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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선생집 신간 발문 南圃先生集新刊跋[韓用幹] 옛날에 사마천(司馬遷)20)이 〈백이전(伯夷傳)〉을 지어서 허유(許由)의 광의(光義)가 매우 높다고 하는데, 문사(文辭)에서는 그 대강도 볼 수가 없다21)고 탄식하고는 말하기를 "암혈(巖穴)에 사는 선비는 진퇴(進退)에 알맞은 때가 있는지라, 이 같은 부류는 이름이 매몰되어 일컬어지지 않은 경우이니, 슬프도다."라고 하였고, 한창려(韓昌黎)22)는 〈송서무당남귀서(送徐無黨南歸序)〉에서 또한 학자들이 옛 성현을 사모하여 자신의 한 일생을 부지런히 문자 사이에 마음을 다하며 보내다가 끝내 사라지고 마는 것이 슬퍼할 만하다고 탄식하였으니,23) 나는 이 말은 모두 고인(高人)과 지사(志士)가 생을 마칠 때까지 이름이 일컬어지지 못한 데에 감개가 일어 한 말이라 생각되는데, 나 또한 일찍이 이것을 크게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다.내가 근래에 면성(綿城)24)의 인끈을 차고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승선(承宣) 김치문(金稚問)25)이 내게 편지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故) 세마(洗馬) 남포(南圃) 김 선생(金先生)은 현종(顯宗)ㆍ숙종(肅宗)의 시대를 당하여, 약천상공(藥泉相公)26)이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되었을 때에27) 별단(別單)으로 선생을 포창하며 추천한 일이 있습니다. 그 뒤에 상이 약천상공에게 인재(人才)에 대해 묻자, 공이 일전에 추천하였던 김 아무개가 아직도 등용되지 못하였다고 대답을 하니, 곧바로 선생을 교관(敎官)에 제수하였습니다. 《명재집(明齋集)》28)에도 자주 칭찬하고 있는데, 본집 가운데 〈남유기문(南遊記聞)〉과 〈송임사가서(送林士駕序)〉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남포 선생의 구세손(九世孫) 김양국(金亮國)29)을 보내며 부탁하노니, 이 사람은 옥처럼 매우 아름다운 인물입니다. 거의 남쪽으로 와서는 거의 보지 못한 인물이니, 정답게 대해 주십시오."내가 마침내 김아(金雅)를 읍하고서 맞이하고는 간단한 안부 인사를 하고 나자,30) 김아가 남포 선생의 유집(遺集) 두 국(局)을 손수 떠받들고서 나에게 서발(序跋)을 부탁하는지라, 내가 무릎을 꿇고서 그것을 받아 손을 씻고 공경히 완미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거듭해 읽어보았다.그 시는 온아(溫雅)하고 간담(?淡)하여 염락(濂洛)31)의 풍아의 의취가 있고, 그 글은 전중(典重)하고 화섬(華贍)하여 구소(敺蘇)32)의 거려(巨麗)한 풍취가 있었다. 그 경술(經術)은 고정(考亭)33)에 뿌리를 두었는데 이따금씩 이전에 발명되지 않은 것을 많이 발명하였고, 그 경륜(經綸)은 한 통의 〈만언소(萬言疏)〉에 보이니, 가생(賈生)의 〈치안책(治安策)〉34)과 매우 유사하였는데, 군심(君心)의 바름과 시폐(時弊)의 구제에 대해 온 마음을 쏟았으니 완곡하면서도 측달(惻怛)한 뜻이 말 밖에 넘쳐났다. 〈경세통전(經世通典)〉은 또한 《주례(周禮)》의 육전(六典)과 비슷하였는데, 조리가 정연하고 핵심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남교일기(南郊日記)〉는 마음을 보존하여 본성을 기르며 몸을 닦고 행실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 관한 자경편(自警編)이 아님이 없었는데, 그 붕당의 편파성에 대해 논하면서 "글은 한기(韓琦)ㆍ범중엄(范仲淹)과 같고 학문은 정자ㆍ주자와 같더라도 만일 혹 지금의 편당에 얽매인다면 그 사람은 볼 만한 것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그가 세상에 뛰어나 우뚝이 선 군자임을 알 수 있다.그런데도 일사로서 산림에 숨어35) 은거하여 의를 행하면서36) 비록 예를 갖추어 초빙하여도 지절(志節)을 숭상하여 일어나지 않았으니, 어찌 다만 한 고을의 선사(善士)37)일 뿐이겠는가.후세의 사표(師表)가 될 만하건마는 자취를 먼 구석 땅에 숨기고 이름을 누추한 시골 골목에 감추어서 크게 드러나지 못하였으니, 개탄할 만하다.선생이 일찍이 《포은집(圃隱集)》을 보고서 스스로 그 바닷가 모퉁이 구석진 고을에 태어나 백 년 뒤에 초목과 함께 사라질 것을 탄식하고, 포은이 불후지명(不朽之名)을 세운 것에 감동하였다. 나는 이에 선생이 가장 슬퍼한 것은 이름을 전하지 못하는 데에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자장(子長)과 퇴지(退之)의 말을 서술하여 대략이나마 선생의 지행(志行)과 문자(文字)의 대강을 쓰고서 김아에게 돌려주고, 또 한 마디 말을 다시 김아에게 전하기를 "샘물에 근원이 있으면 반드시 도달하고 옥에 온기가 있으면 반드시 빛나는 법이니, 선생의 이름은 이 문집이 간행되기만 하면 반드시 드러날 것이다. 그대는 어찌 판각할 것을 도모하여 선생의 이름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가. 그대는 힘쓸지어다."라고 하였다.신묘년(1831, 순조31) 단월(端月 음력1월) 하한(下澣)에 면성 읍재(邑宰) 한용간(韓用幹)38)은 삼가 발문을 쓴다. 