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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愼氏)【성필(聖弼)】에게 답하는 편지 答愼【聖弼】書 일전에 소은공(素隱公)110)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소미성(小微星)이 빛을 숨기는 아픔111)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혹서와 질병으로 인해 아직까지 편지 한 통을 올려 위로를 드리지 못하였는데, 이렇게 손수 쓰신 편지를 먼저 받게 되니 열어서 읽고 난 뒤 부끄러운 마음 끝이 없습니다. 하늘이 어찌 유독 우리 호남에만 이렇게까지 액운을 내리신단 말입니까? 학문이 우리나라에 크게 행해진 뒤로 훌륭하고 뛰어난 재사(才士)들이 호남에 많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가법(家法)을 마음에 둔 사람은 존재(存齋)112) 한 분 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 사이에 다행히 성암(惺菴)113)이 나왔으니, 후학들의 기대가 어떠하였습니까? 그러나 우러러볼 곳을 잃은 아픔114)이 농부가 가을 추수를 바라는 듯이 하는 날에 갑자기 일어났으니, 이른바 하늘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또 생각건대 선생께서 의발(衣鉢)을 전해주신 것이 불행히도 더욱 드무니, 마음으로 전하신 뜻을 계승하여 선생의 명성을 영원히 실추시키지 않을 자는 또한 현공(賢公) 형제 중에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 현공께서 자임(自任)하실 중임은 평소 함장(函丈)115)을 가까이서 모실 때와 크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현공께서는 힘쓰십시오.보내주신 편지를 자세히 읽어 보니, 슬프고 애통하며 간절하고 애처로운116) 말에서 저를 비루하다고 하여 외면하시지 않는 뜻을 충분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제넘고 경솔하게 이러한 점을 언급하였으니, 도리어 두렵고도 부끄럽습니다.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日前聞素隱公捐館之音。不任小微隱光之痡。顧以酷炎病苦。尙稽一奉書以慰。玆承以手書先之。開讀之餘。愧騂無極。天何獨厄於我南湖一至於此歟。自b036_382a斯學之大行於鰈邦。豪才傑士。非不多於南湖。而至以程朱家法存心者。存齋一人而已。而百年之間。幸得惺菴之出。則後學之望如何如何。而安仰之痛。遽發於如農望秋之日。所謂天者不可諶矣。且念先生衣鉢之傳。不幸又鮮。紹述心傳之旨。永不墜門墻之聲者。亦不在於賢公伯仲間耶。自此賢公自任之重。有大異於平日跬步函丈間也。惟賢公勖之。細讀來書。悲哀懇測之辭。足見不以卑鄙爲外之意。僭率及此。還覺悚愧。伏惟情諒。 소은공(素隱公) 신천익(愼天翊, 1592~1661)을 가리킨다. 소은(素隱)은 그의 호.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백거(伯擧)다. 1612년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정자, 이조 참의를 지냈는데, 광해군의 실정을 보고 사직하여 전라남도 영암에 은거하였다. 인조반정 후 홍문관‧사간원의 요직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54년에 다시 나와서 홍문관 부제학, 대사간, 이조 참의, 이조 참판, 한성부 우윤 등을 역임한 뒤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소미성(小微星)이……아픔 '소미성(少微星)'은 처사(處士)를 상징하는 별이다. 이 별이 희미해지거나 떨어지면 인간 세상의 처사(處士)가 죽는다고 한다. 진(晉)나라 사부(謝敷)는 자가 경서(慶緖)인데, 성품이 맑고 욕심이 없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태평산(太平山)에 10여 년 동안 은거하였다. 하루는 달이 소미성을 범하자 점치는 사람이 "처사가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당시 명망이 높았던 대규(戴逵)가 죽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부가 죽었다고 한다. 《晉書 卷94 隱逸列傳 謝敷》 존재(存齋)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을 가리킨다. 존재(存齋)는 그의 호.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명언(明彦), 다른 호는 고봉(高峯)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58년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수찬, 병조 좌랑, 이조 정랑, 사헌부 지평, 홍문관 교리, 사헌부 헌납 등을 역임하였고, 1567년 선조가 즉위하자 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에 대한 추증을 건의하였다. 이후 대사성, 대사간, 공조 참의 등을 지낸 뒤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던 도중에 고부(古阜)에서 객사하였다.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발췌하여 《주자문록(朱子文錄)》을 편찬하는 등 주자학에 정진하였다. 이황과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편 일이 유명하다. 성암(惺菴) 이수인(李壽仁, 1601~1661)을 가리킨다. 성암(惺菴)은 그의 호.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안(幼安)이다. 1633년 과거에 급제하여 전적, 병조좌랑,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642년 재차 전적에 제수되었으나 사은한 뒤 바로 전리(田里)로 내려갔으며, 이후로도 여러 차례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우러러볼……아픔 원문은 '안앙지통(安仰之痛)'이다. 훌륭한 스승이 죽은 데 대한 슬픔을 말한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가 꺾이는구나. 철인이 시드는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 노래하였는데, 자공(子貢)이 이 노래를 듣고는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가 장차 어디를 우러러보며, 대들보가 꺾이고 철인이 시들면 우리가 장차 어디에 의지하겠는가.