰'衰世之論也'。" 客曰: "世之君子。 有以行道爲節義。 不能行道。 爲非節義。 誠然耶?" 曰: "是亦衰世之嘆也。 中古以上。 豈有此論哉? 古之君子。 以大本達道之不立爲憂。 而不憂節義之不行。 大本達道旣立則節義非所論也。 若以行道爲節義則伊傅周召之徒。 皆可目之曰'節義之士'耶? 孔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又曰: '邦無道富且貴焉恥也。' 以此見之。 雖死於國。 不能善其道則非節義也。 雖身抱道德。 不行於無道之世。 亦可見矣。 不度時事之如何。 而必以行道爲志。 必以立節爲意。 而不顧是道之善不善。 其大本旣誤矣。 何足論歟? 子思曰: '邦有道。 其言足以興。 邦無道。 其默足以容'。 旣明且哲。 以保其身。 士君子抱道懷德者。 盍以此言爲終身戒哉?" 客曰: "聖賢敎人。 其道不同。 孔子敎人。 多從日用行事上。 曾子從明德說。 子思從性道說。 孟子常說仁義。 宋之先正以敬爲主。 橫渠之敎以禮爲先。 聖門升堂者。 多至七十。 而性與天道。 惟曾子子貢得聞。 己見大意之曾漆以下。 不得預聞。 自庸學之書首闡根本。 發明微妙。 宋之先正敎導初學。 必以涵養本源爲先。 談說性理爲學。 其流之弊。 程門高學漸流禪佛者太半。 而江西之學拍頭叫喚者。 多損賢者之志。 若非考亭夫子障百川而東之。 豈不庶驅天下之衣冠。 盡入天竺之卒徒乎? 雖然江湖異說。 不能盡去。 而流弊千年。 訖今未斬。 皇明學者不爲不多。 而並鄕故路。 赤幟已竪。 帝在旁州。 蒙不知尊。 今之學者。 若欲平步大路。 庶免偏重之弊。 用何道而可耶?" 野夫點頭改容而對曰: "嗟乎! 吾子可與語道矣。 昔者周公制禮。 以文爲上。 郁郁文哉! 彬彬可象。 及其先進野人。 其澤已斬。 後進君子。 文滅其質。 貿貿焉粉飾禮樂。 古道已去。 是以夫子設敎。 先從視聽言動。 止淫樂慝禮。 使不接耳目。 然後大本可立。 所謂制乎外。 所以誠其中也。 故顔子之卓然有立。 在於克己四勿之後。 曾子之一貫忠恕。 在於日三省身之後。 此聖門之敎。 如天地生物。 勾而萌萌而苗苗而枝枝而葉葉而花花而實者也。 及夫子旣沒。 門弟子散在四方。 各尊所聞而斯道不明。 曾子子思深憂且慮。 悶師道之無傳。 痛口耳之怳惚。 乃立準的。 直指本體以發明之。 盖不得已之敎也。 孟子之統。 盖得乎此。 而二中四下之克。 竟未聞有傳而不絶。 豈不惜哉? 詩書烈焰之餘。 僅得董子。 章句文辭之中。 幸有韓公。 而抽毫潤墨。 徒尙藻華而極乎五季矣。 濂洛羣賢。 特立千丈而俯視漢唐。 極盡高妙而上接鄒魯。 覺吾道之所在。 慨大本之未立。 是以奬率後進。 首以一本先立而萬殊各正。 誠明兩進而內外交養。 思曾【一作孟】絶學。 至此復續。 然門人高弟往往未免落於一邊。 有是乎! 斯道之難行也。 陸氏兄弟。 非不賢矣。 鵝湖一會。 終始不合。 竟爲千秋斯道之大疵。 文公夫子之憂。 豈不大乎?"【謹按此篇之作。 當在甲午年間。 或以丁內艱而未畢耶? 此下想必係之以東方。 抑先生深意有所待而遲回耶? 恨不就質於當日函丈也。】 신지(莘摯)의 뢰(耒) 신지는 이윤을 말한다. 신(莘)은 이윤이 농사짓고 살던 신야(莘野)이며 지(摯)는 이윤(伊尹)의 이름으로, 이윤이 유신의 들판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원량(元亮)의 서(鉏) 원량은 도잠(陶潛, 365~427)의 자이다. 도잠의 또 다른 자는 연명(淵明)이며 시호는 정절이다. 팽택의 현령(縣令)이 되었으나, 80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전원으로 돌아와 문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곤(鯤)이 …… 있고 곤(鯤)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다. 《장자》 〈소요유〉에,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은 곤이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인지 모른다. 변화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은 붕이다. 붕의 등짝은 몇 천 리인지 모른다. 기운차게 떨쳐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쪽 끝의 검푸른 바다로 날아가려고 한다. 남쪽 바다란 하늘의 못이다.[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라고 하였다. 호호희희(皡皡熙熙) 화락(和樂)하고 자득(自得)한 모양을 말하는데, 전하여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성왕의 백성은 호호한 듯하느니라.[王者之民, 皥皥如也.]"라고 하였고, 《노자(老子)》 제20장에 "세속의 중인들 희희낙락하여, 마치 푸짐한 잔칫상을 받은 듯, 봄날의 누대에 오른 듯하네.[衆人熙熙, 如享太牢, 如登春臺.]"라고 하였다. 혼혼(混混) 혼혼은 근원이 있는 물을 말한다. 공자가 자주 물을 일컬은 뜻을 두고 무슨 뜻을 취한 것인가에 대한 서자(徐子)의 질문에 대해 맹자가 말하기를, "근원이 있는 물이 용솟음쳐서 밤낮을 쉬지 않아 구덩이에 찬 후에 나아가 바다에 이르니 근본이 있는 것이 이와 같은지라 이것을 취한 것이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라고 한 말이 있다. 《孟子 離婁下》 하나의 …… 달라지니 이일분수(理一分殊)를 설명하는 말로 이치는 한가지이지만 현상은 다르다는 의미이다. 우주의 근원은 유일(唯一)의 이치인데, 그것이 천만 가지 현상으로 분리되어 각각 다른 만물의 형태로 나타난다. 바꾸어 말하면 수많은 사물이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그 원리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에서 천 개의 달로 떠오르는 것은 하나의 이(理)를 수많은 존재들이 나눠 갖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천 개의 강마다 흐리거나 탁한 서로 다른 차이 때문에 하나의 달은 천 개의 강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나로 …… 위에서 일이관지(一以貫之)를 의미하는 말로, 공자가 제자 증삼(曾參)을 불러서 "나의 도는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일을 꿰뚫고 있다.[吾道一以貫之]"라고 하자, 증삼이 "예, 그렇습니다. [唯]"라고 곧장 대답하고는, 다른 문인에게 "부자의 도는 바로 충서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설명해 준 내용이 《논어》 〈이인(里仁)〉에 나온다. 구이(口耳)의 학문 귀로 듣고 입으로 곧장 내놓는다는 뜻으로, 되새김질해서 소화하려고는 하지 않고 얼른 밖으로 드러내어 과시하는 것을 말한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의 "소인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귀로 듣고는 곧바로 입으로 내놓는다. 입과 귀의 거리는 불과 네 치일 따름이니, 일곱 자나 되는 이 몸을 어떻게 아름답게 할 수가 있겠는가.[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口耳之間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哉?]"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황로(黃老)의 학문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학문으로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때 발전하였다. 도가(道家)의 학설을 가리킨다. 신불해(申不害)·한비(韓非)는 법가(法家) 사상가로, 《사기(史記)》에 "신자(申子)의 학문은 황로(黃老)에 근본을 두고 형명(刑名)을 주로 한다."라고 하였고, 《사기》의 색은(索隱)에 "황로는 번화한 것을 싫어하는데, 간솔(簡率) 무위(無爲)하면 군신(君臣)이 저절로 바르게 된다. 한비는 부박한 것을 배격하고 법제(法制)는 사(私)가 없는 것이니 명실이 상부한다. 그러므로 황로로 귀결된다."라고 하였다. 《사기(史記)》 권63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제3. 정일(精一)하고 택집(擇執)하고 정일집중(精一執中)을 말하는 것으로, 정일집중은 순(舜) 임금이 우(禹) 임금에게 제위(帝位)를 물려주면서 말한 '유정유일(惟精惟一) 윤집궐중(允執厥中)'을 줄인 말로,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中道)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하였다. 먼저 ‥‥ 된다 박문약례(博文約禮)를 설명하는 구절로, 스승에게 배워 식견을 넓히고, 그 지(知)를 예(禮)로 요약하여 행(行)으로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안연(顔淵)이 스승인 공자의 도에 대해서 감탄하며 술회한 뒤에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이끌어 주시면서, 학문으로 나의 지식을 넓혀 주시고 예법으로써 나의 행동을 단속하게 해 주셨다.[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라는 내용이 《논어》 〈자한(子罕)〉에 보인다. 어떻게 ‥‥ 만하며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설명한 구절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지극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대학장구》 경 1장에 "그 뜻을 성실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지식을 지극히 하였으니, 지식을 지극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라고 하였다. 마음이 …… 된다 '경'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고, '의'는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 이 두 가지는 성리학자들의 중요한 수행 방법에 속하는 것들이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에 "군자가 경으로 안을 곧게 하고 의로 밖을 방정하게 하여, 경과 의가 확립되면 덕이 외롭지 않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라고 하였다. 참고로 명도(明道) 정호(程顥)는 "경과 의를 서로 잡아 지키면 곧바로 올라가 천덕을 통달함이 이로부터 시작된다.[敬義夾持, 直上達天德, 自此.]"라고 하였다. 《近思錄 권2 爲學》 거경을 …… 여겼다 거경궁리(居敬窮理)를 설명하고 있다. 거경궁리는 정주학(程朱學)의 학문 수양 방법으로 '거경'은 내적 수양 방법을 가리키는 말로 《논어》 〈옹야(雍也)〉에 처음 보인다. 경(敬)이란 인간에게 품부(稟賦)된 천명(天命)으로서의 선성(善性)이 순수하고 곧게 발할 수 있도록 성(性)에 영향을 주는 의식 작용을 미연에 없애버리는 수양법을 말한다. 이것은 조용히 앉아서 모든 잡념을 끊어버리는 정좌(靜坐)의 방법을 쓰거나, 한 가지 일만을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방법을 많이 활용한다. '궁리'는 외적 수양 방법을 가리키는 말로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처음 보이는데, 인간에게 품부된 천명으로서의 선성이 이미 욕심의 영향을 받아 굴절되려고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순수하고 곧게 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적극 노력하는 수양법으로, 격물(格物)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말한다. 