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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판교에서 쉬다 午憩板橋 우는 새로운 기러기 남쪽 누대로 날아가고계주(薊州) 숲에 바람 거세 잎은 떨어지려 하네천지에서 오랜 세월 항상 나그네 신세 되었으니고국이 만리 멀리 있어 유독 가을을 슬퍼하네이에 알겠어라, 약 먹어도 병 고치기 어려우니단지 술잔 들어 시름을 풀어낼 뿐이라누가 알랴, 상자 속에 보검 감춰져 있어도오히려 밤마다 기운이 우성까지 뻗치는 줄을220) 一聲新鴈度南樓薊樹風高葉欲流宇宙百年常作客江山萬里獨悲秋從知服藥難醫病只有啣杯可寫憂誰識匣中雄釰在猶能夜夜氣干牛 상자……줄을 보검은 감추어줘 있어도 그 빛을 숨길 수 없다는 말로, 주로 인재가 그 재능을 숨겨도 절로 드러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다. 진(晉)나라 때 장화(張華)가 일찍이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사이에 자기(紫氣)가 감도는 것을 보고 점성가 뇌환(雷煥)에게 물었더니, 뇌한이 이는 보검의 빛이라 하였다. 이에 장화가 풍성(豐城) 감옥 터의 땅속에서 춘추 시대에 만들어진 전설적인 보검인 용천검(龍泉劍)과 태아검(太阿劍)을 발굴했다. 《晉書 張華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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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문221)으로 가는 길에 薊門道中 반년 동안 서쪽으로 길 떠났다 아직 돌아가지 못하니계문으로 돌아가는 길 매우 아득하구나가을에 기러기는 고향 그리는 마음 품고 날아 가고초저녁에 구름은 비 올 기미 띠고 오네휘파람 불고 노래하며 때때로 스스로 마음 달래고지친 말과 노복이 날마다 서로를 재촉하네시름 속에 밝은 거울 보지 않노니귀밑의 검은 털이 반쯤 희어졌어라 半歲西遊且未回薊門歸路劇悠哉高秋鴈帶鄕心去薄晩雲將雨意來嘯志歌懷時自遣羸驂倦僕日相催愁中莫用看明鏡鬢上靑絲一半皚 계문(薊門) 북경의 덕승문(德勝門) 밖의 지역으로, 북경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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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루기 春風樓記 천지는 만물을 생육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 자이니 물(物)에서 생(生)하는 것은 원(元)보다 앞선 것이 없다. 원이란 천지의 대용(大用)이면서 사람에게는 인(仁)이 되고, 때[時]에는 봄[春]이 된다. 춘(春)은 사시(四時)의 원(元)이요, 원은 사덕(四德)125)의 수(首)이다. 인仁)이란 오상(五常)126)의 원이요, 원은 사덕(四德)의 수(首)가 되어 형(亨)·이(利)·정(貞)에 또한 각각 왕성하다. 춘은 사시의 시작이고, 하(夏)·추(秋)·동(冬)에 토(土)와 더불어 같은 덕으로 사계절에 왕성하니, 춘원(春元)의 쓰임[用]이 어찌 크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자라게 하고 길러주는 춘원(春元)의 바람이 만물을 고동(鼓動)하여 만물을 양생한다. 그렇다면 춘(春)이란 사시의 전체이고 풍(風)이란 춘원의 대용(大用)으로 만물을 생육하니 군자의 풍(風)도 또한 이와 같고 군자의 인(仁)도 또한 이에 근본 한다. 옛사람이 춘·풍으로써 그 누정을 명명(命名)하는 이가 있었으니, 대개 여기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이 누정을 지음에 천근(天根)으로 들보 삼고 월굴(月窟)로 기둥 삼으며127) 간석(艮石)128)으로 대를 삼고 건곤(乾坤)으로 문을 삼도다. 인온(氤氳)한 기운은 창문에서 교감하고 염염(苒苒)한 햇살은 방문에서 화순(和順)하도다. 양곡(暘谷)129)에 해 돋으니 자시자생(資始資生)의 숙기 융융하고 동방에 훈풍 부니 구십춘광(九十春光)의 풍물 곳곳에 있도다.130) 상하의 산광 서로 푸르고 앞뒤의 물색 널리 푸르니 참 근원의 일맥 기묘하여 기록할 수 없도다. 당에 오르니 자홍색 봄빛 한창이고 방에 들어가니 난초 향기 진하도다. 팔방의 창문 사방으로 열리고 꽃과 버들은 사심이 없도다. 대나무 창은 양지를 향하고 뜰의 풀은 싱그러움 띠도다. 앞내에 비 지나가니 청산은 의구하고 후원에 바람 살랑대니 봄새가 지저귀도다. 누항(陋巷)131)으로 우이(嵎夷)132)를 삼고 궐리(闕里)133)로 양곡(暘谷)을 삼아 선천후천(先天後天)134)이 모두 가운데에 부쳐 삼십육궁(三十六宮)135)이 사이에 열 이루도다. 난간 밖 복숭아·자두는 동군(東君)136)의 고운 햇볕 자랑하고 창문 앞 매화·소나무는 건원(乾元)137)의 화창한 기운 알리도다. 누정 위 하늘 아득한 곳에 솔개 높이 날고 누정 아래 연못 만경(萬頃)에 물고기 뛰도다.138)문 닫고 바라보면 마음[天君]139)이 태평하여 사단(四端)140)이 온화하고 문 열고 살펴보면 맑은 봄날 경치 좋아 온갖 이치 함께 밝도다. 삼지일(三之日)·사지일(四之日)141)에 봄옷 만들어지거든 목욕하고 바람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는 흥을 미루어,142) 덕에 배부른 정신 깨끗하고 술병의 상쾌한 기운 투철하도다. 이에 훈증(薰蒸)하고 이에 도야(陶冶)한 즉 하남(河南)143)의 당상 좌중에 춘풍의 조화 이어가리라. 화려한 집과 금 구슬은 주옹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요, 인의 넓은 거처와 편안한 집144)은 이것이 주인이 즐기는 것이로다. 그러한 즉 하형(夏亨)의 장(長)은 이 누정이 밑천이요, 추리(秋利)의 성(成)도 이 누정이 밑천이요, 동정(冬貞)의 수(遂)도 이 누정이 밑천이니 만물의 자시자생(資始資生)이 어찌 이것에서 벗어나겠는가?누의 동쪽으로 치자면 인목(仁木)이 울창하여 동풍이 살랑살랑 천만 가지 꽃들 희디희고 붉디붉도다. 모두 봄철의 한 기운을 얻어 화평하고 아름다우니 윤택한 원시(元始)의 인택(仁澤) 같고, 크고 작고 높고 낮은 종류와 하늘을 날고 물에 잠기는 동물·식물이 제자리를 얻지 아니함이 없도다. 누의 서쪽으로 치자면 정로(正路)가 숫돌처럼 탄탄하여 하나의 티끌도 없으며 광풍이 쇄락하여 비 갠 뒤의 청명함이로다.145) 누의 남쪽으로 치자면 드높이 우뚝 솟은 하나의 예문 위로 달 오르자 거문고 타니 청허함[虛白]146) 일도다. 이에 공자·맹자와 이에 안자·증자의 문물이 여기에 있고 예악(禮樂)이 여기에 있도다. 누의 북쪽으로 치자면 지수(智水)는 천 길을 주야로 쉬지 않고 혼혼(混混)히 흘러 웅덩이 채우고 목표에 도달하여 문채 이루니147) 물고기가 파도를 희롱하고 백조는 깨끗하도다.148) 그렇다면 이 누를 세움에 실로 군자 이후에 이를 즐길 수 있다 하리라.149)이에 주인옹이 소요(逍遙)하고 서성이며 인을 구해 인을 얻어 상제(上帝)를 마주하여 집구석에 부끄럼 없고150) 일거일동에 부끄럼 없어 천지가 자리 잡고 만물이 생육됨에 이르도다. 이로 말미암아 원형이정(元亨利貞)151)의 천도(天道)와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유행과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인도가 이에 빈빈(彬彬)하고, 삼강오상의 인륜과 이오(二五) 사팔(四八)의 문채가 이에 혁혁(爀爀)하도다. 아! 지극하도다. 모든 군자가 이어서 수리해가면 이 누는 영원하리로다. 주관하는 자 누구인가? 송나라 선비 장남헌(張南軒)152)이요, 기록하는 자 누구인가? 해동(海東)의 사람이로다. 天地以生物爲心者也。 生乎物者。 莫先乎元。 元者天地之大用。 而於人爲仁。 於時爲春。 春者四時之元。 元者四德之首。 仁者五常之元。 元爲四德之首而於亨於利於貞。 亦各旺焉。 春爲四時之始而於夏於秋於冬。 與土同德而旺於四季。 春元之用。 豈不大哉。 故春元長養之風。 鼔動萬物而萬物養生。 然則春者四時之全體。 風者春元之大用而生育萬物。 則君子之風。 亦猶乎是。 君子之仁。 亦本於是。 古之人有以是名其樓者。 盖取於此也。 斯樓之作。 以天根爲樑。 以月窟爲棟。 艮石爲臺。 乾坤爲門。 氤氳之氣。 交感於軒窓。 苒苒之光。 和順於房櫳。 東暘載陽。 資始資生之淑氣融融。 長男薰風。 九十春光之景物在在。 上下山光交翠。 前後水色漾綠。 眞源一脉。 妙難勝記。 至於升堂則紫紅之韶光濃郁。 入室則芝蘭之香氣芬芳。 八窓四闢。 花柳無私。 竹牖向陽。 庭草含滋。 前川雨過。 靑山依舊。 後園風微。 春鳥嚶嚶。 以陋巷爲嵎夷。 以闕里爲暘谷。 先天後天。 都付其中。 三十六宮。 成列其間。 檻外桃李。 矜東君之艶陽。 窓前梅松。 稟乾元之和氣。 樓之上玉宇寥廓。 鳶飛戾矣。 樓之下銀塘萬頃。 魚物躍矣。 闔戶而觀之。 天君泰靜。 四端藹然。 開門而察之。 春晴物佳。 萬理俱明。 三之日四之日。 春服旣成則浴風咏歸之興可推而飽德之精神淸越。 玉壺之爽氣透澈。 薰蒸於此 鎔陶於此 則河南堂上。 座中春風之化可承焉。 玉戶金壁。 非主翁之所喜。 廣居安宅。 是主人之所樂。 然則夏亨之長。 此樓之所以資。 秋利之成。 此樓之所以資。 冬貞之遂。 亦此樓之所以資。 則稟物之所以資始資生者。 豈有外於此哉? 至如樓之東。 仁木蔥鬱。 東風習習。 千蘂萬葩。 白白紅紅。 咸得靑陽之一氣。 熙皡賁若。 潤元始之仁澤。 而洪纖高下之類。 飛潛動植之物。 無不得所焉。 樓之西。 有正路坦坦如砥。 無一塵垢。 光風灑落。 霽月淸明焉。 樓之南。 有一禮門。 巍然屹立。 月出淸琴。 虛白乃生。 孔孟於是。 顔曾於是。 文物在玆。 禮樂在玆焉。 樓之北。 智水千仞。 混混源源。 不舍晝夜。 進以盈科。 達以成章。 遊魚弄波。 白鳥鶴鶴焉。 然則此樓之作。 眞可謂君子而後樂此者也。 於是主人翁。 逍遙焉徜徉焉。 求仁得仁。 對越上帝。 不愧屋漏。 俯仰無怍。 以至於天地位萬物育焉。 由是而元亨利貞之天道。 春夏秋冬之流行。 仁義禮智之人道。 彬彬於玆。 三綱五常之倫。 二五四八之文。 爀爀於玆。 猗歟至哉! 凡百君子。 