昔司馬遷作伯夷傳。歎由光義至高。文辭不可摡見。曰巖穴之士。趍捨有時。若此類名湮沒而不稱悲夫。韓昌黎送徐無黨南歸序。亦嘆學者慕古聖贒。勤一世而盡心文字之間。終歸於泯滅爲可悲。余以爲斯言皆因激感於高人志士之沒世名不稱而發也。未嘗不喟然歎也。余間佩綿城紱。赴任未幾。金承宣稚問馳書於余曰。故洗馬南圃金先生。當顯肅之間。藥泉相公繡衣時。別單褒薦。其後自上問人才於藥泉相。對以前薦金某尙未用。卽除敎官。明齋集亦亟稱詡。本集中南遊記聞及送林士駕序可按也。仍送南圃先生五世孫亮國甫曰。此雅亦絶佳如玉。殆南來所未見之人。要其款接。余遂揖迎金雅。敍寒暄畢。金雅手擎南圃先生遺集二局屬余以序跋。余跪而受。盥手敬玩。繙閱其首末。其詩溫雅?淡。有濂洛風雅之意。其文典重華贍。有敺蘇巨麗之風。其經術本之考亭而間多發前未發。其經綸觀乎萬言一疏。殆類賈生之治安策。惓惓於君心之正時弊之捄。婉曲惻怛之意。溢於辭表。至於經世通典。亦類周禮之六典。井井有條。鑿鑿中窾。其南郊日記。無非存心養性修身潔行之自警編。而其論朋黨之偏曰文如韓,范。學如程,朱。若或拘繫於今之偏黨。其人不足觀。於此可知其爲高世卓立之君子也。然而逸士山潛。隱居行義。雖有旌招而尙志不起。奚但爲一鄕之善士。可以爲後世之師表。而遯跡遐陬。藏名陋巷。未克顯揚。可慨也已。先生曾覽圃隱集。自歎其生於海隅偏鄕。百年之後同歸於草木之泯滅。而感圃隱立不朽之名。余於是知先生之悲者。最在於不能傳名。故爲敍子長,退之之言而略書先生志行文字之槩。以歸于金雅。且以一語復于金雅曰。泉有本則必達。玉有蘊則必輝。先生之名。待斯集之刊行。知其必彰。子盍謀其剞劂。以彰先生之名。子其勉諸。辛卯端月下澣。綿城宰韓用幹謹跋。 사마천(司馬遷) 사마천은 한 무제(漢武帝) 때의 사가(史家)로, 자는 자장(子張)이다. 전한(前漢)의 태사령(太史令)이었기에 흔히 태사공(太史公)이라고 한다. 《사기(史記)》를 지었다. 허유(許由)의……없다 《사기(史記)》 권21 〈백이열전(伯夷列傳)>에는 "내가 들은 바로는 허유는 광의가 매우 높다고 하는데, 문사에서는 그 대강을 조금도 볼 수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余以所聞由光義至高, 其文辭不少槪見, 何哉.]"라고 되어 있다. 한창려(韓昌黎) 한유(韓愈)로, 당나라의 문인이자 사상가이다. 자는 퇴지(退之)이며, 선조가 창려(昌黎) 출신이므로 이렇게 부른 것이다. 〈송서무당남귀서(送徐無黨南歸序)〉……탄식하였으니 〈송서무당남귀서〉는 사실 한유가 아닌 구양수(歐陽修)의 글로 확인된다. 그 글에 "지금 배우는 자들은 옛 성현의 불후를 사모하여 한 세상을 부지런히 힘써서 문자 사이에 마음을 다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이는 모두 슬퍼할 만하다.[今之學者, 莫不慕古聖賢之不朽而勤一世, 以盡心於文字間者, 皆可悲也.]"라고 하였다. 《唐宋八大家文鈔 卷46》 《古文眞寶 後集 卷7》 면성(綿城) 전라남도(全羅南道) 무안(務安)의 별칭이다. 승선(承宣) 김치문(金稚問)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다. 약천상공(藥泉相公) 남구만(南九萬, 1629~1711)으로, 약천(藥泉)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는 《약천집(藥泉集)》, 《주역참동계주(周易參同契註)》 등이 있다. 암행어사(暗行御史)……때에 남구만은 31세 때인 1659년(효종10)에 호남 암행어사, 1662년(현종3) 경상도 암행어사로 나간 바 있다. 《韓國文集叢刊解題 131, 132輯 藥泉集》 《명재집(明齋集)》 조선 후기 학자인 윤증(尹拯, 1629~1714)의 문집인 《명재유고(明齋遺稿)》를 가리키는 것으로, 명재는 그의 호이다. 윤증은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또 다른 호는 유봉(酉峯)이며, 성혼(成渾)의 외증손이고, 부친은 윤선거(尹宣擧)이다. 권시(權諰), 김집(金集),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김양국(金亮國) 글을 통해 저자인 김만영(金萬英)의 5대손으로 확인될 뿐, 누구인지는 상세하지 않다. 간단한……나자 원문의 '寒暄'은 날씨의 춥고 따뜻함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겨울에는 춥고 봄에는 따뜻한 것과 같은 것이다. 전하여 간단한 안부 인사를 의미한다.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의 《서의(書儀)》 〈거가잡의(居家雜儀)〉에 "날씨를 말하거나 기거를 여쭌 뒤에 또 세 번 재배하고 그친다.[叙寒暄, 問起居訖, 又三再拜而止.]"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염락(濂洛) 염계(濂溪)에 거주하던 주돈이(周敦頤)와 낙양(洛陽)에 거주하던 정호(程顥)ㆍ정이(程頤) 형제의 합칭이다. 구소(敺蘇) 구양수(敺陽修)와 소식(蘇軾)의 합칭이다. 고정(考亭) 송(宋)나라 주희의 별호이다. 이는 원래 복건성(福建省) 건양(建陽) 서남쪽에 있는 지명이다. 주희가 만년에 이곳에 거주하며 창주정사(滄洲精舍)를 세웠는데, 이종(理宗)이 주자를 숭사(崇祀)하기 위하여 고정서원(考亭書院)이라 사명(賜名)하였으므로 뒤에 주희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가생(賈生)의 〈치안책(治安策)〉 가생은 한 문제(漢文帝) 때의 문신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그가 일찍이 한 문제(漢文帝)에게 시국 구제책으로 〈치안책〉을 올렸는데, 명문(名文)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史記 卷84 屈原賈生列傳》 《漢書 卷48 賈誼傳》 《史略 卷2 西漢》 일사로서……숨어 반악(潘岳)의 서정부(西征賦)에 "산림 속에 깊이 숨은 선비여, 멀리 가서 돌아오지 않음을 깨달았네.