후세에 …… 담론하고 육왕학(陸王學)을 가리킨다. 육왕학은 주희(朱熹)의 이학(理學)에 반대하여 심학(心學)을 제창한 송(宋) 나라 육상산(陸象山)의 학문과 이를 계승하여 양명학(陽明學)으로 집대성한 명(明) 나라 왕수인(王守仁)의 학문을 병칭하는 학술 용어이다. 육수부(陸秀夫) 1236~1279. 남송 말기 충신으로, 자는 군실(君實)이다. 육수부(陸秀夫)는 송(宋)나라 말엽의 충신이다. 육수부(陸秀夫)는 송나라가 원(元)나라에 의해 패망하자, 복주(福州)에서 익왕(益王)을 세우고 단명전 학사(端明殿學士)가 되었으며, 익왕이 죽자 다시 위왕(衛王)을 세우고 좌승상(左丞相)이 되었는데, 원나라 군사가 송의 최후 보루(堡壘)이던 애산(厓山)을 격파하자,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는 칼을 들고 처자를 바다에 빠져 죽게 한 다음 곧 위왕을 등에 업고 함께 바다에 빠져 죽었다. 《宋史 권451 陸秀夫列傳》 문천상(文天祥) 1236~1283. 중국 남송(南宋) 말기의 재상으로, 자는 송서(宋瑞) 혹은 이선(履善)이며 호는 문산(文山)이다. 1256년(이종4) 진사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아간 후 원(元)나라에 대하여 시종 강경책을 주장하고 천도(遷都)를 반대하여 면직되기까지 하였다. 1275년(공종1) 원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당시 우승상이었던 문천상은 가산(家産)을 내어 의용군을 조직, 임안(臨安)을 지켰다. 다음 해에 공종(恭宗)의 명을 받아 원나라에 강화를 청하러 갔으나 포로가 되었고 겨우 탈출하여 돌아왔다. 원나라 세조(世祖)가 벼슬하기를 간절히 권하였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으며, 옥중에서 지은 장시(長詩) 〈정기가(正氣歌)〉를 부른 후 연산의 시시(柴市)에서 처형당하였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며, 저서에 《문산전집(文山全集)》이 있다. 《宋史 권418 文天祥列傳》 대본(大本)과 달도(達道) 대본은 하늘이 명한 성(性)을 말한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 "희로애락이 미발한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발해서 다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하니, 중은 천하의 대본이요, 화는 천하의 달도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라고 하였다. 주희는 이 구절에 대해 주석하기를 "대본은 하늘이 명한 성이니, 천하의 이치는 모두 여기에서 나오니 도의 체이다. 달도는 성을 따름을 말하니, 천하와 고금에 함께 행하는 것으로 도의 용이다.[大本者, 天命之性, 天下之理, 皆由此出, 道之體也. 達道者, 循性之謂, 天下古今之所共由, 道之用也.]"라고 하였다. 이부주소(伊傅周召) 이는 은탕(殷湯)의 현상(賢相) 이윤(伊尹), 부는 은 고종(殷高宗)의 현상 부열(傅說), 주는 주실(周室)의 기초를 세우고 예악 제도(禮樂制度)를 제정한 주공(周公), 소는 주공과 함께 주실을 일으킨 소공(召公)을 가리킨다. 독실하게 …… 좋아한다 《논어》 〈태백(泰伯)〉에, "독실하게 믿으면서 배우기를 좋아해야 한다. [篤信好學]"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나라에 …… 것이다 《논어》 〈태백(泰伯)〉에, "돈독하게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목숨을 걸고 착한 도를 지켜라.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문란한 나라에는 살지 않으며, 세상에 도리가 있으면 나아가 벼슬을 하고, 도리가 없으면 물러나 숨어야 한다. 나라에 도가 있는데 가난하고 비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리가 없는데 부귀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耻也, 邦無道, 富且貴焉, 耻也.]"라는 말이 나온다. 나라에 …… 것이다 자사(子思)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7장에 "나라에 도가 행해질 때에는 자신의 뜻을 표현하여 나라에 보탬이 되게 해야 하겠지만,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에는 침묵으로써 자신의 몸을 보전해야 할 것이다. 《시경》에 '현명한데다가 사려가 깊어서 자기 몸을 보전한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한 것이다.[國有道, 其言足以興, 國無道, 其默足以容. 詩曰: '旣明且哲, 以保其身,' 其此之謂與.]"라는 말이 나온다. 명덕설(明德說) 《대학장구》에 나오는 "〈강고(康誥)〉에 '능히 덕을 밝힌다.'라고 하였고 〈태갑(太甲)〉에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본다.'라고 하였고 〈제전(帝典)〉에 '능히 큰 덕을 밝힌다.'라고 하였으니, 모두 스스로 밝힌 것이다.[康誥曰: "克明德." 太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라고 한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선정신(先正臣) 고인이 된 바른 신하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주희를 가리킨다. 횡거(橫渠) 북송의 학자 장재(張載, 1020~1077)로, 자는 자후(子厚), 시호는 헌공(獻公)이다. 횡거(橫渠)는 그의 호이다. 저서에 《정몽(正蒙)》, 《장자전서(張子全書)》 등이 있다. 성인 …… 자가 단계적으로 학문의 심오한 경지에 들어갔다는 말이다. 《논어》 〈선진(先進)〉에 "자로(子路)는 마루에는 올랐으나 아직 방에는 들어오지 못했다.[由也, 升堂矣, 未入於室也.]"라고 하였다 자공(子貢)만이 …… 있었고 《논어》 〈공야장(公冶長)〉에서 자공이 "부자의 문장은 들을 수 있었지만, 부자께서 성과 천도를 말씀하시는 것은 들을 수 없었다.[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라고 한 데 대해, 주희가 주석에서 "성인의 문하에서는 가르침이 등급을 뛰어넘지 않기에, 자공이 이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공자에게 성과 천도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 그 훌륭함에 감탄한 것이다.[蓋聖門敎不躐等, 子貢至是, 始得聞之而歎其美也.]"라고 하였다. 증칠(曾漆) 공자의 제자 증자와 칠조개(漆雕開)를 병칭한 말이다. 공자가 칠조개에게 벼슬을 권했을 때 "저는 아직 벼슬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吾斯之未能信]"라고 대답하자, 공자가 기뻐했다는 말이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나온다. 강서(江西)의 학문(學問) 송(宋) 나라의 육구연(陸九淵, 1139~1193)의 학문을 말한다. 그가 강서의 금계(金溪)에서 출생했으므로 그의 학술을 강서학파라고 한다. 육구연의 자는 자정(子靜), 호는 상산(象山)이다. 중국 남송(南宋)의 철학자로, 끊임없는 탐구와 연구를 강조한 주희(朱熹)와 달리 내면의 성찰과 자습(自習)을 중시하였다. 사람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선하여 그 선이 물욕으로 더럽혀지고 소멸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노력에 의해 다시 생성, 발전시킬 수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도(道)의 가장 높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사상을 심학(心學)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육구연의 사상은 3세기 이후 명나라의 성리학자 왕양명(王陽明)에 의해 완성되었고, 따라서 이들을 통틀어 육왕학파(陸王學派)라고 불러 정주학파(程朱學派)와 구별하였다. 고정(考亭) 선생 고정은 남송의 철학자 주희(朱熹, 1130~1200)의 호이다. 원래는 지명으로 지금의 건양시(建陽市)이다. 주희가 63세 때인 1192년 6월에 이곳에 고정서원(考定書院)을 짓고 강학하였기 때문에 주자를 고정 선생이라고도 불렀다. 이를 기반으로 고정학파(考亭學派)가 형성되었는데, 뒤에 이를 존숭하여 민학(閩學)으로 부르게 되었다. 빈빈(彬彬)함을 …… 있었는데 문질빈빈(文質彬彬)을 설명한 말로 문채와 본바탕이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잘 조화된 군자라는 말이다. 문(文)이 …… 멸하여 《논어》 〈옹야(雍也)〉에 "바탕이 문채보다 지나치면 촌스럽게 되고, 문채가 바탕보다 지나치면 겉치레에 흐르게 되나니, 문채와 바탕이 조화를 이룬 뒤에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무무(貿貿) 무식하고 뒤떨어짐이다. 극기(克己) 자기의 사욕을 이기는 것을 말한다.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해서 묻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자기의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가는 것이 인을 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가면 천하가 인을 허여할 것이다. 인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 있겠는가?[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라고 하였다. 《論語集註 顔淵》 사물(四勿) 네 가지 하지 말라는 것으로,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조목을 묻자,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하였는데, 이를 가리킨다. 구이(口耳) 구이지학(口耳之學)의 준말로, 천박한 공부를 뜻한다. 선인(善人)과 …… 악정자 극(樂正子克)도 맹자는 자신의 제자 악정자(樂正子)를 평해서 선인(善人)과 신인(信人)의 사이에 위치하고, 미인(美人)·대인(大人)·성인(聖人)·신인(神人)의 아래에 위치한다고 하였다. 《孟子 盡心下》 동자(董子) 한대(漢代)의 학자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104)로, 서한의 사상가, 금문경학(今文經學)의 대가이다. 《춘추(春秋)》의 연구에 전력을 기울였고 《공양전(公羊傳)》을 정밀하게 연구했다. 경제 때 박사가 되었고 무제 때 현량문학지사(賢良文學之士)가 되어 강도왕(江都王)의 재상이 되었다. 후에 교서왕(膠西王)의 재상이 되었으나 얼마 안 있어 병을 이유로 관직을 그만두고 집에서 수학하며 저술하였다. 