踵武而葺之。 則庶斯樓之不朽也。 主之者誰? 宋朝名儒張南軒也。 記之者誰? 海東人也。 사덕(四德)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천지자연의 네 가지 덕인 원(元)·형(亨)·이(利)·정(貞)을 말한다. 오상(五常)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다섯 가지 덕을 말한다. 천근(天根)으로 …… 삼으며 천근은 《주역》의 복괘(復卦)를, 월굴(月窟)은 구괘(姤卦)를 가리키는데, 각각 양(陽)과 음(陰)을 비유한 것으로서 천지 음양의 이치를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 두 말은 송(宋)나라 소옹(邵雍)의 〈관물(觀物)〉에 "이목 총명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니 하늘이 부여한 것 빈약하지 않네. 월굴을 탐구하여야만 물건을 알 수 있고 천근을 밟지 않으면 사람을 어찌 알겠느냐? 건괘가 손괘를 만난 때에 월굴이 되고 지괘가 뇌괘를 만난 곳에 천근을 보도다. 천근과 월굴이 한가히 왕래하니 삼십육궁이 모두 봄이라오.[耳目聰明男子身, 洪鈞賦與不爲貧. 須探月窟方知物, 未躡天根豈識人. 乾遇巽時爲月窟, 地逢雷處見天根. 天根月窟閒往來, 三十六宮都是春.]"라고 읊은 시에 함께 보인다. 간석(艮石) 간괘(艮卦)가 물상(物象)에 있어 산이 되고 작은 길이 되고 돌[石]이 된다고 하였다. 《周易 說卦傳》 양곡(暘谷) 해가 나오는 곳을 말한다. 《서경》 〈요전(堯典)〉에 "희중(羲仲)에게 나누어 명하여 우이(嵎夷)에 머물게 하시니 양곡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공안국(孔安國)의 전(傳)에 "양(暘)은 밝음이니 해가 그 곡(谷)에서 나와 천하가 밝아지기 때문에 양곡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구십춘광(九十春光) 봄의 석 달 90일 동안을 말한다. 누항(陋巷)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의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뜻한다. 공자가 안회를 칭찬하기를,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누추한 거리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 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아니하니, 어질구나 안회여.[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敢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 우이(嵎夷) 해가 떠오르는 곳이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희중(羲仲)에게 따로 명하여 우이(嵎夷)에 살게 하였으니 그곳이 바로 양곡(暘谷)이다. 떠오르는 해를 공손히 맞이하여 봄 농사를 고르게 다스리도록 하였다.[分命羲仲, 宅嵎夷曰'暘谷', 寅賓出日, 平秩東作.]"라는 말이 나온다. 궐리(闕里)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에 있는 마을로 공자의 고향이다. 선천후천(先天後天) 우주의 본체와 만물의 본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송나라 소강절(邵康節)이 주역(周易)의 괘도(卦圖)를 해설하고 선천도(先天圖)와 후천도(後天圖)를 구분하여, "복희씨(伏羲氏)의 팔괘(八卦)는 선천(先天)이요, 주문왕(周文王)의 팔괘는 후천(後天)이다."라고 하였다. 삼십육궁(三十六宮) 삼십육궁은 64괘(卦)와 같은 것으로서 64괘 모두가 하나의 봄기운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삼십육궁과 관련하여, "64괘 중에 변역(變易)하는 괘가 8이니, 건괘(乾卦)·곤괘(坤卦)·감괘(坎卦)·이괘(離卦)·이괘(頥卦)·대과괘(大過卦)·중부괘(中孚卦)·소과괘(小過卦)이고, 교역(交易)하는 괘가 56이니, 둔괘(屯卦)·몽괘(蒙卦) 이하가 그것이다. 변역은 8괘가 각각 한 궁이 되고, 교역은 2괘가 합하여 한 궁이 된다."라고 하였다. 《星湖僿說 권20 經史門 三十六宮》 동군(東君) 봄을 맡은 신 이름이다. 봄은 동방(東方)과 청색(靑色)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동제(東帝)· 동황(東皇)·청황(靑皇)·청제(靑帝) 등으로 불렸다. 건원(乾元) 《주역》 〈건괘(乾卦) 단(彖)〉에 이르기를,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만물이 이를 힘입어 비롯하나니, 이에 하늘을 총괄하였도다.[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주희(朱熹)의 《본의(本義)》에 의하면, "건원은 하늘의 덕의 큰 처음이므로, 만물이 생겨남에 있어 모두가 그것을 힘입어 시작으로 삼는 것이다.[乾元天德之大始, 故萬物之生, 皆資之以爲始也.]"라고 하였다. 누정 …… 뛰도다 연비어약(鳶飛魚躍)으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뜻으로,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어 이치가 환히 드러남을 형용한 말이다. 《중용장구》 제12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하였으니, 상하에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노는 현상은 다르지만, 그 이치는 같다는 뜻으로 쓰였다. 천군(天君) 사람의 마음을 의인화(擬人化)하여 일컫는 말이다. 《순자(荀子)》 〈천론(天論)〉에 "이목구비와 형체는 각각 접촉하는 것이 있어서 다른 것은 할 수 없으니, 대개 이를 천관이라 한다. 마음은 가운데 빈 곳에 있으면서 오관을 다스리니, 이를 천군이라 한다.[耳目鼻口形, 能各有接而不相能也, 夫是之謂天官, 心居中虛, 以治五官, 夫是之謂天君.]"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사단(四端)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단서이고, 자신의 불선(不善)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불선을 미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단서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단서이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단서이다. 사람에게 이 네 가지 단서가 있는 것은 마치 사람의 몸에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라고 하였다. 삼지일(三之日)·사지일(四之日) 3월·4월을 가리키는 말로,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삼월에는 나가서 쟁기를 수리하고, 사월에는 뒤축 들고 밭갈이한다.[三之日于耟, 四之日擧趾.]" 에서 온 말이다. 봄옷 …… 미루어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벗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을 하고 기우제 드리는 무우에서 바람을 쏘인 뒤에 노래하며 돌아오겠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자신의 뜻을 밝히자, 공자가 그가 유연(悠然)하고 쇄락(灑落)한 기상이 있는 것에 대해 깊이 감탄하며 허여한 내용이 《논어》 선진(先進)에 나온다. 하남(河南) 하남 출신인 북송(北宋) 때 성리학자 정이(程頥, 1033~1107)로, 자는 정숙(正叔), 시호는 정공(正公)이다. 하남(河南) 낙양(洛陽) 사람으로, 이천백(伊川伯)에 봉해져서 이천 선생이라 불린다. 정호(程顥)의 아우이며, 주돈이(周敦頥)의 문인으로, 이기(理氣) 철학을 제창하여 유학을 부흥시켰다. 저서에 《역전(易傳)》·《춘추전(春秋傳)》·《이정유서(二程遺書)》 등이 있다. 넓은 …… 편안한 집 광거안택(廣居安宅)으로 인(仁)을 뜻하는 말이다. 맹자(孟子)가 인을 '천하의 넓은 집[天下之廣居]'과 '사람의 편안한 집[人之安宅]'이라는 말로 표현한 데서 나온 것이다. 《孟子 滕文公下 公孫丑上》 광풍이 …… 청명함이로다 광풍제월(光風霽月)로, 인품이 고결하고 마음이 탁 트인 사람을 비유한다. 허백(虛白)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의 "빈방 안에는 흰빛이 생기고 거기에는 좋은 징조가 깃든다.[虛室生白, 吉祥止止.]"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마음이 청허(淸虛)하여 욕심이 없으면 도심(道心)이 절로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지수(智水)는 …… 이루니 이 내용은 《맹자》 〈이루 하(離婁下)〉의 "근원이 좋은 물이 계속 흘러서 밤낮을 그치지 아니하여 구덩이가 가득 찬 뒤에 나아가 사해(四海)에 이른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라고 보이는데, 이는 사람의 학문이 끊임없이 진전하여 높은 경지에 이름을 비유한 것이다. 백조는 깨끗하도다 백조학학(白鳥鶴鶴)을 이르는 말로, 《시경》 대아(大雅) 영대편(靈臺篇)에, "왕이 영유에 계시니 거기 있도다. 우록은 탁탁하거늘 백조는 학학하도다. 왕이 영소에 계시니 아! 그득하게 고기가 뛰논다.[王有靈囿, 麀鹿攸伏, 麀鹿濯濯, 白鳥鶴鶴, 王在靈沼, 於牣魚躍.]"