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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당의 맑은 향기 竹塘淸香 –원문 8자 결락-근원은 샘솟네대나무 빛이 연꽃 향기를 마주하니밝은 달빛 더해진들 어떠한가 【八字缺】源活竹色對荷香如何添素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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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운한 시를 부기하다 김현래 附次韻 金玄來 반이랑 방당을 여니근원에서 활수가 솟아나네183)대나무 그림자와 연꽃 향기휘엉청 밝은 달에 유독 어울리누나 池開半畝方水貯原頭活竹影與荷香偏宜涵夜月 반이랑……솟아나네 송나라 주희(朱熹)의 〈관서유감이수(觀書有感二首)〉에 "반 이랑 네모난 연못 거울처럼 열렸는데, 하늘빛 구름 그림자와 함께 배회하네. 묻노니 어이하여 저처럼 맑은 것인가? 근원에서 활수가 솟아나기 때문이라네.[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고 하였다. 이는 학문에 연원이 있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죽당의 못을 형용하는 말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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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성에 이르러217) 다시 앞 시의 운자를 사용하여 짓다 2수 到穩城復 用前韻【二首】 옆으로 북극에 임하여 높은 성 지었으니낚시로 자라를 낚고 검으로 고래 베려 하네내가 실컷 술마시게 하면 청해 물을 다 마시고그대와 담소 나누며 백두산을 기울이리칼 짚고 만리성에 올라 굽어보니용을 삶고 봉황을 굽고 큰 고래를 회치네푸른 바닷물을 한 잔 술 삼아장군의 가슴 속에 부어 볼거나 平臨北極作高城釣欲連鰲釰斷鯨容我飮酣靑海渴爲君談笑白山傾倚釰登臨萬里城烹龍炮鳳膾長鯨滄溟水作一杯酒倒向將軍胸裡傾 온성에 이르러 정문부는 1595년(선조28)에 온성 부사(穩城府使)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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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창의행 창곡 최유해 壬辰倡義行【蒼谷 崔有海】 요성이 밤하늘 비춰 흰 서슬 비끼고광풍에 땅 진동하니 짙은 안개 비리네포악한 오랑캐 비선55) 성난 고래처럼 날뛰고흰 무지개 피 토해 깊은 바다 물들이네병화의 불길 치솟으니 임금님 몽진하고살기 가득하니 하늘은 어두컴컴 해졌네공신의 후손들 피맺힌 정성 바치려고높고 큰 담력으로 서릿발 도검 뽑았네쓰러져가는 큰 집 한 손으로 떠받치며주먹 불끈 쥐고 소리쳐 오정 독려하네56)세상 바로잡는 의병 기치 들고 혈맹하니나라에 보답하는 정성 바쳐 경성57) 비추네위대한 정 장군 문무의 재능 뛰어나고늠연한 정충은 골수에 사무쳤네범처럼 노려보며 군영서 지휘가 정교하니곰처럼 포효하면 의병들 귀 기울여 듣네기밀 탐지해 대소의 깃발 은밀히 세우고병장기 들고 장단의 정자 몰래 에워쌌네알유58)가 이를 갈며 포위된 성 나서자맹렬한 불길 바람 타고 앞 들판 태우네긴 팔로 활을 당기니 벽력 울리는 것 같고신속하게 조장59) 들어 치병60) 연결시켰네왜적이 행군하는 길에 은밀히 복병 숨기고구름 속 용의 형세로 종횡무진 전투 대형 갖췄네우레 울리듯 적의 선봉 갑자기 꺾어버리고엄히 단속하여 서슬 퍼런 창칼로 포위하네왜적61)들 도마 위 생선처럼 목숨 구걸해도민둥머리 뒤통수에 칼침 놓으라 재촉하네귀를 베고 골수를 부수니 구덩이 빨리 차고살갗 벗겨 비린내 풍기며 세월 바뀌었네길섶의 시체 하늘 높이 쌓여가는데밤마다 도깨비불은 반딧불처럼 빛나누나머리 숨긴 숫뱀 음흉한 간담 서늘해지고둥지 그리워하는 기이한 새 다친 날개 근심하네왜적62)들 말끔히 숙청해 즐겁게 귀대하니의병 군문에 혁혁한 승전보 큰 우레 같았네구름 걷힌 변방에 한나라 달빛63) 밝고매화 놀리는 피리 소리에 하늘과 바다 푸르네백성들 앞다투어 나라 염려하는 마음 일어적의 앞잡이 먼저 베어 신령한 위엄 떨쳤네들판에서 격렬히 싸우며 말 타고 지나가니갈라진 배 끊어진 창자 물가 모래밭에 가득했네까마귀 떼 먹이 다투며 새벽부터 울어대고쌓인 주검 밤에 태우니 불꽃 환히 밝았네화산처럼 맑은 강문우 창끝에 전사하니서쪽 하늘 바라보고 슬퍼서 피눈물 흘렸네마음 열어 의리로 투합하여 기병 가려 뽑고약점 보여 적을 유인해 석병64) 부수었네창 휘두르고 떨쳐 나서니 누가 우열 다투랴피가 흘러 공이 떠가니65) 혼탁한 경수66) 같았네왜적67)들 손가락 깨물며 남몰래 울음 삼키고위세에 떨고 속으로 근심하며 진문 굳게 닫았네돌아가려는 왜적 선봉대 은밀하게 요격하려고회군하는 수레에 밤새 기름칠하여 길 재촉했네전란 평정됨에 우리 강토68) 이미 온전하고임금 고향69) 뜰에 상서로운 구름 아름답게 모였네공렬 포장 되레 부족하고 포상과 은전 가벼우니70)누가 충의를 북돋아서 국법을 밝히겠는가먼 자손까지 경사 이어져 성취할 것이니찬란한 금방71)에 향긋한 명성 드러나겠지사실 모아 문장 지어 나라의 기강 세우니의로운 풍모 널리 퍼뜨려 전형을 전하네 妖星照夜白橫獰飆震地黑氛腥蠻猘飛鷁踔怒鯨陰虹吐血赭重溟兇燹㸌㸌玉輦行殺氣漫漫天晦冥凌烟遺裔控血誠斗膽輪囷發霜硎傑廈垂傾隻手擎張拳雄呼鞭五丁匡時仗義託血盟報國輸忱照景星魁梧鄭帥文武英凜烈精忠髓骨銘雄壇虎視指敎精義旅熊咆傾耳聽探機密樹大小㫌荷戟潛環長短亭猰㺄磨牙出重城烈炎煽風爛前坰猿臂彎弧霹靂鳴鳥章掣電連輜輧陰密藏兵鳥蛇程縱橫排陣雲龍形奸鋒急頓震雷轟霜鋩環匝嚴拘囹染齒爭祝几上生禿頭催加腦後釘刵耳椎髓亟塡坑剝膚揚臭延變蓂枯骴杈路逼霄崢燐火連宵燦流螢雄虺竄首凶膽驚怪雀思巢愁鎩翎貔貅整肅樂還營義門燀爀殷奔霆雲消關塞漢月明笛弄梅花海天靑黎氓競奮戀國情賊囮先磔宣威靈搶鏖騎踏臨野平刳腹劌腸撑沙汀羣烏曉噪啄食爭積尸夜燒焰靑熒端刺姜侯華岳晶衋傷西望血淚零協義披肝揀奇兵示弱誘凶蹴石屛揮矛奮挺孰爭衡蹀血漂杵混濁涇斑衣咋指暗呑聲怵威癙憂牢閉扃先隊籲旋密將迎還輪夜脂催行鈴金甌旣完劃塵淸瑞雲䓗籠豐沛庭褒功還歉賞典輕培義誰張明國經慶蔓雲仍應底成金榜輝煌標名馨拓實構詞植邦紘播揚義風垂典刑 비익(飛鷁) 원문의 '익(鷁)'은 익새로, 백로와 비슷하며 물귀신이 이 새를 두려워한다고도 하고 바람을 잘 견디는 새라고 전해져, 뱃머리나 돛대 끝에 이 새를 만들어 달았다고 한다. 