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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문목【물은 사람이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다】 心經問目【夫詳問子何人】 《심경(心經)》의 차서(次序)는 《서경(書經)》이 가장 처음이고, 《시경(詩經)》ㆍ《주역(周易)》ㆍ《논어(論語)》가 그다음이며, 《중용(中庸)》ㆍ《대학(大學)》ㆍ《예기(禮記)》 〈악기(樂記〉ㆍ《맹자(孟子)》가 그다음입니다. 이 차서는 학문에 나아가는 차례로 선후(先後)의 순서를 삼은 것입니까. 성현이 지은 시기로 순서를 삼은 것입니까. 만일 지어진 시기의 선후로 순서를 삼은 것이라면 《중용》이 《대학》의 뒤에 있어야 하고, 학문에 나아가는 차례를 순서로 삼은 것이라면 더욱 주자(朱子)의 설을 따라 《대학》을 가장 먼저 하여야 하니,74)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서산(西山)75)은 무슨 연유로 《중용》을 대학보다 먼저 차례한 것입니까.또 《대학》의 경일장(經一章)은 바로 공자(孔子)의 문하에서 심법(心法)을 전수한 것으로, 체용(體用)과 본말(本末)의 맥락이 분명합니다. 심학(心學)의 요체가 여기에서 벗어남이 없는데, 서산은 다만 전이장(傳二章)만을 취하고 경일장은 취하지 않았으니, 그 뜻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어떤 이는 말하기를 '경일장은 천하와 국가를 겸하여 말하였으므로 《심경》에 취하여 들이려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중용이란 도를 닦는 가르침이요, 천지가 편안히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제대로 길러지는 극치(極致)이니,76) 천하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의 지극한 공력이 아니겠습니까. 심체(心軆)가 지극히 넓어지면 천지와 만물이 진실로 일체(一軆)가 되는 법이니, 지엽적인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이유로 근본이 되는 명덕(明德)을 빠트려서는 안 될 듯합니다. 알지 못하겠으나, 이 말이 어떠합니까.노재 왕씨(魯齋王氏)가 말하기를, "대개 '원자(原字)'는 밖으로부터 미루어 들어오는 것이니, 본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으므로 미묘하다고 말하였고, '생자(生字)'는 물(物)에 감응하여 동한 것이니, 본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으므로 위태롭다고 말한 것이다. '정자(正字)'와 '사자(私字)'는 모두 외면에 나타나기 때문에 인심(人心)을 인욕(人慾)이라고 이를 수 없는 것이다."77)라고 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망령되이 '원(原)'이라는 말은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성명(性命)이 발동(發動)하는 곳이 곧 도심(道心)이니, 이는 근원이 시작되어 나온 곳이 곧 물줄기인 것과 같습니다. 물의 근원은 안에 있는데 그 물줄기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그렇다면 '원자(原字)'는 밖으로부터 미루어 들어온다고 말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이기(理氣)가 사람에게 품부됨에 진실로 말할 수 있는 선후의 순서가 없으니, 이(理)가 있으면 곧 기(氣)가 있고, 기가 있으면 곧 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 기를 가지고 있어서 인심이 동하면 곧 이 안으로부터 나오니, 인심의 근원은 또한 본래부터 있는 물사(物事)이므로, 성명의 바름이 안으로 말미암아 밖으로 나타날 리가 전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형기(形氣)의 사사로움은 밖에서 동하여 안에 나타나므로, '정자(正字)'와 '사자(私字)'를 또한 모두 밖에 나타난다고 말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그러나 반복하여 생각해 보아도 그 뜻을 알 수 없으니, 나아가 질정(質正)하고자 합니다.〈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는 '정자(正字)'가 형기(形氣)의 위에 있고 '미자(微字)'가 성명(性命)의 아래에 있으며 '사자(私字)'가 형(形)에 속해 있고 '위자(危字)'가 기(氣)에 속해 있으니, 그 지의(指意)의 소재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밝게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주역》의 〈건괘 문언전(坤卦 文言傳)〉 육이효(六二爻)에 "경(敬)과 의(義)가 확립되면 덕(德)이 외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외롭지 않다고 한 것은 깊이 음미하여야 할 말인 듯한데, 《심경부주(心經附註)》에는 충분히 설파(說破)해 놓지 않았습니다. 정전(程傳)78)을 살펴보건대, "경과 의가 확립되면 그 덕이 성해진다."라고 하였고, 《주역본의(周易本意)》79)에는 "외롭지 않다는 것은 큼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대략적으로 말한 것일 뿐입니다. 저의 생각에는 '고(孤)'는 '고편(孤偏, 한쪽으로만 치우침)'이라는 말과 같은 듯합니다. 한갓 안을 곧게 하는 것[直內]에만 종사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사위(事爲)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홀히 한다면 의로 방밖을 방정하게 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덕이 끝내 한쪽으로만 고립되는 것이요, 한갓 밖을 방정하게 하는 것[方外]만을 일삼고 경을 잡아 지키는 것[持敬]을 소홀히 한다면 밖을 중시하고 안을 경외시하는 잘못이 있게 될 것이니, 이는 덕이 또한 한쪽으로만 고립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경과 의를 양쪽에 끼고 잡아 지키며 안과 밖을 모두 기른 뒤에야 이 덕의 전체(全體)와 대용(大用)이 양쪽 모두 수양되고 둘 다 진보되어 한쪽으로 고립되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이 옳은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각헌 채씨(覺軒蔡氏)가 "정할 때의 주일(主一)이 그 태극(太極)의 경계(境界)일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삼가 '「태극의 본체(本體)」라 하여야 하는데 경계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이는 감히 단정하여 말하지는 못하고 그 말에 대해 의문을 가진 말일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상수(象數)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그 이(理)만 갖추어진 상태를 태극(太極)이라고 하고,80) 사단(四端)이 아직 발하기 전에 온갖 이치가 구비되어 있는 상태를 정일(靜一)이라고 합니다. 정일이란 바로 내 마음의 태극의 전체인데, 만일 태극의 경계라고 한다면 정일이란 태극의 경계를 나누는 변경(邊境)인 것이니, 정일에 앞서서 또 따로 태극의 전체가 있는 것이 어찌 가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이 옳은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여자약(呂子約)81)이 "듣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는 것이 미발(未發)이다."라고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이를 매우 비난하였습니다.82) 《중용》에서는 보지 않는 바와 듣지 않는 바를 가지고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의 본체를 존양(存養)하는 것으로 삼았습니다.83) 이른바 듣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다는 것은 바로 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는 것과 어세(語勢)가 서로 부합되는 듯한데, 주자가 매우 비난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그 사이에 반드시 은미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다고 할 때의 문(聞)과 견(見)은 이목(耳目)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고, 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고 할 때의 도(覩)와 문(聞)은 심성(心性)의 차원에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뜻이 절로 같지 않은 것입니다. 부디 일전어(一轉語)84)를 해주시어 저의 몽매함을 깨우쳐 주십시오. 心經次序。書以首之。詩易論語次之。庸學樂記孟子次之。是次序以進學次第爲先後之序歟。聖賢所著之時爲序歟。若以時之先後爲序。中庸當在大學之後。以進學爲序。尤當從朱子之說以大學爲先。未知西山何以而以中庸先於大學歟。又按大學經一章。是孔門傳授心法。體用本末。脉絡分明。心學之要。無出於此。而西山只取傳二章而不取經一章。其意安在歟。或曰經一章。兼天下國家而言。故不肯摭入於心經。愚意以爲中庸修道之敎。位育之極。非治天下之極功歟。心軆至廣。天地萬物。固爲一軆。則不可以治平之末而遺明德之本。未知此言如何。魯齋王氏曰盖原字自外推入。知其本有。故曰微。生字感物而動。知其本無。故曰危。正字私字。皆見于外。故人心不可謂之人慾云云。愚意妄以爲原之爲言源也。性命發動處便是道心。猶源始發底便是流也。水源在內。其流發外則原字恐不可以自外推入爲言也。理氣之賦於人。固無先後之可言。有理卽有氣。有氣卽有理。旣有是氣而人心之動。便從這裏出。則人心之源。亦本有底物事也。恐不可謂之全無性命之正。由內而發外者也。形氣之私。動於外而發於內者也。正字私字。亦恐不可謂之皆見于外者也。反復思惟。未得其義。願就正焉。人心道心圖。正字在形氣之上。微字在性命之下。私字屬于形。危字屬于氣。未知其指意所在。伏願明敎。易坤之六二。敬義立而德不孤。不孤云者。似當深味。附註未有十分說破。按程傳曰敬義立而其德盛矣。本義曰不孤大也。盖大槩言之矣。愚意以爲孤猶孤偏也。徒然從事於直內。而忽於言動事爲之間則義不方矣。此德終孤於一偏也。徒事方外而忽於持敬。則有重外輕內之失而此德又孤於一偏矣。必也敬義夾持。內外交養。然後此德之全軆大用。兼脩幷進。無孤於一偏之弊矣。如是看得。未知是否。覺軒蔡氏曰云云。靜之主一。其太極之境界歟。愚竊以爲當曰太極之本體。