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선생(南坡先生)은 맑은 눈으로 보십시오.일전에 벌교(筏橋)에 갔다가 끝내 얼굴을 대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아쉬운 심정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탁한 『매천집(梅泉集)』의 서문은 정례(情禮)로 받아들이고 감히 글솜씨가 없다고 사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겨우 실정을 서술하여 이남계(李南溪) 사백(詞伯)에게 보내고 택영(澤榮) 씨와 문호(文鎬) 씨에게도 보냈는데, 두 씨의 자는 '之'자로 고쳤습니다. 그러므로 일전에 이에 관해서 적어서 올렸습니다. 황석전(黃石田)1)은 아직도 착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니, 석전 가 부근에서 영남 조중근(曺仲謹)2)의 글을 얻었다고 합니다. 또한 하동의 김토규(金土珪)와 김상기(金相基)가 매천(梅泉)의 시문을 중간하고 널리 배포하러 적립금 700원을 찾아 상경한 뒤에 간행한다고 합니다. 한꺼번에 함께 간행하여 매도하는 것은 또한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은밀히 부탁하니, 즉시 인쇄를 독촉하여 이달 내에 간행을 마쳐서 먼저 파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머지 많은 말은 예식을 갖추지 않고 편지를 올립니다.1932년 7월 10일에 제 윤종균이 두 번 절하고 올림.하구정 시에 차운하다[何求亭次韻]발을 걷어 올리니 봄비가 가늘게 내리고捲簾春雨微베개에 기대니 밤에 강물 소리가 들려오네倚枕夜江響덕을 쌓은 사람을 어디에서 찾을꼬種德復何求세월이 오래되니 훌륭한 자손 있네年深玉樹長 황석전(黃石田) 황원(黃瑗, 1870~1944)으로,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계방(季方), 호는 석전이다. 조중근(曺仲謹) 조긍섭(曺兢燮, 1873~1933)으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근, 호는 심재(深齋)이다. 南坡先生 靑照日前筏橋之行 竟未面晤而歸 悵何如云 俯托梅集序容以情禮 不敢以不文牢辭故僅敘情實 付于李南溪詞伯 共澤榮氏文鎬兩氏 兩氏字改以之字 故前以錄呈 黃石田尙未逢着 然聞諸友人 則自石田邊近得嶺南曺仲謹文字云 且河東金土珪金相基以須選梅集詩文 重刊廣佈 探積立金七百円 而上京刊出云 一時幷刊賣渡亦難 故玆以密寄 卽督印刷此月內了役 先賣若何 餘萬不備上壬申七月十日 弟 尹鍾均 二拜何求亭次韻捲簾春雨微 倚枕夜江響種德復何求 年深玉樹長[皮封](前面) 寶城郡筏橋活版所梅泉集刊所內朴南坡 炯得 氏旅次入納(背面) 求禮郡光義面芝川里尹鍾均拜椷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