뒤에 비유하여 '배[船]'를 의미하였다. 여기서는 문맥을 살펴 '비선(飛船)'으로 번역하였다. 오정 독려하네 원문의 '오정(五丁)'은 전국(戰國) 시대 촉(蜀)나라의 뛰어난 역사(力士) 다섯 사람을 가리킨다.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촉왕본기(蜀王本紀)》에 의하면, 하늘이 촉나라 왕을 위해 오정 역사를 보내주어 촉산을 옮기도록 해 주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농포 정문부가 임진왜란을 당하여 의병을 모집한 것을 의미한다. 경성(景星) 상서로운 별이다. 경운(慶雲)·감로(甘露)·기린(麒麟) 등과 함께 경사스러운 일이나 태평성대를 표시하는 징조를 말한다. 알유(猰㺄)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고대 전설 속의 맹수 이름으로, 흉악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는 왜적을 의미한다. 조장(鳥章) 새 모양을 그려 장식한 깃발로, 비탈진 길을 갈 때 들고 가는 깃발이다. 《관자(管子)》 〈병법(兵法)〉에 군대 행렬에 드는 깃발이 아홉 가지[九章]가 있는데, 그중에 '다섯 번째 조장(鳥章)을 들면 비탈길을 행군한다.[五曰擧鳥章則行陂]'라고 하였다. 치병(輜軿) 치거(輜車)와 병거(軿車)로, 보통 귀족의 부녀자들이 타는 수레를 말한다. 비바람이나 남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사방을 병풍처럼 막고, 또 누워서 쉴 수 있도록 안락하게 꾸며져 있다. 왜적 원문의 '염치(染齒)'는 왜인의 풍속이 이빨을 검게 물들인 데서 온 말이다. 비휴(貔貅) 고서에 나오는 범과도 같고 곰과도 같은 맹수 이름이다. 한나라 달빛 조국의 산하를 비추는 달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전출새(前出塞)〉 7에 "이미 한월을 멀리 떠나왔는데, 언제나 성을 쌓고 돌아갈거나.[已去漢月遠, 何時築城還?]"라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2》 석병(石屛) 병풍처럼 둘러싸인 바위를 말한다. 공이 떠가니 전투가 격렬하여 사상자가 많다는 말이다. 주 무왕(周武王)이 주왕(紂王)과 목야(牧野)에서 전투할 때 "피가 흘러서 절굿공이를 떠내려가게 했다.[血流漂杵]"라고 한 데서 나왔다. 《書經 武成》 경수(涇水)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강으로, 하류에서 위수(渭水)와 합친다. 위수는 맑고 경수는 혼탁하기에 종종 탁한 물의 대명사로 쓰인다. 반의(斑衣) 아롱 옷을 입은 왜인의 풍속에서 온 말이다. 금구(金甌) 금으로 만든 사발로, 흠이 없고 견고하다 하여 강토에 비유된다. 양 무제(梁武帝)가 일찍 일어나 무덕각(武德閣)에 이르러 혼자 "나의 국토는 금구와 같아 하나의 상처나 흠도 없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梁書 卷38 朱異列傳》 풍패(豐沛) 한 고조(漢高祖)의 고향인 패현(沛縣)의 풍읍(豐邑)으로, 제왕(帝王)의 고향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는 조선 태조의 고향이 함경남도 영흥(永興)이기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공렬……가벼우니 함경감사 윤탁연(尹卓然)은 정문부의 공이 자기보다 뛰어난 것을 시기하고, 북도의 호란을 자기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실정을 뒤집어 그의 공을 숨기고 거짓으로 행재소에 아뢰었다. 이 때문에 조정에서는 막연히 알지 못하여 공에게 제대로 포상이 시행되지 않았다. 《農圃集 年譜》 금방(金榜) 과거 급제자의 명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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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삼고(錦城三稿) 錦城三稿 錦城三稿 고서-집부-별집류 문집 국역 錦城三稿 羅德明 羅德俊 羅德潤 목판본 금성삼고(錦城三稿) 1 미상 미상 나덕명(羅德明)의 소포유고(嘯浦遺稿), 나덕준(羅德俊)의 금암습유(錦巖拾遺), 나덕윤(羅德潤)의 금봉습고(錦峯拾稿)를 한데 모아 세고(世稿) 형태로 편찬한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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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삼고 錦城三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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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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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서문(1) 三稿合部序 【一】 금성 나씨(錦城羅氏)의 가숙(家塾)1)에서 새로 간행한 《소포유고(嘯浦遺稿)》에 금암(錦巖)2)과 금봉(錦峰)3)의 약간의 유고를 덧붙여 한 부로 합편하였으니, 금암의 증손 상사(上舍) 나두동(羅斗冬)4) 씨가 실로 수집한 것이다. 