조정에 큰일이 있으면 늘 사람을 보내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 지금 전하는 그의 저술로는 《춘추번로(春秋繁露)》가 있다. 한공(韓公) 당나라 한유를 가리킨다. 오계(五季) 오대(五代)라고도 하며, 중국 역사상 가장 분열이 심하고 왕조의 교체가 짧은 기간에 자주 일어난 시기로 당(唐)나라가 망하고 송(宋)나라가 들어서기 이전의 약 50년간의 시대를 말한다. 이 시기의 왕조로는 후량(後梁, 907~923), 후당(後唐, 923~936), 후진(後晉, 936~946), 후한(後漢, 946~950), 후주(後周, 950~959)가 있다. 염락(濂洛)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頥), 낙양(洛陽)의 정호(程顥)·정이(程頥) 형제를 가리키지만, 통상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준말로,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희(朱熹) 등 송대(宋代)의 성리학자들을 함께 지칭한다. 육씨(陸氏)의 형제 송나라 육구령(陸九齡, 1132~1180)·육구연(陸九淵, 1139~1193) 형제를 가리킨다. 아호(鵝湖)에서 …… 것은 아호는 중국 강서성(江西省) 신주(信州) 연산현(鉛山縣)에 있는 산으로, 1175년 여조겸(呂祖謙)의 주선으로 주희와 육구령(陸九齡), 육구연(陸九淵) 형제가 이 산의 아호사(鵝湖寺)에 모여 논쟁을 펼친 바 있다. 논쟁의 핵심은 학문하는 방법에 있어서 주희는 성현의 책을 널리 공부한 뒤에 요약하기를 주장하고, 육씨 형제는 사람의 본심을 발명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를 주장한 것인데, 주희는 육씨에 대하여 '태간(太簡)'이라 비판하고, 육씨는 주희에 대하여 '지리(支離)'라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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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완물편【선생의 나이 스물두 세 살에 독서할 때 쓴 일기이다.】 玩物篇【先生年二十二三。 讀書時日記。】 내가 일찍이 《일두정선생실록(一蠹80)鄭先生實錄)》을 읽어보니 "《주자중용 장구(朱子中庸章句)》에 나온 기(氣)로써 형(形)을 이루면 리(理) 또한 그곳에 품부가 된다.'라는 말을 취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어찌 기 뒤에 리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나는 '일두(一蠹)는 리기(理氣)는 알았는데 주자의 본의를 알지 못했다.'라고 생각했다. 주자가 말하기를 "본원(本原)을 논한다면 리(理)가 있고 난 뒤에 기가 있게 되지만 품부(稟賦)를 논한다면 이 기가 있고 난 후에 리가 따라서 갖추어진다."81)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주자의 본의이다. 일두의 견해는 아마도 일변에 치우친 것 같으니 학자가 알지 않으면 안 된다.또 말하기를 "비유하면 리(理)는 물과 같고 기(氣)는 기(器)와 같으니 이 기가 없으면 이 리가 붙을 곳이 없어진다."라고 하였다. 만약 이 기(器)가 없다면 이 물은 흩어져서 있지 않을 것이므로 주자가 먼저 기를 말한 이후에 리를 말했다.혹 미발(未發)과 기발(旣發)82)을 의심하여 말하기를 "성낼 때를 당하여는 기쁨의 리(理)가 미발(未發)하고 슬플 때를 당하여는 즐거움의 리가 미발하니 칠정(七情)이 서로 교대로 삼가 발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꼭 이처럼 말할 필요는 없다. 사려(思慮)가 아직 발하지 않은 곳은 미발이 되고 이미 발한 곳은 기발이 되니 이 마음이 잠깐 발동한 것이 있으면 곧 미발이 아니다. 그 가운데에 4개의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상호 발동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嘗讀一蠹鄭先生實錄。 有曰: "不取朱子中庸章句氣以成形理亦賦焉。" 曰: "安有後氣之理乎云云?" 余謂'一蠹知理氣而不知朱子本意也。' 朱子曰: "若論本原則有理然後有氣。 若論稟賦則有是氣而後理隨而具。" 此朱子本意也。 一蠹之見。 恐偏於一邊耳。 學者不可不知。 又曰: "理譬如水。 氣譬如器。 無是氣則是理無着在處。" 如無是器則是水散解而無有矣。 故朱子先言氣而後言理。或疑未發旣發曰: "當怒之時。 喜之理未發。 哀之時。 樂之理未發。 七情互相伏發否?" 余曰: "不須如此說。 思慮未動處爲未發。 旣動處爲旣發。 此心乍有發動處。 便不是未發。 非有四箇心在於其中。 互相發動。" 일두(一蠹) 일두는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호이다. 정여창은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욱(伯勗), 시호는 문헌이다. 김굉필(金宏弼)과 함께 김종직(金宗直)에게 수학하였다. 저술로는 7권의 《일두집》이 있다. 리(理)가 …… 갖추어진다 이선기후(理先氣後)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 〈이기 상(理氣上) 태극천지 상(太極天地上)〉에서 "이와 기는 본래 선후로 표현할 수 없다. 다만 논리적으로 추론할 때 이가 먼저이고 기가 나중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理與氣本無先後之可言, 但推上去時, 却如理在先, 氣在後相似.]"라고 하였다. 미발(未發)과 기발(旣發) 모든 행위를 미발(未發)의 체(體)와 이발(已發)의 용(用)으로 규정한 주희(朱熹)의 학설로, '미발의 성[未發之性]'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정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가리키고, '이발의 정[已發之情]'은 희로애락이 발한 것을 가리킨다. 《중용장구》 제1장에 "희로애락이 발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이른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희의 주에 "희로애락은 정(情)이고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은 성(性)이니 편벽되고 치우친 바가 없으므로 중이라 이르며, 발함에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은 정의 올바름이니 어그러지는 바가 없으므로 화라 이른다.[喜怒哀樂, 情也, 其未發, 則性也, 無所偏倚, 故謂之中, 發皆中節, 情之正也. 無所乖戾, 故謂之和.]"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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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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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태극도 人具太極圖 살펴보면 마음에는 태극(太極)83)이 있고 또한 음양동정(陰陽動靜)의 리(理)가 있다. 정(靜)한 것은 형(形)이 생(生)한 것이고 동(動)한 것은 신(神)이 발(發)한 것이니 바야흐로 그 동정(動靜)이 미형(未形)에 그 리(理)가 이미 갖추어지니 이것을 일러 '태극(太極)'이라고 한다. 한 번 동(動)하고 한 번 정(靜)하는데 미쳐서는 서로 근본이 되니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이 그곳에 갖추어진다. 인의예지의 성이 갖추어지면 인의예지의 단(端)이 그곳에서 발하게 된다. 사단(四端)이 발하여 선악이 나누어져서 만 가지 일이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복희(伏羲)·요순(堯舜) 이후 공맹(孔孟) 이전에 서로 전하고 서로 주고받은 심법(心法)이니 그 말이 성인의 경(經)과 현인의 전(傳) 가운데에 자세히 갖추어 실려 있다.맹씨 이후에는 정확하게 발하여 전하는 자가 없어서 천년의 뒤에는 오직 염계(濂溪) 선생만이 《역전(易傳)》 중에서 태극(太極) 두 글자를 얻어 그려서 도(圖)를 만들고 발(發)하여 설(說)을 지어84) 우리 도의 일관된 목적으로 삼았다. 우리 자양선생(紫陽先生)에 미쳐서 그 도(圖)와 그 설(說)이 또 크게 펼쳐지고 분명하게 드러나85) 삼재(三才)의 일리(一理)가 서로 합한 것이 마치 부절(符節)이 서로 들어맞는 것 같았으니 아!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주자(周子)가 편찬한 〈자양석전조절(紫陽釋傳條節)〉을 줍고 모아서 개인적으로 〈인구태극도(人具太極圖)〉를 지어 자성(自省)의 도구로 갖추어놓았으니 내가 망령된 것이 아니라 자양 주자의 뜻이다.또 살펴보건대 희(羲)·우(禹)의 도서오수(圖書五數)86)의 중(中), 요(堯)·순(舜)의 인심도심(人心道心)의 기미(幾微),87)문(文)·무(武)·주공(周公)의 건중건극(建中建極)의 묘(妙),88) 공자(孔子)의 역유태극(易有太極)·오도일관(吾道一貫)의 리(理),89) 자사(子思)의 계신공구(戒愼恐懼)90)의 전(前), 증자(曾子)의 명덕(明德)91)의 처음, 맹자(孟子)의 본선지성(本善之性)92)은 이른바 동정(動靜)이 아직 형태가 없어도 그 리(理)가 이미 갖추어진 때라는 것이다. 희·우의 오승십지후(五乘十之後), 요·순의 유정유일지시(惟精惟一之時),93)문·무·주공의 경의상승지제(敬義相勝之際), 공자의 시생양의지발(是生兩儀之發), 증자의 명명덕지지선지후(明明德止至善之後), 자사의 은미근독지중(隱微謹獨之中), 맹자의 인유사단지설(人有四端之說)은 이른바 동정이 서로 뿌리가 되어 사덕(四德)·사단(四端)에 갖추어져 발한 것이다. 여기서 그 일체(一軆)·일용(一用)은 비록 동정(動靜)의 다름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체가 세워져야만 용이 쓰임이 있게 되니 그 실제는 일본(一本)일 뿐이다.한 번 동정하여 서로 시작이 되고 끝이 되는 것은 경(敬)일 뿐이다. 또 오성(五性)의 차례는 본도(本圖)의 오행(五行) 차례와 다른 것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형(形)은 음(陰)이 하는 것이고, 신(神)은 양이 발한 것이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중(中)이다', '인(仁)이다.'라고 하는 것이 이른바 양이고 '정(正)이다', '의(義)이다.'라고 하는 것이 이른바 음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인례(仁禮)를 왼쪽에 두고 의(義)를 오른쪽에 두었는데 인(仁)은 사성(四性)의 처음이기 때문에 왼쪽의 머리에 두고, 의(義)는 인의 상대이기 때문에 오른쪽의 위에 두는 것이니 스스로 천착한 것이 아니다. 계신공구(戒愼恐懼)의 전에는 태극(太極)의 체(軆)를 볼 수 있고, 발하여 중절(中節)한 때에는 태극의 용(用)을 볼 수 있다. 진묘(眞妙)의 정(精)을 체득하는 것은 마땅히 야기(夜氣)가 깨끗한 아침에 얻을 수 있다. 按心有太極。 亦有陰陽動靜之理。 靜者形之生。 動者神之發。 方其動靜未形。 其理已具。 是謂太極。 及其一動一靜。 互相爲根。 則仁義禮智之性具焉。 仁義禮智之性具則仁義禮智之端發焉。 四端發而善惡分萬事出矣。 此乃伏羲堯舜以下。 