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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황(救荒) 상소(上疏) 초본(抄本) 1 고문서-소차계장류-상소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풍천임씨(豐川任氏) 문중(門中)의 누군가가 구황(救荒) 문제로 합하(閤下)에게 올린 상소문의 초본(初本) 풍천임씨(豐川任氏) 문중(門中)의 누군가가 구황(救荒) 문제로 합하(閤下)에게 올린 상소문 필사본이다. 구황에 대한 급선무는 득인(得人)이 우선이며, 득인을 위해서는 지인(知人)이 있어서 구황의 폐단이 없다는 내용이다. 문서의 상태를 살펴보면 이 문서는 상소 내용이 연결되어 있는 두 장의 종이 가운데 첫 번째에 해당하는 문서이다. 내용상 앞부분도 결락된 것으로 보인다. 문서의 결락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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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임백윤(任百允)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丙戌三月日 魚川面化民任百允等4人 城主 丙戌三月日 [1886] 任百允 南平縣監 官[着押] 印 3顆(정방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국대전(經國大典)』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병술년에 임백윤(任百允) 등 4명이 남평현감(南平縣監)에게 올린 문서 병술년(丙戌年) 3월에 어천면(魚川面) 화민(化民) 임백윤(任百允) 등 4명이 남평현감(南平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내용은 임백윤 등의 선조인 한림공(翰林公) 임곡지(任哭之)의 묘소가 있는 욱곡면(郁谷面) 서당동(書堂東) 후록(後麓)에 있는 묘소와 제실을 막저(幕邸)에 사는 민(民)에게 금호(禁護)할 수 있게 하여 연호(烟戶)의 역에 오르지 않게 한 바 영읍(營邑)의 완문(完文)과 제음(題音)으로 남겨 침역(侵役)의 폐단이 없었다. 그런데 작년 소위 해당 면의 도정(都正)과 면임(面任)이 총 3호(戶)에 각항 연역(烟役)을 횡침(橫侵)하니 정소(呈訴)하여 횡침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도정과 면임이 지키지 않으니 묘저(墓邸)의 역(役)을 탈급(頉給)해주라고 청한 것이다. 이 문서는 임백윤을 비롯하여 임백효(任百孝), 임인준(任仁準), 임명호(任命鎬) 등이 첨여하였다. 어천면은 현재 금천면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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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황(救荒) 상소(上疏) 초본(抄本) 2 고문서-소차계장류-상소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풍천임씨(豐川任氏) 문중(門中)의 누군가가 구황(救荒) 문제로 합하(閤下)에게 올린 상소문의 초본(初本) 풍천임씨(豐川任氏) 문중(門中)의 누군가가 구황(救荒) 문제로 합하(閤下)에게 올린 상소문 필사본이다. 구황에 대한 급선무는 득인(得人)이 우선이며, 득인을 위해서는 지인(知人)이 있어서 구황의 폐단이 없다는 내용이다. 문서의 상태를 살펴보면 이 문서는 상소 내용이 연결되어 있는 두 장의 종이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 문서이다. 군데군데 결락이 있고 문서 좌측에는 글자를 연습하여 쓴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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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임성태(任聖台) 등 의송(議送)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戊午三月日 南平魚川面生任聖台等13人 繡衣道 戊午三月日 [1858] 任聖台 暗行御史 御使[着押] 印 1顆(원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국대전(經國大典)』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지명총람』 14 –전남편-, 한글학회, 1984. 