소포(嘯浦)5)의 현손 나만운(羅晩運)과 금봉의 증손 나두흥(羅斗興)이 그와 함께 오래도록 전해지기를 도모하고는 소백산(小白山) 아래로 편지를 보내어 나6)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나주(羅州)는 내가 태어난 곳이고, 금암은 내 선비(先妣)의 할아버지이니 내가 이에 어찌 감격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장차 행여 글재주가 없다고 바로 사양하여 그만둘 수 있겠는가?생각건대 외고조 금호공(錦湖公)7)은 행실로 이름이 났고, 그의 장자 휘 덕명(德明)은 자가 극지(克之)로 금오랑(金吾郞) 벼슬에 나아갔다가 곧바로 그만두고 호수나 바다를 방랑하였으니 뛰어나고 걸출한 사람이었다. 이분이 소포이다. 차남의 휘는 덕준(德俊)이고 자는 대지(大之)이며 벼슬은 지현(知縣)이었다. 셋째의 휘는 덕윤(德潤)이고 자는 유지(有之) 또는 성지(誠之)이며 벼슬은 전중(殿中)이었다. 모두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8)의 제자가 되어 독실히 배우고 힘써 행하였다. 금암과 금봉은 그들의 호이다.소포는 시격이 매우 빼어나서 당세에 명성이 있었으나 지금 남아 있는 시는 단지 고율(古律)·절구(絶句)·근체(近體)·장편 총 50여 수와 부(賦) 2편, 서(書) 3편, 소(疏) 1편뿐이다. 금암과 금봉은 사문(斯文)을 강론하고 연마하여 저술한 글이 마땅히 또한 적지 않을 텐데, 금암은 소(疏) 1편, 서(書) 1편, 자식을 경계하는 글 2편뿐이고, 금봉은 소(疏) 1편, 서(書) 7편, 〈五賢祠揭虔文(오현사게건문)〉 1편,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9)의 시에 차운한 시 1수뿐이다.대개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형제가 멀리 떨어진 북쪽 지역으로 함께 유배되었고, 이윽고 또 임진왜란이 일어나 위급한 상황에서 삼천리를 떠돌아다녔으니, 6, 7년 동안 병란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평소에 지은 글이 망실되어 이미 모두 사라졌을 터이다. 소포는 만력(萬曆) 경술(庚戌 1610)년에 죽었고, 금암이 죽은 것은 소포보다 6년 전이었으며, 금봉이 가장 뒤에 죽었으니 지금으로부터 102년 전이다. 그의 시문은 겨우 백 분의 일만 남았으나 백여 년 뒤에라도 수습하였으니, 장차 후세에 완전히 민멸되는 데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아! 이는 참으로 감격스러우면서 또한 다행스러운 일이다.대체로 고금 사람들의 문집이 세상에 간행되어 많은 것은 수십 권, 작은 것은 한두 권이나 더러는 흩어지고 남은 몇 편의 글귀에 불과하여 유사(遺事) 사이에 덧붙여 전해질 뿐이다. 그 시를 외우고 그 문을 읽어 그 사람을 살피고 그 시대를 논하고자 한다면 수십 권도 넉넉한 것이 아니지만, 또한 두어 편도 부족한 것은 아니다. 만일 세상에서 세 현인의 주옥 같은 책 한 권을 보배로 여긴다면 그 사람의 평생을 상상해 보는 데 또한 충분하니, 어찌 반드시 많은 것만 귀하다고 하겠는가? 한 점의 고기로 큰 솥의 고기 맛을 알 수 있다는 것10)이 진실로 여기에 있다.이 유고를 살펴보니 대체로 소포의 말은 기개가 있어 남에게 구속을 받지 않으며, 금암의 말은 간절하고 진실하면서 차례가 있고, 금봉의 말은 곧고 정확하면서 구차하지 않은데, 효제(孝弟)를 근본으로 삼음은 똑같았으니 어찌 한 기운으로 태어나 한 가정에서 얻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또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곤재 정개청,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동강 김우옹,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11),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2), 다산(茶山) 목대흠(睦大欽)13), 목승선(穆承宣) 등에게 보낸 편지를 보니 여러 현인들이 그 사람됨을 덕망있다 여기고, 논변한 것은 의리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등한시 할 수 있겠는가?아! 기축옥사 때 조정 대신은 논할 것도 없고, 초야에서 학문에 전념하던14) 선비조차 꾸며낸 죄15)로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재앙의 그물에 걸린 나머지 금봉이 먼저 을미(乙未 1595)년에 선혈을 뿌려16) 수천 언(數千言)의 상소를 올려 죽은 스승17)을 위하여 원통함을 변론하고 아울러 그 당시 억울한 자들을 언급하여 간사한 자들이 기회를 틈타 모함한 상황을 모두 서술하였다. 계속해서 소포의 병신(丙申 1596)년 상소는 하늘의 뜻을 돌리고 인심을 결속시키는 도리를 말하여 구천의 원통함을 풀어주도록 거듭 반복하였고, 이어 분발하여 오랑캐를 막자는 계책을 올렸다. 또 이어서 금암의 기해(己亥 1599)년 상소가 있었으니 말이 더욱 격렬하고 간절하였다. 이는 사제 간의 의리로 마땅히 행한 일일 뿐만 아니라 시비(是非)의 소재가 세도(世道)와 관계되는 일이니, 귀신에게 질정해보아도 의심이 없을 것이다. 훗날 기축년의 사건에 대해 알고자 하는 자는 이 세 상소를 읽고 반드시 감개(感慨)하여 탄식할 것이다. 아울러 글을 써서 《소포금암금봉삼고합부(嘯浦錦巖錦峰三稿合部)》의 서문으로 삼는다.숭정(崇禎) 정축 후 85년 임인(壬寅 1722)년 4월 초하루 외후손 3세손 팔계(八溪) 정중원(鄭重元)이 삼가 쓰다. 錦城羅氏家塾, 新刊嘯浦遺稿, 附以錦巖錦峰若干稿, 合成一部, 錦巖曾孫上舍斗冬氏實收輯之. 嘯浦玄孫晩運, 錦峰曾孫斗興, 與之同圖所以壽其傳者, 走書小白山下, 屬重元序之. 羅吾自出也, 錦巖吾先妣之王父也, 重元於此, 烏可不爲之感. 且幸直讓以不文而止乎. 粤惟外高祖錦湖公, 以行誼聞, 其長子, 諱德明, 字曰克之, 筮任金吾郞, 旋已之, 放迹湖海, 卓犖傑魁人也. 是爲嘯浦. 第二諱德俊, 字曰大之, 官知縣. 第三諱德潤, 字曰有之, 亦曰誠之, 官殿中. 俱爲困齋鄭氏弟子, 篤學力行, 錦巖錦峰其號也. 