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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四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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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崔雲齋【永祚】遊 江天秋欲暮。正値別離時。幾切平生慕。幸同數日追。豈贈驛梅信。更題甘菊詩。春秋今夜讀。此會一何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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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朴生源默 非誠皆妄僞。孤根亦難任。坑塹當衽席。淵氷卽几衾。兢兢能若此。何難秀穹林。所懷只在此。送去蒼葭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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宿大原寺 行路再尋天鳳山。猶存古寺白雲閒。十年前日同三友。一榻今宵對兩顔。曇樹雨過花欲老。層巒霧罷王如刪。招提信宿仙緣否。堪笑世情夢裏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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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枕漱亭韻 移營爽塏更離塵。亭與賢孫共百春。泉石中間高尙志。江湖遠處卧閒身。琴書世世家聲在。臺榭嵬嵬古貌新。枕漱生平無限意。羹墻於此舊名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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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姪舜煥 竊嘗聞。羅山宗氏。家世儒業。不墜先德。向風欽慕。爲日久矣。早擬一者躬造。以獲其觀感之萬一。而迄今未能者。寧不爲恨乎。不謂去冬尊駕辱臨。見其白首風儀。磊落不群。昔日之仰止羅山。復高一層矣。獻發未幾日。子舍又且賁枉。兼致翰命。仍審靜養德候。履元崇康。實愜遠祝。國禎年進業退。無足仰聞。令允穩藉愷悌。樹立家計。豈可憂哉。慰賀慰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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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丈乃善【佑鍾】 每因新兄。得聞吾丈老成敦厚之德。所以平日私心。常切瞻慕。而但窮居落落。百故鞅掌。尋常日用。頓無開睫暇隙。是以。未嘗一日。拜及於門屛之下。情私愧懼。謂當何如。伏惟陽月。靜養百福。國禎一向憒憒。無路自拔。只切使我如此。不如無生之歎也。然區區一念。不欲遽棄而從今依賴之方。惟望吾丈之不遐。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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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尹亨三【滋鉉】 月前季仁委訪。聞遠駕返次。別無困憊云。仰認君子素養之力。固應如是也。慰仰不任。賤劣。近來不量才性之無似。妄竊有意於此事。然足跡未嘗一及於域內長德之門。又未能種種相從於鄕里賢士友之間。一向離索。所識所趣。孤陋而已。未知其終何所止泊也。聞劬書力經。接續亹亹。不知老之將至。欽服曷己。惟大家盛度。顧憐此倀倀一友生。警策而扶竪之。乃所深望也。更祝德候保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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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에서 객관 벽에 걸린 시에 차운하다 2수 吉州 次客館壁上韻【二首】 용사의 해128)라 나랏일 비통했으니남쪽에서 온 병화가 곤륜산을 녹였네129)못과 누대 황폐해져 묵은 자취 되어버렸고비단 쇠잔해졌으니 옛 향기 추억하네난세에 장차 도연명처럼 취하려 하고130)막다른 길에서 완생의 창광함을 배우고자 하노라131)곁에 있는 사람들 우리 유자 썩었다 비웃지 말라그래도 몇 자 되는 추련을 차고 있다오132)하늘 끝에 떠도는 이 슬퍼할 만하거늘하물며 좋은 날 민둥산에 오름133)에 있어서랴형제를 어디서 만날지 알 수 없고고향의 수유 향기 멀리서 그리워라우연히 돌아가는 꿈 꾸어 근심 이내 그쳤는데이제 막 편지 받아 보니 미칠 듯이 반갑구나변방 기러기 다 보냈으나 사람은 가지 못하니뜰 안 나무의 긴 잎새 소리 어이 견딜거나 歲在龍蛇事可傷南來兵火爍崑岡池臺蕪沒成陳迹羅綺銷沈憶舊香亂世且爲陶令醉窮途欲學阮生狂傍人莫笑吾儒腐猶帶秋蓮尺許長天涯遊子足悲傷況乃佳辰陟岵岡不識弟兄何處會遙憐茱菊故園香偶成歸夢愁仍罷纔得來書喜欲狂送盡邊鴻人未去可堪庭樹葉聲長 용사의 해 해의 지지(地支)가 용인 진(辰)과 뱀인 사(巳)가 든 해로, 용사년에는 흉사(凶事)가 일어난다고 여겨졌다. 