무오년에 임성태(任聖台) 등이 암행어사(暗行御史)에게 올린 문서 무오년 3월에 남평(南平) 어천면(魚川面)에 사는 임성태(任聖台) 등 13명이 암행어사(暗行御史)에게 올린 의송(議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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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임영모(任永模)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庚申四月日 ▣‥▣永模等9人 庚申四月日 [1860] 任永模 ▣[着押] 印 1顆(정방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국대전(經國大典)』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경신년에 임영모(任永模) 등 9명이 남평현감(南平縣監)에게 올린 문서 경신년(庚申年) 4월에 임영모(任永模) 등 9명이 남평현감(南平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임양모(任良模)는 본처가 낳은 아들로 우리의 증조모이다. 그래서 종가에서 증조(曾祖)가 70량(兩)을 들어 위토(位土)를 마련함. 遞遷 문서 상태를 보면 윗부분과 제사(題辭) 일부가 결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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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 임백윤(任百允)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己卯七月日 魚川面化民任百允等9人 城主 己卯七月日 [1879] 任百允 南平縣監 官[着押] 印 5顆(정방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국대전(經國大典)』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지명총람』 14 –전남편-, 한글학회, 1984. 기묘년에 임백윤(任百允)이 남평현감(南平縣監)에게 올린 문서 기묘년(己卯年) 7월에 어천면(魚川面) 화민(化民) 임백윤(任百允)이 남평현감(南平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내용은 임백윤의 선조인 한림공(翰林公) 임곡지(任哭之)의 묘소가 있는 욱곡면(郁谷面) 창흘리(昌屹里)에 묘지기와 제실 막저(幕邸)에 사는 민(民) 십여 호의 역을 면제하였다. 그러나 병자호란 이후 흩어져서 3~4호만 남아지만 영읍(營邑) 완문(完文)에 동포(洞布)와 각항 잡역(襍役)을 침범하지 말라 하였다. 하지만 임(任) 무리들이 작간(作奸)을 일으켜서 작년에 정소(呈訴)하여 탈급(頉給)을 받았으나 임 무리가 따르지 않으므로 엄히 제교(題敎)를 내려 해당 색리(色吏)와 면임(面任)에게 동포(洞布)를 탈급하고 횡침(橫侵)이 없도록 해주기를 청하는 것이다. 어천면은 현재 금천면 일대이다. 이 문서는 임백윤을 비롯해서 임백묵(任百黙), 임인준(任仁準), 임철준(任喆準), 임기준(任基準), 임상준(任祥準), 임철호(任哲鎬), 임길호(任吉鎬), 임기호(任基鎬) 등이 수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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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년 임백헌(任百憲)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戊寅十一月日 化民等昌平縣令任百憲等8人 城主 戊寅十一月日 [1878] 任百憲 南平縣監 [着押] 印 3顆(정방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국대전(經國大典)』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지명총람』 14 –전남편-, 한글학회, 1984. 