孔孟以前。 相傳相受之心法。 其言具載於聖經賢傳之中。 孟氏以後。 無有的發而傳之者。 千載之下。 惟有濂溪夫子得太極二字於易傳之中。 畫而爲圖。 發而作說。 爲吾道一貫之的。 及我紫陽老先生而其圖其說。 又大暢明較著。 而三才一理之相合。 若符節之相契。 嗚呼! 無以加矣。 謹掇拾周子洎紫陽釋傳條節。 私作人具太極圖。 以備自省之具。 非愚之妄。 紫陽之意也。 又按羲禹圖書五數之中。 堯舜人心道心之幾。 文武周公建中建極之妙。 孔子易有太極吾道一貫之理。 子思戒謹恐懼之前。 曾子明德之初。 孟子本善之性。 乃所謂動靜未形。 其理已具之時也。 羲禹以五乘十之後。 堯舜惟精惟一之時。 文武周公敬義相勝之際。 孔生是生兩儀之發。 曾子明明德止至善之後。 子思隱微謹獨之中。 孟子人有四端之說。 乃所謂動靜相根。 四德具四端發者也。 是其一軆一用。 雖有動靜之殊。 必其體立而用有以行。 其實一本而已。 一動靜而相終始者。 敬而已矣。 又五性之次。 與本圖五行之次不同者。 朱子曰: "形陰之爲。 神陽之發。" 又曰: "中也仁也。 所謂陽也。 正也義也。 所謂陰也。" 故今以仁禮居左。 以義居右。 仁爲四性之首。 故居左之上。 義爲仁之對。 故居右之上。 非自鑿也。 戒愼恐懼之前。 可見太極之軆。 發而中節之時。 可見太極之用。 軆眞妙之精。 當於夜氣淸朝見得。 태극(太極) 태극은 최초의 혼돈(混沌)한 상태로 있는 기운으로 우주 만물의 근본이 된다. 《주역(周易)》 〈계사 상(繫辭上)〉에, "역에 태극이 있으니,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는다.[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라고 하였다. 태극(太極) …… 지어 주돈이(周敦頥)가 지은 《태극도설》은 그림인 〈태극도〉와 그에 대한 주돈이 자신의 해설인 〈태극도설〉로 구성되어 있다. 천지가 나누어지기 이전을 태극이라 하는데, 《주역》에 "역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음(陰)과 양(陽)을 낸다.[易有太極, 是生兩儀.]"라는 말에 근본하여, 태극도를 그리고 설명을 가한 것이다. 자양(紫陽)선생에 …… 드러나 주희(朱熹)는 주돈이의 〈태극도〉와 《태극도설》에 주석을 달았는데, 이를 각각 〈태극도해(太極圖解)〉와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라고 부른다. 《태극도해》는 그가 지은 태극도에 대한 해설서인 《태극해의(太極解義)》를 가리킨다. 《태극해의》는 도(圖)의 해설인 〈태극도해〉와 도설(圖說)의 해설인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로 구분되는데, 〈태극도해〉 또는 〈태극도설해〉라고 말하면서 책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성리대전》 권1에 수록되어 있다. 도서오수(圖書五數) 도서는 하도낙서(河圖洛書)를 말한다. 하도는 중국 전설상의 임금인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새겨진 그림으로, 1에서 10까지의 수가 반점의 형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복희씨가 이를 보고 《주역》의 팔괘(八卦)를 그렸다고 한다. 낙서는 하(夏)나라 우(禹) 임금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1에서 9까지의 수가 역시 반점의 형식으로 배열 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우 임금이 이를 보고 《서경》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지었다 한다. 기미(幾微) 《주역》 계사에 기자동지미(幾者動之微)라 하여, 군자는 미(微)도 알고 창(彰)도 안다 하였으며, 기(幾)를 아는 것은 신(神)이라 하였거니와 기미는 동정(動靜)의 은미한 데서 극치의 경지를 찾는 것이다. 건중 건극(建中建極)의 묘(妙) 중정(中定)의 도(道)를 정(定)하여 만민(萬民)의 모범적인 법칙을 세우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오도일관(吾道一貫)의 리(理) 공자가 제자 증자에게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관통하느니라.[參乎 吾道一以貫之]" 하니, 증자가 '예' 하고 대답했다. 공자가 밖으로 나간 뒤, 대화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다른 문인(門人)이 증자에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증자가 "선생님의 도는 충서일뿐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대답해 주었다. 《論語 里人》 계신공구(戒愼恐懼) 경계하고 근신하며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으로, 《중용장구》 제1장의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떠날 수가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보이지 않을 때에도 경계하고 근신하는 것이며, 들리지 않을 때에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是故, 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명덕(明德) 《대학장구》 경1장에 "대학의 도는 명명덕에 있고 신민(新民)에 있고, 지어지선(止於至善)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라고 하였다. 본선지성(本善之性) 존양(存養)은 본심(本心)을 잘 보존하고 선성(善性)을 잘 기르는 것으로, 유가(儒家) 가운데 자사(子思)와 맹자(孟子)는 사람의 성품은 본디 선하므로 이를 잘 보존하고 기르면 하늘도 섬길 수 있다고 여겼다. 유정유일지시(惟精惟一之時) 순 임금이 우(禹)에게 제위를 선양하며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해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書經 大禹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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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수장지도 中庸首章之圖 삼가 살펴보건대 《중용(中庸)》 수장(首章)의 수절(首節)은 '성도교(性道敎)'94)를 나누어 말했다. 이절(二節)은 도(道)의 떨어질 수 없음과 존양(存養)의 일을 말했다.95) 삼절(三節)은 성찰(省察)의 일을 말하고, 사절(四節)은 중화(中和)의 대본달도(大本達道)를 말했다. 마지막 절에서는 중화(中和)의 지극한 공을 말했다. 이것은 주자장구(朱子章句)에서 이미 분명하게 해석했으니 다시 어찌 터럭 하나라도 끼어들 틈이 있겠는가? 다만 '성도교(性道敎)' 세 글자는 한 장의 강령(綱領)이 되고 서로 맥락(脉絡)이 되니 그 문장이 비록 서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뜻은 실로 서로 관통(貫通)한다.그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중이다.'96)라고 하고, '중(中)은 천하의 대본이다.'97)라고 말한 것은 성(性)의 대본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그 '도(道)란 잠시도 떨어질 수 없으니 떨어지면 도가 아니다.'98)라고 하고, 또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99)라고 하고, '화라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도이다.'100)라고 한 것은 도의 전체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그 '보지 않는 것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듣지 않는 것에도 두려워한다.'101)라고 한 것은 존양(存養)의 일이고 성을 따르는 법이다. 그 '숨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작은 것보다 잘 나타나는 것이 없으므로 군자는 그 혼자 있을 때를 삼간다.'102)라고 한 것은 성찰(省察)의 일이고 도를 닦는 법이다. 그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길러진다.'103)라고 한 것은 중화(中和)의 지극한 공(功)이고 성인의 가르침이니 실로 성(性)과 도(道)에 근본 한 것이다. 삼가 조목을 나누어 도(圖)를 작성하여 잊지 않고 때때로 익히도록 갖추어놓고, 또 지혜 있는 자의 교정을 기다린다. 謹按中庸首章之首節。 分言性道敎。 二節言道之不可離及存養之事。 三節言省察之事。 四節言中和之大本達道。 終言中和之極功。 此朱子章句已分明釋之矣。 更何毫髮之可間哉? 但性道敎三字。 爲一章之綱領。 而相爲脉絡。 其文雖不相續。 其義實相貫通。 其曰: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中者天下之大本也者'。 指性之大本而言。 其曰: '道也者不可須臾離。 可離非道也'。 又曰: '發而皆中節謂之和。 和也者天下之達道也者'。 指道之全軆而言。 其曰: '戒愼乎其所不覩。 恐懼乎其所不聞者'。 存養之事而率性之法也。 其曰: '莫顯乎隱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者'。 省察之事而修道之法也。 其曰: '致中和天地位萬物育者'。 中和之極功而聖人之敎敎。 實本於性與道也。 謹條分作圖。 以備時習之不忘。 且待智者之較正焉。 성도교(性道敎) 《중용장구》 제1장에 "하늘이 명하신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성을 따름을 도(道)라 이르고, 도를 품절해 놓음을 교(敎)라 이른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고 하였다. 참고로 이에 대한 주자(朱子)의 주에 "사람과 물건이 각기 그 성(性)의 자연을 따르면 그 일상생활 하는 사이에 각기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곧 이른바 '도(道)'라는 것이다.[人物各循其性之自然, 則其日用事物之間, 莫不各有當行之路, 是則所謂道也.]"라고 하였다. 이절(二節)은 …… 말했다. 《중용장구》 제1장에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중이라고 하고, 일단 일어나서 모두 절도에 맞게 되는 것을 화라고 하니, 중이란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라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도이다.[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고 한 말을 합쳐서 동(動)할 때의 공부와 정(靜)할 때의 공부를 설명한 말이다. 희로애락이 …… 중이다 《중용장구》 제1장에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중이라고 한다.[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라는 말이 나온다. 중(中)은 …… 대본이다 《중용장구》 제1장에 "중은 천하의 큰 근본이다.[中也者 天下之大本也]"라는 말이 나온다. 