[泰山其頹 則吾將安仰 梁木其壞 哲人其萎 則吾將安放]"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함장(函丈) 한 길[丈]을 용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스승과 강론하는 자리를 의미하며, 스승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만약 음식을 대접하는 손님이 아니고 스승과 강론하는 자리이면 자리를 펴되 한 길쯤 되는 공간을 띄운다.[若非飮食之客 布席 席間函丈]"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애처로운 원문은 '측(測)'인데, 문맥을 살펴 '측(惻)'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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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언(李正言)117)【수인(壽仁)】에게 답하는 편지 答李正言【壽仁】書 신군(愼君) 형제118)가 연이어 방문하여 이를 통해 훌륭한 소식을 가득 얻었으니, 조금이라도 만나서 조용히 이야기 나누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천금과 같이 귀한 편지를 멀리 텅 빈 골짜기119)로 보내주실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로 인하여 도(道)를 닦으시는 체후가 맑고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몹시 마음이 확 트입니다.다만 생각건대 선진(先進)이 후진(後進)을 이끌어 나아가게 하는 데 있어서는, 차근차근 순서를 두어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에 이르고 낮은 곳에서부터 높은 곳에 이르러 발꿈치를 세워 정하고서120) 실제적인 힘을 점차 쓰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보내주신 말씀 가운데 '남쪽 너머에서 우뚝하다', '도의(道義)를 창도하였다'는 등의 몇 마디 말은 비록 초학자를 격동시켜 광대한 전지(田地)에 나아가게 하고자 하는 두터운 뜻이지만, 비루한 저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몇 마디 말들은 비록 노사(老師)나 숙유(宿儒)에게 해당시키더라도 반드시 두려워하며 움츠리고 물러나 감히 자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비루하고 못난 저와 같은 사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편지지를 앞에 두고서 망연(茫然)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영악(靈岳)에서의 기이한 유람은 평소 꿈에 그리던 것이었으며 도(道)가 높으신 분을 받들어 모시는 것 또한 하나의 성대한 일이니, 한 번에 두 가지를 획득하는 것은 좀처럼 얻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속세의 번거로움에서 깨어나지 못하여 잡다한 일로 인해 기회를 잃고 말았으니, 마시고 쪼아 먹는 데에도 또한 운수가 있음을 비로소 알겠다. 남쪽을 바라봄에 서글픈 마음이 지극하였다.】 愼君兄弟相繼來尋。是用飽得蘭聞。思欲少奉從容而不可得也。何意千金珍札。遠投虗牝。仍審道履淸迪。伏豁伏豁。第念先進之引進後進。當旋旋有序。自近及遠。由下至高。使之立定脚跟。漸用實力。來喩南表之特道義之倡數語。此雖激動初學。使之進步於廣大田地之厚意。然鄙意以爲此數等語。雖使老師宿儒當之。必慄慄退縮而不敢處也。况陋劣者耶。不勝臨紙憮然。【靈岳奇遊。夙日夢想。承接道宇。亦一盛事。一發兩獲難得之擧。而塵煩未幻。冗故有奪。始知飮喙亦有數也。南望悵然之至。】 이 정언(李正言) 이수인(李壽仁, 1601~1661)을 가리킨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안(幼安), 호는 성암(惺菴)이다. 1633년 과거에 급제하여 전적, 병조좌랑,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642년 재차 전적에 제수되었으나 사은한 뒤 바로 전리(田里)로 내려갔으며, 이후로도 여러 차례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신군(愼君) 형제 김만영과 교유하던 신성필(愼聖弼) 형제를 가리키는 듯하다. 신성필은 성균관 생원 신광익(愼光翊)의 아들로, 형은 신성윤(愼聖尹), 아우는 신성망(愼聖望)이다. 텅 빈 골짜기 원문은 '허빈(虗牝)'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텅 빈 골짜기를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자신이 은거하는 곳을 가리킨다. 한유(韓愈)의 〈증최립지평사(贈崔立之評事)〉 시에, "가련하다. 쓸데없이 정신만 허비할 뿐, 황금을 텅 빈 골짜기에 던지는 것과 같도다.[可憐無益費精神 有似黃金擲虛牝]"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韓昌黎集 卷4》 발꿈치를 세워 정하고서 원문은 '입정각근(立定脚跟)'이다. '각근'은 기초‧기본‧근저를 의미하는 말로, '발꿈치를 세워 정한다'는 것은 곧 학문의 기초‧기본을 튼튼히 다진다는 뜻이다. 《소학집주(小學集註)》 총론에서 주희(朱熹)가 "지금은 모두 소학의 공부를 놓치고 지나쳐 버려 다시 돌아가 공부할 수 없으니, 다만 지금의 처지에 의거하여 곧바로 머물러 발꿈치를 세워 정하고 공부해야 한다. 30세에 깨달았다면 곧 30세부터 발꿈치를 세워 정하고 공부를 하며 곧 나이 8, 9십 세에 깨달았다면 또한 마땅히 현재 처한 상황에서 공부해야 한다.[今都蹉過了 不能更轉去做 只據而今地頭 便劄住立定脚跟做去 如三十歲覺悟 便從三十歲立定脚跟做去 便年八九十歲覺悟 亦當據現在劄住做去]"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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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한(李典翰)【수인(壽仁)】에게 답하는 편지 答李典翰【壽仁】書 삼가 생각건대 산재(山齋)가 깨끗하고 밝으며 지금의 날씨가 맑고 화창하여 보중(保重)하시는 가운데 도(道)를 음미하시는 일이 날로 참다울 것이니, 우러러 바라보는 마음이 어느 날인들 간절하지 않겠습니까? 