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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략(三略)》219)을 읽고 讀三略書 남자다운 마음과 여자 같은 용모220)왕교(王喬)221)와 같은 자품으로 기(夔)와 용(龍)222)처럼 되기를 허락하였네처음 천하를 평정할 적에는 황석공(黃石公)에게 배웠고223)만년에 공명(功名)을 이루고서는 적송자(赤松子)를 벗하였네224)한(漢)과 초(楚)의 흥망(興亡) 세치 혀에서 판가름 났고225)진(秦)과 한(韓)의 묵은 원한 긴 병기(兵器) 하나로 보여 주었네226)썰렁한 서재【'한(寒)'은 어떤 본에는 '한(閑)'으로 되어 있다.】에서 당시의 비결(秘訣)을 다 보고나니나도 모르게 천지의 장대한 기운이 따라 일어나네 男子心胷女子容王喬身世許夔龍初平天下師黃石晩遂功名友赤松漢楚興亡三寸舌秦韓讎怨一長鋒寒【寒一作閑】齋閱盡當年訣不覺乾坤壯氣從 삼략(三略) 한(漢)나라의 장량(張良)이 황석공(黃石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병서(兵書)로, 상략(上略), 중략(中略), 하략(下略)의 세 권으로 되어 있다. 남자다운……용모 사마천(司馬遷)이 장량(張良)을 평한 말에, "나는 그 사람이 체격이 크고 기이하게 생긴 줄 알았는데, 그의 화상(畫像)을 보니, 마치 아름다운 여인(女人)과 같았다."라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왕교(王喬) 왕자교(王子喬)를 가리킨다. 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에 의하면, 왕자교는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진(晉)으로, 피리 불기를 좋아하였는데 피리를 불면 봉황새 우는 소리가 났다. 이수(伊水)와 낙수(洛水) 사이에서 노닐다가 도사(道士) 부구공(浮丘公)을 만나 숭산(嵩山)에서 신선술을 배웠고, 30여 년 뒤에 흰 학을 타고 구씨산(緱氏山) 꼭대기에 내려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장량 역시 공업(功業)을 이른 뒤에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노닐고자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기(夔)와 용(龍) 순(舜) 임금의 어진 두 신하를 말한다. 기(夔)는 음악을 담당하였고, 용(龍)은 간언(諫言)을 담당하였다.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신하가 된 장량을 이들에 빗댄 것이다. 처음……배웠고 장량이 하비(下邳)의 다리에서 황석공(黃石公)이라는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이 다리 밑으로 떨어진 신을 주워달라고 하였다. 장량이 신을 주워 공손히 신겨주자, 노인은 그에게 강태공의 병법서를 주었다. 장량은 이를 익혀 고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였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만년에……벗하였네 '적송자(赤松子)'는 전설상의 신선 이름이다. 장량은 천하가 통일된 뒤 자신의 몸을 보전하기 위하여 고조(高祖)에게 "인간사를 버리고 적송자를 좇아 놀기를 원합니다.[願棄人間事 欲從赤松子遊]"라 하였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한(漢)과……났고 장량이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모신(謀臣)으로 활약하며 한(漢)나라가 초(楚)나라에게 승리를 거두는 데 많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진(秦)과……주었네 장량은 선조가 한(韓)나라 사람이었는데, 진(秦)나라에 의해 한나라가 멸망당하자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창해역사(滄海力士)로 하여금 철퇴를 들고 박랑사(博浪沙)에서 진시황을 저격하게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철퇴가 빗나가 진 시황이 탄 마차를 맞히지 못하고 다음 수레를 치고 말았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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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이 거닐며 閒行 난초 언덕과 푸른 이끼 모두 밟고서봄빛을 찾아 높은 누대에 오르네오솔길 방초(芳草)와 이어지니 향기가 나막신에서 생겨나고사람이 푸른 소나무에 의지하니 푸른빛이 잔에 스며드네십 리의 물결 빛깔 상과 도마에 일렁이고온 산의 꽃기운 술동이를 이끄네얼큰히 취해 동풍(東風)을 마주하니천 송이 만 송이의 희고 붉은 꽃들 저마다 활짝 피어 있네 踏盡蘭臯與碧苔行尋春色上層臺逕連芳草香生屐人倚靑松翠入盃十里波光搖案俎一山花氣惹樽罍薰然醉對東風面萬白千紅自在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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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발문(1)12) 重刊跋(1) 대개 문학(文學)과 충량(忠良)은 바로 나라의 정간(楨幹)13)이다. 옛날에 뛰어난 문장과 탁월한 절개가 백대에 빛나는 자가 있으면 태사씨(太史氏 사관(史官))가 동관(彤管)14)으로 먼저 능연각(凌煙閣)15)과 죽백(竹帛 사서(史書))에 기록하여 천지와 더불어 영원하게 하였다. 또 그 자손 된 자가 혹 판각하여 길이 전하고 활자(活字)로 간행하여 세상에 널리 배포하여 그 영광과 그 공렬을 해와 달처럼 빛나게 하고 서리와 눈처럼 늠름하게 하였으니, 어찌 천년 뒤에 죽은 사람을 되살렸다고 이르는 것이 아니겠는가.아! 생각건대 나의 9대조 충의공(忠毅公) 농포(農圃) 선생은 풍부한 문학으로 일찍 갑과(甲科)에 급제하였다. 