而曰境界何也。不敢質言。疑之之辭也。盖象數未形。其理已具。謂之太極。四端未發而衆理具足。謂之靜一。靜一卽吾心太極之全軆。若謂之境界則靜一是太極分界之邊境。而靜一之先。又有太極之全軆。烏可乎哉。如是看得。未知是否。呂子約謂未有聞未有見。爲未發。朱子甚非之。中庸則以所不覩所不聞。爲存養未發之軆。所謂未聞未見者。卽與不覩不聞。語勢似相合。而朱子甚非之何歟。其間必有微意。聞見就耳目上言。覩聞就心性上言。故其旨自不同歟。幸賜一轉語。以發蒙蔽。 주자(朱子)의……따라 주자가 학문에 있어 《대학》을 가장 먼저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가리킨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4에 "먼저 《대학》을 읽어서 그 규모를 정하여야 한다.[先讀大學, 以定其規模.]"라고 하였고, 또 "《대학》은 바로 학문을 하는 강목이니, 먼저 《대학》을 읽어 강령을 세워 정하면 다른 책은 모두 잡설로 이 안에 들어 있다. 《대학》을 통달한 다음 다른 경서를 보면 이것이 격물ㆍ치지의 일이며, 이것이 성의ㆍ정심의 일이며, 이것이 수신의 일이며, 이것이 제가ㆍ치국ㆍ평천하의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大學, 是爲學綱目. 先讀大學, 立定綱領, 他書, 皆雜說在裏許. 通得大學了, 去看他經,方見得此是格物致知事, 此是誠意正心事, 此是修身事, 此是齊家治國平天下事.]"라고 하였다. 서산(西山) 《심경(心經)》을 편찬한 진덕수(眞德秀, 1178~1235)의 호이다. 자는 경원(景元),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천지가……극치(極致)이니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 "중과 화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에 편안히 있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고 하였다. 노재 왕씨(魯齋王氏)……것이다 주희(朱熹)가 "마음의 허령지각(虛靈知覺)은 하나일 뿐인데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다름이 있다고 한 것은, 혹은 형기(形氣)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나고[生] 혹은 성명(性命)의 바름에서 근원[原]하여 지각하는 것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혹은 위태로워[危] 편안하지 못하고 혹은 미묘하여[微] 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비록 상지(上智)의 사람이라도 인심(人心)이 없을 수 없고, 또한 이 성(性)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비록 하우(下愚)의 사람이라도 도심(道心)이 없을 수 없다. 인심과 도심 두 가지가 방촌(方寸 마음)의 사이에 섞여 있어서 다스릴 방도를 알지 못하면 위태로운 것[人心]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미묘한 것[道心]은 더욱 미묘해져서 천리(天理)의 공(公)이 마침내 인욕(人欲)의 사(私)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데 대하여 한 말이다. 정전(程傳) 송나라 정이(程頤)의 《이천역전(伊川易傳)》을 가리킨다. 《주역본의(周易本意)》 주희(朱熹)가 지은 것이다. 대개……하고 주희(朱熹)가 지은 《역학계몽(易學啓蒙)》에 나오는 말이다. 여자약(呂子約) 여조검(呂祖儉, 1137~1181)으로, 자약은 그의 자이다. 호는 대우(大愚), 시호는 충(忠)으로 동래(東萊) 여조겸(呂祖謙)의 아우이다. 여자약이……비난하였습니다 정좌하고 있을 때에 앞에 지나가는 사물을 "보아야 하는가 보지 말아야 하는가[還見, 不見]"라는 질문을 받고, 정자(程子)가 제사(祭祀)와 같은 대사(大事)가 있을 때에는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아야 하겠지만[不見不聞]', 만약 일이 없을 때에는 '눈은 마땅히 보아야 하고 귀는 마땅히 들어야 한다[目須見, 耳須聞.]'라고 대답하였는데, 이에 대해 여자약(呂子約)이 "듣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는 것이 미발이다.[未有聞未有見, 爲未發.]"라고 하자, 주자가 정문(程門)의 묻고 기록한 자에게도 책임이 있고, 후인들 역시 제대로 읽지 못하는 병폐가 있다고 비평한 일을 가리킨다. 《중용》에서는……삼았습니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 "도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보지 않는 바에도 경계하고 삼가야 하고, 그 듣지 않는 바에도 두려워해야 한다.[道也者, 不可須㬰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일전어(一轉語) 원래는 불교의 참선에서 참선자가 미혹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말을 이른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크게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말씀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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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역213)에서 송천곡214) 상현 이 지은 시에 감회가 일어 짓다 輸城驛感宋泉谷 象賢 作 벽에 있는 훌륭한 시 연성벽215)의 값어치이니회자되어 사자경이라 유독 칭송되었네시 읊던 넋 어디 갔나 불러도 돌아오지 않고물은 동쪽으로 흘러가고 해는 서쪽으로 저무네 壁間瓊韻價連城膾炙偏稱四字鯨何處吟魂招不返水流東去日西傾 수성역 함경도 경성(鏡城)에 있던 역으로 북방 역로(驛路)의 주요 거점이었다. 송천곡 송상현(宋象賢, 1551~1592)으로,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자는 덕구(德求), 호는 천곡(泉谷)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부산 동래성에서 항전하다가 성이 함락되자 조복(朝服)을 입고 단좌(端坐)한 채 순사(殉死)하였다. 연성벽 연성벽(連城璧)은 연성옥(連城玉)이라고 하는데, 여러 성과 맞바꿀 만한 가치를 지닌 진귀한 구슬로 전국 시대 때의 보배이다. 전국 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이 초나라의 화씨벽(和氏璧)을 얻었는데,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그 구슬을 열다섯 성과 바꾸자고 제의한 것에서 그 명칭이 유래하였다. 《史記 廉頗藺相如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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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주 덕재216) 성길의 원운을 부기하다 附李滄洲德哉成吉韻 외로운 검으로 끝내 바닷가 성 지키기 어려워남쪽 땅을 왜적에게 빌려주고 말았네황량한 옛 벽에 시편 남아 있으니읽고 나니 절로 흐르는 눈물 어찌 참으랴 孤釰終難守海城却將南土借長鯨荒凉古壁遺篇在讀罷何堪涕自傾 이창주 덕재 이성길(李成吉, 1562~1621)로,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덕재(德哉), 호는 창주(滄洲)이다. 1594년에 병조 좌랑에서 면직되자, 정문부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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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관의 시에 차운하다 2수 次書狀韻【二首】 차가운 비 쓸쓸하게 나그네 옷 적시고사하의 성 밖에 보이는 사람 거의 없네저 멀리 떨어진 고향 차마 돌아보지 못하겠으니만 겹 높은 산 푸르게 연이어 있누나흐르는 강도 나그네 그리움도 모두 다함이 없으니밤낮으로 유유히 다 동쪽으로 향하네멀리 고향에 짤막한 편지 부치고 싶으니상강 전에 혹여 일찍 돌아가는 기러기 있으려나 寒雨蕭蕭洒客衣沙河城外見人稀不堪回首鄕關隔萬疊雲山連翠微河流客思兩無窮日夜悠悠儘向東欲作一行書寄遠霜前倘有早歸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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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묘264)에 참배하다 謁夷齊廟 주나라가 천하를 차지한 것에 상심하고은나라에 조금도 남은 땅 없는 것 보았지만약 그 당시에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왔다면기자의 봉토에 절로 별천지가 있었으리 傷心周是普天尊擧目殷無尺地存若使當年東渡海箕封自有別乾坤 이제묘(夷齊廟) 중국 요동 영평성(永平城) 서쪽 5리 지점에 있는 난하(灤河)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백이(伯夷) 숙제(叔齊)를 모신 사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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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시의 운자를 사용하여 지어서 금강산 승려와 작별하다 2수 用前韻 別金剛僧【二首】 한 조각 뜬 구름이 푸른 산에서 나와잘도 바람 따라 먼 허공에 들어가누나무심히 오가며 전혀 아까워하지 않으니저 산승 이 늙은이와 작별하는 것과 같네고승은 높은 산봉우리처럼 늙지 않으니그저 가슴 속 온갖 잡념 없기 때문이라만약 사람에게 이별의 괴로움 없다면세상에 어찌 머리 하얀 늙은이 있으랴 一片浮雲出碧峰好隨風去入遙空等閒來往渾無恡似彼山翁別此翁高僧不老等高峰只爲胸中萬念空若使人無離別苦世間那有白頭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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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민(兵民)에 관한 총목(總目)【兵民總目】 兵民總目 【兵分六科】 ◎병은 6과(科)로 나눈다.사병(士兵) : 상(上), 중(中), 하(下). 감영에 소속시킨다.농병(農兵) : 상(上) 하(下). 병영(兵營) 및 각 보(堡)에 나누어 소속시킨다.공병(工兵) : 상(上) 하(下). 경포수(京炮手)에 소속시킨다.상병(商兵) : 상(上) 하(下).【선상(船商)은 수영(水營)에 소속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경포수에 소속시킨다.】