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9212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갑오년 완문(完文) 고문서-증빙류-완문 정치/행정-명령-완문 甲午六月二十五日 官 碧柳村 甲午六月二十五日 官 碧柳村 官{着押] 5顆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한국지명총람』 14 –전남편-, 한글학회, 1984. 갑오년 6월 25일 남평현에서 벽유촌(碧柳村)의 역을 3년간 면제한다는 내용의 완문 갑오년 6월 25일 남평현에서 벽유촌(碧柳村)의 역을 3년간 면제한다는 내용의 완문이다. 일찍이 권기(勸起)의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새로운 터에 벽유동(碧柳洞) 마을이 창립(創立)되었으나 매번 연역(烟役)으로 인하여 힘들고 오합지졸로 마을을 개간할 수 없으며, 성양(成樣)을 이룰 수 없다고 하므로 이에 완문으로써 조령(朝令)에 따라 3년에 한해 연역을 면제한다고 하면서 혹 완취(完聚)하는 사이에 절대로 역을 부과하지 말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37년 임성모(任性模) 강경시권(講經試券)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任性模 [1837] 任性模 [署押] 3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의 과거제도』 , 이성무, 한국학술정보(주), 2004 『조선시대 시권 연구』 , 김동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HIKS_A021_01_A00054_001 1837년(헌종3년)에 임성모(任性模)가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 1837년(헌종3년)에 임성모(任性模)가 32세에 과거(科擧)에서 작성하여 제출한 강경시권(講經試券)이다. 강경(講經)은 문장(文章)을 시험하는 제술(製述)과는 달리 유교경전(儒敎經典)의 암송과 이해 정도를 평가하는 시험으로 생원・진사시와 문과의 초시(初試)에 적용되었다. 강경의 기본 경전은 논어(論語)・맹자(孟子)・대학(大學)・중용(中庸)의 사서(四書)와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 또는 주역(周易)의 삼경(三經) 등 칠서(七書)이다. 강경시권에는 강송한 서명(書名), 강송한 내용, 성적, 성적에 대한 시강관(試講官)의 확인(手決) 순으로 작성되는데, 성적의 등급은 통(通)・략(略)・조(粗)로 구분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순통으로 매겨지기도 한다. 본 시권에는 주역・서전・시전・논어・맹자・중용・대학 순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임성모는 주역, 시전은 통, 논어는 불(不)을 받았다. 시권 우측 상단에는 임성모의 인적사항과 아버지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임성모의 자(字)는 성빈(聖彬), 호(號)는 신묵헌(愼黙軒)이고 본관은 풍천(豐川)으로, 임태규(任泰奎)의 아들이다. 임성모의 부인은 해미곽씨(海美郭氏)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박재홍(朴載弘)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手記主 朴載弘 任進士宅 朴載弘 任進士宅 手記主 自筆 朴載弘[手決],柴塲主 任進士宅 喪主不着, 證參 曺頓五[手決]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박재홍(朴載弘)이 임진사댁(任進士宅)에 작성해 준 수표 박재홍(朴載弘)이 임진사댁(任進士宅)에 시장(柴塲)을 환납하고, 송추값 6냥을 주기로 다짐하며 작성해 준 수표이다. 임진사댁의 묘소가 본촌(本村) 앞 산기슭에 있는데, 지난 신사(辛巳) 년간에 제수(弟嫂)가 최말동(崔未同) 등에게 빠져 그들의 간사한 계략을 알지 못해 시장(柴場)을 한두 번 넘어도 의심하는 느낌이 없으므로 개인적으로 매매한 것이 지금 4년에 이르게 되었는데, 지난 달에 진사댁 상주(喪主)의 형수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어 시장(柴場)은 도로 돌려주고, 송추값으로 6냥을 주기로 다짐하였다고 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45년 임성모(任性模) 시권(試卷)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任性模 [1845] 任性模 印 3顆(정방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의 과거제도』 , 이성무, 한국학술정보(주), 2004 『조선시대 시권 연구』 , 김동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HIKS_A021_01_A00054_001 1845년(헌종11)에 임성모(任性模)가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 1845년(헌종11)에 임성모(任性模)가 과거(科擧)에 작성하여 제출한 시권(試券)이다. 