선묘조(宣廟朝) 임진년(1592)을 당하여 북쪽 지역을 안정시켰으니, 곧은 충정은 백세토록 빛나서 국사(國史)에 밝게 드러날 뿐만이 아니라고 이를 만하다. 또 전후로 기실(記實)을 찾아내고 채집하여 여러 선생이 집필한 글에 자세히 갖추었으니, 이제 후손의 좁은 소견을 어찌 감히 그사이에 덧붙이겠는가.아! 나의 5대조 불우헌공(不憂軒公 정상점(鄭相點))은 바로 선생의 현손이다. 일찍부터 강개한 마음을 가지고 조상을 위한 일에 정성을 다하였으니, 선생이 평소 집에 소장하고 있던 본초(本草)와 유사(遺詞) 및 일고(逸稿)를 좀먹거나 교감(校勘)16)한 뒤에 수습하고, 병란과 환란을 겪은 뒤에 모아서 주선하여 판각한 것이 바로 두 권의 책17)이다. 간행하여 세상에 전한 지가 100여 년에 이르렀으며, 각판(刻板)은 진주(晉州) 용암(龍巖)의 재실(齋室)에 보관되어 있기에 이로 인해 사모하는 마음을 부친 지가 오래되었다.그러다가 근래에 경향(京鄕)의 세가(世家)와 북쪽 지방의 유생들이 소중하게 보관한 것을 널리 채집하고 두루 찾아서 또 몇 권을 문집에 편입(編入)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바야흐로 활자로 간행하여 널리 배포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예전대로 구집(舊集 정상점 간행본)을 속간(續刊)한다면 책 모양의 크기, 목판과 활자의 자체(字體)와 편차(編次)의 선후에 착란의 잘못이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전부 활자로 하기로 논의를 결정하였다. 구집의 각판은 자연스럽게 존각(尊閣)18)에 돌려놓았을 따름이니, 우리 불우헌공의 자손이 된 자라면 누구인들 애석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나의 5대조께서 조상을 위한 일에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니, 결국에는 계술(繼述)하는 도리에 있어서 완집(完集)을 간행하는 것이 도리어 구집을 속간하는 것보다 좋은 점이 있다 하겠다.숭정(崇禎) 기원후 5번째 경인년(1890) 3월 하현(下弦)에 9대손 혁교(奕敎)가 두 손 모아 절하며 삼가 쓰다. 蓋夫文學、忠良, 卽國之楨幹也。古有偉文、卓節, 光耀於百世者, 則太史氏彤管, 先以凌烟、竹帛, 而與天地相終焉。且爲其子孫者, 或鋟梓壽傳, 印鑄廣布, 使其光其烈, 煥乎若日月, 凜乎若霜雪者, 豈非起死人於千載之下云者乎? 噫! 唯我九代祖忠毅公農圃先生, 以贍實文學, 早登甲科, 當宣廟朝壬辰歲靖北, 貞忠可謂百世光耀, 而不但於炳著國乘。又前後採訪記實, 備悉於諸先生秉筆之下, 則今以後孫之管見, 何敢贅附於其間哉? 粵我五代祖不憂公, 卽先生之玄孫也。夙抱慷慨, 殫誠爲先, 先生之平日家藏本草與遺詞、逸稿, 收拾於蠹食、偏傍之餘, 裒葺於兵燹、患亂之後, 而周旋剞劂者, 乃兩卷冊子也。刊行傳世, 至於百有年所, 而刻板則藏于龍巖齋室, 仍以寓慕者久矣。近於京鄕世家與北儒珍藏, 博採旁搜者, 又爲數卷編集, 故今方印鑄布行, 而若仍舊續集, 則冊樣大小, 板鑄字體, 編次先後, 有失於舛錯, 故不獲而全以活字歸論。而舊集板刻, 自然歸之於尊閣而已, 則爲吾不憂公子孫者, 孰不慨惜? 而以吾祖爲先, 未遑底意, 究竟則其在繼述之道, 印行完集, 反有賢於續舊也哉。崇禎紀元後五庚寅暮春下弦, 九代孫奕敎, 拜手謹識。 대본에는 제목이 없는데, 이 중간 발문은 정문부의 9대손 정혁교(鄭奕敎)가 1890년에 7권 4책으로 편차한 뒤에 활자본으로 중간하고 붙인 것이다. 정간(楨幹) 정은 담의 양쪽 끝에 세우는 나무이고 간은 양면에 세우는 나무로, 사물의 근본을 비유하는 말이다. 동관(彤管) 자루가 붉은 붓으로, 사필(史筆)을 가리킨다. 옛날 주(周)나라 때 여사(女史)가 이러한 붓을 가지고 궁중의 정령(政令)이나 후비(后妃)의 일을 기록하였다. 《詩經 邶風 靜女》 능연각(凌煙閣) 당 태종이 정관(貞觀) 17년(643)에 장손무기(長孫無忌)와 두여회(杜如晦) 등 훈신(勳臣) 24명의 초상화를 그려서 여기에 걸어 놓게 하였다. 《新唐書 卷2 太宗皇帝本紀》 교감(校勘) 초고(草稿)를 정리하여 간행하는 과정 중에 글자의 변(偏)과 방(傍)이 비슷한 속자(俗字)를 교감하여 수정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두 권의 책 1758년에 정상점(鄭相點)이 간행한 것을 말한다. 존각(尊閣) 존경각(尊經閣)의 준말로, 지방 향교나 서원의 장서각(藏書閣)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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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발문(2)19) 重刊跋(2) 농포 정공(鄭公)은 왜적이 날뛰던 때에 북병사(北兵使)의 좌막(佐幕)이었는데, 유아(儒雅)한 몸으로 사시(蛇豕)의 돌진20)을 가로막아 세상에 드문 기이한 공을 세우고도 끝내 시안(詩案)의 화를 당하였다. 애석하다! 하늘이 이미 공에게 문무를 겸비한 재능을 부여하여 태어나게 하였는데, 큰 난리로 곤액(困厄)을 겪게 하고 깊은 원통함에 빠지게 한 것은 도대체 또 무슨 의도인가. 옛날에 악 무목(岳武穆)이 '막수유(莫須有)'라는 세 글자 때문에 죽자21) 세상 사람들이 슬퍼하였으니, 공의 충성과 원통함이 거의 옛사람과 결과가 같아 영원히 지사(志士)의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열성조(列聖朝)께서 원통함을 씻어주고 공적을 포상하여 선양해 준 것에 대해서는 진실로 남은 유감이 없으니, 그 성대한 조우(遭遇)가 어찌 생사에 차이가 있겠는가.공의 유문(遺文)은 화환(禍患) 중에 잃어버려 매우 희소하지만, 그 말씀과 공업(功業)은 진실로 모두 여기에 남아있으니, 잘 관찰하는 자가 여기에 나아가 이를 반복해서 본다면 또한 평소의 모습을 대략 알 수 있을 것이다. 후손이 장차 이 문집을 다시 간행하고자 하여 나에게 권미(卷尾)에 한마디 말을 써넣도록 하였다. 아, 경송(勁松)22)은 덩굴지지 않고 빛나는 해는 요기(妖氣)가 없으니, 이와 같지 않다면 그의 강직한 성정이 어떻게 흘러나왔겠는가? 