승병(僧兵) : 상(上), 하(下). 승대장(僧大將)에 소속시킨다.노병(奴兵) : 상(上), 하(下). 영장(營將)에 소속시킨다. 사노(私奴)인 농병(農兵)도 같다.이상은 6과(科) 상병(上兵)에 관한 규정이다. 평상시에는 서울과 지방의 제장(諸將) 및 수령은 잡다한 부역으로 침해하여 독촉하지 말아야 한다. 봄가을로 감사는 장재(將才)가 있는 문관 수령 1원을 차임하고, 병사(兵使)는 무서(武書)에 통달하고 재예가 있는 무관 수령 1원을 차임하여 함께 군현을 다니며 6과의 군병을 모아 놓고 일일이 재주를 시험한다. 화살 5발을 쏘아 3발 이상을 맞히고, 총알 5발을 쏘아 3점 이상을 맞히고, 승마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들어온 자는 성적의 고하를 논하여 크게 상을 내리고, 궁술, 사격, 승마에서 하나도 규정에 들지 못한 자는 벌로 장(杖)을 친다. 노병(奴兵)의 경우는 영장(營將)이 봄가을로 위와 같이 재주를 시험한다. 감사, 병사, 수사 및 영장, 수령이 각기 해당 병졸을 거느리고 1년에 한 차례 수상과 육지에서 진법을 익힌다.이상은 6과(科) 가운데 병민(兵民)에 관한 규정이다. 영장과 수령이 재주를 시험하는 것 외에 3년에 한 차례 별도로 어사를 파견하여 무재(武才)를 시험한다. 사수(射手)는 10발 가운데 8발, 포수의 경우는 10발 가운데 8발, 기사(騎士)는 10발 가운데 7발 이상을 맞힌 자에 대해 전시(殿試)에 곧바로 응시할 자격을 주며, 6발 이상을 맞힌 자에게는 넉넉히 상을 내린다. 감영과 병영에 소속된 병인(兵人)이 10발 가운데 1발도 맞추지 못한 자가 15인이면 감사와 병사는 두 자급을 거두어들이고, 속전(贖錢)으로 칠승세포(七升細布) 15필(疋)을 거둔다. 영장(營將)에 소속된 병인이 10발 가운데 1발도 맞히지 못한 자가 9인이면 곤(棍) 50대를 친 뒤에 속전으로 세포(細布) 9필을 거둔다. 주(州)와 부(府)에 소속된 병인이 열 발 가운데 한 발도 맞히지 못한 자가 7인이면 해당 수령에 대해 곤 30대를 친 뒤에 속전으로 세포 7필(疋)을 거둔다. 군(郡)과 현(縣)은 5인 이상이면 해당 수령은 곤 15대를 친 뒤에 속전으로 세포 5필을 거둔다. 10발 가운데 8발을 맞힌 경우는, 대장소(大將所)의 경우 20인, 각 읍의 경우 10인 이상이면 대장은 두 자급을 더해 주고, 수령은 한 자급을 더해 준다. 士兵 : 上。 中。 下。 屬監營。農兵 : 上。 下。 分屬兵營及各堡。工兵 : 上。 下。 屬京炮。商兵 : 上。 下。【船商屬水營。 餘皆屬京炮。】僧兵 : 上。 下。 屬僧大將。奴兵 : 上。 下。 屬營將。 私奴農兵同。右六科上兵。 在於平時。 京外諸將及守令。 毋得以雜例事役侵督。 春秋。 監司差文官守令之有將才者一員。 兵使差武官守令之通習武書才藝者一員。 同行于郡縣。 會六科兵卒。 一一試才。 矢五發。 三中以上。 炮五放。 三中以上。 馳馬能應漏刻者。 論高下。 大用行賞。 弓炮馬才。 一未入規者杖罰。 奴兵則營將春秋試才如右。 監兵水使及營將守令。 各將其兵。 習水陸戰陣。 一年一次。右六科兵民。 除營將守令試才外。 三年一次別遣御史。 試閱武才。 射手十矢八中。 炮手十放八中。 騎士十矢七中以上。 直赴殿試。 六中以上。 賞給優數。 監營兵營所屬兵人。 十矢不中一矢者十五人。 則奪二資。 收贖七升細布十五疋。 營將所屬十矢不中一矢者九人。 則五十棍決罪後。 收贖細布九疋。 州府十矢不中一矢者七人。 則其守令三十棍決罪後。 收贖細布七疋。 郡縣五人以上。 其守令十五棍決罪後。 收贖細布五疋。 十矢八中者。 大將所二十人。 各邑十人以上。 大將加二資。 守令加一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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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의병에 관한 전례 鄕義兵典例 이상은 6과(科)에서 하병(下兵)에 관한 규정이다. 평상시에 군기(軍器)와 자용(資用)을 미리 마련하여 상병에게 지급한다. 만약 변고가 있으면 해당 고을에 있는 하병을 수령이 거느리고 지방의 중사(中士), 하사(下士) 및 농호(農戶)의 하민(下民) 또한 수령에게 예속시킨다. 산성이 있는 읍은 산성으로 들어가 웅거한다. 산성이 없지만 해당 본읍의 성이 견고하여 지킬 만하면 본읍의 성에 웅거한다. 본읍의 성을 지킬 수 없으면 경내에 지킬 만한 험준하고 요충지가 되는 곳을 가려서 진을 치고 험한 지형에 의지한다. 숲속으로 들어가 흩어져 살지 못하는 향중(鄕中)의 여자와 선비는 모두 군진으로 들어간다. 군현의 군진이 곳곳마다 서로 바라보고 성세(聲勢)가 서로 의지하며 아침저녁으로 경계하고 병기를 잘 정비한다. 만약 적을 만나면 혹은 굳게 지키며 힘을 다해 방어하여 부모와 처자식을 지킨다. 혹 복병을 매복시키고 기이한 책략을 내어 협소한 지역을 나서서 유적(游賊)의 군병을 습격한다. 무릇 군량을 마련하여 운반하고 조정의 호령(號令)을 전달하는 등의 일은 군읍의 군진에서 차례로 신속하게 전달하되 대비하는 데 태만한 수령은 참한다. 향병의 군진을 버리고 사사로이 달아나는 향인은 참한다.신은 삼가 살피건대, 우리나라의 제도는 수상에는 수군이 있고 육지에는 육군이 있습니다. 변고가 있으면 수군과 육군의 장수가 각각 해당 군사를 거느리고 천 리를 이동하여 전투를 벌이는데 열읍(列邑)에서는 신분이 귀하거나 천하거나 할 것 없이 모든 백성들이 숲속으로 흩어져 숨어서 사사로이 난을 피하니 고을이 텅 비고 성곽이 적막합니다. 수령은 한갓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 손발을 둘 곳이 없기에 부득이 그 처자식을 거느리고 백성들과 함께 산택으로 숨으니 군량을 수송하고 조정의 명을 전달할 길이 아득히 막혀 전쟁하면 반드시 패배하는 것은 모두 이 때문입니다. 또 더구나 수많은 백성들이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지만 산속이란 것은 한정이 있고 사람들은 매우 많으니, 비록 깊숙이 숨어서 병란을 피하고자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갑자기 적을 만나면 수천 명의 사람이 적의 한칼에 함께 죽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노략질하여 천 리 땅을 유린하지만 막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온 나라가 휩쓸려 함께 패배하였으니, 통탄스러운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통탄스러운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위급할 때 수령은 달아나고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명분이 뒤바뀌고 기율이 문란해지니 병란을 피해 산으로 들어간 무리가 약육강식을 일삼아 제멋대로 겁탈합니다. 적이 국경을 넘기 전에 양민이 먼저 이미 우리나라 사람에게 피해를 입으니, 이것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지금 만약 지방의 의병에 관한 법령을 만들어 수령을 장수로 삼고 엄격하고 분명하게 호령을 내리고, 평상시 방어하는 대책을 강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향병(鄕兵)이 나라에 이롭고 백성들에게 이로운 도리를 알게 한다면 환란에 어린아이나 힘없는 백성이 감히 향병의 진영을 버리고 홀로 달아나 구차하게 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병(上兵)에 들지 못한 사(士), 농(農), 공(工), 상(商), 승(僧), 노(奴)를 함께 한 진영에 편입하여 각각 부장(部將)을 두고 각 읍의 여러 진영이 서로 호령을 전하게 한다면 반드시 있는 힘을 다하여 굳게 지킬 것입니다. 그런 뒤에 군진에 있는 부모와 처자식이 병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니, 누군들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에 나아갈 마음을 먹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적의 유병(游兵)과 엄호하는 군졸이 결코 감히 산택으로 깊이 들어와 우리 백성들을 해치지 못할 것이니, 비록 대군이라도 감히 무인지경(無人之境)에 들어온 것처럼 곧장 서울로 침범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수상과 육지의 대장은 천 리 먼 곳에서 전투하여 군주를 호위하고 각 고을의 향병은 스스로 힘을 합쳐 그 부모를 보호하여 충과 효가 온전해지고 상하가 서로 보전됩니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조정의 명령을 전하고 한편으로는 군량을 계속 운반할 수 있으니 아마 주(周)나라의 제도, 즉 향리에 있으면 비(比), 린(隣), 족(族), 당(黨), 주(州), 향(鄕)21)이 되고, 나가서는 오(伍), 양(兩), 군(軍), 사(師)22)가 되는 법에 가까울 것입니다. 右六科下兵。 在平時豫備軍器資用。 給于上兵。 若有變。 則諸下兵之在于其鄕者。 守令統率爲將。 鄕中之中士下士及農戶之下民。 亦得統屬于守令。 有山城之邑。 則入據山城。 無山城而其本邑之城堅固可守。 則入據本城。 本城不可守。 則擇境內之險僻要害可守之處。 結陣據險。 鄕中子女人士毋得散處林藪。 皆入陣中。 郡縣之陣。 處處相望。 聲勢相依。 朝暮戒嚴。 利其器械。 若其遇賊。 則或堅守牢固。 戮力守禦。 以衛其父母妻子。 或設伏陳奇。 出其隘塞。 突襲其游賊之兵。 凡辦運軍糧。 通命朝廷號令等事。 郡邑之陣。 次次飛傳。 而守令之緩於備守者斬。 鄕人之棄鄕兵之陣。 私自逃匿者斬。臣謹按我國之制。 水有水軍。 陸有陸軍。 及其有變。 水陸之將。 各將其軍。 轉鬪千里。 而列邑貴賤人民。 散伏林藪。 私自避兵。 邑里空虛。 城郭蕭然。 守令徒擁虛器。 手足莫措。 迫不得已率其妻孥。 與百姓同竄於山澤之間。 運餉軍饋。 通命朝廷。 漠然隔絶。 戰則必敗。 皆由於此也。 又况億萬人民。 同入山藪。 山藪有限而人物極煩。 雖欲深入潛藏以避兵火。 不可得也。 猝然遇賊。 則千人同斃於一賊之刃。 轉輾漂掠。 千里魚肉。 而莫有能禦之者。 壬辰之變。 丙子之禍。 擧國靡然。 同就敗衂。 可勝痛哉? 可勝痛哉? 且其急難之際。 守令逃竄。 人民分散。 名分倒錯。 紀律渾雜。 避兵入山之輩。 弱肉强食。 私自㥘奪。 賊未入境而良民先已受害於我國之人。 此何等事耶? 今者若立鄕義兵一法。 守令爲將。 號令嚴明。 在於平日。 講習守禦之策。 使民人皆知鄕兵之利於國利於民之道。 及其臨亂。 寸童尺民。 不敢違棄鄕陣。 獨走偸生。 士農工商僧奴之不入上兵者。 同入一陣。 各有部將。 各邑列陣。 號令相通。 必也竭力堅守。 然後其父母妻孥之在于陣中者。 得免兵革。 則孰不出死力進戰哉? 若然則賊人之游兵遮卒。 必不敢深入山澤。 以害吾民。 而雖大陣。 亦不敢如入無人之境。 直犯京師矣。 如此。 則水陸大將遠鬪千里。 以衛君父。 各邑鄕兵私自戮力。 以扞其父母。 忠孝兩全。 上下相保。 一以通朝家之命令。 一以繼兵食之運輸。 則庶近周制。 居則爲比隣族黨州鄕。 出則爲伍兩軍師之法矣。 비(比)……향(鄕) 《주례》의 육향(六鄕)에 5가를 비(比)라 하고, 5비를 려(閭)라 하고, 4려를 족(族)이라 하고, 5족을 당(黨)이라 하고, 5당을 주(州)라 하고, 5주를 향(鄕)이라 하였다. 