연전에 나아가 뵈었을 때 올 봄에 산방(山房)에 조용히 나아가겠다는 뜻으로 말씀하셨으니, 기대한 지 오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번에 듣건대 거듭 병을 앓으시어 성상의 소명(召命)이 여러 차례 이르렀음에도 달려가지 못하셨다고 하니, 예사로운 산방의 모임을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저 또한 평소 앓던 풍현(風眩)121)이 봄이 되자 다시 일어나 여름 전에 한 번 인사드리는 일을 점칠 수 없을 듯하니, 우러러보며 서글퍼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덕이 높은 분을 외람되이 모시고 깨우침과 가르침을 받드는 일을 이미 쉽게 이룰 수 없게 되었으니, 편지 한 통을 올려 지극한 가르침을 받기를 원하여 고질적인 병통을 바로잡는 도구로 삼고자 생각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주제넘고 비루하다고 하여 굳게 거부하지 마시고 답장을 보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저는 어린 나이 때부터 비루하고 못난 자질을 헤아리지 않고 망령되이 이 일에 뜻을 두었으나 어리석어 힘을 쓸 방도를 알지 못하였으니, 마침내 이 학문의 본말과 오묘함이 지극히 심오하고 지극히 높아서 아득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발꿈치를 하학(下學)의 일상적인 곳에 두지 않아122) 성정(性情)이 고원하여 행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서로 치달려 저도 모르게 물외(物外)에 마음을 풀어놓는 노장(老莊)이나 텅 비고 적막한 데에서 마음을 노니는 불가(佛家)로 점차 흘러 들어갔습니다. 옆길과 굽은 길을 지나느라 발이 부르트고 허벅지에 알이 배겨 10여 년의 정력(精力)을 허비하고 강건한 시절을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점차 연로해지고 기운이 점차 쇠약해짐에 이른 뒤에야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는 탄식123)이 일어 비로소 병주(竝州)는 실로 나의 고향이 아님을 깨닫고서124) 머리와 발걸음을 돌린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밝은 스승과 힘이 있는 벗으로서 앞장서서 지휘해 줄 사람이 없어 묵은 서적과 해진 종이만을 고집스레 지키고서 얻는 바가 없으니, 한밤중에 스스로 생각함에 저도 모르게 등에서 땀이 흐릅니다.일찍이 듣건대 배움이 넓지 못한데 먼저 자기 몸을 단속한다면 선가(禪家)로 흐르고, 자기 몸을 단속하지 않고서 한갓 널리 배우기만 한다면 잡학(雜學)으로 흐른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여러 책을 널리 배우고 여러 이치에 모두 이르고자 하는데 총명함이 미치지 못하고 법도가 서지 않아 어지러운 생각이 쌓여 본원(本源)이 도리어 거칠어지니, 이러한 폐단을 징치(懲治)하여 실제적인 곳에 귀결시켜 지극히 고요한 경계에 오로지 힘을 쓰고자 한다면 체(體)는 있으나 용(用)은 없는 데로 흘러가기 쉬울까 염려스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잡학에 빠지지 않고 또 자기 몸을 단속하기만을 고수하지 않아 동정(動靜)이 서로 길러지고 본말이 서로 의지하여 전날의 더러운 습관을 통렬히 씻어내고 날로 새로워지는 걸음에 넉넉히 들어가 중도에서 헤매다가 알려지지 못하고 죽는 일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한 마디 번뜩이는 밝은 말125)을 내려서 중요한 길을 열어 보여주신다면 종신토록 마음에 새겨 두겠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먼저 병통에 걸린 이유를 안 뒤에 증상에 맞는 약제를 내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때문에 전후로 구구절절 숨김없이 다 말씀드린 것입니다. 살펴 헤아려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伏惟山齋淨明。時日淸和。保練之中。味道日眞。瞻望之懷。何日不馳。年前晉拜之時。敎以今春穩就山房之意。企待久矣。頃聞重致愆和。未赴聖召之稠至。則等閑山房之會。安可爲也。萬英亦素患風眩。當春更發。夏前一拜。似未可卜。瞻悵之情。難以名言。叨陪德宇。獲承警誨。旣未易辦。則思奉一書。願得至敎。以爲砭刺痼病之具。伏惟毋以僭陋堅拒。而辱覆之如何。萬英盖自幼少之年。不揣其質之陋劣。妄有意於此事。而昏不知施力之方。遂意此學之源委要妙。至玄至高。而在冥冥難測之中。於是脚跟未住於下學平常之地。而情性交馳於高遠難行之上。不自覺其駸駸然流入於放懷物表之莊老。游心虛寂之幻釋。傍蹊曲徑。足腁股胝。而枉費十許年精力。送了強壯中日月。至於年漸向老大。氣漸垂凋弊然後。有日暮道遠之歎。而始覺並州實非我故鄕。回頭反踵。有餘年矣。而旣無明師疆輔先路而指揮。陳編敗紙。膠守而無得。中夜自思。不覺背汗矣。盖嘗聞之。學不博而先約則流於禪。不約而徒博則流於雜。今欲博學羣書。該格衆理則聰明不及。權度不立。亂想委積而本源反荒。欲懲是弊而歸宿於實地。專用力於至靜之界則恐易流於有軆無用之歸。何以則旣不失乎雜。又不固於約。動靜交養。本末相須。而痛湔前日之染。優入日新之步。以免倀倀中塗。無聞而死也。幸垂一轉明言。開示要路則當終身服膺焉。雖然必先知受病之由然後。當下對症之劑。故前後縷縷。悉陳而無隱。伏惟鑒裁。 풍현(風眩) 몸이 허한 때에 풍사(風邪)가 머리에 침습하여 생기는 어지럼증의 일종이다. 발꿈치를……않아 원문의 '각근(脚跟)'은 기초‧기본‧근저를 의미하는 말로, '발꿈치를 하학(下學)의 일상적인 곳에 두지 않았다.'는 것은 곧 학문의 기초‧기본을 튼튼히 다지는 데 힘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소학집주(小學集註)》 총론에서 주희(朱熹)가 "지금은 모두 소학의 공부를 놓치고 지나쳐 버려 다시 돌아가 공부할 수 없으니, 다만 지금의 처지에 의거하여 곧바로 머물러 발꿈치를 세워 정하고 공부해야 한다. 30세에 깨달았다면 곧 30세부터 발꿈치를 세워 정하고 공부를 하며 곧 나이 8, 9십 세에 깨달았다면 또한 마땅히 현재 처한 상황에서 공부해야 한다.[今都蹉過了 不能更轉去做 只據而今地頭 便劄住立定脚跟做去 如三十歲覺悟 便從三十歲立定脚跟做去 便年八九十歲覺悟 亦當據現在劄住做去]"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날은……탄식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사기(史記)》 권6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 초나라 사람 오자서가 자신의 가혹한 복수를 질책하는 신포서(申包胥)에게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기에 내가 어쩔 수 없이 일을 거꾸로 행하며 하늘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하였다.[吾日莫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병주(竝州)는……깨닫고서 당(唐)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도상건(渡桑乾)〉에, "병주의 나그네살이 십 년이 지나도록, 밤낮으로 고향 함양에 돌아가고 팠어라. 