[悟山潛之逸士, 卓長往而不返.]"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御製歷代賦彚 外集 卷9》 은거하여 의를 행하면서 한유(韓愈)가 동소남(董召南)이라는 당나라 때 은사(隱士)를 위해 〈동생행(董生行)〉이라는 노래를 지은 것이 있다. 그 가사에 "수주 속현에 안풍이 있으니, 당나라 정원 연간에 이 고을 사람 동소남이 그곳에 은거하여 의를 행했다.[壽州屬縣有安豊, 唐貞元年時, 縣人董生召南, 隱居行義於其中.]"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小學 善行》 한 고을의 선사(善士)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한 고을의 선사여야 이에 한 고을의 선사를 벗할 수 있다.[一鄕之善士 斯友一鄕之善士]"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용간(韓用幹) 1783(정조7)~1829(순조29).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위경(衛卿), 호는 진재(眞齋)ㆍ수목청화관(水木淸華觀)이다. 1828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정언(正言)을 지냈다.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로서 신위(申緯)와 두터운 교분을 가졌고, 유작으로 「계산만춘도(溪山滿春圖)」가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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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나아 우연히 쓰다 病已偶書 마음 위에 하늘 위의 일을 넉넉하게 보존하니미간에 세상의 근심 걸어두지 않네한 구역의 띳집 푸른 강가에 있으니마치 겹성과 십이루(十二樓)276)에 누운 듯 心上剩存天上事眉間不掛世間愁一區茅屋淸江上似臥重城十二樓 겹성과 십이루(十二樓) 천제(天帝)가 사는 곳을 말한다. 이백(李白)의 시 〈경난리후천은유야랑억구유서회증강하위태수양재(經亂離後天恩流夜郞憶舊遊書懷贈江夏韋太守良宰)〉에, "천상에는 백옥경(白玉京)이 있어, 십이루(十二樓)에 오성(五城) 있다네.[天上白玉京 十二樓五城]"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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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황(始皇) 始皇 시황은 당시에 백성들 어리석게 만들고자 하여277)천하의 병기를 가지고 12개의 금인(金人)을 만들었네278)누가 알았겠는가 품을 팔아 밭 갈던 자가호미 메고서 봉기하여 마침내 진(秦)나라 멸망시킬 줄279) 始皇當日欲愚民天下兵成十二人誰識傭耕農畝者荷鋤蜂起竟亡秦 시황은……하여 진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이사(李斯)의 건의를 받아들여 분서갱유(焚書坑儒)와 같은 우민정책(愚民政策)을 시행한 것을 말한다. 《사기》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이에 선왕의 도를 폐하고 백가의 말을 불태워 백성을 바보로 만들었다.[於是廢先王之道 焚百家之言 以愚黔首]"라 한 대목이 보인다. 천하의……만들었네 진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육국(六國)의 병기(兵器)를 걷어 함양(咸陽)에 모아서 녹인 다음, 이것으로 모두 12개의 금인(金人)을 만들어 궁궐 뜰에 세웠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누가……줄 진(秦)나라 말기에 농민인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반란을 일으켜 결국 진나라가 망하게 된 일을 가리킨다. 《史記 卷48 陳涉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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宜兄宜弟而後。可以敎國人。周公之不和於管蔡。而興禮樂而敎國人。何也。 宜兄宜弟而敎國人。是天理之常。而亦齊家治國之序也。周公之不和管蔡。是處其變。而不得已者。夫然後。周其不亂而有禮樂之興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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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종지이다】4)가 부쳐 온 시에 차운하여 시를 지어 보내다 次尹侯【宗之】寄詩韻以呈 봄날 교외에 가랑비 개이니솔개 날고 물고기 뛰놀아5) 아름다운 흥취 일어나네버들 언덕엔 저물녘 바람 불어오고오동나무 계단엔 달이 막 떠오르누나뜰에선 생기 있는 풀을 바라보고6)책상엔 정신 수양할 책 놓여있네아름다운 시편을 공경히 읽어보니다정스레 쓸쓸히 지내는 안부를 물었네 春郊微雨霽佳興在鳶魚柳岸風來夕梧階月上初庭看生意草床有養神書敬服瓊琚什殷勤問索居 윤종지(尹宗之) 1597(선조30)∼?.