육수(六遂)의 안에 5가를 린(隣)이라 하고, 5린을 리(里)라 하고, 4리를 찬(酇)이라 하고, 5찬을 비(鄙)라 하고, 5비를 현(縣)이라 하고, 5현을 수(遂)라 하였다. 오(伍)……사(師) 오(伍), 양(兩) 등은 군대를 편성하는 단위이다. 《주례》 〈지관(地官) 소사도(小司徒)〉에 "5인이 오(伍), 5오가 양(兩), 4양이 졸(卒), 5졸이 여(旅)이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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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에서 발을 씻다 石橋濯足 맑은 창가는 독서하기에 좋으니발 씻는 이 어찌도 이리 늦게 왔는가184)속진에서 보낸 십 년 자취흐르는 물에 다 씻지 못하였네 晴窓宜讀書濯足來何晩塵土十年踪臨流不盡浣 발……왔는가 어부사의 고사를 차용한 것이다. 초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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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루에서 달을 감상하다 西樓賞月 서늘한 기운 높은 누대에 가득하고평야에 한 줄기 가랑비 내리네유인은 밤에 쉬 잠들지 못하고달이 뜨자 까마귀 나무 흔드네 凉意滿高樓平蕪一霎雨幽人夜眠遲月出鴉翻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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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운한 시를 부기하다 권응인 附次韻 權應寅 사면은 온통 맑은 가을이요하늘과 땅에 이제 막 비 갰어라깊은 밤에 물은 더욱 밝아지고거울 같은 둥근 달 높은 나무에 걸렸네 四面盡淸秋乾坤初霽雨夜深水益明圓鏡掛高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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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재를 희롱하다228) 3수 이덕재에게 방아(房兒)가 있는데, 이름은 경옥(瓊玉)이다. 戲德哉 【三首 德哉有房兒名瓊玉】 전생에 비경 선녀가 가지고 논 옥이었는데이생에 와서 무산의 꿈속 사람229) 되었네남아의 창자 끊어지는 곳 따로 있으니버들 허리 가늘어 봄을 이기지 못하네사내는 쏜 화살 처럼 쉬이 이별하는데여인은 바람에 날리는 꽃처럼 버텨내지 못하누나이별한 뒤에 아득히 정한 끝이 없으니달 밝은 제 객창에 외로이 기대 있네기나긴 겨울밤에 깊숙한 방문 닫으니박산로 묵은 향 연기 모두 사라지네주인은 술에 취해 미인과 함께 자니예쁜 눈썹 -원문 2자 결락-230) 飛瓊弄玉是前身來作巫山夢裡人別有男兒腸斷處柳腰纖細不勝春郎如去箭易相離妾似飄花不自持別後悠悠無限恨客窓孤倚月明時寒夜曼曼掩曲房宿烟消盡博山香阿郞醉伴靑娥宿眉黛羞痕【二字缺】光 이덕재를 희롱하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농포집》 후쇄본에는 제목이 〈덕재를 희롱하다. 방아가 밤에 병이나다[戲德哉, 房兒夜病]〉로 되어 있다. 국립도서관 소장 후쇄본에는 3수 중에 제1수만 실려 있다. 무산의 꿈속 사람 무산(巫山)은 신녀가 사는 곳으로, 초 회왕(楚懷王)이 고당(高唐)에서 노닐며 낮잠을 자다 꿈속에서 무산의 신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는 고사가 있다. 《文選 卷19 高唐賦》 원문 2자 결락 원문의 문제로 '羞痕'과 '光'은 번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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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체147) 박계길의 시에 차운하다 演雅體 次朴季吉韻 기린각에 제일의 명성 얻는 것 관계치 않으니누추한 집 또한 평생을 보내기에 충분하여라평생 호랑이 그렸건만148) 재주 어찌도 이리 졸렬한가세월이 빨리도 흘러가 귀밑털 벌써 셌네예전에 다리 기둥에 사마상여의 뜻을 써두었는데149)지금은 포의로 밭갈며 지낸 와룡을 배우네150)부디 그대는 작은 새장에 매였다151) 한탄하지 말라큰 기러기 반드시 하늘에 갈 터이니152) 麟閣非關第一名蝸廬亦足過平生平生畵虎才何拙歲月催駒鬢已驚橋柱舊題司馬志布衣今學臥龍耕憑君莫恨鶉籠繫鴻鵠雲霄會有程 연아체(演雅體) 시체(詩體)의 하나로,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새·짐승·곤충 등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소재로 삼아 각 구절마다 한두 종류의 동물 이름을 직접 혹은 중의적으로 넣어서 짓는 것이 특징이다. 호랑이 그렸건만 고원한 일에 뜻을 두었으나 끝내 성취가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후한의 마원(馬援)이 조카 마돈(馬敦)에게 경계의 뜻을 담은 글을 보내 "두보(杜保)는 호협(豪俠)한 사람이므로 그를 본받다가는 천하의 경박한 자가 될 것이니 이른바 '범을 그리다가 이루지 못하면 도리어 개같이 되어 버리는[畫虎不成, 反類狗]' 격이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馬援列傳》 다리……써두었는데 웅대한 포부를 품었다는 뜻이다. 한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고향인 성도(成都)를 떠나 장안(長安)으로 갈 때 승선교(升仙橋)를 지나면서 다리 기둥에 "사마가 끄는 수레를 타지 않고는 다시 이 다리를 건너지 않겠다."라고 써서 기필코 공명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蒙求集註 卷下》 포의로……배우네 은거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와룡(臥龍)은 삼국 시대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으로, 유비(劉備)에게 발탁되기 전에 은거하며 농사를 짓고 있어 '와룡'이라 일컬어졌다. 훗날 제갈량이 쓴 출사표(出師表)에서 "신은 본래 포의로서 남양에서 몸소 농사를 지었습니다.[臣本布衣, 躬耕於南陽.]"라고 하였다. 작은 새장에 매였다 현자가 난세를 만나 용납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초사(楚辭)》 〈애시명(哀時命)〉에 "봉황이 매추라기의 새장에 깃듦이여, 날개를 거두더라도 용납되지 않네.[爲鳯凰作鶉籠兮, 雖翕翅其不容.]"라고 하였다. 큰……터이니 포부를 펼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기러기는 하늘에 높이 날아오르길 잘 하므로, 포부가 원대한 사람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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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 皇都 하늘에선 별이 기성과 미성226) 궤도에 있고땅에선 경계가 기주와 청주227)에 닿아 있네산을 이불로 삼고 바다를 옷깃으로 삼으니 황도 장엄하고성자와 신손이 계승하여 왕업이 이어지네태평성대에 노래하니 지금 만력 연간이요전장에 모래와 눈 날리니 옛날의 변경이라진나라 성 한나라 요새로 무력 함부로 쓴 곳인데문물과 의관 제정된 지 이백 년이 되었구나228) 天上星辰箕尾躔寰中彊界冀靑連被山襟海皇都壯聖繼神承寶籙綿壽域謳歌今萬曆戰場沙雪古三邊秦城漢塞窮兵地文物衣冠二百年 기성과 미성 기성(箕星)과 미성(尾星)은 모두 동쪽 방위에 속하는 별자리로, 중국의 요동 일대와 연경 및 우리나라가 위치한 곳에 해당한다. 기주와 청주 기주(冀州)와 청주(靑州)는 중국 고대의 구주(九州) 가운데 하나로, 중국의 요동 일대에 해당한다. 문물과……되었구나 명나라가 건국된 지 약 200여 년이 지났다는 뜻이다. 명나라가 건국된 것은 1368년인데, 정문부가 사은부사로서 북경에 간 것은 1610년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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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의 제시에 차운하다 次矗石樓韻 임진년 전쟁이 팔도를 휩쓸 때어앙314)은 이 성루가 가장 처참했다오바위는 굴러가지 못해 그대로 촉석이 되었지만강물은 무슨 마음으로 절로 흘러가는가황폐한 누대 중수하려 신명은 사람과 힘을 합하니능허당315)은 하늘과 땅이 함께 떠 있어라모름지기 알아야 하니, 막부의 경영하는 솜씨는장려하니 다만 한 고을 다스릴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龍歲兵焚捲八區魚殃最慘此城樓石非可轉仍成矗江亦何心自在流起廢神將人共力凌虛天與地同浮須知幕府經營手壯麗非唯鎭一州 어앙 춘추 전국 시대에 송(宋) 나라 지중어(池仲魚)라는 사람이 사는 곳이 성문에 가까웠는데, 한 번 성문에 불이 일어나자 그의 집까지 번져 중어가 죽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송 나라 성문에 불이 났는데, 연못물을 길어다 불을 끄느라, 연못물이 말라서 고기가 죽었다고 한다.《藝文類聚》 여기서는 백성이 도륙된 것을 이른다. 능허당 촉석루의 동각(東閣)이었는데, 중건할 때 함옥헌(涵玉軒)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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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록【당시 선생이 《심경(心經)》에 대해 질문한 내용을 덧붙임】 別錄【附時先生以心經質問】 전에 여쭌 몇 가지 조목에 대해서는 곡진하게 내려주신 정성스러운 가르침을 삼가 받들었습니다.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신 것이 마치 나침반이 남쪽을 가리키는 것과 같이 정확하였으니, 감사드리는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 사이에 한두 가지 다시 여쭐 것이 있어 감히 번거롭게 해 드립니다.내려주신 성대한 가르침에서 '경(經) 1장은 비록 성현(聖賢)의 지극한 논의와 격언을 말하였으나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는 별도의 요지가 없다.'