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 하리라 맹자가 양 혜왕을 보았을 때에 왕이 못 가에 있다가, 기러기와 사슴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어진 사람도 이러한 것을 즐거워합니까?"라고 물었다. 맹자가 대답하기를, "어진 사람인 뒤에야 이러한 것을 즐거워할 수 있으니, 어질지 못한 사람은 비록 이를 갖고 있더라도 즐거워하지 못합니다.[孟子見梁惠王, 王立於沼上, 顧鴻鷹麋鹿曰: "賢者亦樂此乎?" 孟子對曰: "賢者而後, 樂此, 不賢者, 雖有此, 不樂也."]"라고 하였다. 《孟子 梁惠王上》 집구석에 …… 없고 불괴옥루(不愧屋漏)는 방안 깊숙한 곳에 있을 때에도 부끄럽지 않다는 뜻으로, 마음이 밝아서 혼자 있을 때에도 사심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한다. 《시경》 〈억(抑)〉에 "네가 방에 있음을 보건대 옥루에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라고 하였다. 원형이정(元亨利貞) 《주역》 〈건괘(乾卦)〉에 "건은 원하고 형하고 이하고 정하다.[乾, 元亨利貞.]"라고 하였다. 곧, 원형이정은 사물의 근본 원리라는 말인데, 원은 만물의 시(始)로 봄에 속하고 인(仁)이며, 형은 만물의 장(長)으로 하(夏)에 속하고 예(禮)이며, 이는 만물의 수(遂)로 추(秋)에 속하고 의(義)이며, 정은 만물의 성(成)으로 동(冬)에 속하고 지(智)가 된다. 장남헌(張南軒) 남송(南宋)의 성리학자 장식(張栻, 1133~1180)으로, 자는 경부(敬夫)·흠부(欽夫)·낙재(樂齋), 호는 남헌이다. 면죽(綿竹) 출신으로, 호굉(胡宏)에게 정자(程子)의 학문을 전수받았으며, 주희(朱熹)와 절친한 벗이기도 하다. 학자들이 그를 존경하여 남헌선생(南軒先生)이라 불렀으며, 주희·여조겸(呂祖謙)과 더불어 '동남(東南)의 삼현(三賢)'이라 불렸다. 저서에 《논어해(論語解)》, 《맹자설(孟子說)》, 《남헌역설(南軒易說)》, 《남헌집(南軒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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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륜153)재기 彝倫齋記 아! 사람이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의관(衣冠)을 입고 하늘과 땅이라는 둘 사이에 서서 천지와 함께 삼재(三才)로 칭해지는데 금수와 다른 것은 어떤 점인가? '삼강(三綱)154)·오상(五常)'155)이라고 말할 뿐이다. 삼강이란 천서(天叙)의 대경(大經)이요, 오상이란 천부(天賦)의 지리(至理)이다. 삼강과 오상이 이미 하늘에 근본하고 있는데 사람이 잘 행한다면 사람이 하늘·땅과 셋으로 나누어졌다 하더라도 그 체(體)는 하나가 될 것이다. 미미한 한 몸이 천지에 참여하여 셋이 되고, 합하여 하나 된다면 사람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지극히 큰 것이 아니겠는가?비록 그렇지만 형기(形氣)가 이미 완성되면 외물이 형기에 접촉하고 마음 가운데에 감화되니 칠정(七情)156)이 생겨나고 사욕(私慾)이 타게[乘] 된다. 사욕이 이미 이기면 삼강·오상의 천(天)이 매몰되고 상실되어 금수에 빠지게 되어 천지와 등져서 둘이 되고 천지 사이에 한 마리 해충이 되면 사람이라는 이름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 심히 두려워할 만하다.옛날 성인이 이것을 매우 두려워해서 이에 사람을 가르치는 법을 세웠으니 상서학교(庠序學校)157)가 설립되었고, 사서(四書)158)·육경(六經)159)의 서적이 만들어졌다. 대개 사서·육경이란 삼강·오상을 밝히는 책이고 상서학교란 삼강·오상을 행하던 곳이다. 이 때문에 옛사람은 국가의 학교뿐만 아니라 향촌(鄕村)·향사(巷社)에 모두 학사를 세워서 15세에 들어갔으니, 소학(小學)·대학(大學)의 절목(節目)이 차례가 상세하고 강목이 엄정하였다. 사람이 천지 사이에 태어나서 말을 할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하루도 익히고 배우지 않은 때가 없었으니 순박하고 선한 풍속이 어찌 일어나지 않았으며, 효제충신(孝悌忠信)이 어찌 독실하지 않았으며, 지치(至治)160)의 큰 교화가 어찌 행해지지 않았겠는가? 이 삼대(三代)161)의 세상에 사람이 모두 예로 사양하여 집마다 봉할 만하였는데[比屋可封]162) 후세에는 학교의 이름이 있어도 학교의 실이 없었고 향촌의 학교는 명(名)과 실(實)이 둘 다 없어진 것이 오래되었다. 천 리의 나라를 지나가도 거리에 글방이 있는 것을 아직 한둘 보지 못했으니 옛것을 배운 유식한 선비가 누가 옛것을 어루만지면서 마음 아파하지 않겠는가?우리 고을의 남쪽에 '덕곡(德谷)'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한두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가 향당에서 뜻이 있는 사람과 마을 어귀 오른쪽에 서재를 세웠다. 삭망(朔望)으로 동관(童冠)을 모아놓고 강학하였는데 책에 그 이름을 적어놓고 책머리에 나의 뜻 한마디를 청하였다. 내가 옛것을 회복하여 선을 행하는 것을 공경히 여겨 삼가 사람의 사람됨이 삼강·오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옛사람이 학문을 가르치는 것 또한 삼강·오상의 도(道)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책의 머리말로 하고, 그 서재를 이름 붙여 '이륜(彝倫)'이라고 하였다. 대략 그 뜻을 펼쳐서 고하기를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며 노인을 노인으로 여기고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며163) 말은 충신하고 행동은 독경하며 어버이를 친히 여기고 어진 이를 높이며 때때로 경을 익히고 예를 익히는 여가에 겸하여 정식(程式)의 문장164)을 통하고, 유사(有司)의 일에 응하여 입신양명하여 그 부모를 드러내는 것 또한 효제의 도이다. 이 서재에 들어가는 자가 혹시 이것에 위반하여 더러운 분쟁이 있고 말이 겸손하고 공경하지 못하여 서재를 세운 뜻을 처음부터 끝까지 어긴다면 서재 이름의 뜻에서 죄를 얻어 깊게 사람의 이름에 부끄러움이 있게 될 것이니 힘쓰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모두 "네"라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기록해서 경계의 법도로 삼는다. 嗚呼! 人之得名爲人。 衣服冠而立天地兩間。 與天地幷稱爲三才。 而禽獸異塗者何耶? 曰'三綱五常'而已。 三綱者。 天叙之大經也。 五常者。 天賦之至理也。 三與五旣本於天而人能行之。 則人與天地分雖三。 其體則一也。 以藐然之一身。 與天地參而爲三。 合而爲一。 則人之爲名。 其至大矣哉? 雖然形氣旣成。 外物觸於形而感於中。 則七情生而私慾乘之。 私慾旣勝則三綱五常之天。 汨喪而淪於禽獸。 與天地背而爲二。 爲天地間一賊蠹則不可以人名之也。 甚可懼也。 古之聖人深懼於此。 於是立敎人之法。 則庠序學校之設起焉。 四書六經之籍作焉。 夫四書六經者。 明三綱五常之書也。 庠序學校者。 行三綱五常之地也。 是以古之人。 非獨邦國之學也。 鄕村巷社皆得以立學舍。 入歲十五。 小學大學之節次第詳盡。 綱目嚴明。 人之生於兩間者。 自能言至于老死。 無一日非講學之時。 則淳風善俗。 安得不興。 孝悌忠信。 安得不篤。 而至治大化。 安得不行哉? 此三代之世。 人皆禮讓而比屋可封者然也。 後世有學校之名。 無學校之實。 而鄕村之學則名與實兩亡者久矣。 歷千里之邦而巷有塾者未見一二。 則學古有識之士。 孰不撫古而感傷也哉? 吾鄕之南。 有村曰'德谷'。 一二好學之士。 與鄕黨有志之人。 創立齋舍于里門之右。 朔望會童冠講學。 書其名于卷。 請余志一言于卷首。 余欽其能復古而行善。 謹以人之能爲人。 不出於三綱五常。 而古之所以敎所以學者之亦不出三綱五常之道。 弁其卷而名其齋曰'彝倫'。 略申其意而告之曰: "入則孝出則悌。 老老而長長。 言忠信行篤敬。 親親而尊賢。 時以講經習禮之暇。 兼通程式之文。 應有司之擧。 立身揚名。 顯其父母。 亦孝悌之道也。 入是齋者。 倘違於此而在醜紛爭。 言不謙恭。 使立齋之意。 始終參差。 則得罪於齋號之義。 而甚有愧於爲人之名矣。 可不勖哉?" 咸曰: "諾。" 記其說以爲警式。 이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정벌한 뒤 기자를 방문하여 이륜(彛倫)을 펴는 이치에 대해 물었는데, 이에 기자가 대답한 것이 홍범구주이다. 《書經 洪範》 삼강(三綱) 유교 윤리의 근본인 세 가지의 기본 강령을 말한다. 즉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고[君爲臣綱], 아비는 아들의 벼리가 되고[父爲子綱],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됨[夫爲婦綱]이다. 오상(五常) 보통은 오륜(五倫) 즉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을 가리킨다. 칠정(七情) 인간의 7가지 감정인 희(喜)·노(怒)·우(憂)·사(思)·비(悲)·공(恐)·경(驚)을 가리키기도 하고,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을 말하기도 한다. 상서학교(庠序學校) 맹자(孟子)가 설명한 중국 고대의 교육기관으로, "상·서·학·교를 설치하여 백성들을 가르쳤으니, 상은 봉양한다는 뜻이고, 교는 가르친다는 뜻이며, 서는 활쏘기를 익힌다는 뜻이다. 하나라에서는 '교'라 하였고, 은나라에서는 '서'라 하였고, 주나라에서는 '상'이라 하였으며, 학은 삼대가 공통으로 두었으니, 이는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었다.