무인년에 임백헌(任百憲) 등 8명이 남평현감(南平縣監)에게 올린 문서 무인년(戊寅年) 11월에 어천면(魚川面) 화민(化民) 임백헌(任百憲) 등 8명이 남평현감(南平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내용은 선조(先祖) 한림공(翰林公) 임곡지(任哭之)의 묘소가 있는 욱곡면(郁谷面) 서당동(書堂洞)에 묘지기와 제실 막저(幕邸)에 사는 민(民) 십여 호를 견역(蠲役)한 것이 백여 년인데 병자호란 이후 흩어져서 2~3호만 남았다. 근래 임장배(任掌輩)가 동포(洞布)와 각항(各項) 잡역(雜役)을 횡침(橫侵)하기에 영읍(營邑)의 완문(完文)을 첩련(帖聯)하여 앙소(仰訴)하니 엄히 살펴 동포와 잡역에 대해 다시는 횡침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욱곡면 서당동은 현재 나주 봉황면 오림리 일대이다.이다. 이 문서는 임백헌을 비롯해서 임백묵(任百黙), 임인준(任仁準), 임철준(任喆準), 임기준(任基準), 임철호(任哲鎬), 임길호(任吉鎬), 임기호(任基鎬) 등이 수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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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임노(任奴) 석동(石同)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壬戌四月日 魚川面夜山任奴石同등2人 官司主 壬戌四月日 [1862] 任奴石同 南平縣監 官[着押] 印 3顆(정방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국대전(經國大典)』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지명총람』 14 –전남편-, 한글학회, 1984. 임술년(壬戌年)에 임노(任奴) 석동(石同) 등이 남평현감(南平縣監)에게 올린 문서 임술년 4월에 어천면(魚川面) 야산(夜山)에 사는 임노(任奴) 석동(石同) 등 2명이 남평현감(南平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문서 아랫부분이 일부 결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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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랜 세월 동안 만나지 못한 듯이 서글픕니다. 이해에 형의 체후가 더욱 평안하시고 자손들도 두루 평안할 것을 청하리라 생각되니, 우러러 칭송하고 축하드립니다.저는 일전에 복매(復梅) 형과 함께 제주도에 갔다가 바다에서 풍파를 만나 수질(水疾)이 갑자기 발병하여 미처 땅을 밟지도 못하고 성산포(城山浦)에서 배를 대고 육지로 백여 리를 가서 겨우 제주도에 도착하였습니다. 지금도 정신과 혼이 나가서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어질어질합니다. 이는 또한 자기가 스스로 만든 일이니, 누구를 향해 원망하고 탓하겠습니까. 혹 그 형편을 보면 섬사람의 인심이 육지와는 현격히 다르니, 이러한 등의 서책은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곳에 온 것이 후회됩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일어난 일이니, 진퇴유곡(進退維谷)이라 할 만합니다.섬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임죽헌(林竹軒)【이름이 정춘(丁春)이다.】을 방문했으니, 그가 "구례(求禮)의 양현용(梁顯龍) 군이 지난해에 이 책을 구입하기 위해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갔고, 윤유당(尹酉堂)도 또한 이 책을 구입할 수 있을지 여부로 편지를 써서 알아보았다가 전혀 판매할 뜻이 없다는 답장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형세로 보아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여관 외에는 기숙할 곳이 없어서 부득이 여관에 머물렀는데, 하루의 시간을 허비한 것이 과연 적지 않습니다. 