무단히 다시금 상건수 물을 건너니, 돌아보매 병주가 바로 고향처럼 느껴지더라.[客舍幷州已十霜 歸心日夜憶咸陽 無端更渡桑乾水 却望幷州是故鄕]"라 하였다. 본래 타향이라도 오래 살아 정이 들면 고향처럼 느껴짐을 비유할 때 흔히 인용되는 대목인데, 여기서는 자신이 해 오던 학문 방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말 원문은 '일전명언(一轉明言)'으로, 곧 '일전어(一轉語)'를 뜻한다. 일전어는 선가(禪家)에서 유래한 말로, 깨달음의 계기를 제공해 주는 한마디의 번뜩이는 어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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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의 시축에 차운하다 次僧軸韻 산에 사는 산승이 시축에 시 쓰니청려장 짚고 찾아갈 고생할 필요 없네앉아서 선경을 전부 볼 수 있으니절반은 봉우리요 절반은 계곡이라 山在山僧軸上題不須辛苦費携藜坐來收得仙區盡一半峰巒一半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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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노첨 동망231)을 희롱하다 戲崔魯詹 東望 전생엔 제갈량이요 후생엔 그대이니옛사람과 지금 사람을 구분짓지 말라예로부터 〈양보음〉 읊기 좋아했으니지금도 여전히 따뜻한 봄을 만나길 원하네232) 諸葛前身子後身莫將分作古今人從古好爲梁甫詠至今猶願見陽春 최노첨 동망 최동망(崔東望, 1557∼?)으로,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노첨(魯瞻), 호는 재간(在澗)이다. 최립(崔岦)의 아들이다. 예로부터……원하네 〈양보음(梁甫吟)〉은 초나라 지방의 악부곡으로, 제갈량(諸葛亮)이 출사하기 전에 즐겨 읊었던 노래이다. 또 당나라 이백(李白)의 〈양보음〉 시에 "길게 양보음을 부르노니, 어느 때나 양춘을 볼거나.[長嘯梁甫吟, 何時見陽春.]"라고 하여, 지사(志士)가 임금의 지우를 입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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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문268)에 머물며 무지개를 보다 留薊觀虹 한쪽에는 석양 비치고 한쪽에는 비 내리는데갑자기 긴 무지개가 푸른 하늘에 걸렸누나옥황상제가 내 사행길 힘든 줄 아시고는특별히 공중에 무지개다리 놓아 주었구나 一邊殘照一邊雨忽有長虹掛碧霄玉皇知我乘槎苦特許空中架彩橋 계문(薊門) 북경의 덕승문(德勝門) 밖의 지역으로, 북경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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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생각하다 2수 憶慈親【二首】 편지를 써서 어머니께 알려드리니나랏일 마쳐야 이 아들 비로소 돌아갑니다세밑에서야 집에 돌아갈까 걱정 마소서행장에 그래도 촘촘히 꿰맨 옷 있습니다269)해가 긴 여름 오월에 막 객이 되었는데보름달 뜬 중추절에도 아직 돌아가지 못했네이르노니, 서풍이여 급히 불지 말라추워져도 다시 겨울옷 받지 못하니 裁書爲報慈親道王事休來兒始歸莫畏還家落歲暮行裝猶有密縫衣日長夏五初爲客月望中秋尙未歸爲報西風吹莫急寒來不復授寒衣 행장엔……있습니다 어머니가 먼 길을 떠나는 자식을 위하는 마음을 형용한 것이다. 당나라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시에 "자애로운 어머니 손안의 바느질한 실올은,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의 몸에 걸칠 옷이라오. 떠나갈 때에 임하여 촘촘히 꿰매신 것은, 마음속에 더디 돌아올까 염려해서이네.[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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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참의에 대한 만시 趙參議輓 그대 형님은 나에게 장인뻘이요그대 아우는 나보다 한 살이 많지옛날 호서에서 사별할 때 흘닌 눈물 생각나니지금 또 옷깃 적실 줄 어찌 알았으랴 令兄爲我丈人行賢季於吾一歲强憶昔湖西死別淚豈知今日又霑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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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3 卷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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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이 건강이 좋지 않아 죄인을 사면하는 교서를 반포하는 글 中殿失寧頒赦文 잘못이 없이 재액에 걸렸으니약을 쓰지 않는 기쁜 일1)을 점치지 않아도 알아라.선을 쌓아 넘치는 경사가 있으리니이에 사생2)의 은혜를 미뤄 넓혔어라.함께 살면서그들이 다시 시작하게 하려는 것이네.삼가 생각건대, 일찍이 건도와 짝하여끝내 곤의를 바르게 하였어라.유정한 덕3)을 드러내니모두들 천년 뒤의 태사4)라고 칭하였네.공은 사직에 남아 있으니십난 가운데 읍강5)에 부끄럽지 않아라.하늘이 명복의 반포를 시행하였고백성들이 복록의 노래를 널리 전파하였네.어찌 생각이나 했으리, 세자6)가 문안드리다가7)왕비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고 갑자기 전할 줄을.한 달 넘게 병으로 앓아산천도 규벽8)에 응하지 않았어라.그때 혹한의 날씨라인삼, 복령의 탕약도 도움이 되지 못하였네.이에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오랫동안 질곡의 고통당한 것을 생각하였어라.죄가 있건 없건 간에모두 천지에서 같은 기를 받았으니임금이 되건 백성이 되건똑같이 몸에 질병의 아픔이 있누나.만약 억울한 원망이 있다면어찌 천지에 감통하리오.이에 백성의 부모된 마음으로자제들의 허물을 기록하지 않으리.법에 오형이 있으니비록 큰 죄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였어도,여덟 가지를 따져본9) 뒤에 권도를 따라마땅히 잡범은 용서해 주어야 한다.