[設爲庠序學校, 以敎之, 庠者, 養也, 校者, 敎也, 序者, 射也. 夏曰'校', 殷曰'序', 周曰'庠', 學則三代共之, 皆所以明人倫也.]"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사서(四書) 사서는 《대학》·《논어》·《맹자》·《중용》을 가리키는데 《대학》과 《중용》에 각각 《장구(章句)》와 《혹문(或問)》이 있으며, 사서에 모두 주희의 《집주(集註)》가 있다. 육경(六經) 육경은 《시경》·《서경》·《주역》·《예경》·《춘추》·《악경(樂經)》을 가리키는데 《악경》은 없어졌고 그 이론만이 《예기》 〈악기(樂記)〉에 수록되어 있다. 지치(至治) 안정되어 번영하고 교화가 널리 행해지는 정치적 국면이다. 《서경》 〈군진(君陳)〉에 "지극한 다스림은 향내가 풍기는 것 같아서 신명을 감동시키니, 제수가 향기로운 것이 아니요, 밝은 덕이 오직 향기로운 것이다.[至治馨香, 感于神明, 黍稷非香, 明德惟香.]"라고 하였다. 삼대(三代) 중국 고대의 요순(堯舜) 시대와 하(夏)나라, 은(殷)나라, 주(周)나라 시대의 태평성대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비옥가봉(比屋可封) 요순시대에는 교화가 사해에 두루 미쳐 집집마다 모두 봉(封)을 받을 만큼 덕행이 뛰어난 인물이 많았다는 뜻이다. 곧 천하가 잘 다스려져 백성의 풍속이 순후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서(漢書)》 〈왕망전(王莽傳)〉에 "요순시대에는 집집마다 다 봉하여도 되었다."라고 하였으며, 《신어(新語)》 〈무위(無爲)〉에 "요순의 백성이 집집마다 봉할 만하고 걸주의 백성이 집집마다 주벌할 만한 것은 교화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堯舜之民, 可比屋而封, 桀紂之民, 加比屋而誅者, 敎化使然也.]"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노인을 …… 여기며 《대학장구(大學章句)》 전10장에 "이른바 평천하가 치국에 달려 있다는 것은,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봉양하면 백성들이 효행을 일으키고, 윗사람이 어른을 어른으로 대우하면 백성들이 공손한 마음을 일으키며, 윗사람이 고아를 돌보아 주면 백성들이 서로 저버리지 않나니,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의 도가 있는 것이다.[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라는 말이 나온다. 정식(程式)의 문장 일정한 격식을 갖춘 글로, 여기에서는 과거 시험에 적합한 형식의 글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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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락재기 悅樂齋記 열락재(悅樂齋)가 이미 완성되어 '열락(悅樂)'이라고 편액하고 서재의 학생들이 서재 아래에 서서 나에게 묻기를 "청컨대 '열락(悅樂)'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응하여 말하기를 "그대는 《노론(魯論)》 수장(首章)의 경(經)165)을 익히지 않았는가? 옛사람의 학문은 효제(孝悌)일 뿐이다. 효제에 마음을 두면 효제를 배우지 않을 수 없고 효제를 배우면 효제를 익히지 않을 수 없으니 앉음에 시동처럼 함은 앉아 있을 때의 익힘이요, 섬에 재계하는 것처럼 함은 서 있을 때의 익힘이다.166) 안에서는 심지(心志)요, 밖에서는 언동(言動)이니 가운데를 말미암아 겉으로 드러나니 수면앙배(粹面盎背)167)라는 것은 효제 아닌 것이 없으니 그 마음의 화열(和悅)이 어떠하겠는가? 이 때문에 이 마음이 한 가정에서 행해지면 부모에게 유순하고 형제 사이에 화목하며, 나라에서 행해지면 군주와 신하가 바르게 되고 친구가 따르게 되니 그 기(氣)의 화락(和樂)이 어찌 그침이 있겠는가? 이것이 군자의 열락(悅樂)이다. 한나라 이후로는 과거제도로 사람을 취하니 배우고 때로 익히는 것이 문장일 뿐이다. 육경을 표절하고 권모술수를 출입하여 문장으로 드러내어 남의 이목을 현혹시키면 그 마음이 기쁜 것이다. 예원(藝園)에서 한묵을 구사하여 세상에 이름을 올리고 생을 즐기고 죽음을 잊고 분쟁을 좇으면 그 기운이 즐거운 것이니 이것은 소인의 열락(悅樂)이다. 이 두 가지 것에서 그대들은 어디에 속하는가?"라고 하였다.별안간 줄에서 비웃는 이가 있어 말하기를 "이런 것이 있구나! 그대 말의 우활함이여. 삼대(三代)는 이미 옛일이고 옛 도는 되돌리기 어려우니 지금의 세상을 살면서 옛날의 도를 되돌리고자 한다면 황하의 물을 되돌려 곤륜(崑崙)의 제방에 주입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응답하여 말하기를 "아! 그대는 홀로 하늘에서 진성(眞性)을 품부 받지 않았는가? 그대와 나는 위로는 요순(堯舜)에 이르고, 원래 처음 태어날 때 하늘에서 함께 얻었으니 우리 무리가 계획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을 회복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비록 그렇지만 한미한 시골에서 늦게 나와 품부 받은 바탕이 비루하고 용렬하며 습속(習俗)이 누적되어 견문이 구차하면서 과거 시험을 겸하고자 한다면 이른바 '하늘에 근본 한다.'라는 것이 날짐승·들짐승의 탐욕에 흐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것이 《노론(魯論)》이 편 머리에 학습(學習) 두 글자를 들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세도(世道)의 변화 또한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부모의 바람은 과거 시험에 있고 군신이 만날 즈음이 과거 시험에서이니 과거에 응시하는 것 또한 폐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제생에게 바라는 것은 학습이 비록 과거 시험 공부에 있더라도 심지(心志)가 득실에 빠지지 않고, 문사가 비록 법식을 숭상하더라도 열락(悅樂)은 오로지 효제에 있으니 고금(古今)을 참고하여야 거의 그 바름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근원을 미루어 본원에 돌아가 요순의 하늘을 회복하는 것 또한 바랄 만하다. 이것이 내가 서재를 이름 붙인 지극한 뜻이다."라고 하였다. 제생이 모두 절하고 말하기를 "공경히 가르침을 취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벽에 그 말들을 써서 나를 반성하고 제생을 경계하고자 한다.갑진년(1664, 현종5) 하지에 구고산옹(九臯散翁)이 쓰다. 悅樂齋旣成。 扁以悅樂。 齋之諸生。 立齋下問余曰: "請聞悅樂之義。" 應之曰: "子不講魯論首章之經乎? 古人之學。 孝悌而已。 心乎孝悌。 不能不學于孝悌。 學乎孝悌。 不敢不習乎孝悌。 坐如尸。 坐時習孝悌也。 立如齊。 立時習孝悌也。 內而心志。 外而言動。 由中顯表。 粹面盎背者。 無非孝悌。 則其心之和悅如何哉? 以是心行之一家。 父母順兄弟怡。 行之邦家。 君臣正朋類從。 則其氣之和樂。 容有已乎? 此君子之悅樂也。 漢氏以降。 科制取人。 則學而時習者。 文藻而已。 摽竊六籍。 出入權數。 發爲文章。 眩人耳目則其心悅矣。 馳翰藝園。 騰名世路。 樂生忘死。 紛爭追逐則其氣樂矣。 此小人之悅樂也。 二者子等何居焉?" 俄有笑于列者曰: "有是哉! 子言之迂也。 三代旣古。 古道難回。 居今之世。 欲反古之道。 何異倒黃河之流。 注崑崙之坂哉?" 余應之曰: "嗟乎! 子獨不稟眞性於天矣乎? 子與我。 上至堯舜。 原厥初生。 同得乎天。 則爲吾徒計者。 不過曰'復乎天'而已也。 雖然寒鄕晩出。 稟質汚庸。 習俗之累。 聞見之拘。 兼之而科目之慾則所謂本乎天者。 幾何而不流於飛走之嗇哉? 此魯論之所以揭學習二字於篇首者也。 然而世道之變。 亦不可不循。 父母之望。 在於科第。 君臣之際遇。 在於科第。 則應擧之業。 亦何可廢也。 余之所冀於諸生者。 學習雖在於擧業。 心志不溺於得失。 文辭雖尙於程式。 悅樂專在於孝悌。 則酌古參今。 庶得其中。 推原反本。 復之於堯舜之天。 亦可希矣。 此余名齋之至意也。" 諸生咸拜曰: "敬就敎矣。" 遂書其言于壁。 以省己而警諸生云。 歲在甲辰之日長至。 九臯散翁書。 《노론(魯論)》 수장(首章)의 경(經) 《논어》 〈학이편(學而篇)〉의 첫째 장에 "공자가 말하기를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해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는 구절을 말한다. 앉음에 …… 익힘이다 주희는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이미 배우고 또 '때때로 그것을 익힌다면[時時習之]' 배운 것이 익숙해져서 중심에 희열을 느껴 그 진전이 자연히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여, '시습'을 '시시습지' 즉 '때때로 그것을 익힘'으로 해석하였는데, 또 하나의 설로 '시습'을 '무시불습' 즉 '항상 익힘'으로 해석한 사양좌의 설을 채록해 넣었다. 사양좌는 "시습이란 때마다 익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앉음에 시동처럼 함은 앉아 있을 때의 익힘이요, 섬에 재계하는 것처럼 함은 서 있을 때의 익힘이다.[時習者, 無時而不習, 坐如尸, 坐時習也, 立如齊, 立時習也.]"라고 하였다. 수면앙배(粹面盎背) '맑게 얼굴에 드러나며 등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가 마음속에 뿌리내려, 그 드러나는 빛이 얼굴에 윤택하게 나타나고 등에 가득하게 나타난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盎於背.]"