이 시권의 시험 과목은 사서의(四書疑)로 시제는 '問云云'으로 생략되어 있다. 사서의의 제술 형식은 질문에 해당하는 시제의 전문을 기재하지 않고 다만 '問云云'이라고 축약하여 기술한다. 이러한 형식은 18세기 이후에 작성된 시권 사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질문에 대한 답변 내용은 '對(대답합니다)'로 시작하고, '謹對(삼가 대답합니다)'라고 끝을 맺는다. 성적은 '차하(次下)'이다. 시권 우측에 '팔지(八地)'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시권의 제출 순서를 말한다. 과거 시험에서 시권을 다 거두면 제출 순서대로 묶어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자호(字號)를 매겼다. 이를 작축(作軸)이라고 하며, 천축(天軸), 지축(地軸), 현축(玄軸) 등으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천축의 첫 번째 시권은 일천(一天), 두 번째 시권은 이천(二天)이라고 한다. 대개 비봉의 절취선에 크게 한 번 쓰고 그 아래에 좌우 각 두 번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 본 문서는 지축(地軸)의 여덟 번째 시권인 것이다. 임성모의 자(字)는 성빈(聖彬), 호(號)는 신묵헌(愼黙軒)이고 본관은 풍천(豐川)으로, 임태규(任泰奎)의 아들이다. 임성모의 부인은 해미곽씨(海美郭氏)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45년 임성모(任性模) 시권비봉(試卷秘封)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任性模 任性模 印 1顆(정방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의 과거제도』 , 이성무, 한국학술정보(주), 2004 『조선시대 시권 연구』 , 김동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HIKS_A021_01_A00054_001 1845년(헌종11)에 임성모(任性模)가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의 비봉(祕封) 1845년(헌종11)에 임성모(任性模)가 작성하여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 즉 시권(試券)의 비봉(祕封)이다. 피봉부(皮封部)라고도 한다. 시권 우측에 응시자의 성명, 나이, 본관, 거주지, 사조(四祖)의 직역, 성명을 적어 답안지를 제출할 때 이 부분을 잘라서 따로 보관한다. 이는 채점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피봉부와 본체부(답안지) 사이에 자호(字號)를 쓴다. 채점 후에 이 비봉을 답안지와 묶어서 작성자에게 돌려준다. 이를 통해 임성모의 인적사항을 알 수 있다. 임성모가 이 시권을 작성한 나이는 40세이다. 그의 본관은 풍천(豐川)이고 거주지는 남평(南平)이다. 그의 4조(祖)를 살펴보면, 아버지는 생원(生員) 임태규(任泰奎), 생부(生父)는 임태경(任泰敬), 할아버지는 학생(學生) 임상욱(任相郁), 증조(曾祖)는 학생(學生) 임은(任溵), 외조(外祖)는 학생(學生) 김두진(金斗鎭)이다. 임성모의 자(字)는 성빈(聖彬), 호(號)는 신묵헌(愼黙軒)이고 본관은 풍천(豐川)으로, 임태규(任泰奎)의 아들이다. 임성모의 부인은 해미곽씨(海美郭氏)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83년 임상욱(任相郁) 시권(試券)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任相郁 [1783] 任相郁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의 과거제도』 , 이성무, 한국학술정보(주), 2004 『조선시대 시권 연구』 , 김동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HIKS_A021_01_A00044_001 1783년(정조7)에 임상욱(任相郁)이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 1783년(정조7)에 임상욱(任相郁)이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 즉 시권(試券)이다. 이 시권의 시험 과목은 부(賦)이다. 부는 고려와 조선 시대의 과거에서 보이던 여섯 가지 문체(文體) 가운데 하나이다. 부는 송(頌)ㆍ의(義)ㆍ책(策) 등과 함께 제술시험의 전형적인 형태로 운문 형식에 대한 숙련도와 문학적 표현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시제(試題)는 '제피상의(制彼裳依)'이고, 성적은 '갱(更)'이다. 