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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나주향교(羅州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乙卯正月日 羅州鄕校 多士 羅亮集 吳繼洙 梁時默 靈光鄕校 乙卯正月日 羅亮集 靈光鄕校 전라남도 나주시 羅州鄕校(흑색, 장방형) 영광 진주강씨 강항 종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04_01_A00047_001 1915년 1월에 나주향교(羅州鄕校)의 나양집(羅亮集) 등이 영광향교(靈光鄕校) 유림(儒林)에게 보낸 통문(通文). 1915년 1월 일에 羅州鄕校의 羅亮集 등 25명이 靈光鄕校 儒林에게 보낸 通文. 靈光 佛甲面 龍山里에 사는 鄭氏가 龍溪祠의 터를 강학소로 이용하다가 그 땅의 주인 노릇을 하며 睡隱 姜沆 본손들에게 돌려주지 않자 羅州鄕校의 儒林이 靈光鄕校의 유림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영광 유림이 정씨문중에 전해 용계사의 땅을 본손에게 돌려주길 요청하는 내용. *참여자: 羅亮集 등 25명 가운데 개인 도장을 찍은 사람이 16명, 지장을 찍은 사람이 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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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빙월당(氷月堂)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乙卯正月日 氷月堂 鄭公源 吳駿善 鄭孝源 靈光鄕校 乙卯正月日 鄭公源 靈光鄕校 전라남도 영광군 적색, 장방형 영광 진주강씨 강항 종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04_01_A00047_001 1915년 1월에 빙월당(氷月堂) 정공원(鄭公源) 등이 영광향교(靈光鄕校) 유림(儒林)에게 보낸 통문(通文). 1915년 1월 일에 氷月堂 鄭公源 등 20명이 靈光鄕校 儒林에게 보낸 通文. 靈光 佛甲面 龍山里에 사는 鄭氏가 龍溪祠의 터를 강학소로 이용하다가 그 땅의 주인 노릇을 하며 睡隱 姜沆 본손들에게 돌려주지 않자 月峯書院의 유림이 靈光鄕校의 儒林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영광 유림이 정씨문중에 전해 용계사의 땅을 본손에게 돌려주길 요청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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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포충사(褒忠祠)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丁巳四月日 褒忠祠 曺基重 羅燾煥 李承鎰 各郡僉章甫 座下 丁巳四月日 曺基重 各郡僉章甫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 진주강씨 강항 종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7년 4월에 포충사(褒忠祠) 조기중(曺基重) 등이 각군의 유림(儒林)에게 보낸 통문(通文). 1917년 4월 일에 褒忠祠 曺基重 등이 各郡의 儒林에게 보낸 通文. 靈光 龍溪祠가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는데 이번 4월에 다시 복설되어 강당을 건립하게 되었으니 각도의 유림은 많은 관심을 두길 바란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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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未審此寒 氣體候一享萬安 大都諸節均迪否 仰溸區區 無任之至 族弟 一依 而勿頃洞山所 亦爲安寧 伏奉萬萬 就伏白山下垈租事件 對ᄒᆞ야 丁巳己未兩年條은 已爲收捧 而殖利이옵고 戊午年條은 墓直李度淳 勿須洞諸宗과 相議ᄒᆞ야 七代祖時祀出費約小홈의 依ᄒᆞ야 諸宗各出幾斗ᄒᆞ고 該賭租一石二斗加入ᄒᆞ야 宗稧設立稱託ᄒᆞ고 不給홈은 已焉諫悉 而去六月分 令尹上來時의도 爛熳相議이온바 今月時祀時 俱本利督促 則各爲子孫은 一般이라ᄒᆞ암고 永永不給 ᄒᆞ온니 事甚憫然 照量ᄒᆞ신後 該事件墓直李度淳의겨 通知ᄒᆞ시와 督促收捧 伏祝伏祝 餘旨不備 上候書庚申 陰十月 十二日 族弟 李福容 上候書누ᄎᆞ 督促? 작년분에 묘즉을 ?여 최치복을 쥴려ᄒᆞ여다 ᄒᆞ고 광언망셜ᄒᆞ온니 니갓치 온통 ᄒᆞ올일은 불가ᄉᆞ문어탄인니로로다<피봉>京畿 富川郡 蘇萊面 茂芝里 李福容 拜上大正九年 陰十一月 十一日 付郵全南 寶城郡 文德面 可川里 李冕容氏 殿 此書札 大至急 故不得已未納付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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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강영회(姜榮會)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癸卯四月十六日 晉山後人 姜榮會 癸卯四月十六日 姜榮會 李彭運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 진주강씨 강항 종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3년(헌종 9) 4월 16일에 강영회(姜榮會)가 아들 강영만(姜永滿)의 혼사(婚事)로 이팽운(李彭運)에게 보낸 혼서(婚書). 