도(道)란 …… 아니다 《중용장구》 수장(首章)에 자사가 말하기를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으니,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라고 하였다. 발하여 …… 화(和) 《중용장구》 제1장에 "일단 일어나서 모두 절도에 맞게 되는 것을 화라고 한다.[發而皆中節謂之和.]"라는 말이 나온다. 화라는 …… 도이다 《중용장구》 제1장에 "화는 천하의 공통된 도이다.[喜和也者, 天下之達道也.]"라는 말이 나온다. 보지 않는 …… 두려워한다 《중용장구》 수장(首章)에 자사가 말하기를 "군자는 보지 않는 것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듣지 않는 것에도 두려워한다.[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고 하였다. 숨은 …… 삼간다 《중용장구》 수장(首章)에 자사가 말하기를 "숨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작은 것보다 잘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간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고 하였다. 중(中)과 …… 길러진다 《중용장구》 제1장에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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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수장 존양성찰지도 中庸首章存養省察之圖 삼가 살펴보건대 주자가 말하기를 "계신공구(戒愼恐懼)로부터 검속(檢束)하여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편벽되고 치우친 것이 없게 되어 그것을 지켜서 잃지 않는 데 이르면 그 중을 지극히 하여 천지가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104) 근독(謹獨)으로부터 정밀하게 하여 사물을 응하는 곳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 가는 곳마다 그렇지 않음이 없는 데 이르면, 그 화(和)를 지극히 하여 만물이 생육 될 것이다."105)라고 하였다. 대개 《중용(中庸)》 수장(首章)의 조맥(條脉) 공부(工夫)는 여기에서 다 말했고, 학자가 공부하는 처음과 끝마침이 또한 여기에 다 있으니 이른바 죽도록 써도 다 쓸 수 없는 것이다.삼가 주자의 말로 인하여 조항을 나누어 도(圖)를 그려서 눈을 붙여 생각하고 살피는 도구로 삼았다. 다만 중용에서는 비록 경(敬)을 말하지 않았으나 경이 아니면 존양·성찰의 공부를 이룰 방법이 없기에 주자가 말하기를 "군자의 마음은 항상 경외(敬畏)를 보존하여 비록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더라도 또한 함부로 소홀히 할 수 없다."106)라고 하였다. 정자(程子) 또한 말하기를 "학자는 먼저 경을 얻는 방법을 이해함만 같은 것이 없으니 경에 능하면 저절로 이것을 알게 된다."107)라고 하였으니 학자는 살피지 않을 수 없다.또 살펴보면 계신공구(戒愼恐懼)는 미발(未發)의 근독(謹獨)이요, 막현막현 (莫見莫顯)은 기발(旣發)의 근독(謹獨)이니 이것이 존심(存心)·치지(致知)·체용(軆用)을 서로 닦는 법이다.존양(存養)은 아직 솔성(率性)의 전이고 성찰(省察)은 이미 수도(修道)의 뒤이다. 비록 솔성의 전이라도 천명(天命)의 성(性)은 분명하게 그대로 있다. 마땅히 이때 계구(戒懼)하여야 하니 바로 미발(未發)의 전에 존양(存養)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謹按朱子曰: "自戒懼而約之。 以至於至靜之中。 無所偏倚而其守不失。 則極其中而天地位矣。 自謹獨而精之。 以至於應物之處。 無少差謬而無適不然。 則極其和而萬物育矣。" 盖中庸首章之條脉工夫。 此言盡之。 而學者用功之成始成終者。 亦盡於此。 所謂終身用之。 有不能盡者也。 謹因朱子之言。 條分作圖。 以爲寓目思省之具焉。 但中庸雖不言敬。 而非敬則無以致存省之功。 故朱子曰: "君子之心。 常存敬畏。 雖不見聞。 亦不敢忽。" 程子亦曰: "學者莫若先理會得敬。 能敬則自知此矣。" 學者不可不察。 又按戒愼恐懼。 未發之謹獨也。 莫見莫顯。 旣發之謹獨也。 此存心致知軆用交修之法也。 存養在於未率性之前。 省察則旣修道之後也。 雖未率之前。 天命之性。 明自若也。 當戒懼於此時。 乃存養於未發之前者此也。 계신공구(戒愼恐懼)로부터 …… 것이다 《중용장구》 수장의 끝구절에서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자의 주에 "계신공구로부터 검속하여 지극히 정한 가운데 편벽되고 치우친 것이 없게 되어 그것을 지켜서 잃지 않는 데 이르면 그 중을 지극히 하여 천지가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自戒懼而約之, 以至於至靜之中, 無所偏倚而其守不失, 則極其中而天地位矣.]"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근독(謹獨)으로부터 ……것이다. 《중용장구》 제1장에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자의 주에 "근독(謹獨)으로부터 정(精)히 하여 사물을 응하는 곳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 가는 곳마다 그렇지 않음이 없는 데 이르면, 그 화(和)를 지극히 하여 만물이 생육될 것이다.[自謹獨而精之, 以至於應物之處, 無少差謬而無適不然, 則極其和而萬物育矣.]"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군자의 …… 없다. 《중용장구》 제1장 "이 때문에 군자는 그 보지 않는 바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듣지 않는 바에도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이다.[是故, 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는 구절에 대한 주희의 주에, "군자의 마음은 항상 '경'과 '외'를 보존하여 비록 보고 듣지 않을 때라도 또한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천리의 본연함을 보존하여 잠시도 도를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君子之心, 常存敬畏, 雖不見聞, 亦不敢忽, 所以存天理之本然, 而不使離於須臾之頃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학자는 …… 된다 《이정유서》 권18 〈이천선생어〉 83조에 제자가 미발 때를 동(動)이라고 해야 할지 정(靜)이라고 해야 할지에 대해 묻자, 이천은 "정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정 가운데에는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하니, 이것이 가장 어려운 곳이다. 배우는 이는 우선 경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경을 잘하면 절로 이것을 알 것이다.[謂之靜則可, 然靜中須有物始得, 這裏便一作最是難處, 學者莫若且先理會得敬, 能敬則自知此矣.]"라고 하였다. 또 경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주일만 한 것이 없다.[莫若主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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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분절변의 中庸分節辨義 삼가 생각건대 《중용(中庸)》 한 권의 책은 자사(子思)가 도를 전한 글이다. 우러러 옛날을 상고해보면 복희(伏羲)108)는 획(畫)을 긋고, 문왕(文王)은 단(彖)을 쓰고,109) 주공(周公)은 사(辭)를 쓰고, 공자(孔子)는 십익(十翼)을 지었다.110) 《시(詩)》·《서(書)》·《예(禮)》·《악(樂)》의 경(經), 《논어(論語)》·《맹자(孟子)》·《춘추(春秋)》의 책에 이르러서는 간절(切)하고 명적(明的)하고 온인(溫仁)하고 정려(正厲)한 자태가 수연(粹然)하게 성현(聖賢)의 성정(性情)을 드러내는 것이 진실로 한두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때에는 고금이 있고 풍속에는 순박함과 경박함이 달라서 그 한때의 언어가 규침(規箴)·경절(警切)의 사이에서 발한 것이 혹, 상략(詳略)의 같지 않음이 있고, 고하(高下)의 난이(難易)가 있어서, 혹 당겨도 펼쳐지지 않고, 펼쳐져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쉽게 그 단서(端緖)를 볼 수 없다. 그 체용(體用)·본말(本末)·거세(巨細)·대소(大小)를 모두 포함(包含)하여 스스로 하나의 책을 만들었는데 하나의 책 가운데에 다 포괄하여 철두철미하게 시종을 갖춘 것으로 《중용》 한 책의 상세함과 절실함만 같은 것이 아직 없다.일찍이 이 책을 읽고 자사(子思)가 앞 성인이 발하지 않은 온축된 도를 발한 것을 알았고, 또 《장구(章句)》를 읽고 주자가 앞의 현인이 발하지 않은 뜻을 발명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근본을 구하여 말에 미치게 하고, 그 흐름을 얻어서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간 것을 아침에 생각하고 저녁에 읽어도 좁은 소견[蠡測]111)에 만에 하나 없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감히 말하기를 "자사가 성도교 (性道敎) 세 글자를 한 편의 강령(綱領)으로 삼은 것은 명명덕(明明德) 세 글자를 대학의 강령으로 삼은 것과 같다. 한편 가운데에 만 가지 말과 만 가지 일이 성도교 세 가지 것의 가운데에서 벗어나지 않고, 다시 실마리가 절이 되니 뜻이 매우 분명하고 맥락(脉絡)·조리(條理)가 저절로 단서(段緖)가 있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대개 주자가 사절(四節)로 나누고 요씨(饒氏)112)가 육절(六節)로 분절한 것은 비록 차이가 있더라도 뜻과 맥락은 모두 통하니 후생 말학인 내가 어찌 입을 놀리겠는가? 다만 내 뜻에서 망령되이 성도교(性道敎) 세 글자를 미루어 한 편의 강령으로 삼고 31장 가운데에서 구하였으니 그 강령의 요지는 각각 분파가 있고 상고할 만한 분단(分段)과 입절(立節)이 있는 것 같다.가만히 생각건대 주자가 공맹과 밝음을 나란히 하여 어린 나이에 이 책을 받아 읽고 침잠(沉潛)하기를 반복하여 60세라는 오래된 이후에 《장구(章句)》를 이내 이루었으니 반드시 이 부분에 소견이 있을 것인데 끝내 상고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 나의 어리석은 견해가 과연 망령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수백 번을 읽고 3개월을 생각하였지만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그 의혹이 더욱 깊어짐을 보고는 과연 나의 의혹을 끝내 풀 수 없고, 의혹하면서도 풀 수 없어 차록(箚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이치에 박식한 군자의 질정을 기다린다. 특별히 나의 이론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고, 전에 연구해놓은 것과는 다른 이론을 구할 뿐이다. 