라 하셨으니, 이 부분은 참으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후학들이 융통성 있게 보지 못하여 혹 격치(格致)와 성정(誠正) 밖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요지를 별도로 구할까 두려우니, 이는 작은 병통이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그 깊은 부분에 나아가 논하자면, '명덕(明德)'이라는 것은 곧 《중용(中庸)》에서의 '하늘이 명한 성(性)'126)이요, '명명덕(明明德)'이라는 것은 곧 '성을 따르는 것'127)을 말함이며, '신민(新民)'은 곧 '도(道)를 품절(品節)해 놓은 가르침'128)의 효험이고, '격치'라는 것은 곧 성찰(省察)하는 일로서 순(舜) 임금이 말한 '유정(惟精)'이요, '성정'이라는 것은 곧 존양(存養)하는 공부로서 순 임금이 말한 '유일(惟一)'입니다.129) 또 《중용》의 '중(中)과 화(和)의 지극한 경지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를 찾고 만물이 제대로 길러진다.'는 것130)은 곧 《대학(大學)》의 '평천하(平天下)'의 지극한 공입니다. 그러니 경 1장의 마음을 다스리는 요지가 《중용》 첫 장과 일체 차이가 없어 위로 요순(堯舜)의 뜻에 부합하는 것을 이와 같이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서산(西山)131)이 취사한 뜻에 우연히 의문 나는 점이 있었으므로 지난번에 우러러 여쭈었던 것인데 내려주신 성대한 가르침에 "별도의 요지가 없다."고 말씀하셨으니, 저의 의혹이 한층 깊어짐을 더욱 면치 못하겠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있는 큰 근본이 밝지 못하여 이치를 살필 때에 보는 것이 투철하지 못하므로 이와 같이 의아해 하는 병통이 있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가르침을 내려 저의 어리석은 의혹을 해소해 주심이 어떻겠습니까?내려주신 성대한 가르침에, "순 임금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아셨기 때문에132) '집중(執中)'이라는 두 글자를 가지고 전하셨으나, 우(禹) 임금은 배워서 이치를 아신 성인(聖人)133)이기 때문에 공력(功力)을 쓰는 차례를 가지고 전하신 것이다.134)"라 하신 말씀은 참으로 이전 사람들이 밝히지 못하였던 바이니, 몹시도 흠앙하고 탄복합니다. 다만 '집중'이라고 한 것이 또한 '선(善)을 택하여 굳게 지킨다.'는 말 뒤에 있으니,135)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고하신 것136)은 유독 공력을 쓰고 힘써 행하는 일이 아닙니까?근래 생각을 거듭하여 또 하나의 설을 얻었으니,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도(天道)의 지극히 정성스러움은 곧 성(性)의 큰 근본이요 전체입니다. 이른바 미발(未發)하였을 때의 혼연한 하나의 이치는 실로 힘쓰기를 생각하고 공력을 쓴다고 해도 미칠 수 없는 곳이므로 성인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막 발(發)한 뒤에 이르러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기미가 이에 나누어지니, 이른바 '정일(精一)'과 '집중(執中)'의 공력이 여기에 이르러 베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순이 발하여 움직이는 때의 공력을 쓰는 처음을 따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저 성인이 학문을 말씀하실 적에 발하여 움직이는 곳을 따라 공력을 더한 부분이 많으니, 공자(孔子)가 안자(顔子)에게 '극기복례(克己復禮)'로 고해 주신 부분137)이 또한 그 증거입니다. 깊이 생각하여 이와 같은 견해에 이를 수 있었는데, 이러한 설에 과연 병통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그 본뜻에 가깝겠습니까?또 생각건대, 주자(朱子)께서는 "《대학》의 도는 비록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아신 옛날 대성인(大聖人)이라도 또한 여기에서 배우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요순이 제위를 서로 주고받을 적에 '정밀하고 전일해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惟精惟一允執厥中]'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라 하셨습니다.138) 이를 통해 미루어보건대, 비록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알아 편안히 행하는139) 성인이라 하더라도 또한 일찍이 선(善)을 택하여 굳게 지키는 학문에 마음을 쓰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까?내려주신 성대한 가르침에, "애공(哀公)이 정사(政事)를 물은 것은 대개 치도(治道)가 어떠해야 하는지 물은 것이었고 공자의 대답 또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을 가지고 말한 것이니,140) 어찌 안연(顔淵)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물은 것141)을 보지 않는가?"라 하셨으니, 이는 참으로 그러합니다. 다만 안자의 물음에 대해서는 다스림의 대개가 이와 같음을 범범하게 논하셨을 뿐이니, 군신(君臣) 간의 정사에 대한 문답의 경우에는 이와 같이 범범하게 논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과인(寡人)은 실로 고루하여 이것을 행하기에 부족합니다."142)는 등의 말뜻을 통해 보건대 당시에 행할 만한 일로 고하였음을 더욱 알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前者所稟數條。謹承曲加勤誨。開發聾瞽。的若盤鍼之指南。感佩何量。但其間有一二更稟者。敢瀆焉。盛敎曰經一章雖云聖賢至論格言。而於治心之法。別無要旨云云。此一欵固然矣。然後學不能活看。恐或於格致誠正之外。別求治心之要旨則不是細病。未知如何。盖卽其奧而論之。其曰明德。卽中庸天命之性也。其曰明明德。卽率性之謂也。新民卽修道之敎之效也。其曰格致。卽省察之事而舜之所謂惟精也。其曰誠正。卽存養之功而舜之所謂惟一也。中庸之致中和位育。卽大學平天下之極功。則經一章治心要旨。與中庸首章。一體無間。上而合乎堯舜之旨者。明的可見如此。而西山取舍之意。偶有所疑。故頃發仰稟之端。而盛敎以別無要旨爲喩。則尤未免賤惑之愈深焉。此不過在我之大本未明。見理之際。看得不透。故有如此疑訝之病。伏惟垂敎。以破愚惑如何。盛敎曰舜旣生知。故以執中二字傳之。而禹乃學而知之聖。故以用工次第傳之云者。實前人之所未發。欽服欽服。但執中云者。亦在擇善固執之後。則堯之告舜。獨非用工勉行底事歟。近者思索。又得一說。以爲天道之至誠者。乃性之大本也全軆也。所謂未發之前。渾然一理。固思勉用工之所不及處也。故聖人不言之。及其纔發之後。人心道心之幾。於是焉分。則所謂精一執中之工。至此可施。故堯舜從其發動之際用工之始以言之矣。大抵聖人言學。多從發動處加工。孔子之告顔子以克己復禮。亦其驗也。竆思得到如此見解。未知此說果無病。而或庶幾於其本旨歟。又按朱子曰大學之道。雖古之大聖人生而知之者。亦未有不學乎此者。堯舜相授。惟精惟一。允執厥中者此也云云。以此推之。雖生知安行之聖。亦未嘗不用意於擇善固執之學歟。盛敎曰哀公之問政。槩問治道之如何。孔子之對。亦以治天下國家答之。胡不看顔淵之問爲邦云云。是固然矣。但顔子之問。是泛論爲治之大槩如斯而已。至於君臣爲政問答。恐不可如是之泛論。以寡人實固。不足以行之等語意見之。尤可見其以當日可行之事告之矣。未審如何。 《중용(中庸)》에서의……성(性) 《중용장구》 제1장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天命之謂性]"라 하였다. 성을 따르는 것 《중용장구》 제1장에 "성(性)을 따름을 도(道)라 이른다.[率性之謂道]"라 하였다. 도(道)를……가르침 《중용장구》 제1장에 "도(道)를 품절(品節)해 놓음을 교(敎)라 이른다.[修道之謂敎]"라 하였다. 격치라는……'유일(惟一)'입니다 '성찰(省察)'은 자신의 사욕을 살펴 이를 막는 것을 이르며, '존양(存養)'은 마음을 보존하여 성을 기르는 것[存心養性]을 이른다. 《중용장구》 제1장에, "군자는 보지 않는 데에도 삼가며, 듣지 않는 데에 두려워한다.[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 하였는데 이는 정(靜)할 때의 존양공부를 말한 것이며, "숨겨진 것보다 드러남이 없으며 작은 일보다 나타남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만 아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삼가는 것이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 하였는데 이는 동(動)할 때의 성찰공부를 말한 것이다. 주희(朱熹)는 이 부분을 "존양성찰의 요점[存養省察之要]"이라 해석하였다. 또 '유정(惟精)'과 '유일(惟一)'은 정밀하게 살피고 전일하게 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순 임금이 우(禹)에게 제위를 선양하며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해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書經 大禹謨》 《중용》의……것 《중용장구》 제1장에 "중과 화의 지극한 경지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를 찾아 편안하고 만물이 제대로 길러질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 하였다. 서산(西山) 송나라 학자 진덕수(眞德秀, 1178~1235)를 말한다. 서산(西山)은 그의 호. 자는 경원(景元),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심학(心學)의 요지가 되는 성현의 격언을 모아 《심경(心經)》을 편찬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때문에 원문은 '생지(生知)'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아는 성인(聖人)의 자질을 말한다. 《중용장구》 제20장에, "어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알고, 어떤 이는 배워서 알고, 또 어떤 이는 많은 노력을 한 뒤에야 안다.[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배워서……성인(聖人) 원문은 '학이지지성(學而知之聖)'이다. 배움을 통해 이치를 깨달아 성인(聖人)의 경지에 오른 인물을 말한다. 순 임금은……것이다 '집중(執中)'은 중도(中道)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순 임금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안 성인이기 때문에 요(堯) 임금이 그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집중(執中)'이라는 말만을 전수하였고, 우 임금은 배워서 이치를 안 성인이기 때문에 순 임금이 그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공력을 쓰는 차례를 가지고 전수한 것이라 말한 것이다. 