1843년 4월 16일에 晉山姜氏 姜榮會(1792~1857)가 아들 姜永滿(1824~1877)의 婚事로 咸豊李氏 李彭運에게 보낸 婚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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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훌륭한 덕과 맑은 의표를 보았고 또 손자의 용모를 보았으니, 한미한 가문에 광채가 빛나는데 사위가 더욱 빛납니다. 삼가 입하(立夏)에 지내는 체후가 분주한 끝에 다행히 크게 손상되지 않았고 식구들도 모두 평안하다고 하니, 삼가 궁금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저는 부모님을 모시며 지내는 상황이 우선 이전과 같으니, 저의 다행한 심정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드릴 말씀은, 좋은 날 좋은 때에 순조롭게 혼례를 마쳤다고 하니, 기쁜 심정을 어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모든 범절이 한결같이 마음처럼 되지 않고 공허한 말은 보탬이 되지 않았으니, 어찌 감히 선처해 주기를 바라겠습니까. 아드님의 새 정은 익숙하지 않은데 갑자기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의례이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나머지 많은 말은 후속 편지에서 계속 이어지니 살펴주기를 바랍니다. 예식을 갖추지 않습니다. 삼가 바랍니다.기○년 4월 16일에 생 정휴태가 두 번 절하고 올림 旣接令德淸儀 又見 賢抱容姿 寒門生輝 東床增彩謹未審葽秀氣體候勞攘餘 幸不至大損 寶眷均慶 伏溯區區不任鄙誠 生省狀姑依 分幸何達 就日吉辰良巹禮利成 其爲欣喜 俾也曷勝掃如 諸凡一不如意 空言無益 安敢望 善恕耶尊郞新情未慣 遽爾告歸例也 奈何 餘萬在源源續后 尊照 不備 伏惟己之乾月旣望 生 鄭休泰 再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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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교성(李敎成)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五月六日 李敎成 父主 庚申五月六日 李敎成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02_001 1920년 5월 6일에 이교성이 상경 노정과 비석에 관한 일, 형재공 산소 국내의 소나무와 가래나무 매매 등의 일로 부친에게 보낸 간찰 1920년 5월 6일에 이교성(李敎成)이 부친에게 보낸 간찰이다. 먼저 안부를 묻고 자신의 상경 노정을 설명하고 있다. 평안 진사와 점심밥을 먹고 저물녘에 광주(光州) 교항점(橋項店)에서 묵었으며, 3일 오시(午時)에 송정(松汀)에서 차를 타고 강경역(江景驛)에 내려 신흥리(新興里)에 이르렀고, 4일 뒤에 차에 올라 대전(大田)에 이르러서 점심밥을 먹은 뒤에 땅거미 질녘에 용산역(龍山驛)에 내려 걸어서 남대문 안의 최명순(崔明順)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고 하였다. 비석에 관한 일은 지금까지 봐오건대 불안하거나 의(義)에 해롭거나 분명하지 않은 점이 한 가지가 아니다. 조목에 따라 대략 들었지만, 이는 한갓 한 집안의 문제가 아니니 속히 삼파(三派)의 종중에서 정대하게 논의하길 바란다고 하였다. 불안하다고 말한 점은 글자를 새기는 것을 일본사람에게 정하여 맡기는 것이 비석이 서대문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는 일본사람이 빠르게 새겨 이로움을 보려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감옥 안에서 사람이 새긴 자획은 깊은지 깊지 않은지 정밀한지 정밀하지 않은지 볼 수 없으니 우리 선령(先靈)이 편안하겠는가 하고 개탄을 금치 않았다. 또 의에 해롭다고 한 점과 분명하지 않은 점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 서산(西山)에서 온 종인의 말을 들은 경중의 종인 몇 명이 형재공(亨齋公) 산소 국내(局內)의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팔아 넘겨 200원을 먼저 걸고 100원을 예약금으로 받았다고 묘지기가 말한 것을 들었다고 하는데, 묘답(墓畓)이 모두 참판 종율(鍾律)의 명위(名位)에 있는데 참판이 이미 사망하여 어쩔 수 없이 이전(移轉)하는 이전비용이라고 하니 곧 실정을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파전(派錢)은 부친 지 오래라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어제 서찰을 부치지 못하였고 김승지(金承旨)가 문자 및 비석의 양식을 다시 수정하였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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