《後漢書 鄭玄列傳》 여기서는 왜란(倭亂)이 일어난 임진년(壬辰年)과 계사년(癸巳年)을 가리킨다. 곤륜산을 녹였네 참혹한 병화(兵火)를 비유하는 말이다. 《서경》 〈윤정(胤征)〉에 "곤륜산에 화염이 치솟아 옥석이 모두 탄다.[火炎崑岡, 玉石俱焚.]"라고 하였다. 난세에……하고 도령(陶令)은 진(晉)나라 도연명을 가리킨다. 진나라가 쇠망의 길로 들어서자, 도연명은 팽택 영(彭澤令)의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세속과 인연을 끊은 채 시주(詩酒)를 즐기면서 지냈다. 《晉書 陶潛列傳》 막다른……하노라 완생(阮生)은 진(晉)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을 가리킨다. 완적은 천성이 방달불기(放達不羈)하여, 마음속에 답답한 일이 있으면 수시로 혼자 수레를 타고 나갔다가 막다른 길을 만나면 매양 통곡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晉書 阮籍列傳》 몇……있다오 추련(秋蓮)은 칼집에 연꽃이 아로새겨진 보검으로, 추련을 차고 있다는 것은 전쟁을 앞둔 군사의 기개를 비유한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호무인(胡無人)〉 tl에 "유성처럼 빠른 화살 허리춤에 꽂고, 번쩍이는 보검을 상자에서 꺼내도다.[流星白羽腰間揷, 劍花秋蓮光出匣.]"라고 하였다. 민둥산에 오름 어버이를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시경》 〈위풍(魏風) 척호(陟岵)〉에 "저 민둥산에 올라가서, 아버님 계신 곳을 바라보네.[陟彼岵兮, 瞻望父兮.]"라고 하였다. 이는 효자가 부역을 나가서 어버이를 잊지 못하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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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日新 拜蒙不較辱存。至今擎讀。不能釋手。但此失便。浹朔逋謝。不覺漐背。謹詢履玆。經體葆重。德學幷臻。日與僉彦講磨益篤。其所養之厚。所造之深。從此可想。而甚恨不得致身於座下。獲承緖餘也。弟篤老省側。供奉失宜。情私煼灼。難以枚仰。每從間界。披閱古人書籍。粗求爲己之方。而但恨無故。被胡孫擾亂爲大耳。三藏覷見。可愧可愧。每回眄宇內。洋瀾橫決。人情滔滔。此何世界。但吾儕自靖之道。決不如閉門讀書。庶幾獨善其身。以俟天下之淸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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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日新 月前遭制。悼怛何居。竊念德門。積累餘蔭。謂無此喪威矣。天亦難諶。而遽罹此酷禍耶。張王書唁徒疚老懷。不如姑且縮之。仰詢服體葆重。賢抱竗年踽凉。重省供職。何以爲慮耶。服弟家運不淑。遭姪婦夭逝。慘不可言。而穉哀情景。尤極難喩。時象近果何如。昔吾夫子不殤汪踦。則雖蓬蓽韋布。亦不可無一言。想吾兄已有預算矣。以此激勵士氣。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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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奇松沙【宇萬】 臣民無祿。國哀普慟。每念三山不在天上。行可到矣。而但足迹罕出於庭除之外。未免守堂蹩躄。頃於一二度承誨。皆緣膠擾匆遽。輸素不得。是所悢悢。而昨春畧修候問矣。竟未免中塗浮沈。摠由好賢樂義之淺淺。而致此多魔也。伏惟新元棣體上。味道康福。山靜林邃。優焉息焉。安身立命。永矢不諼。令人欽仰。只切馳往。達煥年將衰邁。一無所見聞。但見惡於人而已。然區區秉彛。雖陷溺滔滔之中。有終不能殄鑠也。炳燭之思。耿耿不已。而志之不篤。見之未精。倀倀然坐漆夜久矣。想尊兄聞之。必有惻悶拯救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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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林熙瑞【顯周】 自夫燕犴分張。形影相隔。矧其樑摧之痛。去愈飮泣。此那同情。年前令胤之歷訪也。槩探候節。而未聞侍湯之報居未幾旬。訃車遽至竊想尊哀以根天誠孝痛悼過常。然而傷孝之戒。自古云然。