《중용장구》 서문에, "경(經)에 보이는 말 중에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라.'라 한 것은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전수(傳授)해 주신 것이요,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隱微)하니, 정밀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을 잡을 수 있다.'라 한 것은 순 임금이 우 임금에게 전수해 주신 것이다. 요 임금의 한 마디가 지극하고 극진한데 순 임금이 다시 세 마디를 보탠 것은, 요 임금의 한 마디는 반드시 이와 같이 한 뒤에야 실천할 수 있음을 밝히기 위함이다.[其見於經 則允執厥中者 堯之所以授舜也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者 舜之所以授禹也 堯之一言 至矣盡矣 而舜復益之以三言者 則所以明夫堯之一言 必如是而後可庶幾也]"라 한 대목이 보인다. 집중이라고……있으니 《중용장구》 서문에, "천명(天命)‧솔성(率性)이라 말씀하신 것은 도심(道心)을 이름이요, 택선(擇善)‧고집(固執)이라 말씀하신 것은 정일(精一)을 이름이요, 군자(君子)‧시중(時中)이라 말씀하신 것은 집중(執中)을 이른다.[其曰天命率性 則道心之謂也 其曰擇善固執 則精一之謂也 其曰君子時中 則執中之謂也]"라 하여, '집중'을 '선(善)을 택하여 굳게 지킨다[擇善固執]'는 말 뒤에 둔 것을 말한다. 요 임금이……것 요 임금이 순에게 제위를 선양하며, "아, 너 순아, 하늘의 역수(曆數)가 너의 몸에 있다. 진실로 중(中)을 잡을지어다. 사해가 곤궁하면 하늘의 복록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咨爾舜 天之曆數在爾躬 允執其中 四海困窮 天祿永終]"라 한 것을 말한다. 《論語 堯曰》 공자(孔子)가……부분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이르기를 사욕을 극복하여 예로 회복하는 것이 인을 행함이니, 하루라도 사욕을 극복하여 예로 회복한다면 천하가 그 인을 허여할 것이다.[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라 한 것을 말한다. 《論語 顔淵》 주자(朱子)께서는……하셨습니다 《회암집(晦庵集)》 권13 〈계미수공주차 일(癸未垂拱奏劄一)〉에 나오는 대목이다. 편안히 행하는 원문은 '안행(安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알아 편안한 마음으로 행하는 성인(聖人)의 자질을 말한다. 《중용장구》 제20장에, "어떤 이는 편안히 행하고, 어떤 이는 이롭게 여겨서 행하며, 어떤 이는 억지로 행하지만, 공을 이루는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强而行之 及其成功 一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애공(哀公)이……것이니 《중용장구》 제20장에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정사(政事)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한 내용이 보인다. 안연(顔淵)이……것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안연(顔淵)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물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하나라의 달력을 사용하며 은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나라의 면류관을 쓴다.' 하였다.[顔淵問爲邦 子曰 行夏之時 乘殷之輅 服周之冕]"라 한 부분을 말한다. 과인(寡人)은……부족합니다 《중용장구》 제20장 주석에,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애공(哀公)이 말하기를 '선생의 말씀이 아름답고 지극하나, 과인은 실로 고루하여 이것을 이루기에 부족합니다.' 하였다.[公曰 子之言 美矣至矣 寡人實固 不足以成之也]"라는 부분이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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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원(李士元)【문석(文碩)】에게 주는 편지 贈李士元【文碩】書 완성(完城) 이사원(李士元)이 남쪽 고을에 수령으로 온 부친85)을 모시며 나를 따라 쑥대와 초목 우거진 곳에서 종유한 것이 몇 년이었는데, 일찍이 밤낮으로 경계하고 반성하는 도구로 삼을 만한 한 마디 말을 청하였다. 나는 "부족하고 못난 자라 아는 것이 없어 자신도 오히려 돌보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남을 위해 도모하겠습니까? 그러나 현공(賢公)과는 정(情)과 의리가 오랫동안 서로 부합한 사이라 또한 감히 도외시하여 끝내 부탁을 저버릴 수 없으니, 감히 한 마디 말을 하겠습니다."라 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인심(人心)이 바른 길로 가기를 좋아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온 세상에 유자(儒者)의 옷을 입고 유자의 관을 쓴 자가 얼마나 많겠습니까마는, 천하 사람들을 이끌고 어지럽고 화려한 명리(名利)의 길에 함께 달려갈 뿐 저쪽에서 나와 이쪽으로 들어오는 자는 천백에 한둘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현공은 조급히 벼슬에 나아가는 데 담담하게 마음을 끊고 탄탄하고 긴 길 위에 바른 걸음을 세우고자 하니, 제가 비록 어리석고 망령되지만 감히 들은 것을 가지고 기꺼이 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비록 그러하나 현공의 자질을 보면 순수하나 유약하고 현공의 기운을 살펴보면 맑으나 연약하니, 순수하면 의(義)를 듣고서 반드시 따르지만 유약하면 외물에 의해 옮겨 가기 쉽고, 맑으면 이치를 보는 것이 반드시 정밀하지만 연약하면 오래도록 지키기에 어렵습니다. 무릇 사람의 본성은 선하지 않음이 없으나 기질에 병통이 있으면 본성이 그에 따라 가려지게 되니, 반드시 먼저 기질 위에 있는 병통을 고치고 새롭게 한 뒤에야 비로소 학문하는 것을 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부자(夫子)께서 학문을 논하실 적에 지(知)‧인(仁)‧용(勇) 세 가지를 학문하는 절도로 삼고서, "아무리 유약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강해지고,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현명해진다."라는 말로 결론지으신 것입니다.86)지금 현공은 자질이 순수하고 기운이 맑으니 지(知)의 공부에 있어 바랄만한 점이 있을 듯하나, 유약하고 연약한 병통이 있으니 이른바 '인(仁)의 지킴'과 '용(勇)의 강함'이라는 것에 대해 용감하게 나아가고 확고하게 지키기를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유약함을 변화시켜 강하게 만들고 연역함을 변화시켜 굳세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정신을 온전하게 길러 외물이 다가와도 빼앗기지 않는다면 유약함이 거의 변하여 강함이 되고, 의(義)를 모아 확충하여87) 부지런히 힘쓰고 쉬지 않는다면 연약함이 또한 변하여 굳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가지를 합하여 그 요점을 말하자면 아마도 '경(敬)'일 것입니다. 경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외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단정하고 엄숙한 태도를 지니는 것[莊整齊肅]88)이 이것이요, 내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언제나 깨어 있는 것[主一惺惺]89)이 이것입니다. 단정하고 엄숙한 태도를 지니며 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언제나 깨어 있어 안팎이 서로 바르고 동(動)할 때나 정(靜)할 때나 어긋나지 않아, 하루 이틀 사이에도 끊어짐이 없고 함께 거처하든 홀로 거처하든 가는 곳마다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면 앞에서 말한 기질의 병통을 어찌 근심하겠습니까? 기질이 이미 변하였다면 현공의 맑고 밝은 자질로 순(舜) 임금처럼 되기를 바라건 안연(顔淵)처럼 되기를 바라건90) 어디를 간들 얻을 수 없겠습니까? 바라건대 현공은 힘쓰십시오. 저 또한 이로부터 스스로 경계하고 살필 것입니다. 서로 돈독히 허여한 사이인지라 주제넘고 경솔함이 여기에까지 이르렀으니, 몹시도 부끄럽고 죄송합니다."경자년(1660, 37세) 4월 하순 남촌(南村)의 농사짓는 늙은이는 절하고 쓰다. 完城李士元。陪嚴府之倅于南。從余遊於蓬蒿草棘之間有年矣。嘗請一言以爲日夕箴省之具。余謂拙劣者無所知。自身猶不恤。何暇爲人謀耶。然於賢公情義久相孚。亦不敢自外。竟孤所囑。則敢有一說。曰人心不好正路而行者久矣。擧一世衣儒冠儒者何限。而率天下同趍於紛華聲利之途。出彼入此者。千百未見其一二矣。今賢公湛然絶意於躁進。欲立正步於坦衢長途之上。愚雖昏妄。敢不樂告以所聞哉。雖然看贒之質粹而弱。察賢之氣淸而軟。粹則聞義必從。而弱則易爲物遷。淸則見理必精。而軟則艱於久守。凡人之性無不善。而氣質有病則性從而蔽。必也先從氣質上病痛革新之然後。方可以論爲學。故昔者夫子之論學。以知仁勇三者。爲爲學之節度。而結之曰雖柔必強。雖愚必明。今賢質粹而氣淸。則於知上工夫。似有可望。而有弱與軟之病則所謂仁之守勇之強。難保勇進而確守也。然則如之何而變弱爲強。變軟爲剛歟。完養精神。物來而不爲奪則弱庶變爲強。集義櫎充。勉勵而不息則軟亦可變爲剛矣。二者合而言其約則其敬乎。夫敬者何謂也。從外而言。莊整齊肅是也。從內而言則主一惺惺是也。莊整齊肅。主一惺惺。內外交正。動靜不差。一日二日。無所間斷。羣居獨處。無往不敬。則何憂乎前所謂氣質之病乎。氣質旣變則以賢淸明之資。希舜希顔。何往而不可得耶。惟賢君勖之哉。吾亦從此自警省焉。相與之厚。僭率至此。慚罪慚罪。庚子淸和下浣。南村農老拜稿。 남쪽……부친 이문석의 부친 이정(李晸)을 가리킨다. 이정은 1656년 남평 현감(南平縣監)에 제수되었다. 《承政院日記 孝宗 7年 閏5月 12日, 6月 11日》 옛날……것입니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0장에 "학문을 좋아함은 지에 가깝고, 힘써 행함은 인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앎은 용에 가깝다.