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임종(林宗). 호는 백봉(白篷)이다. 1618년(광해10)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大科)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호란 때 난리를 만나 영남으로 피신하여 유리(流離) 생활을 하다가, 1649년(효종 즉위년)에 다시 음직(蔭職)에 발탁되어 곡산현감(谷山縣監), 대구부사(大邱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백봉유고(白篷遺稿)》가 있다. 솔개……뛰놀아 원문의 '연어(鳶魚)'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의 준말로, 도(道)가 하늘 끝에서 깊은 못 속까지 환하게 드러남을 형용한 말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鳶飛戾天, 魚躍於淵.]"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참고로, 이를 인용하여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2장에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하였으니, 상하에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라고 하였다. 생기(生氣) 원문은 '生意'인데, 이는 생기, 생명력 등을 뜻하는 말이다. 주돈이가 살던 곳의 창 앞에 풀이 무성히 자라도 베지 않기에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이 풀의 생의가 나의 뜻과 같기 때문이다.[與自家意思一般.]"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近思錄 卷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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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 삼근에게 주다 贈上人三勤 병서이다. 지리산의 승려 삼근이라는 자가 와서 시축을 보여주고는 나에게 속초7)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원운은 바로 백헌(白軒) 상공8)이 지은 것인데, 백강(白江)과 잠곡(潛谷)9) 등 여러 재상 및 당시의 이름난 이들이 모두 이에 화답하였다. 나는 평소에 영동10)의 산수로 아주 들어가는 것을 꿈에 그렸으나, 병들어 아직까지 유람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삼근이 여러 공의 시에 화답할 것을 청함을 인하여 붓을 끌어다 시구를 완성하여 그 영동의 산수에 대해 적노니, 나의 시의 뜻을 보는 자는 혹 나를 불러서 전원으로 돌아가려는 흥취가 있을 것이다.대관령 너머 신선 세상을평생을 병들어 유람하지 못하였네승려를 만남에 그곳 뛰어난 경치를 말하니시골 초막에 누워있는 내 신세 부끄러워라구름과 노을의 말에 귀를 씻고산과 물의 이야기에 마음을 깨우치리라어느 해에나 대지팡이 한 자루 짚고바다 동남쪽 땅 마음껏 구경할거나 【幷序。 智異山僧三勤者。 來示詩軸。 請余續貂。 原韻乃白軒相公作。 白江潛谷諸相曁一時名流皆和之。 余平生夢想長入嶺東山水而病未得遊者。 仍三勤而請和諸公詩。 援筆成句。 以書其東嶺之山水。 覽余詩意。 或有招我歸來之興否耶。】嶺外神仙界平生病未探逢僧說勝地愧我臥郊菴洗耳雲霞語醒心山水談何年一竹杖遊盡海東南 속초(續貂) '구미속초(狗尾續貂)'의 준말로, 졸렬한 시(詩)로 뛰어난 시를 이어 짓는다는 뜻의 겸사(謙辭)이다. 이는 고대에 임금을 가까이서 보필하는 높은 관리들은 담비의 꼬리로 관의 장식을 썼는데, 진(晉)나라 때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이 조정의 정사를 전단하면서 봉작(封爵)을 너무 많이 내린 나머지 담비 꼬리가 부족하여 개 꼬리로 보충하였던 데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59 趙王倫列傳》 백헌(白軒) 상공 이경석(李景奭, 1595~1671)으로, 백헌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상보(尙輔)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양관(兩館) 대제학 등을 거쳐 인조 말년에 영의정을 역임하였고, 1659년(현종 즉위년)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백헌집(白軒集)》이 있다. 백강(白江)과 잠곡(潛谷) 이경여(李敬輿, 1585~1657)와 김육(金堉, 1580~1658)으로, 백강은 이경여의 호이고, 잠곡은 김육의 호이다. 이경여는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직부(直夫),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세종(世宗)의 7대손으로, 1609년(광해군1)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전라도와 경상도 관찰사, 형조 판서, 우의정,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김육은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백후(伯厚)이다. 1605년(선조38) 진사시에 급제하였고, 1624년(인조2)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대사헌,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구황벽온방(救荒辟瘟方)》이 있다. 