나의 선자(先子)이신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께서 일찍이 그 사업을 논하면서 사당터를 하사받은 곳에 제사 지내는 것을 허락하였다.23) 아름다운 칭송 같은 것에 대해서도 민 문간공(文簡公 민우수(閔遇洙))의 서문에 빠짐없이 서술하였으니, 또 어찌 나의 군더더기 말을 기다리겠는가. 그럭저럭 마음에 느낀 바를 써서 돌려주었다.숭정 기원후 5번째 경인년(1890) 초봄에 덕은(德殷) 송병선(宋秉璿)이 발문을 쓰다. 農圃鄭公, 佐幕北閫於島夷陸梁之日, 以儒雅之身, 橫蛇豕之衝, 建立不世寄功, 而卒罹詩案之禍。惜乎! 天旣以文武全才乎公而生, 阨之以大亂, 沈之以幽寃者, 抑又何意歟? 昔岳武穆死於莫須有三字, 天下悲之, 則公之爲忠爲寃, 殆與古人同歸, 而足以釀千古志士之淚矣。然列聖之湔滌褒顯, 固無餘憾, 則其遭遇之盛, 奚間於生死也哉? 公之遺文, 逸於禍患, 雖甚寂廖, 而其言語也事功也, 固皆在於斯矣, 善觀者卽此而反覆之, 亦可以槪其雅素矣。後孫將欲重刊是集, 而俾余置一言於卷尾。噫! 勁松不蔓, 光日無氛, 不如此, 其何以爲剛腸之所流出哉? 吾先子文正公, 嘗2)論其事業, 許以俎豆於受賜之地。至如稱述之美, 閔文簡3)公序殫矣, 又何待余言之贅? 聊書所感於中者以歸之。崇禎紀元後五庚寅孟春, 德殷宋秉璿, 跋。 대본에는 없는데, 《연재집(淵齋集)》 권28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사시(蛇豕)의 돌진 큰 멧돼지와 긴 뱀[封豕長蛇]과 같이 끝없이 탐욕을 부리면서 포학한 짓을 하는 왜적이 함경도로 돌진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죽자 무목(武穆)은 남송(南宋) 때 충의가 뛰어난 명장 악비(岳飛)의 시호이다. '막수유(莫須有)'는 '아마도 있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분명하고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개연성만으로 있을 것이라고 추단(推斷)하여 근거 없이 무함하는 것을 말한다. 진회(秦檜)가 충신 악비를 죽이려고 무함하여 "악비의 아들 운(雲)이 장헌(張憲)에게 편지를 보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체로 보면 아마도 있을 것이다."라고 하자, 한세충(韓世忠)이 "'막수유' 세 글자가 어떻게 천하를 복종시키겠는가."라고 한 데서 나왔다. 《宋史 卷365 岳飛列傳》 경송(勁松) 서리나 눈에도 시들어 죽지 않는 강(強)한 소나무로, 정신(貞臣)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문정공(文正公)이……허락하였다 《송자대전(宋子大全)》 권48 〈이계주에게 답함[答李季周]〉에 "고서(古書)에 '큰 난을 막은 자가 있으면 이를 제사지낸다,'고 한 글이 있으니, 지금 이로써 사당터를 하사받은 곳에 제사 지내는 것을 어찌 의심하고 의심하겠는가.[古書, 有抗大難則祀之之文, 今以此俎豆於受賜之地, 何疑何疑?]" 하였다. 1665년에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가 단천(端川) 군수 홍석구(洪錫龜)와 경성(鏡城) 어랑리(漁郞里)에 사당터를 정하고, 이해 4월 26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9월에 공사를 마쳤다. 어랑리는 바로 농포 정문부가 이붕수(李鵬壽)와 의병을 일으켰던 곳이다. 《農圃集 卷7 年譜》 嘗 대본에는 '常'으로 되어 있는데, 《연재집》 권28에 근거하여 고쳤다. 簡 대본에는 '元'으로 되어 있는데, 1758에 문간공(文簡公) 민우수(閔遇洙)가 지은 서문(序文)에 근거하여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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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읊다 偶吟 태고적 같은 작은 집에서 小齋如太古석양 하늘 아래 홀로 앉았네 獨坐夕陽天금강석 같은 눈은 은빛 세계 이루고 銀界金剛雪옥정56)의 안개는 얼음 비단 같네 氷紈玉井煙풍광이 밝은 태양을 씻어주고 光風洒白日비 갠 뒤 달빛은 차가운 샘물을 비추네 霽月照寒泉천지간에 나는 부끄러움이 없으니 俯仰吾無愧거문고 타고 독서하며 편안히 세월 보내리라 琴書穩送年 小齋如太古, 獨坐夕陽天.銀界金剛雪, 氷紈玉井煙.光風洒白日, 霽月照寒泉.俯仰吾無愧, 琴書穩送年. 옥정 태화산(太華山) 꼭대기에 있다는 연못 이름이다. 한유(韓愈)의 〈고의(古意)〉에 "태화산 꼭대기 옥정에 있는 연은, 꽃이 피면 열 장이요 뿌리는 배와 같다네.[太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라고 하였다. 《韓昌黎集 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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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상 세 절구시는 빗소리를 들으며 지은 것이다.】 又 【以上三絶聽雨】 비 지나간 봄 산에 풀이 절로 돋지만 雨過春山草自生남은 꽃 한들한들 떨어져 나비 날아오지 않네 殘花飄落蝶無情그 모습 눈에 들어오니 온갖 정감 생기는데 森森入眼渾成感차디찬 처마에 방울방울 물소리 들리도다 滴滴寒簷更有聲 雨過春山草自生, 殘花飄落蝶無情.森森入眼渾成感, 滴滴寒簷更有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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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又 이 밤 달빛이 매우 밝고 此夜蟾光十分明이웃집 피리소리 정겹기도 해라 數聲隣笛更多情두보가 맑은 밤에 섰던 일 아득히 생각하니 遙思杜老淸宵立예나 지금이나 달빛 아래 걷는 마음은 매 한가지69) 今古心同步月行 此夜蟾光十分明, 數聲隣笛更多情.遙思杜老淸宵立, 今古心同步月行. 두보가 …… 한가지 아우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한별(恨別)〉에, "고향 집 생각하며 달 아래 거닐다 맑은 밤에 서 있고, 아우를 그리워하며 구름 보다가 한낮에 꾸벅꾸벅.