嘯浦詩格超逈, 有聲當世, 今其遺什, 只有古律絶句近體長作, 摠五十餘首, 及賦二書三疏一而已. 錦巖錦峰, 講磨斯文, 所著於文字間者, 宜亦不少, 而錦巖疏一書一戒子文二而已, 錦峰疏一書七五賢祠揭虔文一次東岡韻語一而已. 蓋當己丑禍, 兄弟竝投極北絶域, 已又有龍蛇寇亂, 三千里流離顚沛之際, 六七年兵革搶攘之中, 平日文字亡失, 固已盡矣. 嘯浦以萬曆庚戌歿, 錦巖之歿先六年, 錦峰最後歿, 距今百有二年. 其詩文之僅存十一於千百者, 得追拾於百餘年之後, 將不至全泯于來世. 嗚呼! 此誠可感, 亦可幸也. 凡古今人文集行于世, 多者累數十卷, 小者一二卷, 或不過零章瑣篇, 附傳遺事間焉耳矣. 至於頌其詩讀其文, 以觀其人論其世, 則不以累十卷而有餘, 亦不以數篇而不足. 如世所珍三賢珠玉一卷, 其人平生, 亦足想見, 奚必多之爲貴哉. 一臠可以識大鼎之味, 信乎其有是也. 試以斯稿, 槪之嘯浦之言, 倜儻自奇, 錦巖之言, 懇實有倫, 錦峰之言, 貞確不苟, 其本之以孝弟則一也, 庸非共氣而生得乎家庭者爲然歟. 且觀書翰所與若梧里困齋鶴峯東岡久庵漢陰愚伏茶山睦承宣, 諸賢德其人, 而所論卞無非出於義理, 是豈可以等閑視也. 噫嘻! 己丑之獄, 亡論朝紳, 卽林下藏修之士, 竝被羅織而死. 當禍網之餘, 先有錦峰乙未疏瀝血數千言, 爲亡師訟寃, 竝及一時群枉, 備盡奸人乘機陷害狀. 繼而有嘯浦丙申疏, 言回天意結人心之道, 申申於雪寃泉壤, 仍獻勵志禦戎策. 又繼而有錦巖己亥疏, 言益激切. 此非特師生之義, 所宜爲也, 是非所在關係世道, 可以質諸鬼神而無疑. 後之欲知己丑事者, 於此三疏, 其必有感慨而喟然者矣. 竝書之以爲三稿合部序.崇禎丁丑后八十五年壬寅孟夏初吉, 外後屬三世孫八溪鄭重元謹稿. 가숙(家塾) 글방을 의미한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옛날에 교육기관으로 가(家)에는 숙(塾)을 두고, 당(黨)에는 상(庠)을 두고, 술(術)에는 서(序)를 두고, 국(國)에는 학(學)을 두었다.〔古之敎者, 家有塾、黨有庠、術有序、國有學.〕"라고 하였다. 금암(錦巖) 나덕준(羅德峻. 1553~1604)의 호를 말한다. 자는 대지(大之), 호는 금암이다. 금봉(錦峰) 나덕윤(羅德潤, 1557~1621)의 호를 말한다. 자는 유지(有之)·성지(誠之), 호는 금봉이다. 나두동(羅斗冬) 1658~1728. 자는 간이(幹而), 호는 약헌(藥軒)이다. 부친은 중직대부(中直大夫) 행의금부도사(行義禁府都事) 나진(羅?)이다. 저서로 《약헌유고(藥軒遺稿)》, 《의예집록(疑禮輯錄)》, 《사예요람(四禮要覽)》, 《동사(東史)》 등이 있다. 소포(嘯浦) 나덕명(羅德明, 1551~1610)의 호를 말한다. 자는 극지(克之), 호는 소포·귀암(龜菴)이다. 나 정중원(鄭重元, 1659~1726)을 말한다.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선장(善長), 호는 천천옹(喘喘翁)으로, 1678년 진사에 합격하였다. 정희량(鄭希亮)의 아버지이다. 금호공(錦湖公) 나사침(羅士忱, 1525~1596)을 말한다. 자는 중부(仲孚), 호는 금호이다. 1555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음직으로 경기전 참봉(慶基殿參奉)과 이성 현감(尼城縣監)을 지냈다. 정개청(鄭介淸) 1529~1590.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의백(義伯), 호는 곤재이며, 나주 출신이다. 예학과 성리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당시 호남지방의 명유로 알려졌다. 저서로 《우득록(愚得錄)》이 있다. 김우옹(金宇顒) 1540~1603.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숙부(肅夫)이고, 호는 동강(東岡), 직봉포의(直峰布衣)이다.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한 점의 …… 것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에 "한 점의 고기를 맛보고서 온 솥의 고기 맛을 안다.[嘗一臠肉, 而知一鑊之味.]"라고 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김취문(金就文) 1509~1570.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문지(文之), 호는 구암(久菴),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벼슬은 대사간에 이르렀으며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다. 저서에 《구암집》이 있다. 정경세(鄭經世) 1563~1633.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임(景任), 호는 우복(愚伏),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 《우복집》, 《상례참고(喪禮參考)》, 《주문작해(朱文酌海)》가 있다. 목대흠(睦大欽) 1575~1638.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湯卿, 호는 다산(茶山)ㆍ죽오(竹塢)이다. 160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 참의ㆍ강릉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술로 《다산집》이 있다. 학문에 전념하던 원문의 '장수(藏修)'는 장수유식(藏修遊息)의 준말로 늘 학문에 전념함을 뜻한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군자는 학문에 대해서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업을 닦고, 학교에서 물러나 쉴 때에는 기예를 즐긴다.[君子之於學也, 藏焉修焉息焉游焉.]"라고 하였다. 장(藏)은 늘 학문에 대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요, 수(修)는 방치하지 않고 늘 익히는 것이다. 식(息)은 피곤하여 쉬며 함양하는 것이고, 유(遊)는 한가하게 노닐며 함양하는 것이다. 