하늘 끝의 천 리나 떨어져 있는데 스스로 허탄할 뿐입니다. 다만 며칠을 기다려 보다가 돌아올 계획입니다.매화시는 그간에 과연 살펴보았습니까? 몹시 듣고 싶습니다. 육지에서 나오는 즉시 선장(仙莊)에 오로지 찾아뵐 계획입니다. 나머지는 가까운 시기에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예식을 갖추지 않습니다. 오직 종형께서는 살펴주기를 바랍니다.1934년 7월 30일에 종제(宗弟) 해룡이 두 번 절하고 올림.저도 동과(同寡)의 사람이니 말한들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이즈음 우전(雨田) 선생의 책이 간행되었습니다. 다만 몇 자의 문안 편지를 써서 올리니, 부디 황전(黃田) 선생도 곁에서 함께 보신다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제성(濟城)에 있는 제 김연성(金演聲)이 두 번 절하고 올림혜전(蕙田) 선생은 요사이 평안하십니까? 저는 정신이 없어 각각 안부를 전하지 못하니, 이러한 제 뜻을 고려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귀댁의 최근 여러 식구도 줄곧 평안하였습니까? 아울러 그 소식을 몹시 듣고 싶습니다.매화시의 1, 2, 3등은 과연 누가 하였습니까? 아무개가 인편으로 통지하겠지만, 몹시 궁금합니다. 일전에 면전에서 부탁한 남원군 수지면(水旨面) 초리(草里) 강덕윤(姜德潤), 같은 동 호곡(好谷) 박환태(朴煥兌), 박환성(朴煥成)의 시가 명단에 빠졌다면 입격(入格)을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는 긴요한 일이므로 이같이 다시 부탁드립니다. 奉別未幾 其所悵仰如隔許多歲月謹請此內兄體增旺 覃儀勻休 頌仰且祝 弟日前與後梅兄偕作濟州之行 而海上遇風波 水疾猝發 未及登地 下船于城山浦 陸行百餘里 纔抵濟島 至今神魂未定圉圉若醉中人 此亦自取 向誰怨尤哉或視形便 則島中人心與陸地逈別 此等書冊莫可出放 到今思之 悔作此行 然此是已發之 夫可謂進退惟谷者也 抵島卽時先訪林竹軒 【名丁春】 則那氏言內求礼梁顯龍甫年前以此冊出放次來到 空行而歸 尹酉堂又以此冊出放與否 作書探知 故都無出放之意答書云云 勢也奈何 旅舘外無一寄宿處 而不得已留連于旅舘 一日所費果是不少 天涯千里 只自咄歎而已第俟幾日期當回程計耳 梅花詩間果考來耶 切切願聞 出陸卽時專晉于仙莊計耳 餘在從近面穩 留不備 惟希 涵亮甲戌七月晦日 宗弟海龍二拜弟亦同寡之人也 言何如之 際玆雨田先生之書行也 但將數字問安以呈幸而傍照于黃田先生 亦不好矣哉濟城留弟 金演聲 二拜蕙田先生近節泰平 擾未各候 此意慮仰 若何 貴近諸詩〖侍〗眷亦一例泰平 倂切願聞梅花詩一二三等果是誰 某隨便通知 甚仰甚仰日前面托南原水旨面草里姜德潤仝面好谷朴煥兌朴煥成詩若遺漏 則付之入格若何此是緊關 故如是更託耳[皮封](前面) 高興郡豆原面卧龍里何求亭朴炯得 先生親展(背面) 濟州島山池港南鮮旅館內朴海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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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끝과 땅 모퉁이로 서로 동떨어져 있으니 그리운 마음이 깊습니다. 이러한 때 공의 모습을 뵈니 얼마나 우러러 위로가 되었던지요. 여러 달 동안 돌아가는 여정에 여독이 없고 백산(柏山)과 함께 같은 날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까? 우러러 그리운 마음이 물이 흐르는 듯합니다. 다만 허가한 책의 정본과 차서(次書)의 사본은 지금 도착했지만, 경비가 부족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부디 특별히 생각하여 성의를 표시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존선조의 문자와 주고받은 편지가 모두 14장인데, 한 장도 결락이 없어 순서대로 간행한다면 간행비, 정본과 사본의 비용이 500궤미에 육박할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며칠이 되지 않은 사이에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하니, 이러한 뜻을 백산 형에게도 전달해 주고 문가(文家)에 예조금(禮助金)이 있다면 그믐과 초하루 사이에 휴대하고 찾아와 주기를 거듭 바랍니다. 