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先塋) 아래 마을에 묵으며 느낀 바 있어【신묘년(1651, 28세) 정월 개장(改葬)하는 일로 김애반(金崖盤)이 사는 계곡에 머물렀다.】 宿先塋下村有感【辛卯正月。以改窆事。留金崖盤之谷。】 옛 무덤의 소나무와 가래나무60) 삼백 년 되었으니저물녘 구름과 시든 풀 찬 안개에 잠겼네구릉과 산은 응당 선인(先人)의 얼굴 기억할 것이니눈 닿는 곳마다 마음 처연하기 그지없네두 번째마을 사람이 김 거사(金居士)를 맞이하여 부르니고로(故老)는 아직도 박 정승(朴政丞)61)을 알고 있네그늘진 벼랑에 해 저물어 산 아래서 묵으니묵은 구름은 응당 내 심정을 알 것이네【박사암(朴思庵) 상공(相公)은 선생의 5대조 상사공(上舍公)의 생질이다.62) 일찍이 이곳에서 참배한 적이 있어 고로 가운데 아직도 아는 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말한 것이다.】세 번째고향의 묵은 풀 삼천 일이나 되었건만자식의 애통한 마음은 하루 온 종일 가득하네아득하고 넓은 천지와 같은 무한한 그리움금계(金溪)의 물과 달 또한 응당 알 것이네 舊壠松楸三百年暮雲衰草鎖寒烟邱山應記先人面觸目無非意愴然其二村人迎謂金居士故老猶知朴政丞日暮陰崖山下宿宿雲應識我心情【朴相公思庵。乃先生五代祖上舍公之宅相也。嘗參謁於此。故老猶有及見之者故言。】其三故山宿草三千日人子哀情十二時天遠地長無限思金溪水月也應知 소나무와 가래나무 예로부터 선산(先山)에 이러한 나무를 많이 심었으므로, 곧 선영(先塋)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박 정승(朴政丞) 원문은 '박 정승(朴政承)'인데, 문맥을 살펴 '승(承)'을 '승(丞)'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박 정승'은 곧 박순(朴淳, 1523~1589)을 가리킨다.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菴)이다. 1553년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응교, 이조 참의, 대사헌, 예조 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뛰어나고 당시(唐詩)에 능하였다. 박사암(朴思庵)……생질이다 김만영의 5대조는 성균관 생원 김효정(金孝禎)인데, 실제 기록을 보면 박순은 김효정이 아닌 4대조 김후(金候)의 생질로 되어 있다. 주석을 단 사람의 착오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