謹惟中庸一書。 子思子傳道之文也。 仰稽于古。 羲有畫而文有彖。 周有辭而孔作翼。 至於詩書禮樂之經。 語孟春秋之書。 切明的。 溫仁正厲之態。 粹然畫出聖賢之性情者。 誠非一二言而止耳。 然時有古今。 俗異淳澆。 其一時言語。 發於規箴警切之間者。 或有詳略之不同。 高下之難易。 或引而不伸。 伸而不反。 未易見其端緖。 其體用本末巨細大小。 俱含並包。 自爲一家。 咸括於一篇之中而徹上徹下。 該始該終者。 未有若中庸一書之詳切。 嘗讀是書。 知子思發前聖未發之蘊。 又讀章句。 知朱夫子發前賢未發之意。 求其本而及之末。 得其流而泝其源。 朝思暮讀。 不能無管窺蠡測之萬一。 乃敢言之曰: "子思子性道敎三字。 爲一篇之綱領者。 若明明德三字。 爲大學之綱領。 一篇中萬言萬事。 不出於三者之中。 而更端作節。 意甚分明。 脉絡條理。 自有段緖。" 盖朱夫子四節之分。 饒氏子六節之辨。 雖有異同而意脉皆通。 後生末學。 何所容喙? 但於愚意妄以性道敎三字推之。 以爲一篇之綱領。 而求之於三十一章之中。 則其綱領旨趣。 各有分派。 似有分段立節之可考。 竊念朱夫子以並駕鄒魯之明。 受讀是書於早歲。 沉潛反復。 至於六十年之久而後。 章句乃成。 則必有所見於此。 而終無可考。 是知愚累之見。 果有妄矣。 讀之屢百遍。 思之三閱月。 愈久而愈見其惑。 則果知愚累之惑。 終莫能釋。 惑而不釋。 未免箚錄。 以待求正於博理君子。 非敢別執已論。 求異於前脩也。 복희(伏羲) 중국 삼황(三皇)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복희(宓羲), 포희(包犧), 포희(庖犧), 복희(伏戱), 여희(慮犧), 희황(犧皇), 황희(皇犧)라고도 한다. 수인씨(燧人氏)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처음 팔괘를 그리고 서계(書契)를 만들었다고 한다. 복희씨(伏羲氏) 때에 등에 1에서부터 10까지의 문양이 그려진 용마(龍馬)가 나왔는데 이것이 하도(河圖)로, 복희씨가 이를 보고 세 획으로 이루어진 팔괘(八卦)를 그렸다고 한다. 또 하(夏)나라 우(禹) 임금 때 등에 1에서 9까지의 점이 박혀 있는 거북이 나왔는데 이것이 곧 낙서(洛書)로, 우 임금이 이를 보고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고 한다. 《尙書正義 洪範, 顧命》 문왕(文王)은 …… 쓰고 상(商)나라 말기에 주(紂)의 신하 숭후호(崇侯虎)가 성인의 덕을 지닌 서백(西伯) 문왕을 시기하여 주에게 참소하여, 문왕은 유리(羑里)의 감옥에 갇혔다. 이때 문왕은 모든 죄를 자신에게 돌리면서 64개의 괘마다 단사(彖辭)를 붙였다고 한다. 《周易 繫辭》 공자(孔子)는 …… 지었다 공자의 십익(十翼)은 《주역》 가운데 공자(孔子)가 지은 〈단전 상(彖傳上)〉·〈단전 하(彖傳下)〉·〈상전 상(象傳上)〉·〈상전 하(象傳下)〉·〈계사전 상(繫辭傳上)〉·〈계사전 하(繫辭傳下)〉·〈문언(文言)〉·〈서괘(序卦)〉·〈설괘(說卦)〉·〈잡괘(雜卦)〉의 십전(十傳)을 가리킨다. 《역(易)》의 작자에 대해선 여러 이설(異說)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복희씨(伏羲氏)가 팔괘(八卦)와 64괘(卦)를 그렸으며, 문왕(文王)이 이것을 연역하여 괘사(卦辭)를 짓고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짓고, 공자가 십익(十翼)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여측(蠡測) 고둥 껍데기로 바다의 깊이를 측량하는 것처럼 자신의 국량과 식견이 천박하긴 하지만 그래도 터득한 점이 없지 않다는 뜻의 겸사이다. 한(漢)나라 동방삭(東方朔)의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고둥 껍데기로 퍼서 바닷물을 재며, 풀줄기로 종을 치는 격이다.[以管窺天, 以蠡測海, 以筳撞鍾.]"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文選 권45 答客難》 요씨(饒氏) 송나라 말기의 이학가(理學家)인 요노(饒魯)를 가리킨다. 그는 여간(餘干) 사람으로, 자가 백여(伯與), 중니(仲尼)이며, 황간(黃幹)의 문하(門下)로서 석동서원(石洞書院)을 세우고 강학하였다. 그의 학문은 주희를 근본으로 하였으나, 주희의 학설을 그대로 고수하지만은 않았다. 《오경강의(五經講義)》·《어맹기문(語孟紀聞)》·《근사록주(近思錄注)》 등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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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서 後敍 [沈啓錫] 그 글을 읽으면 마땅히 그 사람을 보아야 하고 그 사람을 보면 마땅히 그 시대를 논해야 한다. 이제 남포(南圃) 김 선생(金先生)의 유집(遺集)을 보건대, 그 시문이 모두 온후평담(溫厚平淡)하고 질직간요(質直簡要)하여 꾸미거나 답습하는 고루함이 없었다. 의리 가운데서 화락하였고 법도 안에서 거동하였으니 진실로 도가 있는 선비였다.인효(仁孝)의 성대한 세상을 당해서는 유술(儒術)을 흠모하고 훌륭한 선비를 초치하며 이를 숭상하고 양성하는 교화가 한 세상을 감동시키니, 산림과 암혈 사이에서 글을 읽고 행실을 닦는 선비들이 조정에서 드러나지 않음이 없었다. 크게는 공경(公卿)과 사부(師傅)가 되었고 작게는 추천1)하는 사례에라도 들어있었던 것이다. 선생 또한 남녘에서 몸을 일으켜 문을 닫고 강습하였는데도 재상(宰相)들이 입을 모아 말하니, 명성이 위로 알려져서 예를 갖춰 부르는 명이 누차 적막한 물가에까지 이르렀다. 아! 성대하다. 진실로 도가 있는 세상이었도다.도가 있는 선비로서 도가 있는 세상을 만나서, 마땅히 출사해 쓰이고 조정의 정사를 보필해야 할 것 같은데 숲 아래 소요하며 농사를 짓다 몸을 마치는 것은, 아마도 그 사이에 때를 만나고 못 만난 차이가 있어서 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반드시 자신을 헤아린 것이 분명했거나 스스로 지조를 지킨 것이 있었을 것이다.근세 학자들이 은거하며 뜻을 추구하지만 세상일은 겪은 적이 없으니, 사람들은 혹 알맹이 없는 빈말일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이제 유집 가운데 《경세통전(經世通典)》 한 권을 고찰해보니 안으로 관(官)의 제도와 과거 선발, 밖으로 부세(賦稅)와 역역(力役)에 이르기까지 무릇 국가를 다스리는 도구들에 대해 대강을 들고 분류를 나눠 매우 자세하고 빠뜨린 것이 없었다. 여기에서 깊이 마음을 썼고 충분히 헤아려 다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를 경영하는 군자가 채택하여 쓴다면 장차 《반계수록(磻溪隨錄)》2)과 더불어 나란히 반드시 전해질 불후의 글이 될 것이니, 조각난 문서와 찢어진 책 편으로 상자 속에 묻혀있겠는가? 원컨대 공의 후손들은 이를 보배처럼 중히 여기고 공경히 간직하여 뒷날을 기다릴지어다.경인년(1830, 순조30) 동짓달 하순에 면주(綿州) 외사 지제교(外史知製敎) 청성(靑城) 심계석(沈啓錫)이 삼가 쓰다. 讀其書。 當觀其人。 觀其人。 當論其世。 今見南圃金先生遺集。 其詩文皆溫厚平淡。 質直簡要。 無藻飾蹈襲之陋。 而雍容乎義理之中。 步驟乎規矩之內。 信乎其爲有道之士也。 盖當仁孝盛際。 傾嚮儒術。 招延賢俊。 崇奬培植之化。 動一世。 林樊巖穴之間。 讀書修行之士。 莫不顯揚于朝。 大則爲公卿師傅。 小猶在剡薦之例。 先生亦起身南服。 杜門講習。 而宰相交口。 名聲上達。 旌招之命。 累及於寂寞之濱。 吁! 嗟盛矣。 信乎其有道之世也。 以有道之士。 値有道之世。 宜若出而需用。 裨補朝政。 而低回林下。 耕稼沒身者。 抑或有遇不遇於其間者歟。 不然其必有自量者審而自守者存矣。 近世學者隱居求志。 未嘗經涉世務。 人或疑之以空言無實。 然而今考集中。 經世通典一卷。 內而官制科選。 外而賦稅力役。 凡所以出治之具者。 綱擧部分。 纖悉無遺。 此可見用心之苦而揣摩之熟。 若使經國之君子。 採而用之。 將與磻溪隨錄。 並爲必傳不朽之書。 其可以斷簡殘篇。 埋沒於箱衍之中乎? 願公之後孫。 寶重而敬藏之。 以俟後日焉。 庚寅至月下澣。 綿州外史知製敎靑城沈啓錫謹撰。 추천 원문의 '섬천(剡薦)'으로, 중국 섬계(剡溪) 지방에서 생산된 종이에 추천을 쓴 데에서 유래된 말이다. 반계수록(磻溪隨錄) 유형원(柳馨遠)의 저술로 전제(田制), 교선(敎選), 임관(任官), 직관(職官), 녹제(祿制) 등 다섯 분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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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언고시 七言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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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회를 우연히 읊다 感懷偶吟 검각85)이 평지 되고 劍閣平地평지가 검각 되며 平地劍閣곤옥86)이 연석87) 되고 崑玉燕石연석이 곤옥 되네 燕石崑玉맑은 바다에 가을바람이 일어나고 淸海起秋風미친 파도가 은빛 물결88)을 몰아치네 狂濤駕銀屋이백이 고래를 탄 듯89) 李白忽騎鯨원통한 기운 푸른 하늘에 드리우네 寃氛薄蒼霄이락90)과 곡구91)에 살았던 늙은이여 居伊洛谷口翁길이 생각하여도 밤처럼 아득히 멀구나 長相思夜迢迢아득히 멀어 볼 수 없는데 迢迢不可見귀밑머리 세어 절로 쓸쓸하네 鬂雪自蕭蕭차라리 잠들어 깨고 싶지 않거늘92) 尙寐欲無訛걱정하다가 날이 새어버렸네 耿耿逮明發사람들 모두 나에게 취하길 권하지만 人皆勸我醉푸른 산 석양에 취하지 않았네 未醉靑山夕즐겁지 않다 하여 어찌 길이 근심하리오 不樂何爲長鬱悒흰 갈매기와 누런 학은 본래 무심하다네 白鷗黃鶴本無心외로운 산 정자 위 밝은 달이 남았으니 孤山亭上餘明月오솔길 가득한 한매 찾는 것이 어떠하리 一逕寒梅盍往尋 劍閣平地, 平地劍閣.崑玉燕石, 燕石崑玉.淸海起秋風, 狂濤駕銀屋.李白忽騎鯨, 寃氛薄蒼霄.居伊洛谷口翁, 長相思夜迢迢.迢迢不可見, 鬂雪自蕭蕭.尙寐欲無訛, 耿耿逮明發.人皆勸我醉, 未醉靑山夕.不樂何爲長鬱悒, 白鷗黃鶴本無心.孤山亭上餘明月, 一逕寒梅盍往尋. 검각 낙양에서 촉(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관문으로, 천 리가 잔도(棧道)로 이어지는 지극히 험한 길로 알려져 있다. 이백의 〈촉도난(蜀道難)〉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곤옥 곤륜산(崑崙山)에서 나오는 아주 좋은 옥을 가리킨다. 연석 연산(燕山)에서 생산되는 영석(嬰石)으로 옥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옥이 아닌 돌이다. 송(宋)나라의 어리석은 자가 이 돌을 얻고는 큰 보물이라 여겨 애지중지하다가 웃음거리가 된 고사가 있는데, 이후 어리석은 자 혹은 허식(虛飾)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太平御覽 卷51 地部16》 은빛 물결 원문의 '은옥(銀屋)'은 높은 파도를 형용한 말이다. 이백(李白)의 〈사마장군가(司馬將軍歌)〉에 "강중의 하얀 파도는 은빛 지붕 같은데, 몸은 하괴에 임하여 장막 안에 앉았도다.〔江中白浪如銀屋 身居玉帳臨河魁〕"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3》 이백이 고래를 탄 듯 두보(杜甫)의 "고래를 타고 가는 이백〔李白騎鯨魚〕"이라는 시구가 있다. 《唐才子傳 李白》 당(唐)나라 마존(馬存)의 〈연사정(燕思亭)〉이란 시에 "이백이 고래 타고 하늘로 날아 올라가니, 강남 땅 풍월이 한가한 지 여러 해라.〔李白騎鯨飛上天 江南風月閑多年〕"라는 구절이 있다. 