꾸며낸 죄 원문의 '나직(羅織)'은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있는 것처럼 꾸며 만드는 일을 말한다. 송나라 소식(蘇軾)의 〈재걸군찰자(再乞郡札子)〉에 "그 말을 살펴보건대 모두 나직(羅織)한 것들이니, 없는 것을 있다고 합니다.[考其所言 皆是羅織 以無爲有]"라고 하였다. 선혈을 뿌려 원문의 '역혈(瀝血)'은 상소를 올려 간곡하게 호소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유(韓愈)의 시 〈귀팽성(歸彭城)〉에 "간을 파내어 종이를 만들고, 선혈을 뿌려서 글을 쓰네.[刳肝以爲紙 瀝血以書辭]"라고 하였다. 《五百家注昌黎文集 卷2》 죽은 스승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유배 중에 죽은 정개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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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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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2) 三稿合部序 【二】 말이라는 것은 몸의 문채(文彩)이다.18) 행동은 몸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말이 문채로써 빛난다. 중앙과 지방에서 직무를 수행할 때 진실로 곡식을 주면서 올바르게 기른다면 글에서도 도(道)를 볼 수 있다. 지금 금성 나씨의 소포·금암·금봉 삼형제의 유묵을 합편한 책을 삼가 세 번 반복해서 읽으니 감탄하고 흠모할 만한 점이 있었다. 세 분은 대개 선조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고 태어나 생장하는 동안 금호공(錦湖公)께서 독실히 지키는 떳떳한 도리의 전형(典刑)에 몸담고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기 때문에 배우지 않고도 잘할 수가 있었다.19) 곽망우(郭忘憂)20)의 훌륭한 절조를 마음으로 헤아리니 선조(宣祖)께서 군사에 대해 질문하던 날 추천을 받았고, 곤재 정개청의 정학(正學)을 가슴에 새기니 혹자는 '고명(高明)하여 경외롭다.'라고 칭송하며, 혹자는 '세간의 인물이다.'라고 칭송하였다. 이 때문에 인간의 도리를 행하고 남은 힘으로 한 학문21)은 뜻을 펼침에 뿌리가 무성해지고, 글을 지음에 기름을 부어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22) 어둠 속에서 헤아려보아도 덕스럽고 의로운 마음에서 흘러나와 시인과 문사의 구기(口氣)가 아님을 알 수 있으니 참으로 진실하다.여 시강(呂侍講)23)이 "사람이 살아가면서 안으로는 현명한 아버지나 형이 없고, 밖으로는 엄한 스승이나 벗이 없는데도 이룰 수 있는 자는 드물 것이다."라고 한 말과 《맹자(孟子)》에서 "그 시를 외고 그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한 말이 더욱 의미가 있다. 《예기(禮記)》24)에서 "선조에게 착한 일이 있는데도 모르면 현명하지 못하고, 알고도 후세에 전하지 않으면 어질지 못하다."라고 하였으니, 주옥같은 문장을 가리고 인도한 두 후손이 전전긍긍함이 있다.금암의 증손 상사(上舍) 나두동(羅斗冬)이 과거를 그만두고 서책을 읽으며 오직 선조의 일에 책임을 지고 크고 작은 것 가릴 것 없이 반드시 드러낸 뒤에 이윽고 끝마쳤다. 이에 종이25)로만 남아 있는 말과 이야기가 날마다 사라질까 두려워 어느새 남은 시문과 침식된 간찰을 대추나무에 판각하여 영원토록 하고, 닥나무 종이로 간행하여 귀하게 한 뒤 내종(內從)인 침랑(寢郞) 정중원에게 서문을 지어주기를 요청하였다.정중원 군은 본래 가학(家學)이 풍부하고 외손자의 서열로 시종일관 뜻이 크고 기개가 있으며 간절하고 진실하며 곧고 굳어 삼가 그 말이 행동과 일치하였다. 당화(黨禍, 기축옥사)와 도적들의 난[임진왜란]으로 그 글이 거의 다 망실됨을 개탄하였다. 죽은 스승의 원통함을 변론하고 아울러 뭇사람들의 억울함도 신원하며 기축년의 간사한 자들이 기회를 틈타 모함한 상황을 진술하였다. 더욱 격앙된 세 분 상소의 말은 엄정하고 뜻은 정당하여 세도(世道)와 관계되어 귀신도 질정할 수 있으니, 아! 어찌 다만 이것뿐이겠는가?소포옹께서 선산을 참배한 시와 분발하여 오랑캐를 막자는 계책은 효와 충의 모범이 되어 의리가 신명(神明)을 관통하였고, 금암옹께서 자식을 경계한 글과 금봉옹께서 형님에게 바친 제문은 의방(義方)26)과 형제간의 우애에 대한 도(道)가 인륜의 차례를 다하였으니, 큰 솥에 있는 한 점의 고기나 길광(吉光)의 조각 털27)임은 말할 것도 없다. 곧 〈촉도난(蜀道難)〉 시처럼 귀신을 울렸고28) 강을 건너며 쓴 글처럼 공경대부와 필적할 만하였으니29) 삼가 재주가 있을 따름이었다.우리들의 사업은 문장이나 공명(功名)에 있지 않으니 구구하게 그 사이에서 우열30)을 가릴 필요는 없다. 오직 때가 불행하여 일찍 재앙의 그물에 떨어졌고, 결국 낮은 벼슬에 머물러 매우 드러났던 재주와 학문을 한두 가지도 다 펼치지 못하였으니, 이 글을 보는 자 또한 남은 감회가 있을 것이다. 나는 두 사람[나두동·정중원]에 대하여 벗인데도 경외하는 것은 이런 행동이 좋아서이다. 감히 좋지 못한31) 한마디 말이라도 빌리려고 하니 대략이나마 만생(晩生)32)이 산야에서 생활하고 도를 음미하는 경회(景懷)를 드러낸다.숭정 후 두 번째 계묘(癸卯 1723)년 10월 상순 여흥(驪興) 민창도(閔昌道)33) 言者, 身之文也. 行著於身, 故言炳以文. 揆元都卒, 亶在穀貽而正養, 可以卽辭而觀道. 迺今於錦城羅氏嘯浦錦巖錦峰伯仲叔遺墨合編也, 竊有所三復而歎仰者. 盖其胚胎前光, 生長食息, 不離於錦湖公篤守天經之典刑, 耳濡目梁, 不學而能. 其推衿於郭忘憂之偉節, 被其薦剡於穆陵問帥之日, 鏤膺於鄭困齋之正學, 或稱高明可畏, 或稱間世人物. 是以行餘之學, 根茂於宣志, 膏沃於屬辭. 暗中模索, 知其流出於德肚義腸中, 非詩人文士口氣, 忱哉! 