오호라! 죄가 의심스럽거든 가볍게 처리하고공은 의심스럽거든 무겁게 처리하라10) 했으니온 삼한이 은혜를 함께 받도록 하라.어그러진 기는 재앙을 이르게 하고온화한 기운은 상서로움을 이르게 하니백성들과 함께 장수의 지경에 오르게 하노라.그러므로 이에 교시하나니마땅히 자세히 알 것이라 생각하노라. 无忘1)罹災未卜勿藥之喜積善有慶玆推肆眚之恩欲其幷生與之更始恭惟夙配乾道終正坤儀德著幽貞咸稱千載後太姒功存社稷不愧十亂中邑姜天申命服之頒民播福履之詠何圖鶴駕之問寢遽報翟幃之愆和月餘彌留山川未應於圭壁時當嚴沍湯劑無賴於蔘苓爰思囹圄之囚久被桎梏之苦有罪無罪同受氣於生成作君作民均在身之疾痛苟有冤怨何能感通肆以父母之心不錄子弟之過五刑有法雖大憝之必誅八議從權宜雜犯之見宥云云嗚呼罪疑惟輕功疑惟重擧三韓共沐恩波乖氣致灾和氣致祥與百姓同躋壽域故玆敎示想宜知悉 잘못이……일 《주역》 〈무망괘(无妄卦) 구오(九五)〉에 "아무런 까닭이 없이 걸린 병이니,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낫는 희소식이 있으리라.[无妄之病, 勿藥有喜.]"라고 하였다. 사생 사생(肆眚)은 무의식적으로 범한 실수나 상황이 불운해서 지은 죄는 용서하여 풀어 주는 것을 말한다. 유정한 덕 유한정정(幽閑靜貞)의 준말로 곧 왕비의 정숙한 덕을 말한다. 태사 문왕의 부인이나 무왕의 어머니이다. 십난……읍강 난(亂)은 치(治)의 뜻으로, 주 무왕(周武王)에게 난신(亂臣) 10인이 있었는데, 그중에 무왕의 처 읍강(邑姜)이 들어 있다. 《書經 泰誓》 새자 '학가(鶴駕)'는 《열선전(列仙傳)》에 "주영왕(周靈王)의 태자(太子) 진(晉)이 흰 학을 타고 칠월 칠일 산봉우리에 두어 날을 머물다 떠나갔다."라고 하였는데, 뒷사람이 태자의 행차를 이르게 되었다. 여기서는 태자를 가리킨다. 세자가 문안드리다가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와 세자 광해군을 가리킨다. 규벽 신명(神明)에게 제(祭)를 올릴 때 폐백으로 쓴 것인데, 무왕(武王)이 병이 들자 주공(周公)은 규벽을 가지고 제를 지내면서, 자신이 대신 죽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였다. 여덟 가지를 따져본 형벌을 적용할 때 감안해 주는 여덟 가지 경우를 말한다. 첫째는 의친(議親)인데, 황제의 단문(袒免) 이상의 친족과 황태후의 시마(緦麻) 이상의 친족 및 황후의 소공(小功) 이상의 친족이 해당된다. 둘째는 의구(議舊)인데, 옛 친구가 해당된다. 셋째는 의현(議賢)인데, 큰 덕행이 있는 사람이 해당된다. 넷째는 의능(議能)인데, 큰 재주와 공업(功業)이 있는 사람이 해당된다. 다섯째는 의공(議功)인데,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이 해당된다. 여섯째는 의귀(議貴)인데, 직사관(職事官)은 3품 이상, 산관(散官)은 2품 이상, 급작(及爵) 1품이 해당된다. 일곱째는 의근(議勤)인데, 큰 노고가 있는 사람이 해당된다. 여덟째는 의빈(議賓)인데, 선대(先代)의 후손으로 국빈(國賓)이 된 자가 해당된다. 《唐律疏議 名例》 죄가……처리하라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법관인 고요(皐陶)가 순(舜) 임금의 살리기 좋아하는 덕을 찬양하면서 "죄가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가벼운 쪽으로 처벌하고, 공이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중한 쪽으로 상을 주었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형법대로 집행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감수하려고 하였다.[罪疑惟輕 功疑惟重 與其殺不辜 寧失不經]"라고 하였다. '忘'은 '妄'의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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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역적 허균이 복주된 것을 하례하는 전문 昌原賀逆筠伏誅箋 나라의 법은 상도(常道)가 있으니역적의 죄인을 어찌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리오.이에 왕업의 큰 토대가길이 반석같이 편안한 곳에 올리어질 것이라.무릇 보고 듣는 이들은모두 발을 구르며 춤을 출 것이라.삼가 생각건대, 덕이 견고한 상성께서중흥의 운을 만났어라.11)총애하는 은전이 자주 명에서 내려와스물네 글자의 휘호를 크게 받았어라.훌륭한 업적은 선대왕보다 많아서천만 대의 크나큰 계책을 성대하게 열었네.누가 감히 그 사이에 모반의 싹을 지녀서스스로 부월의 죽임으로 나아가랴.뜻밖에도 집안의 적자가또한 나라에 난신이 되었어라.모친이 돌아가셔도 상을 지내지 않으니이것이 차마 하는 것이요.자신은 죽음을 당해도 죄는 남거늘무엇이 괴로워 배반하는가.정상은 자술서에 이미 드러났으니대중들이 버림에 처형을 어찌 늦추리오.12)《춘추》의 군친을 해하려는 마음과 한법의 대역무도13)는너에게서 나왔으니 너에게로 돌아간다14)는 것이니 처벌해야 하네.오형을 두루 논하여 삼족을 아울러 멸해야 하니꾀를 냄에 공교로우면 그 꾀에 넘어간다15)는 경우의 밝은 증험이라.비록 그의 목숨이 여우 쥐처럼 미약하다고 해도나라에 있어서 그 경사 승냥이 이리를 없앤 듯하여라.삼가 생각건대 남쪽 고을의 백수 늙은이북궐 향하여 일편단심이라네.천세 부르며 축원하는데16)원로의 반열17)에 달려가지 못하지만해는 멀리 있고 하늘은 높으니해바라기의 정성은 시들지 않아라. 邦刑有常逆竪豈容乎網漏罪人斯得丕基永措於磐安凡在瞻聆無非蹈舞恭惟德固上聖運値中興寵典屢自天朝誕膺卄四字之徽號嘉績多于先烈蔚啓千萬歲之洪圖誰敢孽芽其間自就鈇鉞之戮不意家之賊子又於國爲亂臣母歿不臨喪是可忍也身死有餘罪何苦叛乎情狀旣露於自供誅討寧緩於衆棄春秋無將漢法不道出乎爾反乎爾之通辭五刑具論三族幷夷工於謀敗於謀之明驗雖渠命本微狐鼠在國慶若除豺狼伏念白首南州丹心北闕嵩呼華祝鴛鷺之班未趨日遠天高葵藿之傾不替 중흥의 운을 만났어라 중흥은 반정(反正)을 가리키니, 여기서는 인조의 반정을 이른다. 대중들이……늦추리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사람을 시장에서 처형하여 대중들과 함께 그를 버린다.[刑人於市 與衆棄之]"라고 하였다. 춘추의……대역무도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장공(莊公) 32년조에 "장래에 군주나 부모에 대하여서는 배반하겠다고 생각만 하고 아직 실천에 옮기지 아니하였다고 하여도 용서받지 못하고 주살한다.[君親無將, 將而誅焉]'라고 하였으며, 같은 책 소공(昭公) 원년 조에 "군친(君親)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만약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는 반드시 복주시켜야 한다.