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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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재기 玉成齋記 을사년(1665, 현종6) 가을에 열락재(悅樂齋)가 훼손되어 김생 진화(金生振華)·윤생 유(尹生瑜)가 연화평(蓮花坪)의 남쪽 기슭에 서재를 중수하여 지어놓고 이름을 청하였다. 편액을 '옥성(玉成)'이라 하였으니 대개 정완(訂頑)168)의 용옥여성(庸玉汝成)169)의 뜻을 취한 것이다. 대략 그 뜻을 부연 설명하자면 "찬 서리가 내리면 훌륭한 재목도 떨어지지 않음이 없고, 완석(頑石)으로 다스리면 형박(荊璞)170)이 그 빛을 이룬다. 풍상(風霜)이 숙살(肅殺)하고 거친 돌이 치고 때리면 누군들 하늘을 찌르는 줄기와 햇빛 아래 빛나는 보배를 향해 그 최락(摧落)하고 소력(消礫)하는 참상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급기야 연약한 것이 강실(剛實)해지고 울퉁불퉁한 것이 매끄럽게 되어서 들보를 걸쳐놓고 채단을 올려놓으면171) 누가 규모가 크고 화려한 집[輪奐]172)의 완성을 흠모하고 감상하지 않겠는가? 그런 즉 예전의 숙살(肅殺)하는 것과 격박(擊拍)하는 것은 진실로 나의 질병을 고치는 약석(藥石)173)이 아니겠는가? 장자(張子)174)가 말하기를 '가난하고 천함, 근심과 걱정은 너를 옥처럼 갈고 닦아서 훌륭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하니 가난하고 천함, 근심과 걱정은 사람들에게 심한 고통이 아닌 것이 없지만 끝내 옥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어째서인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이루는 자는 상지(上智)요, 중인(中人) 이하는 반드시 격(激)한 것이 있고 난 뒤에 뜻이 독실해지고 실천에 힘이 들어간다. 오직 너 유(瑜)와 화(華)는 굽어보아 고인의 책을 읽고 우러러 이 서재를 중수한 까닭을 하루에 세 번 생각한다면 글 읽는 소리가 비록 입술에서 끊어지고자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진실로 규모가 크고 화려한 집의 완성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그런 후에 서리와 돌이 원망할 대상이 아니고 나의 뜻을 마칠 수 있는 재료가 될 것이다. 학문하는 방법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도는 이미 열락재(悅樂齋)에 갖추어져 있으니 화(華)와 유(瑜)는 힘쓸지어다!"라고 하였다. 乙巳秋。 悅樂齋毁。 金生振華,尹生瑜改築室于蓮花坪之南麓。 請名焉。 扁曰'玉成'。 盖取訂頑庸玉汝成之義也。 略演其義曰: "寒霜降者。 櫲樟莫不隕。 頑石攻者。 荊璞成其輝。 風霜之肅殺。 麤石之擊拍。 孰不向參天之幹曜日之珍。 愛惜其摧落消礫之慘哉? 及其軟弱者剛實。 嵯峨者滑澤。 架棟,樑升筐篚也。 孰不欽賞其侖奐孚允也哉。 然則向之肅殺者擊拍者。 眞吾砭疾之藥石也非耶? 張子曰: '貧賤憂戚。 庸玉汝于成。' 貧賤憂戚。 人莫不甚苦。 而卒能玉其成何哉? 無所爲而爲者。 上智也。 中人以下。 必有所激而後志必篤行必力。 惟爾瑜與華。 俯而讀古人書。 仰而日三思此齋之所以移築者。 則唔咿之聲。 雖欲絶於唇。 必不得矣。 侖奐孚允之成。 其不在玆耶? 然後霜石非可㤪之資。 而吾之志畢矣。 至於爲學之道。 處心之方。 已具悅樂齋。 勖哉! 華與瑜。" 정완(訂頑) 송(宋)나라 장재(張載, 1020~1077)가 서재의 동서 양쪽 창문 위에 〈폄우(砭愚)〉와 〈정완(訂頑)〉 두 개의 명(銘)을 걸어 놓고서 제생(諸生)을 경계시켰는데, 뒤에 논쟁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는 정자(程子)의 말에 따라 〈폄우〉를 〈동명(東銘)〉으로, 〈정완〉을 〈서명(西銘)〉으로 개칭하였다. 이 〈서명〉은 인의(仁義)에 입각한 유가(儒家)의 윤리설(倫理說)을 요약해서 서술한 것인데, 주희(朱熹)가 별도로 주(注)를 달아 해설하면서부터 널리 알려졌다. 《伊洛淵源錄》 용옥여성(庸玉汝成) 하늘이 시련을 주어 훌륭한 인격을 완성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부귀와 복택은 나의 삶을 두텁게 해 주고, 빈천과 우척은 너를 도와 성취시켜 주는 것이다.[富貴福澤, 將厚吾之生也, 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古文眞寶後集 卷10》 형박(荊璞) 형산(荊山)의 박옥(璞玉)으로 내면에 남다른 재주와 포부를 지니고 있지만 한미한 출신에 가려져 인정을 받지 못하는 무명자를 빗댄 사물이다. 춘추 시대 초나라 사람인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박옥을 얻어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 보고 돌이라 하여 두 발이 잘리고 말았다. 그 후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형산 아래서 박옥을 안고 사흘 밤낮을 울었다. 문왕이 사람을 보내 "천하에 발이 잘린 사람이 많은데 그대만이 유독 이렇게 우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고 묻자, "저는 발이 잘린 것을 슬퍼하는 게 아닙니다. 보배로운 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미치광이라 하니 이 때문에 제가 슬피 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옥공(玉工)을 시켜 박옥을 다듬게 하니 직경이 한 자나 되고 티 한 점 없는 큰 옥이 나왔다고 한다. 이 옥을 화씨벽(和氏璧)이라 한다. 《韓非子 和氏》 들보를 …… 올려놓으면 열락재(悅樂齋)를 중수하여 상량식을 거행함을 말한다. 윤환(輪奐) 건물이 웅장하고 많음을 형용하는 말로, 건물이 낙성된 것을 축하할 때 쓰는 상투적인 표현이다. 진(晉)나라 헌문자(獻文子)가 저택을 신축하여 준공하자 진나라 대부들이 가서 축하하였는데, 그 중에 장로(張老)가 말하기를 "규모가 크고 화려하여 아름답도다! 이 집에서 살며 기쁜 일로 노래도 하고, 이 집에서 살다가 죽어 곡도 하게 되고, 이 집에서 국족들을 모아 번창함을 누리게 되시라.[美哉輪焉! 美哉奐焉! 歌於斯, 哭於斯, 聚國族於斯.]"라고 하였다. 《禮記 檀弓下》 약석(藥石) 고대 병을 치료하는 약물과 돌침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장자(張子) 북송의 문신이자 사상가인 장재(張載, 1020~1077)로, 자는 자후(子厚), 호는 횡거(橫渠), 시호는 명공(明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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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정사기 道民精舍記 도민(道民)175)은 옛 현이다. 혹자는 "옛날에 도가 있는 백성이 살던 곳'이라고 해서 '도민'이라고 했다."라고 한다. 세상에 전하기를 고려 재상[麗相] 문 시중(文侍中)이 살던 곳이라고도 한다. 서석산(瑞石山)의 한 지파가 남쪽으로 2,3백 리를 흘러 덕룡산(德龍山)이 되고, 거슬러 꺾어 동쪽으로 굽이져 서석산을 돌아보며 60여 리를 뒤로 물러나 서석산을 등지고 덕룡산을 마주하며, 음지를 뒤로하고 양지를 끼고서 한 구역 작은 땅을 이루어 언덕이 서리어 사방으로 둘러 방처럼 아늑하다. 전면의 산들이 마치 하늘을 열고 땅을 세운 것처럼 월출(月出)·일봉(日封)·용치(龍峙)·봉악(鳳嶽)·붕명(鵬溟)·구곡(龜谷)의 기괴하고 수려한 것들이 혹은 몸을 부딪고 머리를 늘이며, 혹은 몸을 숨기고 쪽 머리를 드러내며, 혹은 춤추는 소매를 맞잡고 향하며, 혹은 눈썹을 치키고 얼굴을 활짝 펴며, 순종하는 모양 아리따운 자태, 활달한 모양 굳센 기상(氣像)으로 조석에 서기(瑞氣)를 드러내지 않음이 없다.골짜기에 네 개의 샘이 있는데 다 위로 솟고 개울과 합세하여 억산(億山)과 조지(鳥枝)의 양 언덕 사이로 흘러 삼태(三台) 부택(桴澤)의 물과 함께 연화정(蓮花亭) 아래로 흘러든다. 용탄(龍灘)을 경유하여 삼태 부택에 이르러 산을 감추고 물을 숨겨 밖에서 보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으니, 그 아름다운 기운과 청유(淸幽)한 뜻은 홑옷 속에 비단 무늬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과 같아서176) 진실로 이른바, '도가 있는 백성이 거처한다.'는 것이다. 야인의 관과 농부의 복장으로 세상과 어그러져[打乖]177) 섞여 살면서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니, 마음과 몸을 안으로부터 밖으로 드러내어 안목 있는 이에게 공경을 일으켜 우러르도록 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조금도 응도(凝道)178)의 자질이 없는데, 함부로 구도(求道)에 뜻을 두어 중년인 오늘까지도 전혀 알려진 것이 없어 늘 개연(慨然)히 탄식하였다. 이 지역에서 이런 이름을 얻은 특이함에 기뻐하여 마침내 터를 잡아 작은 집을 짓고, 현판을 걸어 '도민정사(道民精舍)'라고 하였다.병신년(1656, 효종7) 8월 일 주인옹(主人翁)이 기록한다. 道民。 古縣也。 或曰: "古有道之民所棲息。 故曰'道民'。" 世傳麗相文侍中所居云。 瑞石一支。 南流二三百里。 作德龍。 逆折東回。 反顧瑞石。 却步六十餘里。 背石面龍。 負陰抱陽。 成一區小地。 邱壟盤旋四環若房奧焉。 前面諸山。 若開天建地。 月出日封。 龍峙鳳嶽。 鵬溟龜谷。 