〔思家步月淸宵立 憶弟看雲白日眠〕"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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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나루의 강가 정자 4수 楊花渡江亭 四首 천 길의 산봉우리 깎아 지른 듯 솟아있고높다란 정자 푸른 물결을 베개 삼았네물결 흔적 저물녘에도 여전히 축축하고강에는 밤에 서늘한 가을 기운 도네푸른 나무엔 꾀꼬리 보이고밝은 모래톱엔 흰 갈매기 보이지 않네내일 아침에 한양으로 떠나니티끌세상이 사람을 시름겹게 하는구나-원문 2자 결락- 높이 솟아 있고문을 열고 맑은 물결 굽어보네먼 산봉우리엔 아지랑이 피어오르고평평한 밭엔 보리 이미 익었구나높은 돛은 사나운 물결 따르고흔들리는 노는 잠자는 갈매기 깨우네달 떠오르자 어망을 거두고술 마시며 또한 시름을 달래네-원문 2자 결락- 연하 드넓고장강은 하늘 끝으로 흐르네좋은 경치 구경 겨우 한낱 꿈이요밝은 달은 절로 천추에 빛나네세상 살아감에 새장 속 학과 같은 신세이니물결 굽어봄에 바다 갈매기에게 부끄러워라술 사서 마셔본들 어떠리한껏 취하여 번뇌를 씻노라산은 누에 머리처럼 이어져 있고정자는 큰 강 물결 굽어보네달의 물결 삼경에 –결자-바람 부는 난간은 오월에도 가을이라어촌은 해안을 마주하고잠든 객은 모래톱 갈매기와 짝하는구나좋은 벗은 환백3)을 맞이하고노래하는 여인은 막수4)에게 부족하네 削立千尋嶂危亭枕碧流潮痕晩猶濕江氣夜生秋樹綠看黃鳥沙明失白鷗明朝京洛去塵土使人愁【二字缺】高突凡開戶瞰淸流遠峀嵐蒸氣平田麥已秋高帆隨駭浪搖櫓起眠鷗趁月收漁網啣盃且遣愁【二字缺】烟霞豁長江天際流勝遊纔一夢明月自千秋處世同籠鶴臨波愧海鷗不妨沽酒飮泥醉滌煩愁山連蠶頭勢亭壓大江流月浪三更【缺】風欞五月秋漁村臨海岸眠客伴沙鷗良友邀歡伯歌姬欠莫愁 환백 술을 뜻한다. 한(漢) 나라 초공(焦贛)의 《역림(易林)》 〈감지태(坎之兌)〉에 "술은 기쁨의 우두머리로 근심을 없애고 즐거움을 오게 한다.[酒爲歡伯, 除憂來樂.]"에서 온 말이다. 막수 막수(莫愁)는 악부에 나오는 전설상의 미녀이다. 《구당서》 〈음악지(音樂志)〉에 "석성에 막수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있는데, 노래를 잘한다.[石城有女子, 名莫愁, 善歌謠.]"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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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에 쓰다 16수 題畵帖【十六首】 외기러기 무리 부를 제 달은 지려 하고갈꽃에 바람 살랑이니 밤 추위가 감도네우리들 강호의 약속 오랫동안 저버렸으니서글픈 마음에 하릴없이 그림 속 모습 보네산 밖에선 속진에서 두 영웅이 다투고308)산속에서는 네 늙은이 한가한 세월 보내네누가 알았으랴 진한이 흥망성쇠한 일이미 바둑판 위에서 볼 수 있었음을309)우연히 다리 가에 여울 소리 들으니동자가 거문고 들고 일찍 돌아오리라본래 아양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법310)거문고 곡으로 옮겨와 연주할 필요 없다오갈대 속 외기러기 울며 날아가지 않으니가을 다 가도록 아직 돌아가지 않네옛 짝들은 행렬 지어 잘 날아갔으니지금은 응당 먹이 차지하여 살졌겠지못 속의 백로 푸른 연잎 곁에 있으니잎 아래 물고기가 눈처럼 흰 백로에 놀라네세상에 누군들 배불리 먹으려 하지 않으랴마는어옹은 너와 함께하며 잊으려 하네한 사람은 피리 불고 한 사람은 들으니소리마다 귀에 맑게 들릴 줄 알겠구나시냇물과 솔바람 소리 흥취 더해주고푸른 하늘에 또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라본디 물고기를 보려고 못에 내려갔는데어찌하여 돌아보며 오랫동안 서 있는가가을 오자 매서워진 서풍 점점 느껴지니시든 연 건드리고 백로 머리 깃 손상할까 두려워라여기는 응당 맑은 위수일 터이니저 늙은이 바로 강태공 아니면 누구랴대나무 낚싯대 드리워 대인을 낚았고삼략 같은 병서로 왕자의 스승 되었지311)우리 집 어디 있는가 푸른 산 속이라나귀 타니 떠나려 한다 동자가 말하네버들 그늘은 짙고 시골길은 아득하니고개 돌려보아도 돌아올 길 모르겠구나이미 산속에 와서 잠 깊이 들지 못하니또한 꿈속에 속진의 모습 되지 않으리장난삼아 나비 따라 멀리 간 줄도 모르니중도에 소나무에 바람 불게 하지 말라이미 동자에게 술동이 지키게 하고는홀로 비파를 타니 흥취 가눌 수 없네우스워라, 심양강 어귀에서 밤중에천 번 만 번 부르자 다른 사람 나오네312)왕손의 붓끝에 거센 바람 일어나소상강313) 언덕마다 가을을 만들어 내네천 줄기 반죽에 외로운 달 비추니외로운 학이 울 제 몹시도 시름겨워라그리운 이 만나지 못해 그리움 하염없는데그림 보니 어이하여 눈이 번쩍 뜨이는가끝없이 펼쳐진 강산 부슬비 내리는 곳에학이 배회하는 죽림을 오직 좋아해서지시냇가에 낚시터 있으니 낚시터 바위에누가 이끼 낀 바위에 높이 걸터앉았나아이는 송주를 가져올 줄은 알면서도낚싯대 함께 가져오는 건 잊어버렸구나연밥 맺힐 제 연잎 시드니게와 가재 참으로 술안주에 제격이지취중이라 그림 속에 본 것인 줄 모르고오른손으로 잔 들고 왼손으로 집는구나이별하는 포구 가을 풍광에 서리 막 내리니시든 연잎 마른 갈대 날로 스산해지네아가씨는 여기 당도하여 애간장 끊어지고창자 없는 공자314)는 그만 못하여 한스럽네 孤鴈呼群月欲殘荻花風細夜生寒吾人久負江湖約惆悵虛從畵裏看山外風塵兩雄鬪山中日月四翁閒誰知秦漢興亡事已向圍碁局上看偶來橋畔聽鳴湍童子將琴合早還自是峨洋心與會不須移向曲中彈蘆中一鴈不鳴飛送盡秋風尙未歸舊侶好爲行陣去只今應占稻粱肥池中鷺傍靑蓮葉葉底魚驚白雪衣在世孰非求一飽漁翁肯與爾忘機一人吹笛一人聽知有聲聲入耳淸澗水松風添意趣靑天又是月輪明本欲窺魚下塘水若爲回首立多時秋來漸覺西風緊怕觸衰荷損頂絲此地只應淸渭是彼翁非卽太公誰一竿竹作大人釣三略書爲王者師我家何在碧山中驢背行將童子語楊柳陰濃村逕迷回頭不識歸來處已向山中睡未濃也應無夢作塵容戲隨蝴蝶不知遠中道莫敎風入松已敎童子護尊罍獨抱琵琶興未裁笑殺潯陽江上夜千呼萬喚別人來王孫筆下長風起幻出瀟湘岸岸秋千竿班竹孤輪月獨鶴鳴時分外愁懷人不見思悠哉見畵如何眼忽開無限江山煙雨處竹林惟愛鶴徘徊溪上有磯磯上石何人高距石頭苔兒童解取松醪至忘却漁竿共把來蓮子成時蓮葉衰蠏鰲眞與酒相宜醉中不覺圖中見右手持杯左手持別浦秋光霜露初敗荷枯荻日蕭疎女娘到此腸應斷公子無腸恨不如 산……다투고 초나라 항우(項羽)와 한나라 유방(劉邦)이 천하를 다투었던 것을 가리킨다. 