[君親無將 將而必誅焉]"라고 하였다. 한 고조(漢高祖)가, 항우(項羽)가 의제(義帝)를 강남(江南)에서 시해하자 대역부도라고 하였다. 《史記 高祖本紀》 너에게서……돌아간다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증자가 말하기를, '경계하고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戒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也]'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선과 악은 자신이 남에게 베푼 대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꾀를……넘어간다 《고문진보》 〈서오대곽숭도전후(書五代郭崇韜傳後)〉에서 "모략을 좋아하는 선비는 모략에 패망하고 변론을 좋아하는 선비는 변론에 패망한다.[好謀之士, 敗於謀, 好辯之士, 敗於辯.]"라고 하였다. 축원하는데 '화축(華祝)'은 화봉인(華封人)의 삼축(三祝)을 줄인 말로,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는 말이다. 화 땅을 지키는 사람[華封人]이 요 임금에게 수(壽)와 부(富)와 다남(多男)을 축원했다는 《장자(莊子)》 〈천지(天地)〉의 일화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는 다만 축원하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원로의 반열 '원로(鴛鷺)' 원추새와 백로인데, 이 두 새는 모습이 한아(閑雅)하고 질서가 있다 하여 조정 반열에 늘어선 백관을 비유하는 말로 곧잘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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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李生)【유인(有仁)】에게 주는 편지 與李生【有仁】書 누추하고 궁벽한 곳에 거듭 방문해주시고 또 지은 글을 보여 주시니, 배움에 대한 뜻이 두텁고 논의가 넓음을 흠모하고 공경합니다. 기본이 이와 같으니, 수립하는 것의 어려움을 어찌 근심하겠습니까? 몹시 탄복할 따름입니다.다만 세상에서 이 일을 하는 자는 두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마음 지키기만을 전적으로 하는 자는 문자를 천하게 여기고 언사(言辭)를 풍부하게 하는 자는 본체를 소홀히 여기니, 이는 고금의 공통되는 근심입니다. 초학자는 다만 마땅히 옛 사람이 이루어 놓은 법을 준수하고 법도를 어기지 않아 견문을 넓히고 몸소 실천하며 몸소 실천하고 마음과 몸을 밝게 한 뒤에야 말을 하고 글을 이루어 선현(先賢)들에 부합하고 후세에 모범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육경(六經)의 전술(傳述)이 천하를 두루 방문한 뒤에 이루어졌고143) 두 책의 장구(章句)가 기유년(1189년)에 지어졌던 것144)이니, 도(道)가 무르익고 덕(德)이 이루어진 때에 말을 세운 것은 도가 행해지지 않은 뒤에 지은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한 글자라도 혹 잘못되어 후세 사람을 그르칠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루하고 못난 견해로 평소 정한 것이 이와 같기 때문에 이에 감히 대략 언급하였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어진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말에 병통이 있다면 깨우쳐 주시기를 바랍니다.그대가 지은 글 가운데 두세 군데 의문이 있는 곳에 모두 먹을 칠하여 표시하거나 각주를 달아 두었습니다. 비루한 견해가 맞는지 틀린지를 또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부지런히 찾아와 주신 데 감격하여 광망함과 경솔함이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몹시도 부끄럽습니다. 봄이 저물기 전에 혹 직접 만나서 물을 수 있겠습니까? 重臨陋僻。又辱眎所製文篇。欽尙向學意篤。論議廣博。根基若此。何患樹立之難也。傾服傾服。但世之爲此事者有二病。專內守者賤文字。富言辭者忽本軆。此古今之通患。初學但當遵守古人成法。不違繩墨。聞見博而踐履實。踐履實而心體明。然後吐言成章。可以有符於往哲。垂法於來世。是以六經傳述。成於歷聘之後。二書章句。述於己酉之年。盖以言立於道熟德成之日者。非徒不行而後作也。亦恐一字或舛。以誤後人也。鄙拙之見。素定如此。故玆敢略及。未知賢意以爲如何。其言有病。幸相箴可也。賢述文字二三所疑處。皆以墨抹以標之。或有註脚。鄙見得失。亦可回敎。感惠顧之勤。狂率至此。愧仄萬萬。春未暮。或可面扣耶。 육경(六經)의……이루어졌고 '육경(六經)'은 유가(儒家)의 여섯 가지 경서를 말한다. 곧 《시경(詩經)》‧《서경(書經)》‧《예기(禮記)》‧《악기(樂記)》‧《역경(易經)》‧《춘추(春秋)》로, 공자가 천하를 주유한 뒤인 말년에 편찬하였다고 전해진다. 두……것 주희(朱熹)가 60세 되던 1189년에 《대학장구》와 《중용장구》를 완성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서〉와 〈중용장구서〉를 각각 1189년 2월과 3월에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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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생(文生)145)【사고(師古)】에게 주는 편지 與文生【師古】書 눈 속을 헤치고 찾아와 주신 일이 마치 어제의 일과 같습니다. 가르쳐 주시고 돌아봐 주시는 사이에 봄날이 이미 화창해졌는데, 이러한 때에 또 안부를 묻는 편지를 받고서 산 위의 높은 재(齋)에서 날마다 맑은 수양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저로 하여금 머리를 들고 정신이 향하도록 합니다.말씀하신 성복(成服)146)하였을 때의 제사는 예(禮)에 비록 별도로 마련된 글이 없기는 하나 조전(朝奠)은 습속을 따라 설행하더라도 정리(情理)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듯합니다.어육(魚肉)을 날것으로 쓰는 문제는 아마도 율곡(栗谷)을 따르는 것이 옛 뜻에 부합하는 것일 듯한데, 사계(沙溪)147)와 같은 분께서도 또한 습속이 오래되어 바꾸기 어렵다는 뜻을 면치 못하셨으니,148) 하물며 그 아래에 있는 자에 있어서이겠습니까?기름으로 지진 음식은 예를 따라야 함을 의심할 것이 없으니149) 예를 좋아하는 선비가 속세의 논의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누가 감히 시비하겠습니까?