[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라 하였고,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해야 하니, 과연 이 도리를 능히 한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현명해지고, 아무리 유약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강해진다.[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라 하였다. 확충하여 원문은 '황(櫎)'인데, 문맥을 살펴 '확(擴)'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단정하고……것 경(敬)을 행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회암집(晦菴集)》 〈답방경도뢰(答方耕道耒)〉에, "정부자(程夫子)께서 말씀하신 '경(敬)'이라는 것 또한 '의관(衣冠)을 바루고 생각을 전일(專一)하게 하며, 단정하고 엄숙한 태도를 지니고 속이지 말고 태만하지 말라.'고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若程夫子所謂敬者 亦不過曰正衣冠 一思慮 莊整齊肅 不慢不欺而巳]"라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마음을……것 경(敬)의 개념을 풀이한 말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상(卷上)에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을 '경(敬)'이라 하고,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감이 없는 것을 '일(一)'이라 한다.[主一之謂敬 無適之謂一]"라고 한 정이(程頤)의 말이 나오고, 《심경부주(心經附註)》에 "경은 마음이 언제나 깨어 있게 하는 법이다.[敬是常惺惺法]"라고 한 사량좌(謝良佐)의 말이 나온다. 순(舜) 임금처럼……바라건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본받아서 행하기만 하면 또한 그와 같이 될 수 있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한 안연(顔淵)의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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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愼氏)91)【성필(聖弼)】에게 답하는 편지 答愼【聖弼】書 장암(塲巖)에서 한번 모셨을 때는 몹시도 경황이 없었는데, 헤어진 뒤에 고요히 조섭하시는 체후는 어떠하십니까? 이전 편지에서 말씀드린 예(禮)에 대한 의문점은 비록 직접 뵌 자리에서 대략 논하였습니다만, 끝내 결론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상세히 생각해보니,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신 "비록 6, 7대라도 현재의 종자(宗子)와 상의하여 결정한다."라는 것92)은 장방(長房)으로 체천(遞遷)한 종자93)가 여전히 장방의 별묘(別廟)에서 주인이 됨을 말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말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대종자(大宗子)가 되었으면 비록 고조(高祖)의 사당이 헐려서 6, 7대에 이르렀더라도 온 집안이 모두 종통(宗統)으로 받들어 종법(宗法)을 그에게 부친다고 말씀하신 것인 듯합니다. 주자(朱子)께서 말씀하신 "고조의 사당이 헐리면 다시 종통으로 받들지 않는다."라는 것94)은 고조의 신주가 이미 봉사(奉祀) 대수가 다하지 않은 방(房)으로 옮겼다면 봉사 대수가 아직 다하지 않은 손자 가운데서 그 종통을 별도로 세우고 대종(大宗)의 봉사 대수가 다한 자는 다시 종통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뜻으로 보건대 정자의 설은 종법의 총론(統論)이요 주자의 말은 제법(祭法)의 세목으로, 각기 주장하는 바가 있지만 장방이 제사를 주관하는 데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대개 5대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예에 있어 참람된 것이니 지금 마땅히 신주를 묻어야 합니다. 그러나 방계(傍系) 손자의 봉사 대수가 아직 다하지 않아 차마 제사를 지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제사를 대신 주관하는 것입니다. 종자된 자는 복(服)이 다하고 정(情)이 다하여 감히 그 사당에서 참람되이 제사를 지낼 수 없으니, 또한 어찌 감히 참람되이 방친(傍親)의 사당에서 주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인정(人情)과 천리(天理)로 볼 때 분명하여 의심할 것이 없을 듯한데,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고명하신 그대의 뜻은 어떠하십니까?대저 예라는 것은 천리의 절문(節文)95)이니, 천리가 분명하지 않으면 절문이 상세하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평소 큰 근본을 세우고 의리를 밝히지 못하여 미발(未發)하였을 때 전체(全體)가 중(中)에 맞지 않고 이발(已發)한 뒤에 대용(大用)이 조화롭지 못하여96) 범상한 일에도 아는 것이 모호하니, 세세하고 정미한 절문과 의도(儀度), 지극히 정밀한 성현(聖賢)의 말뜻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밝게 헤아려 지극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우리들이 해야 할 오늘날의 급선무는 모두 '경(敬)에 처하여 근본을 세우고, 이치를 궁구하여 앎을 지극히 한다.[居敬立本窮理致知]'라는 여덟 글자에 있습니다. 여덟 글자의 지름길이 종이 위에 있으니 말하는 자가 마음 위의 길에서 돌이켜 구하여 종이 위와 마음 위를 합쳐서 하나로 만든다면, 이것을 천지만물에까지 미루어 어디를 가든 천리의 절문에 합치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고금의 예설(禮說)에 대한 책은 책상 문서 위에 겹겹이 쌓여 한갓 뜻을 상하게 하는 완물(玩物)97)이 될 뿐일 것입니다.비루한 저는 이러한 점에 대해 견해가 있으나 아직 미치지는 못한 사람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이에게 질정을 구하고자 하므로 이전 편지의 질문으로 인하여 아울러 언급하는 것이니, 그대98)는 다시 상세히 궁구하여 만약 합치되지 않는 점이 있다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塲巖一奉。殊甚草草。未知別後靜養何似。前書禮疑。雖略面論。終未歸宿。更詳思之。程子所謂雖六世七世。計會今日之宗子者。恐非謂遞遷長房之宗子。尙爲主人於長房之別廟也。細看語意。似謂旣爲大宗子。則雖高祖廟毁而至於六七世。一家皆宗之而宗法寓焉者也。朱子所謂高祖廟毁。不復相宗者。高祖之主。旣遷於親未盡之房。則別立其宗於親未盡之孫。而大宗親盡者不復爲宗也。作此意看之。程子之說。宗法之統論也。朱子之言。祭法之細目也。各有所主。而不害其爲長房之主祭矣。盖祭及五世。在禮爲僭。今當埋主而支傍之孫親旣未盡。不忍不祭。故遞主其祭。爲宗子者。服盡情盡。不敢僭祀於其廟。則亦安敢僭爲主人於傍親之廟哉。人情天理。的似無疑。未知於高意如何。大抵禮者。天理之節文也。天理未明則節文未詳。吾輩平日不能立大本明義理。未發之前。全體未中。旣發之後。大用未和。尋常事爲。所見糊塗。則至於節文儀度之纖悉深微。聖賢言意之至精至密。以何者而照鑑得至歟。是以吾輩今日急務。全在於居敬立本竆理致知八字上矣。八者蹊徑。在於紙上。說話者反而求之心上路脉。紙上心上合渾爲一。則以此推之天地萬物。無往而不合於天理之節文矣。不然則古今禮說簡冊。堆疊於案牘。徒爲喪志之玩物矣。鄙人有見於此而未及者也。欲求正於同志。故仍前書之問而幷及之。汝賚更加詳究。如有不合者。幸許相敎。 신씨(愼氏) 신성필(愼聖弼)을 가리킨다. 자는 여뢰(汝賚), 호는 경암(敬庵)이다. 감사를 지낸 신희남(愼喜男)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신광익(愼光翊), 형은 참봉 신성윤(愼聖尹)이다. 정자(程子)께서……것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7에, "무릇 소종(小宗)은 5대로 법을 삼아 봉사(奉祀) 대수가 다하면 친족은 흩어진다. 만약 고조(高祖)의 아들이 아직 살아있어서 그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면, 현재 종자(宗子)가 된 자가 비록 6, 7대라도 또한 모름지기 현재의 종자와 상의하여 결정하고, 그런 뒤에 그 아버지의 제사를 지낸다. 이는 종자에게 군주의 도가 있기 때문이다.[凡小宗以五世爲法 親盡則族散 若高祖之子尙存 欲祭其父 則見爲宗子者 雖是六世七世 亦須計會今日之宗子 然後祭其父 宗子有君道]"라 하였다. 장방(長房)으로 체천(遞遷)한 종자 '체천(遞遷)'은 봉사(奉祀) 대수(代數)가 다한 선조의 신주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보통 최장방(最長房)의 집으로 옮기는데, 최장방은 4대 이내의 자손 가운데 항렬이 가장 높은 연장자를 말한다. 주자(朱子)께서……것 《회암집(晦庵集)》 권51 〈답동숙중(答董叔重)〉에, "고조의 사당이 헐리면 이 사당을 함께 하는 자는 단문(袒免)의 친척이 되니, 다시 종통으로 받들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5대가 되면 옮긴다.'는 것이다.[高祖廟毀 則同此廟者 是爲袒免之親 不復相宗矣 所謂五世而遷也]"라 하였다. 천리의 절문(節文) 《논어》 〈학이(學而)〉에 "예를 적용할 때는 차분하고 각박하지 않게 하는 것이 귀중하다.[禮之用 和爲貴]"라 하였는데, 주희(朱熹)는 이를 해설하면서 "예라는 것은 천리에 의해 차등적으로 매겨진 등급이자 인간사에서 마땅히 준수해야 할 법칙이다.[禮者 天理之節文 人事之儀則也]"라 하였다. 전체(全體)가……못하여 《대학장구(大學章句)》 전 5장에, "대학에서 처음 가르칠 때 반드시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모든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 그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가지고 더욱 궁구해서 그 지극함에 이르는 것을 구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힘쓰기를 오래해서 하루아침에 돌연히 관통하게 되면 모든 사물의 표리와 정조가 이르지 않음이 없게 되고 내 마음의 전체(全體)와 대용(大用)이 밝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니, 이것을 '격물(格物)'이라 이르며, 이것을 '지지지(知之至)'라 이른다.[大學始敎 必使學者 卽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 而一旦豁然貫通焉 則衆物之表裏精粗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라 한 데서 온 말이다. 