시권 우측 하단에 '팔존(八尊)'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시권의 제출 순서를 말한다. 과거 시험에서 시권을 다 거두면 제출 순서대로 묶어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자호(字號)를 매겼다. 이를 작축(作軸)이라고 하며, 천축(天軸), 지축(地軸), 현축(玄軸) 등으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천축의 첫 번째 시권은 일천(一天), 두 번째 시권은 이천(二天)이라고 한다. 대개 비봉의 절취선에 크게 한 번 쓰고 그 아래에 좌우 각 두 번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 본 문서는 존축(尊軸)의 여덟 번째 시권인 것이다. 임상욱(1762~1815)의 자(字)는 정망(正望)이고 본관은 풍천(豐川)이다. 그의 부인은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83년 임상욱(任相郁) 시권비봉(試券秘封)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任相郁 任相郁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의 과거제도』 , 이성무, 한국학술정보(주), 2004 『조선시대 시권 연구』 , 김동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HIKS_A021_01_A00044_001 1783년(정조7)에 임상욱(任相郁)이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의 비봉(祕封) 1783년(정조7)에 임상욱(任相郁)이 작성하여 제출한 시권(試券)의 비봉(祕封)이다. 피봉부(皮封部)라고도 한다. 시권 우측에 응시자의 성명, 나이, 본관, 거주지, 四祖의 직역, 성명을 적어 답안지를 제출할 때 이 부분을 잘라서 따로 보관한다. 이는 채점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피봉부와 본체부(답안지) 사이에 자호(字號)를 쓴다. 채점 후에 이 비봉을 답안지와 묶어서 작성자에게 돌려준다. 이를 통해 임상욱의 인적사항을 알 수 있다. 임상욱이 이 시권을 작성한 나이는 22세로, 본관은 풍천(豐川), 거주지는 남평(南平)이다. 그의 4조(祖)를 살펴보면, 아버지는 유학(幼學) 임은(任溵)이고, 할아버지는 학생(學生) 임인혁(任仁赫), 증조(曾祖)는 학생(學生) 임철주(任澈柱), 외조(外祖)는 학생(學生) 오태적(吳泰迪)이다. 임상욱(1762~1815)의 자(字)는 정망(正望)이고 본관은 풍천(豐川)이다. 그의 부인은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51년 임성모(任性模) 시권(試券)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任性模 [1851] 任性模 印 4顆(정방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의 과거제도』 , 이성무, 한국학술정보(주), 2004 『조선시대 시권 연구』 , 김동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HIKS_A021_01_A00054_001 1851년(철종2)에 임성모(任性模)가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 1851년(철종2)에 임성모(任性模)가 46세에 과거(科擧)에서 작성하여 제출한 시권(試券)이다. 이 시권의 시험 과목은 사서의(四書疑)로 시제는 '問云云'으로 생략되어 있다. 사서의의 제술 형식은 질문에 해당하는 시제의 전문을 기재하지 않고 다만 '問云云'이라고 축약하여 기술한다. 이러한 형식은 18세기 이후에 작성된 시권 사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질문에 대한 답변 내용은 '對(대답합니다)'로 시작하고, '謹對(삼가 대답합니다)'라고 끝을 맺는다. 임성모의 성적은 '차하(次下)'이다. 시권 우측에 '칠현(七玄)'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시권의 제출 순서를 말한다. 과거 시험에서 시권을 다 거두면 제출 순서대로 묶어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자호(字號)를 매겼다. 이를 작축(作軸)이라고 하며, 천축(天軸), 지축(地軸), 현축(玄軸) 등으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천축의 첫 번째 시권은 일천(一天), 두 번째 시권은 이천(二天)이라고 한다. 대개 비봉의 절취선에 크게 한 번 쓰고 그 아래에 좌우 각 두 번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 본 문서는 현축(玄軸)의 여덟 번째 시권인 것이다. 임성모의 자(字)는 성빈(聖彬), 호(號)는 신묵헌(愼黙軒)이고 본관은 풍천(豐川)으로, 임태규(任泰奎)의 아들이다. 