홀(笏)을 잡는 예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옛날에 선비는 대나무 홀을 사용하였으니 임금과 어른을 섬길 때 항상 이를 사용하였습니다.150) 지금 세속에서는 부모를 섬길 때 살아계실 적에 이미 이러한 의절(儀節)이 없으므로 율곡께서 간략함을 따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축문(祝文)을 사르는 문제는 마땅히 주자(朱子)를 따르는 것이 옳으니, 《집설(集說)》을 따라서는 안 될 듯합니다.151)어제 선친의 기일에 곡을 하였기에 병든 정신이 다 소모되고 마음이 아득합니다. 급하게 쓰느라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雪裏來訪。如昨日事。指顧之間。春日已和。此時又承存問。知山上高齋。日有淸修。令人首擡而神馳也。所喩成服之奠。禮雖無別設之文。仍朝奠從俗設行。似無大妨於情理耶。魚肉生用。恐從栗谷。爲得古意。而以沙溪亦未免習久難變之意。况出其下者耶。膏煎之物。從禮無疑。好禮之士。砥柱於俗論。則誰敢非是哉。執笏之禮。古者士用竹笏。事君事長之常用也。今俗事親。生旣無此節。故栗谷從簡耶。焚祝當從朱子爲正。集說恐不可從矣。昨哭先忌。病神頓喪。志意茫然。走草不一。 문생(文生) 문사고(文師古, 1637~1701)를 가리킨다.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부모의 상(喪)에 효성을 다하였으므로 효자로 이름이 났으며, 학문에도 힘을 쏟았다. 성복(成服) 상례에 있어서 대렴(大斂)을 마친 다음 날 복(服)에 따라 상복(喪服)을 입는 것을 말한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을 가리킨다. 사계(沙溪)는 그의 호.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희원(希元)이다. 이이(李珥)의 문인이다. 1578년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창릉 참봉(昌陵參奉)이 된 뒤 정산 현감(定山縣監), 호조 정랑, 안성 군수(安城郡守), 형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상례비요(喪禮備要)》, 《가례집람(家禮輯覽)》, 《전례문답(典禮問答)》, 《의례문해(疑禮問解)》 등의 저술을 남겼다. 어육(魚肉)을……못하셨으니 《사계전서(沙溪全書)》 〈의례문해(疑禮問解)‧시제(時祭)〉에, "《주자가례(朱子家禮)》에서 말한 어육(魚肉)은 생어육입니까? 율곡(栗谷)은 생어육을 썼는데, 이를 따라서 행해도 무방합니까?[家禮 魚肉是生魚肉否 栗谷用生 遵此行之 無妨否]"라는 송준길(宋浚吉)의 물음에 대해, 김장생이 "《주자가례》에서 이른바 어육은 생어육이 아니라 바로 어탕(魚湯)과 육탕(肉湯)이네. 율곡이 생어육을 쓴 것은 비록 《서의(書儀)》에 근거한 것이지만, 《의례》 궤식례(饋食禮)와 다르기에 일찍이 집안 어른께 질문하고 우계(牛溪)께도 질문하였더니, 답하기를, '생어육과 숙어육(熟魚肉)을 함께 섞어 쓰는 것이 비록 고례이기는 하지만, 《주자가례》에 이르러서는 주자께서, 「연기(燕器)로써 제기(祭器)를 대신하고, 상찬(常饌)으로써 조육(俎肉)을 대신한다.」라 하셨으니, 생어육을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하였네.[家禮所謂魚肉 非生魚肉也 乃魚湯肉湯也 栗谷之用生 雖本於書儀 與儀禮饋食禮不同 嘗質于家庭 問于牛溪 答曰 參用生熟 雖是古禮 至於家禮 則朱子曰 以燕器代祭器 常饌代俎肉 則不用生 明矣]"라 하여, 제사에서는 생어육을 쓰지 않는다고 답한 내용이 보인다. 다만 그가 생어육을 쓰는 문제에 대해 습속이 오래되어 바꾸기 어렵다고 한 내용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기름으로……없으니 《의례주소(儀禮注疏)》 〈기석례(旣夕禮)〉에, "전물(奠物)로 쓰는 가루음식[糗]은 모두 기름으로 지지지 않는다.[凡糗不煎]"라 하였고, 이에 대한 주에 "기름으로 지지면 지저분하게 되므로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以膏煎之 則褻非敬]"라 한 내용이 보인다. 홀(笏)을……사용하였습니다 '홀(笏)'은 천자 이하 제후‧대부‧사가 조복을 입거나 제례 등을 올릴 때 손에 드는 판이다.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홀의 제도를 말하면서 "천자는 옥을 사용하고, 제후는 상아를 사용하며, 대부는 물고기 수염으로 꾸민 대나무를 사용하고, 사(士)는 밑을 상아로 꾸민 대나무를 사용한다.[天子以球玉 諸侯以象 大夫以魚須文竹 士竹本象 可也]"라 하였다. 축문(祝文)을……듯합니다 《주자가례(朱子家禮)》 〈통례(通禮)‧사당(祠堂)〉에, "무릇 축판은 길이가 1척, 높이가 5촌 되는 판을 사용해 만드는데, 종이에 글을 써서 그 위에 붙이고, 의식이 끝나면 떼어 내어 불에 태운다.[凡言祝版者 用版長一尺 高五寸 以紙書文 黏於其上 畢則揭而焚之]"라 하였다. '집설(集說)'은 명나라 풍선(馮善)이 지은 《가례집설(家禮集說)》을 가리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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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처직(鄭處直)152)에게 부치는 편지 寄鄭處直帖 요즈음 평소 한가하게 지내시는 체후를 진중히 하고 계십니까? 듣건대 어제 공들이 거문고를 가지고 함께 노래 부르며 월연대(月延臺) 위에서 성대한 모임을 가지셨다고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과연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까? 국상(國祥)153)이 바로 이 달에 있어 군부(君父)께서 아직 담복(禫服)154)을 입고 계신데, 신민(臣民)이 된 자가 높은 곳에 올라 음악을 연주한다면 온당치 못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처(私處)에 있더라도 오히려 해서는 안 될 일인데, 하물며 전패(殿牌)155)를 봉안하는 읍부(邑府)에 있어서이겠습니까? 해서는 안 될 일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공들은 평소에 원래 마음을 다하고 독실하게 행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이가 이미 연로하였으니,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재(齋) 안의 신진(新進)으로서 배움에 뜻을 둔 사람들이 반드시 공들을 모범이 되는 선진(先進)으로 여길 것이요, 이러한 일 또한 반드시 본보기로 삼을 것이니, 이는 경계하고 두려워할 지점이 아니겠습니까? 