矧又不毁之年乎。望須節哀順禮如何。自念躄者。事雖不能匍匐。而至若替慰。當不後於人。而只緣孫兒積年沈病。今三月初六日。竟至化去。只恨家運之蹇滯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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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林熙瑞 蒼梧暮雲。片片淚視。千古痛寃。何日可雪。春秋之義。弑逆之賊。人人得以誅之。惟我朝鮮人民。凡有血脈之屬。決不可一日晏然貼席。視若尋常。須博謀廣議。亟行聲討。使彼八賊。不保其頭腦。不翅其昭然義理。而顧此三千里江山。寂無一人應擧。可勝歎哉。尊旣出入師門。蓋有年而聞道熟矣。今此大義攸係。亦何漠無一言於同門之及耶。深諒示之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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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斗三【昌錫】 獲拜珍札。慰瀉罔喩。謹審禮節康謐。允玉勤課。仰想衰頹世界。保有一家泰平。如非成性存存者。其能之乎。達貞疾所苦。百敗類集。去死只爭毫髮而已。當玆褻天侮聖之日。無復可爲。而惟尊座。特垂慕賢盛念。陽復兆朕。從此可占耶。爲之欽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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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奎鎭 杜門㱡㱡。祗合朝暮候盡。而迺者華函。寵以德言。珍玩以還扶策。得一線生氣。感何可量。拜審經候莊重。病生除賤祟外。率憂稠疊。甚苦甚悶。俯惠崇慕契錢。依付有司。而尤感其羹墻之慕。逈出人右。衰世此設。恐或有艱難之弊。然尙賢崇師。實係不死之人心。自此趨向日廣。則庶幾有實效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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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曺道三【運承】 明日。卽三月三日也。三所壇享。旣是本里士友所擔負。則尤不可不謹。君須與振嚮甫。偕往展禮畢。又周視域內形便以還爲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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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李公)【단상(端相)165)】의 시에 차운하여 명(明)나라 사람 임인(林寅)166) 등에게 주다 次李公【端相】韻。贈大明人林寅等。 한(漢)나라의 의관 쓴 이 어느 곳에서 왔는가변방의 구름과 연(燕)나라의 풀 길을 누가 열었는가목릉(穆陵)167)에 전날 밤 뜬 3경(更)의 달석로(石老)168)의 곧은 혼 눈물 삼키면서 맴도네 大漢衣冠何處來塞雲燕草路誰開穆陵前夜三更月石老貞魂飮泣迴 단상(端相) 이단상(李端相, 1628~1669)을 가리킨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능(幼能), 호는 정관재(靜觀齋)다. 1648년 과거에 급제하여 교리, 병조 정랑, 인천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64년 집의가 되어 입지권학(立志勸學)에 관한 다섯 조목을 상소하고 스스로 관직을 떠났다. 그의 문하에서 아들인 이희조(李喜朝)와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임영(林泳) 등의 학자가 배출되었다. 임인(林寅) 임인관(林寅觀)으로 추정된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열서도(烈嶼島) 출신인 임인관, 진득 등 95명이 일본에 무역하러 갔다가 제주도 대정현(大靜縣)에 표류해 왔는데, "명(明)나라가 망한 갑신년(1764, 영조40) 이후로 바다에 나온 지 10년이 지났다. 이제 연해(沿海)가 평온하다 하므로 부모처자를 찾아 돌아가고자 한다." 하였다. 그런데 조정에서 이들을 압송해 청(淸)나라 예부(禮部)로 보냄으로써 이들을 모두 처참하게 죽게 만들었다. 《顯宗實錄 8年 6月 21日, 10月 3日》 목릉(穆陵) 선조(宣祖)와 그 비인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朴氏), 그리고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金氏)의 능이다. 