진한의……있었음을 상산사호(商山四皓)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상산사호는 진(秦)나라 말기에 학정을 피해 상산(商山)에 들어가 은거했던 네 늙은이, 즉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甪里) 선생으로, 바둑을 두며 소일을 하며 지냈는데 이 모습을 그린 〈사호위기도(四皓圍棋圖)〉가 전한다. 상산사호는 세상에 나오지 않다가, 한 고조(漢高祖)가 태자 유영(劉盈)을 폐위하려 할 때 여후(呂后)가 장량(張良)의 계책을 써서 이들을 부르고자 고조가 연회를 베푸는 자리에 나와서, 태자를 폐위하려던 한 고조의 생각을 바꾸게 하였다. 《史記 留侯世家》 아양(峨洋)은……법 백아(伯牙)가 아양곡(峨洋曲)이라는 금곡(琴曲)을 탄 고사가 있는데, 벗끼리 마음이 통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춘추 시대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서 고산(高山)에 뜻을 두면 지음(知音)인 종자기(鍾子期)가 "높고 높기가 마치 태산과 같도다[峨峨兮若泰山]" 하고,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면 "넓고 넓기가 마치 강하와 같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하였다. 《列子 湯問》 대나무……되었지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이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질을 하며 지내다가 주나라 문왕(文王)을 만나 사부(師傅)로 추대되었고, 뒤에 문왕의 아들인 무왕(武王)을 도와서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했다. 《史記 齊太公世家》 강태공이 《육도(六韜)》라는 병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심양강……나오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비파행(琵琶行)〉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백거이가 강주 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었을 때 어느 날 분강(湓江) 포구의 배 안에서 비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누가 연주했는지 물었는데, 연주한 사람은 바로 장안(長安)의 창녀(娼女)로서 젊은 시절 호화롭게 지내다가 늙어서 용모가 쇠하여 장사꾼의 아내가 된 여인이었다. 백거이가 그 여인에게 몇 곡조를 청하여 들은 뒤 지은 〈비파행〉에 "심양 강어귀에서 밤에 객을 전송하니 단풍잎과 억새꽃 가을바람에 소슬하네.…… 천 번 만 번 부르자 비로소 나오는데, 비파를 안은 채로 얼굴 반쯤 가렸네.[潯陽江頭夜送客 楓葉荻花秋瑟瑟 千呼萬喚始出來 猶抱琵琶半遮面]"라고 하였다. 소강상(瀟湘江) 중국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의 근처에 있는 강으로, 소상강 일대에는 자줏빛 반점이 있는 대나무가 많이 자란다. 요 임금의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순임금의 왕비가 되어 순임금 죽은 뒤 상강에서 슬피 울다가 물에 빠져 죽었는데, 이때 흘린 눈물이 대나무에 얼룩져서 반죽(斑竹)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博物志 卷8》 창자 없는 공자 게를 비유한 말이다. 게의 별칭이 무장공자(無腸公子)이다. 《抱朴子 登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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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321)의 시에 차운하다 10수 次仁叟韻【十首】 돈 없이 술 얻길 청해도 늘 허락받으니객과 통성명 함에 명함 따위 필요 없네질그릇에 흙 평상 가난해도 즐거우니유유자적 태평한 시대에 일개 범부로다322)하늘 높이 나는 기러기 누가 잡을 수 있으며화산으로 돌아가는 말323) 누가 재갈 물리랴그저 머물다 사람과 이별하기 때문이요깃털324)이 애초 세속을 벗어나려 해서만은 아니라오여기서 그대의 집으로 돛단배 타고 가니무엇하러 수레에 기름칠하며 말에 재갈 물리랴문 위에 봉 자 쓰는 것 오히려 괜스러우니조과 범으로 굳이 파자할 필요가 없다오325)강 머리에서 곧바로 돛 내리지 말라또한 어찌 문밖에 억지로 명함을 넣는가한가하게 오가는 것이 고아한 사람의 일인데흥 다하여도 그대로 머무니 도리어 범부로다삼경을 왕래하며 지팡이 하나 -원문 1자 결락-소는 수레 메지 않고 말은 재갈 물리지 않네객은 와서 당세의 일 따위는 논하지 마오농사일 말하기 좋아하는 평범한 야인이오기린은 들이받지 않거늘 머리에 어찌하여 뿔이 있는가천마는 오랫동안 한가로워 입에 재갈 물지 않네태평 시대에 무능함이 참으로 맛이 있으니은자가 어찌 문왕을 기다리는 범인이리오326)분국에 인원 채우는 건 오늘날 사업이요한 지방의 수령 지낸 건 옛날 명함이지327)평소 의식주 오히려 만족할 줄 아노니우리들 벼슬살이 또한 범속하지 않네기나긴 밤 무슨 수로 그대 만류할거나동복은 걸음 재촉하고 말은 재갈 무네이별의 길 굳이 채찍질로 재촉할 것 없으니도성에서 내일이면 범부와 신선으로 나뉘겠지농사꾼은 기르는 소 야위어 짜증 내고나그네는 재갈 물린 말 지쳐 반갑지 않네가축 늙으면 본디 근력 쇠퇴하는 법인데억지로 분주히 부리고 노둔하다 꾸짖누나백옥으로 안장 만들어 –원문 1자 결락- 상관 않고무엇 하러 황금으로 재갈 만들었는가천리마는 덕을 일컬음이요 힘 일컫는 게 아니니사나운 말은 재주 있어도 평범한 말과 마찬가지네 無錢得酒常容乞有客通名不用銜瓦釜土床貧亦樂漫然淸世一夫凡雲路冥鴻誰可弋華山歸馬孰能銜只緣居與人相別毛羽初非獨脫凡此去君家風一帆車何脂轄馬何銜門題一鳳猶多事不必分爲鳥與凡莫向江頭便落帆亦何門外强投銜閒來閒去高人事興盡仍留却是凡往來三逕一笻【缺】牛不巾車馬不銜客到莫論當世事農談好是野人凡祥麟不觸頭何角天馬長閑口不銜淸世無能眞有味逸民寧是待文凡分局備員今事業專城作宰舊名銜平生喫着知猶足吾輩爲官也不凡留君永夕何由得僮僕催行馬嚼銜別路不須鞭太促洛城明日隔仙凡生憎耕者羸牛牿不喜行人倦馬銜畜老自是筋力退强將奔走責駑凡不關白玉爲鞍【缺】何用黃金作勒銜驥稱其德非稱力泛駕雖才等是凡 인수(仁叟) 송영구(宋英耈, 1556~1620)의 자이다. 