그저 잘 살펴주기를 기대하겠습니다.임○년 4월 27일에 송산정산(松山精舍) 이민선(李敏璿)·정우림(鄭遇琳)·김영호(金永濠)·정우석(鄭遇錫)존자의 고명한 품격은 보통 사람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찾아올 때는 얼마쯤 내어 도와주셔야 하니, 아마도 돈을 지참해 오시리라 생각합니다. 댁으로 돌아가신 후에 제가 바라는 바가 더하리니, 이를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涯角相懸 懸仰冞切 際玆承接 德儀 何等昂慰 未審數漢稅駕無撓 與柏山同日利涉 丕仰懷水注 第其許可卷正本次書寫方今來到 而但所慊經費也 幸須特加另念 以表誠力如何 尊先文子與往復書?十四度一不落簡 而井井入梓 則剞劂費正寫費幾至五百繦子耳 商量若何若何 不數日間郵送似好 以此意及於柏山兄 貴中有文家禮助金晦初間携帶 枉臨 申望申望 只冀 亮察壬之四月念七日 松山精舍李敏璿鄭遇琳金永濠金基禹鄭遇錫尊慈之高明風儀逈出凡常 枉存時惠助幾許 想携帶矣 返駕後益孤所望 奈何奈何[皮封](前面) 高興郡豆原面龍山里朴南坡 炯得 氏(背面) 羅州老安面龍山里松山精舍鄭遇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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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와 묵은해가 바뀌는 이때 그대를 그리워하는 심정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삼가 묻겠습니다만, 연말에 조용히 지내는 체후가 한결같이 두루 평안하고 모든 식구가 큰 복을 받고 평안합니까. 삼가 궁금한 마음이 그지없습니다.족종(族宗)은 편모를 봉양하면서 그럭저럭 편안하고 식구들도 병환이 없으니, 삼가 다행입니다. 드릴 말씀은 『삼강총보(三綱統譜)』는 우리 가문의 막중한 일인데, 혼자 고생하면서 어렵고 험난한 일을 피하지도 않고 이처럼 부지런히 하니, 도리어 진정으로 미안합니다. 종하(宗下)는 본래 어리석은 자질로 추천장을 잘못 받았으니, 수봉(收奉)하는 일이 단단히 염려됩니다. 이사하는 일로 이곳을 떠나 타향에서 살아야 하는 형편인데, 종적이 뜸해지고 일도 힘듭니다. 수나라의 구슬이 길을 잃고 초나라의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1) 세상에 팔기 어렵습니다. 이 상황을 스스로 돌아보면, 또한 자신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단자를 거두는 임무를 받들어 행할 수 없으니, 두려운 심정을 누그러트리기가 어려워 이미 우러러 전달하는 것입니다. 부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기를 삼가 갈망하고 고대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존족(尊族)께 널리 고하니, 깊이 벌주지 않기를 삼가 바랍니다.사세로 보아 응당 나아가서 알현하고 어르신께 여쭈어야 합니다. 하지만 길이 조금 멀고 새집을 마련한 초기에 여러 일로 분주하여 몸을 빼낼 겨를이 없어 대략 몇 줄의 편지를 쓰지만, 언제 도착해서 읽어보겠습니까? 과연 과연 석두(石頭)에서 가라앉고 떠오름의 잘못이 없겠습니까.나머지는 후속 편지에서 다시 말하겠습니다. 예식을 갖추지 않고 예를 올립니다.단금(單金) 1원을 우편에 부치니 받아주기를 바랍니다. 품속의 족보 한 질을 보내주기를 삼가 바랍니다.무인년(1938) 12월 31일에 족종 진규가 두 번 절하고 올림.밀양 박씨 삼강총보(密陽朴氏三綱統譜) 단초(單抄)효자 휘 노길(魯吉)은 자가 내수(乃洙)이고 호가 송파(松坡)이다.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22대손이고 호참(戶參)에 추증된 옥래(玉來)의 아들이며, 모친은 정부인(貞夫人) 의령 남씨(宜寧南氏)이다. 철종 갑인년(1854) 12월 30일에 태어났다. 고종 무자년(1888)에 음직으로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에 제수되었다.