뜻을……완물(玩物) 쓸데없는 물건을 가지고 노는 데에 몰두한 나머지 소중한 자기의 본심을 잃어버린다는 뜻의 '완물상지(玩物喪志)'에서 취한 말이다. 《서경(書經)》 〈여오(旅獒)〉에,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하찮게 여기면 덕을 잃고, 좋아하는 사물에 빠지면 뜻을 잃는다.[玩人喪德 玩物喪志]"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그대 원문은 '여뢰(汝賚)'다. 신성필의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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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愼氏)【성필(聖弼)】에게 답하는 편지 答愼【聖弼】書 겨울에 칩거하며 병을 다스린 것이 마치 호흡을 멈춘 거북99)과 같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정다운 안부를 전해주는 인편이 이르렀으니, 상을 나란히 하고 조용히 이야기 나누면서 마음의 곡절을 세세히 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 가운데 '거경(居敬)' 한 대목은 벗들과 떨어져 쓸쓸히 지내는100) 저의 비루함을 계발(啓發)해 주며, '이치를 궁구하며 단정히 앉는다.'는 말씀은 은연중에 못난 저의 병통에 들어맞으니, 도와주고 깨우쳐주는 어진 마음으로 성대하게 가르침을 내려주신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다만 도수(度數)를 깊이 연구하는 것이 또한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라는 말씀101)은 정자(程子)의 뜻의 외면적인 부분을 대략 살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자(程子)께서는 경(敬)을 위주로 하는 공부가 《소학(小學)》에서 빠진 것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는 말102)을 가지고 보자면 격물치지(格物致知)하기 전에 어찌 근본을 세우는 공부가 전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자사(子思)는 존양(存養)을 성찰(省察)의 앞에 두었고 덕성(德性)을 문학(問學)의 앞에 두었으니,103) 그 뜻이 어찌 얕겠습니까? 우리 어진 그대와 다시 이 뜻을 궁구하기를 바랍니다.천박하고 고루함을 헤아리지 않고 말이 문득 이러한 데까지 이르렀으니, 몹시도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하나의 양(陽)이 처음 생겨나는 이때104)에 고요하고 묵묵하게 단정히 수양하시어 복이 끝없이 이어지기를 우러러 바랍니다. 凍蟄調病。若閉息之龜。此時情問便至。何異連床靜對。細論心曲。其中居敬一款。起發索居之陋。而竆理端坐之語。暗中拙者之病。輔警之仁。深荷盛賜。但硏竆度數之亦爲竆理。程子之意。非不粗窺其皮毛。而以程子主敬工夫可以當小學云云之語看之。格致之前。豈容專無立箇根本之工歟。子思以存養居省察之前。以德性在問學之首。其意豈淺淺哉。願與吾賢更究此旨。不揆淺陋。言忽至此。悚愧悚愧。一陽初生。仰惟靜默端養。延福無極。 호흡을 멈춘 거북 도가(道家)에서는 호흡을 거북처럼 하면 먹고 마시지 않고도 장생(長生)할 수 있다고 한다. 일설에는 거북은 잠잘 때 숨을 귀로 내뱉는데, 이로 인하여 장생하는 것이라 한다. 벗들과……지내는 원문은 '삭거(索居)'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자하(子夏)가 "내가 벗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산 지가 오래이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도수(度數)를……말씀 송나라 유학자 정이(程頤)는 학문에 있어 특히 '거경궁리(居敬窮理)'를 강조하였는데, '거경'은 내적 수양 방법으로서 마음을 성찰하여 성실하게 기거동작(起居動作)을 절제하는 것을 말하며, '궁리'는 외적 수양 방법으로서 널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정확한 지식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신성필이 보낸 편지 가운데, 도수(度數)를 깊이 연구하는 것이 곧 '궁리'의 방법이 된다고 한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자(程子)께서는……말 《소학집주(小學集註)》 〈총론(總論)〉에,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정자께서는 경(敬)을 위주로 하는 공부가 《소학(小學)》에서 빠진 것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경을 위주로 하면 방심(放心)을 거두어 큰 근본을 세울 수 있으니, 큰 근본이 이미 선 뒤에 대학(大學) 공부도 순서를 따라 나아가면, 가는 곳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陳氏曰 程子說主敬工夫 可以補小學之闕 蓋主敬 可以收放心而立大本 大本旣立 然後大學工夫循序而進 無往不通]"라 한 대목이 보인다. 자사(子思)는……두었으니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 "군자는 그 보지 않는 바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듣지 않는 바에도 두려워한다.[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 하고, "숨겨진 것보다 드러남이 없으며 작은 일보다 나타남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만 아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삼가는 것이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 하였는데, 주희(朱熹)는 이를 "존양성찰의 요점[存養省察之要]"이라 해석하여 '존양'을 '성찰'의 앞에 두었다. 또 《중용장구》 제27장에는 "군자는 덕성을 높이며 문학을 말미암는다.[君子尊德性而道問學]"라 되어 있어, 덕성을 문학의 앞에 두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이때 동지(冬至)를 가리킨다. 《주역》 〈복괘(復卦)〉의 공영달(孔穎達) 소(疏)에, "동지에 하나의 양이 생기니, 이는 곧 양은 움직여서 용사하고 음은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冬至一陽生 是陽動用而陰復於靜也]"라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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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愼氏)【성필(聖弼)】에게 부치는 편지 寄愼【聖弼】書 사도(斯道)가 불행하여 성암(惺菴) 문장(文丈)105)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으니, 부고를 듣고서 저도 모르게 신위(神位)를 설치하여 통곡하고 이어서 애도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문하(門下)이자 지친(至親)으로서 은혜와 의리가 모두 지극하시니, 도(道)를 위해서든 정(情)을 위해서든 무너지고 찢어지는 마음을 어찌 감당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돌아보건대 이 외로운106) 몸은 병으로 궁벽한 들판에 버려진 탓에 비록 함장(函丈)107)의 사이에서 계속해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였지만 만년에 사우(師友)의 교분으로 외람되이 지극한 기대를 받았는데, 어찌 오늘날의 흉한 소식이 전해질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몹시도 애통하고 슬픕니다.지난번 집안 조카 문봉의(文鳳儀)가 받들어 전해준 정다운 안부 편지108) 가운데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근래의 상태는 어떠하십니까? 저 또한 숙질(宿疾)이 여름에 다시 발생하였습니다. 가을 초에 날씨가 시원해져 혹 병이 낫게 된다면 성암의 상차(喪次)109)에 달려가 곡하고 이어 모시고서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병으로 인해 할 말을 모두 적지 못합니다. 斯道不幸。惺菴文丈奄棄經學。聞訃不覺設位而痛哭。繼之以悼念。伏惟師門至親。恩義備盡。爲道爲情。摧裂何堪。顧此孤露之生。病廢竆原。雖未能源源際晤於函丈之間。晩歲師友之託。猥有至望。豈意今日凶聞經至哉。痛悼痛悼。頃者家甥文鳳儀奉傳情問書中。有愆度之眎。未知近况如何。某亦宿疾夏中更作。秋初氣爽。倘得蘇歇。當哭惺庵喪次。仍擬奉展。病不備悉。 성암(惺菴) 문장(文丈) 이수인(李壽仁, 1601~1661)을 가리킨다. 성암(惺菴)은 그의 호.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안(幼安)이다. 1633년 과거에 급제하여 전적, 병조좌랑,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642년 재차 전적에 제수되었으나 사은한 뒤 바로 전리(田里)로 내려갔으며, 이후로도 여러 차례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문장(文丈)'은 재주가 높고 덕이 뛰어나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외로운 원문은 '고로(孤露)'다. 어릴 때 부모를 잃어 의지할 데가 없는 것을 말한다. 함장(函丈) 한 길[丈]을 용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스승과 강론하는 자리를 의미하며, 스승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만약 음식을 대접하는 손님이 아니고 스승과 강론하는 자리이면 자리를 펴되 한 길쯤 되는 공간을 띄운다.[若非飮食之客 布席 席間函丈]"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집안……편지 《남포집(南圃集)》 〈남교일기(南郊日記)‧신축(辛丑)〉에, 1661년 5월 25일에 집안 조카 문봉의(文鳳儀)가 영암(靈巖)에서 돌아와 신성필(愼聖弼)의 편지를 전해주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상차(喪次) 상중에 상주가 거처하며 집상(執喪)하는 곳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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