呂侍講所謂人生內無賢父兄, 外無嚴師友, 能有成者鮮矣, 與夫鄒傳所謂誦其詩讀其書, 不知其人可乎之益有味也. 若戴記所謂先祖有善而不知, 不明也, 知而不傳, 不仁也, 則有兢兢乎揀珠導玉之二裔子. 錦巖曾孫上舍斗冬, 廢擧讀書, 唯先事是任無鉅細, 必宣著後已末. 乃懼話言之寄赫蹄者, 日就陻沒, 居然使殘篇囓簡, 壽之棗而貴之楮, 要內從鄭寢郞重元弁其端. 鄭君素富家學, 以自出序列, 始卒以倜儻懇實貞確, 欽其言如其行. 以黨禍寇難, 慨其文之亡失殆盡. 以爲亡師訟寃, 兼伸群枉, 備陳己丑奸人乘機陷害狀. 益激昻, 其鼎峙三疏, 辭嚴意正, 世道所關, 神理可質, 噫噫! 豈但是哉. 浦翁拜先壟詩, 勵志禦戎策, 孝範忠模, 義貫神明, 巖翁誡子文, 峰翁祭兄文, 義方友悌, 道盡倫類, 亡論大鼎一臠吉光片羽. 卽蜀道詩之泣鬼神, 過江文之敵公卿, 祗藝焉耳. 吾人事業, 不在文章功名, 不必區區軒輊其間. 唯時不幸, 早墜禍網, 終沈下僚, 使競爽才學, 皆不克展其一二, 覽斯文者, 其亦有餘感也. 余於二君, 友而畏之, 則悅是擧也. 敢藉手不腆一言, 粗效晩生餐風味道之景懷焉.崇禎後再癸卯十月上浣驪興閔昌道. 말은이라는 …… 문채(文彩)이다. 《사기(史記)》 권39 진세가(晉世家)에 "말은 몸을 꾸미는 것입니다. 장차 몸을 숨기려 하면서 무엇 때문에 꾸미겠습니까. 만약 꾸민다면 이것은 현달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言, 身之文也. 身將隱, 焉用文之? 是求顯也.]"라는 개지추(介之推)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선조의 …… 있었다. 한유(韓愈)의 〈청하군공방공묘갈명(淸河君公房公墓碣銘)〉에 "공은 선조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고 태어나 생장하는 동안 언제나 고전의 세계에 몸담고서 항상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왔기 때문에 굳이 배우지 않고도 잘할 수가 있었다.〔公胚胎前光, 生長食息, 不離典訓之內, 目擩耳染, 不學以能.〕"라고 한 표현을 인용하였다. 곽망우(郭忘憂) 곽재우(郭再祐, 1552~1617)를 말한다.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망우당(忘憂堂)은 그의 호이다. 조식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공을 세웠다. 인간의 …… 학문 원문은 '행유지학(行餘之學)'으로, 《논어》 〈학이〉에 "공자가 말하기를 '자제가 집에 들어가면 효도하고 밖으로 나오면 공경하며, 행동은 삼가며 말은 믿음 있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인자한 사람을 친하게 지내야 하니, 이것을 행하고도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하였다.〔子曰:弟子入則孝,出則弟,謹而信,汎愛衆,而親仁,行有餘力,則以學文.〕"라고 하였다. 뜻을 …… 같았다. 한유(韓愈)의 답이익서(答李翊書)에 "그대가 장차 옛 작가의 경지에 이르려고 한다면,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해서도 안 될 것이요, 권세와 이익의 유혹에 넘어가서도 안 될 것이다. 우선 그 뿌리를 길러서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기름을 부어서 광채가 나기를 기대해야 할 것이니, 뿌리가 무성하게 퍼져야 열매가 여물고 기름을 부어 닦아야 광채가 나는 것이다.〔將蘄至於古之立言者 則無望其速成 無誘於勢利 養其根而竢其實 加其膏而希其光 根之茂者其實遂 膏之沃者其光曄〕"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여 시강(呂侍講) 송나라 때 시강을 지낸 여희철(呂希哲)을 가리킨다. 《예기(禮記)》 원문의 '대기(戴記)'는 《예기(禮記)》의 다른 이름이다. 중국 한나라 때 대성(戴聖)이 편찬한 《예(禮)》 49편의 《소대례(小戴禮)》가 바로 《예기》다. 《소대기(小戴記)》라고도 한다. 종이 원문의 '혁제(赫蹄)'는 혁제(赫蹏)와 같은 말로, 고대에는 글씨를 쓰는 데 썼던 폭이 좁은 비단을 지칭하였는데 후대에 와서는 작고 얇은 종이를 가리킨다. 의방(義方) 원문의 '의방(義方)'를 정도(正道)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올바른 도리를 의미한다. 《춘추좌씨전》 은공(隱公) 3년 조에, 위(衛)나라 장공(莊公)의 아들 주우(州吁)가 오만 방자하게 굴자, 현대부(賢大夫) 석작(石碏)이 장공에게 "아들을 사랑한다면 그에게 올바른 도리로 가도록 가르쳐서 잘못된 곳으로 빠져들지 않게 해야 한다.〔愛子, 敎之以義方, 弗納於邪.〕"라고 나온다. 큰 솥에 …… 조각 털 원문의 '대정일련(大鼎一臠)'은 적은 양의 시문이 남았지만 소량의 시문으로 전체를 알 수 있다는 의미이고, '길광편우(吉光片羽)'은 전설상의 신마(神馬)인 길광의 털 조각처럼 남겨진 시문이 우수하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촉도난(蜀道難)〉의 …… 울렸고 시가 매우 뛰어나 귀신이 보고 탄복하여 울 것이라는 뜻이다. 두보(杜甫)의 〈기이백(寄李白)〉이란 시에서 이백(李白)의 뛰어난 시재(詩才)를 찬탄하여 "붓이 떨어지면 풍우가 놀라고, 시가 이루어지면 귀신이 울었지.[落筆驚風雨 詩成泣鬼神]" 하였다. 강을 …… 만하였으니 백거이의 〈곡황보칠낭중식(哭皇甫七郞中湜)〉 "강을 건너며 쓴 글월 한수는 곧 공경대부의 글에 필적할만하네.〔涉江文一首, 便可敵公卿.〕"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우열 원문의 '헌지(軒輊)'는 고저(高低)ㆍ경중(輕重)ㆍ우열(優劣)을 의미한다. 수레가 앞이 높고 뒤가 낮은 것을 헌(軒)이라 하고, 수레가 앞이 낮고 뒤가 높은 것을 지(輊)라고 한다. 좋지 못한 원문의 '부전(不腆)'은 좋지 않다는 뜻으로, 자기의 글재주에 대한 겸사이다. 만생(晩生) 후배가 선배에 대한 자신의 겸사(謙辭)로 쓰는 말이다. 민창도(閔昌道) 1654~1725. 