羣奇衆秀。 或抵身引首。 或隱體露鬟。 或舞袖拱向。 或揚眉豁面。 媚狀姸態。 磊形健氣。 莫不呈瑞于朝暮。 谷有四泉皆上出。 涓流合勢。 放流于億山鳥枝兩邱之間。 與三台桴澤之水。 注于蓮花亭下。 由龍灘至于伽倻山。 其山藏水隱。 從外而觀。 鮮入于人人之目。 其佳氣淸幽之意。 有絅裏錦文之美。 眞所謂有道而民居者。 野冠農服。 打乖而混。 世人莫我知。 而其方寸而四軆。 自內而見外者。 起敬於具眼之瞻仰則異矣。 余少無凝道之資。 而妄有求道之志。 中身此日。 萬無一聞。 恒起慨然之喟。 欣然是地得名之異。 遂定居而營築小室。 揭曰'道民精舍'云。 歲丙申八月日。 主人翁記。 도민(道民) 김만영이 과거에 우거하던 고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全羅道)·남평현(南平縣)〉에, "도민부곡(道民部曲)은 현에서 서남쪽으로 16여 리 떨어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홑옷 …… 같아서 비단옷 위에 다시 홑옷을 덧입어서 화려함을 감춘다는 뜻으로, 남에게 과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시경》 〈위풍(衛風) 석인(碩人)〉에 "석인(碩人)이 키가 훤칠하니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었도다.[碩人其頎, 衣錦褧衣.]"라는 구절이 보인다. 타괴(打乖) 세상과 어그러진다는 뜻이다. 송나라 소옹(邵雍)이 〈안락와중호타괴음(安樂窩中好打乖吟)〉이란 시를 지어 자신이 세상과 어긋나는 삶을 살면서 유유자적한다는 뜻을 말하였다. 응도(凝道) 《중용장구》 제27장에 "그러므로 지극한 덕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지극한 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故苟不至德, 至道不凝焉.]"라고 보이는데, 주자는 《집주(集註)》에서 "응은 모임이며 이룸이다.[凝, 聚也, 成也.]"라고 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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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습재기 時習齋記 지극히 고요한 것[至靜]을 일러 '성(性)'이라 하고 동(動)이 있는 것을 일러 '기(氣)'라고 하며 정(靜)으로부터 움직이는 것을 일러 '정(情)'이라고 하고, 통괄하여 그것을 주관하는 것을 일러 '심(心)'이라고 한다. 이 마음은 은미하여 비록 마음에 거처하나 그 넓은 쓰임은 천지[六合]179)를 가득 채우고도 궁핍하지 않고 육합의 넓은 것을 마음 안에 거두어들여도 사물을 각각 사물에 맡겨두어180) 만 가지 선이 갖추어지기에 족하니 배우지 않아도 능하겠는가? 육합의 광대함과 만 가지 선의 많은 것을 마음의 작은 것에 운반하여 나르면서도 가려서 지킬 수 있고, 지켜서 행할 수 있으니 익히지 않고 능할 수 있겠는가?여기에서 치지(致知)와 역행(力行)은 학문의 처음과 끝이 되기 때문에 궐리(闕里)181)의 무리가 《논어》 20편의 수장에서 으뜸으로 삼은 것이다.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에 비록 때때로 익히는 공부를 수용하지 않았더라도 움직임이 있고 난 뒤에 만약 일식(一息)의 익힘이 없으면 곧 배움이 아니다. 치지(致知)는 지식을 익히고자 한 것이고 역행(力行)은 실행을 익히고자 한 것이다. 만약 "나의 지식이 이미 지극하고 나의 실행이 이미 힘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여 더는 때때로 익힘의 노력할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아는 것이 협소해지고 실행이 질퍽질퍽해질 것이다. 이미 협소하고 또 질퍽질퍽해지면 이른바 행동이 아는 것에 구애되어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또한 전일의 청명(淸明)함을 보존할 수 없어서 통괄하여 주관하는 것이 병주고향(幷州故鄕)182)에 귀착되는 것은 드물 것이다. 두려워해야 할 것이로다!우리 고을에 신여진(愼汝眞) 군이 있어 그 서재를 '시습(時習)'이라 편액하고 나에게 글을 써주기를 깊이 간청하였다. 내가 지행(知行) 두 글자를 들어 곡진하게 고했다. 나 또한 십 년 전의 사냥을 좋아하는 습관을 고치지 못했는데183) 이것으로 경계를 삼는다.임진년(1652, 효종3) 2월 10일 쓰다. 至靜之謂'性'。 有動之謂'氣'。 自靜而動之謂'情'。 統是而主焉之謂'心'。 是心之微。 雖宅於方寸。 其用之廣。 彌六合而不竆。 六合之廣。 收而致之方寸之內。 物各付物。 萬善俱足。 其不學而能之歟? 六合之廣。 萬善之衆。 運而輸之方寸之小。 擇而能守。 守而能行。 其不習而能之歟? 此致知力行。 爲學問之始終。 而闕里之徒。 弁之於二十篇之首者也。 至靜之中。 雖不容時習之功。 有動之後。 苟一息之不習則便非學矣。 致知欲其習於知也。 力行欲其習於行也。 若曰: "吾之知旣至。 吾之行旣力。 更不加時習之功。" 則所知者狹。 所行者泥。 旣狹且泥則所謂動之者。 拘於自知。 而至靜之中。 亦不能存其前日之淸明。 而所謂統而主之者。 鮮不歸幷州之故鄕矣。 其可畏也夫! 吾黨有愼君汝眞者。 扁其齋曰'時習'。 屬余求言甚懇。 余擧知行二字申告之。 余亦未革夫十年前喜獵之習者。 仍自警省焉。 壬辰仲春上澣書。 육합(六合) 상하(上下)와 사방(四方)으로 천지(天地)를 의미한다. 사물을 …… 맡겨두어 물각부물(物各付物)의 의미로,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둔다는 뜻이다. 《근사록(近思錄)》 권4 〈존양(存養)〉에 "사람이 어떤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만 다른 일에 구애된 나머지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두면 이는 내가 사물을 부리는 것이지만, 사물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면 이는 사물에 의해 부림을 받는 것이다.[人不止於事, 只是攬他事, 不能使物各付物, 物各付物, 則是役物, 爲物所役, 則是役於物.]"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주(註)에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둔다고 하는 것은, 사물이 오면 반응을 하되 과도하게 하지 않고, 사물이 가면 변화하되, 그 흔적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내가 사물을 부리게 되고 사물에 의해 부림을 당하지 않게 된다.[所謂物各付物者, 物來而應, 不過其則, 物往而化, 不滯其迹, 是則役物而不爲物所役.]"라고 하였다. 자기의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고, 어떤 일이든 객관적으로 살펴서 그 일에 알맞게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궐리(闕里)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 있는 공자의 옛 마을로, 공자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병주고향(幷州故鄕) 정든 타향을 고향에 비유하는 말로 당나라의 가도(賈島)가 병주(幷州)에 오래 살다가 떠나면서 지은 〈상건을 건너며[度桑乾]〉에서 "돌아서 병주를 바라보니 이게 고향인가 하노라.[却望幷州, 是故鄕.]"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오랫동안 생활하여 정든 타향을 뜻한다. 여기서는 자신이 해 오던 학문 방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냥을 …… 못했는데 정호(程顥)가 16, 7세 때에 사냥을 좋아하다가 그만두고 "저는 이미 사냥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라고 하자, 그의 스승 주돈이(周敦頥)가 "말을 어찌 그리 쉽게 하는가. 지금은 그 마음이 숨어 있어 드러나지 않는 것일 뿐이네. 어느 날 싹이 터 움직이면 다시 전과 같을 것이네."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12년 뒤 석양 무렵 집으로 돌아오던 중, 들판에서 사냥하는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즐거운 마음이 들자 비로소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줄을 알았다고 한다. 《二程全書 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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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기유기 玉峀奇遊記 면성(綿城)184)의 동쪽, 금강(錦江)의 북쪽에 하나의 기이한 봉우리가 사호(沙湖) 가에 우뚝 서 있어 이름을 '옥수(玉峀)'라고 하는데, 연파처사(烟波處士)185)가 바위틈에 하나의 작은 집을 짓고 읊은 동악백운(東岳白雲)의 시구186)가 온 세상에 빛나 산이 외롭지 않다. 내가 이 세상에서 반평생을 병마[二竪兒]187)에 시달려 아직껏 절정에 올라 고상한 자취를 살피지 못하였다. 경술년(1670, 현종11) 4월 하순에 조각배 하나를 얻기를 도모하여 물길 따라 띄워, 생각했던 대로 그 밑으로 갔다.미처 수백 궁(弓) 거리에 못 미쳐 중류에서 바라보니, 단지 첩옥(疊玉) 누경(累瓊)만이 보이는데 빼어난 세상 밖에 창송(蒼松) 취초(翠草)가 분벽(粉壁) 사이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바위 모서리에 배를 대고 언덕을 따라 올라가 구불구불 동쪽으로 돌아가다가 석대 위에서 쉬고 거듭 서쪽으로 꺾어 들자 오솔길이 있었다. 