비루한 제가 공들에 대해 소회가 있어 굳이 이와 같이 고하였으니, 바라건대 주제넘고 경솔한 점에 대해 노여워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此日雅况珍嗇。聞昨日公輩。携琴與歌。高會月延臺上云。未知果然耶。國祥未經本月。君父尙在服禫之中。爲臣民者登高作樂。無乃未安耶。在於私處。猶爲不可。况邑府殿牌奉安之地乎。决知其不可爲也。公輩平日。元非苦心篤行之人。而年已老矣。不足云矣。齋中新進向學之人。必以公輩爲先進表率之人。如此等事。亦必爲準式。則此非警懼處乎。鄙人於公輩。有懷必告如此。幸怒僭率如何。 정처직(鄭處直) 정지(鄭榰)를 가리킨다.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국상(國祥) 국상(國喪)의 소상(小祥)이나 대상(大祥)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효종(孝宗)의 대상을 가리킨다. 담복(禫服) 대상(大祥)을 치른 다음 달 하순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담제(禫祭) 때 입는 옷을 말한다. 전패(殿牌) 각 고을의 객사(客舍)에 봉안한 '전(殿)' 자를 새겨 세운 나무패다. 임금을 상징하는 것으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관리 전부가 모여 배례(拜禮)하였다. 훼손이나 모독하면 불경(不敬)으로 처리되어 당사자는 물론이고 수령(守令)과 그 고을까지 처벌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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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응제 迎祥應製 성군께서 흥기하시어 해동을 다스리시니태평성대 송축함이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똑같구나인후한 풍속 천지의 은혜에 보태지고임금의 은택 조화옹의 공에 동참했네격양가 부르는 백성들은 임금님 덕분이요봄 다투는 매화 버들은 하늘의 은혜라모든 관원 궐에서 머리 조아리니일제히 임금님 장수하시길 송축하네 聖主龍興撫海東太平歌頌邇遐同仁風添作乾坤惠睿澤同參造化工擊壤烝黎蒙帝力爭春梅柳荷天公千官稽首彤墀下齊祝堯齡等華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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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읊는데 염(鹽)자를 얻다 2수 詠雪得鹽字【二首】 적선의 시구에서 눈을 오나라 소금에 비유했는데365)우리 집 뜰에 그득 쌓이니 내가 청렴하지 않구나고을 관리가 바닷물 끓이라 재촉한다고 들었으니산야에 이미 질리도록 쌓인 줄 어찌 알랴서호에서 그 당시 팔던 상공의 소금366)천년 뒤 사람도 오히려 청렴치 않다고 비웃네오늘 밤 산에 가득 쌓여도 산이 사양치 않으니골짜기가 가장 욕심 많은 줄 비로소 알겠네 謫仙詩句比吳塩盈我中庭我不廉聞道縣官催煑海豈知山野已饜饜西湖當日相公塩千載人猶笑不廉今夜滿山山不讓始知磎壑最無饜 적선의……비유했는데 적선(謫仙)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오(吳)나라 땅에서 생산되는 소금이 가장 희고 깨끗하였으므로 최상품의 소금을 오염(吳鹽)이라 하는데, 이백의 시에 "오나라 소금이 꽃처럼 쌓였는데 백설보다도 더 깨끗하다.[吳鹽如花皎白雪.]"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6 梁園吟》 상공의 소금 상공차(相公鹺)라고 하는데, 남송 말엽의 재상 가사도(賈似道)가 판매했던 사염(私鹽)이다. 《山堂肆考 卷194 似道販鹽》 가사도는 송 이종(宋理宗) 가귀비(賈貴妃)의 동생으로, 자는 사헌(師憲). 권세를 믿고 갖은 비행을 저지르고 황음무도한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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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짇날 박계길367)과 함께 짓다 三月三日與朴季吉共賦 협곡 어귀에 꽃샘추위로 꽃구경 더디어져짙은 꽃 빛깔이 옥 술잔에 비치게 하지 못하네노년에 강호에서 터 잡고 살려 하였는데늙도록 영로368)에 있으니 이미 기약 어겼구나 春寒峽口訪花遲不遣深紅暎玉巵白首江鄕將卜築黃昏郢路已違期 박계길 박경심(朴慶深, 1562~?)이다. 본관은 죽산(竹山)이고 계길(季吉)은 자이다. 영로 초나라의 수도인 영(郢)의 길거리로, 여기서는 도성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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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 卷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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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백당의 〈천추절〉 시51)에 차운하다 次虛白堂千秋節韻 계인52)이 파루(罷漏)를 외치자 궐문 열리니꽃 밑에 용깃발이 새벽 바람에 나부낀다백관이 찬 칼과 패옥 성대하니 그 광채 햇살에 번쩍이고금위군의 창 부딪히니 그 기개 무지개처럼 뻗었네봄이 집집마다 재촉하여 수양버들 푸르르고은혜가 천관에 두루 미쳐 취한 얼굴 붉어라외람되이 경하의 반열에 낀 못난 이 몸 부끄러우니감히 충심을 기울여 숭산에서처럼 송축할 수 있을거나53) 鷄人唱罷闢金宮花底龍旌颭曉風釰佩繽紛光耀日羽林磨戞氣成虹春催萬戶垂楊綠恩浹千官醉面紅猥厠賀班慚薄劣敢傾丹悃祝如嵩 허백당의 천추절 시 허백당(虛白堂)은 성현(成俔, 1439~1504)의 호로, 성현은 본관이 창녕(昌寧), 자가 경숙(磬叔)이다. 〈천추절〉 시는 《허백당시집》 권11 〈맹추 3일에 문화전에 나아가 천추절을 하례하다[孟秋三日, 詣文華殿, 賀千秋節]〉 시를 가리킨다. 문화전은 북경 자금성 내의 전각으로 황제의 편전과 경연 장소로 사용되었다. 계인 새벽을 알리는 일을 관장하는 벼슬아치를 말한다. 계인은 원래 주(周)나라 관직 이름으로, 국가에서 큰 의식을 거행할 때에 새벽을 알리며 백관을 깨워 일으키는 일을 관장했는데, 뒤에는 궁중의 물시계를 관리하는 사람을 일컫게 되었다. 《周禮 春官 雞人》 숭산에서처럼……있을거나 군주를 위해 송축한다는 뜻이다. 한 무제(漢武帝)가 숭산에 올랐을 때 이졸(吏卒)들이 세 번 만세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는 고사가 있다. 《漢書 武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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