이락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를 지칭하는데, 명도(明道) 정호(程顥)와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이 부근에 살았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가 강학하던 이천(伊川)과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곡구 한대(漢代)의 은사(隱士) 정박(鄭樸)이 은거하던 곳이다. 정박의 자는 자진(子眞)인데, 그는 처음부터 조정의 부름을 사절하고 곡구에 은거하여 일생을 마쳤다. 《漢書 卷72 王吉傳》 차라리 …… 않거늘 《시경》 〈왕풍(王風) 토원(兎爰)〉에 "온갖 근심 모여드니, 차라리 잠이 들어 깨어나지 말았으면.〔逢此百罹, 尙寐無吪.〕"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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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으로 돌아가는 형 군문 개94)를 전송하며 送邢軍門玠還京師 황제 이십칠년95) 皇帝二十有七載장군이 무사히 도성으로 돌아가네 將軍無事還京師소국의 적은 백성을 황제께서 가엽게 여겨 小國寡民帝所憐갈림길에서 무슨 말 주고자 했나 臨歧欲贈將何詞우리 조정 이백 년 종묘사직 我朝宗社二百年예악과 문물은 중화의 의식을 따랐네 禮樂文物遵華儀황제 은혜 미치는 곳마다 천하가 맑아지니 皇恩隨處寰宇淸오래도록 태평성대 기약하였네 準擬長占昇平期지난 임진년 봄 이월을 생각하면 憶昨壬辰春二月정녕 우리 임금 치세96)였네 正是吾君垂拱時오직 현송97) 소리 상서98)에 가득한데 唯聞絃誦滿庠序어지러운 전쟁을 어찌 생각이나 하랴 紛紛兵革何思惟누가 알랴 섬나라 왜구가 황제의 교화를 막아 誰知島寇梗皇化우리나라에 참상을 입힐 줄 坐使東域生瘡痍천 척의 배 하룻밤에 바다를 날듯이 건너니 千艘一夕飛渡海순식간에 도성에 비바람이 부네 倏忽王城風雨吹조정은 장자방99)처럼 계책 낼 겨를이 없고 廟堂無暇子房籌전장에는 진평의 기묘한 계책100) 미치지 못했네 沙場未及陳平奇흉악한 칼날이 이르는 곳마다 공이가 뜰만큼 피가 흘러넘치고101) 兇鋒到處血漂杵수많은 마을은 백골로 빈 땅을 메웠네 千村白骨塡空基백성들은 생사 앞에 말조차 못 하는데 蒼生生死不可言외로운 군신들은 어디로 가는가 孑孑君臣何所之만 리 밖 의주에서 〈식미〉102)를 읊조리니 萬里龍灣賦式微눈 내린 변방 달 비친 관문 처량함만 더하네 塞雪關月堪凄悲우리 왕이 지성으로 황제 마음을 감격시켰으니 吾王至誠感帝衷어찌 진나라에서 굶던 포서의103) 신세에 이르겠는가 豈待秦庭包胥飢시서를 익힌 노련한 장수가 홀연 단에 오르니 詩書老將忽登壇범 같은 두상 원숭이 같은 팔 실로 영웅의 자태였네 虎頭猿臂眞英姿뛰어나고 우뚝한 마음으로 일만 병사를 품었으니 胸襟卓卓藏萬兵대궐의 파목104)이 공이 아니고선 누구이겠는가 禁中頗牧非公誰칼에 기대면 남산의 백호가 달아나고 倚劍南山走白額활을 쏘면 장교 아래의 이무기가 놀라네105) 彈弓橋下驚蛟螭황제께서 네가 가서 왜구106)를 정벌하고 帝曰汝往征不軌난을 평정하여 위태로운 조선을 도와라 하셨네 蕩平扶我東藩危씩씩하게107) 삼십 만 병사가 출정하니 桓桓出師三十萬햇빛에 창을 번쩍거리며 앞다투어 내달렸네 金戈耀日爭奔馳혁혁한 황제의 위엄이 구주108)에 진동하고 赫赫皇威動九州삼군109)의 씩씩한 기상이 오랑캐를 능멸하였네 三軍壯氣凌蠻夷장막 안의 훌륭한 계책110)은 극맹과 같고 嘉猷幕中有劇孟문 앞에 늘어선 용사들은 모두 범과 곰111) 같으니 列戟門前皆虎羆황소112)가 저도 모르게 걸상에서 떨어져 울 터 黃巢不覺下床泣석륵113)이 어찌 감히 금구114)를 엿보리 石勒何敢金甌窺팔 년 요망한 기운을 일시에 걷고 八載妖氛一時捲유악115)에서 신묘한 계책 베풀었네 自是帷幄神謀施마원처럼 구리 기둥으로116) 공을 자랑하지 않고 馬援休誇銅柱功한유처럼 〈평회서비〉를117) 찬술하지 않았지만 韓愈莫撰淮西碑만백성이 환호하고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萬姓歡呼拜稽首모두들 요순의 신하 고요와 기와 같다고 하였네 咸曰堯舜臣皐夔개선하면 응당 두터운 총애 입으리 旋師應荷寵渥優생각건대 화곤과 부월118)로 영화를 더하리라 想見華鉞增榮滋명성을 어찌 하인들만 알겠는가 聲名豈獨走卒知큰 공로 역사119)에 길이 전하리라 鴻功竹帛傳無虧이로부터 육로와 수로로 사해가 통하니 自此梯航通四海온 세상이 다시 화락하고 태평해졌네120) 可使一世回雍熙서생 또한 외람되이 은혜와 교화 속에서 書生亦忝恩化中춤을 추며 다시 〈청아〉121)의 시를 불렀네 舞蹈更唱菁莪詩생각건대 한 마디 말을 대궐에 아뢰었거늘 思將一言達九重황제의 조정에서 알고 계시는지 借問皇朝知不知우리 왕께서 처음부터 그 덕을 잃지 않아 我王初非失其德늦게까지 정사 살피느라122) 걱정이 많으셨네 宵衣丙枕多憂思훈육이 빈 땅을 침범하자 고공단보가 옮겨 가123) 獯鬻侵豳亶父移이는 사람이 아니라 실로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었네 不是人爲天實爲자연에 따라 성하고 자연에 따라 쇠락하니 自然而盛自然衰흥망성쇠의 권력을 누가 잡았는가 盛衰權柄其誰持옛날 요동성에서 오랑캐 기병을 물리쳤으니 伊昔遼城却虜騎우리나라에 남아가 없다고 말하지 마오 莫道吾國無男兒남산은 높고 한강은 밝아 南山峨峨漢水明예로부터 영웅호걸이 여기에서 태어났다네 古來英傑生於玆흥망 속에 시대가 바뀌고 인사도 변하나 興亡遞代人事變앞에는 을지문덕이요 뒤에는 김유신이 있네 後有庾信前乙支더구나 이제 우리 임금께서는 何況如今我主聖암혈의 현자까지 남김없이 망라하였으니 網羅巖穴賢無遺어찌 훌륭한 장수와 죽을 각오한 신하 豈無良將志死綏예리한 병기를 든 강한 병사가 무수히 따르지 않겠는가 利兵勁卒紛相隨아! 국운이 매우 어지러워 嗟嗟國運極濛厖부산의 한 번 패배로 병사들이 절로 피폐했거늘 一敗釜山兵自疲원수의 조정에 무릎 꿇은 자 하나도 없으니 屈膝讎庭無一人만약 배양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겠는가 若非培養能如斯공께서 돌아가 혹시 이 뜻을 기억하실런지 公歸倘記此意否천자께서 물으시매 헛된 말이 없으리 天子有問無虛辭 皇帝二十有七載, 將軍無事還京師.小國寡民帝所憐, 臨歧欲贈將何詞.我朝宗社二百年, 禮樂文物遵華儀.皇恩隨處寰宇淸, 準擬長占昇平期.憶昨壬辰春二月, 正是吾君垂拱時.唯聞絃誦滿庠序, 紛紛兵革何思惟.誰知島寇梗皇化, 坐使東域生瘡痍.千艘一夕飛渡海, 倏忽王城風雨吹.廟堂無暇子房籌, 沙場未及陳平奇.兇鋒到處血漂杵, 千村白骨塡空基.蒼生生死不可言, 孑孑君臣何所之.萬里龍灣賦式微, 塞雪關月堪凄悲.吾王至誠感帝衷, 豈待秦庭包胥飢.詩書老將忽登壇, 虎頭猿臂眞英姿.胸襟卓卓藏萬兵, 禁中頗牧非公誰.倚劍南山走白額, 彈弓橋下驚蛟螭.帝曰汝往征不軌, 蕩平扶我東藩危.桓桓出師三十萬, 金戈耀日爭奔馳.赫赫皇威動九州, 三軍壯氣凌蠻夷.嘉猷幕中有劇孟, 列戟門前皆虎羆.黃巢不覺下床泣, 石勒何敢金甌窺.八載妖氛一時捲, 自是帷幄神謀施.馬援休誇銅柱功, 韓愈莫撰淮西碑.萬姓歡呼拜稽首, 咸曰堯舜臣皐夔.旋師應荷寵渥優, 想見華鉞增榮滋.聲名豈獨走卒知, 鴻功竹帛傳無虧.自此梯航通四海, 可使一世回雍熙.書生亦忝恩化中, 舞蹈更唱菁莪詩.思將一言達九重, 借問皇朝知不知.我王初非失其德, 宵衣丙枕多憂思.獯鬻侵豳亶父移, 不是人爲天實爲.自然而盛自然衰, 盛衰權柄其誰持.伊昔遼城却虜騎, 莫道吾國無男兒.南山峨峨漢水明, 古來英傑生於玆.興亡遞代人事變, 後有庾信前乙支.何況如今我主聖, 網羅巖穴賢無遺.豈無良將志死綏, 利兵勁卒紛相隨.嗟嗟國運極濛厖, 一敗釜山兵自疲.屈膝讎庭無一人, 若非培養能如斯.公歸倘記此意否, 天子有問無虛辭. 형 군문 개 군문은 총독군무아문(總督軍務衙門)의 약칭이다. 명나라 경략(經略) 형개(邢玠, 1540~1612)를 말한다. 형개의 자는 진백(搢伯)이며 호는 곤전(昆田)이다. 1571년(융경5)에 진사가 되어 밀운지현(密雲知縣)ㆍ어사(禦史)ㆍ순무(巡撫) 등을 지냈다. 1597년(만력25)에 풍신수길(豐臣秀吉)이 조선을 침범하자 계요 총독(薊遼總督)으로 파견되어 왜군을 크게 무찔러 병부 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고, 죽은 후 태자태보(太子太保)에 추증되었다. 조선에서는 선무사(宣武祠)라는 사당을 세워 그 공을 기렸다. 황제 이십칠년 만력(萬曆) 27년으로 선조 32년, 1599년이다. 치세(治世) 원문의 '수공(垂拱)'은 무위지치(無爲之治)를 가리킨다. 《서경》 〈무성(武成)〉에 "옷을 늘어뜨리고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잘 다스려진다.[垂拱而天下治]"라고 하였다. 현송 옛날 《시경(詩經)》을 배울 적에 거문고와 비파 등 현악기에 맞추어 노래로 불렀는데 이를 현가(絃歌)라고 한다. 그리고 악기의 반주 없이 낭독하는 것을 송(誦)이라고 하는데, 이 둘을 합하여 현송이라고 칭한다. 곧 수업하고 송독하는 것을 말한다. 상서 중국 고대의 향교(鄕校) 즉 지방 학교 이름인데 후대에는 학교를 범칭한 말로 쓰인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맹자가 양혜왕에게 왕자(王者)의 다스림에 대해 논하면서 이르기를 "상서의 가르침을 삼가서 효제의 의리로써 거듭한다면 머리가 반백이 된 자가 길에서 짐을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지 않을 것입니다.[謹庠序之敎, 申之以孝悌之養, 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라고 하였다. 장자방 한(漢)나라의 개국공신 장량(張良)으로, 자방(子房)은 그의 자이다. 장량은 뛰어난 계책을 내어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으나, 천하가 평정된 뒤에 한 고조가 제(齊)나라 땅 3만 호(戶)를 봉해 주려고 하자 이를 사양하고 유후(留侯)에 봉해지는 것에 만족하였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진평의 기이한 계책 한(漢)나라 진평(陳平)이 고조(高祖) 유방(劉邦)을 위하여 올린 여섯 가지 기이한 계책을 이른다. 《사기(史記)》 권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진평에 대해 "여섯 가지 기이한 계책을 올리자 제후들이 한나라에 복종하였다.[六奇旣用, 諸侯賓從於漢.]"라고 하였다. 공이가 …… 흘러넘치고 《서경(書經)》〈무성(武成)〉의, "피가 흘러 절굿공이가 떠내려갔다.〔血流漂杵〕"라는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식미〉 《시경》 〈식미(式微)〉에 "쇠할 대로 쇠했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式微式微, 胡不歸.]"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진나라에서 굶던 포의서 신포서(申包胥)는 춘추 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소왕(昭王)의 대부(大夫)를 지냈다. 오자서(伍子胥)가 오(吳)나라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초나라 수도 영(郢)을 함락하자, 진(秦)나라의 애공(哀公)에게 7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울며 구원병을 청하였다. 《史記 卷66 伍子胥列傳》 대궐의 파목 문무를 겸비하고 재략(才略)이 탁월한 형개를 뜻하는 말이다. 파목은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명장인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을 병칭한 말인데, 당 선종(唐宣宗) 때 한림학사 필함(畢諴)이 강족(羌族)을 격파할 대책을 상세히 올리자, 황제가 "우리 조정의 시종신 중에 염파와 이목 같은 명장이 있을 줄 어떻게 생각이나 했겠는가.