돌 비탈 6, 7보를 기어오르면서 오른편으로 백장(百丈) 층벽을 붙들고 왼편으로 천길 깊은 못을 굽어보니, 겨우 하나의 지팡이와 신발을 허용할 정도였다. 몇 걸음을 가다가 옥수암(玉峀庵) 옛터를 만났는데 면적(延袤)188)은 2장(二丈) 남짓으로 푸른 이끼와 잔디가 오래된 섬돌을 뒤덮고, 돌 사이에 오직 안석류(安石榴)189) 한 떨기가 있었는데, 처사가 손수 심은 것이었다. 그 서편 돌길에 아직도 남은 자취가 있어 풀과 가시가 자라지 않았다. 또 그 서편으로 작은 대(臺)가 있고, 작은 대에서 다시 동쪽으로 돌아 북쪽 가까이 올라가니 한걸음에 한 석대(石臺)가 층층 첩첩 쌓여 있어 번민과 피로를 잊었고, 높은 정상에 오르자 활연히 통창(通暢)하여 신선이 된 것처럼 상쾌하였다. 석대 위에 의자 같은 돌이 있고, 의자 위에 창송(蒼松)이 일산 같았다. 의자에 걸터앉아 사방으로 하늘 자락을 바라보니 이 몸이 티끌 세상의 인간이란 걸 깜빡하였다.인하여 연파 노선(烟波老仙)이 대나무 가마와 복건(幅巾)으로 사물을 보고 흥을 일으켜 붓을 뽑아 붉은 점을 찍어 월변승영(月邊僧影)의 시190)에 휘둘러 뿌리던 기상과 풍채를 상상하니, 눈앞의 일처럼 선하였다. 우러르고 굽어보는 사이에 감개가 이어졌으니, 모르겠지만 세월이 얼마나 지나야 우리 인간의 자취가 다 민멸(泯滅)하고, 또 어떤 사람이 오늘의 일처럼 세상 밖에 뜻을 두고 나중에 나의 자취를 살펴볼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석공(石工)을 시켜 연파(烟波)의 한 절구(絶句)를 석벽 위에 새기고, 그 뒤에 누추한 나의 이름을 새겨 호산(湖山)의 질탕한 회포를 붙이고 싶었으나 산랑(散浪)의 사람이라 힘이 모자라 뜻을 이루지 못하니 서글펐다. 이에 추연(愀然)하여 즐기지 못하고 발길 따라 아래로 내려오다가 산자락에 이르러 층벽(層壁)을 돌아보니, 한 늙은 중이 있었는데 어디서 온 자인지 알 수 없었으나 등 넝쿨을 헤치며 언덕을 짚고 올라 위태로운 바위꼭대기에 앉아 있기에 내가 기이하게 여겨 부르며 오게 하였으나, 행적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 또한 배에 올라 읊조리며 돌아가다가 해산(海山)을 돌아보니 좋은 꿈에서 깬 것만 같았다. 綿城之東錦江之北。 有一奇峯。 特立乎沙湖之上。 其名曰'玉峀'。 烟波處士構一小屋巖隙間。 東岳白雲之句。 炳燿一世而山不孤矣。 余半生斯世。 爲二竪兒所魔。 尙未克登絶頂而撫高躅矣。 庚戌淸和下澣。 謀得一小艇。 順流而泛。 腹猶果然而抵其下。 未及至數百弓。 中流而望則但見疊玉累瓊。 挺然天表。 蒼松翠草散亂乎粉壁間矣。 泊舟巖角。 緣崖而升。 逶迤東轉。 偃息乎石臺之上。 仍西折而有小逕。 攀磴六七步。 右扶百丈層壁。 左瞰千仞深潭。 僅容一杖。 數足而進。 得玉峀庵舊基。 延袤可二丈許。 靑蘚碧莎。 堙沒古砌。 石間惟有安石榴一叢。 盖處士手植也。 其西石逕。 尙有遺蹤。 草棘不生。 又其西有小臺。 自小臺又東轉。 近北而上。 一步一石臺。 層疊而升。 不覺惱疲而至高巓。 豁然通暢。 爽若登仙然矣。 石臺之上。 有石如椅。 椅上蒼松如偃盖。 踞椅而坐。 四望天倪。 不知此身是塵中人也。 仍想烟波老仙以筍輿幅巾。 覽物起興。 抽毫點朱。 揮灑月邊僧影之什。 其氣像神彩。 了了如眼中事也。 俛仰之間。 感慨繼之。 則未知幾經年而吾人此跡。 泯滅已盡。 又有何人志存物表如今日事。 而來撫我踵耶? 每思至此。 欲倩石工刻烟波一絶于石壁上。 又刻陋名字其後。 以寓湖山跌宕之懷。 而散浪之人。 力瑣不及遂則戚矣。 於是愀然不樂。 信步而下。 下至山足。 回望層壁則有一老衲。 不知自何來者。 披藤撫崖而上。 坐于危巖巓上。 余奇之。 呼之使來則不見所往矣。 余亦登舟諷詠而歸。 回頭海山。 如覺一好夢矣。 면성(綿城) 전라남도 무안(務安)의 별칭이다. 연파처사(烟波處士) 박개(朴漑, 1511~1586)의 호이다. 동악백운(東岳白雲)의 시구 동악백운의 시는 "작은 집 높이 매달려 자미성과 가까우니 달 옆의 스님 그림자 강 건너 날아왔네 서호의 거사 찾아와 묵으니 동악의 흰 구름 풀옷을 적시네[小屋高懸近紫微, 月邊僧影渡江飛, 西湖處士來相宿, 東岳白雲沾草衣.]"라는 7언 절구시인데 김만영은 이 원운을 박개(朴漑)의 시라 하였으나, 실제로는 이후백(李後白, 1520~1578)의 문집 《청련집(靑蓮集)》에 〈무제(無題)〉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김만영의 《남포집》 〈부원운(附原韻)〉 참조 이수아(二竪兒) 병마(病魔)의 별칭이다. 《춘추좌씨전》 성공(成公) 10년 조에 "진(晉)나라 경공(景公)이 병이 심하여 진(秦)나라의 명의(名醫)를 청하였는데, 그가 오기 전에 경공의 꿈에 두 수자(豎子)가 서로 말하기를 '내일 명의가 오면 우리를 처치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고(膏)의 밑과 황(肓)의 위로 들어가면 명의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이튿날 명의가 와서 진찰하더니 '병이 고황의 사이에 들어갔으니 치료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연무(延袤) 연(延)은 가로로서 동서(東西)의 길이, 무(袤)는 세로로서 남북(南北)의 길이를 뜻한다. 여기에서는 면적을 뜻한다. 안석류(安石榴) 한(漢) 나라 장건(張騫)이 서역(西域)에 사신으로 갔다가 안석국(安石國)에서 가지고 왔다는 석류나무이다. 월변승영(月邊僧影)의 시 《남포집》 〈부원운(附原韻)〉에 나와 있는 박개(朴漑)가 지었다는 시 구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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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과의 병민이 과거를 치르는 전례 六科兵民科擧典例 서울과 지방은 이소(二所)로 나누어 과장을 설치한다. 사병(士兵)과 농병(農兵)은 함께 일소(一所)로 나아가고, 공병(工兵)과 상병(商兵), 노병(奴兵)은 함께 이소(二所)로 나아간다. 일소에서 50인을 시취(試取)하고 이소에서 50인을 시취한다. 회시(會試)도 이소로 나누어 각 군병을 나누어 나아가게 하는 것은 위의 법처럼 하여 일소에서 100인을 시취하고, 이소에서 100인을 시취한다. 사병과 농병 가운데 무과에 입격한 자는 1년에 한 차례 어영청에 들어가 호위하는데 한 달에 한 번 번(番)을 교체한다. 변고가 있으면 모두 서울로 나아가 호위한다. 무과에 급제한 공병, 상병, 노병은 감영과 병영에 나누어 소속시킨다. 京中及外方。 分二所設場。 士兵農兵同赴一所。 工兵商兵奴兵同赴二所。 一所取五十人。 二所取五十人。 會試亦分二所。 各兵分赴如上法。 一所取百人。 二所取百人。 士農之登武科者。 一年一次入衛御營。 一月遞番。 有變則沒數進衛于輦轂。 工商奴之登武科者。 分屬于監兵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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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에서 나극지의 시에 차운하고 이어 증별하다 永興 次羅克之韻 因贈別 한 번 만나봄에 뜻이 맞아 이미 마음 쏠렸으니서로 옥 같은 얼굴로 포위된 성에 있었네털을 불어 도처에서 남들이 허물을 찾으니136)화살 꽂히니 어찌하여 돌이 정성에 감응했단 말인가137)귀밑머리엔 삼천 길 백발138)에 놀라고가슴속엔 십만 신병에 의지했네나라 중흥한 뒤로 이몸에 병 많으니전원에 돌아가 누워서 이번 길을 부러워하리 一見知心蓋已傾相將玉貌在圍城吹毛到處人求過沒羽如何石感誠鬢上三千驚白髮胸中十萬仗神兵自中興後身多病歸臥林園羨此行 털을……찾으니 남의 사소한 잘못도 샅샅이 찾아 드러냄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비자》 〈대체(大體)〉에 "옛적에 대체를 온전히 하는 자는……털을 불어가며 작은 허물을 찾아내지 않는다.[古之全大體者……不吹毛而求小疵]"라고 하였다. 화살……말인가 연이어 화살을 쏘면 돌에 화살이 꽂힌다는 말로, 여기서는 남들이 연이어 공격하여 공격이 적중했다는 의미인 듯하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예장행(豫章行)〉 시에 "그 정성에 감동하여 돌에 화살 꽂히니, 험난한 것을 어찌 꺼리랴.[精感石沒羽, 豈云憚險艱?]"라고 하였다. 삼천 길 백발 깊은 시름 때문에 자라난 백발을 뜻한다. 당나라 이백의 〈추포음(秋浦吟)〉 시에 "백발이 삼천 길이나 된 것은, 시름 때문에 이처럼 길어졌다네.[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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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통정의 〈아침 조회를 하다〉 시46)에 차운하다 次姜通亭早朝韻 궁성의 봄 나무 새벽에 하늘거리는데궐문 앞에서 조회 기다리는 시간 더디구나빼곡히 선 조정 관원 안개처럼 늘어서 있고북극성을 우러러보며 모든 별들이 달려가네47)청릉48)에 촛불이 다하니 날이 새려 하고황도에 구름 걷히니 해그림자 옮겨가네뉘라서 영주에 오른 걸49) 성사라 자랑하는가이 몸은 광한궁의 가지를 꺾은 듯하여라50) 禁城春樹曉依依丹鳳門前待漏遲簇立鵷班齊霧列高瞻辰極總星馳靑綾燭盡天光曙黃道雲開日影移誰把登瀛誇盛事此身疑折廣寒枝 강통정의……시 통정(通亭)은 강회백(姜淮伯, 1357~1402)의 호로, 강회백은 본관이 진주(晉州), 자는 백부(伯父)이다. 강회백의 시는 《동문선》 권17에 〈봉천전에 아침 조회를 하다[奉天殿早朝]〉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북극성을……달려가네 신하들이 임금을 향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논어》 〈위정(爲政)〉에 "정사를 덕으로써 하는 것이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뭇별들이 그에게 향하는 것과 같다.