자는 사회(士會), 호는 화은(化隱)이다. 1678년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고 이듬해 문과 중시(重試)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1693년(숙종19)에 대사성(大司成)에까지 올랐다가 1722년(경종2)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장수(長壽)에 유배되었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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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정자57)와 이별하며 別兪正字 부모를 떠나 대궐58)로 가는 그대 離親赴雙闕천리 밤길 조심하게 千里戒宵征어찌 공명을 귀중히 여길까 豈爲功名重벼슬길의 영광일랑 마음 두지 말게 非關宦路榮임금 부모 스승 똑같이 섬겨 於三事如一마땅히 의리와 정성 다해야지 所在義當誠쇠약하고 병들어 임천에 있으니 衰病林泉處갈림길에서 정을 감당치 못하겠네 臨岐不勝情 離親赴雙闕, 千里戒宵征.豈爲功名重, 非關宦路榮.於三事如一, 所在義當誠.衰病林泉處, 臨岐不勝情. 정자 조선 시대 홍문관(弘文館)ㆍ승문원(承文院)ㆍ교서관(校書館)에 두었던 정9품직으로 전적(典籍)이나 문장의 교정을 맡아보았다. 정원은 각 관청에 2명씩으로, 모두 문관(文官)이었다. 대궐 원문의 '쌍궐(雙闕)'은 궁전 앞 양쪽에 높이 세운 누관(樓觀)으로, 도성의 대궐을 뜻한다. 포조(鮑照)의 악부시(樂府詩)에 "잔잔한 물처럼 잘 닦인 장안 거리, 높은 궁궐이 구름 속에 떠 있는 듯.[九衢平若水, 雙闕似雲浮.]"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文選 卷28 結客少年場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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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승지의 부인에 대한 만시 尹承旨夫人輓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라 일컬으니날 낳느라 고생하시고 나를 자애롭게 길러주셔서지효녀가 함께 구천으로 돌아가 사모하니말로 다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시로 쓸 수 있으랴 乾稱爲父坤稱母生我之勞育我慈孝女同歸泉下慕不能言盡況能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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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첩 응제 春帖應製 궁전에 구름 걷히자 어좌에 앉으시니햇빛이 이제 막 만년지363)에 비치는구나임금의 은혜 본래 만물을 소생시키니끊임없이 낳고 낳는 조화옹의 묘한 공 뿐만이 아니네 金殿雲開寶座移日光初暎萬年枝王恩自是蘇羣物不獨生生造化奇 만년지 동청수(冬靑樹) 즉 사철나무다. 흔히 제왕의 만수무강이나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의미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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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와 함께 밤에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 同仲瑞夜飮子新宅 창 너머 솔바람 밤 추위를 일으키는데촛불 앞 금 술잔 흥은 가라앉지 않네이불 덮고 나란히 잠드는 것 마다하지 않으니산 밖에 돌아가는 길 눈 온 뒤라 가기 어렵겠네 隔窓松籟夜生寒銀燭金樽興未闌不辭携被連床宿山外歸程雪後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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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가 차운한 시를 부기하다 附仲瑞次韻 산중에 첫눈 내려 가벼운 한기가 도니등잔 밑에서 거문고 타고 술 마시니 밤 깊어가네편안한 침상에 향기 어려 평소 바람에 부합하니내일 이별하기 어려울까 도리어 시름겹네 山中新雪動輕寒燈下琴尊夜向闌燕寢凝香符素願却愁明日別離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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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의 〈천수절〉 시39)에 차운하다 次李牧隱穡天壽節韻 빼곡한 오색 깃발 찬 새벽에 나부끼고화려한 열두 굽이 난간이라금화전40)에 기라성 같은 시종신들 늘어서 있는데임금께서 따스한 은혜 내려주시니 함께 기뻐하네은덕 듬뿍 받음에 단지 임금님 장수를 축원할 줄만 아니몸을 그르친 것 유관 때문이라 말하지 말라41)조회에서 돌아오는 도성길 수양버들 늘어져 있고귓가 가득 여전히 방울 소리 들리네 簇簇霓旌拂曉寒花明十二曲闌干金華星燦羅羣從玉色春溫賜共歡飽德但知祈聖算誤身休道坐儒冠朝回紫陌垂楊路盈耳猶聞噦噦鸞 이목은……시 목은(牧隱)은 이색(李穡, 1328~1396)의 호로, 이색은 본관이 한산(韓山), 자는 영숙(穎叔)이다. 〈천수절〉 시는 《목은시고》 권2 〈천수절일에 신 색이 본국에서 표문(表文)을 올리러 온 배신과 함께 대명전에 들어가 알현하다[天壽節日, 臣穡從本國進表陪臣, 入覲大明殿]〉시로, 《동문선》 권16에는 〈천수절에 대명전에 들어가 알현하다[天壽節, 入覲大明殿]〉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대명전은 원나라 궁전 이름이다. 금화전(金華殿) 한나라 때 미앙궁(未央宮) 안에 있던 궁전으로, 성제(成帝)가 일찍이 이곳에서 《상서(尙書)》와 《논어(論語)》 등의 강론을 들었다. 