영동(嶺東) 강원도 대관령 동쪽 지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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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06)에 배를 띄우다【병소서(幷小序)】 淸和泛舟【幷小序】 4월의 맑고 화창한 초파일작은 배307) 금강 물결에 가볍게 띄우네전생에 신선의 짝이었음을 알겠으니기쁜 마음으로 호산(湖山)에서의 속세 밖 유람을 즐기네두 번째작은 배에 노 하나로 창주(滄洲)308)를 내려가니물결 위에 둥둥 떠 마음대로 노니네머리 돌려 천지가 늙어감을 탄식하니오늘의 이 삶 하루살이와 같구나세 번째강산이 합쳐지고 응결되어 절로 하늘이 열렸으니만고의 흥망 속에 너는 무성한 모습이네이전 시대의 어떤 사람이 나처럼 한가로웠던가한 척 배 타고 밝은 달 곁을 길게 떠다니네【경술년(1670, 47세) 4월 초파일 낮의 조수가 잔잔하기에 내가 형제 몇 사람과 함께 작은 배를 띄워 우로포(尤老浦)에서 출발하여 강 위를 떠다니며 가는대로 내맡겨 두었다. 세심정(洗心亭) 아래에 잠시 정박하였다가 장춘정(藏春亭)309)을 거쳐 석관정(石串亭)310)에 이르러 배에서 내려 언덕에 올랐다. 동행한 몇 사람들은 바람이 두려워 모두 강굽이에 몸을 숨겼는데, 나는 홀로 바윗길을 오르내리며 조는 갈매기에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맑은 여울을 손으로 튕기기도 하였으며 향기로운 풀 자란 물가를 거닐어 아름다운 화초를 꺾고 돌 모서리에 서서 하늘너머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자득한 마음을 시로 읊어 뜻과 생각이 무한하였으니 실로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요, 참으로 태허(太虛)와 오묘하게 계합하는 점이 있었다. 날 저물자 돌아와 이에 멋대로 읊고서 나의 신세를 돌아보니 또한 감개한 마음이 뒤따랐다.】 四月淸和初八日蘭舟輕泛錦江流前身認是神仙侶喜作湖山物外遊其二扁舟一棹下滄洲泛泛中流漫浪遊歎息回頭天地老此生今日等蜉蝣其三江山融結自開天萬古興亡爾菀然前世何人閒似我一舟長泛月明邊【庚戌四月初八日。午潮方平。余與昆季數人。泛小舟發尤老浦。中江容與。任其所之。小泊于洗心亭下。由藏春亭至石串亭。舍舟登岸。同行數子畏風皆伏河曲中。余獨上下巖徑。或戱押眠鷗。或手激淸湍。步芳洲而折瓊草。立石角而望天表。吟哦自得。無限意思。實非傍人所及知。而眞妙契於太虛者存焉。日晩歸來。仍成浪吟。回▦身世。亦有感慨隨之。】 4월 원문은 '청화(淸和)'다. 진(晉)나라 사영운(謝靈運)의 〈유적석진범해(遊赤石進帆海)〉에, "초여름 4월이라 맑고 화창하니, 향기로운 풀들이 끝없이 돋았네.[首夏猶淸和 芳草亦未歇]"라 한 데서 유래하여, 4월의 이칭으로 쓰인다. 작은 배 원문은 '난주(蘭舟)'다. '목란주(木蘭舟)'의 준말로, 결이 곱고 향기 좋은 목련나무로 만든 작은 배를 말한다. 흔히 조각배의 미칭으로 쓰인다. 창주(滄洲) 산수가 아름다운 은사(隱士)의 거처를 뜻하는 말이다. 위(魏)나라 완적(阮籍)의 〈위정충권진왕전(爲鄭冲勸晉王牋)〉에, "창주에 가서 지백에게 인사하고 기산에 올라 허유에게 읍을 한다.[臨滄洲而謝支伯 登箕山以揖許由]"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장춘정(藏春亭)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多侍面) 죽산리(竹山里) 화동마을에 있는 정자다. 석관정(石串亭)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多侍面) 동당리(東堂里) 동백마을에 있는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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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가 밭에서 배회하는 모습을 보고 짓다 見大鳥逡巡於田間有作 눈처럼 흰 옷에 검은 치마를 입었으니모습이 청전(靑田)312)의 학과 같아 부리가 길구나여섯 개 깃촉313)의 하늘 너머까지 나는 날개 없는 것이 아닌데풀 자란 들판에서 무슨 일로 오래도록 방황하는가 素衣如雪襲玄裳貌似靑田鶴觜長六翮不無天外翼草郊何事久彷徨 청전(靑田) 학이 살았다는 고장의 이름으로, 중국 영가군(永嘉郡)에 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 권916 〈영가군기(永嘉郡記)〉에, "목계(沐溪)의 들 청전에 백학(白鶴) 한 쌍이 살았는데 매년 새끼를 쳐서 키워 떠나보내고 어미 한 쌍만 그대로 남아서 살았다. 정갈하고 흰빛이 사랑스러웠다."라 하였다. 여섯 개 깃촉 원문은 '육핵(六翮)'으로 되어있으니, 튼튼한 날개를 가리킨다. 공중에 높이 나는 새는 여섯 개의 강한 깃털을 지니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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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읊다【활발하고 자유로운 기상을 가진 사람은 마땅히 위아래 사방으로 막힘없이 두루 흐르기를 선인(仙人) 여암(呂巖)의 시318)와 같이 하는 것이 옳다. 