[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共之.]"라고 하였다. 청릉 청릉(靑綾)은 푸른 깁으로 만든 이불로, 궁중에서 숙직하는 것을 뜻한다. 한나라 때 상서랑이 번을 서면 궁중에서 푸른 깁으로 만든 이불과 흰 깁으로 만든 이불을 주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영주에 오른 걸 선비가 총애와 영광을 입는 것을 신선의 세계에 오르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영주(瀛州)는 전설 속 신선이 사는 산으로, 당 태종(唐太宗)이 태자로 있을 때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 등 18인을 학사(學士)로 삼아 정사를 자문하자, 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여 영주에 올랐다고 비유하였다. 《新唐書 褚亮傳》 광한궁의……듯하여라 조회하여 임금을 뵌 것을 광한궁에서 노닌 것에 비유한 것이다. 광한궁(廣寒宮)은 달 속에 있다고 하는 선궁(仙宮)의 이름으로, 당(唐)나라 도사(道士) 나공원(羅公遠)이 중추절에 계수나무 한 가지를 공중에 던져 은빛 다리[銀橋]를 만들어 현종(玄宗)과 함께 월궁(月宮)에 올라 선녀들의 춤을 구경하고 돌아왔다는 전설이 있다. 《說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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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날이 어긋나 머물면서 자손을 기다리다 歸日有參差留待子孫 문집 가운데 원주 부사(原州府使) 권순(權淳)88)을 애도하는 만시(輓詩)가 있었는데, 옛 종이의 유묵(遺墨)이 좀먹어 분별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오직 이 9자만은 손때가 오히려 새로워 감히 편척(片隻)이라고 하여 하찮게 여길 수 없기에 책 끝에 새겨서 사모의 뜻89)을 부친다. 集中有輓權原州淳詩, 而古紙遺墨蠹食魚幻, 惟此九字, 手澤尙新, 不敢以片隻而屑蔑, 鋟于卷尾, 用寓羹墻之慕云爾。 권순(權淳) 1564~1622.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화보(和甫), 호는 매오(梅塢)이다. 동계(桐溪) 권달수(權達手)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만오헌(晩悟軒) 경호(景虎)이다. 1589(선조22) 생원시에 합격하여 1597(선조30) 의금부 도사 등을 지냈다. 1604년(선조37)에 산음 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치(善治)로 옷감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사모의 뜻 원문의 '갱장지모(羹墻之慕)'는 죽은 사람을 사모하고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요(堯) 임금이 죽은 뒤에 순임금이 3년 동안이나 그를 사모하여, 앉아 있을 때는 요임금을 담장에서 보고, 밥을 먹을 때는 요 임금을 국에서 보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63 李固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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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산에서 승려 시축의 시에 차운하다 頭流山次僧軸韻 석문은 중간에 끊어져 맑은 시내 쏟아지고험준한 서덜길은 높았다가 다시 낮아지네.신령한 지경이라 찾아오는 속객을 받아주지 않는데위쪽에는 오히려 절로 승려가 머무는구나.못은 차가워 용도 겨울에는 숨어 있지 못하고골짜기 깊어 두견이도 대낮에 울어대누나.무엇 때문에 입산하였다가 무엇 때문에 나왔는가동쪽으로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오는 구름 같아라 石門中斷瀉淸溪嶝路崎嶇高復低靈境不曾容客到上方猶自有僧捿湫寒龍未玄冬蟄谷䆳鵑常白晝啼緣底入山緣底出似雲東去復來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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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팔월 보름에 대작하다 閏八月望對酌 비 오고 맑으며 춥고 더운 날이 서로 갈마들며삼백 예순 날이 한 해가 되나니달이 차는 것은 오직 보름날 밤이요날이 맑은 것은 중추 시절이 제일이라이날 이 밤이 몇 번이나 되랴올해는 이런 밤을 거듭 보노라술을 들어 그대에게 권하다가 다시 달에게 권하니천공이 나를 위해 사사로운 은혜 베푼 듯하여라 雨暘寒燠迭相移三百六旬爲一期月滿惟當望日夜天淸最是中秋時此時此夜能何許今歲今宵再見之擧酒勸君仍勸月天公似爲我偏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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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현들의 창수 제영을 붙임 諸賢唱酬 附題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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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포에게 주다 지천 황정욱39) 贈農圃【芝川 黃廷彧】 십만의 철갑 기병 마구 몰아칠 때에재능 있는 청년 남다른 공 세웠네지금 홀로 천 명을 거느리고 갔으니화살 하나로 왜적40)을 숙청하리라 鐵騎橫馳十萬軍少年才子立殊勳今來獨領千人去一箭應淸漲海氛 황정욱(黃廷彧) 1532~1607.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경문(景文), 호는 지천(芝川), 영의정 황희(黃喜)의 후손이다. 저서로 《지천집》이 있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자 순화군과 임해군을 배종하고 관동으로 피신했는데, 회령에 들어갔다가 국경인의 모반으로 두 왕자와 함께 포로가 되어 적에게 넘겨졌다. 《農圃集 年譜》 왜적 원문의 '창해분(漲海氛)'은 남쪽 바다의 요기(妖氣) 또는 재앙이다. 여기서는 문맥을 살펴 왜적으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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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관과 외직에 대한 규정을 세우는 전례 內外立法典例 내관정제도청(內官定制都廳) : 당상관 3원(員), 당하관 3원이다.진공방물연혁도청(進貢方物沿革都廳) : 당상관 3원, 당하관 3원이다.외관정제도청(外官定制都廳) : 당상관 4원, 당하관 8원이다.각 도의 관원을 제정하는 법은 도어사(都御史) 각각 1원, 부어사(副御史) 각각 1원으로 한다.이상 도어사 1원, 부어사 1원은 명을 받들고 여러 도(道)로 나누어 가서 해당 도의 감사와 상의하여 재예가 뛰어난 수령을 한 도에서 4원을 뽑아 차사원(差使員)으로 삼아 여러 고을에 나누어 관장하게 한다. 먼저 한 도 군현의 결복(結卜)의 수를 헤아린 뒤에 한 도에 2부(府), 2주(州)를 두고, 다음으로 남은 결복을 계산하여 각각 속현(屬縣)을 둔다. 이어서 옛 읍 가운데 줄일 만한 곳은 줄이고 병합할 만한 곳은 병합한다. 주군(州郡)이 이미 정해진 뒤에 차사원이 해당 고을 수령을 거느리고 당리(黨里)의 보호(保戶)를 나누어 정한다. 보호가 정해진 뒤에 오민(五民)을 분별하고, 오민이 정해진 뒤에 육병(六兵) 및 학교(學校), 사정(射亭)의 법을 분별한다. 內官定制都廳 : 堂上三員。 堂下三員。進貢方物沿革都廳 : 堂上三員。 堂下三員。外官定制都廳 : 堂上四員。 堂下八員。各道官制定法。 都御史各一員。 副御史各一員。右都御史一員。 副御史一員。 奉命分往諸道。 與其道監司商確。 擇守令之多才藝者。 一道四員爲差使員。 分掌列邑。 先計一道郡縣結卜之數。 然後一道置二府二州。 次計餘結。 各置屬縣。 仍其舊邑可削者削之。 可合者合之。 州郡旣定。 然後差使員率其邑守令。 分定黨里保戶。 保戶旣定。 然後分別五民。 五民旣定。 然後分別六兵及學校射亭之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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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이 걸친 늙은이가 낚시하는 그림 簑翁釣魚圖 이곳은 바로 동강이란 곳이니사람은 엄자릉이 아니면 누구랴양 갖옷 입고 풍광 속에 들어가푸른 도롱이로 갈아입었네185) 地卽桐江是人非子陵誰羊裘入物色變着綠簑衣 이곳은……갈아입었네 자릉(子陵)은 엄광(嚴光)의 자(字)로, 엄광은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어릴 적 벗이다. 엄광은 은거하여 양 갖옷을 입고 동강(桐江)에서 낚시질하며 지냈는데, 광무제가 즉위한 뒤에 엄광을 찾아 벼슬을 제수하려 했으나, 엄광은 벼슬을 사양하고 동강으로 돌아가 평생 은거하며 지냈다. 《後漢書 嚴光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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