후대에는 이로 인하여 경연(經筵)이나 서연(書筵)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몸을……말라 유자(儒者)로 살아가는 것을 탄식하지 말라는 뜻이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증위좌승[贈韋左丞]〉 시에 "귀족들은 굶어 죽지 않지만, 유관은 몸을 그르친 이 많네.[紈袴不餓死, 儒冠多誤身.]"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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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재의 원운을 부기하다 3수 附德哉韻【三首】 강관에 누운 두자미와 같은 신세이니226)촉산에 계신 임금님 몹시도 그립구나다행히도 원융 덕에 작은 공적이나마 바치니227)임금 위해 목숨 바치는 것 내 어찌 어끼랴상서로운 소식 있나 서관에 물으니미약한 힘으로 중임 맡지 못한다 한탄하지 말라공이 크면 헛된 비방 나돌까 염려되니도리어 공을 위한 은전 아낄까 근심하노라그 당시 죽음 바치며 용감히 변경에 들어가도리어 외로운 검으로 천산에 기댔네영토 회복의 큰 책무 훌륭한 이에게 돌아갔으니영웅에게 내리는 황제 은혜 끝내 아끼지 않았네 身如子美臥江關戀極金輿在蜀山幸賴元戎輸寸效爲君殞命我何慳紫雲消息問西關休恨蚊虻不負山功大小心成市虎却憂恩典爲公慳死綏當時勇入關却將孤釰倚天山重恢丕責歸長手帝錫賢豪竟不慳 강관에……신세이니 이성길이 조정을 떠나온 자신의 처지를 두보(杜甫)에 비긴 것이다. 자미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자이고, 강관(江關)은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 일대에 있는 옛 관문 이름이다. 두보는 48세에 관직을 버리고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 초당을 짓고 지냈다. 원융……바치니 원융은 함경북도 병마평사(咸鏡北道兵馬評事)로서 의병을 일으킨 정문부를 가리킨다. 정문부가 종성 부사(鍾城府使), 경원 부사(慶源府使) 등과 힘을 모아 국세필 등을 참수하고 경성을 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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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묘에서 감회가 일어 夷齊廟有感 한 번 간언할 적에 군신의 분의(分義) 이미 엄격했고265)둘 다 달아났으니 형제의 덕 얼마나 겸손한가266)지금도 고죽의 맑은 풍모 남아 있어요동 변경을 청렴으로 진무하게 하였네 一諫君臣分已嚴兩逃兄弟德何謙至今孤竹淸風在可使遼東鎭撫廉 한……엄격했고 은나라 고죽군(孤竹君)의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하러 갈 때 무왕의 말고삐를 끌어당기며 신하로서 임금을 치는 부당함을 간언하였다. 《史記 伯夷列傳》 둘……겸손하가 고죽군이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숙제는 형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백이가 "부친의 명이다." 하고 달아나니, 숙제도 즉위하려 하지 않고 나라를 양보하고 달아났다. 《史記 伯夷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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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전267)으로 가는 길에 玉田途中 멀리 보이는 숲 아득히 산해관에 닿고변방 기러기 소리 저녁 구름 사이에 있네남쪽으로 날아가는 날개 빌릴 수 있다면천 리 떨어진 고향에 하루만에 돌아가리 遠樹微茫接海關塞鴻聲在暮雲間若爲借得南飛翼千里鄕山一日還 옥전 우리나라 사신이 연경에 갈 때 경유하던 역(驛) 가운데 하나로 풍윤현(豐潤縣)과 계주(薊州) 사이에 있다. 《대명통일지(大明一統志)》 권1에 "북평성(北平城) 서북 130리, 계주 동쪽 80리에 무종성(無終城)이 있는데, 옛날 연(燕)나라 땅으로 옥전현(玉田縣)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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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량에 대한 애사 2수 李世良哀詞【二首】 훈업에 자신이 직접 보는 것에 관계치 않으니가업을 전수받는 건 훌륭한 자손들이라다만 안타까운 건 사씨네 자제들297) 중어린 나이에 첫째가 제일 먼저 꺾였구나부인이 남편 따라 죽음을 가볍게 여겼으니하늘이 무너져 여생을 의탁할 곳 없어서지알겠도다, 두 명정이 동시에 발인하는 것은천명도 있으나 또한 오랜 맹세이기도 함을 勳業非關身見之傳家麒子與麟兒只憐謝氏庭前樹早歲先摧第一枝爲婦從夫輕一死終天無地托餘生則知雙旐同時發有命雖存亦舊盟 사씨(謝氏)네 자제들 진(晉)나라의 명사인 사안(謝安)이 여러 자제들에게 "왜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자제가 출중하기를 바라는가?" 하고 묻자, 조카 사현(謝玄)이 "이것은 마치 지란(芝蘭)과 옥수(玉樹)가 자기 집 정원에서 자라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하였다. 《晉書 卷79 謝玄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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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유고 嘯浦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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