본관은 진천(鎭川), 호는 표옹(瓢翁)·모귀(暮歸)·일표(一瓢)·백련거사(白蓮居士)이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질그릇……범부로다 송나라 장재(張載)의 〈토상(土床)〉 시에 "흙 침상에 연화 족하고 명주 이불 따뜻하며, 질그릇 솥에 물맛 좋고 팥죽도 끓여 먹네. 등 따뜻하고 배불리 먹는 외엔 아무 생각 없나니, 맑은 세상에 유유자적 지내는 한 명의 한가한 사람일세.[土牀煙足紬衾暖 瓦釜泉乾豆粥新 萬事不思溫飽外 漫然淸世一閑人]"라고 하였다. 화산으로 돌아가는 말 본래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는 말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범속함을 떠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서경》 〈주서(周書) 무성(武成)〉에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대목에 "말을 화산의 남쪽에 돌려보내고 소를 도림의 들판에 풀어놓아, 천하에 무력을 쓰지 않을 것임을 보였다.[歸馬于華山之陽 放牛于桃林之野 示天下弗服]"라고 하였다. 깃털 선인(仙人)을 비유하는 말이다. 사람이 득도(得道)를 하면 몸에 모우(毛羽)가 돋아난다는 전설이, 굴원(屈原)의 〈원유(遠游)〉 주(註)에 소개되어 있다. 문……없다오 '제봉재문(題鳳在門)'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진(晉)나라 여안(呂安)이 천 리 길을 달려 혜강(嵇康)의 집을 찾아갔는데 혜강이 마침 외출 중이어서 만나지 못하자, 여안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문 위에 '봉(鳳)'이라는 글자를 써 놓고 그냥 갔다. 나중에 혜강이 돌아온 뒤, 혜강의 형이 혜강에게 '봉'자의 의미를 묻자, 혜강이 "봉은 평범한 새[凡鳥]이다."라고 하였다. '봉(鳳)'을 파자(破字)하면 '범(凡)'과 '조(鳥)'가 되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世說新語 簡傲》 은자가……범인이리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문왕 같은 성군이 나와서 인도하기를 기다린 뒤에 분발하는 자는 평범한 백성이고, 만약 호걸스러운 사람이라면 비록 문왕이 없어도 분발한다.[待文王而後興者 凡民也 若夫豪傑之士 雖無文王猶興]"라고 하였다. 분국에……명함이지 송영구는 1607년(선조40)에 성주 목사를 지내고 1616년(광해군8) 분병조 참판(分兵曹參判)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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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막혀 기약을 어겼기에 박계길에게 부치다 阻雨愆期寄季吉 우리 집이 깊숙하고 외져서 아니라단지 비바람 때문에 찾아가지 못했다오내일이면 봄빛을 찾을 곳 없을 테니온 산에 꽃 지고 녹음이 우거지리 不是吾廬深且邃秪緣風雨阻相尋明日春光無覓處滿山花落綠成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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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율시 五言律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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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응제 迎祥應製 궁궐에 상서로운 구름 모이고수많은 궁전 문에 상서로운 해 빛나네요임금 네거리에서 경양가 들렸고1)순임금 궁전에서 옷을 드리운 것 보았네2)매화 피기를 재촉하니남아 있던 섣달 눈 녹아 사라졌네궁궐의 뜰에서 신년의 경하 끝나니남아 있는 이들 술에 취해 잔을 돌리네 九闕祥雲合千門瑞旭輝堯衢聞擊壤舜殿覩垂衣催却梅花嫩消殘臘雪稀彤庭新賀罷留醉羽觴飛 요임금……들렸고 태평성대를 뜻한다. 요임금의 통치 시대에 어떤 노인이 땅을 두드리면서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네.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며 먹으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있어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고 하였다. 순임금……보았네 무위(無爲)의 훌륭한 정치를 뜻한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황제, 요, 순임금이 겉옷을 드리웠는데 천하가 다스려졌다.[黃帝堯舜垂衣裳而天下治]."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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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읊어 박계길에게 부치다 2수 詠雪 寄朴季吉 二首 날이 추워 오두막에 사립문 닫으니밤에 눈 내려 아침까지도 여전히 개지 않네산의 소나무에 눈 높이 쌓여 특별한 경치 펼쳐지고언 계곡을 눈이 덮어 소리만 들리누나파수의 절룩이는 나귀는 시인의 흥이요139)남관의 파리한 말은 쫓겨난 객의 마음이라140)전답의 노련한 농부에는 미치지 못하나풍년의 징조 집집마다 가득하리라 점치네유인이 일어나 게으르게 찬 이불 끌어안으니모르는 사이에 산촌에 눈이 높이 쌓였어라특별한 경치에 나무에 앉은 까마귀 멀리서 바라보고소리 듣고서야 학이 숲에 있음을 비로소 알았네겨울이 드넓은 바다엔 오지 않았으나한밤중에 깊은 골짜기를 충분히 뒤엎었네그대는 마치 나귀 탄 패수의 객처럼끊어진 다리에서 저물녘에 눈썹 찡그리며 읊조리네141) 天寒白屋掩柴荊夜雪終朝尙未晴高壓山松別有色平沈氷澗但聞聲蹇驢㶚水騷人興羸馬藍關逐客情不及老農南畝畔豐徵占得萬家盈幽人起懶擁寒衾不覺山村雪一尋別色遙看烏在樹聞聲始認鶴捿林三冬不到滄溟闊半夜能平巨壑深君似騎驢灞水客斷橋斜日皺眉吟 파수의……흥이요 당나라 맹호연(孟浩然)이 좋은 시를 지으려고 고심하다가 나귀 등에 타고서 눈발이 휘날리는 파수(灞水) 위에 놓인 다리를 지나갈 때 시상이 떠올랐다고 한다. 