석로(石老)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을 가리키는 듯하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예조 판서로서 주화론(主和論)을 배척하고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펴다가 인조(仁祖)가 항복하자 안동으로 은퇴하였다. 1639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요구한 출병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 압송되어 6년 후 풀려 귀국하였다. 1645년 특별히 좌의정에 제수되고,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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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사군【종지169)】이 천관산(天冠山)170)을 노닐고서 엮은 시록(詩錄) 뒤에 제하다 題尹使君【宗之】遊天冠山詩錄後 하늘 너머의 대붕(大鵬)171)과 여섯 자라의 머리172)당시 진 시황(秦始皇)은 배를 띄우지 못하였네173)누가 알았으리오 남창(南昌)의 신선처럼 늙은 사군174)죽여(竹輿)에 서둘러 올라 영주(瀛洲)175)에 이를 줄을 大鵬天外六鰲頭當日秦皇未泛舟誰識南昌仙老伯竹輿催駕到瀛洲 종지 당시 남평 현감(南平縣監)으로 있던 윤종지(尹宗之, 1597~?)를 가리킨다.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임종(林宗), 호는 백봉(白篷), 자호(自號)는 송월정(松月亭)·소수주인(小睡主人)이다. 161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大科)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호란 때 난리를 만나 영남으로 피신, 유리(流離)생활을 하다가 효종 즉위년에 다시 음직(蔭職)에 발탁되어 남평 현감, 곡산 군수(谷山郡守), 대구 부사(大邱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천관산(天冠山)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꼭대기의 바위 모습이 천자의 면류관(冕旒冠)과 같다 하여 천관산이라 불린다. 하늘 너머의 대붕(大鵬)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붕새를 말한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은 곤이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인지 모른다. 변화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은 붕이다. 붕의 등짝은 몇 천 리인지 모른다. 기운차게 떨쳐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쪽 끝의 검푸른 바다로 날아가려고 한다. 남쪽 바다란 하늘의 못, 천지다.[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여섯 자라의 머리 '여섯 자라'는 바닷속에서 삼신산(三神山)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전설상의 동물이다. 거인국인 용백국(龍伯國)의 어떤 사람이 한 번의 낚시로 이 자라 여섯 마리를 한꺼번에 낚았다고 한다. 《列子 湯問》 당시……못하였네 진 시황(秦始皇)이 바다를 건너서 해 돋는 곳을 보고자 하여 석교(石橋)를 놓으려 하였는데, 해신(海神)이 나타나서 다리 기둥을 세워 주었다. 진 시황이 이를 고맙게 여겨 만나 보려고 하니, 해신이 말하기를 "내 모습이 추하니, 내 모습을 그리지 않기로 약속한다면 만나겠다."라 하였다. 이에 진 시황이 들어가 해신과 만났는데, 진 시황의 좌우 사람들이 몰래 해신의 발을 그렸다. 그러자 해신이 성을 내면서 빨리 나가라고 하였다. 진 시황이 말을 타고 곧장 나왔는데, 말 뒷다리가 석교에서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석교가 무너졌다는 고사가 있다. 《藝文類聚 卷79》 남창(南昌)의……사군 윤종지(尹宗之)를 가리킨다. 한(漢)나라 때 매복(梅福)이 일찍이 남창위(南昌尉)로 있다가 왕망(王莽)이 정권을 잡자 벼슬을 버리고 구강(九江)에 가서 신선의 도를 얻었다고 한다. 《漢書 卷67 梅福傳》 영주(瀛洲)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데, 여기서는 천관산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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