임성모의 부인은 해미곽씨(海美郭氏)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01년 임상욱(任相郁) 시권(試卷)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任相郁 [1801] 任相郁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의 과거제도』 , 이성무, 한국학술정보(주), 2004 『조선시대 시권 연구』 , 김동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HIKS_A021_01_A00046_001 1801년(순조1)에 임상욱(任相郁)이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 1801년(순조1)에 임상욱(任相郁)이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 즉 시권(試券)이다. 이 시권의 시험 과목은 사서의(四書疑)로 시제(試題)는 '問云云'으로 생략되었다. 성적은 '차하(次下)'이다. 시권 우측에 '구황(九黃)'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시권의 제출 순서를 말한다. 과거 시험에서 시권을 다 거두면 제출 순서대로 묶어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자호(字號)를 매겼다. 이를 작축(作軸)이라고 하며, 천축(天軸), 지축(地軸), 현축(玄軸) 등으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천축의 첫 번째 시권은 일천(一天), 두 번째 시권은 이천(二天)이라고 한다. 대개 비봉의 절취선에 크게 한 번 쓰고 그 아래에 좌우 각 두 번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 본 문서는 황축(黃軸)의 아홉 번째 시권인 것이다. 임상욱(1762~1815)의 자(字)는 정망(正望)이고 본관은 풍천(豐川)이다. 그의 부인은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을축년 남평현(南平縣) 완문(完文) 고문서-증빙류-완문 정치/행정-명령-완문 乙丑七月初日 官 將廳, 任班家 乙丑七月初日 南平縣 將廳 任班家 官{着押] 4顆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한국지명총람』 14 –전남편-, 한글학회, 1984. 을축년에 남평현(南平縣)에서 장청(將廳)과 임반가(任班家)에 내린 문서 을축년에 남평현에서 장청(將廳)과 임반가(任班家)에 내린 완문(完文)이다. 문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동촌면(東村面) 원적동(元積洞) 동록(東麓)에 있는 어천임씨(魚川任氏) 선산(先山)에 초목(樵牧) 등이 난입(亂入)하여 작벌(斫伐)하니 이를 금(禁)하기 위해 동 선산을 금초지절(禁樵之節)로 장교(將校)를 주관(主管)으로 하여 신칙하고자 하여 장청과 임반가에 각각 성급(成給)한다는 것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51년 임성모(任性模) 시권비봉(試券秘封)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任性模 任性模 印 1顆(정방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의 과거제도』 , 이성무, 한국학술정보(주), 2004 『조선시대 시권 연구』 , 김동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HIKS_A021_01_A00054_001 1851년(철종2)에 임성모(任性模)가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의 비봉(祕封) 1851년(철종2)에 임성모(任性模)가 과거(科擧)에 작성하여 제출한 시권(試券)의 비봉(祕封)이다. 피봉부(皮封部)라고도 한다. 시권 우측에 응시자의 성명, 나이, 본관, 거주지, 四祖의 직역, 성명을 적어 답안지를 제출할 때 이 부분을 잘라서 따로 보관한다. 이는 채점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피봉부와 본체부(답안지) 사이에 자호(字號)를 쓴다. 채점 후에 이 비봉을 답안지와 묶어서 작성자에게 돌려준다. 이를 통해 임성모의 인적사항을 알 수 있다. 임성모가 이 시권을 작성한 나이는 46세이다. 그의 본관은 풍천(豐川)이고 거주지는 남평(南平)이다. 그의 4조(祖)를 살펴보면, 아버지는 생원(生員) 임태규(任泰奎), 생부(生父)는 학생(學生) 임태희(任泰希), 할아버지는 학생(學生) 임상욱(任相郁), 증조(曾祖)는 학생(學生) 임은(任溵), 외조(外祖)는 학생(學生) 김두진(金斗鎭)이다. 임성모의 자(字)는 성빈(聖彬), 호(號)는 신묵헌(愼黙軒)이고 본관은 풍천(豐川)으로, 임태규(任泰奎)의 아들이다. 임성모의 부인은 해미곽씨(海美郭氏)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