《蘇東坡詩集 卷12 贈寫眞何充秀才》 남관의……마음이라 남관(藍關)은 진(秦)나라의 남전관(藍田關)을 가리킨다. 당나라 한유(韓愈)가 〈불골표(佛骨表)〉를 올렸다가 헌종(憲宗)의 노여움을 사서 조주(潮州)로 귀양 가게 되었는데, 귀양길에 남관을 넘어가며 지은 시에 "구름이 진령에 비꼈나니 집은 어디에 있느뇨, 눈이 남관에 가득 쌓여 말이 앞으로 가지 않는다.[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라고 하였다. 《韓昌黎集 卷10 左遷至藍關示姪孫湘》 나귀……읊조리네 당나라 맹호연(孟浩然)이 좋은 시를 지으려고 고심하다가 나귀 등에 타고서 눈발이 휘날리는 파수(灞水) 위에 놓인 다리를 지나갈 때 시상이 떠올랐다고 한다. 송나라 소식(蘇軾)의 〈초상화를 그리는 하충 수재에게 주다[贈寫眞何充秀才]〉 시에 "그대는 못 보았나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이, 눈썹 찌푸리고 시 읊느라 산처럼 어깨 으쓱인 것을.[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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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207) 楡關 바다에 접하고 구름에 닿아 온통 모래톱만 보이니알지 못하겠구나, 오랑캐의 기마 몇 번 지나갔던가누런 누릅나무는 옛날에 가을 방비하는 길 둘러쌌고208)푸른 버드나무는 지금 술 파는 집을 가리고 있네들에 늘어선 곡식에 우로가 고루 내리고성안에 연월 가득하고 피리 노래 소리 울려퍼지네변방 관문에 이러한 태평성대 즐거움 넘쳐나니연경에 도착하면 더욱 어떠하랴 際海連雲一望沙不知胡騎幾經過黃楡舊擁防秋路碧柳今遮賣酒家布野禾麻均雨露滿城煙月摠笙歌邊關饒此昇平樂待到神京更若何 유관 임유관(臨楡關)으로 산해관(山海關) 축성 이전에는 관문의 기능을 담당하다가 산해관을 지은 이후로는 역참의 기능만 남아있게 되었다. 누런……둘러쌌고 진(秦)나라 몽염(蒙恬)이 느릅나무[楡]를 심어 요새를 만들었으므로 '유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에 중국의 북방 유목 민족들이 가을철에 자주 남침(南侵)을 하였으므로, 이때 중국의 변방에서 특별 경계를 펼치고 방어던것을 '추방(秋防)'이라 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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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에 들어가 주인집 벽에 제하다 入關 題主家壁上 요동성 서쪽이요 계문209)의 동쪽이니천 리의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오네나그네 가는 길은 심상한 가을 풍경 속이요백성들 사는 곳은 대저 버드나무 그늘 속이라술이 번민을 풀어주니 시름 어디에 있으랴신이 시재를 도와주니 시어 더욱 좋아지네벽에 가득 흥건하게 취기에 쓴 글씨 남겼으니돈으로 애오라지 주인옹에게 사죄하네 遼城西畔薊門東千里風烟一望通客路尋常秋色裡人居大抵柳陰中酒排心悶愁何在神助詩才語更工滿壁淋漓留醉墨當錢聊謝主家翁 계문(薊門) 북경의 덕승문(德勝門) 밖의 지역으로, 북경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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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 除夕 삼백육십일 다음의 여섯 번째 날경인년(1650, 27세)은 이날 저녁 밖에는 남은 날이 없네하늘의 마음 이미 움직여 매화의 뺨 희어졌고상제(上帝)의 뜻 봄 되려 하여 버들의 눈 푸르게 되었네온화한 기운 은자의 방에 먼저 찾아오고은혜로운 바람 야인의 정자에 잔잔히 불어오네한가로운 가운데 묵묵히 평생의 일 헤아려 보니28년 동안 헛되이 술에 취했다 깨었다만 반복하였구나 三百六旬第六日庚寅此夕外無零天心已動梅腮白帝意將春柳眼靑和氣先來幽士室惠風徐到野人亭閒中默數平生事二十八年空醉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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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0 卷之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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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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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족보서 金氏族譜序 김씨는 명망있는 가문이니 계통은 당악(棠岳)1)에서 나왔다. 고려 이전은 족보가 유실되어 기술할 수 없다. 성스러운 조선이 천명을 받아 동방(東方)의 소중화(小中華)를 여니 당시에 우리 조상이 호남 병사의 막부를 보좌[佐幕]2)하였다. 금수(錦水) 서쪽 가와 백봉산(白鳳山)의 북쪽에 땅을 보고 나무를 베어 내어 이에 조종(祖宗)의 터를 잡아서 지금에 이르도록 삼백여 년 동안 대대로 귀업(龜業)3)에서 전해졌다.만력 정유년(1597, 선조30)에 한 집안이 전부 전쟁에 매몰되었는데 우리 황고(皇考) 및 종백부(宗伯父) 휘 김전(金悛)이 겨우 죽음을 면했으나 가문의 족보가 이때 유실되었다. 