그의 시에 화답하여 나의 마음을 보이니, 이 시를 보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으로 나의 뜻을 해석하는 것도 괜찮다.】 浪吟【人之自在活潑通脫氣像。當於上下四方。周流無滯。若呂仙之詩則可矣。和之以見意。看者以意迓志。可也。】 북해(北海)와 창오(蒼梧)를 아침저녁 사이에 노닐고동정호(洞庭湖)와 악양루(岳陽樓)에도 머무네319)인간 세상의 형승 두루 다 둘러보고 난 뒤에훌쩍 날아 십주(十洲)320)에 이르네 北海蒼梧朝暮遊洞庭湖與岳陽樓人間形勝周觀盡然後飄然到十洲 선인(仙人) 여암(呂巖)의 시 '여암(呂巖)'은 당나라 말기의 도사로, 자는 동빈(洞賓), 호는 순양자(純陽子)이다. 종리권(鍾離權)을 따라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도교 팔선(八仙) 중의 한 사람으로 칭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여암의 시'는 〈동빈유악양(洞賓遊岳陽)〉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시에 "아침에는 북월에서 저녁에는 창오에서 노니니, 소매 속엔 청사검 하나뿐 거리낌이 없는 마음. 악양에 세 번 들어가도 아는 사람 없으니, 낭랑하게 시 읊으며 동정호를 건너간다.[朝遊北越暮蒼梧 袖裏靑蛇膽氣麤 三入岳陽人不識 朗吟飛過洞庭湖]"라 하였다. 북해(北海)와……머무네 '창오(蒼梧)'는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懸) 경계에 있는 산 이름으로, 구의(九疑)라고도 한다. 순 임금이 남쪽으로 순행(巡行)하다가 이곳에서 죽어 장사 지냈다는 곳이다. 《史記 卷1 五帝本紀》 이 구절은 여암의 시 〈동빈유악양(洞賓遊岳陽〉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다. 십주(十洲)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신선들이 산다고 하는 바다 가운데 10개의 산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선경(仙境)을 가리킨다. 《해내십주기(海內十洲記)》에, "한 무제(漢武帝)가 이미 서왕모가 말한 팔만(八萬)의 큰 바다 가운데에 조주(祖洲)‧영주(瀛洲)‧현주(玄洲)‧염주(炎洲)‧장주(長洲)‧원주(元洲)‧유주(流洲)‧생주(生洲)‧봉린주(鳳麟洲)‧취굴주(聚窟洲) 등이 있다고 한 말을 들었는데, 이 10개의 주는 인적이 아주 드문 곳이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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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음 大樹吟 큰 나무 하늘 향해 백만 길이나 높이 솟아 있으니굽은 가지와 긴 줄기 절로 그늘을 이루었네보고서 다만 뿌리가 원래부터 작음을 안타까워하니천추토록 서 있기에 깊지 않을까 두렵네 大樹參天百萬尋曲枝長幹自成陰看來只恨根元少樹立千秋恐未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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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무지개 長虹 진 시황(秦始皇)이 옛날에 큰 바다에 행차하였는데끝내 신공(神功)으로도 이루지 못하였음이 한스럽네321)위로 진재(眞宰)에게 하소연하여 하늘 또한 감동하니긴 다리 곧장 봉래(蓬萊)와 영주(瀛洲)까지 이르네 秦皇昔日駕滄溟畢竟神功恨未成上訴眞宰天亦感長橋直向到蓬瀛 진 시황(秦始皇)이……한스럽네 진 시황(秦始皇)이 바다를 건너서 해 돋는 곳을 보고자 하여 석교(石橋)를 놓으려 하였는데, 해신(海神)이 나타나서 다리 기둥을 세워 주었다. 진 시황이 이를 고맙게 여겨 만나 보려고 하니, 해신이 말하기를 "내 모습이 추하니, 내 모습을 그리지 않기로 약속한다면 만나겠다."라 하였다. 이에 진 시황이 들어가 해신과 만났는데, 진 시황의 좌우 사람들이 몰래 해신의 발을 그렸다. 그러자 해신이 성을 내면서 빨리 나가라고 하였다. 진 시황이 말을 타고 곧장 나왔는데, 말 뒷다리가 석교에서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석교가 무너졌다는 고사가 있다. 《藝文類聚 卷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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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려의 선대체11)로 쓴 시12)의 운을 사용하여 감회를 적다 用韓昌黎扇對軆書懷 지난해 봄 지독한 가뭄이 들었을 제백성들 얼굴빛은 청황으로 물들었지13)올해에는 보리에 싹이 나지 않으니이 백성들 쌀겨로 죽 끓여 먹는다네사람 마음 어찌 그리도 서글프단가하늘의 뜻은 끝내 아득하기만 하여라장저와 걸익은 비록 세상을 잊었으나14)가생은 눈물이 절로 주르륵 흘렀다네15)'묘'가 어떤 본에는 '穗'로 되어있다. 去年春苦旱民色采靑黃今歲麥無苗斯民饘有糠人心何慽慽天意竟茫茫沮溺雖忘世賈生涕自滂【苗一作穗】 선대체(扇對軆) 선대격(扇對格)을 말한다. 