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산(卧龍山)은 천애지각입니까? 도무지 천애지각이 아닌데도 이와 같으니, 한 통의 안부 편지가 또한 그 사이에서 몇 차례나 있었습니까? 어찌 그리 이토록 인편을 구하기가 어렵단 말입니까. 지난해 봄에 한 통의 안부 편지를 생질 기선(基善) 편에 부쳤고 그 후에 돌아왔습니다. 공춘(公春)이 만든 치포관(緇布冠) 한 건은 아직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4월 모일에 용아(用兒)가 마침 제가 잠시 나갔을 때 와서 알현하고 돌아갔다고 하니, 한쪽 내에서는 이처럼 이상하게 틀어지는 일이 발생하는데, 더구나 말 밖의 인편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우습고 우습습니다. 공께서 또한 진즉에 답장을 보냈지만 또한 지난날 인편을 구해 순조롭게 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어느덧 세월은 지나서 어느새 몇 달이 지났는데, 태만한 죄를 자책하며 무어라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부득이 공께서 막 우편을 통해서 연락해 주시니,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삼가 공부하는 체후가 평안하고 즐겁고 철에 따라 왕성하고 화목하며 자제분들은 모두 부모님을 편안히 모시고 있습니까? 우러러 축하드리는 심정이 그지없습니다.저는 요즈음 부모님의 병환으로 괴로워하고 있는데 공적 사적 일이 또 더해져서 두 차례 소갈증으로 밥을 먹지 못한 지 각각 사나흘이 되었고 공적으로 막 두통이 생겼으니, 조금 괴롭고 괴롭습니다. 우리들이 넉넉한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난날 '존선조 동계공(東溪公)의 제단과 봉령(奉靈)을 허락한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식언한 잘못을 면하기가 어렵다고 멀리서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리가 명령대로 따르지 않음을 어이하겠습니까. 다음 달 20일과 그믐 사이에 한 번 찾아뵈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석 달에 대이삼장(大耳三藏)1)이 장난하는 바가 되지 않을 줄 어찌 알겠습니까. 근간에 혹 지나가는 길에 왼편을 돌아보는 은혜가 있겠지요? 홀로 보름달을 바라보고 바람을 쐬며 바라보는 것을 미리 상상하지만, 다만 "내가 가지 않을지언정 그대는 어찌 오지 않는가.[我寧不往 子何不來]"라는 구절을 읊조릴 뿐입니다.보내주신 선물은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이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전적으로 안내받은 것이 없이 보냈으니, 아직까지도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무릎을 맞대고 세세히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나머지 할 말이 많습니다. 삼가 공부하는 체후를 스스로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예식을 갖추지 않고 편지를 올립니다.1938년 윤 7월 13일에 김영순이 두 번 절하고 올림. 대이삼장(大耳三藏) 당나라 숙종(肅宗) 때 인도에서 건너온 승려로 상대의 마음을 알아내는 타심통(他心通)을 익힌 인물이다. 龍山涯角耶 殊非涯角 而如此者一書之問 亦有數存於其間耶 何其難憑便梯若是之甚也 去年春一封候書寄託於 令甥基善便矣 其後還來也 公春造置緇冠一件尙未仰呈矣 四月日用兒適際鄙之暫出之時 往謁而歸云 一邊之內亦有如此異常瞑違 况言外便耶 呵呵 公亦趁修謝狀 而亦如疇昔之難憑順寄 故於焉自去月來遽爲數朔 其爲逋慢之罪 自訟難諭 不得已今才憑郵仰塵 悚悚 謹問經體湛樂對時旺穆 曁奉玉輩俱安彩趨 幷頌區區 永淳年來惱於親憂之中 公私又添 兩次痟喝 殊絶飮啄 各到三四日 而公才擾頭小苦小苦 非惟承得 吾子之年來富瞻之末光 回憶昔有尊先東溪公之壇祠奉靈之諾 遙想難免食言之 誅 然奈於脚不從令何 方擬來月念晦間一晉然安知郍腊不爲大耳三丈【藏】者之所戱耶 近間或有歷路 左顧之惠耶 預想獨看望月 臨風而望 而但吟我寧不往 子何不來之句而已 惠饋想應司處不司而專無 敎示 而送之 尙未知何如措處 故以待從膝細攄耳 自餘萬萬 伏希經候自重 不備上戊寅閏七月十三日金永淳再拜[皮封](前面) 高興郡頭原面龍山里 旧卧龍朴斯文炯得宅將命者(背面) 同郡占岩面沙洞金永淳書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