황고께서 우리 조선 건국 후, 남쪽으로 내려온 이후에 휘자(諱字)와 세계(世系)를 손으로 써서 작은 간책(簡冊)을 만들어 전하게 되었다. 내가 어려서 선친을 잃고 고증할 곳이 없었는데 마침 오래된 책 속에서 간책을 얻었다. 손때가 아직 새로워 눈물을 가리고 받들어 열어본 나머지에, 그대로 이어서 황고(皇考) 이후 나뉜 종파와 외손 방지(傍支)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대로 기록하여 한 권의 책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었다.아!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자가 누가 부모가 없겠는가마는 부모 윗대부터 친척이 다하는데 이르기까지 예(禮)가 비록 한계가 있더라도 정(情)으로 보면 부모이다. 수 대 후에 우리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면 날아다니고 달려 다니며 꿈틀거리는 벌레들과 서로 거리가 얼마나 되겠으며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무엇을 말미암아 일어나겠는가? 이것이 문중의 족보를 만든 까닭이다. 가문에 족보가 있는 것이 나라에 역사가 있는 것과 같음을 여기에서 알 수 있으니 이것이 밝혀지지 않으면 종법(宗法)4)이 세워지지 못하고 오복(五服)5)의 친함이 없게 되고 추원보본(追遠報本)6)의 정성과 효우돈목(孝友敦睦)의 의리가 말미암아 세워질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우리 자손·형제·후손들은 선조의 가르침을 공경히 지키고 삼백 년 동안 서로 이어온 사대부의 풍을 추사(追思)하여, 영원히 만대를 전하고 추락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바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에 있는 선조의 바람이니라.황명남도후(皇明南渡後) 13년 정유년(1657, 효종8) 1월 갑자(甲子) 여절 교위(勵節校尉)7) 행(行)8)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9) 세마(洗馬) 지손(支孫) 만영(萬英) 두 번 절하고 쓰다. 金氏望族。 係出棠岳。 王麗以前。 譜逸不述。 聖鮮受命。 聿啓東華。 于時我祖。 佐幕南兵。 錦水西滸。 白鳳山陰。 相土刊木。 爰占宗基。 三百年于今而世傳龜業矣。 萬曆丁酉。 一家專沒於兵燹。 惟我皇考曁宗伯父諱 浚。 僅以身免。 門譜失守於此日。 皇考手記我朝以後南徙以下。 諱字世系。 書之小簡以傳焉。 萬英少失先人。 無所考徵。 適得是簡于舊秩中。 手澤尙新。 掩泣奉覽之餘。 仍錄皇考以後宗派所分及外孫傍支。 耳目所覩記。 幷成一冊。 以貽後昆焉。 嗚乎! 人有此生。 孰無父母。 自父母上至于親盡。 禮雖有限。 情則父母。 數代之後。 不知吾祖是爲何人。 則於飛走而蠢蠢者。 相距幾何。 而孝敬之心。 何由而起哉? 此門譜之所以作也。 是知家之有譜。 猶國之有史。 此而不明則宗法不立。 五服無親。 追遠報本之誠。 孝友敦睦之義。 無由而立矣。 惟吾子孫兄弟曁後人。 敬守先訓。 追思三百年相承士夫之風。 永傳萬世而勿墜。 匪我私言。 惟祖先在天之望云。 皇明南渡後十三年丁酉春正月甲子。 勵節校尉行世子翊衛司洗馬支孫萬英再拜謹書。 당악(棠岳) 해남의 옛 지명이다. 좌막(佐幕) 감사(監司)·유수(留守)·병사(兵使)·수사(水使) 따위에 따라다니는 관원의 하나로 비장(裨將)을 가리킨다. 막료(幕僚)라고도 하였다. 여기서는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총관(副摠管)을 지낸 당악 김씨 시조 김인(金忍)을 가리킨다. 귀업(龜業) 현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귀업 마을로, 김만영이 이곳에 귀향하여 살았던 곳이다. 종법(宗法) 대종가(大宗家)·소종가(小宗家)의 계통을 밝히는 규칙이다. 한 가문에서 많은 소종가가 생길 때 대종가가 소종가를 통할하기 위해 생긴 것으로, 사당 제사, 합동 잔치, 복(服) 입는 것, 같은 종파끼리 혼인하지 않는 것 등을 시행하였다. 오복(五服) 다섯 등급의 상복으로 참최(斬衰) 3년, 자최(齊衰) 1년, 대공(大功) 9개월, 소공(小功) 5개월, 시마(緦麻) 3개월이다. 추원보본(追遠報本) 먼 조상을 추모하여 근본에 보답함을 말한다. 즉 선대 조상에게 해야 할 도리를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추원은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함에 바치는 정성이라는 뜻으로, 《논어》 〈학이(學而)〉에 "어버이 상을 당했을 때 신중히 행하고 먼 조상들을 정성껏 제사 지내면 백성들의 덕성이 한결 돈후해질 것이다.[愼終追遠, 民德歸厚矣.]"라고 한 증자(曾子)의 말이 보인다. 보본(報本)은 조상의 은혜를 갚기를 생각하여 근본에 보답하는 정성인데, 《예기》 〈교특생(郊特牲)〉에 "오직 사의 제사에는 구승으로 제물을 갖추게 하니, 근본에 보답하여 시초에 돌이키는 뜻이다.[唯社, 丘乘共粢盛, 所以報本反始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여절교위(勵節校尉) 조선 시대 종육품(從六品) 서반(西班)의 무관(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행(行) 행수법(行守法)으로, 품계와 벼슬을 서로 견주어서 관직의 앞에 붙이는 규례를 말한다. 품계가 높고 벼슬이 낮을 경우에는 관직 앞에 행(行) 자를 붙이고, 품계가 낮고 벼슬이 높을 경우에는 관직 앞에 수(守) 자를 붙인다. 1442년(세종24) 처음 실시되었고, 이듬해부터 지방 관직에도 확대 실시되었다. 《국역 세종실록 24년 7월 19일, 25년 7월 17일》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계방(桂坊)이라고도 하며 세자를 호위하던 곳이다. 익위(翊衛)·사어(司禦)·위솔(衛率)·부솔(副率)·시직(侍直)·세마(洗馬) 등의 관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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