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워 어릴 적부터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의리를 알았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하며 저녁에는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새벽에는 문안 인사를 올리며, 어버이의 뜻을 이어받아 순종하고,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은 어버이께 먼저 드렸으니, 모두 효자의 세세한 예절을 갖추고 있었다.집안은 평소 청빈하여 아침저녁으로 농사짓고 고기잡이·땔나무를 하며 세월을 보내서, 형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하였다. 가선공(嘉善公)이 병세가 위독하자 의원을 맞이하고 약을 조제하며 하늘에 대고 자신이 대신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부친상을 당해서는 갑자기 기절하였다가 곧바로 깨어났고 물고기와 술은 먹지 않았으며 안채에 들어가지 않고 계율을 지켰다. 묘지가 좋지 않은 것을 늘 걱정하였는데, 오랜 정성에 신이 감동하고 이치가 순응하여 끝내 길지를 얻었다.근검함으로 집안을 다스려서 만년에 조금 풍요로워지자, 재물을 쌓고 흩는 의리를 알았다. 이에 자기 재산을 반으로 나누어 부친, 조부, 증조 삼대 세향(歲享)의 전답을 마련하였는데, 홀로 큰 금액을 부담하였고, 세보(世譜)를 수정하였으며, 친척, 친구 중에 가난한 사람은 분수에 따라 구제하였다. 형제 관계가 돈독하여 큰 이불로 침상을 함께 썼고 창화(唱和)하며 화락하게 지냈다. 거처에는 다른 방이 없었고 재물은 사적으로 보관해 둔 것이 없었다. 자식은 의로운 방법으로 가르쳤으며 재실을 설치하고 스승을 선택하여 『소학(小學)』과 『격몽요결(擊蒙要訣)』을 법문의 바른길로 삼아서 이단의 가르침에 물들지 않게 하였다. 한 가문이 화목하여 완전히 법도 있는 가문의 풍도가 있었으니, 해방(海坊)에서 교화된 자가 많았다.수성(隋城, 수원) 백형재(白亨在)가 행장을 짓고 경재(敬齋) 순흥(順興) 안교환(安敎煥)이 묘지를 찬하다. 초나라의……건너면 남쪽에서 자라는 귤나무를 회수(淮水) 북쪽으로 옮겨 심으면 귤이 탱자로 변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환경이 변함에 따라 그 성질도 변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주례(周禮)』「고공기(考工記)」) 歲換新舊 瞻慕曷極 伏未審臘尾靜體節一衛萬寧 渾庇鴻禧綾安 伏溸區區 不任下忱之至 族宗偏省粗安 眷亦無警 伏幸而已耳 就白三綱統譜吾門莫重之事也 而以獨賢之勞不避艱險 如是勤苦 還實未安者也 宗下本以愚騃之才謬蒙薦狀 以收奉之事斷斷爲念矣 以搬移事勢離居他鄕 踪迹疏濶 事亦辛酸 隋珠失路 楚橘渡淮 難售於世 自顧渠狀 亦一自取其於凔浪 奈何 以事機之如此 未得奉行收單之任 其所悚仄 難以泓款 可旣仰達者也 ■(以)海河之念 千萬容恕 伏望且翹 以此意佈告于 令尊族無至深誅之意 伏祝伏祝 事當進 謁 稟告座下 軒屛 然道路秒遠 攝以新寓之初多般屑屑 未得抽身之暇 畧以數行片 而未知何時抵 覽矣 而果無石頭浮沈之過歟 餘在續后更告 不備上禮單金壹圓付上 郵便考領 伏企伏企耳懷中譜一帙 惠付伏望伏望戊寅臘月末日 族宗晉圭再拜密陽朴氏三綱統譜單抄孝子諱魯吉字乃洙号松坡 糾正公二十二代孫■(王)贈戶參玉來子 妣貞夫人宜寧南氏 哲宗甲寅十二月三十日生 高宗戊子蔭折衝將軍龍驤衛副護軍 天性至孝 自幼能知事親從兄之義 溫淸定省承順唯諾 完衣美味不先身口 皆是孝子之疏節也 家素淸貪 朝暮於?? 歲月於漁樵 使兄專其學業 鄕里咸稱孝敬 嘉善公疾篤 迎醫合藥 稽天祈代 及遭艱 頓絶方甦 鱗糱不嘗 中門守戒 常憂塋兆不利 積年竭誠 神感理應 終得吉地 勤儉理家 晩年稍饒 能知積散之義 中分其財 備置考祖曾三世歲享之田 獨擔鉅貲 修整世譜 親戚故舊之艱乏者隨分濟恤 友于兄弟 大被連牀 壎篪迭唱 居無異室 財無私藏 教子以義方設齋擇師 以小學要訣爲法門正路 不使熏染於異教 一家雍睦 完然有法家風 海坊多化之者 隋城白亨在撰行狀 敬齋順興安教煥撰墓誌[皮封](前面) 全南高興郡頭原面龍山里何求亭朴炯得 氏 殿至急勿滯(背面) 慶北尙州郡化北面雲興里朴春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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