구체시(舊體詩)의 대우(對偶) 격식(格式) 가운데 하나로, 한 구를 격(隔)하여 대우하는 것인데, 1구와 3구가 대우가 되고, 2구와 4구가 대우가 되는 것이다. 격구대격(隔句對格)이라고도 한다. 한창려(韓昌黎)의……시 「송이원외원장분사동도(送李員外院長分司東都)」라는 시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가을 이슬 내릴 때, 나그네로 동쪽 길 나섰는데, 올해 봄 풍광 일렁일 제, 말을 달려 서울을 이별하네. 술 마시며 서로 돌아볼 땐 기뻤건만, 전송하고 홀로 돌아오는 마음 쓸쓸하네. 두 곳 천 리만큼 멀어지진 않았으니, 부는 바람에 두어 마디 부쳐볼거나.[去年秋露下, 羇旅逐東征, 今嵗春光動, 驅馳别上京, 飲中相顧色, 送後獨歸情, 兩地無千里, 因風數寄聲.]" 《御定全唐詩 卷344 韓愈》 백성들……물들었지 지독한 흉년이 든 탓에, 백성들의 안색이 좋지 못한 것을 표현한 말인듯하다. 장저(長沮)와……잊었으나 은둔하여 직접 농사 지으며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던 은자들이다. 이들은 공자가 난세(亂世)에 은거하지 않고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을 비판하였다. 《論語 微子》 가생(家生)은……흘렀다네 한(漢)나라의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한나라 문제(文帝) 때 나라가 선우족(單于族)에게 모욕을 당하고 제후왕(諸侯王)이 반역을 꾀하는 등 시국이 위태롭고 혼란하자, 가의가 시국을 바로잡는 치안책(治安策)을 써서 문제에게 올렸다. 그 내용에 "신이 삼가 사세를 살펴보건대,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요,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두 가지요, 장탄식할 만한 것이 여섯 가지입니다.[臣竊惟事勢,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48 賈誼傳》 《古文辭類纂 奏議類 陳政事疏》 여기에서는 김만영이 시국을 걱정하는 마음을 가의에 빗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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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의 문한에 종사하는 여러 어른에게 부치다 寄江舍翰墨諸老 긴긴 여름 날 산의 정자에서는베개 높이 베고서 샘물 소리 듣겠지요격절한 건 신문의 딱따기 소리이고16)화평한 건 태산 영계기의 거문고 소릴테지요17)운거를 돌려 하늘에 노닐었고18)시냇물 흐른 탓에 세간에 전해졌답니다19)강가의 어른들에게 한 마디 부치노니동천20) 속 신선놀음 어떠하신지요 山亭長夏午高枕聽鳴泉激切晨門石和平岱啓絃回雲天上弄流水世間傳寄語江邊老何如洞裏仙 신문(晨門)의 딱따기 소리이고 신문은 새벽에 문(門) 여는 것을 맡은 사람으로, 노(魯)나라의 은사(隱士)이다. 《논어》 「미자(微子)」 문지기는 야경(夜警)을 돌며 딱따기를 친다고 한다. 태산(泰山)……소릴테지요 원문의 '岱'는 태산이다. 영계기(榮啟期)는 주(周)나라의 은자이다. 세 가지 즐거움을 노래한 것을 이른다. 공자가 태산을 유람하다가 성(郕) 땅의 들판을 걸어가는 영계기를 보았는데, 그는 사슴 갖옷에 노끈 띠를 매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고 있었다. 공자가 "선생은 뭐가 그리 즐거우시오?" 하고 묻자, 영계기가 "천지 만물 중에 오직 사람이 귀한데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한데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세상에 태어나 해와 달을 보지 못하고 포대기에 싸인 채로 요절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나이가 90세이니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지요."라고 답하였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 "훌륭하다. 스스로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찬탄하였다. 《列子 天瑞》 운거(雲車)를……노닐었고 운거는 전설상에 신선이 탄다는 수레로, 오운거(五雲車)라고도 한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송공소보사병귀유강동겸정이백(送孔巢父謝病歸游江東兼呈李白)」에, "봉래의 직녀가 운거를 돌려서, 허무를 가리켜 귀로를 인도하네.[蓬萊織女回雲車, 指點虛無引歸路.]"라고 하였다. 참고로, 허무는 텅 비고 아득한 선경을 뜻한다. 물줄기……전해졌답니다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동진(東晉)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武陵)의 한 어부가 일찍이 복사꽃이 떠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갔다가 문득 복사꽃이 만발한 선경(仙境)을 만나 깊숙이 들어갔는데,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들어와 대대로 살고 있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곳 사람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수일 후에 그곳을 떠나 배를 얻어 타고 되돌아왔는데, 그 후로는 다시 그 도화림(桃花林)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陶淵明集 卷6 桃花源記》 동천(洞天) 신선이 산다는 선경(仙境)을 뜻한다. 