〔孰謂頗、牧在吾禁署!〕"라고 하고, 필함을 절도사로 임명해서 공을 세우게 했던 고사가 있다. 《新唐書 卷183 畢諴列傳》 칼에 …… 놀라네 원문의 '백액(白額)'은 남산에 사는, 이마가 희고 난폭한 호랑이를 말한다. 중국 삼국 시대 주처(周處)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주처는 젊었을 때 힘이 세고 난폭하여 마을에 해를 끼치고 다녔다. 어느 날 마을의 노인에게 "시절도 좋고 농사도 풍작인데 어찌하여 즐거워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자, 노인이 한숨을 쉬며, "세 가지 폐해가 없어지지 않는데 무어 즐겁겠는가?" 하였다. 주처가 그게 무어냐고 묻자, "남산에 있는 이마가 흰 호랑이〔白額虎〕와 장교(長橋) 아래에 사는 이무기와 자네라네." 하였다. 주처는 호랑이를 때려잡고 이무기를 죽였으나, 사람들이 도리어 그를 더욱 두려워하였다. 이후 주처는 열심히 학문을 닦고 자신을 다스려 훌륭한 인물이 되었으며, 진(晉)나라에서 벼슬하여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었다. 뒤에 제만년(齊萬年)의 반란에 후퇴하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晉書 卷58 周處列傳》 왜구 원문의 '불궤(不軌)'는 마땅히 좇아야 할 법이나 도리에 벗어났다는 뜻으로, 모반이나 반역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왜구를 의미한다. 한(漢)나라 가의(賈誼)의 〈과진론(過秦論)〉에 "비록 교활한 백성이 있더라도 주상을 떠난 마음이 없다면, 불궤(不軌)의 신하가 그 간사한 지혜를 꾸밀 길이 없어서 포란(暴亂)의 간사함이 그쳐집니다.〔雖有狡猾之民 無離上之心 則不軌之臣無以飾其智 而暴亂之奸弭矣〕"라고 하였다. 씩씩하게 《시경(詩經)》 〈주송(周頌) 환(桓)〉의 "씩씩한 무왕이여, 그 땅을 보전했도다.[桓桓武王, 保有厥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구주 중국 전역을 지칭하는 말이다. 《상서(尙書)》 〈우공(禹貢)〉에서는 예주(豫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양주(梁州), 옹주(雍州), 기주(冀州), 연주(兗州)를 '구주'라고 하였다. 삼군 제후국의 군사로, 중국 고대 주(周)나라의 군대 편제에서 비롯하였다. '군(軍)'은 군사의 단위로, 다섯 사람이 '오(伍)'가 되고 5오가 '양(兩)'이 되고 4양이 '졸(卒)'이 되고 5졸이 '여(旅)'가 되고 5려가 '사(師)'가 되고 5사가 '군(軍)'이 되므로 1군은 1만 2500명이고 6군은 7만 5000명이 된다. 또한 천자는 6군을 거느리고, 큰 나라는 3군을 거느리고, 작은 나라는 2군을 거느리고, 아주 작은 나라는 1군을 거느린다. 《周禮注疏 卷28 下官 司書》 훌륭한 계책 원문의 '가유(嘉猷)'는 나라를 다스리는 훌륭한 계책이라는 뜻으로, 《상서(尙書)》 〈군진(君陳)〉에 "그대에게 훌륭한 계획과 계책이 있거든 들어가 궁중에서 그대 임금에게 아뢰고 그대는 밖에서 거기에 따르라.[爾有嘉謀嘉猷, 則入告爾后于内, 爾乃順之于外.]"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범과 곰 원문 '호비(虎羆)'는 《서경》 〈목서(牧誓)〉에 "부디 굳세고 굳세어 범과 같고 비휴와 같으며 곰과 같고 큰곰과 같이 상나라 교외에서 싸워 도망하는 자들을 맞아 공격하여 서토 사람들을 노역하게 하지 말라.[尙桓桓如虎如貔, 如熊如羆于商郊, 弗迓克奔, 以役西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용감한 장병을 의미한다. 황소 820~884. 당나라 말기 반란군의 지도자로 왕선지가 난을 일으키자 그를 따르다가, 왕선지가 죽자 남은 무리를 이끌고 수도 장안(長安)을 점령하여 국호를 '대제(大齊)'라 하였으나, 뒤에 관군에게 패하여 자살하였다. 이 일로 당나라는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석륵 274~333. 중국 16국 시대 후조(後趙)의 건국자로, 상당 무향(上黨武鄕) 사람이며 갈족(羯族)이다. 유연(劉淵)에게 투항하여 대장이 되었다가 319년 후조(後趙)를 건국하고 조왕이라 일컬었다. 금구 금으로 만든 사발을 말하는데, 흠이 없고 견고하다 하여 강토(疆土)에 비유된다.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일찍 일어나 무덕각(武德閣)에 이르러 "나의 국토는 금구와 같아서 하나의 상처도 흠도 없다.[我家國猶若金甌, 無一傷缺.]"라고 말한 데서 유래하였다. 《양서(梁書)》 〈후경열전(侯景列傳)〉 유악 본래 대장의 진영에 치는 장막을 이르던 말로 전(轉)하여 임금의 곁에서 나라의 정사(政事)를 늘 함께 의논하는 참모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장악(帳幄) 안에서 계책을 운용하여 천 리 밖의 승리를 결단하는 것은 내가 자방(子房)만 못하다."라고 했던 데서 왔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마원처럼 구리 기둥으로 원문의 '동주(銅柱)'는 구리로 만든 기둥으로 국경을 표시하는 데 사용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권24 〈마원열전(馬援列傳)〉에 "교남이 모두 평정되었다.[嶠南悉平]"라고 한 내용에 대한 주석에서 《광주기(廣州記)》를 인용하여 "마원이 교지에 이르러 동주를 세워 한나라의 경계로 삼았다.[援到交阯, 立銅柱, 爲漢之極界也.]"라고 하였다. 한유처럼 〈평회서비〉에 당나라의 한유(韓愈)가 지은 글로, 헌종(憲宗) 때 회서선위초토처치사(淮西宣慰招討處置使)가 되어 오원제(吳元濟)의 반란을 평정한 재상 배도(裴度)의 공을 으뜸으로 서술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平淮西碑》 화곤과 부원 원문의 '화월(華鉞)'은 화곤(華袞)과 부월(鈇鉞)의 약칭이다. 여기서는 임금에게 받는 최고의 은총이라는 뜻을 말한다. 역사 원문의 '죽백(竹帛)'는 죽소(竹素)과 같은 말로, 글을 대쪽이나 헝겊에 쓴 데에서 연유하여 사서(史書)나 서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화락하고 태평해졌네 원문의 '옹희(雍熙)'는 천하가 잘 다스려져서 화락(和樂)한 모양을 뜻한다. 요순(堯舜) 때의 정치를 찬양하는 말에서 유래한다. 진(晉)나라 장형(張衡)의 〈동경부(東京賦)〉에 "백성들이 부유함을 함께하고, 상하가 그 옹희(雍熙)를 함께 누린다.〔百姓同於饒衍 上下共其雍熙〕"라고 하였다. 〈청아〉 〈소아(小雅) 청청자아(菁菁者莪)〉로 인재를 양성함을 노래한 시이다. 《시경》 〈청청자아(菁菁者莪)〉에 "무성하고 무성한 쑥이여, 저 언덕 가운데 있도다.[菁菁者莪 在彼中阿]"라고 하였다. 늦게까지 정사 살피느라 원문의 '소의(宵衣)'는 소의간식(宵衣旰食)과 같은 말로, 임금이 새벽에 일어나고 밤늦게 밥을 먹는다는 뜻인데, 정치에 부지런히 힘쓰는 것을 의미하고, 원문의 '병침(丙枕)'은 병야(丙夜 3경(三更))에 잠자리에 든다는 뜻으로 임금이 정사를 살피다가 늦게야 잠자리에 드는 것을 말한다. 훈육이 …… 옮겨 가 고공단보(古公亶父)는 주(周) 나라 문왕(文王)의 조부(祖父)이고, 훈육은 고대 북방(北方)의 소수 민족 이름으로 중국을 자주 침범하여 포악한 짓을 일삼았다. 고공단보가 빈(豳) 땅에 살고 있을 때 훈육이 침범하자 사람들은 모두 싸우고자 하였는데, 고공단보는 차마 살상을 할 수 없다 하여 기산(岐山) 아래로 옮겨 가니 빈 땅 사람들이 모두 그를 따라갔다. 이에 비로소 주(周)라는 국호를 정하였다. 《書經 武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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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칠언사운에 차운하여 又次七言四韻 관중과 포숙이 함께 살지 않음을 꺼렸거늘 曾嫌管鮑未同居오히려 아름다운 명성 만대에 성하구나 猶自流芳萬代餘수년 동안 자리를 함께했던 그대와 나 連席數年君共我굳은 우정 훗날까지 변치 않으리 斷金他日子兼余강에 막혀 삼 년이나 이별했건만 隔江謾作三秋別아득히 사월 초에 만나기를 기약하네 會面遙期四月初서울의 수십 만 집을 돌아보지만 回首長安家十萬타향의 답답한 마음 누구에게 하소연할까 羈懷鬱鬱向誰攄 曾嫌管鮑未同居, 猶自流芳萬代餘.連席數年君共我, 斷金他日子兼余.隔江謾作三秋別, 會面遙期四月初.回首長安家十萬, 羈懷鬱鬱向誰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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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又 나그네가 남산 가까이 사는데 客寓南山近매미 우는 소리가 먼 숲에서 울리네 蟬聲咽遠林국화는 가련하게 비를 막 맞는데 菊憐新得兩사람은 오랜 친구와 이별을 한다네 人別舊知音처량한 저녁 무릎 감싼 채 읊조리며72) 抱膝吟凉夕밤늦도록 벗과 함께 앉았네 友㶊坐夜深고향으로 돌아갈 날 다다르니 桑鄕歸日迫떠남과 머무름 모두 마음쓰이네 去住摠關心 客寓南山近, 蟬聲咽遠林.菊憐新得兩, 人別舊知音.抱膝吟凉夕, 友㶊坐夜深.桑鄕歸日迫, 去住摠關心. 처량한 …… 읊조리며 제갈량(諸葛亮)의 〈포슬음(抱膝吟)〉을 차용한 것이다.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이 출사(出仕)하기 전 남양(南陽)에서 몸소 농사를 지을 때 〈양보음(梁甫吟)〉이란 노래를 지어 매일 새벽과 저녁이면 무릎을 감싸 안은 채 길게 불렀던 데서 유래한 말로, 고인(高人)과 지사(志士)가 시를 읊어 심회를 푸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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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移居 조물주가 어느 해에 작은 언덕을 잉태하여천년 동안 남겨 두고서 나의 유람을 기다렸나남아는 바위 골짜기에 깃들일 필요 없으며농사짓는 늙은이 어찌 들판 도랑을 따로 마련한 적이 있었던가산은 푸른 비녀230) 두르고서 상서로움을 바치고물은 현주(玄酒)231) 머금고서 옥구슬 연주하네아침저녁 안개와 노을로 입안을 닦으니치아와 혀 청량하여 상쾌한 기운 모이네 造物何年孕小邱却留千載待吾遊男兒不必棲巖壑農老何曾別野溝山帶碧簪呈寶瑞水含玄酒奏瓊球烟霞朝暮漱牙頰齒舌淸凉爽氣收 푸른 비녀 푸른 산봉우리를 말한다. 현주(玄酒) 물을 의미한다. 먼 옛날 아직 단술[醴酒]이 발명되기 전에 술 대신 물을 사용하였는데, 물 색깔이 검은색이므로 물을 '현주(玄酒)'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 후한(後漢)의 유학자 정현(鄭玄)은 이에 대해 설명하기를, "현주는 새로 길은 물이다. 비록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진설하는 것은 옛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玄酒 新水也 雖今不用 猶設之 不忘古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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