도교(道敎)에서는 이러한 선경이 36개가 있다고 하여 36동천(洞天)이라고 한다. 《述異記 卷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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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奇松沙 三聖山下。絃誦洋溢。得育英才。其樂可想。矧伊陽來爲復之時。于以見陽與君子之道。不可亡也。此不能無慰慰者耳。刊事。事巨力綿。何以經紀。仰慮不尠。此間願見者不多人。亦可見士習之委靡也。歎如之何。月前祭謹齋文。謹依敎。送家兒讀告矣。其致意懇到。不惟文見之靈。感立於冥冥之中。足令傍觀友生。慨然釀涕也。欽服何已。目今天地爲純坤久矣。一念之差。直是坑塹在前。其爲戰兢。萬倍於尋常時矣。顧此區區賤生之依賴於德義之下。殆若惑再之仰斗柄。厲夜之隨紅燭也。願時加䂓警。以扶竪之。乃所深望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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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奇松沙 伏未審。春事方殷。靜養道體。循序珍衛。刋役今作何狀。種種獻慮。趁擬躬造。以奉硏墨之役。而春寒尙峭。身苦叫囈。果未遂矣。日新。近以感祟作苦。日間稍可云。大振愼節。近如何。貧寒次骨。又有此苦。奉老情景。甚悶甚悶。原憲之濕。伯鸞之僦。亦莫非各安厥居。則以此意。或喩及耶。多少在晋拜時。奉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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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鄭瑜欽 嗚呼哀哉。福善禍淫。是天道之常。而使吾公之善。猶不過於知命之壽。如是則天道其可信乎。抑亦氣數所變理。亦難諶耶。直欲問於蒼穹。質諸鬼神。而不可得也。公以溫良愷悌之質。穎秀開悟之才。自任斯文之責。早尋門路之正。遊從師友。講磨義理。潛昭闇章。望實隆重。其所以鎭定頹俗。裨補斯世者。謂何如也哉。噫。造物。不媚好事多魔。使吾黨益孤。斯道不幸。至於若是耶。未知厭世汙濁。浩然卸歸。而從先聖先賢於淨土潔地耶。朝聞夕可。在公無憾。而昏衢擿埴。奈後學何。山長水闊。風凄雲慘。謹奠菲薄。以寓一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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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具德潤 轉眄之頃。令李象生。已撤塤床。孤韻獨唱誰和。幸惟二哥在膝。成就繼述。綽有餘裕。以是寬遣。復有何憂耶。謹詢春堂氣方。循序康旺。彩趍之暇。溫理慥慥。親知相望。曷勝云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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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崔而受【濟謙】 聯棣倂鞭。燭跋陋室。此何等榮光。又且傾囷倒廩。許以平生舊契。此固碩人君子。包洪之盛度。而顧此膚淺朽物。奚以見取。非幸伊懼。此時詩禮樽爼。已屬先天。不知前頭何時。天借好便。續展前日未罄底蘊耶。因復慨然。謹詢此時體候何如。弟固陋賤狀。學無實見。一生捱過。只恃朋友之夾輔。而其望於高明者。又不淺尠矣。未知以爲何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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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文啓元【頌奎】 令季歷訪。袖致惠書。濯手莊讀。如得世外空靑。感浣則深。伏詢麥秋。體候無損。瞻望黃鶴。徒切悵悵。石火光中。八尺。掩沒於千丈塵窖中。埋頭羈足。使平生知好。未得源源團握。而齎志悵昂於尋常日夕之間。此是塵海本色耶。示中磨礪二字。以德愛人。誨責雖切。然懶散積習。膠愚不移自歎奈何。近有所述。露醜敢呈。以賜斤正。此非相愛之道耶。幸惠一語。俾爲終身佩服之符。企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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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族孫圭七鍾釆 嗚呼。公篤生遐荒。禀賦眞正。早著孝友。晩濟學問。親賢取端。地步展拓。潛昭闇章。望實隆重。粹然爲斯文之眞儒。蔚然爲斯世之高蹈。此在曠世絶域。而猶將愛慕之無已。況近在吾門。係姓綴食之地哉。勉之以立心。爲學之方。戒之以修身。克家之要。左右扶持。前後導引。綢繆懇惻。丁寧諄悉。嗚呼何天不佑吾門。鬼不相吾公。使四十有五之年。遽作千古百世之人耶。厲夜失燭。狂瀾失枕。山哀浦思。萬古悠悠。光風霽月。玉壺淸氷。奄然隔世。不可復覿。迨象生之不撤。庶至恨之可洩。短辭薄奠。敢此告訣。尙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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